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사랑하는 것에 대해 실패하지 않고 말하기(롤랑 바르트)

나뭇잎숨결 2016. 12. 1. 10:04

 

 

 

사랑을 사랑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 자체의 무게에 짓눌려 사랑의 대상을 취소하게 되는 언어의 폭발상태.사랑의 고유한 빈사상태에 의해 주체가 사랑하는 것은 사랑 자체이지 그 대상이 아니다. 취소annulation(바르트)

 

우리는 이제 탐구의 최종 단계로 들어섰다. 갑작스러운 바르트의 죽음으로, 이 강의록은 그가 남긴 마지막 글쓰기가 되어 또 하나의 운명을 주조하고 있다. 그 당시 바르트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앞으로 하게 될 여러 강의의 주제를 구상하고 있었다. 요컨대 바르트는 계속 연구 중이었으며, 미래를 염두에 두고 그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롤랑 바르트의 강의, “소설의 준비”는 하나의 대답 그 이상이다. 이것은 완전한 가르침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은 탐구의 대항해를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청중들 앞에서 탐구의 법칙을 극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탐구 대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오로지 탐구자 자신에 대해서만 알게 된다는 그 법칙을 말이다.('서문' 중에서)  

 

이 책은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학 이론가, 구조주의자, 탈구조주의자, 기호학자, 문화 철학자이기도 했던 롤랑 바르트의 "소설의 준비(La Preparation du roman, I, II)"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원래는 1978년부터 1980년 바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했던 강의와 세미나의 녹취록으로, 2003년 쇠이유 출판사에서 나탈리 레제(Nathalie Leger)의 감수 아래 출판되었다. 그러니까 바르트의 마지막 유고 저작인 셈이다.


이처럼 유고집으로 출간된 이 책은 "소설의 준비" 2부와 두 개의 세미나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소설의 준비: 삶에서 작품으로"와 "소설의 준비: 의지로서의 작품"이라는 제목이 붙은 강의로서, 1부는 1978년 12월 2일부터 1979년 3월 10일까지 13회에 걸쳐 진행되었고, 2부는 그다음 해인 1979년 12월 1일부터 1980년 2월 23일까지 11회에 걸쳐 진행되었다.

이 두 강의는 또한 각각 하나의 세미나와 연계되어 수록되어 있다. 1978년에서 1979년까지 바르트는 "미로의 은유"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와는 달리 1979~1980년의 세미나는 일단 전체 강의가 끝난 2월에 개최될 예정이었다. 이 세미나의 주제는 폴 나다르(Paul Nadar)가 포착한 프루스트와 관련된 몇몇 사진에 대한 해설이었다. 하지만 바르트는 이 세미나를 열지 못했다. 1980년 2월 25일, "소설의 준비" 강의를 마친 후에 콜레주 드 프랑스 앞 에콜 거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1980년 3월 26일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예정되었던 세미나를 마치지는 못했지만 이 책에는 바르트가 준비했던 세미나 텍스트를 수록해 놓았다.

바르트의 강의를 실제로 들었던 사람들은 그 "유창한 강의, 육중하고 매력적인 어조, 권위 있으면서도 무한정 환대를 베푸는 따뜻한 문장"을 떠올린다.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꽉" 채워지는 바르트의 강의실, 즉석에서 풀어 나가는 해설, "매우 규칙적이고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멋진 임기응변 능력" 또한 인상적이라고 말한다. 바르트는 강의에서 원고를 읽어 나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나, 그럼에도 실제 강의 내용과 원고 내용이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러한 바르트의 강의를 고스란히 살려 낸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바르트의 생생한 육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역자 변광배 교수는 녹음된 MP3를 들으면서 현장감을 살리고자 하였으며 우리말로 충실히 옮기면서 "바르트 특유의 직관과 감수성을 맛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고 옮긴이의 말에 밝혔다.


그렇다면 바르트가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소설’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하이쿠―현재, 그리고 한 사물의 본질이 존재하는 순간을 포착하다
바르트는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소설의 모습 중 하나로 일본의 ‘하이쿠’를 꼽는다. 바르트는 스스로, 자신이 프루스트와는 달리 기억을 바탕으로 글쓰기를 계속해 나가는 소설가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털어놓는다. 따라서 바르트는 ‘과거’보다는 ‘현재’에 주목하고, ‘현재’에서도 ‘순간’에 주목한다. 그러니까 "어떤 한 사물의 본질이 현현(顯現)하는 순간"에 주목한다. 이 때문에 바르트는 ‘메모하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한 5-7-5, 즉 17음절로 구성된 짧은 하이쿠에 주목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바르트의 관심사는 단지 하이쿠와 같은 짧은 형태의 소설, 즉 단장(斷章) 형태의 소설 창작과 미학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쓰기 행위―사랑받고자 하는 동시에 잊지 않으려는 욕망이자 이상 자아를 향한 행위: 바르트는 ‘저자’란 "뭔가 할 말이 있는 존재"라고 규정한다. 바르트에 의하면, 쓰기 행위는 이 행위의 주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한동안 이 세계에 존재했다는 사실에 대한 기억과 증언, 곧 그들을 ‘불멸화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다시 말해 그들이 이 세계에서 ‘헛되이’ 살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 주고, 그들이 ‘역사의 허무 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가령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바르트 자신이 당신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지 않으면, 어머니가 이 세계에 존재했다는 사실이 영원히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따라서 그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이때 바르트에게 있어 쓰기 행위는 ‘구원’과 연결된다.


또한 쓰기 행위는 이 행위의 주체가 가진, 타인들로부터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 나아가서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과도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쓰기 행위의 주체는 타인들, 곧 독자들을 유혹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쓰기는 가치를 내보이는 행위"여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나는 쓴다. 그러므로 나는 가치가 있다."라고 말한다. 여기에 더해 쓰기 행위를 통해, 그 주체는 자신이 쓴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글을 쓸 수도 있다고 바르트는 말한다. 바르트는 이와 같은 자신의 주장을, 쓰기 행위의 주체는 이른바 ‘자아 이상(l’ideal du moi; 自我理想)’보다는 ‘이상 자아(le moi ideal; 理想自我)’를 겨냥한다는 주장으로 발전시킨다.

디아포라―존재 고유의 특성 드러내기:마지막으로, 이 책을 통해 바르트는 ‘디아포라(diaphora)’ 개념을 통해서 문학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수사학에서도 사용되는 이 개념을 바르트는 ‘하나의 사물을 다른 것과 구별해 주는 것’으로 간단명료하게 설명하는 동시에 이 단어에 ‘이론, 담론(theorie, discours)’ 등을 의미하는 어미 -logie를 붙여 ‘디아포랄로지(diaphoralogie)’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고 이를 ‘여러 가지 뉘앙스나 무늬의 학문(science des nuances et des moires)’으로 규정한다.


‘디아포라’로서의 문학, 즉 바르트는 이 책에서 문학의 존재 이유를 ‘체계’, ‘법칙’, ‘일반성’, 곧 ‘억견(臆見, doxa)’에 대한 저항과 연결한다. 하나의 존재가 가진 고유성, 개별성, 특수성, 곧 유일무이성(唯一無二性)을 사상(捨象)하면서 이 존재를 일반화하고 하나의 체계로 환원하려는 모든 시도는 그 존재에 가해지는 폭력과도 같다는 것이 바르트의 주장이다. 따라서 이 존재를 제대로 규정하려면 그것만의 고유한 ‘무늬(moire)’, ‘색깔(couleur)’, ‘뉘앙스(nuance)’ 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이런 점을 감안해 ‘문학’은 ‘디아포라’를 증발시켜 버리는 모든 폭력에 대한 저항이어야 하며, 또한 이 저항은 각각의 존재가 그 존재이게끔 하는 특성을 표현하는 것, 곧 그것의 ‘디아포라’ 드러내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물론 문학에 대한 바르트의 이와 같은 성찰이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 책에서는 이와 같은 거부와 저항이 ‘디아포라’ 개념을 통해 보다 섬세하게 규정되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바르트 자신의 소설 창작’을 위한 준비 과정 속에서 그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작가’ 바르트―바르트의 삶 전체를 담기 1970년대 초, 작가라기보다는 문학 이론가, 문학평론가라는 위치에서 ‘저자의 죽음’과 ‘독자의 소생’을 소리 높여 선언했던 바르트는 이 책에서 ‘작가’의 모습을 보인다. 바르트는 하나의 작품에 그 작품을 쓰는 저자의 삶 자체가 녹아드는 것을 허용한다. 바르트는 ‘전기적 성운(星雲)’이라는 표현 속에 ‘일기, 전기, 개인 인터뷰, 회상록 등’을 포함시키며, 또 이를 작품의 질료로 여긴다. 또한 거기에서 출발해서 저자의 ‘해방’ 혹은 ‘탈억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을 내세웠던 과거와는 완전한 "대척 지점에 있다."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저자의 귀환을 선언한다. 이처럼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저자’로서의 바르트, 그 존재론적 위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바르트는 왜 "소설의 준비"라는 제목의 강의를 하게 되었을까. 이 질문과 관련하여 바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이 년 전인 1978년을 전후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르트에 따르면 그의 생애 말년에 발생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어머니의 죽음이다. 바르트 자신의 존재 이유와도 같았던 어머니는 1977년 10월 25일에 세상을 떠났다. 1977년 1월 7일에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취임하면서 바르트가 그의 어머니 손을 잡고 등장한 것은 "일찍 아버지를 잃은 상황에서 힘들게 자기를 키워 준 어머니에 대한 보답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바르트 자신의 고백에 의하면 어머니의 죽음은 그의 삶에서 결정적인 분기점이었다. 이 사건으로 바르트는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직 퇴임까지 생각하면서 완전히 ‘소금에 전 상태’ 또는 ‘아세디(acedie)’ 상태, 곧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완전히 낙담한 상태에 빠져 지냈다. "내가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이 무엇인가. 지금 이렇게 내 삶의 이유를 잃어버리고 말았는데. 누군가의 삶을 걱정스러워한다는 그 살아가는 이유를." [애도 일기(Journal de deuil)]에 실린 이 대목은 당시 바르트가 어떤 상태였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러던 중 바르트는 1979년 4월 15일에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서 일종의 ‘깨달음’, 즉 "바르트의 유레카(eureka barthesien)"를 얻는다. 바르트 자신의 표현을 빌면, 일종의 "문학적 개종과 같은 무엇"이 그의 내부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바르트는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를 함과 동시에 문학에의 입문을 결합한 ‘하나의 유일한 기획’, ‘대기획’에 자신을 완전히 투사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자신의 삶을 다시 시작해 보고자 하는 격렬한 욕망에 휩싸인다. 이렇게 해서 그는 이른바 ‘새로운 삶(Vita Nova)’을 시작하면서 같은 제목의 소설을 쓰고자 하는 생각을 품게 된다. 이 책은 바르트의 이와 같은 결심의 산물이다. 바르트는 이 책에서 소설 창작의 ‘알파와 오메가’를 다룬다. 즉 글쓰기-욕망, 이 욕망을 관통하는 환상, 글쓰기-의지를 비롯해 글쓰기 행위의 산물인 작품이 나올 때까지의 전(全) 과정을 답사하고 있다. 또한 글쓰기가 이루어지는 장소, 그것을 가능케 하는 도구, 사소한 소품 등에 대한 성찰도 포함한다. 뿐만 아니라 단테, 프루스트, 플로베르, 미슐레, 보들레르, 발레리, 말라르메, 블랑쇼, 카프카, 톨스토이 등 시대의 거장들을 탐색한다. 이 책의 주제는 ‘소설’, 그리고 소설과 관련된 모든 것이다. 혹은 ‘소설’을 주인공으로 하는 한 편의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롤랑 바르트, 그의 마지막 강의는 바로 소설의 모든 것이자 바로 그 자신이라는 점이다.(출판사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