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헤겔의 이론철학에 대한 연구사

나뭇잎숨결 2020. 7. 28. 11:14

헤겔의 이론철학에 대한 연구사

-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을 중심으로 -

김 윤 구(서울대)

<한글요약>


헤겔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에 대한 한국에서의 연구가 어떠했는지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이것은 한국에서 연구된 헤겔 철학에 대한 모든 연구 결과를 연구하는 차원이 아니라, 기존의 자료를 모으고, 해제하는 방향으로 전개한다. 즉 한국에서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이 어떻게 연구되어왔으며,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가를 연구사라는 관점에서 수행한다.

이러한 연구사의 연구를 위해서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에 대한 연구 성과물들을 발표 연도와 내용에 따라 분류하여, 연구사의 체계적인 도표를 만들어 일목요연하게 정리·정돈하려 한다. 따라서 이 연구는 기존의 연구 문헌이 활용을 염두에 두고 있기에, 철학의 입문자들이 이 문헌을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그 외에도 이 연구는 기존의 연구가 등한시하였던 부분이나, 애용되었던 주제들을 드러나게 하여, 연구영역을 확장하거나 심화하게 함으로써, 학문사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그리고 필자는 이와 같은 연구작업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학회차원에서 정기적인 자료목록의 제시가 가능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도화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0. 들어가는말


한국에서 연구된 "헤겔의 이론철학에 대한 연구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여러 가지 방법의 연구를 상정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을 중심으로"라는 부제에 따라,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을 따로 따로 나누어서 고찰하려고 한다. 게다가 이와 같은 연구사적인 연구는 연구결과로 나타난 모든 성과물을 가지고 연구해야하지만, 필자는 우선 학위논문과 단논문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따라서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에 대한 학위논문과 단논문들을 그것이 발표된 연대와 내용에 따라 분류를 시도한다. 이와 같은 목적을 간편하게 달성하기 위하여,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의 연구 성과물을 발표 년도를 기초로 하여 "시기적으로 본 연구사"를 살펴보고, 텍스트의 목차에 따라 분류하여 "내용적으로 본 연구사"를 완성하려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연구를 위해서 우선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의 연구 결과물을 그 양에 따라 살펴본 다음에,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을 각각 삼분하여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끝에서 이와 같은 연구의 결과가 보여주는 결론을 이끌어 보려고 한다.



1. {정신현상학}연구사


{정신현상학}의 연구사를 고찰하기 위하여, 우선 {정신현상학}에 대한 연구 결과물 전체를 그 발표 년도에 따라 "시기적으로" 고찰한 다음에, 연구 결과물을 텍스트의 목차에 따라 분류하는 "내용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그리고 {정신현상학}의 연구사의 연구를 간결하게 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전체의 연구 결과물을 텍스트의 목차에 따라 - "의식"까지, "자기의식"까지, 그리고 "이성"까지로 - 3분하여 고찰하게 될 것이다.


1) 시기적으로 본 {정신현상학}연구사


1965년부터 한국에서 {정신현상학}에 대한 순수한 연구논문이 나오기 시작한다. 먼저 학위논문을 살펴보면, 1965년부터 1996년까지 총 80편이 있으며, 1960년대에 5편, 1970년대에 3편, 1980년대에 44편, 1990년대에 28편이 있다. 그리고 단논문은 1966년부터 1996년까지 총 83편이 있으며, 60년대에 2편, 1970년대에 10편, 1980년대에 43편, 1990년 28편이 있다. 이것을 도표화해 보면 도표1과 같다.

2) 내용적으로 본 {정신현상학}연구사


다시금 {정신현상학}에 대한 연구 성과물을 {정신현상학}의 목차에 따라 분류해보자. 학위논문은 "의식"까지 연구에 ("서설"에 5편, "서론"에 1편, "서설"과 "서론"을 포함해서 7편, "의식까지" 10편) 23편이 있다. "자기의식"까지는 ("자기의식의 자립과 비자립성"에 2편, "자기의식"에 16편, 및 "의식"을 포함하여 8편, "서설"과 "서론" 및 "의식"을 포함하여 4편) 30편이 있다. "이성"까지는 ("이성의 확신과 진리"에 2편, "정신"에 2편, "자기의식"을 포함하여 2편, "서설"과 "서론"까지 포함하여 4편, 기타 17편) 27편이 있다.

단논문은 "의식"까지 연구에 ("서설"에 1편, "서론"에 2편, "서설"과 "서론"을 포함해서 6편, "의식까지" 9편) 18편이 있다. "자기의식"까지는 ("자기의식"에 19편, 및 "의식"을 포함하여 1편, "서설"과 "서론" 및 "의식"을 포함하여 2편) 22편이 있다. "이성"까지는 ("이성의 확신과 진리"에 8편, "정신"에 2편, "종교"와 "절대지"에 각각 1편씩, "서설"과 "서론"까지 포함하여 3편, 기타 28편) 27편이 있다. 이것을 도표화하면 표2와 같다.

3) {정신현상학}에서 의식까지의 연구사


{정신현상학}의 "(A) 의식"까지의 연구논문 가운데 학위논문은 23편이 있고, 단논문은 18편이 있다. 단논문 보다도 학위논문의 수가 월등히 많은 것으로 보아서, {정신현상학}의 "(A) 의식"까지는 단논문의 연구 대상이었다기 보다는 특히 학위논문에서 집중적으로 연구되었다. 그러나 박사학위논문이 2편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서, {정신현상학}의 "(A) 의식"까지의 내용은 주로 철학에 입문하려는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데에 활용되어졌음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연구를 시기적으로 살펴보면, 최재근과 양무석의 동국대 박사학위논문 2편과 21편의 석사학위논문 가운데 1968년도 신동욱의 논문을 제외하고 모두 1980년 이후에 나왔다. 1980년에 최재근, 1982년에 이우백, 이선희, 서광일, 1983년에 남청, 이만근, 임화정, 1984년에 장춘익, 1986년 양우석, 김성배, 1987년에 이숙희, 황성신, 1988년에 양무석, 이충진, 박선균, 1989년에 이정일의 학위논문이 나왔다. 1990년대에 이르러 1990년 박규진, 1991년에 오용득, 심의유, 1992년에 이병옥, 1994년에 성낙원, 이미경의 논문이 나왔다.

전체 18편의 단논문의 경우에는 1966년에 안호상, 1978년에는 이강조의 논문 2편이 나왔다. 1980년대에는 1980년에 최재희, 1981년에 이강조, 1982년 최성묵, 1984년 이강조, 조관홍, 최재근, (석사학위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한) 장춘익, 1986년에 양무석, 1987년에 차용환, 이강조, 박인성, 1988년 양운덕의 논문이 나왔다. 1990년대에는 1990년의 이동희, 1991년 박인성 그리고 1996년의 제갈창수의 논문이 있다.

특징적인 것은 이강조가 이 부분에서만 5편의 논문을 내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 외에도 전체 43편의 논문 가운데에 1980년 이후에 38편의 논문이 나왔다는 사실은 임석진의 정신현상학의 번역이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겠다. 1980년에 나온 2편의 논문을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37편의 논문이 임석진의 {정신현상학} 번역본을 직·간접으로 참고했을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겠다.

{정신현상학}의 "(A) 의식"까지의 연구결과를 내용적으로 살펴본다면 우선 학위논문에서 남청, 이숙희, 이충진, 오용득, 성낙원은 {정신현상학}의 "서설"만, 그리고 이병옥은 "서론"만을 자신의 논문에서 다루었다. 그 반면에 이우백, 이만근, 장춘익, 황성신, 박선균, 이정일, 박규진은 "서설"과 "서론"을 다루었고, 양무석은 "서설"과 "서론"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대상의식 전체를 포함하였다. 그리고 이선희는 "서설"과 "서론" 그리고 "감각적 확실성"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지각"과 "힘과 오성"부분도 함께 다룬 반면에, 양우석은 "서설"과 "서론" 그리고 "감각적 확실성"을 {논리학}과 관련지어 연구하였다. {정신현상학}의 "대상의식" 부분을 다루면서 심의유는 "힘과 오성"부분만 연구대상에서 제외한 반면에, 서광일은 "서론"부분을 제외 시켰다. 그러나 최재근, 임화정, 이미경은 {정신현상학}의 "대상의식"의 전체 부분을 다루었다. 신동욱의 논문은 전반은 독일 관념론을 다루고 후반부에서 "대상의식"까지를 다룬다.

이와는 달리 단논문에서는 이동희가 "서설"만, 이강조1978a와 최재희가 "서론"만을 연구하였다. 그러나 이강조1984, 장춘익, 이강조1987, 양운덕, 박인성1991과 제갈창수는 "서설"과 "서론"을 함께 고찰하였다. 그리고 안호상, 이강조1981, 차용환이 "(A) 의식"에서 "감성적 확실성"과 "지각"만을 다룬 반면에, 조관홍과 박인성1987은 "(A) 의식" 전체를 다루었다. 이강조1978b, 최성묵, 최재근은 "(A) 의식"과 함께 "서설"과 "서론"을 함께 다루었으나, 양무석은 "힘과 오성"을 연구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정신현상학}의 "(A) 의식"까지의 연구결과를 내용적으로 살펴본 결과의 특이한 점은 "감성적 확실성"과 "지각" 및 "힘과 오성"만을 다룬 논문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어느 특정부분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논문보다는, 여러 부분을 폭넓게 포괄적으로 다루는 논문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게다가 논문의 연구의 대상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학위논문이나 단논문의 구별이 없이 주제가 선택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결과를 도표로 개관하면 도표3과 같다.

4) {정신현상학}에서 자기의식까지의 연구사


{정신현상학}의 "(A) 의식"까지만의 연구를 제외한 {정신현상학}의 "(B) 자기의식"까지의 연구논문 가운데는 학위논문은 30편이 있고, 단논문은 22편이 있다. 이것은 {정신현상학}의 "(A) 의식"까지의 연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부분의 내용도 단논문의 연구 대상이었다기 보다는 학위논문에서 특히 집중적으로 연구되었음을 볼 수 있다. 게다가 박사학위논문이 1편에 불과하기 때문에, {정신현상학}의 "(A) 의식"까지의 연구와 마찬가지로, {정신현상학}의 "(B) 자기의식"까지의 내용 또한 철학의 초심자의 교육을 위해서 활용되어졌다고 주장할 수 있겠다.


{정신현상학}의 "(A) 의식"까지만의 연구를 제외한 {정신현상학}의 "(B) 자기의식"까지의 연구를 시기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학위논문을 살펴보면, 박준건의 부산대 박사학위논문 1편과 29편의 석사학위논문 가운데 1980년 이전에 나온 것은 1965년의 강돈구, 1977년의 이흥수, 1978년의 하성대 등 3편의 논문이 있을 뿐이다. 1980년대에는 1980년 조관홍, 1981년 김재현, 1982년 최신한, 1984년 양운덕, 1985년 박준건, 최청수, 1986 구춘권, 정종환, 이동희, 1987년 이강화, 1988년 백훈승, 1989년 김성민, 하용삼, 유덕수의 석사논문이 나왔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1990년 박준건의 박사학위논문을 필두로 조영준, 손정원, 이미경, 정정혜, 1991년 강옥경, 김애련, 김원식, 이재성, 1993년 김영택, 이정원, 1994년 백훈승, 1995년 정환수, 1996년 김진수의 석사논문이 나왔다.

반면에 22편의 단논문 가운데 1980년까지는 단 1편의 논문도 나온 것이 없다. 그러나 1981년의 한동원의 논문을 시작으로 1982년에는 이강조, 최재근 장춘익의 논문이, 1984년에는 박준건, 조관홍, 최재근의 논문이, 1985년에는 양우석의 논문이, 1986년에는 (석사학위논문을 보완한) 양운덕의 논문과 임석진의 논문이, 1988년에는 양운덕, 이국배, 이우백의 논문이, 1989년에는 하용삼의 논문이 나왔다. 1990년대에 이르러 1990년에는 2편의 양무석의 논문과 백훈승의 논문이, 1993년에는 (박사논문일부를 보완한) 박인성의 논문과 최성묵의 논문이, 그리고 1995년 이만갑과 최신한의 논문이 나왔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것은 학위논문 30편중 박사학위논문이 1편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많은 석사학위자들이 박사과정에서 전공을 바꾸었거나, 새로운 세대가 헤겔 철학에 입문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특징인 - 전체 52편의 논문 가운데에 1980년 이전에 나온 논문은 3편뿐이고, 나머지 - 49편이 1980년 이후에 나왔다는, 사실은 위의{정신현상학}의 "(A) 의식"까지의 연구에서 주장하였던 필자의 주장을 다시 한번 보증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즉 1980년에 번역된 임석진의 {정신현상학} 번역이 {정신현상학}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신현상학}의 "(A) 의식"까지만의 연구를 제외한 {정신현상학}의 "(B) 자기의식"까지의 연구결과를 내용적으로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다. 먼저 학위논문에 살펴보자. 강돈구와 조영준은 "(B) 자기의식"의 "자기의식의 자립성과 비자립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에, 이흥수, 하성대, 조관홍, 김재현, 최신한, 양운덕, 박준건, 최청수, 백훈승, 김성민, 하용삼, 손정원, 강옥경, 김영택, 이정원은 "자기의식의 자유"를 포함하여 "(B) 자기의식" 전부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구춘권, 정종환, 이강화, 유덕수, 이미경, 정정혜, 김애령, 정환수는 "(A) 의식"을 포함해서 "(B) 자기의식"을 다루고 있다. 나아가서 이동희, 김원식, 이재성, 김진수는 "(A) 의식"뿐만 아니라 "서설"과 "서론"을 포함하여, {정신현상학}의 처음부터 "(B) 자기의식"까지를 전부를 주제로 삼고 있다. 특히 김진수는 헤겔의 {논리학}을 함께 취급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단논문에서는 "자기의식의 자립성과 비자립성"만을 다룬 논문은 없고, 대개의 논문이 "(B) 자기의식" 전체를 다루고 있다. 예외가 있다면, 장춘익이 "(B) 자기의식"을 "(A) 의식"과 함께 다루고 있으며, 최성묵은 "(A) 의식"뿐만 아니라 "서설"과 "서론"을 포함하여, {정신현상학}의 처음부터 "(B) 자기의식"까지를, 최신한은 초기 헤겔에서 {정신현상학}의 "(B) 자기의식"까지를 다루고 있을 뿐이다.

{정신현상학}의 "(A) 의식"까지만의 연구를 제외한 {정신현상학}의 "(B) 자기의식"까지의 연구결과를 내용적으로 살펴본 결과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자기의식의 자유"만을 다룬 학위논문이, 그리고 "자기의식의 자립성과 비자립성"만을 대상으로 다룬 단논문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로 {정신현상학}의 "(A) 의식"까지의 연구결과에서 나타난 바와 마찬가지로, 연구의 대상을 결정하는 데에 학위논문이나 단논문의 구별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셋째로 {정신현상학}의 "(A) 의식"까지의 연구결과에서 나타난 바와는 달리 원문 40여쪽에 불과한 "(B) 자기의식"의 연구에 학위논문 18편과 단논문 19편이 있었다는 것은 괄목할만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의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헤겔 철학 연구사를 기술하는 데에 빼놓을 수 없는 현상이기는 하나, 후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을 밝혀둔다.

이와 같은 {정신현상학}의 "(A) 의식"까지만의 연구를 제외한 {정신현상학}의 "(B) 자기의식"까지의 연구결과를 도표로 개관하면 도표4와 같다.


5) {정신현상학}에서 이성까지의 연구사


{정신현상학}의 "(A) 자기의식"까지만의 연구를 제외한 {정신현상학}의 연구논문 가운데 학위논문은 27편이 있고, 단논문은 43편이 있다. 이것은 앞의 두 부분과는 달리 학위논문의 수보다도 단논문의 수가 월등히 많다. 그러나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게 되겠지만, {정신현상학}의 "(A) 자기의식"까지만의 연구를 제외한 {정신현상학}의 전부를 다루어서가 아니라 여러 부분에 걸쳐있는 것을 분류의 편의를 위하여, 여기에서 취급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와 같은 작업이 특정 주제를 다루는 단논문에서 자주 발생할 수 있음을 간과할 수가 없다. 특정 주제를 가지고 {정신현상학}을 연구하게 되는 단논문의 수가 학위논문의 수보다 절대적으로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은 단논문의 성격 때문이라 고만은 말할 수 없다. 게다가 학위논문에서도 이와 같이 주제를 정하는 경우가 다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자세히 그 내용을 살펴보자.


{정신현상학}의 "(A) 자기의식"까지만의 연구를 제외한 {정신현상학}의 학위논문들을 시기적으로 살펴보면, 8편의 박사학위논문을 포함한 전체 27편의 학위논문 가운데, 1980년 이전에는 1965년 홍선희, 1966년 윤노빈, 1968년 신동욱, 1977년 한동원의 석사논문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1980년대에는 1981년 이강조의 경북대 박사학위논문을 시작으로, 1983년 박병기, 1985년 김선욱과 김창호, 1986년 양우석과 우기동의 석사학위논문이 나온다. 그리고 1987년에는 한동원과 박인성의 고려대 박사학위논문과 함께 김광곤, 안재오, 장진호의 석사학위논문이 나온다. 1988년에는 함상호의 고려대 박사학위논문과 장미숙의 석사학위논문이 나오고, 1989년에는 정호용의 정신문화연구원 박사학위논문이 나온다. 1990년대에는 1990년에 고려대 양운덕의 박사학위논문이, 1991년에 계명대 박종규의 박사학위논문과 마금헌의 석사학위논문이 나오고, 1992년에 김진희의 석사학위논문이, 1993년에 이우백의 경북대 박사학위논문과 김진경과 김형철의 석사학위논문이, 그리고 1995년에 박민미와 윤정한의 석사학위논문이 나온다.

그리고 {정신현상학}의 "(A) 자기의식"까지만의 연구를 제외한 {정신현상학}의 단논문들을 시기적으로 살펴보면, 전체 단논문 43편 가운데 9편이 1980년 이전에 발표되고, 나머지 34편이 1980년 이후에 발표되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1967년에 윤노빈, 1970년에 (각각 2편씩 발표한) 전두하와 김계숙외에 하일민, 1772년에 임범재, 1773년에 전두하, 1776년에 윤노빈의 논문이 있었다. 1980년 이후에는 1981년에 권기철, 임석진, 한단석, 1985년에 박인성과 한동원, 1986년에 권기철, 김대식, 우기동, 1987년에 권기철과 최종천, 1988년에 한동원의 2편의 논문을 비롯하여, 최성묵, 박인성, 우기동 및 헤겔연구 편집위원회, 1989년 한동원의 논문이 있었다. 1990년대에는 1990년에 이정복의 2편의 논문이 있었고, 1991년에 이강조, 1992년에 박종규와 양무석, 1993년에 남경희와 박종규, 1994년에 이안희, 박인성, 남청, 윤병태, 최신한, 1995년에 박인성과 김종철(번역), 1996년에 2편의 박인성의 논문과 한자경의 논문이 있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은 전체 학위논문 27편 가운데 박사논문이 8편이나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전체논문의 1/3에 해당하는 것으로 1/3의 석사가 박사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쳤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박인성이 6편의 단논문을 그것도 10여년 (1985년-1996년) 사이에 발표하는 성과를 보였다. 여기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점은 1980년 이전에는 학위논문 전체 25편 가운데 3편만이 나왔고, 단논문 43편 가운데 9편만이 나왔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1980년에 번역된 임석진의 {정신현상학}의 지대한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정신현상학}의 "(A) 자기의식"까지만의 연구를 제외한 {정신현상학}의 연구결과를 내용적으로 살펴보자. 순서에 따라서 학위논문들의 내용을 먼저 살펴보면, 김선욱과 김광석은 "이성의 확신과 진리"만을 다루었고, 이강조와 마금현 및 우기동은 {정신현상학}의 처음부터 "이성의 확신과 진리"까지를 취급하였다. 윤정한은 "정신"가운데 "자기 소외된 정신 : 도야"만을 다루었으나, 안재오는 "자기 소외된 정신 : 도야"를 중점적으로 다루기는 했으나, "서설"과 "서론"을 함께 다루었다. 그리고 양운덕은 "정신" 모두를 주제로 했다. 김진경, 박민미 그리고 김형철은 {정신현상학}의 "정신"까지 모두를 다루기는 했으나, 박민미는 "서설"과 "서론"을 제외했으며, 김진경은 "서설"과 "서론"과 함께 "(A) 의식"도 제외 시켰다. 한동원과 박인성의 박사학위논문과 장미숙, 홍선희, 윤노빈, 박병기는 {정신현상학}전체를 취급하였으나, 박인성은 후반부에서 {역사철학강의}를 포함시켰으며, 이우백은 "서론"과 "감성적 확실성" 그리고 "절대지"만을 다루었다. 한동원과 김창호의 석사논문은 {정신현상학}을 중심으로 헤겔철학 전반을 취급한 반면에, 장진호는 {정신현상학}의 바탕위에서 사회철학을 논하고, 함상호의 경제학박사논문은 {정신현상학}을 헤겔의 {법철학}과 "예나시대의 철학"을 함께 취급하고 있다. 끝으로 김진희, 박종규, 정호용은 {정신현상학}을 다른 철학자들과 비교하였는데, 김진희는 쉘러와, 박종규는 하이데거와, 그리고 정호용은 마르크스와 함께 논하였다.

{정신현상학}의 "(A) 자기의식"까지만의 연구를 제외한 {정신현상학}에 대한 단논문의 연구결과를 내용적으로 살펴볼 차례가 되었다. 하일민, 박인성1988, 한동원1988a, 양무석, 남경희, 김종철(번역)은 "이성의 확신과 진리" 전체를 취급한 반면에, 최성묵과 이강조는 "관찰하는 이성"만을 고찰하였다. 그러나 김계숙과 전두하a는 {정신현상학}의 처음부터 "이성의 확신과 진리"까지 전부를 다루었다. 그리고 전두하b는 "정신"만을, 박종규1993은 "종교"만을, 그리고 한동원1989는 "절대지"만을 다루었다. 윤노빈, 임범재, 박인성1985, 박인성1995, 박인성1996a, 한동원1985와 한동원1988b, 우기동1988, 헤겔연구 편집위원회, 이안희, 이정복1990a는 {정신현상학} 전체를 다루었으나, 이정복1990b는 "서설"과 "서론"을 제외시켰고, 한자경은 "(A) 의식"까지 제외시켰다. 권기철1981, 남청, 윤병태, 최신한은 {정신현상학}과 헤겔의 다른 저서를 함께 다룬 반면에, 전두하1973, 임석진, 한단석, 김대식, 권기철1986, 권기철1987, 우기동1986, 최종천, 박종규1992, 박인성1994, 박인성1996은 {정신현상학}과 다른 철학자를 비교하였다.

여기서 나타나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학위논문에서는 "이성의 확신과 진리"에서 "관찰하는 이성"을 따로 다룬 논문이 없었으나, 단논문에서는 2편이나 있다. 반대로 단논문에서는 "정신"의 "자기 소외된 정신: 도야"를 다룬 논문이 없었으나, 학위논문에서는 그것을 다룬 논문이 있다. {정신현상학} 전체를 다루게 되는 이 부분의 연구에서는, 특히 헤겔의 다른 철학이나, 다른 철학자 혹은 다른 철학적 분과학문과 비교하는 논문들이 나타난다.


{정신현상학}의 "(A) 자기의식"까지만의 연구를 제외한 {정신현상학}의 연구결과를 도표로 개관하면 도표5와 같다.

2. {논리학}연구사


{논리학}의 연구사를 고찰하기 위하여, 우선 {논리학}에 대한 연구 결과물 전체를 그 발표 년도에 따라 "시기적으로" 고찰한 다음에, 연구 결과물을 텍스트의 목차에 따라 분류하는 "내용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그리고 {논리학}의 연구사의 연구를 간결하게 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전체의 연구 결과물을 텍스트의 목차에 따라 - "존재론"까지, "본질론"까지, 그리고 "개념론"까지로 - 3분하여 고찰하게 될 것이다.


1) 시기적으로 본 {논리학}연구사


한국에서 {논리학}에 대한 순수한 연구논문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32년도에 부터이다. 먼저 학위논문을 살펴보면, 1964년 1996년까지 총 41편이 있으며, 1960년대에 3편, 1970년대에 3편, 1980년대에 19편, 1990년대에 16편이 있다. 그리고 단논문은 1932년부터 1996년까지 총 76편편이 있으며, 1930년대에 3편, 1940년대에 1편, 1950년대에 1편, 1960년대에 7편, 1970년대에 13편, 1980년대에 24편, 1990년 27편이 있다. 이것을 도표화하면 도표6과 같다.

2) 내용적으로 본 {논리학}연구사


이와 같은 {논리학}에 대한 연구 성과물을 {논리학}의 목차에 따라 분류해보자. 학위논문은 "존재론" 까지 연구에 ("학의 시원은 무엇으로부터 마련되는가?"에 2편, "규정성(질)"에 5편, "크기(양)"에 1편, "규정성(질)"까지에 10편) 18편이 있다. "본질론"까지는 ("가상"에 5편, "본질성 혹은 반성규정"에 3편, 및 "본질론"까지에 12편) 20편이 있다. "개념론"까지는 ("개념"과 "판단"에 6편, "주관성"까지 11편, 기타 1편) 18편이 있다.

전체 79편의 단논문은 "존재론" 까지 연구에 ("학의 시원은 무엇으로부터 마련되는가?"에 8편, "규정성(질)"에 9편, "규정성(질)"까지에 3편, "크기"까지에 6편) 26편이 있다. "본질론"까지는 ("가상"에 2편, "본질성 혹은 반성규정"에 17편, "근거"에 2편, 현실성에 8편, "본질론" 까지 1편) 30편이 있다. "개념론"까지는 ("개념"에 1편, "판단"에 2편, "추론"에 2편, "이념"에 3편, "개념론"까지 1편, 기타 14편) 23편이 있다.


3) "존재론"까지의 {논리학}연구사


{논리학}에서 "제1부 객관적 논리학"의 "존재론"까지의 연구논문 가운데 학위논문은 15개이고, 단논문은 (이정은이 헤겔의 텍스트를 번역한 것을 포함해서) 26개이다. 여기에서는 {정신현상학}의 초반부 연구와는 달리 박사학위논문이 단논문에 비해서 적을 뿐만 아니라, {정신현상학}의 연구와 중첩되는 학위논문을 고려하면, 그 수는 더 적어진다. {논리학}에서 "제1부 객관적 논리학"의 "존재론"은 학위논문에서 보다 단논문에서 더 많이 연구된 것으로 보아서, 아직까지 "존재론"은 학위논문의 주제로 선호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논리학}에서 "제1부 객관적 논리학"의 "존재론"에 대한 연구 성과물을 시기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학위논문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학위논문이 없이, 1965년 최도희와 1972년 손동현의 논문 이후에, 겨우 1985년에야 박애령의 논문이 나오고, 1986년 김옥경, 구자희의 논문과 {정신현상학}에서 언급한 바가 있는 양우석의 논문이 나온다. 1988년에 나종석과 정선한 그리고 정창호의 논문이 나오고, 1991년 김용정, 1992년 이정은과 이윤주, 1994년 최일규와 홍성철, 1996년 배장섭의 논문이 나온다.

단논문에서는 1934년의 안호상의 논문을 시작으로, 1949년 김영진, 1965년에 서동익의 논문이, 1968년의 이석윤의 논문이 나온다. 그리고는 1980년대에 이르러, 1981년 김종호, 1982년 김원식, 1983년에 박만준과 전두하, 1984년 임석진, 1986년 김홍명과 유헌식 및 김옥경이 번역한 디터 헨리히의 논문이 나온다. 그리고 1787년에 김대식, 조관홍, 1988년 위상복, 임석진, 1991년 이신철과 이효연, 1993년 이정은, 임재진, 1994년 이창환과 위에서 언급한 이정은이 번역한 헤겔의 텍스트, 1995년 조관홍, 1996년 김종기와 조홍길의 논문이 나온다.

학위논문에서는 1985년 박애령의 논문 이전에는 총 15편 가운데 2편이 나오고, 단논문은 1983년 이전에 총26편 가운데에 7편이 나온다. 여기에서 1983년을 기준으로 삼아본 것은 임석진의 {논리학}의 번역을 기점으로 삼아 본 것이다. 따라서 임석진의 번역이 단논문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할 수 있겠으나, 학위논문에서는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겠다. 나아가 여기에서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임석진의 번역의 활용 유무를 가지고 헤겔 철학 연구의 세대구분을 시도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해본다.


{논리학}에서 "제1부 객관적 논리학"의 "존재론"에 대한 연구 성과물을 내용적으로 살펴보자. 순서대로 학위논문을 먼저 살펴보면, 김용정은 "학의 시원은 무엇으로부터 마련돼야만 하는가?"만을 {정신현상학}과 {피히테와 쉘링의 철학체계차이}와 함께 다루고 있는 반면에, 이윤주는 "학의 시원은 무엇으로부터 마련돼야만 하는가?"를 "존재의 일반적 구분"과 함께 "서문" 및 "서론"을 다룬다. 정선한과 배장섭은 "존재"만을 다루고, 정창호와 홍성철은 "현존재"만을 다루고 있는 반면에, 손동현과 구자익은 이 양자 즉 "존재"와 "현존재"와 함께 "대자적 존재"를 포함하여, "규정성(질)" 전부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박애령은 "현존재" 가운데서도 "무한성"만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전 논리학을 고려하고 있다. 김옥경과 나종석은 "서문"에서 "규정성(질)"까지 전부를 다루고 있는 반면에, 최일규와 "{정신현상학}의 연구사"에서 언급하였던 양우석은 "대자적 존재"를 제외하고 "서문"부터 "현존재"까지 다루고 있다. 게다가 이정은은 "서문"에서 "규정성(질)"까지 전부를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본질론"도 포함하고 있다. 이외에도 최도희는 "크기(양)"만을 자신의 논문에서 취급하고 있을 뿐이다.

단논문에서는, 이정은은 "학의 시원은 무엇으로부터 마련돼야만 하는가?"를 번역하였고, 이 부분만을 다룬 논문으로는 안호상, 이석윤, 임석진, 이신철, 이창황외에 김옥경이 번역한 디터 헨리히의 논문이 있다. 그리고 박만준, 김대식, 조관홍, 이정은, 임재진1988, 조관홍, 조홍길은 "존재론" 가운데 "존재"만을 다룬 반면에, 위상복은 처음부터 "존재"까지 전부를 다루었다. 그리고 김원식은 "존재론" 가운데 "규정성(질)" 전부를 다루었으나, 유헌식은 "존재"를 제외하고 "학의 시원은 무엇으로부터 마련돼야만 하는가?"를 포함하여 "현존재"와 "대자적 존재"를 함께 다룬 반면에, 서동익은 "대자적 존재"만을 다루었고, 김영진은 "현존재" 가운데서도 "무한성"을 취급하였다. 그 외에도 전두하, 임석진1984, 김홍명, 김종호, 이효연, 김종기는 "존재론" 전체를 취급하였고, 특히 김종호와 이효연 그리고 김종기는 다른 철학자와 함께 다루었다.

내용적으로 살펴본 {논리학}에서 "제1부 객관적 논리학"의 "존재론"에 대한 연구 성과물들은 전 분야에서 골고루 연구되어졌다고는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학의 시원은 무엇으로부터 마련돼야만 하는가?"와 "규정성(질)" 가운데에서도 "존재"에 연구가 집중되어 있는 반면에, "도량(度量)"에 대한 연구는 한편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현존재"에서 "현존재 그 자체"와 "규정성"만을 다룬 논문이 한편도 없다는 것이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제1부 객관적 논리학"의 "서문"과 "서론" 부분과 함께 "존재의 일반적 구분"도 취급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논리학}에서 "제1부 객관적 논리학"의 "존재론"까지의 연구결과를 도표로 개관하면 도표8과 같다.

4) "본질론"까지의 {논리학}연구사


{논리학}에서 "제1부 객관적 논리학"에서 "존재론"까지의 연구결과를 제외한 연구논문은 학위논문에서 20편과 단논문에서 30편이 있다. {논리학}에서 "제1부 객관적 논리학"에서 "존재론"까지의 연구결과에서 말한 바와 같이 여기에서도 {정신현상학}의 초반부 연구와는 달리 학위논문이 단논문에 비해서 적을 뿐만 아니라, 위에서 고찰한 학위논문과 중첩되는 것을 고려하면, 그 수는 더욱 더 적어진다. 이 사실은 아직까지 {논리학}에서 "제1부 객관적 논리학"의 "존재론"과 마찬가지로 "본질론" 또한 학문에 입문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난해한 주제임을 보여준다. 게다가 1977년의 고려대 홍선희의 박사학위논문과 1995년의 건국대 김성만의 박사학위논문을 제외한 18편의 학위논문이 석사논문이라는 점도 이 사실을 증거해 보인다.


{논리학}에서 "제1부 객관적 논리학"에서 "존재론"까지의 연구결과를 제외한 연구논문을 앞에서와 같이 먼저 시기별로 살펴보자. 학위논문은 1982년 이전에 나온 것으로 1964년의 강재륜, 1965년 김정호의 석사학위논문과 1977년 홍선희의 박사학위논문이 있다. 1982년 이후로, 1982년 설헌영과 한정라, 1983년 이길웅, 1984년 김성만, 1985년 김경수과 김연달, 1986년 김관영, 1987년 한승완, 1988년 이종철, 1989년 강순전, 1990년 김준호, 1991년 이광모와 이신철, 1992년 이관형, 1993년 조극훈의 석사학위논문이 있다. 1995년에 남기호의 석사학위논문과 김성만의 박사학위논문이 나온다.

이 부분을 다룬 단논문을 시기별로 고찰해보면, 1930년대에 나온 논문은, 1932년의 전기주와 1933년에 나온 안호상의 논문이 있고, 30년을 훌쩍 뛰어 1960년대에는 1968년에 신상호, 1969년에 윤노빈의 논문이 있다. 단논문의 수가 두드러지게 증가하는 1970년대의 논문은 서동익의 1970과 1971년의 논문과 함께 1972년 이강조의 2편의 논문과, 1976년 전두하, 1978년 김정호, 1979년 하일민의 논문이 있다. 1980년대에는 1980년 최성묵, 1984년 박인성, 1985년 김선호, 1986년 김창호와 조관홍, 1987년 위상복, 1988년 김종섭, 1989년 최재근의 논문이 있다. 1990년대에는 1990년 이찬훈, 1993년 김성만과 이창환, 1994년 연효숙과 황설중, 1995년 김석현, 1996년 김종기, 배용준, 위상복의 논문과 윤병태의 논문 2편이 있다.

따라서 1930년대에 단논문 2편, 1960년대에 석사학위논문 2편과 단논문 2편, 1970년 박사학위논문 1편과 단논문 7편, 1980년대에 석사학위논문 10편과 단논문 8편, 1990년대에 석사학위논문 6편과 박사학위논문 1편 그리고 단논문이 11편이 있다. {논리학}에서 "제1부 객관적 논리학"에서 "본질론"에 대한 연구는 1960년대에 초석을 놓아, 1970년의 성숙기를 거쳐, 1980년에 본격적으로 연구되었다.

이제 이와 같은 연구논문을 내용별로 살펴보자. 먼저 학위논문을 내용별로 살펴보면, 김성만의 석사학위논문이 "자기자체내의 반성으로서의 본질"을 전체로 다루었고, 이길웅과 한승완 및 강순전은 그 일부분인 "본질성 혹은 반성규정"만을 다룬 반면에, 강재륜과 김경수 및 김준호는 "가상"만을, 김연달과 이관형은 이 "가상"과 함께 "본질론"의 서론격인 "본질론"을, 그리고 김연달은 {정신현상학}과 {엔치클로패디}를 포함했다. 그렇지만 설헌영은 "본질론" 전체를 취급하면서도 그 서론격인 "본질론"을 제외하였다. 그 반면에 김정호, 한정라, 김관영, 이광모, 이신철, 조극훈의 석사학위논문과 김성만의 박사학위논문은 이 "본질론"의 서론격인 "본질론"은 포함하여, "자기자체내의 반성으로서의 본질"을 다루고 있지만, "근거"부분을 제외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김관영과 조극훈은 {엔치클로패디}와, 그리고 이광모는 {정신현상학}의 "서설", 그리고 김성만은 {피히테와 쉘링의 철학체계차이}를 함께 논하고 있다. 끝으로 홍선희, 이종철, 남기호는 {논리학}의 "제1부 객관적 논리학" 전체를 다루고 있다.

학위논문들과는 달리 단논문들을 단순하게 구분된다. 즉 "자기자체내의 반성으로서의 본질"에서 위상복1987과 연효숙은 "가상"을 연구한 반면, 배용준과 황설중은 "근거"를, 그리고 서동익, 이강조1972a, 김정호, 하일민, 최성묵, 박인성, 김선호, 김창호, 조관홍, 김종섭, 이찬훈, 이창환, 김석현, 김종기, 윤병태, 위상복1996은 "본질성 혹은 반성규정"을 연구하였다. 그리고 "현실성"에 관해서는 전기주, 신상호, 윤노빈, 서동익, 이강조1972b, 전두하, 최재근, 김성만의 논문이 있다. 끝으로 안호상의 논문은 "근거"를 제외한 "자기자체내의 반성으로서의 본질"까지의 모든 "제1부 객관적 논리학" 전체를 취급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적인 고찰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현상"과 "현실성"만을 연구한 학위논문이 없는 반면에, 단논문에서는 "현상"만을 연구한 논문이 없다. 그렇지만 다른 부분에 대한 연구와는 달리 여기서는 안호상의 논문을 제외한 단논문들이 세부적인 부분을 논문의 주제로 삼았다. 이것은 이제 단논문들이 세부적인 주제를 다룸으로써 논문의 내용에 대한 질적 수준을 기대하게 하고 있다.


{논리학}에서 "존재론"까지의 연구결과를 제외한 "제1부 객관적 논리학" 연구결과를 도표로 개관하면 도표9와 같다.


5) "개념론"까지의 {논리학}연구사


{논리학}에서 "제1부 객관적 논리학" 연구를 제외한 연구논문은 학위논문이 8개이고, 단논문이 23개이나, 내용상의 분류상의 어려움 때문에 학위논문 1개와 단논문 14개는 기타로 처리하였다. 기타로 제외한 15편의 논문을 제외하고 남는 16편의 수가 말하듯이, {논리학}에서 "제1부 객관적 논리학" 연구를 제외한 즉 "개념론" 까지의 연구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뿐만 아니라 학위논문에서도 박사학위논문은 나오지 않았다. 따라서 이 분야의 연구는 앞으로 좀더 적극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 같다.

{논리학}에서 "제1부 객관적 논리학" 연구를 제외한 연구논문들, 즉 "개념론" 까지의 연구논문들 가운데 학위논문을 시기별로 살펴보면, 1974년 이석윤, 1985년 김영화, 1986년 김성환, 1988년 성태용과 박병수, 1989년 이효석, 1991년 오용득, 1993년 조희선과 1994년 정산도의 석사학위논문이 있다.

단논문은 1959년 안호상, 1966년 이석윤, 1967년 김계숙의 논문이 있었고, 1970년대에는 1971년 서동익, 1972년 김기곤과 전두하, 1975년 하일민, 1977년 이석윤과 하일민의 논문이 있었다. 1980년대에는 1981년 최성묵, 1984년 한단석, 1988년 성태용, 1989년 박종규와 조만진의 논문이, 1990년대에는 1990년 강순전과 임홍빈, 1991년 강순전과 이창환, 1993년 양무석과 황설중, 1995년 백종현과 한승완, 1996년 김준수의 논문이 있다.

학위논문을 내용별로 살펴보면, "주관적 논리학 혹은 개념론" 안의 "주관성" 부분 가운데, "개념"을 (정신현상학에서 언급한) 오용득이 다루었다. "주관성" 안의 "판단" 가운데 이석윤은 "현존재의 판단"만을 다루었으며, 형식논리학과 비교한 성태용은 "판단"가운데 "현존재의 판단"과 "반성의 판단"을 포함하여 "개념"과 "예비"를 다루었다. 김성환과 이효석 및 정상도는 성태용의 주제에 "필연성의 판단"을 포함시켰으며, 박병수는 성태용의 주제에 "필연성의 판단"뿐만 아니라 "본질론"의 "현실성"을 포함시켰으며, 김영화는 성태용의 주제에 "제1부 객관적 논리학" 뿐만 아니라 헤겔의 1806년까지 저술한 철학을 포함하였고, 정상도는 "학의 시원은 무엇으로부터 마련돼야만 하는가?"를 함께 취급하였다.

단논문에서는 다음과 같다. "주관성" 가운데 성태용은 "개념"을 연구하였으며, 안호상과 이석윤은 "판단"을, 그리고 하일민1975과 최성묵은 "추론"을 연구하였다. 그리고 김계숙, 하일민1977과 한승완은 "이념"을 연구하였고, 김기곤은 "개념론 전체를 토론했다.

기타로 처리한 논문 가운데에는 헤겔의 {논리학}과 헤겔의 다른 철학을 비교한 박종규, 서동익, 한단석의 논문이 있고, 헤겔의 {논리학}을 다른 철학자와 비교한 강순전, 이창환, 전두하, 조만진의 논문이 있다. 그외에도 박희선의 석사학위논문과, 이석윤, 강순전, 임홍빈, 양무석, 백종현, 김준수의 논문이 있다.

5) 맺는말


지금까지 우리는 120여편의 학위논문과 160여편에 이르는 논문들을 살펴보았다. 이것은 1932년부터 1996년까지 우리 한국 땅에서 헤겔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에 대한 연구의 결실들이다. 본 연구가 각논문들의 내용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대한 철학적 평가를 내리려는 의도로 관철된 연구가 아니기에, 어떤 면에서는 문헌학적인 연구에 머무르고 말았다. 어찌 되었건 우리가 밝혀낸 이와 같은 결과에 대한 평가는 후학들에게 맡겨져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가 여기에서 명백히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이와같은 280여편의 논문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증한다고 할 수 있겠다: 첫째로 헤겔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은 더 이상 수입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철학의 일부가 될 모든 여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헤겔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입문을 위해서는 우리에게도 충분한 학문적 성과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는 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셋째로 이와 같이 나타나는 연구 결과물들을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하는가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연구가 선례가 없는 것이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그 틀을 다져나가리라고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연구를 통해서 습득된 귀한 자료들을 한데 모아, 봉사하는 방법도 또한 연구의 대상이 되겠다. 이제 우리의 철학을 위해 한 발짝씩 접근하면서, 선배들의 귀중한 연구업적을, 후학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제도적인 기틀이 마련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