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칸트의 결합 개념에 대한 초월적 고찰

나뭇잎숨결 2020. 7. 28. 11:15

칸트의 결합 개념에 대한 초월적 고찰


황 순 우*독일 기쎈대



요 약 문
칸트는 범주의 초월 연역론 (재판) 15장에서부터 결합 개념을 ―알려진 통설과는 달리― 이미 본격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근원적 결합은 지성 행위와 감성적 직관의 체계적 관련성에 대한 지속적인 토대를 마련해 주는데, 이것은 곧 연역 자체의 실질적인 시작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논문은 15장에서 전개되고 있는 칸트의 근원적 결합 개념에 대한 심층적 분석으로서, 결합과 직관이라고 하는 근본적인 개념들과, 연역의 전체적 관련 속에서 15장이 갖는 체계성의 의미를 밝혀 보고자 한다.
1장은 결합 일반에 대한 개념 규정이다. 근원적인 선험적 결합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원칙적으로 다음과 같은 두 문장에 의지하고 있다. i) 모든 결합은 지성 행위이다. ii) 이 지성 행위는 근원적으로 (ursprünglich) 하나이고 모든 결합에 한결같이 유효하다. 두 문장을 중심으로 하는 분석 방법은, 결합 개념으로부터 얻어지는 선험적 인식의 의미를 연역에 내재되어 있는 초월적-논리적인 구조와 연결시킴으로써, 결합을 이중적 의미를 지닌 하나의 개념에 근접시킨다. 근원적인 선험적 결합은 근원적인 선험적 지성 행위, 즉 결합행위(ein transzendentaler Verbindungsakt)이기도 하고, 또한 이와 같은 행위에 의해 만들어진 초월적 표상, 즉 결합표상(eine durch diesen Akt konstituierte, transzendentale Verbindungs- vorstellung)이기도 하다.
2장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 근원적 결합에 대한 세밀한 분석에 해당된다. 여기에서는 근원적 결합이 선험적 인식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로서 표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초월적인 선험적 인식 요소의 의미는 다음과 같은 칸트식의 표현에 함축되어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일련의 표상들이 선험적으로만 사용되거나 또는 가능할 것인가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하며, 그리고 이처럼 선험적으로만 사용된다거나 또는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함께 바움(M. Baum)의 고찰 방식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서 초월적 고찰 방식을 제시한다.
3장은 선험적 인식 요소들에 대한 초월적 고찰의 계속이다. 선험적 인식 요소들이라 함은 범주와 결합 개념뿐만 아니라, 직관 개념 또한 이에 포함되기에, 초월 연역론이 갖는 초월 감성론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직관 개념을 고찰하고자 한다.

※ 주요어 : 칸트, 범주의 초월 연역론, 결합, 직관



I. 결합 일반 개념

시간과 공간이라는 순수 직관 형식 속에 주어진 대상은, 범주라고 하는 순수 지성개념들에 의해 규정됨으로써 그 대상에 대한 인식이 형성된다. 이와 같은 감성과 지성의 결합은 곧 초월 논리학에 있어서의 범주의 감성에 대한 적용 또는 사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감성과 지성의 결합에 의한 인식 형성의 가능성을, 칸트 스스로 “진리의 논리학”이라고 부르는 초월 논리학의 본질적 측면에서 따져 보면 다음 두 가지로 축약할 수 있다.
첫째는 초월 논리학이 “인식의 모든 내용, 즉 객체에 대한 인식의 모든 연관을 추상화하지 않고, 오히려 표현해” 내는 데에 있다. 그는 여기에서 지성과 감성의 결합에 의해 가능해 지는 인식의 내용이라는 개념을 연관(Beziehung) 개념과 동일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는 초월 논리학 자체의 가능성이 근거를 두고 있는 통각의 “근원적-종합적 통일”이라는 객체 인식의 근원에 있다. 이로써 초월 논리학에서의 인식의 모든 내용, 모든 연관은 근원적인 성격을 갖게 된다. 즉, 객체에 대한 모든 연관 속에, 인식의 모든 내용 속에 통각의 초월적 통일은 그들의 초월적 근거로서 포함되어 있다. 이 통일은 모든 인식의 통일성을 지원하는 조건이기에 최고의 근거인 셈이다. 그러므로 통각의 초월적 통일은 지성 사용에 있어 최고 원리로서, 직관의 다양에게 통일성을, 그리고 동시에 판단의 개념들에게도 동일한 통일성을 지원해 준다. 초월 논리학 자체는 이에 근거하고 있다.
범주도 이 초월적 통일에 근거하며, 자신의 초월적-논리적 사용에 의해 객체에 대한 선험적인 연관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것을 초월적인 선험적 인식이라고 한다. 우리가 직관들이건 개념들이건 간에 이러한 표상들이 “어떻게 선험적으로만 사용되거나 또는 가능한가”를 어떤 하나의 선험적 인식을 통해 알 수 있다면, 그리고 이처럼 “선험적으로만 사용된다거나 또는 가능하다”는 것을 또한 어떤 하나의 선험적 인식을 통해 알 수 있다면, 이러한 인식이야말로 초월적이다. 초월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고 또한 구분할 수 있게끔 하는 역할을 우선적으로 맡은 것이 재판 연역 15장에서부터 전개되는 근원적인 선험적 결합 개념이다. 초월 연역의 이 같은 “시작”은 범주의 사용 또는 감성과 지성의 결합이 근원적이고도 선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근원적인 선험적 결합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관점으로 설명되고 있다. 첫째는 선험적 지성 행위로서 결합(ein transzendentaler Verbindungsakt)은,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일련의 표상들이 선험적으로만 사용되는지 또는 가능한지를 인식하게끔 한다. 둘째는 초월적 표상으로서 결합(eine transzenden- tale Verbindungsvorstellung)은, 우리로 하여금 이와 같은 하나의 표상이 선험적으로만 사용되거나 또는 가능함을 인식하게끔 한다. 이 같은 초월적인 선험적 인식에 대한 칸트의 주목이 실질적으로 연역의 전개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이는 그 자신의 언급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다.
[...] 여기에서 하나의 주를 달고자 한다. 이 주는 다음에 전개될 모든 고찰에 영향을 줄 것이고, 우리가 당연히 눈앞에 두고 있어야만 한다 (A 56/B 80).

왜냐하면 칸트가 주목하는 바로 이 두 가지 관점을 통해, 근원적인 선험적 결합은 재판 연역에서 범주의 객관적 타당성을 증명하기 위한 하나의 근본 논제로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 일반의 결합은 15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되고 있다.

i) “결합은 모든 표상들 가운데 객체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 주체 스스로에 의해서만 행해질 수 있는 유일한 표상이다. 이 표상은 그것의 자발성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ii) 결합은 이 같은 “행위로서 근원적으로 하나이고 모든 결합에 한결같이 유효해야 한다”.
iii) 그럼에도 결합은 “결코 감관을 통해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감성적 직관의 순수 형식 속에 또한 동시에 함께 포함되어 있지 않다” (15장 B 129/130).

결합이란 지성의 자발성에 기인하는 순수 행위이다(i). 이는 앞서 서술했던 칸트의 주목에서 첫 번째 관점에 상응한다. 지성의 이 같은 자기 활동적 행위는 근원적으로 동일한 하나의 행위이며, 따라서 모든 결합 일반에게 한결같이 유효하다(ii). 칸트는 결합의 이러한 특징으로 인하여 지성 자체를 선험적으로 결합하고, 그리고 주어진 표상들의 다양을 통각의 통일 아래로 가져다 주는 능력으로 일컫고 있다. 이에 따라 지성은 감성과 대비되는데, 결합은 지성에 의해서만 수행되며, 순수 직관 형식들은 비록 감성에 단순히 주어지는 모든 것들의 가능성에 대한 선험적 최고 조건이지만, 이러한 결합을 근원적으로 포함할 수는 없다(iii). 다양 일반의 결합은 곧 하나의 근원적 지성 행위로서, 우리는 이를 통해 “어떻게 일련의 표상들이 선험적으로만 사용되거나 또는 가능한가”를 인식하게 된다.
칸트의 두 번째 관점에 의하면, 표상들은 이와 같은 결합 행위를 통해 하나의 순수한 표상으로 만들어지고 따라서 선험적으로 사용된다. 결합은 모든 표상들 가운데 순수하게 지성으로부터 산출된 유일한 표상인 셈이다. 물론 이때 지성의 자발적 행위는 모든 표상들 속에서 당연히 동일한 하나의 근원적 행위이다. 그러므로 다양 일반의 결합은 모든 표상들 가운데 오로지 주체 스스로가 형성한 표상이며, 이 결합을 통해 우리는 일련의 표상들이 “선험적으로만 사용되거나 또는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결합은 근원적인 선험적 지성 행위이면서 동시에 이와 같은 행위에 의해 구성된 초월적 표상이기도 하다.

첫 번째 관점은, 우리가 결합을 의식하든 또는 그렇지 못하든 간에, 그리고 감성적 또는 비감성적(nicht sinnliche) 직관의 다양의 결합이든지 간에 관계없이, 모든 결합이 동일한 하나의 근원적인 선험적 지성 행위이어야 함을 진술하고 있다. 두 번째 관점은, 모든 근원적 결합은 근원적 결합행위를 통해 형성된, 다양 속에서의 통각의 근원적-종합적인 통일에 대한 순수한 표상이어야 함을 진술하고 있다. 결합에 대한 칸트 자신의 정의에 의하면, “결합은 다양의 종합적 통일에 대한 표상이다” (15장, B 130/131). 두 가지 관점에 의한 그의 진술은 특히 15장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문단과 관련하여, 어떻게 근원적인 선험적 결합 개념이 직관 개념과 연관하여 연역의 구조 속에서 정당하게 타당성을 요구할 수 있을까라는 고찰 방식에 관한 것이다.
이와는 달리, 바움(M. Baum)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그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칸트 사고의 ‘인식비판적인’ 이분법적 구조 ― 감성과 지성, 직관과 개념, 현상과 사물 그 자체 등 ― 를, 결합 개념을 파악하는 데에 확실하게 잣대로 내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합이 무엇보다 먼저 감성적 직관에 의지(Angewiesenheit)해야만 결합 일반이 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감성적 직관의 다양의 결합이든 또는 비감성적 직관의 다양의 결합이든지 간에 관계없이, 모든 결합이 동일한 하나의 근원적인 선험적 지성 행위이다는 칸트의 진술에 어떠한 문제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바움의 고찰 방식을 비판적 고찰(eine kritische Betrachtungsweise)이라 일컬을 수 있다.
물론 범주는 감성적 직관을 매개로 이론적 인식을 창출할 뿐이다. 이는 당연히 맞는 말이다. 따라서 칸트의 진술에서 비감성적 직관이라는 표현과는 “관계없이” 결합 개념을 인식비판적으로 규정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결합 개념을 연역 전체의 맥락 안에서 고찰할 때에는, 바움의 비판적 고찰 방식으로는 “모든” 결합이 동일한 하나의 근원적인 선험적 지성 행위이면서도 또한 이 행위를 통해 만들어진 하나의 초월적 표상이기도 하다는 것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의 선택적 대안으로서 다른 고찰 방식을 제안할 수 있는데, 우리는 이 방식을 초월적 고찰(eine transzendentale Betrachtungsweise)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이 고찰을 통해서야 비로소 “모든” 근원적 결합은 연역 전체의 맥락 안에서 선험적 인식의 요소로서 간주되고, 또한 그렇게 되는 것이 타당하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이 논점이 그리고 계속되는 분석이, 첫째는 감성 요소들과는 대비되는 지성 요소들에 관한 것이 아니고, 선험적 인식 요소들에 관한 것으로, 연역의 끝 부분(27장, B 169)에 있는 칸트의 언급과 일치한다. 즉, 연역에서는 초월철학의 요소 개념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연역 속에 보여지는 장 구분이 요구된다. 둘째는 연역 전체의 구조적인 체계성을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밝혀 내면서, 동시에 15장에서의 결합 개념 규정을 이와 연관하여 어떠한 방식으로 정당하게 고찰할 수 있을까라는 고찰 방식에 주안점을 둔다는 것이다.
순수 지성개념들의 초월 연역에서의 선험적 인식, 더 나아가 또한 인식 일반의 요소들 또는 요소 개념들에 대한 초월적 고찰은 우리로 하여금 연역의 “시작”에 눈을 돌리게 한다. 다양과 이 다양을 포함하는 직관의 근원적 결합이 연역 속에서 선험적 인식에 대한, 따라서 인식 일반에 대한 요소임을 요구하면서, 연역은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는 또한 통각의 초월적 통일이 근원적 결합과 범주를 통해 직관 속에서 근원적-종합적으로 찾아질 때 그 타당성을 획득하게 되고, 이로써 범주의 객관성에 대한 정당화의 길이 트이게 된다.


II. 선험적 인식 요소로서의 근원적 결합

칸트가 선험적 지성 행위로서 근원적 결합을 규정하고 있는 첫 번째 관점에서 보면, 지성에 의해 직관의 다양이 결합되는데, 이때의 직관은 감성적인 직관일 뿐만 아니라, 또한 비감성적인 직관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이로 인해 모든 결합 개념들이 갖는 지성 행위와의 관련성을 연역의 전체 맥락 속에서 정당화하기에는 힘들게 여겨진다. 예를 들면 비감성적 직관의 객체라고 하는 개념이 직접적으로 설명되고 있는 23장에만 어려움이 있는 것이 아니다. 22장을 살펴봐도 15장의 지성 행위가 비감성적 직관에는 유효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초월 감성론의 결실에 대한 칸트의 짤막한 언급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우리에게 가능한 모든 직관은 감성적이다 (감성론).” 우리가 참된 인식을 얻고자 한다면, 모든 지성 행위를 궁극적으로 직관과, 따라서 우리에게는 감성과 연관시켜야 한다 (A 19/B 33). 왜냐하면 선험적 지성 행위에 의해 결합되어야 할 다양 일반은, 감성적 직관이 가지는 다양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움은 15장에서 직관과 연계시켜 결합 개념을 규정하는 가운데 열거된 비감성적 직관의 표현을 지성 행위의 두 가지 성격, 즉 그 지성적인 것(Intellektualität)과 감성에 의지하는 것(Angewiesenheit)을 통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비감성적 직관을 초감성적(übersinnliche) 직관 개념으로 대치시키고, 이 직관을 범주의 지성적 성격과 연관시키고 있다. 물론 범주는 주어진 특정한 전제 아래 감성적 직관뿐만 아니라, 또한 초감성적 직관과도 연관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범주의 지성적 성격을 인식비판적 의미에서 받아들이고 있다. 정확히 말해, “이 같은 사용은 사물에 대한 특정한 이론적 인식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객체 일반에 대한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제한이 항상 따른다.” 그러나 지성에 의해 결합되는 다양 일반은 이 지성을 통해서가 아닌, 감관, 즉 감성적 직관 속에 주어져야 한다.

[...] 우리 지성이 감성적 직관에 의지한 채 행하는 것을 종합이 나타낸다면, 이 종합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일반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 지성에 의해 실행되는 종합은 언제나 이미 시간과 공간 속의 다양의 종합, 또는 시간과 공간 속에 현상하는 것의 종합인 것이다.

바움은 지성 행위가 감성적 직관에 의지하는 것에 주안점을 둠으로써, 15장의 첫 문단에서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판단한다. 앞서 말했듯이, 여기에서의 논점은 어떻게 근원적인 선험적 결합이 갖는 타당성에 대한 요구를 연역의 구조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지, 그 고찰 방식에 관한 것이다. 당연히 우리는 바움이 비판적 의미에서 말하는 것을 받아들인다. 즉, 비감성적 직관의 결합으로부터는 단순히 생각해 낸 사물(Gedankending)이 만들어질 뿐이며, 이러한 사물에 대한 인식은 현상으로서의 객체에 대한 인식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모든 결합이 선험적 지성 행위라면, 결합은 감성적 직관의 다양을 결합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바움의 비판적 고찰은 자신이 의도했던 것말고도 또 다른 결과를 수반할 수 있다. 그가 결합 개념을 지성 행위가 감성적 직관 일반에 의지하는 측면에서 일차적으로 규정하고 있음은, 지성 행위는 모든 결합 일반을 다름 아닌 감성과의 연관 속에서 만들어 낼 때 비로소 그 이름값을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순수 지성개념들의 초월 연역에서의 지성 행위는 감성적 직관에게 의존하는 성격이 본질적인 것으로 비추어 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결국 지성 행위의 감성적 직관에의 의지 없이는 결합 개념이 전혀 가능하지 않음을 함축하고 있다. 이에 반해 칸트는 모든 결합은 모든 표상들 속에서 지성의 자발성에 기인하는, 동일한 하나의 근원적 행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행위가 근원적인 이유는, 자신의 동일성 속에서, 즉 동일한 하나의 행위로서 감성의 모든 조건들에 앞서 지성에 의해 순전히 자발적으로, 따라서 선험적으로 수행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선험적 인식을 형성하게 된다. 결합 일반을 만들어 내는 지성 행위는 근원적으로 하나이며 모든 결합에 한결같이 유효하다는 것이 지성 행위의 본질적 규정인데, 이러한 규정은 결국 바움류의 비판적 고찰에 자리잡고 있는 감성에의 의지 없이도 가능해야만 한다.
모든 결합은 모든 표상들 속에서 동일한 하나의 근원적이고 순수한 행위이다는 요구는 범주의 지성적인 측면에 대한 바움의 비판적 고찰로는 그 타당성을 획득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즉, 이 방식에 의해서는 결국 초감성적 직관의 다양을 결합하는 경우, 동일한 하나의 근원적 지성 행위가 다른 모든 경우처럼 한결같이 유효할 수는 없다. 비감성적 직관을 초감성적 직관으로 이해한다면, 바움에게 그러하듯이 필연적으로 객체 개념이 초감성적 직관의 객체로서 그 직관에 연관된다. 우리가 어떠한 개념도 가질 수 없는 객체에 대한 생각 일반이 초감성적 직관에 일치하는 셈이다.
만약 이처럼 단순히 생각해 낸 객체를 이제껏 언급한 결합 방식을 통해 인식 그 자체의 대상으로 주장한다면, 이 객체 일반(Gedanke eines Objekts überhaupt)은 단지 초험적일 뿐이고, 또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에 반해 주체는 어떠한 초감성적 직관력도 겸비하고 있지 않다. 비감성적 직관의 객체는 순수 지성개념들에 의해 규정되어 표상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 객체 개념에 상응하는 어떠한 직관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직관은 이 객체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어떤 것에 한번이라도 한 개의 범주조차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23장, B 149).

초감성적 직관이 우리에게는 주어진 것도 아니고 또한 결코 주어질 수도 없다는 칸트적인 인식비판적 사실로부터 다음과 같은 점들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은 단순히 생각해 낸 사물 또는 객체 일반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für uns nichts”)는 사실이다. 두 번째로는 모든 결합에 한결같이 유효한 지성 행위는 이 경우, 즉 초감성적 직관이 갖는 다양을 결합하는 경우에는 아무 것도 우리에게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성은 비감성적 직관의 생각해 낸 객체에 대해서는 어떠한 것도 결합할 수 없으며, 이 객체에 대해 “경험 속에서 결코 묻지 않는다” (A 30/B 45). 따라서 비감성적 직관과의 연관에서는 근원적인 선험적 결합이 통일성과 보편성을 요구할 수 없으며, 모든 결합은 동일한 하나의 근원적인 선험적 지성 행위이다는 명제를 주장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근원적 지성 행위의 요구를 15장의 첫 번째 문단에서 읽을 수 있는데, 그곳에서 칸트는 결합 개념을 ― 이미 객체 개념과 연관시키고 있지만 ―, 어쨌든 객체 개념보다 먼저 다루고 있다. 이 두 개념, 곧 결합과 객체 개념은 서로 초월적 의미로 연결되어 있다. 모든 결합은 모든 표상들 속에서 동일한 하나의 근원적인 선험적 지성 행위이며, 칸트는 이 결합 또는 행위를 종합이라는 개념으로 적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객체를 먼저 결합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객체 속에 결합한 것으로 표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15장, B 129/130). 다양한 표상들은 근원적인 지성 행위를 통해 하나의 선험적 표상 속에 결합되는데, 이로써 이 하나의 표상은 오로지 선험적으로 사용되거나 가능해진다. 그리하여 이 하나의 표상은 마침내 객체 속에 결합되어진 것(Verbundensein)의 표상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결합의 객체와의 구조적 관련성이 범주의 초월 연역에 대한 칸트의 사고 과정에 있어 원리적 관점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이미 15장에서부터 파악된다. 어떠한 결합일지라도, 모든 결합은 객체 규정으로 나아가는 지성 행위임에 틀림없다. 어떠한 객체일지라도, 어떤 하나의 객체가 지성에 의해 규정되고 인식된다면, 동일한 하나의 지성 행위는 이에 대해 하나의 초월적 조건으로서, 다양으로서의 일련의 표상들이 하나의 표상으로 되고, 따라서 하나의 객체 속에서 결합되도록 이미 영향력을 행사한다. 우리의 지성 행위에 속하는 어떤 하나의 결합을 통해, 하나의 직관에 주어진 다양한 표상들이 하나의 표상에 모두 함께 속하게 되고, 또한 이 결합을 통해 이 같은 표상, 즉 함께 속함의 표상이 선험적으로 표상되어진다는 것은, 다양한 표상들의 선험적으로, 따라서 필연적으로, 결합되어진 것에 대한 표상을 의미한다. 이로써 그 다양한 표상들은 하나의 경험적 객체가 되는 것이다.
근원적인 선험적 결합이 하나의 객체를 이루는 모든 표상들에 있어 동일한 하나이며 근원적인 선험적 지성 행위로서, 그리고 이 행위에 의해 만들어진 선험적 표상으로서 요구하는 그 정당성은 이러한 결합 일반, 즉 선험적 지성 행위와 표상으로서의 결합이 초월적 조건으로 진술될 때에만 가능할 터이고, 이 조건은 다름 아닌 선험적 인식에 대한, 그리고 더 나아가 인식 일반에 대한 요소로 고찰되는 경우에서이다. 이 고찰 방식이 근원적인 선험적 결합에 대한 초월적 고찰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고찰 방식을 통해 근원적 결합에 대한 칸트의 두 번째 관점에 이르게 된다.

결합은 다양의 종합적 통일의 표상이다. (15장, B 130/131).

결합에 대한 이 하나의 개념 정의는, 결합이 동일한 하나의 근원적인 선험적 지성 행위에 의해 만들어진 초월적 표상임을 말해 주고 있다. 결합은 필연적으로 객체 규정을 그 목적으로 하고, 따라서 선험적 인식을 구성하는 한 요소라는 사실은 선험적 인식의 초월적 근거에 의존한다. 즉, 선험적으로 모든 결합 개념에 앞서 있는 통일은 다양에 추가됨으로써 결합 일반을 비로소 가능하게 한다. 이 의미에서 결합은 다양 일반의 종합적 통일에 대한 하나의 순수한 표상이다. 다양의 결합은 객체 규정을 가능하게 하는, 그리하여 경험 속에서의 객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서, 모든 결합 방식에 관여하는 동일한 하나의 지성 행위와 근원적으로 초월적 의미에서 일치한다.
종합적 통일은 다양의 표상에 추가됨으로써 결합 개념을 가장 먼저 가능하게 만드는데, 이 통일은 곧 통각의 근원적 종합적 통일이다. 통일은 한편으로는 경험 속에서 다른 모든 가능한 결합들에 대하여 초월적 타당성을 가지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 결합들과 일치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결합들은, 근원적으로 하나이며 모든 결합 방식에 한결같이 유효한 동일한 하나의 지성 행위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종합, 즉 결합은 다름 아닌 순수 지성개념들의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모든 순수 지성개념들은 이러한 통일을 모든 부분들의 전체에 대한 초월적인 근거라는 의미에서 “질적인” 통일로 전제하고 있다. 왜냐하면 통일을 근원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것은 “판단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개념들의 통일 근거와, 그리하여 지성 가능성의 근거를 심지어는 지성의 논리적 사용 속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15장, B 131). 이 최고의 초월적 근거에 의존하여, 모든 지성 행위는 근원적으로 하나일 수 있다. 따라서 지성은 범주를 통해, 다양의 결합을 초월적으로 구성된 하나의 표상으로 만듦으로써, 다양 일반을 초월적 인식 영역으로 정당하게 끌어들이고 있다. 그러므로 지성의 결합은 표상들이 하나의 표상 속에 결합되고, 그리고 마침내 하나의 객체로 구성되게끔 그 가능성을 열어 준다. 이로써 객체에 대한 선험적 인식과 모든 인식 일반이 가능해 진다.
초월적 고찰에 따라 근원적 표상은 순수 지성개념들의 객관적 타당성을 증명하는 데에 기여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 연역 15장은 16장에서부터 시작하는 진정한 증명 과정을 위한 한낱 과도기적 성격을 갖는다고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칸트는 초판 연역과는 달리, 재판 연역을 15장에서 근원적인 선험적 결합 개념으로써 시작하고 있다. 이 연역의 시작은 동시에 증명의 진정한 시작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직관이 포함하고 있는 다양은 범주를 통해 인식될 수 있는 하나의 객체가 될 수 있도록, 결합 개념의 손안에 들어온다. 결합은 직관의 다양에 대한 근원적-종합적 통일의 표상이다. 결합 일반은 인식 일반, 즉 사물에 대한 인식 ― 이때의 사물은 물론 칸트적 의미에서의 현상을 가리킨다 ― 을 가능하게 한다는 시각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모든 결합은 지성 행위로서 선험적 인식 가능성을 설명하는 데에 기여하고, 더 나아가 범주의 객관적 타당성에 기여한다는 초월적 의미를 가지고 연역 속에 자리잡고 있다. 이것이 곧 모든 결합은 연역에서 동일한 하나의 근원적인 지성 행위임과 동시에 이 행위를 통해 구성된 선험적 표상임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그 가능성을 위한 기준이 된다. 이에 따라 비감성적 직관에 연관된 결합은 “초월철학에 속할 수 없는” 것이다. (24장, B 152).
지성 행위의 본질적 규정, 근원적으로 하나이며 모든 결합 방식에 한결같이 유효하다는 규정은, 이 행위의 감성에 대한 의존에 일차적으로 근거하지 않는다. 앞서 말한 기준은 범주의 초월 연역론에서 자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는데, 연역 전체의 맥락 속에서 선험적 인식의 모든 요소들에게 이 기준만이 정당하게 요구되어진다. 칸트는 이 기준에 따라 초월철학의 영역을 범주의 초월 연역론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해 들어가고 있다. 비감성적 직관에 연관된 결합뿐만 아니라, 또한 그저 경험적인 연상적 결합(Assoziationsverbin- dung)도 초월철학에 속할 수 없다. 따라서 15장에서의 칸트의 모든 결합의 표현을 언제나 선험적 지성 행위로서 이해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초월적 결합에 속하지 않고 지성 자체에 의해 형성되지도 않으며, 단순히 경험적으로 객체에 의해 주어지는 사실적 결합이 존재한다는 호페(H. Hoppe)의 주장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순수 지성개념들이 모든 감성적 조건에 앞서, 대상 또는 객체에 연관되는 한, 초월 연역의 전체 프로그램의 목적으로서 이 개념들의 객관적 타당성이 증명된다. 범주는 결합과 그리고 앞서 말한 기준에서의 통일을 전제하고 있다. 다양 일반의 결합이 범주의 객관적 타당성을 증명하는 데에 기여한다면, 범주와 마찬가지로 결합 또한 연역 속에서 인식 일반의 요소가 되고, 이를 통해 범주 자체가 객관적 타당성을 획득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초월적 고찰을 통해 우리는 근원적인 선험적 결합이 이미 15장에서부터 범주의 전체 연역의 본질적인 토대를 이루고 있다는 인식에 이르게 된다. 결합은 이렇듯 범주의 객관성을 증명하는 데에 기여하기 때문에 선험적 인식을 이루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순수이성비판?의 핵심 부분인 범주의 초월 연역론(1787)이 근원적 결합의 설명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유이다. 15장은 첫눈에 보기에 통각의 근원적인 종합적 통일의 구조를 분석하고 있는 다음 장 (16장)으로 가기 위한 일종의 물꼬를 트는 것쯤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근원적 결합은 15장에서부터 이미 전체 연역의 체계적인 관련 속에서 하나의 선험적 인식 요소로 확실하게 자리 매김하고 있다. 이로부터 필연적으로 얻어지는 것은, 초월적 고찰 속에서는 직관 개념 또한 범주의 연역에서 하나의 선험적 인식 요소이어야 하며, 범주의 객관적 타당성이 연역의 시작에서부터 일관되게 다른 모든 요소들과의 체계적 연관 속에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III. 선험적 인식 요소로서의 직관 개념

?순수이성비판? (재판 1787) 서론에는, 범주가 인식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초월 분석론에서의 직관은 감성적이어야 한다는 칸트의 진술을 읽을 수 있다.
[...] 지성 개념들에 상응하는 직관이 주어질 수 있지 않는 한, 우리는 어떠한 지성 개념들도, 따라서 사물에 대한 어떠한 인식 요소들도 가질 수 없을 것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사물 그 자체로서의 대상에 관해서가 아니라, 감성적 직관의 객체인 한해서 인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비판의 분석론 부분에서 증명하게 될 것이다 (B XXV/XXVI).

초월 감성론에서의 직관은 감성적이어야 함은 마땅하다. 또한 초월 연역론에서의 범주는 인식 요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위의 진술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우리의 논제인 인식 요소에 대한 초월적 고찰을 확충시키는 데에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다. 첫째, 초월 분석론의 언급은 감성적 직관이 초월 감성론뿐만 아니라, 오히려 초월 연역론과 더욱 더 체계적으로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한다. 둘째,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범주는 인식 요소이지만, 그것에 상응하는 감성적 직관 없이는, 초월 분석론에 속하는 초월 연역론에서 범주도 그리고 인식 요소도 그 존재 가능성 자체가 배제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인식 일반의 요소들 또는 요소 개념들이 초월 연역 속에서 제대로 전개되고 있다면, 직관은 다름 아닌 감성적 직관일 수밖에 없음을 연역 속에서 다시금 증명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는 연역론에서는 감성적 직관과 결합하는 범주 때문에 객체 규정과 그 인식이 관심사임을 의미한다.
범주가 직관과의 결합 아래 (“상응하는...한”) 사물에 대한 인식을 생성하는 요소들에 속한다면 (“따라서...도”), 직관은 감성적 직관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물에 대한 인식이란 곧 감성적 직관의 객체에 대한 인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럼에도 앞서 인용한 문장에서는 ‘따라서 감성적 직관도’ 사물 인식의 요소에 속하는지는 확실하게 추론되지 않는다. 범주에 상응하는 직관이 주어진 경우에 한해서만, 즉 범주가 감성적 직관과 결합할 때에만, 우리는 범주를, 그리하여 현상으로서의 사물에 대한 인식 요소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직관 개념과 관련해서는 인식 요소라는 말은 여기 (인용문) 아무 곳에도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럼에도 칸트는 27장에서 “지성 개념들의 연역의 결과”라는 표제 아래 순수 직관들이 “인식 요소들”(B 166)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우리가 이 진술(B 166)에 따라 앞서 인용한 문장(B XXV/XXVI)에서도 칸트가 범주뿐만 아니라, 직관 개념까지도 인식 요소로 간주하고 있음을 밝힐 수 있다면, 이에 대한 근거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계속 질문을 던지게 된다. 만약 우리가 직관 개념을 단순히 초월 감성론에 의존한 초월 연역론이 아닌, 연역론 자체의 독자적인 체계성 안에 하나의 인식 요소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 근거는 재판 연역 자체 안에서 확정될 수 있어야 한다.
연역의 마지막에는 요소 개념들이 연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초월 감성론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표현되고 있다.
“우리가 요소 개념들과 관계하기 때문에, 나는 여기까지만 장 구분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27장, B 169).

칸트가 장을 구분하는 것은 실제로 초월 감성론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렇다면 칸트의 진술이 초월 연역론뿐만 아니라, 또한 초월 감성론에 까지 연관되는지 그 확인은 평행적으로 다음의 질문과 함께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다. 어떻게 “감성의 요소 개념들(시간과 공간)”이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과 맞물려 나타날 수 있을까? 또한 그렇다면 연역 속에서의 선험적 인식 요소로서의 직관 개념은 연역 자체를 위해 어떤 일관성을 수반하고 있는 것일까?
13장의 “초월 연역의 원칙들 일반”이라는 표제 아래 초월 감성론의 직관 개념은 범주의 연역에서 하나의 문제로 다가온다. 칸트가 초월 감성론, 즉 감성의 영역에서는 마주치지 않았던 어려움은,

어떻게 생각의 주관적 조건들이 [...] 객관적 타당성을 가질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어떻게 대상들의 모든 인식의 가능성의 조건들을 부여할 수 있는가이다. (A 89-90/B 122).

모든 현상들이 우리를 위한 대상들(Gegenstände für uns)이 되기 위해서는 감성의 형식적 조건들, 곧 순수 직관 형식들에 부합해야 한다. 초월 감성론에서는 현상들이 지성의 기능들 없이도 “어쨌든” 직관 속에 주어질 수 있다 (A 90/B 122-123). 그러나 지성의 범주는 이에 반해 우리에게 대상들이 직관 속에 주어지는 조건들을 결코 제시하지 않는다 (A 89/B 1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관 속에 주어지는 모든 다양이 순수 지성의 능력으로서의 범주의 기능들에 부합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것이 가능해야 범주는 객관적이고 타당하게 초월 연역 속에서 증명될 수 있으며, 대상들에 연관된 인식들이 가능하다.
이 문제는 범주의 연역 속에서의 직관 개념과의 어려움이고, 순수 지성은 이에 따라 갈등에 빠질 수 있다. 지성은 한편으로는 범주를 매개로 하여 모든 인식들과 그 대상들이 객관성과 타당성을 획득하는 데에 선험적 조건들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측면으로는 대상들에 상응하는 직관들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지성은 동시에 자신의 개념들, 즉 범주를 필요로 한다. 이 직관들은 감성적일 뿐만 아니라, 또한 지성 행위 없이도 어쨌든 기능을 한다.
바우만스(P. Baumanns)는 15, 17, 18, 22, 24, 25 그리고 26장에 보여지는 직관들을 초월 감성론에서 다루어진 직관 형식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이 직관 형식은 “통각의 근원적-종합적인 통일을 보완하는 직관 일반의 형식”으로 범주의 연역 속에 도처에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칸트의 진술을 계속 추적해 보면, 직관 개념은 실제로 연역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바우만스의 생각처럼 초월 감성론의 결과물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칸트는 초월 감성론에서 이미 직관 개념(시간과 공간)의 객관적 타당성을 증명했다고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월 연역론에서는 “순수 지성개념들 자신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공간에 대해서도 초월 연역을 추구”해야 할 필요성이 다시금 거론된다. 초월 감성론의 직관은 감성의 요소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성 행위 없이 초월 감성론의 직관들만으로는 어떠한 인식도 생겨날 수 없기 때문이다 ― 다름 아닌 이 인식의 가능성을 칸트는 초월 연역론에서 그토록 증명하고자 한다 ―. 초월 감성론에서의 감성은, 범주와 결합이 단지 지성의 요소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인식 일반의 요소로서 포함하고 있는, 근원적-종합적인 통일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연역에서는 순수 지성개념들, 지성 행위 그리고 이를 통해 구성된 표상들 ― 여기에는 직관 개념도 속하게 된다 ―, 이 모든 것이 사물에 대한 초월적 인식을 위한 요소로 간주된다.
감성적 직관의 다양은 근원적 지성 행위에 의해 하나의 표상 속에 결합한 채 표상된다. 이 하나의 표상은 초월적으로 구성된 표상으로서의 결합을 의미한다. 이 표상은 다양을 더 이상 순수 직관 형식에 단순히 주어진 것으로 내포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이 다양은 통각의 근원적 종합적인-통일이 직관 속에 함께 정립됨으로써 하나의 표상으로 구성된다. 이로부터 도출할 수 있듯이, 직관은 인식의 요소로서 범주의 객관적 타당성에 기여하게 된다. 직관 개념은 (B XXV/XXVI에 따르면) 인식 요소로서의 범주에 상응하기 때문에, 그리하여 범주의 객관적 타당성에 기여하기 때문에 그 자신도 하나의 인식 요소에 속한다. 이 고찰은 곧 연역에서의 직관 개념에 대한 초월적 고찰로서, 초월적 통각의 통일이시간과 공간 속에 개체적인 표상으로서, 그것이 포함하고 있는 다양과 함께 종합적으로, 그러나 근원적으로 찾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17장, B 136). 직관 개념은 이를 통해 더 이상 감성의 요소 개념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통해 비로소 인식 일반의 요소이기를, 따라서 범주의 연역에서 사물들의 인식 요소이기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연역 속에서 그리고 연역을 위해서 직관 개념은 인식 요소들에 대한 초월적 고찰에로의 소급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직관 개념이 근원적으로 찾아지는 종합적 통일을 동시에 함께 포함한다면, 이 개념은 그 자체로서, 다시 말해 선험적 인식 요소로서, 순수 지성개념들의 초월 연역 속에 자리 매김한다. 종합적 통일이 어떠한 직관이든지 간에 어떤 하나의 직관 속에 근원적으로 찾아 진다면, 그렇다면 직관은 칸트에게 있어 우리 인간의 직관으로서 범주의 객관적 타당성을 증명하는 데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감성적 직관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초월적 고찰에 의해 비로소 지성 행위가 근원적으로 하나이며 모든 결합 방식에 한결같이 유효한 것으로 증명될 수 있다. 칸트는 재판 연역 속에서의 인식 요소 일반에 대한 이러한 고찰을 26장에서 아주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즉, 다양 일반의 근원적-종합적인 통일과 근원적인 선험적 결합 행위까지도 종합 일반의 초월적 조건으로서,

이미 (직관들, 즉 시간이나 공간 속이 아니라) 이 직관들과 함께 동시에 주어져 있다. 시간이나 공간 속에서 규정되어 표상되는 모든 것은 이 같은 조건에 부합해야 한다 (26장, B 161).


IV. 끝맺음

이 논문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초월 연역론 재판에 나타나는 근원적인 선험적 결합 개념에 대한 분석이다. 칸트는 초월 연역론 초판에서와는 달리, 재판에서 결합 개념을 강하게 부각시키면서 연역을 시작하고 있다. 전통적인 칸트 연구 방식은 연역 15장의 결합 개념에 대해 단순한 ‘인식비판적’ 고찰에 그침으로써 그 개념의 본질에 접근을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생겨나는 오류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그 예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연역의 증명 구조에 대한 논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헨리히(D. Henrich)로부터 시작되는 이 논쟁에서 연역에는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증명 단계로 나누어진 하나의 증명만이 있을 뿐이라는 많은 칸트 연구가들의 합의점에는 동의를 하지만, 두 단계의 결과가 서로 다르다는 그들의 합의점은 사실상 연역의 구조 자체를 통일적으로, 그리하여 체계적으로 파악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초판 연역(A 108)에서 언급되고 재판 연역에서 관철되고 있는 통각의 동일성 의식과 통각 자신의 행위에 대한 동일성 의식과의 관계, 1786년 ?자연학의 형이상학적 기초?의 서론에서 언급되고 재판 연역 19장(B141/142)에서 관철되고 있는 판단 계사(Urteilskopula)를 통한 칸트의 판단 정의 등의 문제는 결합 개념의 이중적 의미에 대한 초월적 고찰 없이는 제대로 분석될 수 없다. 또한 연역의 내용이 일관되게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의 존재론을 동시에 지향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식론으로만 파악하는 것도 결합 개념에 대해 인식비판적으로만 고찰하는 것과 많든 적든 연관되어 있다.
이와 같은 전통적인 이분법적 고찰 방식에 바움(M. Baum)조차 ― 물론 그의 칸트 해석의 많은 부분에서 존재론적 성향을 찾아볼 수는 있지만― 얽매여 있다. 그의 비판적 고찰은 결합 개념에서 결합행위만을 파악하는 데에 머문다. 이에 반해 결합 개념의 결합행위와 결합표상의 이중적 성격을 함께 고찰하는 초월적 고찰이 하나의 선택적 대안으로 제시되면서, 소극적인 인식비판적 고찰을 넘어서서, 범주뿐만 아니라, 결합 그리고 직관 개념까지 초월적 인식을 구성하는 요소들로서 적극적으로 파악한다.
이 같은 고찰은 근원적 통각과 객체 그리고 판단 계사의 분석, 더 나아가 연역 전체의 본질적인 분석에 있어 보다 더 근본적이고도 체계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즉, 근원적인 선험적 결합에 관한 설명은 전체 연역에 대한 기본적인 논제들을 제시하고, 그리고 동시에 그것들을 일관성 있게 관철시킬 수 있는 토대를 제시하고 있다. 다양한 경험적 표상들 속에서의 근원적-종합적인 통일의 필연성 그리고 지성의 객체와의 필연적 연관성이 그것이다.
인식의 요소들에 관한 초월적 고찰에 의하면, 15장은 연역의 체계성 속에 엮어져 있다. 통일은 다양의 표상에 추가됨으로써 결합을 가능하게 한다 (15장, B 131). 그 결과 통일, 직관, 결합행위와 결합표상이 모두 함께 할 때, 그리하여 선험적 인식을 위한 초월적 조건들에 의해, 다양 일반은 필연적으로 하나의 객체로 구성되어지고, 종합적인 선험적 인식이 형성된다. 이 관점 아래 초월 연역의 재판은 필연적으로 새롭게 구성되고, 그 “시작”은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하게 된다.





참 고 문 헌

Baum, Manfred, Deduktion und Beweis in Kants Transzendentalphilosophie. Untersuchungen zur Kritik der reinen Vernunft, Königstein 1986.
Baumanns, Peter, “Kants transzendentale Deduktion der reinen Verstandesbe- griffe (B). Ein kritischer Forschungsbericht. Erster/ Zweiter Teil”, in: Kant-Studien 82, 1991, S. 329-348/ 436-455.
, “Kants transzendentale Deduktion der reinen Verstandesbe- griffe (B). Ein kritischer Forschungsbericht. Dritter/ Vierter Teil”, in: Kant-Studien 83, 1992, S. 60-83/ 185-207.
Hinsch, Wilfried, Erfahrung und Selbstbewußtsein. Zur Kategoriendeduktion bei Kant, Hamburg 1986.
Hoppe, Hansgeorg, “Ist alle Verbindung eine Verstandeshandlung?”, in: Akten des 5. Internationalen Kant-Kongresses, hrsg. von Gerhard Funke, Mainz 1981, S. 221-231.
, Synthesis bei Kant. Das Problem der Verbindung von Vorstellungen und ihrer Gegenstandsbeziehung in der “Kritik der reinen Vernunft”, Berlin, New York 1983.
Thöle, Bernhard, Kant und das Problem der Gesetzmäßigkeit der Natur, Berlin, New York 1991.
Abstract

Eine transzendentale Betrachtung über Kants Begriff der Verbindung

Hwang, Soon-U

In diesem Aufsatz geht es um eine Analyse von Kants Exposition der Verbindung in § 15 der Deduktion der Kategorien (1787), in der sowohl grundlegende Termini ― Verbindung und Anschauung ― als auch die systematische Bedeutung des § 15 im Gesamtzusammenhang der Deduktion herausgearbeitet werden soll. Der § 15 bietet eine bleibende Grundlage des systematischen Zusammenhangs von Verstandeshandlung und Anschauung.
Unsere Überlegung zur ursprünglichen Verbindung a priori kann sich definitiv auf zwei Sätze stützen; alle Verbindung ist eine Verstandeshandlung und diese Verstandeshandlung muß ursprünglich einig und für alle Verbindung gleichgeltend sein. Unsere Überlegung knüpft sich an die transzendental-logische Struktur und Bedeutung der Erkenntnis a priori an, und dadurch wird die Verbindung an einen Begriff in einem doppelten Sinn herangebracht; die ursprüngliche Verbindung a priori ist sowohl ein ursprünglicher Verstandesakt a priori, als auch eine dadurch hervorgebrachte transzendentale Vorstellung. Danach soll gezeigt werden, daß die ursprüngliche Verbindung als ein Element der Erkenntnis a priori vorgestellt sein muß. Dabei wird Baums Betrachtungsweise überprüft und demgegenüber unsere transzendentale Betrachtungsweise als eine Alternative vorgeschlagen. Schließlich ist eine fortlaufende transzendentale Betrachtung der Elemente der Erkenntnis a priori, zu denen also auch der Begriff der Anschauung gehören soll.

※ Key Words : Kant, transzendentale Deduktion der Kategorien, Verbindung, Anschau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