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과 사회생물학적 논쟁 |
정 연 홍·최 상 균(충남대)
[한글요약]
이 연구에서 논자들은 사회생물학의 생물학적 결정론을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의 철학의 입장에서 면밀하게 분석하였다. 화이트헤드는 그의 주저 {과정과 실재}(Process and Reality)에서 현실적 계기(actual occasion)는 어떠한 미결정성도 지니지 않는 완전히 결정된 사태라고 지적하였다. 이것이 사회생물학 논쟁의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는 유전자 결정론에 커다란 시사를 할 수 있는 문제이다.
화이트헤드는 현실적 존재자의 결정적 통일성이 짜여지게 되는 것은 여건의 여러 결정 및 미결정에 점진적으로 관계함으로써 한정된 어떤 이상을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목적인에 의해서라고 하였다. 목적은 만족(satisfaction)에 도달하는 기제를 스스로 가지고 있다. 목적과 만족은 진화를 설명하는데 중요한 개념이다. 화이트헤드는 왜 진화의 방향이 목적과 만족을 지향한 (정해진)상승방향이었는가를 묻는다.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의 철학에 있어서 현실적 개별자들은 생물의 유전자가 끊임없이 다음세대로 이어가듯이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이러한 개체의 소멸과 불멸성은 예정된 것이며, 이것은 질서와 조화의 산물이다. 현실적 존재자의 발생과정에는 질서가 있다. 질서는 생명의 진화에 반드시 필요하다.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의 철학은 끊임없는 과정을 통해 대상적 불멸성을 경험하고 이로 말미암아 미래의 모습이 결정된다.
주제분야 : 과학철학, 비교철학.
주 제 어 : 화이트헤드, 유기체의 철학, 사회생물학, 생물학적 결정론
1. 들어가는 말
오늘날 생명에 대한 논의는 질적·양적으로 과거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논의 자체는 생명의 위기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일 것이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생명의 위기가 현재 우리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누구나 알고 또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명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그 바탕 위에 어떤 상황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학적 체계를 세운 예는 드물다. 그러한 가운데 세계를 생명 있는 유기체로 파악하려는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의 철학을 만날 수 있음을 다행스러운 일이다.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근대 사고의 전형인 육체와 정신, 주체와 객체,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여 사고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배제하고 존재의 유기체적 통일성과 전체성을 중시한다. 그의 철학은 생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동시에 현대에 만연된 생명의 위기,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하는 첩경이 될 것이며, 생명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철학의 기능을 "문명화된 사상의 가장 일반적인 체계화를 촉진하는 일"이라고 한다. 이것은 화이트헤드의 철학이 지향하는 가장 분명한 목표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문명화된 사상이란 무엇인가? 그 가운데는 각 시대의 가장 진보적이고 첨단의 사상이 포함될 것이다. 현대가 과학의 시대라고 하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화이트헤드가 지향하는 바는 과학의 특수성에 철학의 일반성을 접목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특수 과학이 제한된 영역에 국한되어 있어, 그 분야 이외의 것에는 어떠한 진술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철학의 주된 관심은 광범한 일반성의 탐구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철학의 제1임무는 과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것을 토대로 하나의 완전한 학적 체계를 세우는 것이다.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의 철학은 현대과학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고, 그것의 일반화 작업에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본고에서 우리는 최근 게놈 프로젝트 이후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 사회생물학(sociobiology)을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의 철학의 입장에서 분석하여 사회생물학 논쟁의 일반화를 모색하고자 한다. 특히 사회생물학 논쟁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문제인 생물학적 유전자 결정론의 문제를 화이트헤드의 시각에서 규명할 것이다. 이것은 현재 생물학과 사회학 분야에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생물학을 철학적 입장에서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철학과 과학의 상호보완적 관계의 필요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시도이다.
2. 사회생물학 논쟁
생물학은 그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생명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근대 이후 생물학이 학문적·문화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친 사건을 몇 가지 든다면, 첫번째가 다윈의 진화론이고, 두 번째가 왓슨과 크릭의 DNA 이중나선구조의 규명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의 사회생물학을 여기에 덧붙인다 하더라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본 논문에서 다루려고 하는 사회생물학의 근본 가정은 무엇인가? 유기체의 행동은 그 유전자의 산물이라는 것이 사회생물학의 전제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생물학적 결정론의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그것은 생명체가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생물학적 유전적 내용이 그 생명체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으로 최근 이 문제가 사회생물학 논쟁의 주요 쟁점이 되고 있다.
윌슨은 {사회생물학: 새로운 종합}에서 집단 생물학과 유전자이론을 도입하여 하등생물에서 고등생물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적용되는 통일된 생물학을 기획하였다. 그는 사회생물학을 "모든 사회행동의 생물학적 기초에 관해서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하였다. 즉 생명체의 유전자와 그것을 둘러싼 환경의 상호작용의 결과를 연구하는 것이 사회생물학이다. 따라서 사회생물학은 단순히 생명현상에 대한 연구에 그치지 않는다. 윌슨은 사회를 유전학과 진화론에 기초해서 규명하지 않는다면 사회현상을 올바르게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또한 인간의 윤리문제도 생물학적 검증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회생물학}에서 인간의 자의식이 뇌의 시상하부와 대뇌변연계에 있는 정서중추에 의해 제어되고 형성됨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는 윤리학자가 인간의 윤리문제에 대해 언명하기에 앞서 그것의 생물학적 토대에 대한 접근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1) 유전자 결정론
이러한 윌슨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생명체의 진화와 그것의 유전적 기초에 대한 분석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는 유전진화론을 생명과학의 중심에 놓을 것을 제안하면서 "인간의 사회행동이 유전적으로 결정되는가 하는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질문거리도 되지 않는다"고 일축하였다. 예를 들어 그는 동물들에게 부모의 새끼 돌보기는 유전적으로 프로그램 되어있는 본능이라 생각한다. 더 나아가 벌과 개미 등 사회성 곤충에서 일꾼들이 자식을 낳아 키우는 것 보다 여왕이 낳은 새끼, 즉 자신의 동생을 키우는데 열심인 것은 바로 그들 종의 우수한 유전자를 다음 대에 더 많이 남길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유전적 행위는 유전자의 이타성에 근거한다.
사회성 곤충에는 가족 수준의 선택에 의해 진화된 이타행동으로서 놀라운 사례들이 많다. 즉 이들은 이타적 반응을 자식과 부모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형제 자매들 그리고 조카와 사촌에까지 나타낸다. 대부분의 흰개미와 개미의 종들에서 병정카스트의 기능은 주로 군체를 방어하는데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병정개미들은 군체의 나머지 일부 개체들을 향해 가해지는 자극에 대해서는 흔히 완만한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일단 반응을 나타냈다 하면 이때 처한 상황 가운데 가장 위험한 위치에 스스로 선다.
유전자의 이기성 역시 이타성과 같은 범주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유전자는 본래적으로 이기적인 특성을 갖는다. 그래서 어떤 개체가 언뜻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유전자의 이기성의 발현일 뿐이다. 극단적인 생물학적 결정론자들은 물에 빠진 자식을 구하고 죽은 어머니에게서 보이는 이타성은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남기려는 적응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사회생물학이 이론적으로만 설정했던 이기적 유전자는 게놈 프로젝트 이후 하나의 실체로서 실험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남자에게 공격을 유발하는 '공격성 유전자'의 존재가 밝혀졌고 심지어 동성애를 일으키는 유전자도 알려지게 되었다. 논쟁이 많았던 사회생물학의 유전자 결정론은 이제 그 밑받침이 더욱 단단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건대 유전자의 특성은 그것이 이기적이든 혹은 이타적이든 결국 유전자의 정보에 의해 생물 개체의 특성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사회란 유전학과 진화론에 기초해서 설명하는 사회생물학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이타적 행위마저 그것의 생존을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물론 하나의 생명체가 탄생하고 유지되는 과정과 환경은 중요하다. 그러나 한 생명체가 다음 세대 생명체에 남기는 것은 유전자뿐이고 보면 유전자의 중요함은 너무나 당연할 수밖에 없다.
2)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비판적 입장
물론 모든 사회생물학자들이 유전자 결정론자는 아니다. 그 가운데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의 저자 도킨스(R. Dawkins)의 주장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굴드는 유전자가 아무리 큰 힘을 발휘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활동하기 위해서는 생물의 신체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유전자는 세포 속에 숨겨진 DNA의 지극히 작은 조각인데 자연선택은 유전자를 직접 볼 수도 없고 유전자 가운데 하나를 고를 수도 없다. 자연선택이 어떤 개체를 선호하는 것은 그 개체가 특정한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굴드의 입장에 따르면 특정 형태에 관여하는 개별 유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유전자들이 서로 협동해서 신체의 거의 대부분을 구축하기 때문에 모든 생물의 몸은 개별 유전자에 의해 구축되는 각 부분으로 분해할 수 없다는 것이 굴드의 견해이다.
굴드는 도킨스의 이론이 서구의 과학적 사고에 얽혀있는 몇 가지 악습인 원자론, 환원주의 그리고 결정론 등에서 유래하였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전체를 기본적인 단위로 분해시켜 이해할 수 있다는 사고 방식, 미시적 단위의 고유성질이 거시적 결과를 낳으며 동시에 그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사고 방식, 그리고 모든 사건이나 사물이 명백하고 예측 가능하고 결정적인 원인을 갖는다는 사고방식이라 지적한다. 그는 생물이 유전자들의 결합 이상이고, 몸의 여러 부분은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유지되며, 몸은 선택에 노출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으로 변형되는 식으로 작용하는 수많은 유전자들로 구성된다고 생각한다. 굴드는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인간 유전자 구조가 폭넓은 행동양식을 택하고 교육, 문화, 계층, 지위, 자유의지 등 무형적인 요소들은 인간 유전자가 허용하는 광범위한 행동의 영역에서 어떻게 행동을 재현할 것인가를 결정한다고 한다.
사회생물학의 원조격인 윌슨 또한 소박한 생물학적 결정론만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는 파란색 눈과 갈색눈의 차이가 전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유전자의 차이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검증을 통해 유전학의 법칙으로 해석될 수 있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윌슨은 다음과 같이 말해 생물이 어떠한 형태로 결정되는 데에는 환경의 역할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사회성 곤충에서 카스트는 군체 내에서 특수운동을 수행하는 특정형태의 타입이나 특정연령집단 또는 이 두 가지 모두를 나타내는 일종의 개체들을 말한다…… 카스트체계는 일부 유전적인 차이에 기초를 두기도 하고 또 두지 않기도 한다. 쏘는 침이 없는 멜리포나 속에서 보면 여왕들은 복수의 대립유전자의 어떤 것에서든 이형접합인 것으로 결정되지만 대개의 또는 모든 다른 사회성 곤충에서 개체들의 계급은 순전히 환경적인 영향에 의해 결정된다.
윌슨은 그의 저서 {인간 본성에 대하여}(On Human Nature)에서 "유전자 결정론은 문화적 진화가 일어날 수 있는 여지를 좁힌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유전자 결정론을 통해 과거의 경로를 심도 있게 알아내고 미래의 대략적인 방향까지 그려낼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였지만, 특히 인간에 있어서 사회적 진화는 문화적 궤도와 생물학적 그것이 함께 나아가는 타협적 방향으로 결론내리고 있다.
프란츠 부케티츠(Franz M. Wuketits)도 그의 저서 {사회생물학 논쟁}에서 사회생물학의 유전자 결정론이 사회 문화적 과정들을 오직 유전자의 책임으로 돌리려고 한다면 그것은 환원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또한 그는 "생물체의 외양에 나타나는 각 형질마다 유전자가 단순히 하나씩 맞대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형질의 결정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오늘날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특정형태의 개별적 유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굴드의 입장과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그렇지만 부케티스는 굴드에 비해 비교적 냉정하게 유전자 결정론과 환경론 모두를 소개하고 그 양자를 윌슨의 사회생물학 입장에서 종합하려 한다.
3. 유기체의 철학과 사회생물학
화이트헤드는 어떠한 과학도 유기체의 이념을 염두에 두지 않을 경우, 무의미한 것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유기체의 철학은 현실태(actuality)에 관한 세포이론이다. 사실의 궁극적 단위 하나하나는, 현실태와 동등한 완결성을 갖는 구성요소로는 분석되지 않는 세포 복합체(cell-complex)이다." 세포 이론은 생물학의 가장 기본적인 탐구 영역이다. 따라서 "유기체의 철학에서 세포 이론에 입각한 생물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는 우주의 구조 자체가 생물학적 구조라 한다." 그가 말하려는 생물학에 기반을 둔 자연의 유기체론은 유물론을 충분히 비판하지 못한 어정쩡한 생기론과는 다르다. 생기론은 이원론의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유물론을 충분히 비판하지 못한다. 화이트헤드는 한 존재의 전체 속에서 그것의 부분들이 상호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론을 발전시키는데 그 목표를 두었다.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존속하는 존재들은 유기체의 구성원들이며 그것들은 다시 유기체 전체의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각각의 부분은 내적으로 연결된 구성을 가지며 그것들은 전체의 계획 하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화이트헤드가 기획한 유기체의 철학의 구조는 '구조화된 사회(structured society)'이다. 이것은 데카르트와 뉴턴의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유기체적 시스템의 세계관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가 제시한 페러다임의 전환은 기계론이 설명하지 못했던 존재의 모습에 대한 새로운 실마리를 제시할 수 있다.
이제 우리의 논점을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의 철학에서 나타난 생물학적 결정론의 근거로 돌려보자. 그에게 있어서
현실적 계기는 그 형상적 구조에 있어서는 어떠한 미결정성도 갖지 않는다. 가능태는 실현된 것으로 변해있다. 현실적 계기는 어떠한 미결단성도 지니고 있지 않은 완전한 결정적 사태인 것이다. 그것들은 제약의 근거를 형성한다.
현실적 계기 상호간의 "느낌(feeling)은 모든 점에서 결정되어 있다." 다시 말해 느낌은 결정된 주체적 형식을 가지고 있다. 느낌은 감정적 대응, 미적 감수성과 더불어 어떤 대상과의 물리적이면서도 유기체적인 접촉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느낌을 유기체적인 접촉이라는 측면에서 한정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 계기들 간의 관계는 유기체적 접촉이라는 느낌이 작용함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느낌은 계기들의 결정된 주체적 형식으로 작용하게 된다. "주체적 형식은 소극적 파악과 대상적 여건과 주체의 개념적 창시로부터 그 자신의 결정성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사실로 현실적 계기는 그 형상적 구조에 있어서 어떠한 미결정성도 갖지 않으며 그것의 소멸과 생성의 과정이 결정적 사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이트헤드는 세계를 자신의 절대적인 자기 달성을 갖는 개별적 현실적 존재자들의 발생과정으로 기술하려는 시도에서 유기체의 철학을 전개한다. 따라서 현실적인 개별자들의 궁극성은 그 자신을 넘어서는 것과 관계되는 결단(decision)이다. 자신을 넘어선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숨어 있을까? 유비적으로 표현해서 그것은 생물학에서의 개체 유전을 의미한다 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을 넘어서서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는 개체의 유전이다. 화이트헤드의 대상적 불멸성(objective immortality)이 이에 대응하는 용어이다. 대상적 불멸성은 이념적인 것만으로 해석할 수 없다.
합생하는 주체의 직접적 느낌들 가운데 들어 있는 하나의 요소는 직접적 사실과의 관계에서의 초월적 미래에 대한 예기적 느낌(anticipatory feeling)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현실태의 본성에 내재해 있는 대상적 불멸성의 느낌이다.
대상적 불멸성은 "미래가 현재 속에서 대상적 실재성을 갖는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미래가 현재 속에서 실재성을 갖는다는 것은 역으로 현재 속에 미래의 내용이 잠재되어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철학적 함의를 생물학적으로 도출하면 현재의 유전자가 끊임없이 다음 세대로 전해짐을 의미하는데 이는 생물학적 결정론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개별자의 이러한 결정성은 그 자신을 넘어서는 것과 관계되는 결단이다. 화이트헤드에게서 개체의 소멸과 대상적 불멸성은 미리 예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생명체의 소멸과 유전자의 계승은 우연적 사건이 아니라 질서와 조화의 소산이다. 그는 {과학과 현대세계}(Science and the Modern World)에서
사건은 미래를 갖는다. 이것은 사건이, 미래가 현재에 의존하고 있는 여러 양상을, 다시 말해 현재가 미래에 관하여 결정해 놓은 양상을 그 자신 속에 반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건은 미래를 예기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의 계기는 다른 것의 미래에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앞의 것은 작용인의 양태에 따라 뒤의 것에 내재하게 될 것이며, 뒤의 것은 앞의 것의 예기의 양태에 따라 내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언급을 통해 우리는 현실적 존재자의 발생과정은 질서화 됨을 알 수 있다. 질서는 앞선 존재자와 뒤이은 존재자가 분명해야만 한다. 생존은 질서를 필요로 하며 이러한 질서의 유형을 무시할 경우 현실적 존재자의 발생과정은 모순이 될 수밖에 없다. 발생적 관계성에서 생기는 이러한 순차적 질서화(serial ordering)는 다음과 같다. 즉 결합체(nexus)의 모든 구성원은 각자가 그 결합체에 있어서 절단부를 구성하고 있다. 그 결과 a) 임의의 한 성원은 그 절단부 한쪽 편의 모든 성원으로부터 이어받지만, 그 절단부의 다른 편의 성원으로부터는 이어받지 않는다는 것, b) 만일 A와 B가 그 결합체의 두 성원이라 하고 B가 A로부터 이어받는다고 한다면 B로부터 이어받고 있는 B의 절단의 한편은 A로부터 이어받고 있는 A의 절단의 한 편의 부분을 형성하며 A가 그로부터 이어받는 그런 A의 절단의 한편은 B가 그로부터 이어받는 그런 절단의 한편의 부분을 형성한다.
화이트헤드의 시간의 질서는 앞선 구성원이 누적되어 뒤잇는 구성원과 결합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합생(concrescence)은 시간의 질서에 따라 다수의 사물로 구성된 구성원이 새로운 일자의 구조 속으로 들어옴으로써 다(many)가 일(one)이 되는 개체적 통일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이러한 합생이론은 현대 생명과학이 다루고 있는 문제, 특히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개체의 모든 생물학적 정보를 전달해 주는 DNA구조가 그대로 담겨있다.
화이트헤드는 세포의 집합체로 이루어진 각 동물의 신체 속에는 수백 만개의 생명중추(centers of life)가 들어 있다고 하며, 이러한 것이 생명체를 존속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요소는 생명체의 반복적이고 통일된 행동을 제어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신체 내의 모든 생명은 개별적인 세포들의 생명이다. 따라서 각 동물 신체 속에는 수백 만개의 생명 중추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설명을 필요로 하는 점은 인격의 분열이 아니라 통합적인 제어이며, 이것에 힘입어 우리는 타인이 관찰할 수 있는 통일된 행동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통일된 경험에 대한 의식도 갖게 되는 것이다.
DNA의 최종적인 목표는 자신의 세대를 마감한 후에 다음 세대로 자신의 몸을 그대로, 아니 더욱 발전된 형태로 물려주는 것이다. 그것은 화이트헤드 용어로는 생명중추이며, 그것은 순차적 질서를 통해 다음 세대로, 그리고 또 다음 세대로 끊임없이 유전된다.
화이트헤드 유기체의 철학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순차적 질서화의 이론은 데카르트의 실체 개념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화이트헤드는 데카르트의 이론과 같이 실체가 존재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 이외에 어떠한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것의 생존은 그 환경에서 질서의 생존과 아무 관련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기체의 철학은 끊임없는 과정을 통해 대상적 불멸성을 구가함으로써 다음 세대로의 유기체(유전자) 연속이 있음에 반해, 데카르트의 실체는 그러한 유전의 단절로 말미암아 미래에 대한 예기(anticipation)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유기체의 철학에 있어 암석 한 조각의 미래에 관한 예측은 그 한 조각의 암석이 필요로 하는 유형의 질서를 갖는 환경을 전제로 한다." 화이트헤드 철학에 있어서 미래는 분명하다. 분명하다는 것은 결정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화이트헤드는 적자생존이론에 의하여 설명되지 않는 진화의 발전적 방향에 관하여 고심한다. 왜 유기적인 것이 무기적인 것으로부터 발생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물음이 그것이다. 또한 그는 시간의 경과에 의해 저급한 상태에서 고등한 유기물로 진화한 이유가 환경에 대한 어떤 적응이론이나 생존경쟁 이론으로도 설명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위에서 살펴본 현실적 계기의 결단성과 그것의 순차적 질서화의 문제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이론은 사회생물학 논쟁 중 생물학적 결정론의 이론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화이트헤드는 생명의 본질적인 특성이 목적(aim)이라 생각한다. "생명의 특성은 절대적인 자기 향유와 창조적 활동 및 목적이다". 목적은 만족에 도달하는 것이다. 현실세계의 과정에 있어서 미결정성(indetermination)은 만족에 도달하면 소진되어 결정성이 된다. 현실적 존재자의 형상적 구조는 미결정성으로부터 종국적 결정으로의 이행 과정이다. 현실적 존재자는 물리적 측면에서 현실세계에 대한 그 자신의 결정적 느낌들로 구성되어 있다. 최종 단계인 결단은 현실적 존재자가 그 개체적 만족을 달성함으로써 자신을 넘어서는 미래의 개척지에다 결정적인 조건을 부과하는 방법이다. 현실적 존재자의 결정적 통일성이 짜여지게 되는 것은 여건의 여러 결정 및 미결정에 점진적으로 관계함으로써, 점진적으로 한정되는 어떤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목적인에 의해서이다.
목적과 만족은 진화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개념이다. 현실적 존재자는 그 자신에 대하여 기능함으로써 자기 동일성을 잃지 않고도 자기 형성의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은 자기 창조적이다. 그리고 그 창조 과정에서 다양한 역할들은 하나의 정합적인 역할로 전환된다. 따라서 생성은 부정합(incoherent)으로부터 정합으로의 전환이며 각각의 특정한 사례에서 그러한 전환이 달성될 때 종결된다. "현실적 존재자를 구성하는 합생과정의 마지막 위상은 완전히 결정된 하나의 복합적 느낌이다. 이 마지막 위상은 만족이다."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사물들이 자기를 넘어서서 지속적인 가치 형식들의 지속적인 조화의 전개가 문제이다". 그러면서 그는 왜 진화의 방향이 목적과 만족을 지향한 상승방향이었는가를 묻는다. "유기적 종이 무기적 물질의 분포로부터 발생했다는 사실과, 그리고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더 고차적 형태의 유기적 종으로 진화하였다는 사실은 환경에 대한 어떤 적응이론이나 또는 생존경쟁의 어떤 이론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는 생물학적 결정론의 모습이 엿보인다.
물론 화이트헤드가 진화의 결정론적 입장을 일관되게 주장했던 것은 아니다. 화이트헤드는 이처럼 생물학적 유전적 결정론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가지는 동시에 생물학적 결정론에 유보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그는 자연의 법칙과 환경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자연의 법칙은 사회적 환경의 산물이라는 것을 언급한다. 즉 선행되어진 여건은 그 이전의 여건이 필요하며, 그러한 여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회적 환경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자연의 법칙이 형성되어지는 것에는 자연의 법칙과 환경이 상호작용함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자들이 이 논문에서 밝히려 한 것은 사회생물학 논쟁에 있어서 생물학적·유전적 결정주의를 환원주의의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근거를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의 철학에서 발견하려 한 것이다. 화이트헤드가 말한 생명중추(유전자)가 순차적 질서를 통해 끊임없이 다음 세대로 유전하는 과정은 미결정성에서 결정성에로의 전이이다. 그러한 사실을 근거로 하여 생명체가 만족할 때까지 결정적인 통일성을 향해 나아가, 그 마지막 위상이 완전히 결정된 하나의 복합적 느낌이 될 때까지의 과정을 유전자 결정론의 철학적 근거로 내세우려 한 것을 밝히려 한 것이다.
4. 결론
윌슨은 사회생물학을 '모든 사회적 행위의 생물학적 토대에 대한 체계적 연구'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는 집단 생물학과 유전학을 도입하여 하등 생물에서 고등 사회성 생물, 그리고 인간 집단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적용되는 통일된 생물학적 관점을 제시한다. 그에 의해 널리 알려진 사회 생물학은 어떠한 논쟁점을 가지고 있는가? 현재 존재하고 있는 모든 생물의 종들은 진화의 산물이며, 그러한 생물학적 진화를 초래하는 것은 유전자의 조합과 돌연변이, 자연선택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사회생물학이 유전이론에 그 바탕을 두고 있으며 사회적 행동은 유전자가 조정한다는 입장을 표명한다. 이러한 학설을 극단적으로 몰고가면 생물체는 유전자에 의해 조정되는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생물학의 유전자 결정론이 일반화될 수 있는 철학적 근거는 무엇인가? 논자들은 이를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의 철학에서 찾아보았다.
화이트헤드는 그의 유기체의 철학을 통하여 우주를 생명 있는 연속체로 파악하려 하였다. 그는 자연과 생명의 명확한 구별이 데카르트의 이원론 이후의 모든 철학을 오염시켜 왔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유기체론은 존재의 전체 속에서 각각의 부분들이 상호영향을 미치며 내적으로 연결된 구성을 가지는 것으로 기획되었다. 또한 그러한 구성요소들은 전체의 계획 하에 존재한다.
화이트헤드 유기체의 철학에 있어서 현실적 개별자들은 생물의 유전자가 끊임없이 다음 세대에로 옮겨가듯이 대상적 불멸성을 갖는다. 이것이 바로 개체의 결단이며 그것의 궁극성이다. 이러한 개체의 소멸과 불멸성은 예정된 것이며, 질서와 조화의 산물이다. 현실적 존재자의 발생과정에는 질서가 있다. 질서는 생명의 진화에 반드시 필요하다.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의 철학은 끊임없는 과정을 통해 대상적 불멸성을 경험하고 이로 인해 분명한 미래가 결정된다.
화이트헤드에 있어서 현실적 존재자는 그것이 만족에 도달함으로써 미래의 계기에 결정적 조건을 부과한다. 그러한 결정성은 어떤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목적인에 의해서이다. 따라서 현실적 존재자의 생성은 부정합으로부터 정합으로, 미결정으로부터 결정으로의 전환이며, 그것은 만족에 이를 때까지 계속 진행된다. 화이트헤드는 진화의 방향이 고차원적인 것으로의 상승인가에 대한 물음에서 그것은 목적과 만족에 도달하려는 생물학적 결정론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논자들은 이 논문에서 사회생물학의 생물학적 결정주의를 화이트헤드의 철학의 입장에서 분석하려 하였으며, 현대 생명과학에서 드러나고 있는 여러 가지의 생명현상을 유기체의 철학에서 정리하려고 하였다. 철학적으로 유전자 결정론은 환원주의의 오류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이론이다. 환원주의는 복잡한 현상의 원인을 보다 단순한 현상에서 구하는 것으로서 복잡한 구조와 속성이 부분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환원주의는 부분에서 전체에로의 상향접근식 방법론으로 생명현상의 종합적인 이해를 간과하는 결과를 낳았다.
사실 윌슨의 경우도 인간행동에 있어서 비유전적인 학습의 역할을 전적으로 부정하지 않았다. 스티븐 제이 굴드 또한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유전적으로 결정되고 통제된다는 입장에 대한 결정적 증거는 아직 없으며,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사실 사회생물학은 인간과 생물에 대한 생물학적·사회학적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데 커다란 공헌을 하였지만, 그것이 동물 행동의 형질에 특정한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환원주의적이고 결정론주의의 입장만을 강조한다면 그것이 인종, 성이나 정치적으로 이용될 소지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화이트헤드는 그의 거시적 안목을 통해 자유를 그리고 미시적 안목을 통해 질서를 그려낸다. 우주와 생명은 자유로운 동시에 질서잡혀 있다. 자유와 질서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상태가 바로 조화이다. 인간과 생명, 더 나아가 우주는 어느 하나의 측면만으로 한정될 수 없다. 그 외의 문제, 예를 들어 유전자 결정론의 윤리적 타당성 등과 같이 예민한 문제는 다음의 과제로 남겨두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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