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유형진
과꽃의 씨방에 사는 한 사람을 압니다 그는 분홍과꽃의 말라비
틀어진 씨방에 삽니다 그의 등은 호미처럼 굽었고 손등은 딱정벌
레의 껍질처럼 딱딱합니다 그의 등과 손등이 언제부터 그렇게 굽
고 딱딱해졌는지 모릅니다 과꽃 잎사귀에 이슬이 내릴 때 그는
꽃잎을 타고 일터로 갑니다 그의 일터는 프라모델 탱크를 만드는
공장입니다 그는 탱크의 바퀴를 만드는 일을 합니다 그가 만든
탱크 바퀴는 과꽃을 닮았습니다 그는 탱크 바퀴의 전문가입니다
그가 만든 탱크 바퀴는 진흙탕도 달릴 수 있습니다 비탈언덕도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과꽃의 씨방에 사는 그는 과꽃을 타고 출
근해서 과꽃 같은 탱크 바퀴를 만듭니다 톱니가 있고, 굴러가고,
아이들이 좋아하고, 쉽게 잊혀지고, 잊은 후에는 다시 떠오르지
않는 탱크의 바퀴를 만듭니다 아이들이 그가 만든 탱크를 가지고
꽃밭에서 놉니다 바퀴에 꽃잎이 깔립니다 꽃들이 지고 꽃 진 자
리에 다시 꽃이 핍니다 과꽃의 씨방에 사는 한 사람은 등이 호미
처럼 굽었고 손등은 딱정벌레처럼 딱딱합니다 올해도 과꽃이 피
었습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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