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캇시러의 문화철학에서 예술관 고찰

나뭇잎숨결 2022. 2. 8. 19:03

캇시러의 문화철학에서 예술관 고찰*

신 응 철**

[한글 요약]


이 글은 에른스트 캇시러(Ernst Cassirer 1874-1945)의 문화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예비 작업으로서, 예술이론 혹은 미학이론에 대한 캇시러의 입장을 드러내는데 목적이 있다.

캇시러의 문화철학의 논의는 개별 문화 현상들, 그리고 그것들의 제관계를 연구하는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기보다는 오히려 문화 현상들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최종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문화철학의 영역, 즉 언어, 역사, 과학, 종교에서 이러한 작업을 이끌어 가는 핵심 개념으로는 상징(symbol), 상징형식(symbolic form), 상상(imagination), 신화(myth) 등이 있다. 이러한 개념들은 예술에 대한 논의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캇시러가 인간의 정신적 삶의 표현인 예술을 기존의 예술이론(혹은 미학이론)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파악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파악 방식에서 드러나는 캇시러만의 특징은 무엇인지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리고 캇시러의 독특한 예술 이해 방식과, 예술에서 상상과 상징이 그의 문화철학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를 규명해보고자 한다.


주제분야 : 문화철학

주 제 어 : 문화, 상징, 상징형식, 상상, 신화








Ⅰ. 들어가는 말


이 글은 에른스트 캇시러(Ernst Cassirer, 1874-1945)의 문화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예비 작업으로서, 예술이론 혹은 미학이론에 대한 캇시러의 입장을 드러내는데 목적이 있다. 캇시러는 예술 철학자 혹은 미학 이론가가 아니라 신칸트학파, 특히 마부르그 학파의 문화철학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시종일관 문화철학의 시각에서 예술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진행하게 될 우리의 논의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캇시러는 '문화과학'(Kulturwissenschaften), '인간 문화의 철학'(Philosophy of human Cul- ture), 혹은 '문화철학'(Philosophy of Culture)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자신의 논지를 전개시켜 나아간다.

캇시러는 문화를 "언어적인 활동들 전체와 도덕적인 활동들 전체"라고 정의하고, 이러한 활동들은 추상적인 방식으로 파악될 뿐만 아니라, 일정한 경향성을 띠고 있고, 현실화의 에너지를 갖는다고 말한다. 또한 『인문학의 논리』The Logic of the Humanities (1942) 안에 들어있는 마지막 논문 「문화의 비극」(Tragedy of Culture)에서는 문화를 "창조적 행위자로서의 개인의 자유의 표현" 이라고 정의하기도 하며, 그 외에도 논문 「현대철학에서 정신과 삶」(Spirit and Life in Contemporary Philosophy (1930)에서는 문화를 "하나의 삶의 변형"이라고 정의하고, 그것을 삶의 구체성의 소외로서가 아니라, '삶의 충만'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캇시러의 문화이론 혹은 문화철학을 문화가 인간에게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려는 하나의 시도로서, 그리고 인간의 '자유'와 '사회'라는 개념을 이해하려는 시도로 간주하면서 앞으로의 논의를 진행해 보도록 한다.

캇시러의 문화철학의 논의는 개별 문화 현상들, 그리고 그것들의 제관계를 연구하는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기보다는 오히려 문화 현상들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최종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문화철학의 영역, 즉 언어, 역사, 과학, 종교에서 이러한 작업을 이끌어 가는 핵심 개념으로는 상징(symbol), 상징형식(symbolic form), 상상(imagination), 신화(myth) 등이 있다. 이러한 개념들은 예술에 대한 논의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캇시러의 문화철학에 대한 관심은 1919년-1933년까지 함부르크대학에 있던 시기에 주로 형성되었으며, 그 이후 1935년부터 1945년까지 스웨던, 영국, 미국에 체류하면서 확고하게 다져지게 되었다. 사실 캇시러는 1903년부터 1919년까지 베를린에 있던 시기에는 칸트의 인식론과, 과학적 인식론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캇시러는 마부르그 新칸트 학파의 인물로 철학사에서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캇시러의 예술 혹은 미학에 대한 논의는 Die Philosophie der Aufklä- rung(1932)의 제7장, 강연 원고인 "Language and ArtⅠ(1942)", "Language and ArtⅡ(1942)", "The Educational Value of Art(1943)"에서 부분적으로 논의되고 있으며, An Essay on Man: An Introduction to a Philosophy of Human Culture(1944)에서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자료들 가운데 EoM에서의 논의가 비교적 폭넓고 체계적으로 되어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캇시러가 인간의 정신적 삶의 표현인 예술을 기존의 예술이론(혹은 미학이론)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파악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파악 방식에서 드러나는 캇시러만의 특징은 무엇인지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리고 캇시러의 독특한 예술 이해 방식과, 예술에서 상상과 상징이 그의 문화철학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를 규명해 보고자 한다.



Ⅱ. 기존의 예술이론에 대한 캇시러의 비판


캇시러는 EoM 서문에서 문화철학과 관련하여 자신의 고유한 이론을 제시하기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이론에 대한 설명과 예시를 주로 하겠다는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예술에 대한 이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이미 논의되었던 입장들을 하나씩 검토하고 난 뒤,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자신의 입장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캇시러의 예술에 대한 논의는 대체로 그의 말년에 이르러 진행되고 있음을 여러 자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캇시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함으로써 예술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미(美)는 인간 현상들 가운데서 가장 분명히 알려져 있는 것의 하나인 것처럼 보인다. ... 철학적 사유에 있어서 미의 현상은 언제나 가장 큰 역설의 하나이곤 했었다. 칸트 시대에 이르기까지 미의 철학은 언제나 우리의 미적 경험을 다른 분야의 원리에 환원시키고, 예술을 다른 분야의 관할 아래 예속시키려는 시도를 의미하였다.... 예전의 모든 체계는 예술의 원리를 '이론적 인식'이나 혹은 '도덕적 생활'의 테두리 안에서 찾았다. .... 그러나 어느 경우에나, 즉 이론적 해석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도덕적 해석에서도 예술은 그 자신의 독립적 가치를 전혀 가진 바 없었다. 인간 지식과 인간 생활의 단계에 있어서 예술은 다만 '준비적 단계'요, 보다 높은 목적을 지향하는 '종속적' 및 '보조적' 수단에 불과하였다."


위에 언급한 내용은 '美'와 관련하여 칸트의 입장을 비판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취지의 글은 캇시러의 논문 「비판적 관념론으로서의 문화철학」(1936)에 잘 나타나고 있다. 캇시러는 예술이 그 동안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기보다는 준비적 단계, 보조적 수단에 머물러 있었음을 지적하면서, 각 시대마다 예술에 대한 논의가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 왔는지 상세히 논하면서, 그러한 논의의 한계들을 하나씩 지적해 가고 있다. 그는 예술에 대한 논의에서 먼저 모방예술에 대해 검토한다.


1. 모방 예술과 그 비판


예술이론에서 고전학파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하는 모방 예술(imitative art)을 주장하는 입장을 일컫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을 '자연의 모방'(Ars simia naturae)으로 보고, 예술의 기능은 모방(模倣)에 있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특히 예술은 외부 사물의 모방이다. '모방'(ՌדՌՇՓՉՒ)은 근본적인 본능(fundamental instinct)이며, 다른 것에 환원시킬 수 없는 인간성의 한 사실이다. 모방은 인간에게 있어 어린 시절부터 선천적인 것이다. 인간이 하등 동물보다 나은 성질들 가운데 하나는 세상에서 모방을 가장 잘하는 동물이라는 점이며, 처음에는 인간이 모방에 의하여 배우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모방은 그칠 줄 모르는 즐거움의 원천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즐거움을 특별히 '미적인 경험'으로서보다는 오히려 '이론적인 경험'으로 기술하고 있다. 캇시러에 의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을 표현예술에만 적용시킨 것이 아니라, 심지어 피리를 부는 것, 춤을 추는 것조차도 모방으로 간주하였다. 왜냐하면 피리를 부는 사람 혹은 춤을 추는 사람은 그 리듬에 의하여 인간이 행하고 있는 것과 괴로워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성격도 표현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또한 회화와 시(詩)도 그것의 양식과 수단에 있어서는 다르지만 모방이라는 일반적 기능에 있어서는 공통된다고 말한다.

캇시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관에서 모방의 측면만이 강조될 경우, 예술가의 창조성은 허용되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 모방이 예술의 참된 목적이라면, 예술가의 자발성, 즉 생산적인 힘은 건설적인 요인이기보다는 오히려 혼란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술 창작활동에 있어서 예술가의 창조성과 자발성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함에 따라 고전적인 모방설은 엄밀한 의미에서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캇시러의 분석이다. 그래서 캇시러는 예술이란 인간과 사물의 세계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통해 그 세계로 꿰뚫어 들어가는 것이며, 또한 미적 형식들을 드러냄으로써 그 세계의 본질적 성격을 다시금 말해 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신고전파에서는 자연을 재현하는 것이 예술이 아니라, 오히려 아름다운 자연(la belle nature)을 재현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파악하였다. 캇시러는 만일 모방이 예술의 진정한 목적이라면, 그와 같은 "아름다운 자연"이라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매우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어떻게 진리의 법칙을 어기지 않고 사물들의 실상을 초월할 수 있는지, 혹은 도대체 어떻게 우리는 우리의 모델의 형상을 이즈러지게 하지 않고 그 모델을 미화할 수 있는지 등의 문제가 명쾌하게 해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8세기 전반까지 확고한 지지기반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던 모방 예술(혹은 예술의 모방설)은 성격예술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그 위상이 허물어지게 되었다고 캇시러는 파악한다.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이론에 대한 캇시러의 분석이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는『시학』에서 예술의 모방양식은 ①사물의 과거나 현재의 상태, ②사물이 그렇게 야기되는 상태, ③사물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예술은 자연의 목적론적 활동과 과정, 그리고 자연의 보편성을 모방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모방은 자연에 대한 단순한 재현의 차원이 아니라, 창작자의 자연의 보편성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통해 예술의 창작활동이 이루어진다고 해석될 수도 있게 된다. 또한 타타르키비츠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 개념을 '실재에로의 자유로운 접근'이라고 해석하고, 이를 인간 행위의 모방과 자연의 모방이 결합된 것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모방론에 대한 캇시러의 비판은 문제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필자가 보기에 캇시러는 미학사에서의 고전학파의 모방이론은 주관과 객관의 관계에서 어쨌든 외부 대상, 즉 객관(객체)에 초점이 맞추어진 입장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 대상이 강조될 경우, 주관, 즉 예술가의 자발성과 창조성은 예술에서 부정적인 것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외부 대상보다는 주관의 측면을 강조하는 유형의 예술이론이 나타나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성격예술이라고 캇시러는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2. 성격 예술과 그 비판


여러 세기 동안 유력하였던 모방의 원리는 "성격 예술"(characteristic art)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독일에서 헤르더(Herder, Johann Gottfried, 1744-1803)와 괴테(Goethe, Johann Wolfgang Von, 1749-1832)는 루소(Rousseau, Jean-Jacques, 1712-1778)의 입장을 지지하고 따랐다. 루소는 예술이론의 고전적 및 신고전적 전통을 모두 배척하였다. 그에게서 예술이란 경험적 세계의 묘사나 재현이 아니라, 정동(情動)과 정열(情熱)의 분출(overflow of emotions and passions)이다. 이러한 루소의 사상은 美學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을 이루게 되었다고 캇시러는 평가한다.

캇시러는 루소가 말하는 성격 예술에 상당히 매료되었다. 성격 예술이 예술작품의 정동적 측면을 강조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모든 성격 예술 혹은 표현적 예술(expressive art)이 강렬한 감정의 자발적인 발로(the spontaneous overflow of powerful feelings)라는 것은 옳은 말이라고 캇시러도 인정한다. 그렇지만 캇시러의 생각은 루소와는 좀 다르다. 캇시러에 의하면, 우리가 성격예술의 이 정의(定義)를 무조건 받아들이게 되면, 예술은 여전히 재현적인 것으로 남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그것은 사물, 즉 물리적 대상의 재현이 아닌 우리의 내적 생명, 우리의 감정과 정동의 재현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캇시러는 성격 예술의 진정한 의미를 괴테에게서 찾으려고 한다.

성격 예술을 말하는 괴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예술은 아름다운 것이기에 훨씬 앞서서 형성적인(formative)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그것은 참되고 위대한 예술이요, 또 아름다운 예술 자체보다 더 참되고 더 위대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 안에 형성적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이 성질은 인간 자신의 존재가 안전하게 되자마자 활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 이 성격 예술이 유일한 참된 예술이다." 괴테에게 있어서 예술이란 정말 표현적인 것이지만, 형성적인 것이 되지 않고서는 표현적인 것이 될 수가 없다. 그리고 이 형성적 과정은 몇몇 '감각적 소재'를 매개로 해서 수행된다. 그런데 캇시러가 보기에 현대의 많은 미학이론 -특히 크로체와 그의 제자들 및 추종자들- 에서는 이 물질적 요인이 망각되거나 경시되어 왔다는 것이다. 크로체(Croce, Benedetto, 1866-1952)의 경우는 오직 '표현'의 사실에만 관심을 가졌지, 그 '양식'(mode)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는 양식을 예술 작품의 성격을 위해서나 가치를 위해서 다같이 관계없는 것으로 보았다. 그에게서 중요한 것은 단지 예술가의 '직관'이지, 이 직관을 특수한 재료에다 구체화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못되었다. 그에게서 재료는 기술적으로는 중요하지만, 미학적으로는 중요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캇시러는 크로체의 예술철학에 대해서 순전히 예술 작품의 '정신적 성격'을 강조하는 정신의 철학이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캇시러는 위대한 화가, 위대한 음악가, 혹은 위대한 시인에게 있어서 색채, 선율, 그리고 낱말들은 단지 그의 기술적 도구의 일부분으로서만이 아니라, 이것들은 창작 과정 자체의 필수적인 계기들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한편, 콜링우드(R.G.Collingwood)는 성격 예술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예술은 자신의 감정들을 모두 털어놓도록 하는 기능을 하며", "예술가가 하려고 하는 것은 어떤 주어진 정동(情動)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을 표현하는 것과 그것을 잘 표현하는 것은 같은 일이다. 우리들 각자가 하는 발성과 몸짓은 모두 예술작품이다". 캇시러는 콜링우드의 이러한 표현에서도 역시 예술 작품의 창작과 관조에 함께 전제 조건이 되는 '구성적 과정' 전체가 온통 간과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캇시러는 콜링우드의 표현 중 예술이 정동의 표현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찬성을 하지만, 우리의 발성과 몸짓까지도 예술작품이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을 달리한다. 다시 말해, 모든 몸짓이 예술작품이 아님은 모든 소리지름이 언어 행위가 아님과도 같다는 것이다. 캇시러는 몸짓과 소리지름 모두는 하나의 본질적이고 없어서는 안될 특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즉 이것들은 의지적이지 않고 본능적인 반응으로서, 아무런 '진정한 자발성'(real spontaneity)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캇시러는 언어적 표현과 예술적 표현에는 목적성의 계기(the moment of purposiveness)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모든 언어 행위와 또 모든 예술적 창작에서 우리는 일정한 목적론적 구조(teleological structure)를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배우는 극에서 그야말로 정말 자기의 역할을 '연출한다'. 개개의 발언은 통일성 있는 구조적 전체의 일부이다. 그의 말의 악센트와 리듬, 그의 음성의 조절, 그의 얼굴의 표정 및 그의 신체적 태도는 모두 동일한 목적, 즉 인간 성격의 구체화를 향하고 있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서정 시인은 감정을 드러내는 일에 파묻혀 있는 사람이 아니다. 정동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은 '감상'(感傷, sentimentality)이지, 예술이 아니다. 여러 가지 형식(forms)의 관조와 창조에 몰두하지 않고 도리어 자기자신의 쾌락 혹은 '비애의 기쁨'(the joy of grief)의 향락에 파묻혀 있는 예술가는 감상자(sentimentalist)가 되고 만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캇시러가 말하는 예술적 표현에서의 목적성의 계기, 목적론적 구조란 일차적으로는 창작과정에서의 질료를 통한 구성적 활동을 의미하고, 이차적으로는 그러한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예술작품의 존재론적인 구조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설명은 제 Ⅳ장에서 부연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 볼 때, 캇시러는 예술에서의 주관과 객관의 관계에서 주관적인 측면, 즉 예술가의 정동과 감정의 표현에 더 큰 주안점을 두고 있으나, 여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정동과 감정의 표현이 하나의 새로운 차원으로 진행되기를 암암리에 바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Ⅲ. 캇시러의 예술 이해 방식


이제 우리의 논의의 초점은 모방예술과 성격예술을 비판한 캇시러 자신의 입장은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캇시러는 예술을 기존의, 이미 주어진 현실(reality)을 한갓 재생, 재현한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는 예술을 사물과 인간 생활에 대한 객관적 견해(objective view)에 이르게 하는 여러 방법들 가운데 하나로 본다. 그래서 예술은 모방이 아니라, 현실의 발견(a discovery of reality)이다. 달리 말해서, 우리는 예술을 통해서 '자연을 발견'하는 셈이다. 이때 '자연'이라는 용어는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가 아니라고 캇시러는 말한다. 여기서 잠깐 예술과 과학에 대한 캇시러의 견해를 정리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왜냐하면 양 입장의 대조적인 차이는 캇시러의 예술관의 특징을 은연중에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캇시러는 과학과 예술의 공통된 특징을 다양에서의 통일(a unity in the manifold)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언어와 과학은 현실에 대한 간략화(abbreviation of reality)요, 예술은 현실의 강렬화(intensification of reality)이다. 언어와 과학은 동일한 '추상 과정'에 의존하고 있으나, 예술은 계속적인 '구체화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예술은 개념적 단순화와 연역적 일반화를 용인하지 않는다. 예술은 사물의 성질이나 원인을 추궁하지도 않는다. 예술은 우리에게 '사물의 형상(form)에 대한 직관(直觀)'을 준다. 캇시러는 이것을 참되고 순수한 발견이라고 말한다. 과학자가 사실들의 혹은 자연법칙의 발견자라면, 예술가는 '자연의 형상들에 대한 발견자'(a discoverer of the forms of nature)라고 캇시러는 말한다.

캇시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사용한 <볼 줄 안다>(saper vedere)라는 말을 사용해서 예술가의 위상에 대해서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일상적 감각 경험의 대상들을 수천 번 만났으나 그 형상(혹은 형식)을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점이 예술가와 일반인의 차이라는 것이다.

캇시러는 위에서 예술이 사물과 인간에 대한 '객관적 견해'를 갖게 하며, 단순히 모방이 아니라, '현실의 발견', '자연의 발견'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이 표현의 분명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과학적 이성'과 '예술적 이성'을 대립시켜서 설명하기도 한다. 수학과 과학으로 대변되는 과학적 이성은 추상(abstraction)을 의미하고, 추상은 언제나 현실의 빈곤화(impoverishment of reality)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 말은 과학적 이성이 공식(公式)을 통해서 현실을 기술하고 단순화시켜버렸다는 의미이다. 예컨대, 뉴턴의 인력 법칙처럼 단 하나의 공식이 우리의 물질적 우주의 구조 전체를 그 속에 담아내고, 또 설명하고, 남김없이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예술의 분야로 넘어가게 되면 이러한 생각은 착각에 지나지 않게 된다고 캇시러는 말한다. 왜냐하면, 사물들의 양상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존재하고, 또 매 순간마다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양상들을 하나의 단순한 공식을 가지고 이해하려는 시도는 그 어느 것이나 헛된 일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캇시러는 "태양은 날마다 새롭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이 과학자의 눈에 비친 태양에 관해서는 참되지 않을지 모르나, 예술가의 눈에 비친 태양에 관해서는 지극히 타당하다고 말한다. 예술가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경험적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거나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는 우리에게 '개별적'이고 '순간적인' 인상을 주고 있다.

캇시러는 우리의 미적 지각(aesthetic perception)은 우리의 일상적 감각지각(ordinary sense perception)보다 훨씬 더 큰 다양성을 보여주며, 또 더욱 더 복잡한 질서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미적 경험은 일상적 감각 지각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내용이 풍부하며, 일상적 감각 경험에서 깨우쳐지지 않은 채로 있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충만해 있다. 예술작품에서 이 가능성이 현실태가 되며, 또 표면에 나타나 일정한 형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사물의 양상의 무진성(無盡性, inexhaustibility)을 밝혀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최대한 특권의 하나요, 또 가장 깊은 매력의 하나이다.

캇시러는 이러한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사유를 한 사람으로 화가인 루드비히 리히터(Ludwig Richter)를 꼽고 있다. 그는 예술가들의 개성이 각기 달랐던 만큼 그들의 그림도 서로 달랐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실에서 리히터는 '객관적 시각'이란 없으며, 형태와 색채는 언제나 '개인적 기질'(individual temperament)에 의하여 파악된다고 결론지었다. 캇시러는 또한 에밀 졸라(Émile Zola 1840-1902)를 예로 들고 있는데, 졸라는 예술을 "기질(temperament)을 통해서 본 자연의 한 구석"이라 정의하였다. 여기서 기질은 한갓 특이성이라든가 개인의 특성과 같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캇시러는 우리가 위대한 예술작품의 직관에 몰두해 있을 때, 주관적 세계와 객관적 세계 사이의 분리를 느끼지 않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물리적 사물들로 되어 있는 명료하고 평범한 현실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온전히 개인적인 영역 속에서만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두 영역의 저 너머에서 우리는 하나의 '새로운 영역', 즉 조형 미술적, 음악적, 시적 형식의 영역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의 이 형식들은 진정한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캇시러는 또한 살아있는 형식의 영역(the realm of living forms)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말하자면, 예술가의 눈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볼 때, 우리는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 영역은 살아 있는 사물의 영역이 아니라, 살아있는 형식의 영역이 된다. 이 말은 우리가 더 이상 직접적인 현실에 매여 살지 않게 되고, 공간적 형식들의 리듬 속에, 색채의 조화와 대조 속에, 빛과 그늘의 균형 속에서 살게 된다는 의미이다. 예술가가 직접적인 현실에 얽매여 살지 않는다는 말은, 감각-경험의 세계에 머물러 있지 않고, <관조의 세계>에 산다는 뜻이며, 또한 개념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직관의 세계>에서 산다는 뜻이다.

캇시러는 '살아있는 형식의 영역'에서의 조형 미술적, 음악적, 시적 형식들이 진정한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보편성을 칸트적인 의미의 '미적 보편성'(aesthetic universality)과 연관짓기도 한다. 이것은 우리의 논리적 및 과학적 판단에 속하는 '객관적 타당성'(objective validity)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캇시러는 칸트의 미적 보편성이라는 말에 대해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칸트는 미적 판단에서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은 '대상 그대로'가 아니라 '대상의 순수한 관조'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캇시러의 지적은 '미적 보편성'이 특정한 개인에게 제한되지 않고, 판단 주체의 전 영역에 걸쳐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만일 예술 작품이 개별 예술가의 변덕과 광기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라면, 그것은 이러한 보편적 전달성을 가지지 못하고 만다.

카시러는 예술가들의 상상(imagination)은 사물들의 형식을 제멋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이 형식을 보되 그 참된 형식에서 보도록 해주고, 따라서 그것으로 인해 이 형식들을 우리가 볼 수 있고, 인지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예술작품은 늘 상징적으로 표현되는데, 특히 위대한 서정 시인들 -Goethe, Hölderlin, Wordsworth, Shelley- 에게서는 열정적 감정의 순간적인 폭발이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통일과 연속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대한 비극 작가와 희극 작가들 -Euripides, Shakespeare, Cervantes, Molière- 은 생활의 정경에서 떠난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현실(a new reality)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것은 현실의 해석으로서, 이는 개념에 의한 해석이 아니라, 직관에 의한 해석이며, 사고를 매개로 한 것이 아니라 감각적 형태(sensuous form)를 매개로 한 것이라고 캇시러는 말한다.

한편, 캇시러는 미학사에서 예술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도 있었음을 언급한다. 플라톤과 톨스토이가 대표적인데, 이들은 예술이 정동을 흥분시키고, 따라서 우리의 도덕적 생활의 질서와 조화를 교란시킨다고 비난했다는 것이다. 특히, 플라톤에 의하면, 시적 상상은 우리의 번뇌와 분노, 욕망과 고통의 경험을 배양하여, 이것들이 메말라 없어져야 할 때에 도리어 이것들을 성장케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톨스토이는 예술 속에서 전염의 원천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그는 예술의 근본적 계기를 억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미적 경험-관조의 경험은 우리의 이론적 판단의 냉정함 및 도덕적 판단의 엄숙함과 다른 정신 상태라 하여 부정적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캇시러는 예술에 대한 평가에서 <볼 줄 안다>가 예술가의 최고의 성품이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며, 또한 위대한 화가는 우리에게 '외부 사물의 형식'을 보여주고, 위대한 극작가는 우리의 '내적 생활의 형식'을 제시해 주며, 연극 예술은 '인생의 새로운 넓이와 깊이'를 드러내 준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위에서 캇시러의 입장의 방향을 볼 것 같으면, 예술가의 상상은 물리적인 표현이 아닌 상징적인 표현으로 나타나고, 이러한 표현은 항상 통일성과 연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직관을 통해서, 감각형태를 통해서 상징적인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예술에서 예술가의 상상(력)과 상징이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는지 그에 대한 캇시러의 입장을 들추어내는 일이 우리의 과제가 된다.



Ⅳ. 예술에서 상상(력)과 상징


캇시러는 다양한 미학파들 사이의 모든 논쟁은 어떤 의미에서 한 가지 점에 귀일 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이 모든 학파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예술이란 것이 독립적인 '논의의 세계'라는 것이다. 예술을 오직 모방의 기능에만 한정시켜 보려고 한 엄격한 사실주의의 가장 극단적인 지지자들도 예술적 상상(the artistic imagination)의 특별한 힘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예술적 상상의 힘을 평가하는데는 학파마다 견해의 차이가 있다. 다양한 미학파들 사이에서 상상(력) 개념이 어떤 식으로 평가되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고전적 이론과 신고전파의 이론은 상상의 자유로운 활동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그들은 예술가의 상상력은 위대하기는 하지만 좀 의심스러운 것으로 간주하였다. 고전주의 시인 부왈로(Boileau)는 상상력을 모든 참된 시인에게 없어서는 안될 재능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시인이 상상에만 파묻혀 있으면 완성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므로 시인의 상상은 이성에 의하여 인도되고 통제되어야 하며 또한 이성의 법칙들을 따라야 한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한편, 낭만주의 예술 이론에서는 시적 상상에 대하여 아주 다르게 생각하였다. 18세기 영국의 시인 에드워드 영(Edward Young)은 "독창적인 작가의 펜은 아르미다의 지팡이처럼 거칠은 들판에서 샘물이 콸콸 솟아나게 한다"라고 말한다. 이 때 이후로는 놀라운 것과 기적적인 것이 시의 유일의 주제라 믿어지게 되었다. 18세기 미학에서 이 새로운 이상은 차츰 그 자리를 굳혀가게 되었다. 그리고 비코(Vico)는 "상상의 논리"를 세워보려 하는 중에 시를 신화에 결부시켰다. 시는 신들의 시대와 영웅들의 시대에 신화와 함께 발생하였다. 시인과 신화제작자는 똑같은 세계에 살고 있다. 그들은 똑같은 능력, 즉 인격화의 능력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떤 대상도 그것에 내적 생명과 인격적 형상을 주지 않고서는 그것을 생각할 수 없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어느 시대에나 또 어느 위대한 예술가에게나 상상의 작용은 새로운 형태와 새로운 힘을 가지고 다시 일어난다. 특히 서정 시인들은 그들 자신의 내적 생명을 불어넣지 않고서는 사물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캇시러가 볼 때, 예술가란 그저 사물들의 "속 뜻"(inward meaning)과 그 정신적 생명을 느끼기만 하면 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예술가는 자기의 감정을 외부화(Externalization)하여, 그것에 형체를 부여해야만 한다. 외부화란 단순히 특수한 물질적 매체 -진흙, 청동, 대리석- 로써 볼 수 있게 하고 만질 수 있게 할뿐만 아니라, 또한 감각적 형상, 리듬, 색채, 선과 디자인 등으로써 볼 수 있게 하고 만져볼 수 있게 함을 의미한다. 예술작품에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이 형상(형식)들의 구조, 균형, 질서라고 캇시러는 말한다. 이것은 바로 앞에서 잠깐 언급한 바 있는 예술작품의 목적론적 구조인 셈이다. 예술마다 그 스스로의 특징적인 특유어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또 서로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갖가지 예술의 특유어는 상호 연결될 수도 있는데, 가령 서정시가 음악화 되고 혹은 어떤 시가 그림으로 그려질 때 그러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서로 번역될 수는 없다. 특유어마다 예술의 '구축'에 있어서 수행할 특별한 임무가 있다.

낭만주의 사상에서 시적 상상의 이론은 그 절정에 다다르게 되었는데, 상상은 이제 더 이상 인간의 예술 세계를 건설하는 특별한 인간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보편적인 형이상학적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시적 상상은 현실(reality)에 대한 유일한 열쇠가 되었다. 여기에서 캇시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지적한다. 캇시러가 볼 때, 시적 상상에 대한 열광적인 찬양은 도리어 엄격한 한계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은 무한한 것이 예술의 참된, 아니 유일한 주제라고 선언했고, 아름다운 것은 무한한 것의 상징적 표현이라 생각하였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우리의 감각 경험의 세계는 도대체 미를 가졌다고 주장할 수 없게 되는 이원론에 빠지고 만다. 이와 같은 점을 캇시러는 낭만주의적 예술이론의 치명적인 한계라고 말한다.

다른 한편, 낭만주의에서의 '상상' 개념과 극단적인 대조를 보이고 있는 사조로서 사실주의가 있다. 19세기 위대한 사실주의자들은 극단적인 자연주의를 주장하였다. 이들은 관념론의 "순수 형상"을 부정함으로써, 사물들의 질료적인 측면에 정신을 집중하였다. 사실주의자들에 따르면, 한 예술작품의 성질은 그 작품이 다루는 주제의 크고 작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의 형성적 에네르기로써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주제란 하나도 없다. 그들에 의하면, 예술의 위대한 승리 중의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평범한 사물들'을 그 진정한 형상에 있어서, 또 그 참된 빛 속에서 보게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발자크(Balzac)는 "인간 희극"의 가장 시시한 면에 뛰어들었고, 플로베르(Flaubert)는 가장 너절한 인물들을 분석하였으며, 에밀 졸라(Émile Zola)는 자신의 소설에서 기관차의 구조, 백화점, 탄광에 관해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우리는 이들의 작품들에서 낭만주의자들의 상상력 못지 않은 위대한 상상력을 발견할 수 있다고 캇시러는 말한다. 그런데 다만, 상상력을 공공연하게 인정할 수가 없어서,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 하는, 예술에 대한 옛 정의에로 되돌아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실주의자들은 결국 예술의 상징적 성격을 깨닫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캇시러의 평가이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서, 이제 캇시러는 예술을 <상징>(symbolism)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예술이 상징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예술(작품)이 곧 상징이라는 의미인가, 아니면 예술(작품)은 상징의 역할을 한다는 말인가?

먼저, 캇시러가 말하는 상징(symbol)의 의미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그의 상징 개념은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캇시러는 생물학자인 윅스퀼(J. von Uexküll)이 주장하는 모든 유기체의 공통된 특징, 즉 그 해부학적 구조를 살펴보면 메르크네츠(Merknetz)와 비르크네츠(Wirknetz), 즉 수용계통과 운동계통을 가지고 있다는 견해에 동조한다. 이 두 가지는 모든 동물의 기능고리 역할을 한다. 이 두 계통의 협동과 평형이 없으면 유기체는 살아남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캇시러는 윅스퀼의 이러한 생각을 인간 세계의 묘사와 그 특성을 기술하는 데에도 적용시키고 있다. 인간 역시 생물학적 법칙에서 예외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캇시러는 이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인간 세계에서만 나타나는 하나의 새로운 특징을 발견하게 되었다. 캇시러는 모든 동물의 종(種)에서 볼 수 있는 수용계통과 운동계통 그 사이에 인간에게서만 보여지는 <상징계통>(the symbolic system)이라는 제3의 연결고리를 찾아내었다. 이 새로운 획득물이 인간 생활 전체를 변형시켜 주게 된다. 이를테면, 인간은 상징계통으로 인해서 현실의 하나의 새로운 차원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인간은 한갓 물리적인 우주에 살지 않고, 상징적인 우주에서 살아가게 된다. 언어, 신화, 종교는 이 상징적인 우주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이다. 이것들은 상징의 그물을 짜고 있는 가지각색의 실이자, 인간 경험의 엉클어진 거미줄이다. 인간은 언어적 형식, 예술적 심상, 신화적 상징, 종교적 의식에 깊게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인위적인 매개물의 개입에 의거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볼 수 없고 또 알 수가 없다. 이러한 입장에서 캇시러는 인간을 '이성적 동물'로 정의하는 대신, '상징적 동물'로 정의하게 되었다. 결국 상징은 동물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만의 하나의 고유한 특징이다.

이상의 맥락에서 나오게 된 상징 개념을 캇시러는 기호/신호(sign)와 구별해서 설명하고 있다. 캇시러는 sign과 symbol의 차이를 이렇게 말한다. "symbol은 단순히 sign으로 환원될 수가 없다. sign은 물리적 존재 세계의 일부요, symbol은 인간의 '의미의 세계'의 일부이다. sign은 '조작자'(operators)이고, symbol은 '지시자'(designators)이다. sign은 sign으로 이해되고 사용될 때에도 역시 일종의 물질적 혹은 실체적 존재이나, symbol은 다만 기능적 가치를 가지고 있을 따름이다." 예컨대 파블로프의 실험에서 나오는 종소리는 sign에 해당하게 된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는 캇시러가 표현한 '예술은 상징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술의 상징은 내재적 의미에서 이해되어야지, 초월적 의미에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셸링에 의하면 아름다움은 "유한하게 나타나 있는 무한"(das Unendliche endlich dargestellt)이다. 그러나 예술의 참된 주제는 이러한 무한도 아니요, 헤겔의 절대자도 아니라고 캇시러는 말한다. 그것은 우리의 감각 경험 자체의 몇 가지 근본적인 구조적 요소들 -선, 디자인, 건축 및 음악의 형식- 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캇시러는 어떤 곳에서 예술을 하나의 상징적 언어(symbolic language)로 정의하기도 한다. 캇시러는 우리가 예술의 영역에 들어서게 되면, 사물들의 존재, 본성, 또 경험적 속성들의 배후에서 우리는 갑자기 사물의 '형상/형식'(form)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 형상들은 정적인 요소들이 아니다. 이 형상들이 나타내고 있는 것은 '동적 질서'이며, 또한 이 질서는 우리에게 '자연의 새로운 지평'(a new horizon of nature)을 드러내어 준다고 캇시러는 말한다. 만일 우리가 감각 인상의 세계에만 살고 있다면, 우리는 그저 현실의 표면에 접촉하고 있을 따름이다. 사물들의 깊이를 깨달으려면 언제나 우리들 자신의 능동적이고 건설적인 에너지가 필요하게 된다. 이 에너지를 통해서 우리는 개념적인 깊이와 시각적인 깊이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서 캇시러는 개념적인 깊이는 과학에 의해 발견되고, 시각적인 깊이는 예술에 의해 드러난다고 말한다. 전자는 사물들의 형상을 이해하는데 우리를 돕고, 후자는 사물들의 형상을 보는 데 있어서 우리를 돕는다. 예술에 있어서 우리는 사물들의 직접적인 나타남에 몰두하고, 또 이 나타남을 그 모든 풍부함과 다양성의 충만한 범위에서 즐기게 된다.

캇시러의 상징 개념을 예술 분야에서 보다 구체화시킨 인물로 수잔 랭거(Susanne K. Langer 1895-1985)가 있다. 그녀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제1부 8장에서 예술과 상징에 대해 논의하는 가운데 위에서 언급한 캇시러의 생각을 보다 상세하게 펼쳐내고 있다. 그 곳에서 랭거는 '상징'은, 우선 사물들에 '관한' 관념들을 표현해 주는 기능을 하며, 둘째로 사물들을 지시하고 사실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들을 표현한다고 말한다. 그녀에 따르면 대부분의 분석철학자들은 담론 속에서 어떤 것을 대신하고, 그것을 재현할 때 사용되는 하나의 '기호' 쯤으로 상징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상징을 파악하게 되면, 상징이 가지고 있는 원시적인 기능을 놓치거나 무시하게 된다는 점을 그녀는 지적한다. 말하자면, 상징의 원시적 기능이란, 최초로 상상적인 세계로 경험을 형성하며, 실체들을 고정시키고, 사실들과 소위 환상들이라고 불리는 사고에 있어서 사실적인 요소들을 형성하는 일이다. 이러한 기능을 그녀는 분절화(articulation)라고 부른다. 상징은 관념들을 분절화시킨다. 그녀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훌륭한 예술작품은 이러한 기능을 수행한다. 그것은 주관적 경험의 외양을 형성하며, 소위 내적 삶이라고 불리는 것의 특성을 형성한다. 생명에 대해 현실적으로 느껴진 과정, 순간 순간 전환되고 상호 조직되는 긴장들, 유동과 정체, 욕망의 질주와 방향, 무엇보다도 우리의 자아의식이라 할 율동적 지속은 추론적 상징 작용에 의해서는 표현될 수 없다. 주관성의 무수한 형식들, 삶의 무한히 복잡한 감각은 언어적으로 제시될 수 없다. 곧 그것은 진술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는 훌륭한 예술작품 속에서 명료하게 빛난다. 하나의 예술작품은 하나의 표현적 형식이며, 단순한 감수성으로부터 가장 정교한 자각과 정서의 국면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생명력(vitality)이다." " 상징화의 욕구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다." "상징화라는 근본적인 개념 안에서, 우리는 모든 인간적인 문제의 핵심을 갖게 된다." "예술이란 인간의 감정을 상징하는 형식들의 창조이다. 예술은 형식을 통해서 인간의 감정을 의미하는 상징이다."


캇시러에 의하면, 미(美)의 진리는 사물들에 대한 이론적 기술이나 설명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물들에 대한 "공감적 투시"(sympathetic vision)에 의해 성립된다. 캇시러에 의하면 공감적 투시는 상모적(相貌的 physiognomical)인 태도에서 가능하게 된다. 상모적이라는 말은 인간이 정동이나 감정을 가지고 있듯이, 자연 대상물들에도 그와 마찬가지의 감정이나 정동들이 가득 차 있고, 우리가 얼굴을 하고 있듯이, 그것들도 또한 저마다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간주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러한 태도는 또한 신화적인 사고방식의 특징이 되기도 한다. 신화적 사고 안에서 모든 종류의 감정들, 즉 두려움, 슬픔, 화남, 흥분, 오르가즘, 환희는 각기 고유한 하나의 형태이자 얼굴로 존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캇시러는 '신화'를 하나의 이론적이거나 인과적인 우주 해석이 아닌, 하나의 상모적(相貌的, physiognomical) 해석이라고 정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화적 사고 안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의 특별한 얼굴이라고 여겨지게 된다. 인간은 이러한 상모적인 특성들의 다양성 속에서, 다수성 속에서 살아간다. 또한 인간은 계속해서 그것들에 의해 영향받고 감동받고 있다. 그 사물들은 정동들로 가득 차 있으며, 또한 충만해 있다. 사물들은 온화하거나 악의적이며, 우호적이거나 두려우며, 친밀하거나 으스스하다. 사물들은 확신감이나 경외감, 혹은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캇시러는 신화가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적 사고의 측면 혹은 물리학적인 측면에서 자연을 해석하지 않고, 오히려 <상모적인 경험의 측면>에서 자연을 해석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자연 대상물들이 인간과 관계 맺을 경우, 그것은 순전히 딱딱한 굳어버린 생명없는 대상체가 아니라 매 순간 변화하는 생명이 깃든 살아있는 대상으로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 캇시러의 생각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예술은 우리에게 사물을 그저 개념화하거나 이용할 것을 가르치지 않고, 사물을 시각화(visualize) 할 것을 가르친다. 그리고 예술은 우리에게 현실(reality)의 보다 풍부한, 보다 생기있는, 보다 다채로운 심상(image)을 가져다주며, 또한 그 형태적 구조에 대한 보다 심원한 통찰을 가져다주고 있다.



Ⅴ. 나오는 말


지금까지 캇시러의 예술에 대한 논의에서 보여지는 가장 큰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해볼 수 있을 것이다. 캇시러의 문화철학의 밑바탕에는 이성적 인간보다는 상징적 인간의 측면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점은 예술에 대한 논의에서도 예외가 되지 않았다. 예술은 대상에 대한 모방도, 예술가 자신의 정동의 표현도 아닌, 하나의 상징이 된다. 여기서의 상징은 주관적인 측면 혹은 객관적인 측면 그 어느 쪽도 아닌 하나의 의미의 세계, 작용의 차원, 기능적 가치를 가지게 된다. 위대한 예술작품의 진정한 진리는 예술가적인 눈을 통해서 파악될 수 있다. 예술가의 눈이란, 감각 경험의 세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관조의 차원, 개념 세계가 아닌 직관의 세계에서 예술작품에 몰두한다는 것이다. 예술에서의 미적 진리는 공감적 투시를 통해서 파악되는데, 이는 신화적 사고방식의 특징인 상모적인 태도에서 가능해진다. 그리고 예술작품에서 보여지는 미적 진리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어 보편성을 가지게 된다. 이 미적 진리는 캇시러에 따르면 살아있는 생생한 형식의 영역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영역에서는 주·객의 분리가 없어지고, 그 속에는 생명, 생명력이 깃들어 있게 된다. 이러한 영역은 바로 조형 미술적, 음악적, 시적 영역이 그것이다.

캇시러는 예술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예술의 의미나 목적 그리고 가치에 주안점을 두기보다는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본질에 접근하려고 하고 있다. 그 동안 '이성적 동물'로 여겨온 인간에 대한 정의를 '상징적 동물'로 새롭게 다시 정의함으로써, 철학의 임무를 이성에 대한 비판에서 문화에 대한 비판으로 전환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의 문화에 대한 비판은 언어, 종교, 과학, 예술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하나 하나 진행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논의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상징적 인간'이라는 큰 주제가 놓여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 점은 바로 캇시러의 문화철학을 이해하는 올바른 방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