[라이프니츠의 시간관념: 플로티노스 영향] 시간관념의 역사(Histoire de l’idée de temps)
- 벩송의 꼴레쥬 드 프랑스 강의(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02-1903)
- 리끼에(Camille Riquier, 1974-) 편집, PUF, 2016, pp. 303-321(P. 395).
샤를 빼기(Charles Péguy, 1873-1914)[마흔하나]는 벩송에 관한 단행본을 냈는데, 그 속에서 벩송이야말로 라이프니츠 이래로 최고의 형이상학자라 한다. 나로서는 이 글을 읽었을 때는 실감나지 않았다. 그가 벩송의 사상으로 카톨릭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당시의 파리주교를 만나 설득시켰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이야기보다 빼기의 삶이 흥미로웠기 때문에 파리주교를 만난 것도 일화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는 파리 고등사범을 졸업했지만 교사를 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라 하였다. 사르트르는 5년을 채우지 않고 그만 두었던 둘째 사람이다. 빼기가 국민 시인이며, 오를레앙 출신으로 쟌 다크를 성인식에 올리는 데 적극적이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사회주의자들과 왕당파 공화주의 사이에 잔 다크를 대하는 관점의 차이, 한쪽은 성인으로 다른 한쪽은 미친년으로 취급했던 이야기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왕당파와 카톨릭이 잔다크를 미친년을 몰 때, 소크라테스도 다이몬(악마)를 숭배하는 자로 몰았다. 빼기는 드레퓌스 사건에서 졸라의 청원서에 서명을 할 정도로 인성자유주의자였고, 게다가 1차대전에 나이가 많아서 입대가 안 됨에도 지원병으로라도 참여하였다가 전쟁초기에 사망했던 애국주의자였다.
라이프니츠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는 빼기가 속기사를 불러서 벩송의 강의를 받아써서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빼기는 벩송의 진의를 이해한 당대의 가장 중요한 인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들뢰즈는 빼기가 갖고 있었던 벩송의 강의록을 읽지 못했다. 그런데도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1969)에서도 빼기를 중요하게 인용했고, 흥미롭게도 늦게서야 다룬 라이프니츠의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Le Pli, Leibniz et baroque, 1988)이 있다. 이 작품은 예술사의 변천과정을 겸하여 따라가면서 라이프니츠의 존재자(l’étant, 개별자, 현존자)를 다루었는데, 벩송의 관점과 유사하게 라이프니츠를 보았다는 점이다. 들뢰즈가 거의 말년에 쓴 라이프니츠의 개별자들의 각각의 차이를 충족 이유율(raison suffisante)에 따라서 여러 층위로 서술할 수 있었던 것은 들뢰즈 자신의 철학적 사유의 깊이에서 왔는데도, 형이상학을 보는 시각에서는 놀랍게도 라이프니츠에서 벩송으로 연결성을 보았다는 점이다.주름의 동사(plier)는 굽다, 주름지다를 넘어서 ‘습관화하다’하다는 의미로 확장하여보면, 존재자들 중에 물체로서 습관화되어 타성화의 존재자들이 있을 것이고, 본능처럼 신체의 습관화의 주름 잡기도 있을 것이고, 좀 더 활성화(생명화)되었지만 종에 오래 박힌 인식의 습관(본능)으로 유사한 행동을 이어가는 존재자들도 있을 수 있을 것이고, 그리고 이른 신체의 활동을 넘어서 영혼의 생명화로 나아가려는 존재자들도 있을 수 있다고 상상(imaginer)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들뢰즈는 라이프니츠에서 모나드들이 에너지를 지니지만 차이(미분화)를 표현한다고 했지만, 벩송에서는 모나드들의 창을 벗겨버린 이미지로 상정함으로서 차히를 생산하고 생성하고 창조하는 생명의 작동을 덧붙여서 설명하면서 차이와 다른 차히(세분화)를 표출 또는 발산할 수 있는 방식을 설명할 수 있었으리라.
이런 설명의 바탕에는 신의 모습이 완전히 표현된 모나드로서 모습과 그 모습이 아직도 결정되지 않는 이미지(l’image)로서 세계 또는 우주를 설명하는 차이로도 볼 수 있다. 그런 사유의 차이를 종교와 논리적 완성자 또는 절대자로서 신이라는 개념 또는 관념을 설정하지 않고서 설명한다면, 역시 플라톤을 빌어서 한쪽은 그대로 페라스(경계에는 창이 없는)가 있으나 페라스 사이에 빈 것이 없는 통찰(vision)을 따라서 표현했다면, 다른 한쪽은 아페이론으로 흐르고 움직이는 가운데 점점 덩어리로 응결된 모임이 약하게 또는 강하게 이루어지는 가운데 생성되는 이미지들이 있으며, 이들이 언제나 경계가 없이 열려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나도 여러 번 벩송의 저술을 읽으면서 이런 사고가 단지 신의 모습에 대한 상반된 견해라고 여겼으나, 벩송의 강의록을 읽으면 인류가사고하는 방식이나 사유하는 흐름사이에서 어느 누구나 둘 중에 하나에 습관적으로 또는 성찰로서 선택하게 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럼에도 이런 관점의 분열에는, 박홍규의 설명으로 플라톤은 이 둘을 함께 사유한 첫째 철학자라는 말을 상기하면서, 소은의 철학하는 자세는 둘을 동시에 사유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지에서 사고 체계를 세우는 길이 있고. 이런 체계의 주지주의에서는 지배를 위한 명령과 억압의 길이 있었다. 이에 비해 벩송의 길에서 상호침투하는 직관주는 공감을 통한 합의와 계약으로 향하면서도 자기의 자주와 자유를 양도하지 않은 삶을 끊임없이 추구한다는 것이다. 전자에서 참주제(황제제) 후자에서 공화제(민주제)라는 관점을 생각하였던 이는 그래도 소크라테스였다. 벩송이 푸이예를 읽었다는 내용이 강의록에 나오는데, 그는 소크라테스 이전에 소피스트의 등장에서 고르기아스를 심리학적으로 읽기를 권하듯이, 탈레스의 아르케를 영혼의 기원으로 읽게 되면, 인류의 역사에서 철학자는 삶에서 두 가지로 분열, 분해되는 영혼과 신체의 관점이 철학사의 드라마, 과정, 생성, 창조의 길을 열었을 것이다. 이는 사회 공동체에서 저항, 봉기, 항쟁, 혁명의 길과 같은 길일 것이다.
이 분열의 기본은 천문의 수와 지상의 수의 대비에서도 보인다. 그런데 고대에는 천문의 수가 지상의 수에 지배적이라면, 근세는 둘 사이에서 운동의 상대성을 인정하여 이원적이었고, 현대에 와서 심층에서 영혼의 투사로서 상층을 간주하게 되면 삶의 터전이 최종심급이 될 것이다. 즉 우주에서 최종심금이 질료라면, 인간에서 최종심급은 기억의 총체로서 인성이며, 사회 공동체에서 최종심급은 인민이다. 주지주의의 오류는 결과를 최종심급에 명령하여 지배하고 억압하려는데 있다. 참주제, 무오류의 종교성이 주지주의의 사고 형식이다. 기억의 총량으로서 생명활동은 언제나 장애물에 저항하며 같지 않은 사유를 전개하며,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려고 분출하는 용출선을 혼성해 나갈 것이다. (55PM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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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강에서 데카르트를 다루었다. 그리고 스피노자를 한 강의로 삼지 않고 18강의는 바로 라이프니츠를 다루었다. ‘시간관념’에서 왜 스피노자를 다루지 않았을까? 스피노자는 영원으로부터 다루기 때문일 것이고, 게다가 벩송은 스피노자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줄기로 하는 스콜라철학의 방식으로 윤리학을 다루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원의 상하에서 다루기 때문에 시간관념을 언급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라이프니츠는 다르다. 사물의 변화에 대해 관점들로 보았기에 사실상은 시간관념을 다루지 않았다. 사물의 공현존과 시간의 계속성 사이에서, 라이프니츠의 철학은 플로티노스와 가까운 점이 많다는 것이고, 게다가 라이프니츠가 젊은 때라 할지라도 플로티노스를 읽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플로티노스 우주 생성론의 관점을 라이프니츠는 단자론에 응용해서 서술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읽힐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을 벩송이 찾아낸 것이 더 흥미롭다.
벩송은 라이프니츠가 플로티노스를 읽고서 자기 자신의 철학을 만들었다고 한다면, 둘 사이에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이 있을 것이라고 해서, 플로티노스와 라이프니츠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설명한다. 존재의 관점에서 둘은 연결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인식의 관점에서 플로티노스에서 층위[위격]가 있다고 한다면, 라이프니츠에는 모나드들의 관점의 계속성이 있다고 한다. 즉 라이프니츠는 전자에서 위격에 따라 인식의 차이를 보았는데 비해, 그 자신은 인식의 차이를 우주라는 모나드 안에게 개별 모나들에서 생기는 것으로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모든 현존자들은 동시적으로 현존하지만 인식에서 인식가능성에서 존재자들에게 차히가 있는 것이다. 차히 나는 개별자들이 현존하는 가능성의 모나드들의 펼침에서 통찰(visoin)로서는 한 우주라는 것이다. 한 우주의 통찰과 다음 우주의 통찰 사이의 연결성은 연속성에 의해 이루어진 필연적 연관이라 한다. 그 연속성은 예정된 조화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라이프니츠에게 데카르트처럼 시간은 필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우주모나드와 다음 우주모나드 사이의 계속성에서는 플로티노스의 일자에서 우주영혼과 개별영혼으로 생성되는 과정(지속, 시간)의 잔재가 남아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계속성은 형상의 변화 성질의 변화 물체의 운동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더라도 지속의 과정은 아닌 것 같다. 즉 생명의 기나긴 지속성(연속성)을 해명하려면 아무래도 생물학의 진화가 도래해야 할 것 같다. (55P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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벩송은 “자유문제의 진화(1904-1905)”강의에서 드러낼 것이며, 생명 진화론으로 가면서 자유를, 자연의 새로운 창조를 말하게 될 것이다. 이제 형상적 신은 가상이며 상징에 지나지 않고, 우주자체 자연자체가 창조의 기원이자 원인이 된다. 아마도 빼기가 이런 면을 이해했다면, 카톨릭의 근본 이론을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서 벩송주의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카토릭 교리성이나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대학은 벩송을 거부했다. 파리소르본 대학이 벩송을 교수로 선임하지 않듯이, 이는 흄이 글라스고 대학에 교수로 선임될 수 없었던 것과 같다. 스피노자는 스스로 라이델 대학에 취임하지 않았다. 라이델 대학은 스피노자에게 종교에 관한 문제를 건드리지 않은 조건에서 교수자리를 제안했다고 한다.
윌리엄 제임스가 벩송의 창조적 진화(EC, 1907)를 읽고서 주지주의의 비판으로 “당신은 장군이며, 나는 졸병”이라 편지를 썼다. 벩송은 주지주의자가 악순환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EC, 3장). 나로서는 벩송이 지속과 생장, 과정을 설명한 것으로 보아, 싯달다가 탐진치에 빠지지 말라고 하는 것도 주지주의를 비판한 것으로 본다. (55P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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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8강 1903년 5월 01일 회기 303-321
우리는 데카르트에서 한편으로 직관과 다른 한편 체계적 정신이라 부를 수 있는 것과 사이에 가끔 있는 대립에 관해서 강조했다. (303)
둘째 점에 관해서, 어떤 스피노자의 노력과 어떤 라이프니츠의 노력은 대부분의 경우에서, 데카르트주의를 형식에로 이끌기 위해, 즉 고대철학 만큼 철학의 구조에로 이끌기 위해 어떤 노력을 이었다는 것이다. (303)
내가 매우 흥미로운 브로샤르(Victor Brochard, 1848-1907)의 논문을 소개할 것인데, 그 속에서 사람들은 우선 스피노자의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철학사이의 연관을 제시했다. (303)
최근 나온 다른 논문에서, 사람들은 비유를 제시했는데, 나로서는 플로티노스와 라이프니츠 철학 사이에 몇 관점에 관해 거의 동일성을 말할 것이다. .. 이점을 이미 5년 전에 말했었다. (303)
내가 덧붙여 말하는데, 라이프니츠가 통상 사용하는 표현들은 플로티노스에게서 발견되며, 어떤 의심도 없이 그 표현들은 라이프니츠가 플로티노스에서 가져온 것이다. .. 왜냐하면 라이프니츠가 플로티노스 아직 젊었을 때 읽었기 때문이고, 그의 학설은 플로티노스에 관해 깊은 인상을 가졌으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는 플로티노스의 중요점들을 재생산했다. (304)
오늘 강의에서 라이프니츠 주제들 중에 한 주제를 내가 중요한 것으로 또 본질적인 것으로 고려하건데, 그 주제는 시간이 ‘지속하지 않는 것’과 연관에 관해서 이다. .. 그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가 모나드에 의해 이해한 것을 고려해야 한다. (304)
스피노자와 마찬가지로 라이프니츠도 데카르트의 철학의 중심과 축을 이동시켰다. 데카르트는 직간에서부터 출발했고 그 결과 지속으로부터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있다”(Cogito ergo sum)가 나온다. 그는 우선 시간 속에서 자기 자신을 고려했다. [그런데] 그는 재빨리 이런 입장을 떠났다. (304)
반대로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 철학을 특징지우는 것, 그것은 처음부터 영원성이라 불리는 것 속에 자리하고 있다. 이 두 철학자는 신속에 자리 잡고 있다. (304)
라이프니츠가 이렇게 생각한 것, 그것은 그가 진한 데카르트주의를 아마도 학설의 일부만으로 인식하자마자 깨달은 것이다. 왜냐하면 아르노가 라이프니츠에게 보낸 첫 편지, 그로테펜트 판본에서 아르노가 표현하고 있다. (304-305)
[긴 인용문에서] “... 오성은 하나의 유일하고 매우 단순한 작동에 의해 모든 사물들 전체를 안다. 그 작동은 오성의 본질이다. ...” (305)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은 신이 존재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신을 인식의 중심으로 삼을 권리를 갖지 못한다. (305) [인간은 신처럼 영원히 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라이프니츠의 지배적 사유이다. 이것은 고대 관점으로 회귀이다. 이것은 즉시 진리의 중심자체에 위치하기 위한 시도이다. (305)
이점에 위치하고서, 라이프니츠는 무엇을 깨닫는가? 그가 깨달은 것, 그것은 모나드들이다. (305)
우주가, 자기 총체성 속에서, 모나드들로 혼성되어(composer, 구성, 조성) 있다고 말하는 것, 그것은 설명될 필요가 있는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혼성”(composition)이란 단어는 여기서 통속적 언어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305)
[혼성(조성)의 두 가지 방법; 원자론자 대 라이프니츠(조화론) ]
대상들 일체, 대상들 전체성을 고려해보자. ..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우선[첫째] 사람들은 물질적, 너비있는, 서로 외재화 된, 서로 독립적인, 개별자들을 가정할 수 있다. (305-306)
그러한 것은 원자론자의 개별적 관점에서 원자들의 철학이며, 그것들에 서로 닮은 모든 철학의 관점에서 속한다. ... 그러한 것은 상식의 관점이며, 당신들이 원자론적 관점으로부터 그것을 보았던 대로 매우 이웃하는 것이다. (306)
둘째방식이 있다. 이것은 정확하게 라이프니츠의 것이다. 이것은 생각하기에는 훨씬 불편하다. .. 어떤 우주적 관점으로부터 사람들은 일체의 관점을 다룬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사진기가 다루는 관점에 비교할 수 있는 사진적 관점을 이해한다. .. 당신들은 그것을 입체경(stéréoscopique 양안방식)이라 가정할 수 있다. (306)
이런 사진적 방식은 우주가 실제로 있는 그대로 시각적 우주와 차이 있는 것일까? .. 이 사진은 대상들이 하나의 관점 즉 유일한 관점으로 있는 그대로의 대상들을 나에게 제공한다. 대상들은 거기에 사진 위에 있다. 나의 시각은 그것의 한바퀴 돌 수 없을 것이다. (306)
우리는 그것들의 크기, 돋움, 색깔을 갖는, 즉 가능한 모든 점들의 관점을 갖는, 모든 대상들을 가질 것이다. 어디를 통해서 이런 종류의 표상이 있는 그대로 우주의 시각적 표상과 차이가 있는 지를 나는 묻는다. 구별할 어떤 수단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말할 수 있다. 그 자체로서 우주는 우주의 가능한 시각들 정체성이며, 가능한 모든 관점들로 파악된 시각들이다. (307)
라이프니츠의 개념작업은 이러한가? 실제로 라이프니츠는 모나드를 일체에 관한 시각, 즉 관점이며 우주의 거울이다. (307)
실재성을 표상하는 둘째 방식이다. 당신들은 이것을 첫째 방식과 깊이 다르다고 본다. 첫째 경우에서 전체를 혼성(조성)하는 부분들이 있다. .. 둘째 개념작업에서 전체만이 있고 탁자는 없다. .. 독립적인 대상인 한에서 이런 대상(탁자)는 어떠한 실재성도 아니다. (307) [전체와 별개의 탁자는 어디에 무엇에 쓰이는 탁자와 다른다. 전자는 개념작용이고 후자는 실재하는 현존의 탁자이다. - 유명론과 개념론의 차이일 것이다.]
따라서 우주에 대한 둘째 개념작업에서 부분들은 없고 전체만 있다. 첫째 개념작업에서 모든 것은 부분들의 조성(혼성)이다. ..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는 첫째의 것이다. (307-308)
[원자론과 모나드론 차이]
나는 당신들에게 모나드론과 원자론 사이에 근본적 차이를 알렸다.
원자론에서 우주에서 부분들의 상호작용은 필수적이다. 한 물체에서 다른 물체로, 두 물체가 함께 연결하는 무엇이 현존한다고, 그리고 둘 사이를 확립하는 공간이라 독립성을 약하하는 무엇이 현존한다고 가정해야만 한다. (308) [원자론자에는 원자들 사이에 공간이 현존해야 한다.]
반대로 라이프니츠의 개념작업 같은 것에서, 분명한 것은 실체들의 상호간에 어떠한 영향도 있을 수 없다. .. 매우 단순한 이유에서 각각의 모나드는 전체이다. 따라서 작용할 수 있는 모나드 밖에는 아무것도 없고, 인상을 받을 수 있는 모나드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308) [모나드 작용하지도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 따라서 모나는 창이 없다.]
라이프니츠가 우리에게 말한다. “모나드는 바깥으로 향한 창이 없다.” ... 모나드는 관점이 다수일 것이라는 의미에서 다양한 모나들이 있다. .. 모나드는 상호작용이 있을 수 없고, 하나가 다른 하나를 충만하게 하는 조작 속에서 일치만 있을 수 있다. 거기서 라이프니츠는 예정조화에 의해서 이해하는 것이 있다. .. 따라서 모나들 사이에 조화가 있지만, 상호작용은 없다. (308) [이런 사유였다면 만유인력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미분은 사물의 내부의 무한분할이라고 해야 하나?]
이러한 것이 모나드론의 관점이다. .. 이런 관점은 원자론적 개념작업과는 근본적으로 대립된다. .. 어떤 방식에서는 라이프니츠가 우리에게 그것을 소개하는 표현들 자체, 그 모든 것은 플로티노스에서 이미 발견된다. (309)
우리가 플로티노스 철학의 출발점을 상기해보자. 그는 우선 하나(l’un, 일자)라고 불리는 것 속에 위치한다. .. 그러고 나서, 이런 단위(l’unité, 통일성)를 향해 가능한 모든 관점들이 있다. 그것은 플로티노스가 노에타(τὰ νοητά, 전체의 관점들), 가지적인 것들, 플라톤이 이데아들, 순수 이데아들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309)
플로티노스는 이런 방식으로 이데아들의 생성을 정의했다. 사람들은 일자(l’Un)을 제기하자마자, 일자의 시각들이, 일자의 모든 시각들이 재현되어야만 한다. (309)
우리는 예전에 플로티노스와 라이프니츠 사이에 많은 가능한 접근들을 발견했다. .. E. V, 8권, §4의 예를 참조하자.
내가 번역하건데, “.. 모든 존재들은 투명하다(διαφανῆ πάντα) 모든 것은 전체적으로 그 내부에까지 볼 수 있다(πᾶς παντὶ φανερός εἰς τὸ εἴσω). 따라서 우주적 투명성이 있다. 전체는 전체 속에 발견된다.” (309)
플로티노스는 덧붙여서 “각 존재는 자기 내부에 다른 모든 것을 포함하고(ἔχει πᾶς πάντα ἐν αὐτῷ), 따라서 모든 것은 도처에 있고(πανταχοῦπάντα), 그리고 존재들의 각각은 전체이다(ἕκαστος πᾶν)”
이것이 단자론의 주제 자체이다. 왜냐하면 라이니쯔기 우리들에게 말했듯이, 우리 모나드는 거울이며, 관점에 따른 우주의 표상(대리)이다. (309)
사람들은 라이프니츠의 여러 구절로 번역을 발견할 것이다. “[인용문]”
사람들은 플로티노스 속에서 결국 예정조화를 발견한다. 또는 오히려 거기에 [라이프니츠의] 표현은 없지만 “우주적 협동(conspiration, 결탁)을 발견한다. (310)
[플로티노스와 라이프니츠의 일치점과 차이점]
플로티노스와 라이프니츠의 일치점 사이에 단순한 일치가 있다고 믿지 않아야 한다. .. 에르트만 판본 455쪽에서 “전 영혼은, 플로티노스가 매우 잘 관찰한 대로, 자기 속에 가지적 세계전체를 포함한다.” (310)
라이프니츠 원전 속에서 영혼에 대해 말하지, 가지적인 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플로티노스에게서는 스스로 인식하는 한에서 영혼(l’âme)은 가지적인 것의 일부를 이룬다는 것을 상기해야만 한다. 그것은 영혼(ψυχή)이 아니고 노에톤(le νοητόν)이며, 노에톤의 영혼이 진실로 스스로 알 수 있는 프쉬케(ψυχή)이다. (310)
[P과 L 사이에] 근본적 차이점을 말하자. .. 라이프니츠는 플로티노스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과 같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나, 그것은 완전히 동일한 열망(inspiration)이 아니다. (310)
플로티노스의 신은 진실로 사물들을 생겨나게 하는 신이다. .. 그것은 빛의 초점과 비교된다. 신은 초점이고 나머지 모든 것은 빛살이다. 플로티노스는 우선 실재적인 것으로서 초점을 제시하고, 또한 실재성보다 더 많은 것(une plus)이 있다고 말한다. (311)
라이프니츠도 마찬가지인가? 아마도 겉보기에는 그렇다. 라이프니츠는 우리에게 번개(fulguration)에 대해 말한다. 그것에 의해서 신은 모나드들을 생산한다. 그러나 그는 어떤 곳에서도 이런 번개의 본성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 이미 주목했던 대로, 신의 관념(이데아)는 중요하지 않고, 라이프니츠 학설에서 본질적이 아니다. .. 라이프니츠의 신학에서 신의 관념은 필연적이지 않을 것이다. (311) [푸꼬가 들뢰즈에게 번개라는 용어를 썼다.]
하나의 모나드만 있을 것이고, 사실상 라이프니츠는 거기에 하나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고 어느 곳에서도 말하지 않는다. ... 아! 모나드들이 관점들로 되어 있는 실재성의 전체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실재성의 전체는 라이프니츠가 신을 표상하는 것처럼 신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311)
세크레탕(Charles Secrétan, 1815-1895)이 자유의 철학(La philosophie de la liberté)에서 그것을 훨씬 더 깊이 있게 말했듯이, 그는 훨씬 더 멀리까지 가고, 그것은 과장이 있다. “라이프니츠의 신은 이상(un idéal)이다. ..”단지 라이프니츠는 우리에게 자주 인용된 구절에서, “신, 이는 예정된 조화이다”라는 구절에서, 자기 사유의 깊이를 드러낸다. (311)
내가 말하건 데, 거기에 과장이 있다. 왜냐하면 라이프니츠에서는 모든 것 그 자체가 실재성이기 때문이다. (311)
간단히, 사람들은 [라이프니츠] 신은 본질적으로 그 체계 속에서 존재의 생산자이자 생성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312)
둘째 차이가 있다. .. 고대철학자들에게서, .. 플라톤의 경우에 이데아들의 세계 그 아래에 우주 영혼[데미우르고스]이 침투하는 사물들의 세계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도 같은데 이데아 또는 형상이 사물에 내재한다. .. [이들에게서] 이런 축소, 이것은 공간 속에 펼쳐진 세계(le monde étendu)이다. (312)
플로티노스에서는 제1기저와 제2기저를 구성했을 때, 신은 가지적이고, 그에게는 제3기저를 가정하는 것만이 남는다. 제3기저는 공간의 감각적 세계를 얻기 위하여 거기에 포함된 세계와 더불어 있는 보편적 영혼이다. (312) [제4기저는 말하지 않았지만 물질계이다.]
라이프니츠도 그러한가? 그렇지 않다. 여기에는 데카르트의 영향이 있다. 라이프니츠에게서 시간이론과 공간이론은 서로 상호 침투한다. (312-313)
라이프니츠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공간은 공현존(coexistence)의 질서일 뿐이다. .. 공현존의 질서에 의해서 그는 무엇을 이해하는가? 만일 모나드가 있다면 공간은 없을 것이다. 모나드는 비너비적인 어떤 것이다. 모나드는 전체의 관점(vision, 통찰)이며, 절대적으로 단순하고 불가분인 관점이다. 그것은 하나의 관점(통찰)이며, 그러나 무한한 모나드들이 있다. 전체에 대한 무한한 관점들(vue)이다. (313) [이 이해하기 어려운 모나드는 잘려진 추억들, 즉 사진판과 같다. 사진판 전체가 우주이고 그 속에 모습들도 모나드이면서 공현존이다. 이를 공간적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55PLA)]
다른 사람들[다른 사물들]은 어떻게 표상할 수 있는가? 하나의 유일한 사물 위에 다양한 관점들(des points de vue) 을 우리는 표상한다. (313) [이 대답에서 관점들은 시각점들이라 읽어야 할 것이다. - 점들의 모임이 한 사물의 통찰이 아니지만 점들에 대한 표상은 시각점들이라 할 수 있다.]
관점들을 가지기 위하여 우리는 점들을 가정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점들을 가진 계기로부터 우리는 입장[위치]들의 질서를 갖는다; 그런데 우리는 위치들을 가지고 있다. (313)
실재로, 관점들만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관점들의 다양성에 의해서 이 시각들의 다양성을 표상할 수 없다. 내가 그것을 반복한다. 만일 점들이 있다면, 만일 위치들이 있다면, 그것은 공간이 있다는 것이지만 이 공간은 순수 상징일 것이고, 그것은 인간적 어떤 것일 것이다. .. 우리의 다른 불완전한 지성들은, 우리들은 공간의 위치들을 창조할 것이다. (313-314)
라이프니츠가 말하고자 하는 것, 그가 말하기를 공간은 공현존의 질서일 뿐이다. 여기에는 진실한 동어반복이 있을 것이고, 다른 사물들을 이해하는데 선결문제 미해결의 오류(une pétition de principes)가 있을 것이다. 그가 덧붙여서 공간은 혼합된 지각작용, 인간적 지각작용일 뿐이라 한다. (314)
이러한 이유에서 라이프니츠는 공현존의 질서를 말한다. 공현존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질서도, 즉 모나드들 사이에 어떤 일치도 중요하다. 바로 이것이 라이프니츠 철학에서 공간인 것이다. (314)
이때 당신들은 거기서 도래한 중요한 귀결을 본다. 실재적 세계, 외적 세계, 가지적 세계를 구별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것은 동일한 것이다. (314)
공간은 공현존의 질서이다라고 하고, 라이프니츠는 가능하다고 덧붙인다. 그는 어떤 곳에서는 가능성의 일체가 거기에 있다고 한다. 만일 내가 속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라이프니츠의 사상을 잘 설명한다. (314)
라이프니츠와 고대인들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런 차이는 데카르트주의의 영향에 의해, 갈릴레이 이해로 과학에 의해 아주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315)
다른 말로 요약하자면 이런 철학에서 감각적 실재와 가지적인 것 사이의 이원성은 현존하는 이원성이 아니며, 존재에서 생산되는 이원성이 아니다. 이원성은 인식의 관점에서만 현존한다. 거기에서 클라크(Samuel Clarke, 1675–1729)가 모든 귀결들을 끌어내는 위대한 혁신과 관념[발상]이 있다. (315)
클라크와 서신교환에서 우리가 알다시피 라이프니츠는 이런 문제를 표현적으로 접근했다. 시간은 무엇인가? 그는 시간을 계속들의 질서(un ordre de succession)이라 한다. 이는 마치 공간을 공현존의 질서라고 정의했던 것과 같다. (315)
우리가 클라크와 서신교환에서 발견하는 것과 같이 벨(Pierre Bayle, 1647-1706)의 반대에 대한 응답에서도 보인다. (315)
“너비는 가능한 공현존의 질서이다. 마치 시간은 일정하지 않은 가능성들의 질서인 것처럼.” (315)
이처럼 시간은 하나의 질서이다. 그는 덧붙여서 계속들의 질서이다. .. 계속은 시간을 가정하며, 마치 공현존이 공간을 가정하는 것과 같다. (316)
클라크에게 응답으로 라이프니츠가 쓴 셋째 편지의 원문에는 .. “나는 공간을 시간처럼 순수하게 상대적인 어떤 것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공현존의 질에서 시간은 마치 계속의 질서와 같다.” (316)
클라크와 편지에서 라이프니츠는 동일한 방식으로 설명한다. 클라크에게 응답하는 라이프니츠의 다섯째 편지에서, .. “사람들은, 시간은 계속적인 사물들의 질서일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기서 반대한다. 왜냐하면 계속의 질서가 동일하게 남아있으면서도, 시간의 양은 더 큰 또는 더 작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316)
따라서 ... 시간의 이론과 공간의 이론이 문제일 때, 이런 편지는 시간에도 심지어는 공간에도 상대적으로 라이프니츠의 사상에 관해 진실로 우리에게 정보를 주지 못한다. (317)
우리는 그의 작품의 다른 부분들을 다루어야만 한다. 특히 형이상학 서설(Discours de métaphysique, 1686)이나 아르노(Antoine Arnauld, 1612-1694)와 헤센-라인펠스(Landgrave de Hesse-Rheinfels, 1623-1693)와 서신교환에서, 즉 그로테펜트(Karl Grotefend, 1807-1874)가 편집한 책에서찾아야 할 것이다.(317)
형이상학 서설(1686)에서 중요한 구절이 있는데, 이 주변에 라이프니츠 철학 전체가 중력으로 끌여들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13에서 .. “개별적 실체의 용어는 .. 마치 우리는 원의 본성 속에서 사람들이 연역할 수 있는 성질질 모두들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좀더 나아가면 “시저(Gaius Julius Caesar: 전100-전44)라는 미래의 독재자는 그의 용어 또는 자연(본성) 속에 그의 근본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왜 그가 거기서 멈추기보다 오히려 루비콘강을 건너기로 결심했는지, 왜 그는 파라살(Pharsale)의 하루를 잃기보다 오히려 얻었는지를, 거기서 하나의 이유를 본다.” (317)
동일한 종류의 다른 원전들 .. 아르노와 서신교환, 까레이(Louis-Alexandre Foucher de Careil, 1826-1891)의 판본 .., 꾸뛰라(Louis Couturat, 1868-1914)의 판본.. (318)
명제의 속어(부가어)는 주어 속에 포함되어야만 한다. .. 성질을 지칭하는 술어는 원의 관념 속에 포함되어 있고, 원의 정의 속에 포함되어 있다.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그러한 것은 그 어떤 명제에서도 진실이다. (318)
케사르에 관한 논의에서도, 달리말하면 논리적 주어, 즉 명제의 주어는 그의 술어를 포함하고 있다. .. 술어는 주어에 내속해(inhérent) 있다. (318)
이런 주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제가 의미하는 것은, 지속은 실재성이 아니라는 것, 지속은 너비가 실재성이 아니듯이 실재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318)
[주어, 속사(부가어), 원둘레의 정의 등은 기하학적 명제에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런 모든 것은 기하학자에게서는 순간 속에서 현존하며, 라이프니츠와 스피노자에 따르면 영원 속에서 현존한다. (319)
우리가 어떤 용어를 다룬다면, 즉 원의 용어가 아니라 오히려 시간 속에서 진실하게 나타나는 진실한 존재의 용어를 다룬다면, 그러한 것은 차이를 가지고서 또한 진실하다. (319)
차이는 통약[약분]할 수 있는 양들과 약분할 수 없는 양들 즉 1.414213[(√2)]과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이 수는 무엇인가? 2의 근(根)이다. 인간의 지각작용인데, 통약불가능한 것의 소수점의 나열을 따라야만 하는 지각이다. 그런데 신에게서는 볼 수 있는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은 2의 근이다.(319) [왜 설명에서 술어를 소수점이하로 무한히 갈 수 없느냐는 것이다. 그 근이라는 답은 단순할 것인데, 말하자면 직사각형의 대각선이 답인데 말이다. 신이 볼 수 있는 것은 단순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2를 단번에 파악하는 지각작용도 있다는 것이리라.]
이런 비교는 라이프니츠가 구별을 행한 원전들 속에서 발견된다. 자, 지속하는 것과 지속하지 않는 것의 차이, 이것은 지속[신의 직관]을 말하는 데 귀착하고, 너비는 혼동된 지각작용이며 인간적인 어떤 것이라고 말하는데 귀착한다. 이것이 라이프니츠가 우리에게 말하는 계속들의 질서이다.(319)
왜냐하면 주어 속에 갇혀있는 술어는 주의 어떤 관점이며, 그 관점은 어느 정도로는 모나드의 속성이 된다. 라이프니츠에게 지속, 그것은 어느 정도 이차적인 정도[차]에서 너비이다. (320)
당신들이 보기에 라이프니츠에게서, 시간은 지각작용처럼 그 자체 안에서 순수하게 상대적인 어떤 것이다. 이점에서 그는 고대인들에 가깝다. .. 데카르트의 방향을 따르면, 우리가 지난날 말했듯이, 사람들은 지속으로 절대를 만들기에 이를 것이다. (320)
고대인들에게서는 시간 속에서 유율(le flux, 흐름)을 갖기 위해서 영혼의 축소를 가정해야만 한다. 반대로 라이프니츠에서 지속하는 사물은 모나드들 밖에 또한 지성적인 것들 밖에 현존하지 않는다. .. [그에게서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 이런 혼합을 제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따라서 라이프니츠는 고대인들의 실체적 이원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원론은 존재의 관점에서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관점에서 현존한다. 만일 사람들이 명석 판명한 인식을 가정한다면, 시간은 사라질 것이다. 이러한 것이 본질적 차이이다. (320)
마지막 강의에서 칸트(Immanuel Kant, 1724-1804)가 어떻게시간에 대해 또한 과학에 대해 라이프니츠 개념작업으로부터 출발했는지를 제시할 것이다. (320)
순수이유비판(Critique de la raison pure. 1781, 재판1787)이 어떻게이유 일반이 아니라, 오히려 이유가 사용하는 한에서 이유인지를, 또한 이유가 사물의 일체에서 데카르트적인 과학의 개념작업을 위하여 이용되었던 한에서 이유인지를 제시할 것이다. (321)
(10:21, 55P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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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명록 ***
38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Aristotélēs, 384-322: 62살) 스타지르(Stagire, Στάγειρος)에서 탄생(플라톤 나이 43세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367년(17살)에 플라톤의 나이 60살에 아카데미아 입학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마케도니아왕의 시의(侍醫)였다.
49-45 로마 공화국 내전: 기원전 49년 1월-기원전 45년, 원로원파 폼페이우스에 대해 민중파 카이사르의 승리. - 히스파니아, 이탈리아, 그리스, 북아프리카 등에서.
49 기원전 49년 1월 12일 카이사르는 휘하의 제13군단 10개 대대 45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루비콘 강을 건넜다. 제일 먼저 라벤나와 아리미눔에 입성하고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에게는 5개 대대를 떼어줘 아펜니노 산맥을 넘어 아레초를 공격하고 쿠리오에게는 3개 대대를 주어 아드리아 해를 따라 페사로, 파노, 안코나를 공격하게 했다.
47 기원전 47년 6월 이집트에서 나와 팔레스타인으로 진출한 카이사르는 젤다 전투에서 폰투스의 파르나케스 2세를 격파했고 유명한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라는 승전보를 원로원에 보냈다.
45 기원전 45년 3월 17일 문다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카이사르는 내전의 마지막 승리를 거두었다. 그나이우스는 전사하고 섹스투스는 겨우 도망쳤으며 카이사르의 충실한 부관이었다가 폼페이우스파로 돌아섰던 라비에누스도 전사했다.
44 시저/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전100-전44) 44년 3월 15일 암살당했다.
O
39 루카누스(Lucain, Marcus Annaeus Lucanus, 39-65)(스물여섯) 라틴 시인. 네로의 명령에 의해 자살. 시민전쟁(Bellum ciuile: La Pharsale)(세자르와 폼페이우스의 대립으로 로마 시민전쟁의 서사시)이다.
204 플로티노스(Plotin, Πλωτῖνος; lat.. Plotinus 204-270) 탄생. 이집트 리코폴리스(Lycopolis, 나일강 삼각주)에서 태어났다. 알렉산드리아 학파. 엔네아데스(Les Ennéades, Ἐννεάδες, 254-270). 그는 세계에 대한 이해로서 세 가지 기저(trois « hypostases »)를 깨닫게 되었다. 일자(L'Un, ἐν), 지성(L'Intelligence, l'Intellect, νουϛ), 영혼 (L'Âme, ψυχη) [이 말로 보면 상층의 일자, 중간에 점으로서 지성, 심층의 영혼이다. / 학설상 일자에서 누스로 그리고 영혼으로 연결되면 누스는 자연자체가 된다.]
242 쟝블리코스(Jamblique, Ἰάμβλιχος, Iamblicos, lat. Iamblichus 242년경-325)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피타고라스의 생애(Vie de Pythagore, βίος πυθαγορικός)(en trad. latine: De vita Pythagorica)
480? 심플리키우스(Simplicius de Cilicie (en gr, Σιμπλίκιος/ Simplicios 480경-549) 6세기경, 네오플라톤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주석가. 현 터기 실리시(Cilicie (actuelle Turquie) vers 480, Athenes en 549
1596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철학자.
1612 아르노(Antoine Arnauld, 1612-1694) 1672년 9월 라이프니츠는 예수회를 반대하는 글로 유명한 얀센주의(수많은 엄격한 도덕형식을 만들어내는 비정통 로만가톨릭운동) 신학자 앙투안 아르노(Antoine Arnauld, 1612-1694)를 만나 교회 재통합을 위해 도움을 청했다.
1623 헤센-라인펠스(Landgrave de Hesse-Rheinfels, Ernest Ier de Hesse-Rheinfels, deu. Ernst Ier von Hessen-Rheinfels, 1623-1693) 독일 영주. 라이프니츠와 편지교환(1686). 그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여행 중에 칼뱅주의를 받아들였으나, 1652년부터 가족전체가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1632 스피노자(Baruch Spinoza, lat. Benedictus de Spinoza, 1632-1677) 포르투갈 유대계 네델라드 철학자.
164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2=1.414213 ...
1647 벨(Pierre Bayle, 1647-1706) 프랑스 철학자, 작가, 사전학자. Dictionnaire historique et critique, 1697
1675 클라크(Samuel Clarke, 1675–1729) 영국 철학자, 국교 성직자. 로크와 버클리 사이에서 중요인물, 라이프니츠와 편지 교환에서(1715-1716) 뉴턴의 대변자.
1683 한쉬(Michael Gottlieb Hansch, 1683-1749) 비엔나 활동, 독일 철학자, 신학자, 수학자. Dissertatio de enthusiasmo platonico, 1716. 1707년에 라이프니츠와 서신교환.
172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일 계몽주의 철학자. 관념론자. 삼 비판서로 유명하다. Critique de la raison pure. 1781, 재판1787 Critique de la raison pratique, 1788, Critique de la faculté de juger, 1790)
1715-1716 두 학자(라이프니쯔와 클라크) 사이의 편지 교환. 라이프니츠와 클라크 서신왕래(The Leibniz-Clarke Correspondence, 1717) 출판.
1805 에르트만(Johann Eduard Erdmann, 1805-1892), 독일의 목사, 대학교수, 종교사가, 철학사가이다. Leibniz - Opera philosophica, 1840.
1807 그로테펜트(Karl Grotefend, Carl Ludwig Grotefend, 1807-1874) 독일 역사가, 교육가, 문서관, 화폐연구가. 라이프니츠 전집 편집자(게르하르트와 함께). - 라이프니츠 서신교환도 편집했다.
1815 세크레탕(Charles Secrétan, 1815-1895) 스위스 법률가, 교육자,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철학자. 셰링의 제자, 라이프니츠 철학(La Philosophie de Leibnitz, fragments d'un cours d'histoire de la métaphysique, donné dans l'Académie de Lausanne. 1840
1826 푸세 드 까레이(Louis-Alexandre Foucher de Careil, 1826-1891) 프랑스 작가, 외교관, 정치가(상원의원). 그는 독일 도서관에서 라이프니츠의 미발표 작품들을 발굴하고 출판했다. Lettres de Leibniz, Bossuet, Pellisson, Molanus et Spinola pour la réunion des protestants et des catholiques, 1859, Leibniz, la Philosophie juive et la cabale. Trois lectures avec les manuscrits inédits de Leribniz, 1861..
1848 브로샤르(Victor Brochard, 1848-1907) 프랑스 철학자. 1868년 ENS 3등 입학, 1872년 철학자격시험. De l'Erreur(박사논문, 1879년 출판). - 벨기에 문학비평가인 꼼파뇽(Antoine Compagnon, 1950-)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소돔과 고모라」 속에서 브로샤르는 브리쇼(Brichot)라는 인물의 모델이라 한다. 방법서설과 제1성찰(Discours de la méthode et première méditation, 1881)(Avec une notice biographique, une analyse des notes historiques et philosophiques par Victor Brochard 1881). / 데카르트의 정념론과 스피노자의 미학(Le traité Des passions de Descartes et L'éthique de Spinoza, Revue de Métaphysique et de Morale 4(4): 512 - 516 (1896)
1854 삐아(Clodius Piat, 1854-1918) 카톨릭 신부, 철학사가. 소크라테스(Socrate, 1900), 「La substance d’après Leibniz, 1900)」
1856 아믈랑(Octave Hamelin, 1856-1907), 프랑스 철학자. 샤를 르누비에 제자. 「스피노자주의의 기원들 중에 한 기원에 관하여(Sur une des origines du spinozisme, 1900」(Année philosophique)[스피노자와 플로티노스 사이의 유사성을 밝힌 논문]
1864 로디에(Georges Louis Rodier, 1864-1913) 철학 교수, 그리스철학 전문가. 「라이프니츠 철학의 기원들 중의 한 기원에 관하여(Sur une des origines de la philosophie de Leibniz, 1902)」
1868 꾸뛰라(Louis Couturat, 1868-1914) 프랑스 철학자 논리학자, 러셀처럼 논리주의자. 라이프니츠 미발표 작품들 출간. La Logique de Leibniz: d'après des documents inédits, 1901 Opuscules et fragments inédits de Leibniz. Extraits des manuscrits de la Bibliothèque royale de Hanovre, 1903 재판 1988.
1964 로찌(Jean-Baptiste Rauzy, 1964-) 고등사범 출신, 파리-소르본 대학 교수. 아르노와 라이프니츠 사이의 서신교환(Correspondance entre Arnauld et Leibniz(1993)
1976 만찌니(Frédéric Manzini, 1976-) 철학 교수자격 통과, 스피노자 전문가. 스피노자: 아리스토텔레스 독해(Spinoza: une lecture d’Aristote, 2009)
(12:32, 55PMB) (14:02, 55PMC)
라이프니츠에 관하여(Sur Leibniz, 1988)
Gilles Deleuze, Pourparlers 1972-1990, Minuit, 1990, pp. 213-222(P.250)
Libération, 22. Sep. 1988, - avec Robert Maggiori.
- 막기오리(Robert Maggiori, 1947-) 이탈리아 태생, 프랑스 철학자,
이「철학에 관하여(Sur la philosophie, 1988)」에서 들뢰즈는 자신의 철학적 여정을, 과정을 네 단계로 설명했다. 마지막 단계로서 주름을 쓰고서,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 가타리와 함께 철학이란 무엇인가(1991)작업하게 될 것이다.
첫째시기,그는 스피노자-니체의 시기이며, 흄의 믿음(인과관계)의 기원을 따져보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그는 설명에서 벩송은 빼고, 흄에 관해서 언급하다. 물론 그는 교수자격시험에서 벩송을 잘 읽었다고 하듯이 벩송을 토대로 하였을 것이다. 그가 대학에서 쓴 글인 “흄”에 관한 것은 그의 철학 형성에서 건너뛰어도 될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사물 자체와 형이상학에 대해, 인과관계가 아닌 기원과 이유(la raison)에 대한 고민은 깊다. 사실상 그의 첫째 시기는 박사학위 주 논문 차이와 반복(Différence et répétition, 1969)과 부 논문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Spinoza et le problème de l'expression, 1969)를 쓴 시기까지로 로 볼 수 있다. 학위 논문에는 스피노자-니체-벩송이 녹아 있다. 이 첫째 과정에서 스피노자와 니체가 도덕론으로 중요하며, 스피노자 속에서(그는 니체를 스피노자의 제자쯤으로 친다) 형이상학적 주제인 내재성의 권능을 보았다는 것이다.
둘째시기, 그는 앙티 외디푸스(1972)와 천개의 고원(1980)에서 시도로서 개념을 창안하는 혁명적 시기라 한다. 학위 논문을 발표 하고 책으로 내는 해(1969) 그는 가타리를 만났다. 누가 뭐래도 둘째 시기는 가타리화 합작의 시기이다. 가타리가 정신분석학에 대한 실재성을 강조하는 측면은 벩송의 흐름(지속)의 측면과 같은 선상에 있다. 그래서 둘은 같이 작업할 수 있었고, 내재성의 권능을 표면위에 펼쳤다. 표면에서 활동이라는 측면에서, 푸꼬가 이들의 작품을 도덕론의 작품이라고 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첫째시기에서 둘째시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들뢰즈는 이미 철학을 상층에서 내려오는 방향과 심층에서 올라가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방향의 역전을 전복의 철학이라고 했다. 이 방향의 역전은 스토아학파의 관점에서 플라톤주의(플라톤이 아님을 명심하자)에 대한 전복이다. - 플라톤주의 즉 공간화의 사고를, 벩송은 신스콜라주의자들이 지식(인식)을 상층에 기대고 있음을 창조적 진화에서 이미 비판한 것이다. - 이들은 역전의 방향에서 윤리학과 인류학을 쓴 것이다. 들뢰즈는 이 두 권을 쓰는 시기를 둘째시기로 명명한 것은 마땅하다.
셋째시기, 영국 또는 미국작가, 그리고 감화에 의해 글 쓰는 클라이스트와 카프카 있는데, 이들을 다루는 시기를 말한다. 감화, 지각, 개념은 분리 할 수 없다. 이런 내재성의 분화 또는 발생의 과정을 전개할 기초는 천개의 고원(1980)에서 초벌그림이 그려졌다.
그는 스스로 소설(단편소설이 아니라, 장편소설)에 대한 긴 글 또는, 특히 영미의 작가론을 쓰고 싶어했지만 쓰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심층으로부터의 방향을 소설의 언급만이 아니라, 작가론으로 카프가, 프루스트를 썼을 뿐만이 아니라, 보다 더 중요하게 영화에 대한 긴 저술을 내놓았다. 다른 이야기지만, 프랑스에서 ‘지성인 사전’의 편집자들은 들뢰즈가 사회 운동이나 대중 강연, TV, 라디오 등에서 활동하지 않았다고 지성인 사전에 등재할 수 있느냐고 논의 하다가, 그래도 영화에 관한 저술만으로도 지성인 사전에 올릴 수 있다고 해서, 지성인 사전에 등재되어 했다고 한다. 그가 활동가적인 성격은 아닐지 모르지만, 토인비의 글, “노마드들은 꿈적이지 않는 자들이고, 이들은 떠나지는 것을 거절하기 때문에 노마드들이 된다.”를 인용하듯이 그는 움직이지 않은 듯 하지만, 그의 사유대로 노마드였다. 노마드의 사유는 심층의 흐름을 중요 주제로 삼는다. 사실상, 그는 이 대담에서 셋째시기로 끝냈다. 그런데 라이프니츠를 쓰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갔음을 말한다.
넷째시기, 개별화에서 우주에 대한 사건들의 개념화(라이프니츠)의 시기이다. 이 대담 속에 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글의 흐름상으로, 그는 아마도 현대 물리학의 끈이론까지 들어갔을 것 같다. 이미 우리는 그가 「철학에 관하여(1988)」에서 시냅스에 깊이 이해했다는 것을 보았고, 두뇌의 안의 작업(조작 작용)만큼이나 깊이있게 물질계에 들어가면 입자가 아니라 끈들(des cordes)로 되어 있다는 이론에 접했을 것이다. 그는 이런 두 분야에서 내재성의 깊이를 생각하면서 아마도 라이프니츠에서 기원을 끌어올 단초를 찾았을 것이다. 즉 주름과 끈 사이 연관이 있을 것이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들뢰즈 뿐만이 아니라 위대한 철학자들의 야망은 개인, 국가, 세계(또는 우주)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설명의 틀(un cadre)을 생각할 것이다. 플라톤은 분명하게 영혼, 국가, 우주로 나갔다. 라이프니츠에게서는(나로서는 잘 모르지만) 그런 차례가 없는 것 같은데, 들뢰즈의 안목에는 그래도 단자론이 우주를 설명하면서 미세물질에서 우주까지를 포괄하고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들뢰즈는 우선 개인의 심층에서 무의식을 찾고, 국가와 제국 안에서 개체로서 노마드의 활동을 해명하고, 우주 전체로 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우주전체는 주름의 주름, 주름과 풀림이라는 활동(역동성)로 설명할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우주의 모나드들이 에너지로 보았고, 벩송은 우주는 이미지들로서 기억(생명)의 총체인데 비해, 들뢰즈는 미립자의 무기물에서 우주에 이르기 까지, 라이프니츠의 충분이유율로서, 설명할 수 있는 주름을 받아들인 것 같다. 주름의 펼침, 되집기와 쟁여채우기, 그리고 풀림과 확장 등에 의해, 끈들이 너울처럼 또는 회오리처럼 움직이는, 세계(우주)를 혼성(composnat)해 보았을 것이다. 이 혼성은 구성도 구축(건축)도 아니고, 음악과 같다. 이 하모니의 조율이 있는 자연의 역동성(내재성의 권능), 그 속에서 선들 각각은 무엇인가를 되기를 노력할 것이고, 그 선들의 줄기는 자연의 속성이라기보다 성장이며 생장이고, 이는 술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라는 관점으로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유의 기원은 그에 의하면 그리스인들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동방의 참주적 권력도 아니고 유일신앙의 신의 사고도 아닌 것이다. 이는 소크라테스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리스인과 그리스사고 관하여, 이런 논문을 그가 나중에 쓸 것이지만 그는 철학이 로고스(유일신앙, 통일지식)가 아니라 누스(자연의 역동성의 발현과 창조)이라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연 즉 우주는 주름과 겹주름, 접힘과 풀림 등의 다발로서 다양한 선들을 형성하고 겹치고 마주치며 확장해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영원히 풀린다 해서 절대 온도 0도 같을 것을 상정할 수 있을 수도 공상할 수 있지만, 주름과 주름짓기의 세계에서는 절대0도 절대 무한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주라는 모나드(온사건)는 다양체들의 조율에 의한 거대한 음악과 같기 때문이다. (54SLI) (54SME)
IV. 14. 라이프니츠에 관하여(Sur Leibniz, 1988) 213-222
Libération, 22. Sep. 1988, - avec Robert Maggiori 1947-)
[이 대담은 들뢰즈의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Le Pli: Leibniz et le baroque, 1988)(Minuit, 191p.)출판을 기회로, 기자인 막지오리가 질문하고 들뢰즈가 대답한다.]
R.M. - 당신은 항상 말했다. 철학한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나무를 작업하는 것처럼 개념들을 작업한다고 하는 것이었고, 그리고 그것들[개념들]로 실재적인 문제들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들 항상 생산한다는 것이었다. 주름의 개념은 특별나게 효과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라이프니츠 철학으로부터 그 개념은 바로크를 특징짓게 해주고, 그리고 미쇼(Michaux, 1899-1984), 보르헤스(Borges, 1899-1986), 모리스 르블랑(Maurice Leblanc, 1864-1941), 곰브로비츠(Gombrowicz, 1904-1969), 조이스(Joyce, 1882–1941)의 작품들과 같은 작품들에게 또는 예술적 영토들에게 문을 열게 해주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질문하고 싶은 유혹이 크다. 사람들이 그만큼 잘 또한 그만큼 멀리 작업하는 개념은 부풀려져서 그것의 가치를 상실할 위험에, 그리고 전능한 설명적 체계에게 사람들이 던지는 비난이 쇄도할 위험에 처하지 않는가? (213)
G.D. - 이런 이유로, 주름들 중에, 그것들이 도처에 있다. 바위들, 긴 강들, 숲들(les bois)에서, 유기체들 속에서, 머리 또는 두뇌 속에, 영혼들 또는 사유 속에, 소위 말하는 조형 작품들 속에‥…. 그렇다고 해서 주름은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213)
이런 의미에서 도처에 주름들이 있으나, 주름은 보편이 아니다. 그것은 세분(différenciant)이고, 미분(différentiel)이다. 두 종류의 개념들, 보편자들과 특이성들이 있다. 주름의 개념은 항상 단수(un sigulier, 특이자)이며, 그것은 변화 속에서, 가지치기 속에서 변신 속에서만 지평(le terrain)을 얻을 수 있다. (214).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 것의 끊임없는 운동들을 방해하지 않는다. 라이프니츠는 말했다: 주름으로 회전 운동되어 있는 (미)입자들의 춤(une danse de particules)이라고. (214)
R.M. - 당신의 저작 전체는 어떻게 라이프니츠의 철학이 주름이라는 개념작업을 통해서 비철학적 실재성들에 연결될 수 있는지를, 또한 그 실재성들을 밝힐 수 있는지를 제시하고, 또 어떻게 모나드가 그림 같은[회화적인], 조각적인, 건축적인, 문학적인 다른 작품들에게 되돌릴 수 있는지를 제시한다. 그러나 철학이 또한 우리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세계를 밝힐 수 있는가? 만일 사회적인 것이, 마치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듯이, “검은 대륙(continent noir)”이 될 수 있었다면, 그것은 그것을[사회적인 것을] 주름들, 주름진 천, 직물이라는 용어들로서가 아니고, 기계적이거나 또는 해부학적인 용어들로(맑스, Marx)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214)
[영국에서 19세기 초에 성행하던 원자론적 관념연합의 영향으로, 맑스 시대에는 기계적 또는 화학적인 분석을 통해 상품과 가치를 규정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질문자는 해부학적이라고 생물학적인 용어를 썼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인성의 가치와 상품의 가치는 영역 또는 위상에 차히가 있다. 그렇다고 가치라는 관념적 또는 선험적 용어가 윤리학과 도덕론에서도 동일한 위상에 속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1830년대 이래로 사물의 내부로 들어가는 과학적 방식(원자든 세포든, 물체든, 물질이든)이 있었고, 이는 클로드 베르나르 이래로 생리학적 내부로 들어가는 방식과 동일할 수 없었고, 게다가 병리학적 관점(텐, Taine)으로부터 또는 원인학(l’étiologie)으로부터 심리(프쉬케 영혼) 내부로 들어가는 방식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벩송은 심리주의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심리학의 상식과 병리학의 경험이 차히 있으며, 순수추억과 원초지각은 심리학의 대상이 되지 못했고, 병리학이 기원과 방향을 제시했다고 보았다. (54SMD)]
G.D. - 이것은 라이프니츠 속에 가장 잘 알려진 명제인데, 각각의 영혼 또는 주체(모나드)는 전적으로 닫혀있고, 문도 창문도 없으며, 이 세계의 작은 일부분(une petite portion, 몫)을, 즉 각각에서 변할 수 있는 일부분을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매우 어두운 바탕 속에 전 세계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세계는 각각의 영혼 속에 접혀 있으나, 매우 다르게 접혀있다. 왜냐하면 주름의 작은 측면이 있고, 밝혀져 있다. 처음 보기에, 이것은 매우 묘한(bizarre) 개념작업이다. (214)
확실히 바로크는 이미 정치에, 즉 정치학의 새로운 개념작업에, 연결되어 있다. 사회적 삶 속에서, 외적 창문 체계는 정보라는 닫힌 목록(close-table, 면밀한)의 조각에 의해 대체되는 경향이 있다: 즉 사람들은 세계를 보기보다 더 많은 것을 읽는다. (215) [정보통신에 의해 가보지 않고도 세계를 읽고, 요즘은 이미지 또는 동영상(유투브) 등으로 보고 있다.]
건축가가 자신의 생각으로 혁명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인민을 필요로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건축학이다. 구축주의(le constructivisme)가 볼셰비키 혁명과 연관해서, 바로크와 직결되어 있다. 인민은 항상 새로운 물결이다. 사회적 직조에서 새로운 주름이다. 그 작품은 항상 새로운 재료들에 알맞은 주름잡기(un plissement)이다. (215) [새로운 세대는 살아온 사람들 보다 앞서가는 세대이다. 늙은이는 이 세대의 뒤꽁무니에 있다.] .
R.M. - 주름이라는 개념은 당신을 아주 자연스럽게, 라이프니츠가 강요하듯이, 물질과 생명체의 개념작업에로, 또한 물질과 생명 또는 유기체의 친화성을 주장에로, 인도한다. 그러나 당신의 책을 읽으면, 여러 번에 걸쳐서 나는 자문하는데, 어떻게 당신이 물질에 대해 또는 살아있는 유기체에 대해 – 그러나 또한 예를 들어 지각작용과 고통에 대해 - 말한 것이 오늘날 물리학자, 생물학자, 생리학자 등등에 의해 이해 될 수 있는가? “물질의 과학이 “전통 접지술(摺紙術, un origami)”(…), 즉 종이접기의 기술을 모델로 삼는다.”; “만일 살아있는 것이 영혼을 포함하고 있다면, 단백질이 이미 지각작용의, 그리고 경계구분과 구별의 활동성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질은 직조이다.”: 이런 문장들의 전형의 지위는 어떤 것인가? (216)
G.D. - 변곡(l’inflexion, 굴절)은 수학들 또는 함수들의 이론의 특권적인 대상이다. 물질이 씨앗들로 구성되지 않았으나, 점점 더 작은 주름들로 되어 있다고 라이프니츠는 말하는 것처럼, 입자들와 힘[에너지]들의 물리학은 이런 가설에 의미를 불 수 있다. 유기체는 내분비적(endogène, 내생적인) 주름잡기의 극장이며 작용자이고, 분자 생물학은 그의 수준에서 이런 현상을 만나며, 이는 마치 배태학이 자기 수준에서 이렇게 했던 것과 같다. (216)
간단히 온바로크 속에서 주름의 상승하기 또는 자동화하기는, 다른 리듬들 위에서, 예술가적, 과학적, 철학적 귀결들을 갖는다. 이 귀결들은 소진하는 것과 거리가 멀고, 거기서 사람들은 매번 라이프니츠의 “주제들”을 다시 만난다. (217) [주름에서 들뢰즈는 바로크 시대가 18세기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사물을 경험적이고 실험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르네상스 이래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온바로크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경험의 과정들의 일체가 주름인 셈이며, 물질도 기나긴 변화과정에서 자기 고유한 성분들을 주름 짓고 있다. 구리, 철 등도 마찬가지 이듯이, 종이와 당구공을 생각해보라.]
R.M. - 사건의 이론을 구축하는 것, 당신에게 새로운 임무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당신이 라이프니츠(Leibniz, 1646-1716)와 화이트헤드(Whitehead, 1861-1947) 사이에 확립한 대결에 의해서, 이런 이론이 가장 완성된 형태를 취한 것은 주름 안에서이다. 당신이 사건에 부여한 혼성물(les composantes) 또는 조건들을 여기서 요약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당신이 말한 사건들은 기자들과 미디어들이 추적하는 사건들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당신이 확장, 강도성, 개별자라는 용어로 말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미디어들이 사건을 고정할 때, 그 미디어들은 무엇을 사로잡는가? 또는 어떤 조건들에서 미디어들은 당신이 “사건(événement)”이라고 명명한 것을 파악하는가? (217)
G.D. - 나는 미디어들이 하나의 사건을 파악하기 위하여 많은 자원들 또는 소명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그것들은 자주 시초와 종말을 제시하는데 비해, 간단한 사건도, 심지어는 순간적인 사건도 연속되어 있다. 그러고 나서 그것들은 구경거리를 원하는데 비해, 사건은 죽은[지나간] 시간과 분리할 수 없다. .. [문장 속에 ‘마지막으로’가 없고] 사람들은 사건 속에서 가장 예기치 못한 것이 있다는 미친 예상을 무시한다. 그것은 예술이지, 사건을 파악할 수 있는 미디어들이 아니다. 예로서 오주(小津 Ozu, 1903-1963)와 안토니오니(Antonioni, 1912-2007) 영화. (217-218) [작품을 말하지 않았다.]
내가 이 책(주름)에서 선호하는 구절은 “오늘 저녁에 음악회가 있다(Il y a concert ce soir).”이다. 라이프니츠와 화이트헤드에게서 모든 것은 사건이다. 라이프니츠가 술어라고 부르는 것은 특히 속성이 아니며, “루비콘 강을 건너다.”는 것은 사건이다. 여기에서부터 이 둘은 주어라는 용어를 완전하게 개편[개조]하도록 강요된다. 만일 술어들이 사건들이라면 주어는 무엇이어야 하는가?그것은 마치 바로크의 표어(les devises, 신조, 좌우명)처럼 있다. (218) [음악회(콘서트)가 사건이며, 사건에는 두께(l’epaisseur)가 있다. 대사건은 온다양체이고 각 사건은 각 다양체(개체)이다.]
R.M. - 나는, 오히려 당신의 “감싼 봉지(l’enveloppe)”의 작품을 “펼치다(déveloper)”라기 보다, 주름이 그것을 설명하기보다, 그것을 더 많이 함축한다는 인상을 갖는다. 달리 말하자면, “들뢰즈가 말했던 철학”이라는 이런 지대(cette zone)(주석가들의 꿈!)를 향하여 진행하는 대신에, 그는[주름이] 철학을 순환하게 하거나 또는 “죔쇠를 채우게” 한다. 왜냐하면 주름의 개념은 당신의 지난 작품에게, 즉 푸꼬(1986)에게 - 주체화의 과정 속에서 사유를 하는 주름 - 귀착하고, 그리고 라이프니츠는 철학사를 드러내게 할 수 있는 계통 연구들에게 귀착한다. 그 철학사를 당신은 흄, 스피노자, 칸트, 니체, 벩송에게 전념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주름은 당신 작품의 그 어떤 선분에게도 구겨[쟁여]넣고 조정되는 것 같다. 따라서 비교하기에 미안하지만, 말하자면, 당신의 작품은 깨어남(un réveil, 각성)에 닮을 수 있을 것인데, 각성에 대해 사람들은 그가[주름 작품이] 말하는 “그것(ce)”(l’heure!, 시각! 순간)을 알 수 없으리라, 그러나 각성에 대한 관심은 그가[주름 작품이] 내림과 올림으로 제공하는 무한한 가능성들에 집착하리라. 내가 전체적으로 속고 있는가? (218-219)
G.D. - 나는 당신이 옳을 것이라는 데, 매우 좋아할 것이고, 그리고 당신이 옳다고 믿는다. 각자는 자기의 사유 습관들을 갖는다. 나는 사물들을 마치 뒤섞인 또한 교차하는 선들의 집합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점들을 좋아하지 않고, 점들을 만드는 것은 나에게 어리석은 것으로 보인다. 두 점 사이에 있는 것이 선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선들의 마주침의 점이다. 선은 규칙적이 아니며, 점은 단지 선의 변곡일 뿐이다. (219) [점이라는 원자론적 관점보다 흐름을 표시법으로 선의 관점을 좋아하는 것이리라. - “끈이론”도 점이나 규칙적 부분이 아니라 흐믈거리는 덩어리(불교식한 선의 단위)가 아닐까) 한다, 끈이론도 주름에 의한 물질 내부 설명의 한 표현일 것이다.]
따라서 다선(多線)적 집합은, 철학, 철학사, 짧은 역사, 과학들, 예술들을 소통하게 하는 끼여들기들(rabattements), 교차들, 변곡들을 허용할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소용돌이 방식으로 공간을 차지하는 운동의 우회들과 - 어떤 점(un point quelconque)에서 일어나는 가능성과 함께 - 같을 것이다. (219)
R.M. - 그러나 점(le point)은 어떤 것(quelconque)이 아니다. 여기, 라이프니쯔가 있다: 모든 사람들은 그를 안다. 그러나 캉디드(Candide, ou l'Optimisme, 1759)를 매개로 해서, 그리고 볼테르가 “가능한 세계의 최상”의 형식을 조롱하는 방식으로 해서, 모든 사람들은 그를 안다. 나는 당신에게 웃기 위해서 질문을 제시한다: 그러한 것, 즉 이렇게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철학자의 기억을 해치는가? (220)
[점을 어떤 정해진 단위처럼 여기나, 실재성에서 점도 다양체인데, 관념상 또는 상징상(논리상) 점은 불가분의 동질성이다. 실재에서는 그런 점은 없다. 슈뢰딩거의 사유 실험(슈뢰딩거의 고양이: Schrödingers Katze, 1935)에서 입자를 고정된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말 한다: <전자빔발사기에서 전자다발들이 아니라 전자를 한 번에 하나씩 불연속적으로 발사한다면, 어김없이 감광판엔 간섭 무늬가 남는다. 여기서 이를 통해 전자다발들 혹은 연속적인 전자들의 흐름만이 파동이 아니라, 애초에 각각의 전자 하나 하나가 그 자체로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임을 알 수 있다.> 이 파동이란 용어를 선, 끈, 바로크의 주름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바로크의 이론은 양자물리학에도 적용될 수 있다. (54SME)]
[질문자의 의도에는 볼테르를 빌려서 라이프니츠(또는 당신의) 철학을 조롱할 수 있지 않는가?를 깔고 있는 듯하다. = 볼테르는 비평 또는 풍자이지, 형이상학과 더불어 철학적 체계를 설명하거나 세운 철학자가 아니라 사상가이다. 물론 도덕론과 사회 정치에 대한 일관된 견해가 있다고 해서 철학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지만, 심층-표면-상층을 통시적으로 다룬 철학자의 계열에는 설 수는 없다. 마치 루소가 이런 계열에 설 수 없듯이. 그럼에도 캉디드(1759)와 에밀(1762)의 두 주인공의 교육적인 측면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교육 사상의 배경에는 전우주(전자연)의 관점을 깔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저술들 속에서 우주 체계를 세우지 않았다. (54SME)]
G.D. - 그러나 볼떼르 또한 철학자이며, 캉디드(1759)는 중요한 원전이다. 라이프니츠(1646-1716)에서 볼테르(1694-1778)로 즐기는 무엇, 그것은 사유의 역사에서 근본적인 계기이다. 볼테르는, 계몽시기, 즉 정확히 빛[계몽]의 체제, 물질과 생명의 체제, 라이프니츠가 이런 새로운 시대를 준비했을 지라도, 바로크 체제와 아주 다른 온이유(la Raison, 근거)의 체제이다. 신학적 근거(la raison théologique)는 붕괴되었고, 순수하고 단순히 인간적 근거([la raison] humaine)가 되었다. 그러나 온바로크, 그것은 이미 신학적 근거(raison)의 위기이다: 붕괴 중인 세계를 재건설하기 위하여 궁극적 시도는 중요하다. 사람들이 정신분열증(la schizophrénie)을 정의한다는 것, 또 사람들인 자주 소위 바로크적 춤들과 정신분열증적 태도들에 접근했다는 것은 그러한 것[궁극적 시도]과 약간은 같다. 그런데 라이프니츠가 우리의 세계는 가능한 세계들 중의 최상의 세계이라고 말할 때, “최상의 세계”는 여기서 고전적[그리스] 온선(le Bien)을 대체하러 온다고,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온선의 파탄(la faillite)을 가정한다고, 보아야만 한다. 라이프니츠 생각은 우리의 세상이 최상의 세상이라는 것이고, 그 세상이 온선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생산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경향(apte)이 있기 때문이다. 매우 흥미로운 생각[관념]을 볼테르는 물리지치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라이프니츠에게 빌려온 낙관론과 매우 거리 멀리 있다. (220)
오늘날 위기 속에 들어가 붕괴되는 것은 신학적 근거가 아니라, 인간적 근거, 즉 계몽주의 근거 이다. 여기서부터 위기의 어떤 것을 구출하고 그것을 재건설하기 위한 우리의 시도들 속에, 우리는 새-바로크(un néo-Baroque)에 참여한다. 새-바로크는 아마도 우리를 볼테르보다 라이프니츠에 더 가깝게 할 것이다. (220-221)
R.M. - 주름과 동시에 당신은 샤뜰레(Châtelet, 1925-1985)의 철학에 관한 페리클레스와 베르디(Périclès et Verdi. La philosophie de François Châtelet, 1988)라는 – 빛나는 - 짧은 텍스트를 썼다. 사람들은, 사라진 친구들인 미셸 푸꼬에게 그리고 프랑스와 샤뜰레에게 전념한 두 텍스트에 의해 중요한 철학책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당신이 어떤 것을 의미화하기를 바랐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하는가(특히 철학에서 필레인(philein, 사랑하다)의 의미를 다루면서)? [또한] 당신은, 철학 과/또는 철학적 글쓰기에서 “음악적인 것(de la musique)”이 있다는 것을 원했던가? 당신이 샤뜰레를 상기할 때, 샤뜰레는 음악적인 것을 마치 “소리나는 물질 속에 인간적 연관들을 창설(instauration)”하는 것처럼 정의 했는데 말이다. (221)
G.D. - 당신은 우선 우정에 대해 말한다. 나는 푸꼬에 관해 한 권의 책을, 그리고 샤뜰레에 관해 작은 텍스트를 썼다. 그러나 나로서, 그것은 단지 친구들에 대한 존경만이 아니다. 푸꼬에 관한 책은 완전히 철학적 책이어야만 했고, 푸꼬라 불리는 그 책은 그가 역사가가 아니라 오히려 끊임없이 위대한 철학이었다고 제기하기 위해서이다. 프랑스와 샤뜰레, 그는 오히려 철학에서 “생산자(producteur)로서 생각되었고, 약간은 마치 사람들이 영화에서 제작자처럼 생각되었다. (221)
우정의 문제가 남는데, 그것은 철학의 내부에 있고, 왜냐하면 철학자는 현자가 아니라, 누구의?, 무엇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코제브(Alexandre Kojève, 1902-1968), 블랑쇼(Maurice Blanchot, 1907-2003), 마스콜로(Dionys Mascolo, 1916-1997)는 사유의 핵심에서 친구의 문제를 다시 다루었다. 사람들은 모호한 이 질문을 살아있게 하지 않고서는 또한 거기에 대답하지 않고서는 – 그것이 어렵다고 할지라도 - 철학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221-222)
내가 보기에 다음이 확실한 것 같다: 철학은 목소리의 노래가 아닌 진실한 노래(un chant)인 것 같고, 철학은 음악과 마찬가지로 운동의 동일한 방향(le meme sens)인 것 같다. 그것은 이미 라이프니츠에게서 유효하다. 라이프니츠는 바로크 음악과 동일한 순간에 하모니(l’Harmonie, 조화)를 가지고 근본적 개념을 만든다. 그는 철학으로 조율(accord)의 생산을 만든다. 그것은 친구, 즉 불협화음에까지 가는 조율일까? 음악 위에 철학으로 씌우는 것이 아니고, 게다가 반대 방향도 아니다. 거기에는 오히려 아직도 접기([le] de pliage)라는 조작 작업이 있다: 즉 마치 말라르메를 음악으로 다룬 불레즈((Pierre Boulez, 1925-2016)의 주름에 따른 주름(pli selon pli, 1957)(변형으로 1990까지)처럼 말이다. (222)
(7:04, 54SME) (8:19, 54SMF)
# 인명 *****
1541 그레코(El Greco, 1541?-1614) 스페인 화가. 본명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폴로스(Domnikos Theotokopoulos), 「오루가즈 백작의 매장(L'Enterrement du comte d'Orgaz, 1586)」 「Saint Jerome 1609」
1598 잔 로렌초 베르니니 (Gian Lorenzo Bernini, 1598-1680) 나폴리 태생, 바로크 조각가이자 17세기 로마의 건축가이다. 「Ecstasy of Saint Teresa, 1651」- 천의 흐트러짐과 떨림같은 흐름, 「Bust of Louis XIV, 1665」-흉상인데 가슴부분을 천의 넘실거림. 「축복받은 알베르토니(l'Extase de la bienheureuse Ludovica Albertoni 1474)」-테레사만큼이나 법열(황홀경)에 떠올라 상승하는 주름들.
1632 스피노자(Baruch Spinoza, lat. Benedictus de Spinoza, 1632-1677)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포르투갈계 유대인 혈통의 철학자이다.
1646 라이프니쯔 (Gottfrid Leibniz, 1646-1716) 이 다재다능한 철학자는 프랑스에 거주한 시간이 많아서 많은 작품을 프랑스어로 썼다. 그리고 그는 뉴턴과 서로 따로 미적분을 발명하였다. 새로운 논리계산(명제계산)을 발명하고자 했다.
1694 볼테르(Voltaire, François-Marie Arouet, 1694-1778) 프랑스 계몽주의 작가. 샤를 12세의 역사, 루이 14세의 시대, 각 국민의 풍습·정신론, 캉디드(Candide, ou l'Optimisme, 1759) 등이 대표작이다.
1711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철학자, 경제학자, 역사가.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1739년),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 (1779년)
172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현재로는 폴란드보다 더 동쪽에 있는 쾨니히스베르그 출신의 프러시아 공화국의 철학자이다. 인간의 표상적 인식의 조건을 규정하고, 도덕적 이성의 신에게 종속을 요청하고, 미적으로 신의 작업의 숭고함에 경건하게 기도하는 듯이 긍정한 프로테스탄트 철학을 구성하였다.
1818 맑스(Karl Marx, 1818-1883) 독일 철학자, 경제학자, 역사학자, 사회학자, 정치이론가, 언론인, 공산주의 혁명가다.
1842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Étienne Mallarmé 1842–1898), 프랑스 시인, 비평가. 상징주의 시인, Hérodiade, 1864-1867
1844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 독일의 문헌학자, 철학자. 서구의 오랜 전통을 깨고 새로운 가치를 세우고자 했기 때문에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이 있다.
[니체-르네상스(Nietzsche-Renaissance) 이탈리아에서 .... 1964년?부터... ]
1859 베르그송* (Henri Bergson, 1859-1941) 유태인 출신의 프랑스 본성내재주의 철학자. 훗설과 달리 현상보다 강도성의 근원에 대한 탐문을 철학의 주요 관심으로 보았다. 그는 철학의 방식은 (내재적) 체험의 정확성과 문제 제기에 있다고 보았다.
1864 모리스 르블랑(Marie Émile Maurice Leblanc, 1864-1941) 프랑스 소설가, 추리소설과 모험소설가. 모험소설, La Vie extravagante de Balthazar (1925) professeur de philosophie quotidienne .
1861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 영국철학자, 논리학자, 수학자.
1879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 스위스 화가이자 음악가. 현대 예술론(Théorie de l'art moderne(1924 Über moderne Kunst ('On Modern Art'))
1880 그뢰튀젠(Bernard Groethuysen, 1880-1946), 베를린 태생 프랑스 작가 철학자. 사회학사 전공. 독일 사회학을 프랑스로 전함..
1882 조이스(James Joyce, 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 1882–1941), 아일랜드 소설가, 시인. Portrait de l'artiste en jeune homme (1916), Ulysse (1922), Finnegans Wake (1939).
1899 미쇼(Henri Michaux, 1899-1984) 벨기에 출신 프랑스 귀화(1955). 작가, 시인, 화가.
1899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86)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시인, 평론가이다. 1955년부터 1973년까지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의 관장직을 맡았다. 픽션들(Fictions (Ficciones) 1944), 알레프(L’Aleph (El Aleph) 1949),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1901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 프랑스 화가, 조각가, 조형예술가. 예술 스타일에 관한 첫 이론가. Prospectus aux amateurs de tous genres 1945, Prospectus et tous écrits suivants, textes réunis et présentés par Hubert Damisch, t. I et t. II, Paris, Gallimard, 1967 Tome II à la Bibliothèque Forney. / Catalogue des travaux de Jean Dubuffet. Fascicules i-xxxviii, Paris, 1965-1991.
1902 알렉상드르 코제브(Alexandre Kojève, 1902-1968) 러시아 태생 프랑스 철학자, 정치인. 그의 철학 세미나는 20세기 프랑스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별히 그는 헤겔 철학의 개념들을 20세기의 대륙 철학과 통합했다.
1903 오즈 야스지로(小津 安二郎, Yasujirō Ozu, 1903-1963) 일본의 영화감독, 각본가. 일본에서 무성 영화가 성행했던 1930년대에 활동을 시작했으며 가족과 결혼, 특히 세대간의 갈등을 영화의 주제로 다뤘다. 늦봄(1949년), 초여름(1951), 동경 이야기(1953), 부초(1959)
1904 곰브로비츠(Witold Gombrowicz, 1904-1969) 폴란드 작가. La Pornographie (Pornografia), 1960
1907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 1907-2003) 프랑스의 소설가, 문학비평가, 철학자, 엠마뉘엘 레비나스(1906-1995)의 친구이다.
1908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1908-2009), 프랑스 구조주의자, 민속학자, 인류학자.
1908 블라발(Yvon Belaval, 1908-1988) 프랑스 철학자, 문헌학자, 라이프니츠 전공자. Confessio Philosophi: La Profession de Foi du Philosophe(1672)을 번역 출판 1961.
1912 안토니오니(Michelangelo Antonioni, 1912-2007) 이탈리아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Le Désert rouge (Il deserto rosso 1964)
1916 마스콜로(Dionys Mascolo, 1916-1997) 프랑스 좌파 정치 운동가, 레지스당, 수필가. 뒤라(Marguerite Duras (de 1947 à 1956)와 결혼.
1922 한타이(Simon Hantaï, 1922-2008) 헝거리 태생 프랑스화가. 독창적 주름잡기(le pliage)[폴딩(Folding)] 방법(주름위에 색칠하기)
1923 톰/똠(René Thom, 1923-2002) 프랑스 수학자, 인식론자. 카타스트로프(파국)이론 창설자.
1925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 프랑스 철학자.
1925 샤뜰레(François Châtelet, 1925-1985) 프랑스 철학사가, 정치철학자. Platon, Gallimard, coll. « Folio (Gallimard)Folio », 1965; Hegel, Le Seuil, 1968; Les marxistes et la politique, présentation avec Évelyne Pisier-Kouchner et Jean-Marie Vincent, Thémis, 1975.
1925 불레즈(Pierre Boulez, 1925-2016) 프랑스 작곡가, 교육자, 오케스트라 지휘자, 주름에 따른 주름(Pli selon pli)(1957, 다섯편으로 되어 있는데 1999년까지 변형들이 있다.)
1926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 프랑스 철학자. 레이몽 루셀(Raymond Roussel, 1963), 지식의 고고학(L'Archéologie du savoir, 1969),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Surveiller et punir. Naissance de la prison, 1975, 성의 역사 1: 지식의 의지(Histoire de la sexualité, vol. 1: La volonté de savoir, 1976), 성의 역사 3: 자기 배려(Histoire de la sexualité, 3: Le souci de soi, 1984)
1947 막기오리(Robert Maggiori, 1947-) 이탈리아 태생, 프랑스 철학자, 편집자, 번역자(이탈리어로) 언론인.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 지도하에 박사학위. 해방(Libération)지에서 30년 기자.
벨제부스(Belzébuth) : Baal, appellation commune pour les dieux dans les mondes philistins et phéniciens, signifie « maître » ou « propriétaire ». D'après la Bible, « Baal-Zebub » était une divinité adorée par les Philistins, des oracles. En ougaritique zbl b'l ars signifie prince, maître de la terre.
(lu 54NKJ) (9:23, 54SME) (10:41, 54S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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