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욕망의 하녀다"
보다 유명해지고, 중요해지고, 부유해지고자 하는 욕망 《불안》은 알랭 드 보통이 출간했던 그 어떤 책보다 우아한 독창성이 넘친다. 박식함과 위트, 도발적인 해석들이 빚어내는 놀라운 하모니!
《불안Status Anxiety》은 영국의 젊은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이 2004년 발표한 최신작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Essays in Love》《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How Proust can change your Life》《여행의 기술The Art of Travel》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평단의 찬사와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불러왔던 알랭 드 보통은 이제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문필가에 꼽힌다. 알랭 드 보통의 글쓰기는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며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던 것들을 바라보는 '뜻밖의' 시각을 제시해왔다. '연애'에 대해 그 어느 소설보다 흥미롭고 그 어느 철학자의 정리보다 독창적인 단상들을 풀어놓은《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10년 넘게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에서는 '표준적인 크기의 글자로 한 줄로 배열된다면 4미터가 조금 안 되며 포도주 병 바닥을 17번 감을 수 있는 문장'으로 독자를 위압하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독창적 평론을 가벼운 처세서 형식에 담아내는 기발함을 보여주었고, 《여행의 기술》에서는 워즈워스, 보들레르, 플로베르 등, 불멸의 예술가들이 남긴 자취를 따라가며 그들의 작품을 만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가 출간했던 그 어떤 책보다 우아한 독창성이 넘친다는 찬사를 받은《불안》에 이르러서 그는 신약 성서에서부터 20세기의 초현실주의 그룹과 미래주의자들의 당돌한 작품까지 2000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해박한 지식과 절정에 달한 위트, 도발적인 해석들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거기서 비롯되는 끊임없는 불안의 이유를 해명하기 위하여 알랭 드 보통은 지난 2000년간 철학과 문학, 회화의 대가들이 남긴 유산을 파고들었다. 《불안》은 알랭 드 보통이 지난 2000년의 철학과 문학, 예술의 흐름을 꿰뚫으며 경제적 능력으로 규정되는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인간의 불안을 탐구한 책이다.
경솔하게 동창회에 나갔다가 옛 친구 몇 명(이들보다 더 강력한 준거집단은 없다)이 아주 매력적인 일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우리 집보다 더 큰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왜 이리 불행하냐는 생각에 시달려 정신을 가누기 어려운 적이 있었던가? 불황, 실업, 승진, 퇴직, 성공을 거둔 걸출한 친구에 관한 신문 기사 등을 접하게 되면 불안한 마음이 드는가? 질투를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안을 드러내는 것 역시 사회적으로 경솔한 행동이기 때문에, 이런 마음이 들었다고 한들, 당신은 그저 체념에 젖은 듯한 멍한 눈길, 부서질 것 같은 미소, 유난히 긴 침묵 등만 간간이 보였을 것이다.
'사회에서 제시한 성공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할 위험에 처했으며, 그 결과 존엄을 잃고 존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알랭 드 보통에 따르면 "서양 문명 2000년의 장점은 이제 익숙하다. 무엇보다도 부, 식량, 과학 지식, 소비 물자, 신체적 안전, 기대 수명, 경제적 기회 등이 증가했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인상적인 물질적 발전이 곤혹스러운 현실 또한 수반한다. 이 현상이란 서구의 보통 시민에게 지위로 인한 불안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즉 자리, 성취, 수입을 놓고 걱정이 늘어났다는 뜻이다. 실제적 궁핍은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궁핍감과 궁핍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고 외려 늘어나기까지 했다. 중세 유럽에서 변덕스러운 땅을 경작하던 조상은 도저히 상상도 하지 못할 부와 가능성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놀랍게도 자신이 모자란 존재이고 자신의 소유도 충분치 못하다는 느낌에 시달려온 것이다."
불안은 삶의 조건이다. 삶은 하나의 욕망을 또 다른 욕망으로 하나의 불안을 또 다른 불안으로 바꿔가는 과정이다.
《불안》에서 알랭 드 보통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는 우리들의 '에고'가 지닌 불안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 메르세데스 벤츠의 광고 사진, 1902년에 열린 하인츠 케첩 영업자들의 회합 등, 철학과 예술, 일상의 위대한 유산들 사이를 종횡무진 누빈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애덤 스미스, 마르셀 프루스트, 장-자크 루소, 조지 오웰, 존 러스킨, 귀스타프 플로베르, 쇼펜하우어, 스탕달, 카를 마르크스, 월트 휘트먼, 알렉시스 드 토크빌, 제인 오스틴, 발자크, 조지 엘리엇, 샤를 보들레르, 버지니아 울프,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트리스탄 차라, 자크 루이 다비드, 귀스타프 쿠르베, 마르셀 뒤샹 등을 거쳐 오늘의 젊은 작가 제이디 스미스에 이르기까지, 20여 세기에 걸친 사상과 예술의 흐름을 타고 그는 단 한 가지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한다. "우리는 왜 세상에서 차지하는 자리에 대하여 끊임없이 불안해하는가?"
현대 사회에서 한 개인의 사회적 지위는 그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가, 그리고 그의 돈이 얼마나 많은 권력을 보장해주는가로 측정된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에서
'돈과 권력이 우리가 원하는 사랑과 인정을 보장해주는가' '많은 부를 소유한 것은 우리가 진심으로 바라던 성취의 모든 것인가 아니면 그 대체물일 뿐인가' '현대 소비 사회는 돈과 권력의 추구를 어떻게 부추기고 있는가' '발전된 기술과 편리한 기기들은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하는가 혹은 우리의 불안을 사육하는가'를 묻는다. 그러고 나서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을 극복하는 해법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인간의 삶에서 ' 철학', '예술', '정치', '종교' 그리고 '보헤미아'의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고 그들의 효능을 누릴 줄 안다면 불안을 치유하거나, 최소한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말한다.
《불안》의 하이라이트는 비로소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1834년 함부르크에서 채 서른도 안 된 젊은 장교와 남작을 죽음으로 몰아간 결투 이야기나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드로스 대제의 유명한 일화, 쇼펜하우어와 샹포르가 남긴 경구 등을 끌어오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아닌 스스로의 판단으로 자기 이미지를 만드는 일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대목에서부터 열여덟 살에 자살한 천재 시인 채터튼의 죽음,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 콧수염을 단 마르셀 뒤샹의 <모나 리자>, 샤를 보들레르의 유명한 시 <알바트로스>에 대한 단상까지 '인간이 세상의 지배적 관념에 맞서 독자적 가치'를 추구해온 풍요로운 예시들을 따라가다 보면, 떨쳐버릴 수 없는 삶의 조건 같은 '불안의 심리'가 어느 시대에나 위대한 창작과 생산의 동기로도 기능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된다. 모든 감추어진 삶의 가치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 필요한 예술적 매체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는 장은 이 책의 핵심이다. 알랭 드 보통은 예술을 '삶의 비평'으로 정의한다. 타락한 피조물로서 가짜 신들을 섬기고,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남의 행동을 오해하고, 비생산적인 불안과 욕망에 사로잡히고, 허영과 오류에 빠질 위험에 처해 있는 인간에게 소설, 시, 희곡, 회화, 영화 등 예술작품은 은근히 또 재미있게, 익살을 부리기도 하고 근엄한 표정을 짓기도 하면서 인간의 조건을 설명해주는 매체 역할을 한다. "예술은 세상을 더 진실하게, 더 현명하게, 더 똑똑하게 이해하는 방법을 안내해준다. 그리고 우리가 지위와 그 분배의 문제에 접근할 때만큼 비평이 필요한 순간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시대를 막론하고 아주 많은 예술가들이 어떤 식으로든 사회가 사람들에게 등급을 부여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을 창조한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예술의 역사는 지위의 체계에 대한 도전, 때로는 풍자나 분노가 서려 있기도 하고, 때로는 서정적이거나 슬프거나 재미있기도 한 도전으로 가득하다."
《여행의 기술》 이후 2년 만에 펴낸 두툼한 저작 《불안》에서 펼쳐지는 '지위로 인한 불안'에 대한 그의 분방한 물음과 답변은 높은 지위를 향한 인간의 욕망을 두고 가벼운 사색을 격의 없이 자유롭게 늘어놓았을 뿐인 듯 보이지만, 속도감 있게 이어지는 그 이야기들 속에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장-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 존 러스킨의 《이 최후의 사람에게》, 제인 오스틴의 《맨스필드 파크》등, 역사 속 철학과 문학의 대가들이 남긴 진지한 담론들과 그 배경이 유장하게 흐르고 있다.
* 이 책에는 사진, 도표, 회화, 카툰 등 시각 자료들도 풍부하게 실려 있다. 시각적 이미지들은 이해를 도울 뿐만 아니라, 바로 이 책의 핵심 의도대로, '잠깐 숨을 돌리고 삶을 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12월 초의 늦은 아침 '나'는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브리티시 항공기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운명적인 여인 '클로이'와 조우한다. 둘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희박한 확률로 만났다는 "낭만적 운명론"에 젖어 단박에 사랑에 빠진다. 둘은 초기에는 서로를 "이상화"하고 서로의 말과 행동에서 "이면의 의미"를 찾고 "정신과 육체"를 결합하려고 시도한다. '나'는 만남이 잦아지면서 "사랑이냐 자유주의냐"를 놓고 갈등하기도 하지만 끝없이 상대의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하고, 결국 "사랑을 말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윌이라는 친구가 '나'한테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는가"라고 묻는 동시에 클로이와 윌은 서로에게 호감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에 '나'는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고 클로이를 붙잡기 위해 "낭만적 테러리즘", 즉 엇나가는 사랑을 되돌리려고 억지를 쓰나 실패하고 만다. 클로이가 윌을 택하자 '나'는 삶이 무의미해지는 동시에 그들에게 침묵으로 시위하고자 "자살"을 기도한다. 그러나 결국 미수에 그치고 '나'는 "예수 콤플렉스"―스스로 고통을 받도록 선택되었다고 생각하는 것―가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아프게 깨닫는다. 그 후 나는 "심리적 운명론"을 좇아 그녀 없는 삶, 곧 "생략"도 받아들인다. 시간이 흘러 실연의 상처를 극복한 '나'는 "사랑의 교훈"을 깨닫고 어느 순간 다시 한 번 새로운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빠지는 행위는 자기 자신의 허점을 넘어서고 싶어하는 인간 희망의 승리이다."
이처럼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은 사랑에 관한 철학적 명상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새로 경험하는 굵직굵직한 사건에서 통찰력을 보여주는 것도 놀랍고 존경스러운 일이겠지만, 연애라는 "케케묵은" 문제를 놓고 비상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놀랍다. 대다수 사람들이 연애하는 과정에서 사랑에 대해서는 "일가견"을 가지기 마련인데, 그런 독자들을 앉혀놓고 새로운 통찰과 깨달음으로 무릎을 치게 만드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드 보통은 그 쉽지 않은 일을 능숙하게 해내서, "실제로 이 책을 읽다 보면 소설처럼 흘러나가는 이야기와 얼핏 딱딱해 보이는 철학적 사유가 얽히면서 때로는 뭔가 입 안에서 계속 씹히고 터지는 느낌이 드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처럼, 때로는 온탕 냉탕을 왕복하는 것처럼 어떤 청량감을 맛보게 된다." 드 보통의 재치와 유머는 상당한 지적 노력을 수반하는 수준 높은, 매혹적인 "가벼움"이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으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자전적 경험과 풍부한 지적 위트를 결합시켜 사랑과 인간관계에 관해 탐구한 독특한 연애소설 3부작 《Essays in Love》(1993) 《The Romantic Movement》(1994) 《Kiss & Tell》(1995)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우아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문학과 철학과 역사를 아우르며 현대적 일상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에세이 《How Proust Can Change Your Life》(1997) 《The Consolation of Philosophy》(2000) 《여행의 기술The Art of Travel》(2002) 《불안Status Anxiety》(2004) 《행복의 건축The Architecture of Happiness》(2006) 등을 연이어 출간하며, 다음 작품이 가장 기대되는 작가로 꼽히고 있다. 드 보통의 저서들은 현재 20녀 개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어 세계 각국에서 수십만 부씩 팔리는 베스트셀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