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이 교회의 축복을 느끼는 방식으로 나는 고독을 느낀다. 고독은 내게 있어서 은혜의 불빛이다. 나는 내 방문을 닫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칸토르(러시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일생을 보낸 수학자, 집합론의 창시자-옮긴이)는 학생들에게 무한의 개념을 이렇게 설명했다. 무한한 수의 객실을 가진 호텔 주인 한 사람이 있고, 이 호텔 객실에는 손님이 모두 들어차 있다. 거기에 손님 한 명이 더 도착한다. 그래서 호텔 주인은 1호실에 있는 손님을 2호실로 옮겨준다. 2호실에 있던 손님은 3호실로 옮긴다. 3호실 손님은 4호실로.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이렇게 하면 1호실은 새로 온 손님을 위해서 비워진다. 이 이야기에서 내 마음에 들었던 점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손님들과 주인 모두가, 한 손님이 자기 방에서 평화와 고요를 얻을 수 있도록 무한한 수의 작업을 지극히 당연하게 수행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고독에 대한 커다란 존중의 표시다."(p.22 )
“나는 완벽하지 않다. 나는 눈이나 얼음을 사랑보다 더 중하게 여긴다. 동족 인류에게 애정을 갖기보다는 수학에 흥미를 가지는 편이 내게는 더 쉽다” (68p)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 페터 회 저/박현주 역 | 마음산책 | 2005년 08월
"수학의 기초가 뭔지 알아요?" 나는 물었다. "수학의 기초는 숫자예요. 누군가 내게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숫자라고 말할 거예요. 눈과 얼음과 숫자. 왜인지 알아요?"
수리공은 호두까기 도구로 집게발을 깨서는 구부러진 집게로 살을 빼냈다.
"숫자체계는 인간의 삶과 같기 때문이에요. 먼저 자연수부터 시작해요. 홀수 중에서 양의 정수들요. 작은 아이들의 숫자죠. 하지만 인간 의식은 확장해요. 어린이는 갈망의 감각을 발견하죠. 그럼 갈망에 대한 수학적 표현이 뭔지 아세요?"
수리공은 수프에다가 크림을 얹고 오렌지 주스 몇 방울을 떨어뜨렸다.
"음수예요. 뭔가 잃어버리고 있다는 감정의 공식화. 인간 의식은 더욱더 확장하고 아이들은 그사이의 공간을 발견하죠. 돌 사이, 돌 위의 이끼 사이, 사람들 사이, 그리고 숫자 사이. 정수에 분수를 더하면 유리수가 돼요. 인간 의식은 거기서 멈추지 않죠. 이성을 넘어서고 싶어 하죠. 인간 의식은 제곱근을 풀어내는 것 같은 기묘한 연산을 더하게 돼요. 그럼 무리수가 되는 거예요."
수리공은 프렌치 식빵을 오븐에 데우고 후추 빻는 기구를 채웠다.
"무리수는 광기의 형태에요. 무리수는 문한하기 때문이죠. 무리수를 다 적을 수는 없어요. 한계를 넘어선 지점까지 인간 의식을 ㅁㄹ어붙잊ㅛ. 유리수와 무리수를 더하면 실수가 되는 거예요."
나는 좀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방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동족 인간에게 자신을 설명할 기회를 갖는 다는 건 드문 일이다. 보통 우리는 방어권을 얻기 위해서 싸워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이건 내게 중요한 일이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아요. 절대 멈추지 않죠. 왜냐하면 지금도 바로 즉석에서 우리는 실수에 음수의 상상의 제곱근을 더해 확장하니까요. 이 허수는 우리가 그려볼 수는 없는 수, 보통 인간 의식이 이해할 수 없는 수에요. 그래서 이런 허수를 실수에 더할 때, 복소수 체계를 갖게되는 거죠, 얼음이 결정을 형상화하는 과정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는 첫번째 체계에요, 이 체계는 광활하고 열린풍경과 같아요. 지평선이죠. 우리는 그 쪽을 향해 가지만 지평선은 끊임없이 물러서요. 거기가 그린란드에요. 내가 그 없이는 살 수 없는 거죠. 그래서 나는 갖히고 싶지 않은 거에요.(pp. 157~158)
다른 사람들이 교회의 축복을 느끼는 방식으로 나는 고독을 느낀다. 고독은 내게 있어서 은혜의 불빛이다. 나는 내 방문을 닫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칸토르(러시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일생을 보낸 수학자, 집합론의 창시자-옮긴이)는 학생들에게 무한의 개념을 이렇게 설명했다. 무한한 수의 객실을 가진 호텔 주인 한 사람이 있고, 이 호텔 객실에는 손님이 모두 들어차 있다. 거기에 손님 한 명이 더 도착한다. 그래서 호텔 주인은 1호실에 있는 손님을 2호실로 옮겨준다. 2호실에 있던 손님은 3호실로 옮긴다. 3호실 손님은 4호실로.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이렇게 하면 1호실은 새로 온 손님을 위해서 비워진다. 이 이야기에서 내 마음에 들었던 점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손님들과 주인 모두가, 한 손님이 자기 방에서 평화와 고요를 얻을 수 있도록 무한한 수의 작업을 지극히 당연하게 수행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고독에 대한 커다란 존중의 표시다.(p.22 )
이 시점에서 얼음 결정의 구조는 '6'이라는 숫자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물이 얼어 이루어진 벌집 모양의 육각형을 둘러싸고, 여섯개의 가지가 여섯개의 다른 세포로 뻗어간다. 이 여섯개의 세포들은 컬러 필터로 찍어서 높은 배율로 확대한 사진에서 볼 수 있듯 다시 새로운 육각형으로 녹아들어간다(p. 548)
1992년 덴마크어로 출간된 이래 전 세계 33개국에 번역되며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킨 화제의 추리소설. 출간 당시 《덴마크 올해의 작가상》, 《덴마크 비평가상》, 《전국 서점 협회 황금면류관상》, 《전영 추리작가 협회 실버대거상》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97년에는 동명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이 책은 차가운 미지의 땅을 배경으로 얼음과 숫자, 눈에 대한 통찰력을 가진 주인공과 함께 어린 소년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플롯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추리소설이라는 장르 안에 미스터리와 로맨스, 스릴러, 문명 비판, 철학적 통찰 등 각 장르적 요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있어 '하이브리드 소설'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다채로운 면을 보여준다. 또한 합리적인 표현력을 지닌 냉철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동시에 죽은 이웃집 아이에 대한 우정과 모성, 불의에 대한 분노 등 한없이 뜨거운 면모를 보여주는 여성 캐릭터가 매력을 더하며, 살인 스릴러물이면서도 철학적 치유를 끌어내는 균형감각은 이 소설의 여러 미덕 중 하나다.
페터 회. 1957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났다. 작가의 길에 매진하기 전 무용가, 배우, 펜싱 선수, 선원, 등반가로서 다양하고 독특한 경력을 쌓았다. 1988년 첫 소설인 『덴마크 꿈의 역사』와 단편집 『밤의 이야기』(1990)를 출간한 이후, 세계적인 명성과 인기를 몰고 온 획기적인 추리소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1992)을 발표했다. 이듬해 1993년에는 교육과 시간 철학, 청소년 문제를 독특하고 철저한 시선으로 다룬 문제작, 『경계에 선 아이들』을 출간하며 덴마크 국내외에서 다양한 논쟁을 이끌었다. 이외에도 『여자와 원숭이』(1996), 『침묵하는 소녀』(2008) 등 인간의 내면과 본질, 사랑, 자유, 사회와의 관계 등을 다룬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작품들을 발표했다. 페터 회는 전 작품에 걸쳐 사회적 약자들, 특히 인간 본연의 물들지 않은 가능성을 의미하는 아이라는 존재에 깊은 애정을 갖고 문명이 남긴 상처를 보듬어왔다. 덴마크 올해의 작가상, 덴마크 비평가상, 전국서점협회 황금면류관상,《타임》선정 올해의 책, 전영 추리작가협회 실버 대거 상, 독일 추리협회상, 이탈리아 방카렐라 상 등을 수상했다.
번역은 Delta사의 『Smilla's Sense of Snow』영역본을 기반으로 Rosinante사의 『Frøkens Smillas Fornemmelse for Snow』덴마크본을 교차 참조하였으며, 교정시 The Harvill Press사의 『Miss Smilla's Felling for Snow』영역본까지 참조하여 번역되었다.
우리가 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찾아서 발견한다(seek & find)"라는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플롯을 따르고 있다. 이 소설은 차가운 미지의 땅을 배경으로 얼음과 숫자, 눈에 대한 통찰력을 가진 주인공과 함께 어린 소년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하지만 ‘추리소설’로만 규정하는 것은 이 소설이 기반으로 삼고 있는 풍성한 컨텍스트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다. 딱히 어떤 장르로 분류하기 힘들 정도로 미스터리와 로맨스, 스릴러, 문명 비판, 철학적 통찰 등 각 장르의 요소들을 적재적소에 구현하고 있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혼성성을 내포하고 있는 장르이지만, 굳이 ‘하이브리드 소설’이라는 표현을 달아줘야 할 정도로 다채로운 작품이다. “우리가 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는 평가야말로 이 작품에 대한 가장 적절하고도 정당한 발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페터 회는 이 한 권의 책에서 한 아이의 죽음에서 시작된 추리 퍼즐, 문명과 자연에 대한 통찰, 해양 스릴러, 사랑과 관계에 대한 깊은 사유, 도덕적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이 책은 많은 서평자들이 평했듯이 존 르 카레와 그레이엄 그린의 전통을 따른 스릴러면서도 읽는 이의 마음에 도덕적이고도 사회적인 삶에 대한 깨달음을 던져주는 문학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에 많은 독자들이 열광하는 커다란 이유는 ‘스밀라’ 캐릭터가 지닌 통쾌한 매력 때문이다. ‘스밀라’는 ‘여성’이면서 ‘아마추어’ 탐정이라는 점에서 추리소설의 계보에서 희귀한 위치를 차지한다. 소위 ‘회색 뇌세포’를 사용하여 사건을 풀어가는 명탐정 또는 유능한 사설 탐정과 가장 먼 거리에 놓이는 한편, 냉소적이지만 인간에 대한 온정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캐릭터인 ‘필립 말로’와 비교되기도 한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나는 눈이나 얼음을 사랑보다 더 중하게 여긴다. 동족 인류에게 애정을 갖기보다는 수학에 흥미를 가지는 편이 내게는 더 쉽다” (68p) 는 발언을 통해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스밀라는 눈과 얼음에 대해 특별한 감각을 지니고 있으며, 합리적인 표현력을 지닌 냉철한 성격의 소유자다. 사람들이 흔히 ‘정상’이라고 부르는 삶에 편입해서 살아가지 않는 이 서른일곱 살의 독신녀는 세상이 브레이크를 걸어올 때면 냉소적인 유머와 독설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권력자 앞에서는 비열한 사람으로 돌변하고 패배자들 앞에서는 한없이 마음이 약해지는 아웃사이더적 정의감도 가지고 있다.
160센티미터, 50킬로그램의 작은 체구의 스밀라는 스크루드라이버 하나에 의지하여 물리적 폭력과 대면하고, 몇 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도 주저 없이 사건의 핵심으로 걸어들어 간다.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회계사와 의사, 해운회사 사장 등 주변의 전문가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때로는 스스로 사우나 직원이나 꽃집 배달원으로 가장하기도 한다. 능청스러움과 임기응변으로 장애물을 넘어가는 태도는 긴박한 가운데서도 슬그머니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죽은 이웃집 아이에 대한 우정, 약한 것을 보듬는 모성, 불의에 대한 분노는 여성 캐릭터이기에 더 큰 공감을 자아낸다. 한없이 차가우면서도 또한 한없이 뜨거운 이중적 면모는 캐릭터의 매력을 한층 더 강화해주고 있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스밀라를 추리소설사상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로 손꼽는 데 누구도 쉽게 이의를 달 수 없을 것 같다.
살인 스릴러물이면서 철학적 치유를 끌어내는 소설. 이 책을 쓴 페터 회는 문단에 데뷔하기 전, 전문 무용수, 펜싱 선수, 등산가, 항해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또한 아프리카를 오랫동안 여행했고, 무용수 출신인 케냐 여성과 결혼하는 등, 다양한 문화와 정체성들을 통과해왔다. 이런 이력을 바탕으로 작가는 문명과 자연이라는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조망하는 가운데 문명 비판을 시도한다.
스밀라가 이누이트 사냥꾼인 어머니와 부유한 덴마크 의사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복잡한 정체성을 지닌 인물로 그려지는 것도 이를 위한 장치로 읽을 수 있다. 그린란드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스밀라가 덴마크에 도착한 후 경험했던 술래잡기 놀이는 유럽 시스템의 단면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재빨리 약자를 제거해버리고, 이어서 자연적 위계 질서에 따라서 나머지 모든 사람들을 제거해버리는 게임의 규칙”(530p). 전화기나 자동차 등 문명의 이기에 대한 혐오, 덴마크 내 그린란드인에 대한 차별에 대한 비판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반면 그린란드는 광활하고 열린 풍경이며, 완벽한 무한의 세계로 그려진다. 스밀라가 ‘수학’에 매달리는 것도 숫자 체계가 ‘무한’과 ‘영원’의 세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결코 삶에서 일정한 시작점이나, 초기 체계, 혹은 고정점을 찾기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뉴튼의 이론, 칸토르의 무한 개념, 유클리드의 원론, 데데킨트의 수학 대선형에 관한 공리 등 이러한 세계관을 대변해주는 이론들이 소설 곳곳에 소개되고 있다. 살인 스릴러물이면서도 철학적 치유를 끌어내는 균형감각은 이 소설의 여러 미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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