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 김명인
길은 제 길을 끌고 무심하게/ 언덕으로 산모퉁이로 사라져가고/ 나는 따라가다 쑥댓닢 나부끼는 방죽에 주저앉아/ 넝마져 내리는 몇 마리 철새를 본다/ 잘 가거라, 언덕 저켠엔/ 잎새를 떨군 나무들/ 저마다 갈쿠리 손 뻗어 하늘을 휘젓지만/ 낡은 해는 턱없이 기울어 서산마루에 있다/ 길은 제 길을 지우며 저물어도/ 어느 길 하나 온전히 그 끝을 알 수 없고/ 바라보면 저녁 햇살 한 줄기 금빛으로 반짝일 뿐/ 다만 수면 위엔 흔들리는 빈 집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