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현상학과 해석학; Husserl, Heidegger, Gadamer

나뭇잎숨결 2024. 11. 26. 08:28

현상학과 해석학 - Husserl, Heidegger, Gadamer

이 남 인 (서울대 철학과 교수)

목차
1. 들어가는 말
2. Husserl의 정적 현상학의 이념과 방법
3. Heidegger의 Husserl 비판과 해석학적 현상학
1) Heidegger의 Husserl 비판의 성격
2) 지향성 개념에 대한 비판과 ぢ심려っ(Sorge) 구조의 발견
3) 현상학적 해석의 방법
4) 해석학적 현상학의 특성
5) Husserl과 Heidegger의 관계: 양자 사이의 대화의 필요성
4. Husserl, Heidegger와 Gadamer의 해석학
1) Husserl과 Heidegger의 영향과 Gadamer의 해석학의 과제
2) Gadamer의 해석학의 출발점
3) 해석학적 현상의 근본 구조
4) Gadamer의 해석학에 대한 비판적 검토
5. 맺음 말: ぢ현상학적 해석학 논쟁っ의 성격 및 필요성

1. 들어가는 말


이 글은 철학의 주제와 방법을 중심으로 Husserl에서 Heidegger를 거쳐 Gadamer로 이르는 현상학과 해석학의 흐름을 고찰하면서,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해명함을 그 목표로 한다.

1. Husserl의 정적 현상학의 방법적 토대인 ぢ반성적 직관っ, Heidegger의 해석학적 현상학의 방법적 토대인 ぢ해석학적 직관っ, 그리고 Gadamer의 해석학의 방법적 토대인 ぢ해석학적 의식っ은 모순.대립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며, 각자는 서로 서로 도움을 통해서만 자신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세 유형의 철학이 각자 지니고 있는 나름대로의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들 사이에 상호인정에 기초한 참다운 의미의 철학적 대화가 필요하다.

2. 이러한 철학적 대화와 관련해 유의해야 할 사실은 Gadamer의 해석학에는 Husserl과 Heidegger의 현상학의 생명인 철저한 방법론적 의식과 비판정신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법론적 의식과 비판 정신의 결여는 Gadamer의 해석학에 많은 문제를 안겨주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의 직접.간접적인 영향하에서 전개된 1960년대 이후 현대철학이 - M. Frank의 표현을 빌면 - 극단적인 ぢ의사소통의 한계っ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극도로 혼미한 상황에 빠지는데 일조하고 말았다. Gadamer의 해석학이 지닌 문제점 및 현대철학이 처한 혼란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일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작업은 Husserl과 Heidegger가 철두철미 견지하고자 한 철저한 방법론적 의식과 비판정신을 회복하는 일이다.



2. Husserl의 정적 현상학의 이념과 방법


Husserl이 그의 주저 {이념들 1}에서 밝히고 있듯이 ぢ전체 현상학을 포괄하는 주제는 지향성이다.っ({이념들 1}, 337) 그는 {논리연구}에서 {이념들}에 이르는 초기 저술에서 지향성을 ぢ자기 동일적 대상에 대한 자아의 의식적 관계っ로 규정하는데, 이러한 지향성 개념의 규정을 위해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은 구성적 관점에서 ぢ객관화 작용っ(objektivierender Akt)이 ぢ비객관화 작용っ(nicht-objektivierender Akt)에 대해 절대적 우위를 지닌다는 다음과 같은 근본명제이다: ぢ모든 지향 체험은 객관화 작용이거나, 그러한 작용을 で토대と로서 가지고 있다.っ({논리연구 II/1}, 514) 인식론적 물음에서 출발한 그의 전기 현상학인 정적 현상학(statische Phänomenologie)의 과제는 현상학적 환원의 방법에 따라 모든 선입견을 떨쳐 버리고 오직 ぢ사태 자체っ인 지향성에 육박하여 ぢ반성적 직관っ(reflexive Anschauung)의 방법을 사용해 다양한 유형의 지향성의 구조와 지향성 사이의 타당성 정초관계를 해명하는데 있다.



3. Heidegger의 Husserl 비판과 해석학적 현상학


1) Heidegger의 Husserl 비판의 성격


Heidegger에 의하면 Husserl의 정적 현상학의 구상은 결코 자명한 것이 아니며, 이런 이유에서 그는 ぢで현상학의 근본 문제들と, 다시 말해 가장 큰 논쟁거리이고 결코 불식시킬 수 없는 가장 근원적이며 최종적인 현상학의 근본 문제는 현상학 그 자체이다っ(GA 58, 1)라고 지적한다. 이제 그는 Husserl 보다 더욱 더 철저히 현상학의 근본 이념에 충실하게 ぢ사태 자체っ로 육박해가면서 Husserl의 분석속에 들어있는 검토되지 않은 전제를 들쳐내고, 비판하면서 현상학의 근원적인 이념을 충실히 구현한다고 생각되는 새로운 유형의 현상학, 즉 ぢ해석학적 현상학っ(hermeneutische Phänomenologie)을 발전시킨다. Heidegger의 Husserl 비판의 근본적인 성격은 현상학적이다.



2) 지향성 개념에 대한 비판과 ぢ심려っ(Sorge) 구조의 발견


Heidegger에 의하면 Husserl은 지향적 분석을 행함에 있어 대부분의 전통적인 인식론자들과 - 비록 그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 암암리에 공유하고 있는 ぢ인식론적 선입견っ(GA 20, 40)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지향성을 ぢ사태 자체에っ 충실하게 올바로 규정하고 있지 못하며,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Husserl의 지향성 개념은 ぢ현상학이 하고자 하는 일을 직접적이며 어떤 선입견없이 받아들임을 방해하는 바로 그 장본인이다.っ(GA 20, 34)

우선 Husserl이 많은 전통적인 인식론자들과 더불어 타당하다고 간주하는 객관화 작용의 절대적 우위라는 명제는 결코 자명한 명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객관화 작용은 근원적인 실천적인 삶의 영역에서 기능하는 비객관화 작용들의 ぢ탈-생화っ(Ent-lebung)(GA 56/57, 91; GA 58, 75ff.)의 결과이며, 이러한 점에서 그것의 파생적 양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명제는 또 Heidegger가 ぢ이론적인 영역을 토대로 해서 실천적인 영역을 해석하려 함っ(GA 20, 61)이라고 지적하듯이 비객관화 작용의 지향적 구조, 그리고 더 나아가 객관화 작용의 지향적 구조를 올바로 파악할 가능성마저 차단한다.

Husserl의 지향성 개념이 이처럼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지향적 분석을 행함에 있어 일차적으로 인식론적 물음에서 출발하면서 지향성의 근원적인 존재 의미에 대한 ぢ존재 물음っ(Seinsfrage)을 소홀히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자에 대한 모든 탐구는 그 탐구의 전제 역할을 담당하는 바, 그 존재자에 대한 특정의 존재론적 규정(ontologische Bestimmung)에서 출발하게되며, 이 점에서는 Husserl의 지향적 분석도 예외일 수 없다. Husserl에 의하면 지향성은 ぢ그것이 파악작용 속에 있다는 점에서 내재적인 존재っ, ぢ절대적 소여성이라는 의미에서 절대적 존재っ, ぢ대상을 구성한다는 의미에서 구성적 존재っ, ぢ사실적 존재가 아니라, 이념적 존재라는 의미에서 순수 존재っ(GA 20, 140ff.)등의 존재 규정을 지닌다. 그런데 Heidegger에 의하면 이러한 존재규정은 지향성이라는 ぢ존재자 자체를 토대로っ(GA 20, 149) 획득된 근원적인 규정이 아니라, 자의적인 규정에 불과하며, 이러한 자의성의 원천은 다름 아닌 Husserl 현상학의 방법적 토대인 반성적 직관이다. 이처럼 반성적 직관을 지향 체험에 대한 분석의 수단으로 선택하면서 Husserl은 바로 반성의 도식안에서 필연적으로 지향 체험은 어떻게 파악될 수 있는가, 지향 체험은 어떻게 주어질 수 있는가, 지향 체험은 구성된 것인가, 혹은 구성하는 것인가, 지향 체험은 사실적 존재인가, 이념적 존재인가등의 네 가지 물음을 선행적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밖에 없었는데, 바로 이러한 물음 속에 들어있는 일반적인 존재 규정이 다름 아닌 위에서 살펴본 지향 체험의 네 가지 존재 규정이다.

Heidegger에 의하면 지향성의 참된 존재 규정은 반성적 직관의 대상이 되기 이전의 지향체험을 토대로 획득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근원적인 지향 체험은 그 누구와도 치환될 수 없는 그때 그때 마다의 현존재에 의해 지금, 바로 여기에서 수행되는 개별적인 실존적 체험이며, 따라서 지향성의 근원적인 존재 규정은 바로 ぢ실존っ(Existenz)이다.

따라서 지향성의 정체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ぢ실존범주っ의 하나인 ぢ내-존재っ(In-Sein)의 구조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실존 범주로서의 ぢ내-존재っ에서의 ぢ내っ는 공간적으로 존재하는 두 개의 존재자 사이의 공간적인 포함관계를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라, 현존재가 친숙한 세계속에서 살아나가면서 거기서 만나는 다양한 존재자들과 실존적으로 교섭하는 방식을, 그리고 보다 더 근원적으로는 이러한 교섭을 가능케 해주는 토대인 현존재의 실존및 그와 등근원적인 그의 세계의 개시성(Erschlossenheit)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현존재의 실존 및 세계의 개시성은 Heidegger에 의하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등근원적인 세 가지 계기들, 즉 정황성(Befindlichkeit), 이해(Verstehen), 말(Rede)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서 정황성은 이미 앞서 주어진 실존 및 세계를 개시해주는 계기이며, 이해는 장차 기투되어야 할 실존 및 세계를 개시해주는 계기이고, 말은 정황성과 이해를 의미로 분절시키는 계기이다. 현존재는 이처럼 자신의 실존 및 세계에 대해 실존적인 정황적 이해를 선행적으로 가지면서, 그를 토대로 부단히 존재자들을 해석하면서 그들과 교섭하고 있다. 현존재가 만나는 존재자에 대한 모든 유형의 발견 과정은 이러한 선행적인 실존적인 정황적 이해를 토대로 수행되는 부단한 실존적 해석 과정이다. 실존 범주로서의 내-존재는 이처럼 실존적인 정황적 이해 및 그를 토대로 수행되는 해석작용 전체를 지칭하는 개념이며, 따라서 내존재의 전체적인 구조는 ぢ(내세계적으로 만나는 존재자들) 곁에 있음으로서의 (세계)속에 이미 있으면서,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っ(Sich-vorweg-schon-sein-in- (der-Welt) als Sein-bei (innerweltlich begegnendem Seienden))(SZ, 192)로 표현될 수 있는데, Heidegger는 이러한 내존재의 전체적인 구조를 ぢ심려っ(Sorge)라 부른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Husserl의 지향성의 정체가 밝혀진다. 지향성은 바로 심려의 한 계기인 ぢ존재자 곁에 있음っ(das Sein bei)(GA 20, 210ff., SZ, 54ff.)의 한 유형, 즉 그것이 탈생화한 파생적 양상이다. 그런데 ぢ존재자 곁에 있음っ은 다시 심려의 또 다른 계기인 ぢ세계속에 이미 있으면서, 자기 자신을 넘어서고 있음っ으로서의 정황적 이해의 파생적 양상이다. 따라서 지향성은 정황적 이해의 ぢ파생적 양상의 파생적 양상っ에 불과하며, 이러한 점에서 그것은 대부분이 물밑에 잠겨 있는 심려라고 하는 빙산의 일각에 비유될 수 있다.



3) 현상학적 해석의 방법


현상학의 주제가 지향성에서 심려로 바뀜에 따라 그를 파악하기 위한 방법도 변화하는데, 이는 Heidegger가 ぢ사태자체로부터 요청된 탐구방법을 통해서만 특정 학문 분과는 성립할 수 있다っ(SZ, 22)고 지적하듯이, 사태와 그를 파악하기 위한 수단인 방법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그가 Husserl과({이념들 1}, 161) 공유하는 현상학적 확신에서 유래하는 필연적인 귀결이다. Husserl의 반성적 직관은 지향성은 주제화할 수 있으나, 혼자서는 지향성의 존재토대인 심려 현상을 이론적으로 주제화하기는 고사하고, 그러한 현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선이론적으로 포착할 수 조차 없다. 따라서 심려를 현상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기 위해서는 방법론적으로 두 가지가 확보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1) 심려 현상이 존재함을 선이론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방법과, 2) 그렇게 포착된 현상을 이론적으로 주제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1. 퇴락의 양상에서 살아가는 일상적 현존재는 개별적인 존재자에만 - 그것이 체험이든, 자연적 대상이든 - 관심을 집중시킨 채, 심려 현상으로부터 부단히 눈을 돌리며 회피하려는 근본적인 은폐 성향을 지니고 있는데, 바로 이러한 은폐 성향이 파괴될 때 심려 현상에 대한 선이론적 포착이 가능하다. 그런데 Heidegger에 의하면 이를 가능케 해주는 것은 반성적 직관과 같은 객관화적 작용이 아니라, 일종의 정서적 통일체인 ぢ근원적 기분っ(Grundstimmung)인데, 그 대표적인 예는 {존재와 시간}에서 분석되고 있는 ぢ불안っ(Angst)이다. 불안은 퇴락의 양상을 지닌 현존재로부터 지금까지 그에게 의미를 지녀왔던 모든 존재자들의 의미를 송두리째 박탈함으로써, 그에게 그의 퇴락한 실존 및 퇴락한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더 나아가 그를 이러한 퇴락의 양상에서 해방시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도록 해 주면서, 그에게 심려 현상을 선이론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2. 이처럼 근원적 기분을 통해 자신의 실존 전체에 대해 눈을 뜬 본래적 현존재에게만 그에 대해 이론적인 분석을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심려에 대한 이론적 분석은 이처럼 선이론적으로 포착된 심려에 대한 막연한 선개념적인 실존적 선이해를 개념적인 존재론적 선이해, 즉 실존론적 선이해로 바꾼 후, 이를 반복되는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단계적으로 구체적인 이해로 바꾸어감으로써 가능한데, 이러한 작업이 바로 현상학적 해석이다. ぢ현상학적 기술의 방법론적 의미는 해석이다. 현존재의 현상학의 logos는 hermeneuein, 즉 해석이라는 성격을 지니는데, 그를 통해 현존재 자체에 속한 존재 이해로부터 현존재의 존재 의미 및 현존재에만 고유한 존재의 근본 구조가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っ (SZ, 37)



4) 해석학적 현상학의 특성


실존론적 현상학은 이처럼 해석의 방법에 기초한 해석학적 현상학이 된다. 앞서 밝혀졌듯이 현존재는 실존적인 정황적 이해를 토대로 부단히 실존적 해석을 수행하는 존재자이며, 따라서 현존재의 실존에 대한 실존론적 해석으로서의 현상학적 해석은 ぢ해석에 대한 해석っ임이 밝혀진다. ぢ해석에 대한 해석っ을 통해 수립되는 해석학적 현상학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에서 정적 현상학과 구별된다.

1. 실존론적 선이해 및 선구조 없이는 현상학적 해석은 불가능하며, 바로 이러한 점에서 ぢ철학은 자신의 で전제들と을 떨쳐버리려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주어진 그대로 아무렇게나 받아들이려고 해서도 안된다. 철학은 전제들을 (올바로) 파악해서, 그것들과 더불어 그것에 대해 그것들이 전제인 바의 그것을 보다 더 철저하게 전개해 나간다.っ(SZ, 310) 정적 현상학이 무전제의 철학이고자 하는데 반해 이처럼 해석학적 현상학은 현존재가 처한 상황에 입각하여 획득된 전제에서 출발하여, 그 전제의 구체적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고자 하는 ぢ전제의 철학っ이다.

2. 현상학적 해석은 ぢ현존재의 존재가능성っ(SZ, 13)을 의미하며, 그러한 한에서 현존재의 실존의 수행, 혹은 운동성이라는 의미의 기투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Heidegger는 현상학적 해석속에 들어 있는 이러한 기투를 실존적 해석속에 들어있는 기투와 구별해 ぢ존재론적 기투들っ(ontologische Entwürfe)(SZ, 312)이라고 부르며, 이와 관련해 ぢ선구적 결단성っ에 대한 현상학적 분석을 ぢ현존재를 그의 가장 극단적인 실존 가능성으로 해석하면서 해방시키는 작업っ(SZ, 303)으로, 그리고 존재사유의 최종 목표를 ぢ이성적 동물(animal rationale)로부터 현-존재로의 인간의 본질의 변화っ(GA 65, 3), ぢ자연및 세계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인 태도변화っ로 규정한다. 이처럼 현존재의 가장 극단적인 실존 방식의 하나인 현상학적 해석에 기초한 해석학적 현상학은 현존재의 구체적인 실존적 삶을 도외시한 듯한, ぢ순수관조っ를 연상케 하는 정적 현상학과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3. 근원적인 기분이 없이는 세계및 실존에 대한 실존적 선이해의 생성도, 더 나아가 실존론적 선이해의 확보및 현상학적 해석도 불가능하듯이, 불안등의 근원적 기분은 - 비록 Heidegger의 해석학적 현상학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지만 - ぢ실존론적 분석론을 위하여 원칙적인 방법적 기능っ(SZ, 190)을 지니고 있다. 불안은 해석학적 현상학의 분석 주제인 실존을 처음으로 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며, 바로 이러한 점에서 해석학적 현상학은 철두 철미 이러한 근원적 기분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근원적 기분은 특유한 직관적 기능을 지니고 있는데, Heidegger는 이와 관련해 ぢ정황성이 지닌 명증っ(SZ, 136)이라 말하면서, 이러한 명증의 원천을 ぢ해석학적 직관っ(hermeneutische Intuition)(GA 56/57, 117)이라 부른다. 여기서 우리는 해석학적 현상학이 사태 자체에 대한 직관에 기초해 이론을 구축하여야 한다는 현상학의 이념을 근원적으로 실현시키고자 하는 철학임을 확인한다.



5) Husserl과 Heidegger의 관계


Heidegger는 이처럼 Husserl의 정적 현상학을 철저히 비판하고 ぢ현상학을 보다 더 근원적으로 사유하면서っ(GA 12, 91) 해석학적 현상학을 전개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를 통해 양자의 관계는 극히 단편적으로만 해명되었을 뿐인데, 그 이유는 Husserl역시 1910년대 중반 이후 자신의 전기 현상학을 철저히 비판하면서 ぢ발생적 현상학っ(genetische Phänomenologie)을 전개시키고 있고, Heidegger도 다시 {존재와 시간}의 출간 이후 거기서 다루어진 문제를 비판적으로 심화시켜가면서 소위 ぢ존재사유っ(Seinsdenken)라 불리는 ぢ극단적으로 심화된 형태의 해석학적 현상학っ을 전개해 나갔기 때문이다. 1920년대 중반 이후 단절된 이 두 철학자 사이의 철학적 대화를 계속시킨다는 의미를 지니게 될, 양자에 대한 총체적이며 내실있는 비교 연구는, 이러한 다양한 유형의 현상학을 체계적으로 비교.검토할때만 가능한데,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 사항을 지적하고자 한다.

1. Husserl의 발생적 현상학에서는 ぢ생っ, ぢ생활세계っ, ぢ지평っ, ぢ역사っ등의 문제가 중심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점에서 발생적 현상학은, Gadamer도 지적하고 있듯이(GW 1, 246ff.), - 비록 여러가지 차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 Heidegger의 해석학적 현상학, 그리고 더 나아가 Gadamer의 해석학과 유사하다.

2. Husserl과 Heidegger의 현상학의 핵심은 - 이 후자의 존재사유 역시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 철저한 ぢ책임의식っ에 기초한 비판 정신인데,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Husserl의 경우에는 반성적 직관이며, Heidegger의 경우에는 근원적 기분이다. 앞서 우리는 현상학의 이념이 근원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 Husserl의 반성적 직관은 Heidegger의 해석학적 직관의 도움이 필요함을 살펴보았는데,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그 자체상 개념적으로 ぢ파악하지 못하고, 해명하지 못하고, 술어화하지 못하는っ({윤리학}, 69) 해석학적 직관 역시 반성적 직관의 도움이 없이는 참다운 의미의 비판적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해석학적 직관은 단지 불투명하며 막연한 양상속에서 실존 전체의 모습을 선이론적이며 예비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이론적인 실존론적 분석을 수행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 줄 뿐이지, 그 어떤 다른 것의 도움없이 독자적으로 실존론적 분석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막연하게 주어진 실존의 구조에 대한 구체적인 이론적 분석을 통해 그의 구조를 분명한 형태로 밝혀내면서 실존에 대한 해석 작업을 마무리짓고, 이러한 해석 결과에 대해 모든 책임을 떠맏는 것은 실은 - 비록 Heidegger가 그 점을 분명히 밝히지 않은 채 인정하고 있듯이 - 반성적인 직관이다. 반성적 직관이 지닌 이러한 고유한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을 때, 해석학적 현상학은 무비판적인 철학으로 전락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후기의 존재사유는 ぢ신화っ(Mythologie), ぢ거짓 시"(Pseudopoesie)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



4. Husserl, Heidegger와 Gadamer의 해석학


1) Husserl과 Heidegger의 영향과 Gadamer의 해석학의 과제


Husserl과 Heidegger의 결정적인 영향하에서 Gadamer는 이해, 해석, 번역, 통역등 ぢ해석학적 현상(hermeneutisches Phänomen)의 총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함っ(GW 1, 3)을 자신의 과제로 삼으면서 해석학을 전개해 나간다. Husserl의 지향성이 Heidegger에 의하여 수정.보완된 후 그의 해석학의 분석 주제로 수용된 것이 바로 그의 탐구 주제인 ぢ해석학적 현상っ이며, ぢ나는 근본적으로 Heidegger가 이미 초기 Freiburg 시절에 개척한 근본노선을 계속해서 추적하였을 뿐이다.っ(GW 2, 422)라고 밝히고 있듯이, 그는 Heidegger의 해석학적 현상학, 더 나아가 Husserl의 발생적 현상학을 계승.발전시키고자 한다. 이 점과 관련해 짚고 넘어가야 할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ぢSchleiermacher에서 Dilthey를 거쳐 Husserl과 Heidegger로 이어지는 해석학적 문제의 전개っ(GW 1, 478)라고 말하듯이 그가 - Heidegger뿐 아니라 - Husserl 역시 - 무엇보다 ぢ생っ, ぢ생활세계っ, ぢ지평っ, ぢ역사っ등의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Husserl의 발생적 현상학 때문에 - 그의 해석학의 중요한 선구자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그는 방법적 의식 일반에 대해 거리를 취하긴 하지만 해석학적 현상을 분석하기 위하여 Husserl이 제시한 ぢ현상학적 기술っ(phänomenologische Deskription)의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는 그의 해석학이 일종의 현상학, 즉 ぢ해석학적 현상에 대한 기술적 현상학っ임을 의미한다.

ぢ해석학적 현상의 총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함っ이라는 그의 해석학의 과제는 두 가지를 함축하는데, 그것은 첫째, ぢ사건っ(Geschehen)(GW 1, 488 ff.)으로서의 해석학적 현상의 발생적 구조를 밝히면서 ぢ이해가 발생하기 위한 조건들을 해명하고っ(GW 1, 300), 둘째, 해석학적 현상속에 들어있는 진리요구가 어떻게 ぢ철학적으로 정당화 될 수 있을지っ(GW 1, 2)를 해명함을 의미한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사실은 ぢ이해 현상속으로 뚫고 들어가야 그것의 정당성이 드러날 수 있다っ(GW 1, 2)고 밝히고 있듯이, 그가 타당성의 문제에 대한 해명은 발생의 문제에 대한 해명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2) Gadamer의 해석학의 출발점


Gadamer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론을 토대로 해석학적 현상의 구조를 분석하면서 자신의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데,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1) 해석학적 순환속에서 진행되는 모든 이해및 해석은 어떤 전제에서 출발한다는, 그가 Heidegger의 っ선이해っ 개념에 기초해 발전시킨 ぢ선판단ぢ(Vorurteil)에 관한 이론, 2) 그 어떤 해석 대상, 즉 사태는 무수히 많은 의미 연관을 지니고 있고, 따라서 관점이 다름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로 주어질 수 있다는, 그가 Husserl과 Heidegger로부터 물려받아 나름대로 발전시킨 의미론, 3) ぢ해석학적 경험っ(hermeneutische Erfahrung)(GW 1, 352ff.)에 대한 분석에 토대를 두고있는 바, ぢ유한한 인간의식에 대한 역사의 힘っ(GW 1, 306)때문에 특정의 역사적 상황에 속한 유한한 인간의 의식은 한 순간에 이 많은 관점에 대한 ぢ절대적 인식っ(absolutes Wissen)(GW 1, 306)을 획득할 수 없다는, ぢ해석학적 의식っ(hermeneutisches Bewußtsein)(GW 1, 348ff.)에 관한 이론.



3) 해석학적 현상의 근본 구조


Gadamer는 이러한 이론들에 기초하여 다음과 같이 해석학적 현상의 구조를 분석한다: 그가 제시하는 현대예술에 대한 무수히 다양한 평가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해석학적 대상으로서의 그 어떤 ぢ사태っ(die Sache)가 처음으로 출현할 당시에는 유한한 인간의 의식은 어떤 선판단이 정당한지 ぢ사전에 혼자힘으로っ(von sich aus vorgängig)(GW1, 301) 확인할 길이 없으며, 따라서 역사의 제약속에 있는 해석자들의 다양한 해석학적 상황(hermeneutische Situation)(GW 1, 307ff.)때문에 정당성 여부를 ぢ검증할 수 없는 (많은) 선판단들っ(unkontrollierbare Vorurteile)(GW 1, 302)이 이 사태의 참된 의미를 해석해내기 위한 전제로서 등장하며, 나름대로의 권리를 주장한다. 참된 선판단과 그릇된 선판단에 대한 구별이 ぢ사전에っ 불가능하기 때문에 ぢ이러한 구별은 단지 (무한히 계속되는) 이해 과정 자체 내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다.っ(GW 1, 302) 따라서 각각의 선판단에 기초하여 ぢ전체와 부분의 순환 관계っ속에서 해석이 구체적으로 진행되며, 이처럼 해석이 진행되면서 각각의 선판단은 구체적으로 분절되면서 대상의 의미를 산출한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분절되어 나타난 모든 의미가 대상의 참된 의미는 아니며, 오직 특정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의미만이 참된 의미가 되는데, 그 조건은 다름 아닌 ぢ모든 개별적인 것이 전체와 일치함っ(Einstimmung aller Einzelheiten zum Ganzen)(GW 1, 296)이라는 기준이다. 따라서 해석 과정에서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말하자면 ぢ이해의 좌절っ(das Scheitern des Verstehens)(GW 1, 297)을 경험한 선판단들은 ぢ시간 간격っ(Zeitabstand)(GW 1, 296ff.)이 생김과 더불어 부당한 선판단임이 판명되면서 점차 걸러진다. 다른 한편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켜 ぢ여과 과정っ(die Filterung)(GW 1, 303)을 거친 선판단 역시 그때까지만 잠정적으로 타당한 선판단으로 간주될 뿐, 그것이 ぢ이해의 좌절っ을 경험하는지 계속해서 확인해보아야 한다. 충분한 ぢ시간 간격っ을 두고 이러한 확인 작업을 계속하였을 경우에도 계속하여 그 선판단(들)이 ぢ이해의 좌절っ을 경험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선판단(들)은 정당한 선판단으로 간주되며, 권위를 지닌 전통으로 자리잡게 된다.

물론 ぢ시간 간격っ이 지나면서 이렇게 형성된 전통(들) 이외에 그 전통들이 미치는 ぢ영향사っ(Wirkungsgeschichte)의 제약속에서 새로운 선판단이 출현할 수 있고, 그것에 기초한 이해및 해석이 상당한 시간 간격을 두고 이해의 좌절을 경험하지 않을 경우 또 하나의 새로운 전통이 탄생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작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선판단이 전통속에 있는 선판단과 대비되면서 ぢ부각되어っ(zur Abhebung bringen)(GW 1, 304), 양자 모두에게 마치 상호인정에 기초한 참대운 ぢ대화っ(Gespräch)의 대화 상대자처럼 나름대로의 고유한 권리가 부여되어야 하는데,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다름 아닌 ぢ영향사적 반성っ(GW 1, 307)에 기초한 ぢ영향사적 의식っ(wirkungsgeschichtliches Bewußtsein)(GW 1, 306ff., 348ff.)이다. 이처럼 시간 간격은 영향사적 의식과 더불어 ぢ적극적이며 생산적인 이해 가능성っ(GW 1, 302)을 보장해주는 요소이며, 그를 통해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의미들이 나타나는데, 바로 이러한 점에서 모든 참된 이해는 ぢ달리 이해함っ(anders verstehen)(GW 1, 302)이며, 동시에 ぢ더 잘 이해함っ(Besserverstehen)(GW 1, 301)을 의미한다. 시간 간격은 이처럼 결코 해석자와 해석대상을 갈라놓는 ぢ심연っ(Abgrund)(GW1, 302)이 아니며, 따라서 역사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ぢ자기 동일적인 객관적 의미っ로서의 ぢ대상의 참된 의미っ를 재구성하기 위하여 제거되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다. 대상의 참된 의미는 시간 간격의 너머에, 그리고 영향사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다양한 전통속에서 타당한 것으로 인정된 의미들의 ぢ통일체っ(GW 1, 305)이다. 이처럼 타당한 전통과 권위가 ぢ전체와 부분의 일치っ라는 기준에 근거하여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Gadamer는 이성을 통하여 획득된 권위있는 전통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전통 혹은 권위와 이성을 모순적이며 대립적인 관계로 파악하는 계몽주의 철학을 비판한다.



4) Gadamer의 해석학에 대한 비판적 검토


Gadamer는 이러한 해석학적 근본노선을 토대로 {진리와 방법}에서 ぢ미학적 해석학っ, ぢ정신과학적 해석학っ, 그리고 ぢ존재론으로서의 보편적 해석학っ을 발전시키고 있다. 예술, 역사등의 몇몇 영역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해석학적 현상에 대한 치밀한 발생적 분석, 계몽주의, 실증주의, 역사주의에 대한 비판및 그를 통해 인문주의적 전통을 부활시키려는 시도, 상호 인정에 기초한 대화이론의 전개등은 그의 해석학이 이루어낸 커다란 공적이다. 다른 한편 그의 해석학은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중요한 몇 가지 문제만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그의 해석학은 방법론적으로 많은 문제들을 지니고 있다. 그는 방법을 거의 거부하면서 단지 ぢ현상학적 기술의 성실성っ(die Gewissenhaftigkeit phänomenologischer Deskription)(GW 1, 5)만은 철저히 견지하고자 하는데, 과연 그가 이러한 약속을 얼마나 이행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오히려 우리는 그가 예술, 역사등의 영역에 대한 기술적 분석을 토대로 그의 해석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인간의식의 유한성, 시간 간격, 영향사등의 몇몇 원리들을 발견해내고, 이러한 원리들로부터 거의 무차별적으로 모든 해석학적 현상의 구조를 ぢ연역해내면서っ ぢ존재론으로서의 보편적 해석학っ까지 일률적으로 ぢ구성해내고っ 있다는 인상을 씻을 수 없다. 만일 이러한 우리의 의심이 정당하다면 그는 그가 비판하고자 한 방법론적 일원론자들이 범한 오류와 - 다만 그 방향만 다를 뿐 - 거의 유사한 오류를 범하고있는 셈이다.

2. 그의 해석학이 안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타당성의 문제와 발생의 문제가 명료히 구별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 점과 관련해 타당성의 문제에 대한 해명은 발생의 문제에 대한 해명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그가 Nietzsche, Dilthey등과 부분적으로 공유하는 근본 신념이 과연 어느 정도 타당한가 검토되어야 한다. 글쓴이는 적어도 해석학적 현상과 관련해 이 두 문제는 비록 밀접히 연결되어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명료히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두 문제에 대한 명료한 구별의 부재는 - 다소 불명료한 서술 방식과 더불어 - 1960년대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와 E. Betti, K.-O. Apel, J. Habermas, J. Derrida 사이에 진행된 해석학 논쟁이 논쟁 당사자들 사이에 불필요한 많은 오해가 따르고, 경우에 따라서는 - 그와 Derrida의 논쟁의 경우처럼 - 대화조차 이루어지지 못하는 등 비생산적인 논쟁으로 끝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다.

3. 더 나아가 그의 해석학은 해석학적 현상의 타당성 구조 해명과 관련해 큰 난점을 지니고 있다. 그는 어떤 선판단이 ぢ전체와 부분의 일치っ라는 기준을 만족시키면 그것은 곧 ぢ옳은っ(richtig) 선판단이며, 따라서 이성과 전통이 대립적인 것이 아니며, 이성적인 전통도 있다도 말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Habermas가 그와의 해석학 논쟁에서 주장하듯이 Gadamer가 전통이 모두 ぢ폭력없이っ 이성적으로 수립되며, 따라서 모든 전통이 권위를 지닌 정당한 전통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Gadamer의 근본 입장은 폭력적이며 비이성적인 전통도 있으나, 그것들은 ぢ이성적っ이라는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므로 결국에는 ぢ권위상실っ, ぢ권위추락っ(GW 2, 244)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 스스로 ぢ우리가 무엇 때문에 논쟁하는지 더 이상 모르겠다っ(GW 2, 245)고 실토하듯이 Habermas의 근본입장과 유사하다. 이와 관련하여 참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비합리적이며 왜곡된 전통도 존재한다면 이의 극복이 철학의 과제로 등장하는데, Gadamer는 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비합리적이며 왜곡된 전통의 정체 해명및 극복을 위해서는 해석학적 의식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이른바 ぢ초해석학적 의식っ(metahermeneutisches Bewußtsein)이 필요한데, 그 예로는 Husserl의 반성적 직관, Heidegger의 정황적 직관뿐 아니라, Apel이 선험적 화용론 구축의 토대로 삼는 바, 그에 기초하여 토론자들이 ぢ무제약적으로 비판적인 의사소통집단이라는 전제っ를 언제나 선행적이며 암묵적으로 정립하고 인정하는 ぢ선험적 반성っ(transzendentale Reflexion), Habermas가 비판이론 구축의 토대로 삼는 바, ぢ비판적 관심っ과 연결된 대화 참여자들의 ぢ자기 반성っ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타당성 구조 해명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또 다른 문제는 이성에 대한 그의 규정이 너무 불충분하지 않은가, 다시 말해 이처럼 추상적이며 형식적으로 정의된 ぢ전체와 부분의 일치っ라는 의미의 ぢ옳음っ을 구체적 내용을 지닌 전통의 ぢ이성적임っ과 동일시할 수 있는 것인가, 따라서 ぢ전체와 부분っ이 한결같이 일치할 경우에도 전통이 ぢ비이성적일ぢ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등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무엇보다 앞서 이루어져야 할 작업은 치밀한 현상학적 분석을 토대로 다양한 유형의 해석학적 현상에서 기능하는 다양한 유형의 이성을 구별하는 일이다.


바로 결정적으로 중요한 이러한 몇 가지 이유 때문에 ぢ해석학적 현상의 총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함っ이라는 그의 목표가 달성되었는지, 그리고 그의 해석학이 그의 주장처럼 ぢ모든 책임있는 철학함을 수반해온 하나의 새로운 비판적 의식っ(GW 1, 5)을 참으로 구현하고 있는 철학인지 아주 의심스럽다. 앞서 어떤 해석 대상이 출현하는 순간 ぢ무수히 많은 의미 연관っ과 인간 의식의 유한성 때문에 무수히 많은 ぢ검증 불가능한 선판단들っ이 출현함이 필연적이며, 충분한 시간 간격이 지나지 않으면 어떤 선판단이 타당한지 알 수 없다는 그의 입장을 살펴보았는데, 이는 그의 해석학이 어떤 처방을 요구하는 절박한 현실적 문제들에 대해 어떤 진단조차 내리지 못하면서 속수 무책인 무비판적인 철학이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ぢ나는 Heidegger의 근본 노선을 충실히 따르려고 하였다っ는 반복되는 -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Heidegger-Gadamer의 관계에 대한 논의에서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 그의 주장이(GW 1, 258ff., 270ff., GW 2, 422) 어느 정도 사실에 부합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가 ぢ해석학적 현상っ의 발생의 구조를 철저하게 분석하였고, 언어에 대한 Heidegger의 근본 통찰을 바탕으로 ぢ대화 이론っ을 전개해 나갔다는 점에서 그는 Heidegger의 해석학적 현상학의 - 더 나아가 Husserl의 발생적 현상학의 - 근본 노선을 충실히 따랐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점에서 Heidegger가 개척해놓은 ぢ깊고, 단단하고, 근원적인っ ぢ땅っ을 그가 ぢ도시화시켰다っ(urbanisieren)는 Habermas의 평가는 타당하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한편 그의 해석학의 전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그의 Heidegger 해석에 커다란 문제가 있으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는 아주 결정적인 점에서 Heidegger가 - 그리고 Husserl이 - 개척해놓은 ぢ깊고, 단단하고 근원적인 땅っ을 두루 살펴보지 않고 다른 길을 걷게 됨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예를 들면 Gadamer는 ぢ우리가 심려의 시간구조에서 어떤 특정의 실존 이념을 읽어내려 한다면, 이는 단적인 오해이다っ(GW 1, 267)라고 말하는데, 이러한 그의 견해는 정당하지 않다. 앞서 ぢ불안っ의 경우에 살펴보았듯이 심려의 한 계기인 정황성은 현존재에게 ぢ현사실성っ으로 ぢ던져진っ 그의 퇴락한 실존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그에게 자신을 ぢ기투해っ 나가야 할 목표인, 퇴락의 양상에서 해방된 근원적인 ぢ실존 이념っ(Existenzidee)(SZ, 232ff., 302, 313ff.)을 개시해주며, 바로 이러한 점에서 - Gadamer의 견해와는 달리 - ぢ실존론적 해석의 모든 단계는 실존 이념을 통해 주도되는데っ(SZ, 302), 이는 후기의 존재 사유에 대해서도 타당하다. 바로 Heidegger의 해석학이 추구하고자 한 근원적인 이념을 이처럼 오해하기 때문에 그는 ぢ기투っ가 아니라, ぢ피투성っ(Geworfenheit)을 ぢ현사실성의 해석학의 핵심っ(die Pointe der Hermeneutik der Faktizität)(GW1, 269)으로 간주하는데, 바로 이처럼 피투성을 현사실성의 해석학의 핵심으로 이해하면서 Gadamer가 발전시킨 것이 다름 아닌 그의 해석학의 근본 원리인 ぢ해석학적 의식っ이다. 따라서 Gadamer의 해석학에 Heidegger의 해석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ぢ근원적 기분っ에 대한 논의는 고사하고, 그에 대한 언급조차 나타나지 않는데, 이러한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Husserl과 Heidegger의 철학을 대하면서 철저한 비판의식 없이 그들이 이루어놓은 ぢ전통っ을 ぢ도시화시켜가면서っ 단지 보존.발전시킴을 자신의 철학의 과제로 삼고, 거기에 나름대로의 ぢ선판단っ, 혹은 ぢ오해っ가 따르면서, 그가 결정적인 대목에서 이 둘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음을 확인하는데, 이러한 사실은 Husserl과 Heidegger가 현대를 극단적인 ぢ위기っ({위기}), ぢ최고의 위험っ(GA 7, 37ff.)에 처해 있다고 진단하면서 ぢ놀이 의식っ이 아닌, 오직 ぢ실존적 진지함っ에서 유래하는 철저한 방법론적 의식과 비판 의식을 통해 이를 극복함을 그들의 현상학의 과제로 삼고 있음과는 달리, 그는 역사를 っ사건이 스스로 일어남っ(ein Geschehen von der Sache)(GW 1, 489)으로서의 일종의 ぢ놀이っ(Spiel)(GW1, 489ff.)로 규정하면서, 현대가 처한 상황에 대해 그 어떤 진단조차 내리고 있지 않음을 보면 분명해진다.



5. 맺음 말: ぢ현상학적 해석학 논쟁っ의 성격및 필요성


이처럼 Husserl과 Heidegger가 철두철미 견지하고자 한 철저한 방법론적 의식과 비판 정신이 Gadamer의 해석학에서 퇴색하고 마는데, 그 결정적인 이유는 Gadamer가 ぢ해석학적 의식っ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그것이 Husserl의 반성적 직관, Heidegger의 해석학적 직관과 필연적으로 대립관계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과 결합되면서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바로 이러할 경우에만 그의 해석학에 들어있는 - 앞서 지적된 문제들 뿐 아니라, 그 이외의 - 많은 문제들이 극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에 대한 간과는 단순히 그의 해석학에 문제를 안겨주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해석학 논쟁이 알려주듯이, 그의 직접적.간접적 영향하에서 전개되어온 1960년대 이후 오늘날에 이르는 철학의 전개과정에서도 - 무엇보다도 방법론적으로 -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오늘날의 철학이 앞서 지적되었듯이 극단적인 ぢ의사소통의 한계っ를 경험하면서 혼미한 상황에 빠지는데 일조하고 말았다. 오늘날 철학이 처한 이러한 혼미한 상황을 고려하면 ぢ현상학적 해석학 논쟁っ의 성격을 지닐 수 있는 Husserl-Heidegger-Gadamer에 대한 비교 연구는 이러한 혼미한 상황의 극복 문제와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그 이유는 지금까지의 해석학 논쟁이 특정 몇몇 철학 분야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논쟁 참여자들의 서로 다른 철학적 배경 때문에 적지 않은 오해와 더불어 사태 해명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한 다소 성과없는 논쟁으로 끝나고 말았음과는 달리, 이러한 ぢ현상학적 해석학 논쟁っ은 반성적 직관, 해석학적 직관, 해석학적 의식의 문제등 보다 더 포괄적이며 근원적인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동시에 Husserl과 Heidegger가 견지하고자 한 철저한 방법론적 의식과 비판정신에 기초해 무엇보다도 방법론적으로 불필요한 오해을 극소화시키면서 진행되는 생산적인 논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