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돈 / 김명인

나뭇잎숨결 2021. 9. 28. 09:26

돈 / 김명인


한때 나는 대학 입학금을 마련 못 해 사흘 밤낮을/ 꼬박 울며 지샌 적이 있다/ 비웃지 마라, 그땐 그게 절박했었다/ 그렇다 두 분 형님께서 포기한 대학을/ 내가 끝까지 마쳤던 것은 돈에 대한/ 맹목의 복수심 때문이었을까/ 마침내 내 대학이 선탄부로 가정교사로 끝이 났을 때// 배운 것이야 무엇이든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모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선생이 되었다/ 이 나라에서 돈 버는 길이란 사기거나 투기라고/ 일깨워준 저 7,80년대의 경제를 거쳐/ 내가 집칸이나 장만한 것은 그 길에/ 밝아서가 아니라 아내의 맞벌이 덕이었다// 그러나 돈이 돈을 거둬들인다고 뒤늦게 한탄한 아내여/ 남편은 백면의/ 여전히 주변머리 없는 서생이었을 뿐/ 무슨 주제로 헐거운 돈을 만났겠는가/ 그대의 눈썰미가 마련한 방 한 칸을 차지하고 난 뒤로/ 자주 목이 말랐고 자꾸만 부끄러웠다// 그렇게 한 번도 널 풍족히 누릴 수 없었다 해도/ 돈이여, 어느새 너는 내 발목을 잡고 있지만/ 나는 네게서 다시 철저히 배반당하는 꿈을 요즈음도 꾼다/ 너를 돈이라 말하면 네가 돈이겠느냐/ 그게 인생의 목표쯤은 아니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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