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나타나는 유물론적인 요소 강 대 석 1. 그리스철학과 유물론 이미 알려져 있는 것처럼 서양철학은 기원전 500년경에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인간과 세계와 자연을 상상에 의거하는 신화적인 해석으로부터 경험과 과학에 의존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해석으로 옮겨가는 과정이 바로 철학의 출발이었다. 그것을 사람들은 신화(Mythos)에서 논리(Logos)로 옮겨간다고 표현하였다. 그리스철학에서 나타난 최초의 철학적인 물음은 “arche(만물의 근원)는 무엇인가?”이었으며 이러한 물음에 최초로 철학적인 해답을 한 사람이 탈레스(Thales)였다. “arche는 물이다”라 대답한 탈레스를 그러므로 사람들은 서양철학의 아버지라 부른다. 탈레스가 말하는 물에는 다소간의 물활론적인 요소가 포함되어있었지만 결코 신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것이었다. 이 후 그리스철학은 주로 이 arche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는 노력으로 시종일관했으며 그 해답에서 플라톤 이전까지의 그리스철학은 대부분 유물론적이었다. 그리스철학의 유물론을 정상에 올려놓은 철학자가 데모크리토스였다. 유물론은 세계를 설명하면서 물질과 자연이 정신이나 의식으로부터 독립하여 미리 존재하고 정신과 의식은 물질과 자연으로부터 파생한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철학이다. 이와 반대로 물질과 자연이 정신적인 어떤 것으로부터 파생했다던가 물질세계가 인간의 의식에 의존한다던가 물질과 정신이 처음부터 분리되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철학이 관념론이다. 그리스의 유물론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에 의하면 이 세계는 원자라는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물질적인 알맹이의 이합집산에 의해서 발생하고 변화하고 소멸한다. 이러한 물질적인 알맹이가 원자이며 원자는 스스로에 내재해 있는 힘에 의해 움직인다. 그러나 원자가 움직일 수 있기 위해서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세계의 최초에는 원자와 공간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원자는 영원 불멸하며 무시무종이고 무한하다. 인간의 영혼이나 정신도 이러한 물질적인 원자의 결합으로 이루어져있다. 영혼을 형성하는 원자는 다른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에 비하여 매우 섬세하다는 특징을 지닐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으면 영혼을 형성하고 있던 섬세한 원자가 깨어져 다시 보통의 원자로 변한다. 결국 인간의 영혼은 육체와 더불어 물질세계로 돌아간다. 영혼의 불멸이란 있을 수 없다. 그리스철학의 유물론적 전통에 어긋나게 처음으로 관념론의 체계를 세운 철학자가 플라톤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물질적인 현실세계는 가상에 불과하며 참된세계는 순수한 정신적인 이데아의 세계다. 이데아의 세계만이 영원 불멸하면 완전하다. 현실세계는 이데아의 세계를 모방한 것이며 그르므로 불완전한 세계이다. 이데와계와 현상계를 플라톤은 모방․분유․임재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2. 아리스토텔레스의 플라톤 비판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가장 우수한 제자였다. 그리고 플라톤을 능가한 제자였다. 자연과학, 특히 의학과 생물학에 관심이 많았던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추상적인 관념론철학에 만족할 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비판하면서 스스로의 철학체계를 만들어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저인 ?형이상학 Methaphysik?은 플라톤과의 논쟁에서 출발하여 플라톤의 비판으로 끝맺는다. 1책(I. Buch(A) 8항이 ‘플라톤의 이론과의 논쟁’, 9항이 ‘플라톤의 의견에 대한 비판’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으며 8책(XIII. Buch(M)은 모두 플라톤과의 논쟁 및 비판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특히 플라톤의 이데아론 및 수론과 논쟁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플라톤이 수속에서 이데아를 증명해 낼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8책의 각 항에 나타나는 제목을 열거해 보자. “1. 수적인 것 2. 수적인 것은 독자적인 본질로서 존재할 수 없다. 3. 수학과 그 대상 4. 이데아론에 대한 비판 5. 이데아는 감각적 사물의 변화에 대한 원인이 될 수 없다. 6. 독자적인 본질로서의 수에 대한 견해 7. 플라톤의 견해와의 논쟁 8. 플라톤, 스페우지포스, 크세노크라테스, 피타고라스학파와의 논쟁 9. 수론에 대한 비판 10.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보편자가정과의 논쟁" 아리스토텔레스의 플라톤비판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보편적인 이데아가 독자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학문적인 인식이 가능하다는 플라톤의 주장은 옳지 않다. 물론 우리는 구체적인 사물로부터 보편적인 개념을 추출해낼 수 있지만 이러한 보편적인 개념이 사물을 떠나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숫자나 삼각형의 안 각 180도 등이 사물을 떠나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머리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둘째, 플라톤의 논증방식을 끝까지 관철하면 예술작품이나 부차적이고 상대적인 것의 이데아도 가정해야 하는데 그것은 플라톤의 철학과 모순된다. 왜냐하면 플라톤의 철학에서 모든 현상계의 사물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이데아의 모방이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은 인간의 창의력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 셋째, 이데아의 내용이 감각적 사물로부터 추출되며 감각적 내용을 영원화 시킨 것이다. 그것은 쓸모 없는 이중화이다. 감각물에 ‘영원’이라는 말을 붙여 ‘영원한 감각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이데아다. 이 사람 저 사람 대신에 ‘자체’라는 말을 붙여 ‘사람자체’라고 표현한 것이 이데아이다. 넷째, 이데아가 감각적 사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면 감각적 사물도 이데아로부터 독립해있다. 영원한 이데아와 가변적인 현상사이의 관계를 플라톤은 모방․분유․임재 등으로 설명하는데 그것은 ‘시적인 비유’에 불과하다. 이데아가 사물의 내적 본질을 형성하는 경우에만 ‘분유’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데 그 경우 이데아는 무용하게 된다. 다섯째, 사물과 이데아가 분리되어 있다면 이들은 또 다시 어떤 보편자에 대한 개별자를 나타낼 뿐이다. 다시 말하면 이들을 포괄하는 또 하나의 이데아가 가정되어야 한다. 예컨대 개별적인 인간과 보편적인 이데아로서의 인간이 존재한다면 이 개별적인 인간과 보편적인 인간을 다같이 포함하는 제3의 이데아를 생각할 수 있고 그것은 무한히 계속될 것이다. 여섯째, 이데아계에서 이데아가 서열을 이루고 있다는데 서열이란 보편자와 개별자의 관계에서만 가능하며 완전한 이데아의 특성과 어울리지 않는다. 일곱째, 아리스토텔래스는 그의 『니코마쿠스 윤리학』에서 플라톤의 ‘선 이데아’를 비판한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이데아’로서 ‘선 자체’를 들고있는데 ‘선’에는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가 있을 뿐이다. 선이란 인간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며 실체가 될 수 없다. 여덟째,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현상계에서 일어나는 운동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영원 불변하는 이데아의 세계가 현상계에서 일어나는 운동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쟁과 비판에 앞서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나오게 된 동기를 추론하기도 하였다. 플라톤은 감각적 사물이 항상 변화하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본질을 밝히는 것이 학문적인 인식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사물자체에 들어있는 본질을 발히는 대신 사물로부터 분리되어 그 자체로 존재하는 본질을 가정하는 것은 오류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비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나오게 된 사회적 배경을 밝히는데는 눈을 돌리지 않고 있다. 현실사회를 합리적으로 개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실하고 체념한 플라톤이 이상세계에서 그 해결방안을 찾으려 한 것이다. 3.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개별물 속에 들어있는 보편자를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질이라 부르고 본질을 자기 속에서 실현하면서 존재하는 개별물은 실체(ousia)라 부른다. 실체는 ‘주어는 되나 숭어는 되 않는 어떤 것’으로서 ‘술어는 되나 주어는 되지 않는’ 개념에 앞선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를 ‘제1실체’라 부르고 개념을 ‘제2실체’라 부른다. ‘제2실체’는 ‘제1실체’에 의하여 비로소 실체성을 획득한다. 개별물로서의 실체는 질료(hyle)와 형상(eidos)으로 이루어져 있다. 질료는 그것으로서 개별물이 만들어진 재료이고 형상은 개별물로 하여금 바로 그것이 되게 하는 어떤 것이다. 예컨대 책상의 경우에 질료는 책상이 만들어진 재료에 해당하는 목재이고 형상은 책상의 본(本)이다. 목재라는 질료는 책상 외의 다른 실체들인 걸상, 흑판 등의 질료가 된다. 같은 질료로 하여금 어떤 것은 책상이 되게 하고 어떤 것은 걸상이 되게 하는 것이 형상이다. 개별물은 항상 질료와 형상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실체이다. 형상은 플라톤의 이데아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그것이 질료를 떠나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 속에서 질료와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데아 - 현상’의 대비를 ‘형상 - 질료’의 관계로 변용하면서 이데아론의 결함을 보충하려 하였다. 그것은 플라톤에서 제시된 관념론의 비판을 의미하며 플라톤의 관념론을 데모크리토스에서 나타난 유물론과 접합시키려는 노력이었다. 그런데 질료와 형상의 관계는 종개념과 유개념의 관계에서처럼 서로 상대적이다. 예컨대 원목은 목재에 대하여 질료이며 목재는 원목에 대하여 형상의 관계에 있다. 그러나 목재는 책상에 대하여 질료이고 다시 책상은 책상을 모아서 만든 교실에 대하여 질료가 된다. 이러한 상대적 관계가 생물계에서의 계통관계처럼 자연과 우주를 관철하고 있다. 최하의 질료, 그러니까 스스로 질료가 되면서 다른 것의 형상이 될 수 없는 가장 낮은 단계의 질료가 ‘제1질료’ 혹은 ‘순수질료’이고 그 자체로서 다른 것의 질료가 될 수 없는 최고형상이 ‘제1형상’ 혹은 ‘순수형상’이다. ‘순수질료’가 무엇인가를 우리는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없다. 그것은 형상을 갖지 않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자연계는 ‘순수질료’로부터 ‘순수형상’에 이르는 계층 속에서 존재한다. 그것은 생물의 계통이나 논리학의 개념처럼 피라밋형을 이루고 있다. 모든 사물의 생성․변화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와 형상의 관계에서 파악한다. 여기서 질료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지만 수동적인 역할 밖에 하지 못한다. 질료를 움직이게 하는 목적인이 형상이다. 형상에 능동성을 부여하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직 플라톤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플라톤이 가변적이며 불완전한 어떤 것으로 비하시킨 질료를 존재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규정하면서 플라톤을 극복하려 하였다. 질료는 현실성을 갖지 못하지만 형상의 작용에 의하여 현실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질료는 ‘가능태’ 혹은 ‘잠세태’이며 형상을 통해서 ‘현세태’혹은 ‘완성태’가 된다. 이리스토텔레스는 가능태를 현세태로 만드는 능동적인 원리를 ‘엔텔레케이아(entelecheia)’라 불렀다. 질료가 물론 완전히 수동적인 것만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가 형상에 대하여 저항을 시도한다고 말하기도 하며 형상의 원인을 질료에서 찾았다. “형상의 원인은 질료 안에 있다.” 그러나 질료와 형상을 구분하고 형상의 능동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직 플라톤을 완전하게 극복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철학사가 슈테리히(Störig)는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선 그 자체로 존재하는 보편적인 이데아를 그의 철학체계로부터 철저하게 추방한 후에 이러한 이데아를 다시 뒷문으로 들여놓는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는 형상은 플라톤의 이데아와 유사한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가 지니는 질료와 형상의 관계를 더 세분하여 ‘존재의 4 원인설’을 말한다. 어떤 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질료인과 형상인 외에도 동력인과 목적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력인과 목적인은 넓은 의에서 이미 형상인 속에 포함되어 있다. 4.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나타나는 유물론적인 요소와 그 영향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는 유물론적인 요소와 관념론적인 요소가 공존하고 있다. 불생불멸하며 무한하고 영원하고 순수질료를 가정하는 점에서 유물론적이며 모든 운동의 목적이 되는 순수형상을 가정하는 점에서 관념론적이다. 관념론은 정신적인 것(신, 이데아, 절대정신 등)으로부터 물질적인 것이 파생되었다고 주장한다. 종교에서 말하는 창조설도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유물은 오히려 정신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파생되었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 정신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파생되었다는 주장에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으나 물질이 정신으로부터 파생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독자적으로 존재하여 개별적인 실체의 기초를 만든다고 주장함으로써 유물론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들어간 셈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질료도 형상도 다같이 발생하지 않았다." 특히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비교해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물론적 요소가 잘 드러난다. 아리스토테레스 이후의 서양철학은 결국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으로 일관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로마시대의 철학에서는 물론 에피쿠로스학파를 중심으로 유물론이 주도하였다. 그러나 종교가 철학을 지배하던 중세에는 유물론이 억압되었으며 그리스철학에 나타난 관념론이 교리의 성립과 철학체계에 이용되었다. 중세 초기의 교부철학에서는 플라톤 및 신플라톤학파의 철학이 교리를 만드는데 이용되었다. 삼위일체설이나 원죄설은 보편자가 개별자에 앞선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직결된다. 보편자와 개별자의 존재론적 우위를 결정하는 중세의 보편논쟁에서 플라톤의 철학을 밑받침으로 하는 실념론이 승리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의존하는 유명론이 이단으로 몰렸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스콜라철학,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서는 신의 존재증명을 위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이용되었다. 그러나 스콜라철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들어있는 유물론적 요소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오로지 순순형상 만을 부각시키면서 그것을 신과 연결시켰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올바른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맑스는 말한다; “성직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살아있는 것을 죽이고 죽은 것을 영원화시켰다.” 또한 철학사가 듀란트(Durant)는 순수형상을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스스로만 관조하는 가련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신’이라고 비웃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당하게 해석되기 시작한 것은 중세말기 아랍인들의 아리스토텔레스 번역이 유입되면서부터이다. 이러한 번역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물론적 요소가 은폐되지 않았다. 여기서 아랍철학자 아비케나(Avicenna, 980~1037)와 아베로이스(Averroes, 1126~1198)의 역할이 컸으며 그것은 동시에 스콜라철학의 붕괴와 중세의 종말을 의미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 유명론이 중세말기에 활기를 띄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제 근세인들은 보편자 보다도 개별자에 더 많은 눈을 돌렸으며 그것은 실험과 관찰을 통한 자연과학의 발전을 촉진 시켰다. 합리적인 자연인식과 개조를 확신한 근세인은 봉건제도를 무너뜨리고 시민사회를 만들어 가는 혁명의 길에 들어섰으며 여기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물론철학이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 참 고 문 헌 강대석: ?그리스철학의 이해?, 한길사 1996. 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철학사전?, 도서출판 힘 1988. 한국 철학상연구회(편): ?철학대사전?, 동녘 1992.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최명관 역, 서광사 1984. J. 슈퇴릭히: ?세계철학사?(상), 임석진 역, 분도출판사 1976. Aristoteles: Metaphysik, Schriften zur ersten Philosophie, übersetzt und hrsg. von F. F. Schwarz, Stuttgart 1970. M. Buhr(Hrsg.): ‘Materialismus’, In: Enzyklopädie zur bürgerlichen Philosophie im 19. und 20. Jahrhundert, Leipzig 1988. F. A. Lange: Geschichte des Materialismus, 2 Bde, 5. Auflage, Leipzig 1896. H. J. Sandkühler u. a.: Materialismus - Wissenschaft und Weltanschauung im Fortschritt, Köln 1976. R. Steigerwald, Abschied vom Materialismus?, Bonn 1994.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나타나는 유물론적 요소?에 대한 토론 발 제: 강대석 질 문: 김겸섭, 권현주, 홍승용, 이강은, 윤병태, 변상출 정 리: 남중섭 김: 선생님의 발표에서 아리스토텔레스 내부의 유물론적 요소와 관념론적 요소의 긴장관계를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순수형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강: 순수형상은 순수질료와 마찬가지로 어떤 것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는 영원한 어떤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유물론적인 요소와 관념론적인 요소가 동시에 들어있는 것이다. 김: 중세 말 유명론과 실재론의 논쟁은 중세 신학중심의 세계관을 몰락시키는 기폭제였다고 할 수 있다. 신학론에서 실재론을 주장했지만, 유명론이 대세였을 때나 지금도 신학은 견고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유명론이 힘을 얻어 가는 과정에서 신학자들의 대응논리는 어떠했는가? 강: 중세 말기에서도 신학자들은 신학의 체계화를 세우는데 유리한 실재론을 고수하였다. 신학은 믿음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이론적인 비판에 의하여 흔들리지 않는다. 중세의 봉건사회가 무너진 것은 생산력의 발전에 의한 필연적인 결과였으며 유명론은 이론적인 측면에서 생산력의 발전을 도와주었을 뿐이다. 권: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능태를 현세태로 만드는 능동적 원리를 ‘엔텔레케이아’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능동적 원리가 질료-형상간의 자기법칙이나 구조화의 요구이상이 될 수 있는가? 일반적 유물론의 관점에서도 자기법칙이나 구조화로부터 자체 결정되어지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주체는 가능한가? 강: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 능동적인 원리는 질료와 형상의 관계를 벗어난 어떤 독자적인 것이 아니다. 자유를 주관과 객관의 변증법적인 연관성에서 파악한다면 일반적인 유물론에서 자유로운 주체가 가능하다. ‘자기법칙이나 구조화로부터 자체결정 되어지는 것’이 기계론적인 유물론에서는 주관의 수동성을 조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으나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그렇지 않다. 여기서는 ‘자유로운 주체’가 대상을 초월하는 자의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대상과 결부된 능동성을 유지해 가기 때문이다. 홍: 변증법적 유물론은 인간의 정신이나 의식과 더불어 주체성 적극성까지도 물질의 작용 속에 포괄하려는 기계적 유물론을 어떻게 논박할 수 있는가? 목적론과 기계론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강: 인간의 의식이나 정신이 물질로부터 발생했다는 주장에서 양 방향을 같은 입장에 서있지만 변증법적 유물론은 인간의 정신이 물질적인 조건들에 행하는 역작용을 매우 강조한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물질과 정신의 상호작용을 소홀히 하는 기계론이나 운동의 최종목적을 물질세계의 외부에 설정하는 목적론을 다 같이 거부한다. 기계론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 나타나는 순수형상과 같은 목적설정에 반대한다. 목적을 설정하는 경우에도 물질 자체 속에 들어있는 목적이며 자연계가 나아가야 할 최종목적이 아니다. 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질료와 형상 관계에서 형상의 능동성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사실 이 능동성은 질료와 형상 사이에 주체, 즉 인간의 적극적인 역할, 활동이 개재된 것이 아닌가. 대체로 서구 철학이 대상 세계의 객관구조에 대한 몇 가지 실증을 통해 인간의 정신영역, 사회 등과 같은 영역까지 대입시켜 이해하려고 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는데 이것은 물질주의적 태도(이런 점에서 유물론이라는 우리말은 ‘유’자를 통해 이런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면이 있는 것 아닌가)의 극히 기계적인 적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철학에서 인간의 능동적 측면, 주관적 측면의 작용에 대한 점, 혹은 주객관계를 통한 철학에의 접근 등과 같은 요소는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가? 강: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는 질료와 형상 사이에 주체의 활동이 직접 개입되지 않는다. 존재론이 중심이 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는 인간의 활동이 중요시되지 않는다. 인식론이 중심이 되는 근세철학, 특히 칸트에서 인간의 적극적인 역할이 강조되기 시작하고 맑스주의에서 비로소 역사적 , 사회적 주체로서의 인간의 주관적 측면이 부각되었다. 실존철학에서 존재이해의 기초로서 인간의 현존분석이나 이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물론에서 ‘유’자는 물질과 인간의 정신을 질적으로 동일한 차원에서 해명하려는 노력을 의미하는 것이며 인간의 정신이 지니는 가치를 격하시키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윤: 변증법의 어원은 ‘대화’였다. 변증법은 사회 발전의 법칙이다. 맑스는 역사발전을 변증법으로 설명했다. arche를 설명할 때 신적으로 해석했다고 할 수 있다. 탈레스는 그것을 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신적인 진영과 물질에 의한 진영의 논쟁, 대화였다. 헤겔, 포이에르바하의 대화는 유물론적으로 발전하여 맑스가 그 대화를 가장 세련되게 발전시켰다. 강: 변증법의 어원과 본질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물론 변증법은 그리스에서 ‘대화’의 의미를 지녔었다. 대화 가운데서도 서로 상반되는 대화를 통해서 새로운 결론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에서 이미 ‘존재의 발전법칙’으로서의 변증법이 나타났다. 헤겔이 체계화시킨 변증법도 존재의 발전법칙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대화를 포함한 인간의 사유, 사회 및 역사, 자연과 우주의 모든 발전법칙을 총괄하는 의미에서 변증법은 이해되어야 한다. 홍: 무한한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힘들의 합산으로서 전개되는 자연계의 변화에 특히 (적대적) 모순을 원동력으로 삼는 변증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확대해석이 필요하지 않은가? 사회적 사건들에서는 그 대립항들의 중요도가 확연히 구분됨으로써 의미 있는 추상이 가능한 데에 비해, 자연현상에서는 그 중요성의 차이가 질적이지 않은 무한수의 대립항들을 상정해야 하지 않는가? 강: 이런 물음에 결정적인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자연과학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있어야 되는데 유감스럽게도 본인은 아직 그 정도에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자연의 변증법문제에 대해서는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이 잘 해명을 해주고 있으며 이에 대한 비판의 저술도 많이 나와있다. 예컨대 사르트르의 『변증법적 이성비판』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본인은 엥겔스의 주장에 동감하고 있다. 윤: 변증법은 변화와 운동의 원리이다. 적대적 모순관계와 더불어 비적대적 모순관계도 많다. 세계를 원자로 해석할 때 전자가 대립되어 세계가 발전한다고 제시된다. 사물도 낡은 것은 없어지고 새로 생성되며 발전한다. 운동 속에서 제 사물의 운동법칙을 4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상호연관성의 법칙, 대립물의 투쟁과 통일의 법칙, 양적․질적 변화의 법칙, 부정의 부정의 법칙. 그런데 사물의 특수한 영역인 인간사회의 법칙은 스탈린 때까지 생산양식으로 설명하다 ?공산당 선언?에서 계급투쟁의 역사로 설명되었다. 강: 옳은 말이다. 맑스주의에서는 ‘변증법’의 반대로 ‘형이상학’을 지칭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싶다. 변: 관념론이나 유물론은 사회적 역학관계에 포함되어있다. 플라톤이 그리스적 유물론에서 세계를 ‘이데아-물질세계’로 설명한 것은 당대 그리스의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현실도피적 구상이었다고 설명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당대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에 국민을 복종시키기 위한 체제옹호적 구상이 아닌가?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자신의 스승인 플라톤의 의견에 반대되는 유물론을 복권시켰는가? 강: 철학이 철학자의 두뇌에서 나오는 산물이 아니고 그 시대의 사회관계를 반영해서 나온 산물임을 고려할 때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플라톤의 철학이 ‘체제 옹호적 구상’이라는 말은 상당히 참신한 아이디어인데 검증이 필요하다. 본인의 생각으로는 적합하지 않는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뿐만이 아니라 도덕에서도 과도적인 것을 피하고 중용을 강조하였으며 매우 현실주의적이었다. 사회를 급격하게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합리적으로 개조하려는 의도가 간접적으로 작용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플라톤의 비판은 플라톤철학 자체의 결함에 더 큰 원인이 있었던 것 같다. 윤: 플라톤의 철학은 형이상학적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의사인 부모의 영향으로 플라톤에 비해 형이하학적 철학을 했다고 생각된다. 이데아론에 비해 형상-질료는 형이하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강: ‘형이하학’이란 ‘형이상학’에 비하여 구체적 대상이 되는 것을 연구하는 자연과학을 일컬어서 부르는 말이다. 개별적인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그 근거가 되는 ‘존재일반’을 다루는 학문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일철학’이라고 불렀는데 후에 형이상학으로 통용되었다. ‘이데아론’과 ‘질료-형상론’은 모두 ‘그 자체로서의 존재’를 다루기 때문에 형이상학에 속한다. 홍: 미라는 것이 사물들을 떠나 허공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모든 사물들은 상이한 정도의 미적 가치를 지니며, 이것까지는 아름다운 것이고 저것부터는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고 잘라 말할 수 있는 미의 경계선은 없으며, 사물들의 미적 가치를 파악하는 주체들의 역사적 사회적 조건에 따라 그러한 가치는 상이하게 파악될 수 있으며, 사물들을 미적으로도 파악하는 것은 인간의 유적 능력에 해당된다는 등등의 견해를 유물론, 관념론, 유명론, 실재론, 객관주의, 주관주의 등과 같은 범주들을 이용한다면 어디쯤에 자리매김할 수 있는가? 강: 유물론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유물론적인 미학은 미적 판단에서 주관과 객관을 양분하지 않고 상호연관 시킨다. 기계적 유물론에서는 대상 그 자체 속에 미가 들어있다는 대상중심의 미학이 나타나 주관의 능동적인 역할이 소홀히 다루어지기 쉽지만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대상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주관의 느낌이나 판단을 강조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 때의 주관은 물론 개인의 자의보다도 사회적 이상을 실현하는 사회적 주체로서의 주관이다. 미적 판단은 주관적이지만 거기에도 보편성이 깔려있으며 이러한 보편성이 어디서 오는가의 문제는 미학의 중요한 논쟁거리다. 주관과 객관이 통일되지 않은 곳에서는 이러한 보편성이 찾아지기 힘들다. 왜냐하면 대상의 내용을 떠난 주관주의는 상대주의로 빠지기 때문이다. 칸트가 말하는 ‘공통감’도 내용이 없는 막연한 이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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