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죄책감 퀼트대회/유형진

나뭇잎숨결 2022. 5. 12. 15:41

마트료시카 시침핀 연구회 3 /유형진.

ㅡ 죄책감 퀼트대회

 

 

 

번 가을, ‘마트료시카 시침핀 연구회’ 주최로 죄를 모르는 자들의 죄편(罪片)을 잘라 이어붙이는 <죄책감 퀼트 대회>가 열렸습니다.   

 

#마름질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 수 없는 귀뚜라미 두 마리가 있습니다. 한 마리는 두더지를 닮아서 두더지귀뚜라미, 다른 한 마리는 박쥐를 닮아서 박쥐귀뚜라미로 불립니다. 두더지귀뚜라미는 손을 쓰고, 박쥐귀뚜라미는 발을 써서 웁니다. 이들은 한때 거짓말을 잘하는 피노키오들의 양심 역할을 했었는데, 요즘 피노키오들에겐 양심이 붙은 채 생산되기 때문에 수공을 들여 하나씩 뽑히는 귀뚜라미들은 이 시스템에선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대량으로 생산되는 양심들 중엔 불량도 많아 ‘죄책감’을 모르는 피노키오들이 적지 않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습니다.  

 

#홈질 또는 박음질 

두더지귀뚜라미는 앞을 못 봅니다. 하지만 두더지귀뚜라미 집안에서 대를 물려 전해 내려오는 보청기를 끼면 어떤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들립니다. 하지만 요즘 이들의 능력을 사려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시접 접기    

당나귀들의 클럽파티에 초대 된 ‘피노키오2345호’와 ‘피노키오6598호’는 직장에서 오늘까지 작성해서 철판 절곡팀에 넘겨야 하는 작업 지시서와 CAD 도면을 다 그려놓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나귀들의 클럽파티는 오늘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피노키오들만 오는 곳. 그런 피노키오들이 많아야 당나귀들도 먹고 사니까요. 또 그런 업소가 있어야 양심이 불량인 피노키오들도 적당히 스트레스를 풀며 살 수 있습니다. 양심이 똑바로 박힌 피노키오들은 스트레스를 모르고 지냅니다. 무엇이 옮고 그른 것인지 잘 알아서 자신의 활동 때문에 시스템이 정지되게 하는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 양심적인 피노키오들 때문에 이 시스템은 하자 없이 굴러갑니다. 양심이 불량인 피노키오들은 자신의 스트레스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불안이 쌓이고 쌓여 극에 달하면 어떻게들 알고 당나귀들이 그런 피노키오들을 클럽파티에 초대합니다.     

 

#뒤집기 그리고 공그르기    

당나귀들의 클럽에서 한창 파티가 무르익고 있는 시간, 두더지귀뚜라미와 박쥐귀뚜라미가 클럽에 입장했습니다. 당나귀들의 콜을 받고 온 것입니다. 그들은 집안에서 대대로 물려 전해 내려오는 검은 안경과 보청기를 쓰고 불량 피노키오들을 가려내어 잡으러 온 것입니다. 당나귀클럽은 사실, 중앙시스템에 심어놓은 보안 장치 같은 것입니다. 양심이 불량인 피노키오들 때문에 말단시스템부터 무너져 내린다면 이 세계는 끝장입니다. ‘피노키오2345호’는 두더지귀뚜라미의 검은 안경에, ‘피노키오6598호’는 박쥐귀뚜라미에 의해 색출되었습니다.      

 

#다림질   

‘피노키오2345호’와‘피노키오6598호’는 ‘모디피케이션 존’으로 이송될 것입니다. 그동안 쓸모 없을 것 같은 두 귀뚜라미에 의해서 시스템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시스템 에러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고, 불량한 양심을 가진 피노키오들은 언제든 생산될 수 있습니다.     

 

이번 가을, ‘마트료시카 시침핀 연구회’ 주최. <죄책감 퀼트대회>의 수상자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