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게의 인식론과 수리철학*
1)심 철 호**
【주제분류】인식론, 분석철학 【주 요 어】프레게, 인식론, 수리철학, 논리주의, 분석성 【요 약 문】 프레게의 인식론은 오랫동안 주목의 대상이 아니었다. 인식론적 문제에 대한 프레게의 과묵함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근래에 와서야 조금씩 일기 시작한 프레게의 인식론에 대한 새로운 조명들은 프레게 철학에서 인식론의 비중과 의의 및 프레게의 인식론에 대한 기여도 등의 보다 일반적인 문제들로부터 ‘논리주의의 동기’, ‘분석/종합, 선험/후험 구분’, ‘논리법칙의 조건’, ‘뜻/지시체 구분의 수리철학적 및 인식론적 의의’ 등 수리철학 특유의 인식론적 쟁점들에 대한 해석들을 주요 테마로 한다. 이 글은 이들 쟁점들을 둘러싼 논쟁들을 정리하면서, 프레게의 수리철학적 기획과 성과들에 대한 기존의 언어 철학 중심적 해석에 비해 인식론적 해석이 갖는 장점을 부각시키면서 현대적으로 윤색된 프레게의 모습을 부분적으로나마 프레게 당시의 모습에 가깝게 복원해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
1.
초기 프레게 학자들이 강하게 부각시킨 언어철학자로서의 프레게의 인상에 비추어 볼 때 프레게의 인식론이란 주제는 다소 생소하다. 그러나 프레게의 논리주의 프로그램이 산수의 참인 명제들에 대한 논리적 환원을 통한 산수 지식의 정당화라는 명백히 인식론적 성격을 갖고 있음을 고려하면 이 생소함은 또한 의외라 할 수 있다. 프레게 철학은 주로 분석철학자들의 관심 대상이었다. 그의 작업 가운데 분석철학의 여러 분야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뜻/지시체 구분 이론을 비롯한 언어철학 혹은 의미론 분야의 성과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그를 수학기초론에 일생을 바친 수학자로서보다는 언어철학자로서 더 인상 깊게 기억하게 할 정도다. 프레게가 당초에 수학의 참인 명제들의 정당화 문제에 몰두하다가 수학적 명제들을 표현하는 언어의 부적절함 때문에 언어 자체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음은 그 자신의 고백으로 보아 분명한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초기의 프레게 해석가들이 제시한 프레게의 모습에 대해 최근의 일부 프레게 학자들은 상당한 의혹을 제기한다. 예컨대 커리(Gregory Currie)1) 같은 이는 프레게가 도대체 언어철학자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슬루가(Hans Sluga)2), 키처(Phillip Kitcher)3), 위너(Joan Weiner)4), 가브리엘(Gottfried Gabriel)5) 등은 프레게의 인식론적 관심들에 주목하며 칸트주의 또는 신칸트주의의 세례를 많이 받은 새로운 프레게 상을 제안한다.
「개념기호」, 「산수의 기초」(이하 「기초」로 약칭), 「산수의 근본법칙」(이하 「근본법칙」으로 약칭)의 전체 논리주의 계획은 산수의 ‘인식론적’ 토대를 굳건히 하려는 시도라 볼 수도 있으며 실제로 「근본법칙」의 서문에는 이점이 명시되어 있다. 게다가 산수에서의 지식-확장 판단들이 순수 논리적 기초 위에서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논리학이 인식 가치가 있다는 주장의 뒷받침에 쓰이고 있다. 「기초」에서 이 입장은 ‘순수 논리학의 불임(不姙) 전설’을 깨는 데 사용된다(「기초」 § 17).
그러나 과연 프레게의 인식론이라고 일컬어 줄만한 내용이 있기나 하는지가 의심스러울 만큼 프레게는 인식론적 주제에 관해서도 비교적 ‘과묵’할 정도로 언급을 자제한 흔적이 역력하다. 프레게 논리주의의 인식론적 성격과 상세한 프레게 인식론의 부재라는 대비 현상이 일견 우리를 곤혹스럽게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오래 전부터 최근까지 프레게의 인식론에 대한 무관심이나 저평가로 이어져왔다. 이를테면 프레게가 “철학적 문제에 대한 인식론적 접근을 전적으로 배척했다”6)는 오래 전 기치(Peter Geach)의 주장은, “생애의 대부분을 프레게는 인식론을 그냥 무시함으로써 논리학에 우선성을 부여했다. ... 말년에서야 인식론의 문제에 직접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 그의 노력들이 인식론자들이 씨름해온 문제의 해결에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7)는 비교적 최근의 케니(Anthony Kenny)의 평가에까지 지속된다.
그렇다면 말년이 되기 전까지는 별다른 인식론적 문제 의식도 없이 논리주의라는 필생의 작업에 매달렸다는 말일까?
이와 관련 가브리엘8)은 19세기에 논리학과 인식론이 분리된 분야가 아니었음을 환기시키고 있다. 그런 구분은 논리학 내부에서 요소론("Elementarlehre")과 방법론("Methodenlehre")의 구분상 친숙해진 것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프레게는 논리학에 심리학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일차적으로 인식론과 논리학간에 선을 긋는 데 관심을 두었으며, 인식론은 어느 정도는 논리학과 심리학 사이의 완충 지대로서 도입되었다는 것이다.
가브리엘의 해명은 어디까지나 소극적인 것일 뿐이다. 어쨌든 프레게에게는 그 자신의 고유한 것은 아니라 해도 무엇인가 인식론적 입장이라는 것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2.
사실 초기부터 프레게는 인식론적 쟁점에 무심하지 않았다. 유명한 「개념기호」의 서문은 “과학적 진리의 인식은 대체로 여러 단계의 확실성을 거친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어떻게 주어진 명제에 점차 도달하게 되었는가?”라는 발견의 문맥에 관한 문제와 “어떻게 주어진 그 명제에 마침내 가장 확실한 기초를 제공할 수 있는가?”라는 정당화의 문맥에 관한 문제를 뚜렷이 구분하고서, 이 가운데 전자는 ‘심리학적 기원’의 문제로서 사람마다 답이 다를 것임만 지적하고 지나쳐 버린다.
반면 후자의 문제에 관해서는 다시금 최선의 증명 방식이 무엇이냐에 따라 정당화를 요하는 모든 진리를 ‘순수하게 논리학에 의해서만 증명이 수행되는 진리들’과 ‘경험적 사실들에 의해서 뒷받침되어야 하는 진리들’로 분류한 다음, (보다 믿을만한) 전자의 진리들에 산수가 속하는지를 고찰하기 시작한 것이 프레게의 평생을 건 탐구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에 따르면 자신은 산수에서 추론에 의해서만, 즉 모든 특수한 것들을 초월하는 그러한 사유의 법칙들의 뒷받침만으로 얼마나 멀리 해나갈 수 있을 지에 대해서 먼저 확인해야만 했었다. 그런 가운데 프레게가 인식론의 문제에 직접적 관심을 가졌지만, 수학적 지식에 대한 관심에 국한되어 있다는 뚜렷한 한계를 갖고 있다. 수학을 넘어선 분야에 대한 프레게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수학의 위상 파악을 위한 상대적 비교의 문맥에서만 등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논리학과 의미론 분야에서의 프레게의 기여는 프레게 이후에 그 자체 독립적으로 중요한 주제가 되어왔지만 적어도 프레게에게는 수학의 정당화라는 논리주의 프로그램을 위한 수단 내지 과정이었음을 그 스스로가 분명히 밝히고 있다.
논리주의의 동기에 관해 프레게 자신은 수학적 동기와 철학적 동기를 모두 밝히고 있다. 먼저 수학적 동기에 관한 프레게의 언급을 보자.
나는 무엇보다 수학에 적용할 의도였다. 산수의 개념의 분석 및 그 정리들에 대한 보다 깊은 기초를 제시할 의도였다.(「개념기호」, 서문)
나는 수학에서 시작했다. 내게는 수학에 보다 나은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절박한 요구로 보였다. 내가 보기에 가장 절박한 필요는 이 학문에 보다 나은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었다.(「유고집」, 273/253)
당시의 수학은 어떤 문제가 있었기에 프레게는 수학에 보다 나은 기초를 마련하는 것을 가장 절박한 요구로 보았을까?
이전에 자명한 것으로 지나쳐 온 많은 것들에 대해 이제 증명이 요구되고 있다. ... 함수, 연속, 극한, 무한 등의 개념들이 보다 뚜렷이 정의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이 밝혀져 왔다. 음수, 무리수 등과 같이 과학에서 채택된 지 오래인 것들도 그것들의 신뢰성에 대한 보다 세밀한 검사를 받아야 하게 되었다. ... 이런 노선들을 따라가다 보면, 궁극적으로 수 개념에, 그리고 양의 정수에 대해 성립하는 가장 단순한 명제들에 도달하는데, 이런 명제들이 산수 전체의 기초를 형성한다.(「기초」 §§ 1-2)
그러나 여기서 그가 밝힌 수학적 동기는 그리 구체적이지는 않다. 수학의 기본 개념들에 대한 수학자들의 대답이 불만족스러움을 지적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대목에서 수학적으로 잘못된 정의가 문제를 일으키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베나세라프(P. Benacerraf)는 프레게가 산수의 부정합성에 관한 우려를 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9) 위너는 수 개념의 정의와 관련하여 산수 자체의 부정합 가능성을 우려할만한 상황이 수학에서 실제로 일어난 적이 있지는 않다고 지적한다.10)
수학적 동기의 불명확성은 자연스레 철학적 동기에로 관심을 모으게 한다.
내가 이런 탐구를 하게 된 데는 철학적인 동기도 있었다. 이 경우 산수의 진리의 본성에 대한 물음, 즉 산수의 진리는 선험적인가 후험적인가, 종합적인가 분석적인가 하는 물음이 대답되어야 한다. 이 개념들 자체는 철학에 속하지만, 내가 믿기로는 수학의 도움이 없이는 어떤 결정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기초」 § 3)
이는 산수의 분석/종합, 선험/후험 여부에 관한 문제에 대답하기 위해서 산수의 기초에 대한 탐구를 하게 되었다는 말로서, 산수의 분석성을 보이려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그것이 인식론적 작업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인식론적 작업에 종사하거나 관심이 있다는 것과 스스로의 인식론적 입장이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서, 프레게가 스스로의 고유한 인식론적 입장을 정립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별로 없다는 것이 프레게 철학에서 인식론의 부재론에 대한 주요 근거였던 것이다.
프레게는 왜 고유한 인식론적 업적을 남기는 데에 무심했을까?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첫째 이유는 그의 반심리주의적 경향이다. 적어도 로크를 좇아서 ‘인간 지식의 기원과 범위 및 확실성’에 대한 탐구를 인식론의 과제라 한다고 할 때 당시에 만연된 지식의 기원에 대한 심리학적 탐구에 대한 그의 거부감은 인식론적 과제의 일부분에 대한 명백한 외면 동기를 부여한다. 프레게의 심리주의 비판의 많은 대목은 심리주의적 고찰이 우리의 수학적 지식의 지위를 개선시키는 데에 아무 관련도 없으며, 회의주의의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심리주의 수론(數論)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수학에서 얻으려 하는 확실성을 침해한다. “가장 엄밀한 학문이 . . . 심리학으로부터 뒷받침을 얻으려 한다면 이상하게 될 것이다.”(「기초」, § 27)
게다가 심리학의 탐구 대상인 표상은 본성상 주관적이어서, 수학적 대상의 본성과 조화를 이룰 수 없다. 프레게에게서 표상이 주관적이란 말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각자는 그 자신의 의식의 내용으로서 나름대로의 표상을 갖는다. 따라서 수 2가 표상의 일종이라면 그러한 수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될 것이다. 즉, 나의 수 2는 어느 누구의 수 2와도 다를 것이다. 둘째, 표상은 표상의 소유자에게 사적(私的)인 것이다. 나의 표상이 남의 표상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비교할 수 없다. “만일 수 2가 일종의 표상이라면, 그것은 오로지 나만의 것일 것이다.”(「기초」, § 27) 프레게가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의 구별에 사용한 것이 바로 이 사밀성(私密性, privacy) 개념이다. 간주관적 비교의 근거가 없으면 주관적이다. 프레게에 따르면 표상은 이런 의미에서 주관적이다. 그러나 명백히 산수는 주관적이지 않다. 간주관적 비교가 가능하며, 산수에 관한 논쟁에서 누가 옳고 그른지 결정할 수 있다.
여기서 또다시 심리주의 비판의 두 가지 인식론적 기초를 볼 수 있다. 첫째, 심리주의가 수락된다면 수학의 진지한 정당화가 불가능하리라는 우려가 심리주의 비판의 명백한 동기다. 수가 표상이라면 각자는 남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나름의 산수 체계를 가질 것이다. 따라서 수학에 대한 어떠한 정당화도 자기에게 알려진 체계의 정당화일 따름이요, 일반적으로 수락가능한 논증이 될 수 없다. 이점이 프레게로 하여금 로크나 버클리처럼 주관적 표상을 지식의 가능한 원천으로 보려는 철학자들과 근본적으로 구분시키는 점이다. 프레게에게 내적 확실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반(反)회의주의 논증은 모든 이성적 존재에게 똑같은 비중을 가지고, 개인들의 의식의 사적인 특성과 독립적임이 보여져야 효과적이다.
프레게의 논증은 두 번째의 전혀 다른 의미에서 인식론적이다. 이 논증은 표상의 본성에 관한 전제 및 (우리 자신 및 타인의) 주관적 경험에 관한 지식의 본성에 대한 전제에 입각해서만 유효하다. 프레게는 우리가 사실 자신의 내적 경험에 사적으로 접근하며 타자의 경험에는 전혀 접근할 수 없다고 가정한다. 수학에 빗대어 말하자면 우리가 산수의 근본법칙을 알게 되는 방식 또한 사람마다 상이한 심적 과정에 따르는 것인데, “논리학의 탐구에서 그에 관해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다”(「유고집」, 157)는 말은 논리학자는 논리법칙을 승인하게 된 ‘신비로운’ 과정의 본성을 탐구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해석된다. 그로서는 그 법칙들을 승인할 수 있고 또 승인하고 있다는 점만으로 충분하다고 본 것 같다.
흔히 알려져 있듯이 프레게의 최대 적수는 아마도 심리주의일 것이다. 그러나 프레게가 경계한 입장은 이것만은 아니다. 심리주의 못지 않게 수학적 경험론도 프레게의 주된 비판 대상이다. 수학적 경험론은 밀의 「논리학 체계」에서 진지하게 다루는 이론이다. 밀에 따르면 1+2=3과 같은 수식(數式)은 수 정의(이 경우 수 3의 정의)로서 뿐 아니라 경험적 사실들의 주장에 기여한다. 이를테면 한 단위와 두 단위로 보이는 두 구분되는 모음체(collection)들로 쪼갤 수 있는 대상들의 모음체들이 우리에게 경험적으로 주어짐을 주장하는 데에 기여한다. 산수 명제들이 우리에게 필연적 참으로 부각되는 이유는 이 명제들이 논박된 적도 전혀 없고, 경험에 의해 그토록 자주 예화되기 때문이다.
산수를 연역과학의 유형으로 만드는 것은 “같은 것들의 합은 같다” 또는 (같은 원리를 보다 덜 친숙하지만 보다 더 특징적인 언어로 나타내자면) ‘부분들로 이루어진 것은 그 부분들의 부분들로 이루어진다’처럼 너무도 포괄적인 법칙의 다행스런 적용가능성이다. . . 그리고 모든 산수적 조작은 이 법칙 또는 이 법칙으로부터 연역될 수 있는 다른 법칙들의 응용이다. 이점이 모든 계산에 대한 우리의 담보이다. 우리는 5 더하기 2가 7과 같음을 그 수들에 대한 정의가 결부된 귀납법칙의 증거 위에서 믿고 있다.11)
이런 견해에 대한 프레게의 반론에 따르면, 이는 세계의 대상들의 본성에 관한 우연적 경험적 사실들에 산수가 의존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예컨대 한 방정식의 세 근이 존재함과 같이 수가 비경험적 상황들에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그에 대응하는 경험적 모음체가 전혀 없을 수도 있는 매우 큰 수의 존재를 위협할 것이라는 점 및 수 0에 대응하는 관찰가능한 모음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된다(「기초」, § 7) 칸트에 따라서, 프레게는 경험적 사실들이 없이는 우리는 결코 수학적 진리를 인식할 수 없게 될 것임을 인정하지만, 그러나 이것이 곧 산수가 그 정당화를 경험적 진리들에 의존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본다.(「기초」, § 7) 일반적으로, 수학적 경험주의는 수학적 명제 그 자체와 그 명제들의 경험적 상황들에 대한 적용간의 혼동으로부터 기인한다. 덧셈 자체는 물리적 조작이 아니라 어떤 물리적 조작을 반영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기초」, § 8)
프레게는 수학적 진리와 경험적 진리는 상호 관계가 있지만 그 관계는 수학적 경험론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라고 한다. 경험과학에서의 추론은 실제로 수학적 진리의 선행적인 확립에 의존한다. 경험과학은 귀납에 의해 진행된다. 경험적 증거들에 의해서 가설들이 다소간 개연적인 것으로 된다. 그러나 만일 귀납이 우리의 기대에 관한 심리학적 사실의 지위보다도 더 높은 지위를 허용받는다면 경험적 지지의 관계는 수학적 확률 이론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 그러나 확률 이론이란 어떤 기본 산수 진리를 확립해야만 가능하다.
독일에서의 자연주의는 경험론의 극단으로 전개되어 갔기 때문에 자연히 프레게의 표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주의는 19세기 중반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경험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철학은 물론 논리학, 수학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이 있었다.12) 철학적으로 자연주의자들은 일종의 물질 현상(두뇌활동의 산물)으로서의 감각에 기초한 극단적 경험론의 입장을 수용하면서, 선험적 추리를 바탕으로 하는 전통철학을 거부한다. 이들에 따르면 개념이란 감각 활동에 대한 반성일 뿐, 본유관념이란 없다. 수학의 개념조차도 경험에 뿌리를 둔 것으로 간주되며, 사유법칙들은 자연 세계의 기계법칙(역학법칙)과 동일시된다. 논리법칙은 인간의 정신 작용의 경험적 일반화에 불과하고, 정신 작용은 다시 생리학 개념으로 해석된다. 이 자연주의는 수학, 논리학 해석에 큰 영향을 주었다. 논리학, 수학에서의 자연주의에도 여러 분파가 있지만 그 공통 목적은 자연과학의 승인을 못 받은 어떤 ‘초험적’ 요소에의 의존도 피하자는 것이었다. 프레게 당시 심리학은 자연과학으로 간주되었는데, 일찍이 칸트 등은 논리학이 규범과학으로서 사유의 정확성 여부에 답할 수는 있지만 실제 사유가 일어나는 방식을 기술해주지는 않는다고 주장한 반면, 자연주의에 경도된 사람들은 논리법칙을 단지 사유에 대한 기술(記述)법칙일 뿐이라고 가정하는 경향이었다.
프레게는 왜 자연주의에 반대했는가? 프레게에 따르면 자연주의는 궁극적으로 회의주의와 연결되기 쉽다는 것이다. 흄 이래로 회의주의 논증들은 자연과학의 가능성에 대해 가장 자주 문제를 제기해왔다. 유한 수의 관찰에 기초하여 무제한적 일반성의 가정을 이용하는 과학은 특히 회의론자에게 의심스럽게 보였다. 그런데 논리법칙들이 자연주의자들의 말대로 순수 기술적(記述的) 내용을 갖는다면, 인식론적으로 말해, 이 법칙들도 자연과학의 가설들이나 마찬가지여야 한다. 논리법칙들은 기껏해야 사유과정에 대한 경험적 증거로부터의 귀납적 지지를 받을 따름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개연성만 보장할 것이다. 그 경우 수학을 논리학에 기초지우려는 시도는 바람직한 뜻에서 수학을 정당화시킬 수는 결코 없다. 귀납에 대한 흄의 회의는 수학과 논리학에도 적용될 수 밖에 없다.
3.
심리주의, 경험론, 자연주의, 회의주의 등에 대한 프레게의 반론은 단편적이나마 어느 정도 프레게 철학에서의 인식론적 갈증을 해소해준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경쟁 이론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인식론에 대한 그 자신의 고유한 기여라고 보기에는 미흡한 감이 있다. 키처는 이에 대해 프레게의 인식론적 입장이 거시적으로는 대체로 칸트의 인식론적 틀에 입각해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13) 다시 말해 인식론 전반에 관한 한 인간 지식에 관해 칸트가 확립한 일반적인 도식을 프레게가 대부분 수용하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프레게에 대한 칸트의 영향력은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프레게의 저술에서 프레게가 비판을 하는 대목에서조차도 존경심과 아울러 비판의 조심스러움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인물은 칸트가 거의 유일할 정도다.
그러나 프레게는 칸트를 그대로 따를 수만은 없었던 칸트 인식론에서의 미묘한 긴장 관계를 통해 칸트와 큰 틀에서는 비슷하지만 세부적으로, 특히 수학적 지식에 관해서 만큼은 자기의 고유한 인식론적 색깔을 찾게 된다. 그것은 바로 분석/종합, 선험/후험에 관하여 칸트가 내린 정의에 대해 프레게가 다음과 같이 문제를 삼는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판단의 내용에 어떻게 도달하느냐와 그 판단의 주장에 대한 정당화는 어떻게 도출되느냐는 구분해야할 문제다.
내 생각으로는 선험과 후험의 구분, 종합과 분석의 구분은 판단의 내용이 아니라, 판단을 하는 정당화과 관련된 것이다. . . . (내가 말하는 뜻에서) 명제가 분석적이니 종합적이니 하는 말은 우리 의식 속에서 그 명제의 내용을 형성시켜 주는 심리, 생리, 물리 조건에 관한 판단이 아니며, ... 그 명제를 참이라고 주장하게 되는 정당화의 궁극적 토대에 관한 판단이다.
이것은 그 문제가 심리학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나 있으며, 관련된 진리가 수학적 진리라면 수학의 영역에 귀속됨을 의미한다. 사실상 문제는 명제의 증명을 찾는 문제가 되며, 그에 따라가다 보면 원초적 참에로 소급되는 문제가 된다. 이 과정의 수행에서 만일 증명이 일반적 논리법칙과 정의에만 따른다면 그 참은 분석적 참이 된다. ... 그렇지 않고 일반적 논리적 성격을 띠지 않은 어떤 특수과학의 영역에 속하는 참을 이용해야만 증명이 된다면 그런 명제는 종합적 명제가 된다. 한 진리가 후험적 진리이려면, 사실들, 즉 증명될 수도 없고, 일반적이지도 않은 진리들에 대한 호소를 포함하지 않고서는 그에 대한 증명의 구성은 불가능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특정의 대상들에 관한 주장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증명이 일반법칙들로부터만 전적으로 도출될 수 있다면 일반법칙들은 그 자체 증명을 필요로 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으므로, 그런 진리는 선험적이다.(「기초」, § 3)
이 대목의 주석에서 프레게는 분석/종합, 선험/후험 판단이라는 “이러한 용어들에 새로운 뜻을 할당하려는 게 아니라, 이전의 저술가들, 특히 칸트가 그것들로 의미한 것을 정확히 진술”하려는 것이라고 겸손되게 주장하지만 사실 이 차이는 의미 있는 차이라 할 수 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프레게와 칸트의 긴장 관계는 사실상 「개념기호」에까지 소급된다. 프레게는 이미 복합 일반화(multiple generalization)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논리학의 개발을 통해 전통적인 주-술 논리학에 입각하여 판단의 내용에 따라 분석/종합 구분을 시도하는 칸트의 기준의 포괄성에 의문을 제기할 여지를 열어 놓았다. 분석/종합의 구분 자체는 유효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프레게는 칸트가 분석/종합 구분의 또 다른 기준으로 제시하는 ‘그 판단을 부정하면 모순에 빠진다’는 대목을 판단의 정당화에 입각한 구분 기준으로서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여기서도 (사유에 대한 전통적으로 인정되어 온 세 법칙 가운데 하나인) 모순율에 입각한 편협한 정의 대신에 그의 새로운 논리학에 걸맞도록 증명이 일반적 논리법칙과 정의에만 따른다면 분석판단이요, 그렇지 않고 일반적 논리적 성격을 띠지 않은 어떤 특수과학의 영역에 속하는 참을 이용해야만 증명이 된다면 종합적인 것이라고 새롭게 정의를 내린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논리법칙이란 “모든 특수한 것들을 초월하는 사유법칙”(「개념기호」, 서문)이며 “사유가능한 모든 것”(「기초」, § 14)에 대해 타당한 것이다. 따라서 종합판단의 증명은 “대상들의 특성들”(「개념기호」, 서문)을 가리키는 전제들에 의존한다. 종합판단은 “특수 과학에 속하는”(「기초」, § 14) 지식 주장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개념기호」 서문에는 “우리는 증명을 필요로 하는 모든 진리들을 두 종류로 나눈다. 첫째 종류에 대한 증명은 순수 논리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반면, 둘째 종류에 대한 증명은 경험적 사실들의 뒷받침을 받아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종합판단을 경험판단과 동일시하지만,14) 「기초」는 종합판단을 다시 나누고자 선험/후험 구분도 이용한다. 후험판단은 “사실들, 즉 증명될 수 없고 일반적이지 않은 진리들에의 호소를 그 증명에 요구한다. 종합판단은 특정 대상들에 관한 주장을 포함하기 때문이다”(「기초」, § 3).
프레게는 선험종합판단을 명시하진 않았지만, 그의 선험판단 설명이 이런 판단에 대한 해명을 제공해준다. 선험판단이란 “그 자체 증명을 필요로 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는 일반법칙들로부터만 전적으로 도출될 수 있는” 판단이다(「기초」, § 3). 이 법칙들은 일반적 논리법칙은 아니나 “특정 과학의 영역”에 대해서만, 예컨대 기하학의 경우, 모든 “공간적으로 직관가능한” 것에 대해서만 타당한 법칙들이다(「기초」, § 14). 기하학 지식의 제한된 성격은, 논리적 모순 없이 기하학의 공리 중 하나의 부정을 가정(postulate)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의해 보일 수 있다. 우리는 공간적으로 주어진 것에 대해 성립하는 공리들에 대한 대안들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개념적 사유”에 대해서는 대안들을 생각할 수 없다(「기초」, § 3).
프레게의 분석/종합 판단 구분 및 선험/후험 판단 구분 이용방식은 산수/기하 구분 및 기하/자연과학 구분을 허용한다. 산수/기하 차이는 산수의 분석성 때문이요, 기하/자연과학 차이는 기하의 선험성 때문이다. 이는 칸트의 분류와 형식상으로도 내용상으로도 다르다. 양자는 산수와 기하가 선험적임은 동의하지만, 설명이 다르다. 프레게에 따르면 두 학문의 선험성은 기하나 산수의 정리들의 증명에 요구되는 종류의 전제들, 즉 “그 자체 증명을 필요로 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는 일반법칙들”로부터 도출된다. 바로 이 일반법칙들의 특성이 이런 유형의 지식의 선험성을 설명해주며, 또 이에 따르면, 기하와 산수 외에 다른 종류의 선험적 지식이 있을 수 있다고 여길 수 있다. 일반적 논리법칙들에 대해, 프레게는 이들이 “증명을 필요로 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는 주장을 지식 일반의 필요조건들로서의 이들의 역할에 입각해서 정당화한다(「개념기호」, 서문). 따라서 선험/후험 구분은 어떤 종류의 전제들이 정리 증명에 요구되느냐의 문제에 관련되며, 분석/종합 구분은 선험적 지식에 요구되는 일반법칙들에 대한 하위 구분에 관련되는 것으로, 이는 이 법칙들의 타당성의 영역 또는 외연에 관한 구분이다.
칸트가 산수를 선험종합적이라 한 이유는 산수의 근본법칙의 영역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지식은 대상에 관한 지식이며 대상은 직관 없이 주어질 수 없다는 칸트 가정의 한 귀결인 지식 일반의 종합적 성격과 관련된다. 산수도 지식이라면, 산수는 종합적이어야 한다. 칸트가 기하와 산수를 선험적 지식으로 간주한 이유를 보면 프레게와 칸트의 차이가 더 분명해진다. 칸트에 따르면, 이는, 기하와 산수 모두 그들의 개념들의 종합적 연결들의 정당화에 모종의 순수 직관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선험적 지식에 관한 한, 프레게의 칸트 용어법의 피상적 수용 때문에 감춰진 두 사람간의 심각한 불일치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경험적 지식은 사정이 다르다. 후험적 진리는 그것을 아는 데 요구되는 필요조건인 “사실들에의 호소”에 의해 설명된다. 사실들은 “증명될 수도 없고 일반적이지도 않은 진리들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특정 대상들에 관한 주장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기초」 § 3). 증명될 수 없으므로, 이들은 참인 전제들로부터 추론될 수도 없고, 그 정당화는 논리학과 무관하다(「유고집」, 3/3, 「유고집」, 190/175). 프레게는 “후험 진리”의 정당화 방법은 언급하지 않는다.
4.
생애의 대부분 동안 프레게의 관심은 온통 논리주의의 실현에 집중되었다. 왜 논리주의 프로그램을 기획했는지에 대한 수학적 동기와 철학적 동기도 앞서 잠깐 살펴본 바 있다. 그러나 일부 해석가들은 그가 밝힌 두 가지 동기들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다. 논리주의의 동기에 관한 논쟁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예컨대 제션(Robin Jeshion) 같은 이는 제3의 동기로서 유클리드적 동기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녀에 따르면 수학의 원초적 진리들이 토대론적으로 안정되어 있어서 다른 어떤 진리들에도 근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증명을 필요로 하지도 않아야 한다는 점과 그것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참임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필요충분 조건이 된다는 점에서 자명해야 한다는 속성을 갖추고 있음을 보이고자 했다는 것이다. 즉 산수의 많은 명제들이 자명하지 않음을 보고서 그것들을 증명해줄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는 것이다.15) 제션은 물론 다른 두 가지 동기와 자신이 제시한 동기가 양립가능함을 인정하며, 또한 위너는 제션의 자명성 개념이 프레게의 원문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반발하지만16), 어쨌든 자명성 개념은 논리주의 프로그램에서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또다른 인식론적 개념으로서 프레게의 인식론적 동기들이 전적으로 칸트식 인식론에 얽매이지 않았음을, 즉 전적으로 철학적이라기보다는 철학적이면서 수학적임을 보여주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겠다.
필자도 이와는 다르지만 전통적으로 인식론적 동기에서였다고는 해석되지 않았던 프레게의 작업에서 또다른 인식론적 동기를 찾아볼 수 있다는 논변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전형적으로 언어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했다고 여겨지던 뜻과 지시체에 관한 프레게의 구분의 동기가 수리철학 및 인식론적 동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뜻과 지시체에 관하여”라는 유명한 1892년에 나온 논문에서부터가 아니라 1893년에 발간된 「근본법칙」 서문의 다음 구절에서부터 논의의 실마리를 풀어가고자 한다.
... 그토록 오랜 후에야 나온 한 이유는 ... 개념기호 상의 내적 변화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함수의 치역의 도입이 결정적 진보며, 덕분에 우리는 훨씬 더 큰 탄력성을 얻는다. ... 그러나 치역 또한 원칙적으로 극히 중요하다; 사실상, 나는 수 자체를 어떤 한 개념의 외연이라고 정의하며, 개념의 외연은 나의 정의들에 의하면 치역이다. 그러니까 그것 없이는 결코 해나갈 수 없다. ... 전에는 나는 그 외적 형식이 서술문인 것에서 두 성분을 구분했다: 1) 참의 승인, 2) 참이라고 승인되는 내용. 이 내용을 ‘판단이 될 수 있는 내용’이라고 불렀다. 이 후자가 이제, 기호의 뜻과 지시체 간의 구분의 귀결로서 내가 ‘사유’ 및 ‘진리치’라 하는 것으로 쪼개졌다. 이 경우 문장의 뜻은 사유며 그 지시체는 진리치다. 게다가 이는 그 진리치가 das Wahre임의 승인이다. 즉, 나는 두 진리치를 구분한다: 참(das Wahre)과 거짓(das Falsche). ... 치역들의 도입에 의해 모든 것이 얼마나 더 단순해지고 더 뚜렷해졌는지는 이 책의 상세한 숙지만이 보여줄 수 있다.(「근본법칙」, IX-X/5-7)
이 대목은 「기초」 이후에 「근본법칙」의 발간이 지연된 주된 사유의 하나로서 지난 수 년간 성숙된 자신의 이론적 변화에 대한 설명을 하는 문맥이다. 위의 인용구절을 자세히 음미해보자. 함수의 치역의 도입이 결정적이며 치역이 극히 중요함을 강조한 후, 뜻/지시체 구분에 따라서, 판단이 될 수 있는 내용을 다시 ‘사유’와 ‘진리치’로 구분했음을 소개하고, 다시 치역 도입의 장점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짧은 글에서 치역의 중요성이 세 번이나 강조된 점은, 그에 앞서 “오직 치역들에 관한 근본법칙(치역 공리, 즉 제5 공리)에 대해서만 논란이 생길 수 있음”(VII/3-4)을 인정한 것과 대비해 볼 때, 그가 「기초」 이후 「근본법칙」의 출간시까지 이 치역에 관한 문제로 얼마나 고심을 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울러 치역에 관한 강조를 거듭하는 도중에 뜻과 지시의 구분에 따른 의의를 삽입한 대목은 이 치역에 관한 고민거리를 뜻과 지시의 구분 이론에 의존하여 해결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그래서 여기서는 도대체 치역이란 무엇이며 「근본법칙」의 출간을 지연시킨 치역에 관한 고민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데에 뜻/지시체 이론이 어떤 기여를 하는지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기초」에서는 수에 관한 몇 가지 가능한 정의들을 검토한 끝에 결국 수에 대한 문맥적 정의를 포기하고 외연 개념을 도입해서 “개념 F에 속하는 수는 ‘개념 F와 같은 수(gleichzahlig)인’ 개념의 외연이다”라는 명시적 정의를 선택한다. 그렇다면 개념의 외연이란 무엇인가? 「기초」에서는 “나는 개념의 외연이 무엇인지 알려져 있다고 가정한다”(§ 68, 각주)고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이 개념의 명료화 여부가 자신의 논리주의의 성패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인정했음은 앞서 인용한 「근본법칙」 서론에서의 “치역 또한 원칙적으로 극히 중요하다; 사실상, 나는 수 자체를 어떤 한 개념의 외연이라고 정의하며, 개념의 외연은 나의 정의들에 의하면 치역이다”는 구절이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기초」에서 처음 도입된 개념의 외연에 대한 논리적 정당화 문제는 「기초」 이후 프레게를 고민하게 한 최대의 숙제였음에 틀림없지만 그는 이점에 대해 만족할만한 해명이 불가능하다고 이미 “함수와 개념”에서 결론을 내렸다.
함수값들간의 같음의 일반성을 하나의 같음, 즉 치역들간의 같음으로 간주할 가능성은, 내 보기엔, 증명가능하지 않고, 논리적 근본법칙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 같다.(「번역선」, 26)
이는 「근본법칙」 서론에서도 반복된다.
“치역들에 관한 나의 근본법칙 (V)에 대해서만 논란이 생길 수 있는데, ... . 나는 그것이 순수 논리적이라고 간주한다. 어쨌든 이리하여 어디서 결정이 내려져야 할지 그 지점은 지적되었다.”(「근본법칙」, VII/3-4)
증명불가능함으로부터 곧바로 논리적 원초성을 주장한 셈인데, 왜 하필 ‘논리적’ 원초성이란 말인가? 어떤 것이 논리법칙이냐 아니냐가 사유가능한 모든 대상에 적용가능한 것을 지칭하는 용어로 되었느냐 아니냐에 따르는 것이라면, 「기초」에서 수를 정의할 때 등장시켰다가 이른바 시이저 문제를 핑계로 포기했던 흄의 원리 또한 치역공리에 비해 결코 그 적용범위가 좁지 않다.17) 그래서 필자의 추측은 「근본법칙」 당시에는 ‘사유가능한 모든 것에 적용가능한’이라는 기준을 논리적인 것의 기준으로 삼는 것을 포기했으리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하의 법칙도 논리적이라고 간주되지는 않는다. 대신 “경험이나 직관으로부터 증명의 근거를 빌릴 필요가 없는”(「근본법칙」, § 0) 것이면 논리적이라는 보다 약화된 기준으로 후퇴했다고 본다.
역설 발견 직후인 1902년 여름 러셀에게 보낸 다음의 편지 구절은 그와 같은 심증을 더욱 굳혀준다.
나 자신 치역의 승인과 따라서 집합의 승인을 오랫동안 주저했다; 그러나 나는 산수를 논리적 기초 위에 두는 다른 어떤 가능성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문제는, 논리적 대상들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다. 또 나는 이것 외에는 이에 대한 어떤 대답도 찾지 못했다. 우리는 그것들을 개념의 외연이라고 이해한다 .... 그와 연관된 난점들이 있음을 나는 항상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다른 길이 있는가? (「서한집」, 223/140-1)
그렇지만 아무리 약한 의미에서의 논리주의라 하더라도 치역 공리가 왜 논리 법칙이어야 하는가의 문제는 여전히 남을 것이다. 치역 공리가 “경험이나 직관으로부터 증명의 근거를 빌릴 필요가 없는” 논리 법칙임은 어디에서 보장될 것인가? 필자의 생각에 프레게는 치역 공리 양변의 뜻이 같음에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근본법칙」에서 치역공리는 논리적 공리(제5 공리)로 다시 나온다. 동치관계를 동일성 진술로 간주하는 그의 관행에 따라, 다음과 같이 진술된다:
(ẋf(x)=ẏg(y)) = ∀z(f(z)=g(z)) (「근본법칙」 제1권, 105)
이 공리는 적어도 그에게는 산수의 도출에 본질적인 것이었다. 또 그의 논리주의 계획이란 산수가 논리학의 일부일 뿐임을 보이는 것이었으므로, 이 공리를 도대체 논리적 원리로 볼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해명은 불가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치역 공리를 포함하여 모든 동일성 진술들은 결국 a=a 또는 a=b 라는 두 형식 가운데 하나를 취한다. 전자는 물론 선험적으로 타당한 동시에 분석적이다. 그러나 치역 공리는 후자의 형식이다. 초기의 「개념기호」 시절만 하더라도 a=b 형식의 동일성 진술은 종합적이라고 보았다.(「개념기호」 § 8) 만일 치역 공리가 논리적(그리고 분석적) 진리로서 나와야 한다면 동일성 진술에 대한 새로운 해명과 새로운 의미 해명이 요구된다.
“함수와 개념”에서는 ẋf(x)=ẏg(y) 형식의 진술로부터 ∀x(f(x)=g(x)) 형식의 진술로의 단계를 고찰하면서, 후자가 “동일한 뜻을 상이한 방식으로 표현한다”고 말한다(「번역선」, p. 27). 바로 이점에서 새로운 전문 용어로서의 뜻 개념이 1892년의 논문 “뜻과 지시체에 관하여”보다 1년 앞서서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다. 이에 대해 더미트(Michael Dummett)는 프레게가 치역 공리의 양변이 같은 뜻을 갖는다는 “함수와 개념”에서의 주장을 결코 다시 반복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며,18) 「근본법칙」 어디에도, 치역 공리의 양변이 같은 뜻을 표현함을 주장하지 ‘않았음’에 주목하여 프레게가 은연중 마음이 변한 듯하다고 추정한다.19)
그러나 사이먼스(Peter Simons)는 프레게가 치역 공리의 양변이 같은 뜻을 갖는다고 생각했다는 한 가지 간접적 징후를 「근본법칙」 § 10에서의 이 공리에 대한 논의에서 찾는다.20) 프레게는 치역 공리가, 언제 치역들이 동일한지만 말하고, 그것들이 어떤 대상들인지는 명시적으로 단언하지 않으므로, 그 지시를 저절로 고정시키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를 대상들의 임의의 변환 X의 고찰에 의해 보이고, 또 이 역시 치역 공리를 보존함을 보인다. 이 논증의 도입에서, 그는 X가 모든 대상들의 全單射(bijection)이므로, ‘X(εφ(ε))=X(άψ(α))’는 ‘(x)(φ(x)=ψ(x))’와 gleichbedeutend라 말하면서, 그러나 “그것이 그 뜻이 동일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각주를 첨부한다(「근본법칙」 제1권, 46주). 이 각주는 주목할만 하다. 「근본법칙」에서 gleichbedeutend란 단어의 출현은 이 대목이 유일하지도 않을뿐더러 최초이지도 않다. 그런데 왜 이 대목에서만 이런 각주가 첨부되는가? 자연스런 사고의 흐름은 다른 대목에서의 gleichbedeutend의 용법은 그 뜻도 동일함을 함축한다는 쪽으로 유도된다.
슬루가도 더미트의 주장에 회의를 표명하면서 「근본법칙」 § 3의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21)
나는 “함수 f(x)가 함수 g(x)와 같은 치역을 갖는다”는 말을 “함수 f(x)와 g(x)가 동일한 논항에 대해 같은 값을 갖는다”는 말과 gleichbedeutend로서 사용한다.
여기서 번역되지 않은 채 남겨둔 단어는, 첫 눈에 보기에는, “같은 것을 지칭함” 또는 “같은 것을 나타냄”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슬루가는 같은 단어에 대한 「근본법칙」 § 27에서의 용법에서 이 해석에 대한 반례를 찾는다:
우리는 이름을 정의에 의해 도입할 때 그 이름이 친숙한 기호들로 이루어진 어떤 이름과 같은 뜻과 같은 지시를 갖는다고 약정함으로써 도입한다. 그 때문에 그 새 기호는 그것을 설명하는 데에 사용되는 것과 gleichbedeutend가 된다.(「근본법칙」 제1권, 82-3)
여기서 명백히 단어 “gleichbedeutend”는 단지 “같은 지시를 가짐” 뿐 아니라 “같은 뜻임”도 의미한다. 또 만일 후자의 번역도 옳다면, 프레게는 「근본법칙」 당시에도 여전히 치역 공리의 양변이 같은 뜻을 갖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해석을 더미트가 인정하지 않고 프레게가 은연중 마음이 변한 듯하다고 추정한 근거는, 첫째, 뜻과 지시에 관한 「근본법칙」 § 2의 예비 설명 및 「근본법칙」의 꼼꼼한 용어법으로 보아 프레게가 ‘gleichbedeutend’를 애매한 용법으로 쓸 리가 없다는 점과, 둘째, 만일 프레게가 정말 두 뜻이 일치한다고 생각했다면, 만일 두 문장이 같은 사유를 표현한다면 이는 각 문장이 표현한 사유를 파악한 누구에게나 즉각적으로 명백할 것이어서 프레게가 치역 공리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근본법칙」 서문에서 치역 공리를 둘러싼 논쟁이 있을 수 있다(vii)고 말하고, 「근본법칙」 제2권 부록에는, 이 공리가 논리법칙으로서는 다른 공리보다 덜 명백함을 결코 감출 수 없었다고 말한 점을 들고 있다.
필자의 생각에 더미트의 반론 근거들은 둘 다 그리 결정적이지 못한 것 같다. 우선 둘째 근거에 대해서 보자면, 「근본법칙」 서문에서 치역 공리에 대해 “나는 그것을 순수 논리적이라고 간주한다(Ich halte es für rein logisch)”는 표현 및 前後의 문맥과 “함수와 개념”에서 치역 공리에 상응하는 명제에 대해 “내 보기엔(wie mir scheinen), ... 논리적 근본법칙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 같다”는 표현은 둘 다 확신에 찬 어조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미트 생각처럼 이 기간 사이에 마음을 바꾸었다기보다 이미 “함수와 개념” 당시부터 그러한 우려를 간직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것이다. 사실 “함수와 개념”(1891년 1월 9일字 강연)과 「근본법칙」 제1권의 출간(1893년 7월字 서문) 사이의 기간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긴 시간일 수도 있겠지만, 「기초」 이후 약 5년간의 연구 성과 발표 공백기를 거쳐 위의 두 저작을 포함한 7 내지 10 편의 저술들22)이 연속적으로 쏟아져 나왔음을 고려해보면 “함수와 개념”과 「근본법칙」 제1권은 사실상 같은 기간에 연구된 성과가 순차적으로 발표된 것일 뿐 견해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더미트가 제시한 첫째 근거 또한 필자가 보기에는 편파적인 듯하다. 프레게의 꼼꼼한 용어법이 왜 「근본법칙」에만 적용되고 “함수와 개념”에는 적용되지 말아야 하는가? 이 강연에서 이듬 해에 출간될 논문 “뜻과 지시에 관하여”에 대한 예고와 더불어 이제는 너무도 친숙해진 “샛별”-“개밥바라기”의 例를 비롯한 여러 例를 통하여 프레게 특유의 전문적 구분인 뜻과 지시에 관한 이론이 공식적으로 최초로 또한 상세하면서도 정확히 소개되어 있음은 “함수와 개념”에서의 용어법이 초기 저술들에서의 Sinn과 Bedeutung의 혼용의 잔재라는 더미트 주장의 설득력을 훨씬 떨어뜨린다.
또 설령 궁극적으로 그가 이점에 관하여 마음을 바꾸었다 해도, 그가 당초에 뜻 개념을 왜 치역 공리가 종합적 진리가 아닌지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뜻/지시체 구분을 적용해서 a=b 형식의 동일성 진술의 양변이 뜻이 다르다면 그 분석성에 대한 의심을 쉽게 떨쳐버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양변의 뜻이 같다면 그것은 a=a 형식의 동일성 진술에 버금가는 분석적 지위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그 경우 a=a와 a=b의 차이가 무엇인지가 모호해질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치역 공리에 동일률 못지 않은 분석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은, 동일률만으로는 아무 산수 진리도 도출될 수 없는 마당에 산수 진리들이 분석적임을 주장하는 프레게로서는 불가피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위에 인용한 「근본법칙」 서론에서의 치역 공리에 대한 우려와 함께, 그것은 “사람들이 개념의 외연에 관해 말할 때에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요, 자신은 그것을 “순수 논리적이라고 간주”한다고 표현한 것은, 모순의 발생 가능성과 같은 문제점 외에도 이 공리의 분석성 여부에 관한 우려를 조금이라도 불식시키려는 심중의 일단을 내비친 것이라 여겨진다.
일단 뜻/지시체 구분의 동기가 이처럼 좁게는 치역 공리의 분석성 문제에 넓게는 산수 지식의 정당화 작업에 있었다고 이해하면, 뜻/지시체 이론의 각론에 대해서도 훨씬 조화로운 설명이 가능하다. 흔히는 현대 의미론의 발원지가 논문 “뜻과 지시체에 관하여”라고 말한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자칫 프레게가 이 논문에서 자연언어에 대한 체계적 의미론의 구축을 시도한 것으로 해석되기 쉽다. 사실 그런 해석이 무리가 아닐 정도로 이 논문은 “샛별 = 개밥바라기”를 비롯한 여러 일상언어의 예를 들어서 뜻-지시체 이론을 소개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 논문은 매우 제한된 목적을 갖고 있을 따름이다. 이 논문에서는 모든 언어 표현이 아닌 고유명사의 범주에 드는 언어 표현(특히, 주로 문장)에 대해서만, 그것도 고유명사의 뜻/지시체 구분의 당위성 문제에만 논지가 집중되어 있다. 고유명사는 그리고 고유명사만이 대상을 지시한다. 프레게에 따르면 수는 대상의 범주로 분류된다. 또 대상으로서의 수 개념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수적 용어가 포함된 수 진술의 의미를 명료히 해주어야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치역 개념이 도입되었다. 이제 이 치역 개념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치역공리의 의미를 밝혀주어야 한다. 치역공리는 동일성 명제의 형식을 띠고 있다. 특히 치역공리를 통해 프레게 산수 체계에 나오는 모든 치역 이름들이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지를 확정적으로 밝혀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근본법칙」에서는 이른바 변환논증을 통해 치역 이름들을 참 또는 거짓이라는 진리치의 하나와 동일시되도록 고정시키는 약정을 부여했다. 그런 점에서 진리치들도 대상의 범주에 속하게 된다. 프레게가 말하는 고유명사의 범주에 문장도 포함되며 문장은 뜻 뿐 아니라 지시체도 갖고 있으며 문장의 지시체는 곧 진리치라는 얼핏 상식에 반하는 듯한 주장들도 이런 수리철학적 배경을 염두에 두면 훨씬 납득하기 쉬울 것이다.
프레게는 평생동안 자연언어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취했다. 한편으로는 자연언어의 구제불가능한 불완전함에 대한 경멸적 태도를 보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주장이 옳음을 보여주는 직관적 증거를 자연언어에서 찾는다. 그가 고안한 인공언어인 개념기호가 자연언어보다 우월함을 자랑하면서도 엄밀한 학문의 세계 이외에서도 개념기호가 자연언어를 대치해야 할 것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개념기호 자체가 수학의 엄밀화, 정당화라는 지극히 한정된 동기에서 고안된 것이기 때문이다. “뜻과 지시체에 관하여”에서의 고유명사의 뜻과 지시체의 구분의 당위성 논의 또한 이런 제한된 목적을 염두에 두고 이해할 때만 가장 정합적으로 설명된다. 이 이론을 자연언어에로 확대 적용할 때 생기는 여러 문제점들의 해결은 프레게의 부담이 아니다. 그로서는 이 이론이 치역 및 치역공리의 정당화에 얼마나 기여하느냐가 보다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결과적으로 그의 체계가 모순에 빠지게 됨을 미리 예견했더라면 과연 그가 뜻-지시체 구분 이론이 탄생하기나 했을까는 또다른 흥미로운 문제거리일 수도 있다.
물론 뜻-지시체 구분 이론 자체가 프레게 인식론의 일단을 보여준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의미론이나 논리학에 가려져서 인식론적 계기가 과소평가되어 그의 철학의 온전한 이해에 방해가 됨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으로 인식론적 동기에서 비롯된 문제를 전통적인 인식론적 방식으로 해결해가기보다 (아마도 심리주의 등을 피하기 위해서) 언어와 논리의 문제로 풀어가는 전형적인 언어적 전회를 보여주는 이론이기도 하다. 후자의 방식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프레게 철학의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전자의 인식론적 시각에서의 관찰도 그에 못지 않게 필요하다는 것이 이 절에서의 필자의 소견이자 바램이다.
5.
프레게의 필생의 과제들은 주로 인식론적 동기에서 출발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업적들의 목록에 인식론 분야의 기여가 빈약한 데에는, 심리주의적 인식론에 개입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 수학의 정당화 이외의 분야에 대한 관심의 결여, 칸트의 인식론적 틀에 대한 폭넓은 수용을 전제로 한 논의 등의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빈약성은 사실 상대적인 것이다. 칸트의 분석/종합 구분 기준에 대한 프레게의 수정은 그의 다른 업적에 비해 두드러져 보이지 않을 뿐이지 그 자체만으로도 인식론의 역사에 획을 긋는 의의를 지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흔히 프레게의 인식론이나 수리철학과 무관하게 논의되어 오던 그의 대표적 업적 중 하나인 뜻과 지시체에 관한 이론조차도 실은 그의 수리철학 전개 과정의 산물이요 인식론적 문제 의식과 깊이 결부되어 있다는 점에 대한 상기다. 아무리 프레게 방식의 논리주의가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 자신 본래 언어철학자로서보다도 수학자나 수리철학자로서 인정받고 싶어했음을 감안한다면 그에 대한 예의의 차원에서라도 인식론 및 인식론적 문제 의식에 대한 더 많은 성찰은 필요할 것이다.
참 고 문 헌
□ 프레게의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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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차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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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ge's Epistemology and Philosophy of Mathematics
Cheolho Shim
Frege's epistemology had been ignored for a long time, partly because of his reticence on epistemological issues. This paper addresses questions concerning the place of epistemology in Frege's philosophy, including the motives of logicist programme, the distinctions of analytic/synthetic, a priori/a posteriori,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Kant and Frege. A central claim that I argue for is the epistemological significance of the theory of sense and reference. Usually, the theory is discussed in the context of philosophy of language, irrespective of the philosophy of mathematics or epistemology. My thesis is that the sense/reference distinction had been introduced in order to establish his logicist programme, more specifically, to establish his axiom V in the system of Grundgesetze being logically primitive analytic law.
【Key Words】Frege, Epistemology, Philosophy of Mathematics, Logicism, Analyti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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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Currie, G., Frege An Introduction to His Philosophy, The Harvester Press, Sussex, 1982
2)Sluga, H., Gottlob Frege, London, 1980
3)Kitcher, Philip, "Frege's Epistemology." Philosophical Review 88 (1979): 235-62.
4)Weiner, J., Frege in Perspective. Cornell Univ. Press, N. Y., 1990
5)Gabriel, Gottfried, "Frege's 'Epistemology in Disguise'", in Frege: Importance and Legacy(ed. Matthias Schirn) Walter de Gruyter(1996) pp. 330-346.
6)Anscombe, G. E. M. & Geach, P. T., Three Philosophers, Basil Blackwell, Oxford, 1961, p. 137
7)Kenny, A., Frege, Penguin Books, 1995, p. 212
8)Gabriel, Gottfried, ibid., p. 336.
9)Benacerraf, Paul, "Frege: The Last Logicist", Midwest Studies in Philosophy VI (1981), p. 23
10)Weiner, J., ibid., pp. 20-22.
11)Mill, J. S., A System of Logic, George Routledge and Sons, London, 1843(제3권 24장 5절)
12)자연주의의 영향에 대해서는 Sluga(1980) 15-34쪽 및 Currie(1982) 140-148쪽 참조. 스트라우스 등에 의해 시작된 철학적 자연주의는 헤겔 체계를 형이상학적 사변이라고 비판하는 데에 주력했으나 1890년대까지의 이른바 자연주의 제2세대는 헤겔 형이상학의 내적 난점을 제시하기보다 경험과학의 발전에 토대를 두고 자연주의를 발전시킨다. 슬루가가 자연주의자로 분류한 이들로는 화학자 리비히(Liebig), 물리학자 헬름홀쯔(Helmholtz), 철학자 그루페(Gruppe), 생리학자이자 심리주의 철학자인 졸베(Czolbe) 등이 있다.
13)Kitcher, Philip, ibid., p. 241 이하.
14)이 대목만 보면 프레게가 이성의 선험적 참과 사실의 후험적 참을 나눈 라이프니츠 식의 이분법을 따르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 단계에서는 칸트가 말하는 기하학의 선험종합성을 받아들일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15)Jeshion, Robin, "Frege's Notions of Self-Evidence", Mind, Vol. 110, 2001, p. 944.
16)Weiner, J., "What Frege Trying to Prove? A Response to Jeshion" vol. 113, 449, January 2004 pp. 115-129
17)흄의 원리와 시이저 문제에 관해서는 정인교, “프레게와 수적 대상”, 소광희 외 「현대 존재론의 향방」, 철학과현실사, 1995, 323-341쪽과 박준용, “프레게의 논리주의와 수의 동일성 기준”(여훈근 외, 「논리와 진리」, 1996, 381-403쪽에 수록)을 참조.
18)Dummett, M. The Interpretation of Frege's Philosophy, 1981. p. 532.
19)Dummett, Frege and other Philosophers, Oxford Univ. Press, Oxford, 1991, p. 293.
20)Simons, P. "Why is there so little sense in Grundgesetze?", Mind, vol. 101, 404. October, 1992 및 "The next best thing to sense in Begriffsschrift", in Biro, J. & Kotatko, P.(1995) 참조.
21)Sluga, H. "Semantic Content and Cognitive Sense", 1986, pp. 59-61.
22)연대가 정확히 추정되지 않는 유고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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