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거래하지 않기
자신이 추진했던 일이나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에서 한계상황에 봉착해 앞으로 나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을 때, 충분했다, 여기서 멈추자!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힘든 사랑에 백기를 던지며, 두 가지 그럴듯한 변명을 자신에게 주입시킨다.
1. 일도 사랑도 파토스(Pathos)가 있기 때문에 외부적 충돌 뿐 아니라 자신 안에서의 내적 충돌도 대단해서 자신이 자신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때 평정심에 대한 강한 유혹을 받는다. 스토아철학자들처럼 정념이나 파토스(Pathos)로부터 벗어난 상태. 정념의 동요에서 벗어난 평정한 영혼의 상태, 아파테이아(Apatheia)를 원하게 된다.
2. 예컨대 자신이 추진했던 일에 이런저런 이유로 인허가가 나오지 않을 때, 처음에는 인허가 담당자와 유권해석에 대한 대립을 하다, 계속 불허가 반복되면 추진했던 일을 끝내는 이유가 자신이 아니라 외부적인 이유로 돌리고 싶은 교묘한 포기의 변이 생기는 것과 비슷하다. 사실은 인허가 때문이 아니라 어떤 일을 너무나 오래 끌어안고 있어서 그 일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유를 외부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정말 힘들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그 지점은 등산으로 치자면 8부능선을 넘은 지점일 때가 많다. 흔히 어떤 일을 할 때 어려운 고비를 넘겼을 경우를 빗대 "'8부 능선'을 넘었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만큼 힘든 과정은 대충 다 넘겨 이제는 마무리만 남았다는 뜻이다. 능선(稜線)은 산등성이(산의 등줄기)를 따라 죽 이어진 선을 말하는 것으로 산 정상부터 지표까지의 높이를 10단위로 나눴을 때 8, 또는 9의 높이까지 올라왔으니 이제 거의 정상 가까이 도달했다는 뜻이고,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중요한 고비를 거의 넘기고 목표에 거의 접근했다는 의미 정도로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왜 8부능선에서 사람들이 하산을 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 차이는 있겠지만, 8부능선까지는 누구나 마음을 다잡으면 오를 수 있는 지점이다. 그러나 8부능선을 넘어 정상까지 오르는 일은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하다. 8부능선에서 하산했다면 원래 8부능선이 그 사람이 올라가야 했던 정상이었던 셈이다.
그러니, 여기까지다! 라고 내면의 소리가 아우성칠 때, 그 지점에 대해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원래 자신의 능력, 최고치가 거기까지였는지? 아님 고통과 교묘하게 거래를 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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