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치유하는 글쓰기 & 글쓰기의 공중부양

나뭇잎숨결 2009. 2. 11. 05:29

 발상의 전환 없이 글쓰기의 발전을 기대하지 말라. 의문은 발상을 전환시키는 도화선이다. 끊임없이 의문을 던져라. 참새는 왜 걷지 못할까. 양심 측정기가 발명되면 어떤 사람들이 가장 강력하게 사용을 반대할까. 물에 비친 달은 물일까 달일까. 돌고래는 정말로 외계에서 온 지성체일까.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면서 해답을 탐구하라. 남들이 보는 시각과 똑같은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습관을 버려라. 그래야만 남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고 남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깨달을 수 있다.

 

                                                                                     ― <1부 단어의 장(場), 본성찾기> 중에서

글로써 타인을 감동시키거나 설득시키고 싶다면 진실하라. 진실은 사실과 다르다. 사실을 통해 그대가 얻은 감정이 진실이다. 글쓰기는 자기 인격을 드러내는 일이다. 글을 쓰면 그대의 내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머릿속에 있는 것들도 실체를 드러내고 가슴속에 있는 것들도 실체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글로써 타인을 감동시키거나 설득시키고 싶다면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갈고닦아야 한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궁극으로 하는 최상의 창작행위다. 세인들은 예술이 예술가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과는 거리가 먼 분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술은 예술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든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서 최상의 경지에 이르면 예술을 구사할 수 있다. 경지에 이른 구두닦이가 잘 닦아놓은 구두코 끝에도 예술은 있다. 문학은 예술이다. 그러나 글쓰기를 통하지 않고서는 도달할 수 없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예술이 아름다움을 궁극으로 한다면 문학도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글쓰기는 아름다움의 모색으로부터 출발한다. 자신의 내면도 아름답게 만들고 타인의 내면도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소망이 있어야 한다.

 

                                                                                                              ― <2부 문장의 장(場), 글쓰기의 필수요건> 중에서

창작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그대의 정신상태부터 한번 점검해 보자. 정신상태를 들먹거리면 정신이 저절로 경직되면서 약간의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가 만약 대한민국 남자라면 병역의 의무를 필한 사람이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군대만 가면, 쫄따구가 말이야, 정신상태가 불량해 가지고 말이야, 어쩌구 하는 소리를 수없이 들어야 한다. 정신상태가 불량하다는 말을 들으면 대개 시멘트 바닥에 대가리를 박아야하는 불상사도 뒤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정신상태는 군대에서 강요하는 정신상태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우선 무기의 용도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군대에서 다루는 무기는 인명 살상용이지만 여기서 다루는 무기는 영혼 구제용이다. 이쯤에서 나는 그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고 싶다. 지금까지 공부한 것들을 실전에 써먹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방대한 지식을 두뇌 속에 소장하고 있어도 써먹을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 <3부 창작의 장(場), 의식의 날개를 달자> 중에서

향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고 똥 싼 종이에서는 똥내가 난다는 말이 있다. 가히 법문(法門)이다. 자신이 어떤 것들을 가까이 하느냐에 따라 인품도 달라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 시쳇말로 하자면 노는 물이 좋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대가 노는 물에 따라서 그대의 글도 달라진다. 그대가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날마다 개떡 같은 생각이나 하면서 개떡 같은 언행을 일삼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말라. 그러면 그대의 글도 개떡 같아질 것이다.


인연에는 악연이 있고 호연이 있다. 글을 쓰는 자에게는 글을 방해하는 인연이 악연이고 글에 도움을 주는 인연이 호연이다. 그대가 어떤 인연을 만나든 상관하지 않고 향내가 나는 글을 쓸 수만 있다면 적어도 그대에게는 악연이 없다. 하지만 그러한 경지를 획득하지 않았다면 가급적이면 좋은 물을 찾아다니는 습관을 기르도록 하라.

 

                                                                                                                       ― <4부 명상의 장(場), 사색의 출발> 중에서

 

 

1부 공중부양에 대한 일화 /글이란 무엇인가 /1부 단어의 장(場) /단어채집 | 속성찾기 | 본성찾기 | 창조의 출발
2부 문장의 장(場) /문장의 기본형식 | 글쓰기의 필수요건 | 경계해야 할 병폐들 | 띄어쓰기와 맞춤법에 대하여 | 문학적 문장 만들기 | 왜 쓰는가 | 문장의 적용 | 글쓰기의 실제 | 세련된 문장 만들기 | 수사법 | 자료의 활용
3부 창작의 장(場) /문학은 예술이다 | 의식의 날개를 달자 | 소설에 대해서 | 소설의 기본요소 | 자기만의 목소리를 가져라 | 점검
4부 명상의 장(場) /사색의 출발 | 이외수의 문장백신
마지막으로 던지는 질문 하나 / 체험의 글 | 나는 당신이다_기노(奇櫓)

 

 

 

 

 

 

 

 

치유하는 글쓰기는 완전치유하는 글쓰기한 자기용서와 자기수용을 지향한다.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인정하고 애도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치유의 출발점이자 원동력이며, 어찌 보면 완성이기도 하다. -8쪽

치유하는 글쓰기는 그 어떤 글이라도 치유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문학적 수준의 높고 낮음이나 지적인 정보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어떤 식으로든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 가치에는 등급도 없다. -19쪽

욕구가 몸 안에 쌓여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잘 알아채지 못한다. 그것이 언어화되어 입 밖으로 나왔을 때 비로소 내가 하고 싶은 말과 직면하게 된다. 내가 몰랐던 나의 얘기를 듣는 순간,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30쪽

글쓰기는 주의 깊게 보는 행위 그 자체이며, 자신이 어떻게 보고 경험하는지 알게 해주는 행위이며, 그것도 끊임없이 달아나고 소용돌이치는 대상을 붙들어 고정시켜놓고 지켜본다는 점에서 성찰적이고 치유적이지만, 참 지독한 방법이기도 하다. -62쪽

우리는 누구나 대부분 정답을 알고 있다. 자신이 어떤 면에서 잘못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다. 단지 나의 생각과 감정에 충분히 귀 기울여주고 공감해줄 '사심 없는' 지지자가 필요할 뿐이다. -70쪽

만약 상대의 글을 읽다가 어떤 대목, 어느 문장, 혹은 단어 하나가 마음에 걸린다면 내 안의 어떤 틀이 그렇게 느끼게 하는지 돌아볼 일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상대의 글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릴 틈이 없다. 그 글을 읽는 나의 아우성, 내 내면의 요구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분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유하는 글쓰기는 쓰는 사람뿐 아니라 읽는 사람에게도 치유의 과정이 된다. -93쪽

일상의 작은 것들을 챙기기 시작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다. 처음엔 의미를 알 수 없는 조각들이 듬성듬성 의식 속에서 떠오르지만 조각들이 더 많이 맞추어지고 나면 전체 그림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조각퍼즐처럼,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136쪽

이제 남과 비교하기 위해 밖으로 향해 있던 시선을 거두고, 내면으로 돌아와 내 속에 웅숭거리고 있는 아이들을 하나씩 바라봐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커버렸기 때문에 누군가의 돌봄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나만이 나를 돌볼 수 있다. 그럴 나이가 된 것이다. -144쪽

아무리 성찰해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나 열등감, 피해의식,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본래 부모가 가진 것이 아니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 인생의 경험에는 없는, 뿌리가 없는 감정이 있다면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150쪽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떤 상처에도 강하게 살아남는 생존력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일찌감치 그 상처를 바라보고 또 치유하게 되면 웬만한 고통도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저항력까지 갖추게 된다. -151쪽

명상으로 안 되는 자문자답이 글쓰기로는 가능하다. 내가 나에게 묻고,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대답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 일종의 인터뷰 기사를 작성하듯 나 자신을 주인공으로 글을 쓴다. 하고 싶은 말을 다할 수 있도록 끈질기게 묻고 또 충분히 대답해야 한다. -183쪽

글을 쓰다가 가슴에서 어떤 느낌이 온다면 당신이 가고 있는 길이 맞다. 그 길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또 어떤 글쓰기 대목에서 유난히 가슴과 몸이 반응한다면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아직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해결됐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감정적인 반응이 따라온다면 또 다른 차원의 의식에서 어떤 문제가 해결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252쪽

때로 인간은 홀로 굴속에 들어가서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제 혀로 핥으며 치유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기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니 어두운 방에서 홀로 쓰고 있는 글이 치유를 위한 것이 아니라 혹시 세상으로 나가는 걸 회피하기 위한 구실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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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하는 글쓰기>를 관통하는 주제는 '자가치유'에 대한 믿음이다. 즉 답은 자기 안에 있고, 그것을 종이 위에 발설하고 직면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날로 불안해져가는 경제 상황, 물질문명의 이기에서 소외된 자들은 오늘도 '심리학' 언저리를 맴돈다. 불안한 이유를 찾기 위해 심리상담가를 찾아야 하나, 정신분석가를 만나야 하나, 신문의 칼럼니스트가 해주는 답을 들어야 하나,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야 하나,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타로카드를? 이렇듯 사람들은 외부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의 틀에 갇혀 애쓴다.


하지만 그곳에 닿기까지 현실의 문턱은 너무 높다. 아직 우리나라 여건상 심리치료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무엇보다 발설하고 싶은 욕망 한켠에 자리한, 외부의 적들로부터 자기를 방어하려는 자기 안의 벽이 그런 행동을 방해한다.


그런 점에서 종이와 펜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는 글쓰기는 참 탁월한 도구이자 편리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 많은 상담선생님을 찾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외부인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발설하는 일이 한결 쉬울 테니까. 치유하는 글쓰기 프로그램 참가자들도 먼저 자신에게 발설함으로써 내면에 숨어 있는 상처의 근원을 찾고 극복하겠다고 결심한 개개인들이다. 다만, 이들은 직접 행동에 나섰다는 점에서 우리보다 반 발짝 앞에 서 있다.
이 책에 어렵게 자신의 글을 공개한 많은 참가자들은 이제 글쓰기의 또 하나의 힘인 '공감'의 역할에 공감하기에 이르렀다. 자신의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상처 언저리에서 헤매는 독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자신 또한 사심 없는 지지자를 얻길 바라는 것이다.

종이 위에 발설하고 직면하는 순간, 치유는 시작된다

문장강화



글쓰기의 탁월한 점은 마음 치유의 다양한 방법들이 그 안에 모두 들어 있다는 것이다. 나를 표현하기, 거리두기, 직면하기, 명료화하기, 나누기, 사랑하기, 떠나보내기, 수용하기까지.
우리는 과거의 일은 묻어버리고 현재와 미래의 행복한 자신의 모습만 들여다보며 살길 원한다. 그러나 많은 심리학 서적들은 과거의 상처는 덮어둘수록 줄어드는 게 아니라 그 흉터가 언젠가는 덧나게 되어 있고, 그것을 바라봐주고 보듬어주고 사랑해줄 때 비로소 불행했던 과거와 제대로 이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알코올중독인 아버지, 집나간 어머니, 편부모가정, 지독했던 가난과 상대적인 박탈감, 숨기고 싶은 치욕적인 과거, 성폭력의 경험, 가까운 선대가 일제시대와 6.25, 독제시대를 겪은 우리나라의 우리세대만이 겪어야 했던 아픔까지, 우리의 마음속엔 우리가 보듬어 안아야 할 상처들로 얼룩져 있다. 그 어느 것도 인생의 걸림돌이 된다면 그만큼의 위무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
죽도록 미운 당신에게 쓰는 편지부터 핵심가치를 찾아 떠나는 여행까지, 치유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단계적으로 다루는 일련의 소재들을 가지고 직접 글을 쓸 때마다 얼룩졌던 내면의 상처는 조금씩 극복되고, 우리의 마음은 조금 더 튼튼해진다.


물론 종이 위에 쏟아내는 순간이 치유의 끝은 아니다.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어렵게 털어놓긴 했지만 중간에 외면하고 싶고, 거부하고 싶고, 그냥 덮어두고 싶은 욕망이 고개를 쳐들 것이다. 어떤 날은 왜 이런 일을 시작했는가 하는 회의가 밀려들고 주저앉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반 발짝 차이에서 비롯되는 치유의 힘이 미래의 인생을 훨씬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치유하는 글쓰기 참가자들은 증거하고 있다. 실제로 그들의 글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변주와 극복의 과정이 하나의 변주곡처럼 읽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저자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먼저 그들의 상처에 공감하고, 스스로 글쓰기를 통한 치유 과정에 반 발짝 들여놓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쓰기 행위에는 우리 내면의 위험한 열정 덩어리를 위험하지 않은 형태로 변화시켜 표현하는 기능이 있다. 박미라의 《치유하는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한 자기표현만으로도 내면의 상처가 치유된다는 사실을 꼼꼼히 보여주는 책이다. 치유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얻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며 깊은 공감을 확보하고 있다. 글쓰기를 통해 치유뿐 아니라 자기용서, 가치 정립, 희망 품기까지,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곳을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펼쳐 보인다. 책에 소개되어 있는 치유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의 주제와 노하우를 따라 글을 써보면 누구든 내면의 변화와 치유를 경험하지 않을까 싶다.

 

                                                                                                                                                               -                                                                                                                                                   - 김형경(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