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글쓰기란 언제나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 일

나뭇잎숨결 2020. 3. 1. 06:27

 

 


“향후 100년 문학의 화두는 ‘우포늪에서 우주 상상하기’”

ㆍ육필 저서 120권·문학평론가 김윤식교수의 특별한 상상력

한국문학의 파수꾼, 문학의 구도자….

이런 말들을 떠올리면서 지난 18일 문학평론가인 김윤식 명지대 석좌교수(72)의 댁을 찾아갔다. 베란다 너머로 한강과 멀리 관악산이 한 눈에 보이는 용산의 한 고층아파트. 차분한 독서와 사색의 시간들이 물처럼 고여있는 김윤식 교수의 서재에 발을 들여놓았다. 예상했던 것처럼 책이 많다. 마주 보는 양쪽 벽이 책장이다. 창가 쪽으로 책상이 놓여있는데 그 옆에는 자주 보는 책을 꽂아놓은 낮은 책꽂이가 하나 더 있고, 책상 앞뒤로도 책이 여러 겹으로 차곡차곡 쌓여있다. 겉장에 보풀이 일어난 누런 책부터 빳빳한 신간까지. 책상 위에는 수백장의 하얀 원고지가 놓여있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에 대한 원고를 쓰던 중이라고 했다.

책에서, 소설에서 인류사의 나아갈 방향을 탐구하면서 평생을 바쳐온 문학의 구도자, 김윤식 교수. 서재 바닥에 책을 펴고 앉은 그의 어깨위로 해질녘의 순한 햇빛이 한 줄기 내려앉았다. /박재찬기자
“컴퓨터로 글 쓰는 걸 배우다가 포기했습니다. 그나마 세로로 쓰던 걸 가로로 바꾼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그의 저서가 120여권에 이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 많은 원고를 모조리 육필로 작성한 것이다. 그는 최남선, 이광수에서 이상, 임화, 김동인, 염상섭으로 이어지는 근대문학사 연구에서부터 다달이 발행되는 문학잡지의 소설 월평까지 폭넓은 글을 써왔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문단 바깥의 사람들은 짐작하기 어렵다.

처음 소설을 쓰는 풋내기 작가의 글까지 정성스럽게 읽고 분석하는, 소위 ‘현장비평’이라는 것은 흔히 젊은 평론가들의 몫으로 생각돼 왔다. 평론가로 등단을 하고, 박사학위를 받고, 현장비평을 통해 감을 익히고, 대학에 자리를 잡으면 조금씩 현장비평과 멀어지면서 자신의 전문 분야로 귀착되는 것이다. 작가는 창조하고 비평가는 그것을 해설한다는, 이상한 상하구조의 고정관념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일일이 작품을 챙겨읽는 것 자체가 귀찮거니와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엄청난 성실성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평소 그에게 묻고 싶었던 두 가지 질문부터 던졌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책을 낼 수 있었는지, 어떻게 그렇게 꾸준하게 문학현장을 지켜올 수 있었는지.

“내 독창적인 글은 써본 적이 없습니다. 남의 글을 갖다가 열심히 읽고 해설을 열심히 썼는데 그것이 책으로 나와있을 뿐입니다. 왜 네 글을 못썼느냐고 묻는다면 거기 대해서는 역량이 없고 생각도 없었다는 게 솔직한 마음일 거예요. 문학연구와 현장비평은 이래요. 거시적 글쓰기와 미시적 글쓰기인데 이 두 가지를 왔다갔다 하는 것 자체가 삶의 활력소입니다. 어느 한쪽에 빠지면 오염되고 부패하고 폐쇄되고 말았을 겁니다. 지속성의 근거가 거기서 나오는 것이지요.”

김윤식 교수의 문학인생 중심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원조로 일컬어지는 문학평론가 게오르그 루카치가 있다. 그가 자신의 문학 입문과정을 들려주었다.

“문학을 하겠다고 대학에 왔는데 당시 대학이란 게 과학으로서의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었습니다. 국어국문학과라고 하면 국어학과 고전문학으로 나눠지는데 국어학은 순경음, 반치음을 가르치고 고전문학은 아래 아가 어떻게 변화됐는지를 가르치더군요. 대학 다니는 게 흥미가 없어 군대에 다녀오니 복학생이 됐고 친구가 없어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학문 중 어떤 학문이 가장 그럴 법하냐는 걸 고민했지요. 헤겔과 마르크스의 책을 뒤적이다가 루카치란 인물을 발견했습니다.”

‘복되도다, 그 시대는. 창공의 별이 우리가 갈 수 있고 가야 할 길을 훤히 비춰주는 시대는 복되도다.’

그는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의 유명한 첫 문장을 읊었다. 1970~80년대 그의 수업을 들었던 숱한 제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고, 문학의 길로 접어들게 했던 열정적인 명강의의 일부가 재현되는 듯했다.

“루카치는 자본주의 시대가 오면서 나아갈 길을 잃어버린 인간들에게 소설이 그 길을 가르쳐준다고 했지요. 작가들은 의식뿐 아니라 무의식까지 동원해 소설을 쓰고, 거기 등장하는 문제적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상실한 유토피아를 찾기 위해 방황을 계속하는 겁니다. 나는 그들의 방황에 동참함으로써 인류사회의 나아갈 길을 공부하고 싶어서 소설을 읽고 문학을 연구했어요. 얼마나 가슴 벅차고 멋진 일입니까.”

그는 70년 하버드 옌칭 장학금을 받아서 일본으로 유학을 갔을 때 도쿄대 정문앞 서점에서 루카치의 책을 구입했다고 한다. 사회주의의 ㅅ자도 꺼내기 어렵던 시절이었다. 그후 “대단히 많은 시간을 루카치를 읽고 해석하면서 보냈다”고 한다. 사회주의 사상가의 책을 읽고 학생들에게 강의했던 일로 인해 사상을 의심받고 과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지금도 루카치 전집은 그의 서가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글은 벼랑 끝에서 나오는 것…하찮은 글은 없어”

루카치가 인도해준 문학적 여정을 설명하는 김윤식 교수는 여전히 열정에 넘쳤다.

루카치가 설파한 소설의 이론처럼 군부독재가 계속되던 정치적 암흑기에 예민한 촉수로 우리 사회의 향방을 짚어낸 것은 소설이었다. 그는 현장에서 발표되는 수많은 소설 속에서, 그리고 현대 한국사회의 모습을 만들어낸 모태인 근대시기 작가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역사에 동참하는 길을 선택했다. 앞서 말한 거시적, 미시적 글쓰기에서처럼 근대문학사와 현장비평이라는 영역은 과거와 현재로 구분되는 별개의 실체가 아니라 서로 이끌고 겹쳐지는 뫼비우스의 띠이다.

일제 식민사관 극복이 눈앞의 과제였던 60년대에 학문의 길로 접어든 그는 문학평론가인 고 김현과 더불어 우리 근대문학의 시작을 영·정조까지 확대 해석한 ‘한국문학사’를 내놓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설프다”고 했지만 역사학계의 고 김용섭 연세대 교수가 ‘조선농업경제사’에서 증명한 자본주의 맹아론이 식민지 근대화론에 맞서 자생적 근대화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던 당시의 흥분과 열정이 그의 설명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때는 인문학에 목적이 있었어요. 되찾은 나라를 다시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학문적인 근거를 제공한다는 것이지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전성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도 소비사회로 접어든 오늘날, 너무 잘 살기 때문에 뭘 지키고 이뤄야 할 가치가 없는 때, 인문학이 위기에 처하는 건 당연하지요. 국가에서 연구비 많이 준다고 벗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문학에서도 인류사회의 나아갈 바를 암시하는 문제적 인간들이 활동하는 소설의 시대는 지나갔다. 과거의 인물들이 사회적, 역사적 존재였다면 지금의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이다. 그는 자신이 특별히 좋아하는 두 작가, 이청준과 윤대녕에게서 그러한 세상의 흐름과 변화를 읽었다.

그에게 이청준은 사르트르에게 카뮈가 가졌던 것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다. “사르트르는 ‘이럴 때 카뮈는 어떻게 생각했을까’라고 물었다는데 나는 ‘이청준이 이런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하는 게 늘 궁금했고,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었다”고 말한다. 이청준의 매력을 묻자 “그 양반이 광주일고의 천재였는데 평생 아무 일도 안하고 소설만 썼단 말이지”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이청준 역시 문학의 길을 ‘칠흑같이 어두운 밤, 산 속에서 길 찾아가기’에 비유하곤 했다.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이 통할 만도 하다.

90년대에 혜성같이 등장한 윤대녕은 ‘은어낚시통신’이란 작품으로 번뜩이는 영감을 주었다. “그것은 사회적, 역사적 조건 때문에 고뇌하고 망가지던 인간들이 생물학적 상상력으로 방향을 바꾸는 순간이며 인간은 벌레다, 연어다, 메뚜기다라고 선언한 작품”이었다면서 요즘도 그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한다.

김윤식 교수의 하루는 책읽기와 글쓰기로 채워진다. 오전 8시부터 정오나 오후 1시까지는 학문적인 글을 쓴다. 오후에는 산책을 하거나 볼일을 보고, 저녁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과 잡지를 읽는다. 눈이 나빠져서 텔레비전은 보지 않고 주로 라디오를 듣는다. 침실에도, 욕실에도, 서재에도, 식탁 위에도 라디오가 놓여있다. 한달에 한번씩 시내 대형서점에 나가 문학잡지를 사들이고 서울대 도서관에 가서 문학사 관련 자료를 찾는다. 그는 “최인훈이 오랜만에 단편을 썼다면 나는 그걸 집으로 가져오지 않고 명동성당에 들고 가서 읽는다. 그것이 애써 작품을 쓴 작가에 대한 예의다”라고 말한다.

평생 글을 써온 그이지만 글쓰기란 언제나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니 편하고 배부르고 안정되면 글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렇다면 선생은 왜 서울대 교수이면서, 명망 높은 문학평론가이면서 계속 글을 써올 수 있었는지 묻고 싶어졌다.

“나는 서울대에 있었지만 마음은 서울대 교수가 아니었소. 유명한 문학평론가도 아니었고. 건강도 그렇고, 모든 문제들이…. 말이 안되지만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네.”

“부드러운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자기에게도, 남에게도 관대합니다. 패배한 사람들은 자기에게도, 남에게도 엄격합니다. 가파를 수밖에 없지요. 늘 패배한 사람, 가파른 사람, 그런 사람이 가능성 있는 사람 아닌가. 부드러운 사람은 끝장난 사람입니다.”

이어진 건 최근 김윤식 교수가 많이 부드럽고 친절해졌다는 문학동네의 소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이 좀 바뀐 것은 사실인 듯하다. 최근 그는 10년간 준비해온 ‘백철연구’(소명출판)라는 책을 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문학평론가 백철의 삶과 문학세계를 그린 평전 형식의 연구서이다. 백철은 우리 문학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존재다.

“흔히 백철만큼 글을 많이 쓴 사람도, 알맹이 없는 글을 쓴 사람도 없다는 말을 하지요. 그는 새로운 사조를 늘 받아들였고, 저널리즘적인 글쓰기를 했고, 계속 시류를 좇으면서 살아온 사람이지만, 우리 가운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소. 반드시 깊이있고 일관되게 살아온 삶만이 아름다운지 질문하게 된 것이지요.”

그는 백철이 국어학과 고전문학으로 양분된 국어국문학과에 현대문학이란 영역을 개척한 사람이며, 따라서 오늘날 대학의 현대문학 전공자들은 그에게 큰 빚을 진 셈이라고 말한다. 부제에 단 것처럼 ‘한없이 지루한 글쓰기, 참을 수 없이 조급한 글쓰기’를 병행하면서 문학사 연구와 현장비평을 해온 백철의 모습은 김윤식 교수 자신의 자화상처럼 비쳐지기도 한다.

그는 백철 연구서를 쓰면서 두 가지가 몹시 부러웠다고 한다. 첫째는 그가 천도교라는 배경을 가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점이라고 한다. 두번째는 그의 인생에 늘 건강과 행운, 기회가 따랐다는 점이다. 품위없는 말인지 모르지만 잇따른 상처로 인해 처녀장가를 네 번이나 간 것도 부럽다는 농담까지 했다. 가파르고 치열한 인생만 가치있는 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김윤식 교수는 요즘 식민지시대를 다각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어마저 식민지로 삼으려고 했던 1942~45년에 집중적으로 쏟아진 일본어문학, 친일문학에 대한 연구성과를 내놓고 있다. 그런 그로서는 문인들의 친일행위에 대한 평가를 놓고 누구보다 깊게 고민했을 법하다.

“작년에 이런 일이 있었지요. 수필가 김소운의 아들이 아버지를 친일작가로 매도한 사람들에게 원망을 털어놓았지요. 그의 말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친일작가라는 것도 맞습니다. 일제에 협력한 글이 명백히 남아있으니까요. 그리고 그에게 은관문화훈장을 준 정부도 맞습니다. 그가 조선시를 일본어로 옮긴 건 큰 업적입니다.”

요컨대 민족국가의 정치적인 관점에서만 해석돼온 친일이란 문제는 생활사라는 큰 틀 속으로 흡수돼가고 있다는 것이다. 비로소 친일과 반일의 이분법을 벗어나 다각적인 사고와 조명이 가능해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동시에 국가 민족 표준어 등 근대의 큰 틀이 깨지면서 소설 역시 그 역할을 잃어버렸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요즘 젊은 세대의 상상력을 보십시오. 그리고 일본 만화를 보세요. 자기, 아니면 우주입니다. 소설이 담당해왔던 중간항인 역사나 사회는 빠져있지요. ‘창공의 별’은 사라지고 아주 유치한 동물적 단계와 아주 높은 우주적 단계만 남아있습니다.”

그는 최남선이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한 지 100주년인 올해를 지나 새로운 한국문학 100년을 내다보는 마당에 ‘소년을 우포늪(배한봉의 시집 제목)에 세워서 우주 가로지르기(비틀스의 노래 제목)’라는 화두를 던진다. 환경적 상상력, 우주적 상상력이 없이는 앞으로 100년을 헤쳐나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새로운 상상력을 현재의 소설에서 볼 수 있기에 그는 책을 덮지 않는다.

젊을 적, 그는 그룹 ‘비틀스’를 좋아했다. 그는 ‘비틀스’의 음악이 2차 세계대전 전승국의 자신만만하고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저항하는 방식이었다고 말한다. 유럽 패전국의 아버지들이 퇴폐와 절망, 실존주의로 빠져든 것과는 상반되는 지점이다. 그런 그가 좋아하는 비틀스의 노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러시아 무인화물우주선에 실려 우주 공간에 울려퍼진다는 내용이 얼마전 발표됐다. 고희를 넘긴 김윤식 교수의 상상력 역시 루카치가 바라보던 창공의 별에서 그 배경인 우주로 옮아가고 있는 듯하다.


▲김윤식은 누구인가…한국 근대문학 비평의 거목

1936년 경남 진영에서 태어났다. 마산상업고등학교를 거쳐 59년 서울대 사범대학 국문과, 62년 서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62년 월간 ‘현대문학’에 ‘문학사방법론 서설’이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68년 서울대 교양학부 전임강사가 되었다. 76년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79년 서울대 인문대 교수가 되었다.

한국 근대문학에서 근대성의 의미를 실증주의적 연구방법으로 밝히는 데 주력하였으며, 특히 1920~30년대의 근대문학과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가지는 근대상의 의미를 밝히고자 했다. 연구대상은 시·소설·비평 등 모든 영역을 포함하며, 이광수·임화·이상·김남천·염상섭 등 수많은 문인의 작가론을 발표했다. 73년 김현과 공동으로 펴낸 ‘한국문학사 논고’에서는 기존의 문학사와는 달리 근대문학의 기점을 영·정조까지 거슬러 올라가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소설을 중심으로 기성작가와 신인작가를 구별하지 않고 문학사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는 현장비평도 활발하게 펼쳐왔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 ‘이광수와 그의 시대’, ‘염상섭 연구’, ‘임화 연구’, ‘이상문학텍스트연구’, ‘오늘의 작가 오늘의 작품’, ‘일제말기 한국작가의 일본어 글쓰기론’ 등이 있다. 대한민국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요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만해대상 등을 수상했다.

경향신문: 글 한윤정·사진 박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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