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산문시 혹은 잠언시라 불리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1883~85년에 간행되었다. 차라투스트라(고대 페르시아의 배화교[拜火敎] 교조 자라투스투라의 독일식 이름)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산을 내려와 여행하면서 가르침을 전하는 모습을 뛰어난 문장으로 기술했다. 이 작품에는 니체의 중심사상인 '권력(힘)에의 의지', '초인(超人)', '영겁회귀(永劫回歸)' 등이 비유와 상징 및 시적인 문장으로 전개되어 있다. 기존의 그리스도교적 질서를 파괴하고 현대인의 중심문제를 예언한 이 책은 뒤에 오는 철학자·시인·작가 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신은 죽었다"는 선언은 그리스도가 전하는 진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적 카테고리, 즉 그리스도를 앞세운 기득권적 질서(기독교 안의 반그리스도적 행태, 종교적 엄숙주의, 배타주의)를 부정했음을 알 수 있다. 신에 대한 강한 부정은 신적인 것의 열렬한 갈망이기도 하다. 진정으로 신적인 것의 발현은 환시나 초월적인 경지에서가 아니라, 신적인 것을 두루 갖춘 위버멘쉬의 출현, 즉 정신적 육체적으로 자기 초극이 가능한 진정한 인간상에 도달하고자 하는 외침이다... 니체의 사상뿐 아니라 .비판적 책읽기는 모든 텍스트를 대하는 데 필요불가결한 조건이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옮겨본다.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63~)
일체의 글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쓰려면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넋임을 알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피를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게으름을 피워가며 책을 뒤적이는 자들을 미워한다.
독자를 아는 자는 독자를 위해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이런 독자들의 시대가 한 세기 더 지속되기라도 한다면넋조차도 악취를 풍기게 되리라.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배워 읽을 수 있게 되면, 시간이 흐르면서 쓰는 것은 물론 생각까지 부패하게 마련이다.
한때는 넋이 신이었다. 그러다가 그것이 사람이 되더니 지금은 천민이 되고 말았다.
피와 잠언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그저 읽히기를 바라지 않고 암송되기를 바란다.
산줄기에서 가장 짧은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길이다. 그러나 그런 길을 가려면 긴 다리를 가져야 할 것이다. 잠언은 산봉우리라 할 수 있다. 그것들을 들으려면 크고 우람한 체구를 가져야 할 것이다.
엷고 깨끗한 대기, 신변의 위험, 유쾌한 악으로 가득찬 넋, 이런 것들은 썩 잘 어울린다.
나는 내 가까이에 요미를 두려 한다. 나 용기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유령들을 위협하여 쫒아내는 그런 용기는 자기 자신을 위해 요마를 만들어낸다. 용기는 웃고 싶은 것이다.
나의 느낌은 너희의 느낌과 더 이상 같지 않다. 내 발 아래 있는 이 구름, 내가 비웃고 있는 이 어둡고 무거운 구름, 그것이 바로 뇌우를 가져오는 너희의 구름이렷다.
높이 오르려 할 때 너희는 위를 올려다 본다. 그러나 이미 높이 올라와 있는 나는 아래를 내려다본다.
너희 가운데 웃음을 잃지 않은 채 높이 올라가 있을 수 있는 자가 있는가?
더없이 높은 산에 오르는 자는 모든 비극과 비극적 엄숙성이라는 것을 비웃는다.
지혜. 그것은 우리가 용감하고, 의연하고, 냉소적이며 난폭하기를 소망한다. 지혜는 여인이고, 그리하여 늘 전사만을 사랑한다.
너희는 말한다. "삶은 견뎌내기 힘들다"고. 그러나 너희는 어찌하여 오전에 긍지를 갖다가도 저녁에 이르러서는 체념하는가?
삶은 견뎌내기 힘들다. 그러나 그토록 연약한 언동을 삼가라! 우리 모두는 짐깨나 질 수 있는 연약한 암수 나귀가 아닌가.
우리는 한 방울 이슬이 떨어졌다 하여 파르르 떨고 있는 저 장미 꽃봉오리와 어떤 점에서 같은가?
그렇다. 삶에 친숙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 속에는 얼마간의 광기가 있기 마련이다. 광기 속에는 얼마간의 이성이 마련이고.
사람을 좋아하는 내게도 나비와 비누방울이 그리고 사람들 가운데서 그와 같은 자들이 행복에 관하여 그 누구보다도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들 경쾌하고 어리숙하며 사랑스러운 그리고 발랄한 작은 영혼들이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날아다니는 것을 보노라면 차라스트라는 눈물을 흘리며 노래부르게 된다.
나는 춤을 출 줄 아는 신만을 믿으리라.
그런데 나의 악마, 나는 그가 엄숙하며, 심각하고, 심오하며 당당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중력의 악령이었던 것이다. 저 악마로 인해 모든 사물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사람들은 노여움이 아니라 웃음으로써 살해를 한다. 자, 저 중력의 악령을 죽여 없애도록 하자!
나는 걷는 법을 배웠다. 그 후 나는 줄곧 달렸다. 나는 나는 법을 배웠다. 그 후 나는 법을 배웠다. 그 후 나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움직일 수가 있었다.
이제 나는 가볍다. 나 날고 있으며 나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제야 어떤 신이 나로 인해 춤을 추고 있구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니체, 정동호역, 책세상, 2007, 63~65쪽
오쇼 라즈니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한 서평을 부기한다.
심지어 광인 프리드리히 니체 4)의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몇 귀절도 마찬가지다. 다른 책을 전혀 쓰지 않았다 해도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쓴 것만으로도 니체는 인류에게 무한한 공헌을 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값진 작업을 했다. 인류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혀진 짜라투수트라를 발굴한 것이다. (페르시아의 예언자이며 짜라투스트라교의 개조. B.C. 5세게 중엽에 리디아의 그리스 역사가 크산투스는 짜라투스트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그 원전은 없어졌고 일부가 B.C. 1세기경의 인용문에 남아 있을 뿐이다. 페르시아에 전하는 전설에 따르면 짜라투스트라는 알렉산더 대왕 이전 285년에 히스타스페스 왕을 귀의 시켰다고 하였고, 그때 나이 42세이며, 77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되어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선악 이원론을 체계적으로 세운 최초의 사람이라 생각되어지고 있다. 선의 힘은 오르므즈드와 그 일곱 천사로 되어 있는데, 악의 힘은 그 이름이 금기시되어 분명하게 전해지진 않고 다만 그아래의 악령의 이름만이 전해지고 있다. 이 윤리적 이원론과 그 발전으로서의 짜라투스트라교는 이란 고원 오아시스의 반농반목의 정착민 사회에서 발생한 것으로 그러한 정착민을 외부로부터 위협하는 유목민을 악의 힘이라 하고 스스로를 선의 힘이라 한 것이 아닌가 추측죄기도 한다. 그의 사상은 멀리 중국에까지 미쳐 도교의 신비서 [황금꽃의 비밀]에 까지 영향을 남겼지만 그후 역사의 그늘에 묻혀 있다가 20세기 들어 니체가 발 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탄생 시켰다.) 짜라투스트라를 재등장시키고, 그에게 불후의 생명과 부활을 준 자가 바로 니체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앞으로 미래의 성서가 될 것이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짜라투스트라는 세상에 태어났을 때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이제 막 태어난 아이가 웃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럽다. 미소를 지을 수는 있어도 웃음을 터뜨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무엇에 대해 웃음을 터뜨렸단 말인가? 웃음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어떤 농담에 갓난아기 짜라투리트라는 웃음을 터뜨렸는가? 그것은 바로 우주적인 농담이다. 이 존재계 전체를 감싸안고 있는 우주적인 농담에 그는 웃음을 터뜨린 것이다. 그렇다. 그대의 노트에 우주적인 농담이라고 쓰고 밑줄을 그어라. 나는 그대가 밑줄을 긋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그 소리는 참으로 듣기 좋다. 내 귀가 얼마나 좋은지 아는가? 내가 원할 때면 나는 연필 굴러가는 소리도,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원할 때면 나는 완전한 암흑 속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원하지 않을 때면 나는 전혀 듣지 않을 수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배꼽을 잡고 웃음을 터뜨린 짜라투스트라! 그리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평생에 걸쳐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전생애가 하나의 웃음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잊었다. 고통 속에서 삶을 산 사람은 오래 기억되지만, 삶이 하나의 환희가 되고 넘치는 웃음이었던 사람은 금방 잊혀진다.
영어권에서 그의 이름을 조로아스터로 바꾸기까지 했다. 이 얼마나 괴물같은 이름인가! '짜라투스트라'는 장미 꽃잎과 같은 향기를 갖고 있다. 하지만 '조로아스터' 는 기계 냄새가 나고 죽은 이름이다. 짜라투스트라까지도 자기의 이름이 '조로아스터'로 바뀐 것을 알면 너털웃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그러나 니체가 그 책을 쓰기 전 까지는 짜라투스트라는 세상에서 완전히 잊혀진 존재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회교도들의 강압에 못이겨 짜라투스트라의 추종자들은 회교도로 개종했다.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인도로 탈출했가. 인도 말고 어디로 갈 수 있겠는가? 그 당시 인도는 여권이나 비자 없이도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나라였다. 그래서 살인자 회교도들의 탄압을 피해 아주 적은 숫자의 짜라투스트라의 추종자들만이 인도로 탈 출했다. 현재 그들의 숫자는 십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자, 불과 십만 명 정도의 추종자밖에 갖지 않은 종교에 대해 누가 관심을 갖겠는가? 그들 대부분이 인도에 살고 있을 뿐이고, 그것도 봄베이라는 한 도시 주변에만 모여 산다. 그들 자신 조차도 짜라투스트라를 잊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함께 살아 가야 할 힌두교인과 타협한 것이다. 늪을 피해서 달아났지만 결국 진흙 웅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그것도 더 깊은 진흙 웅덩이에 한쪽에는 늪, 다른 쪽에는 진흙 웅덩이, 그 중간에만 '길'이 있다. 붓다는 그 길을 중도라고 불렀다. 줄 위를 걷는 광대처럼 정확히 중간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니체의 위대한 공헌은 짜라투스트라를 현대에 되살린 것이다. 그리고 그의 크나큰 잘못은 아돌프 히틀러를 탄생시킨 것이었다. 그는 둘다를 동시에 했다. 물론 그는 아돌프 히틀러에 대해선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 니체의 초인 사상을 잘못 해석한 것은 히틀러 자신이었다. 그것은 니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만일 그대가 나의 가르침을 잘못 해석한다면 그것을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잘못 해석하는 것은 사람 들의 자유다.
나는 그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책은 단지 몇 권에 불과하다.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내 도서 목록에 오를 첫번째 책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 했다]이다.
- 오쇼 라즈니쉬, 류시화 역, <내가 사랑한 책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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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회귀나 위버멘쉬 등을 핵심 주제로 그의 사상들이 집약되어 있는 철학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난숙한 사상적 경지에 이른 니체가 1883∼85년에 완성한 대표작이다. 니체는 1882년 10월 라이프치히에서 살로메와 마지막으로 만난 후 이탈리아 여러 곳을 전전하는 중에 이 책의 첫 부분이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1883년에 1, 2부가 출간되었고, 빠른 속도로 3부까지 진행되어 1884년에 3부, 1885년에 4부가 나왔다. 1883년에 출간된 초판본에는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면서도 그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Ein Buch f r Alle und Keinen"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크게 4부로 나눠져 있고 각각의 부는 다시 20개 안팎의 이야기로 되어 있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10년 간 산중 명상을 마친 차라투스트라가 인간세계로 내려와 자신이 터득한 새로운 복음을 전하는 내용이다.
이 책은 '신약성서'의 예수의 행적에 빗대어 수많은 비유와 상징으로 묘사되어 있는 니체의 대표적 저작이다. 기독교적인 이원론과 목적론을 생에 적대적인 세력으로 규정함으로써 '신의 죽음'을 선언하기에 이르는 니체의 근본사상이 깔려 있는 이 작품은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신의 죽음을 선언하고 있으며, 이는 곧 인간 생명의 약동이자 지금 이 땅에서의 삶의 의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니체의 작품 세계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위치는 각별하다. 이 작품은 시기적으로 그의 집필 활동의 정점에 씌어진 것으로, 그의 활동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켜주는 고리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내용을 두고 본다면 그 의미는 더욱 돋보인다. 그 자신의 철학의 완성 단계에 이른 니체가 이전의 사상 모두를 받아들여 통합하고 이후의 사상적 전개에 토대와 방향을 제공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여러 권의 책을 썼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 철학의 전부이기도 하다. 거기에 니체 철학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니체 스스로도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것 전후에 씌어진 작품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에 기여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바로 그 전에 씌어진 '아침놀'과 '즐거운 학문'은 이 작품을 위한 입문서에 주석서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바로 그 뒤에 씌어진 '선악의 저편'은 그것을 풀이하는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 세 작품도 니체의 주요 작품이라 불러 손색이 없는 것들이어서 이들을 "거느리고 있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위상은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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