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우유는 슬픔 기쁨은 조각보​/유형진

나뭇잎숨결 2022. 5. 12. 15:35

우유는 슬픔 기쁨은 조각보

 

 

 

 

 

유형진

 

 

 

우유 사러 갈게, 하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여자가 있다

생각해보니 여자는

우유 사러 갔다 올게, 하지 않고

우유 사러 갈게, 그랬다

그래서 여자는 돌아오지 않은 것일까?

​ 우유는 슬픔

기쁨은 조각보

​ 왜?

슬픔은 뿌옇게 흐르고

썩으면 냄새가 고약하니까

나에게 기쁨은 늘 조각조각

꿀이 든 벌집 모양을 기워놓은 누더기 같아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전혀 기억나지 않는 말

지금 기억나는 말

그때 무얼 하고 있었지?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 조각보로 덮어둔

밀크 잼 바른 토스트를 먹으며

​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재방송 드라마가 하고 있었고

주인공이 막 오래된 마음을 고백하려는 중이었다

고백은 끝나고 키스도 끝났는데

우유 사러 간 여자는 영영 오지 않았다

벌집 모양 조각보는 그대로 식탁 한구석에 구겨져 있고

우유는 방 안 가득 흘러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