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나뭇잎숨결 2009. 2. 10. 11:34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인 장 지글러가 기아의 실태와 그 배후의 원인들을 아들과 나눈 대화 형식으로 알기 쉽게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전쟁과 정치적 무질서로 인해 구호 조치가 무색해지는 현실, 구호조직의 활동과 딜레마, 부자들의 쓰레기로 연명하는 사람들, 소는 배불리 먹고 사람은 굶는 현실, 사막화와 삼림파괴의 영향, 도시화와 식민지 정책의 영향. 특히 불평등을 가중시키는 금융과두지배에 대해..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생사를 가르는 상황들이 얼마나 정치, 경제 질서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중요한 메시지가 그가 교수이고 유엔기구의 고위인사라는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그런 활동과정에서 그 스스로 알게 되고, 보게 된 것들을 국제적 기아 문제에 대한 전문가로서 다시 한 번 분류하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은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 많지 않은 기아 관련 저술 중에서 이 책은 가장 고급의 정보를 담고 있고, 몇 가지 점에서는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확보한 책이다. 아들과의 대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책은 현재 기아의 현장에서 어떤 사람들이 부당하게 이득을 보고 있고, 그런 이득들이 어떻게 재생산되며 더욱더 많은 어린이들을 굶주림으로 내몰고 있는가를 상세하게 알려준다.


우리나라에는 장 지글러 교수가 이 짧은 책에서 말했던 몇 가지 사례와 그것을 둘러싼 구조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 정치적 논란의 여지가 될 북한의 기아문제가 아니더라도 칠레에서 벌어진 일과 네슬레의 관계, 부르키나파소에서 드러난 젊은 혁명가들의 애환, 그리고 국제식량기구의 정책 방향이 결정되는 과정과 같은 얘기들은 우리나라의 전문가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사실 장 지글러 만큼 고급정보를 접하면서도 현장에서 상황을 이해한 사람이 우리나라에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학자이며 지식인이며 또한 전문가인 사람들은 다수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 한가운데나 중남미의 현장에서 상황을 목격하고 분석하고 이것을 전체적인 흐름에서 다시 정리한 사람은 없다. 게다가 기아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는 거의 초보적 수준이다. 많은 어린이들이 굶주리고 있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정도의 사실이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2000년 출간된 이래 전세계 9개 언어로 번역되어 기아문제의 기본서로 읽히고 있다. 한국어판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성공회대학 외래교수로 있는 우석훈 교수의 해제와 건국대학교 주경복 교수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간략한 소사를 같이 실었다.

기아의 실상
유엔식량농업기구는 2006년 10월 로마에서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2005년 기아로 인한 희생자 수를 집계했다.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어린이가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으며, 비타민A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한 사람이 3분에 1명꼴이며, 세계 인구의 7분의 1에 이르는 8억 5,000만 명이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에 놓여 있다. 기아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2000년 이후 1,200만 명이나 증가한 것이다.


1984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평가에 따르면, 당시 농업생산력을 기준으로 계산하여 생산되는 식량의 양은 지금 인구의 2배인 120억 인구를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먹여 살린다는 의미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루 2,400~2,700칼로리 정도의 먹을거리를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불합리하고 살인적인 세계질서는 어떠한 사정에서 등장한 것일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이것은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겠지만 문제의 핵심은 사회구조에 있다. 식량 자체는 풍부하게 있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확보할 수단이 없다.

소는 배를 채우고, 사람은 굶는다?
전세계에서 수확되는 곡물의 4분의 1이 부유한 나라의 소들이 먹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고기를 너무 많이 먹거나 영양과잉 질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거꾸로 다른 쪽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굶어죽고 있다. 소들이 먹어치우는 곡물이 연간 50만 톤에 달한다.

조작되는 세계 곡물시장 가격과 버려지는 식량
세계시장에 비축된 식량의 가격이 종종 인위적으로 부풀려진다. 세계의 주요 농산물이 거래되고 있는 시카고 곡물거래소는 몇몇 금융자본가들, 앙드레 S.A.(스위스), 켄티넨털 그레인(미국), 카길 인터내셔널(미국), 루이 드레퓌스(프랑스) 등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부유한 나라들은 식량을 대량으로 폐기처분하거나, 법률이나 그 밖의 조치를 통해 농산물의 생산을 크게 제한하고 있다. 남반구에서는 식량이 없어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도 농산물 가격을 높이기 위해 이것이 유럽 등 선진국의 농업담당 집행위원회가 하는 일이란다.

기아에 관해 가르치지 않는 학교
정규 수업시간에 전쟁보다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기아에 대해 가르치는 학교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기아의 상황을 파악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고 어떤 수단으로 극복할 수 있을지 토론하는 수업 같은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뜬구름 잡는 식의 정서적인 대응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부적이고 정확한 상황인식이 필요하다. 얼마전 어느 포털 사이트에서 한비야 씨가 네티즌들에게 '굶는 아이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과연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식량생산을 늘여 굶주림을 없애야 한다고 답하는 것을 보았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아에 대한 인식인 것이다.

기아를 부추기는 아프리카에서의 전쟁
2000년 기준으로 아프리카 인구는 세계 인구의 15%에도 못 미치지만 기아 인구의 25퍼센트 이상이 아프리카에 집중되어있다. 1970년에서 1999년 사이에 아프리카에서만 43차례의 전쟁이 벌어졌고, 이들 전쟁은 심각한 기아를 초래했다. 전쟁의 이유는 복잡하지만 인종간의 갈등, 다이아몬드나 금, 석유와 같은 토착자본을 독점하고픈 욕망 등, 때로는 국제적인 금융 그룹이나 국제기업 등의 외부세력이 개입해서 은밀히 그 지역의 전쟁지도자에게 무기를 대주거나, 용병을 공용할 수 있도록 자금을 대주기도 한다. 이들 전쟁의 희생양은 아프리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민들이다.

북한의 기아 현실
북한의 상황은 절망적이다. 1995년에서 2000년 사이에 200만 명이상이 굶어죽었다. 1990년도에 비해 곡물의 수확은 늘었지만, 취약한 토지소유 구조, 비료와 농기구의 부족, 만성적인 에너지 위기로 인해 곡물생산량이 최저 생계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는 2006년 북한의 식량 부족분이 80만 톤 이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수확량이 인구의 최저 생계선을 15퍼센트쯤 밑돌고 있는 것이다. 2004년 유니세프와 FAO는 북한 아동의 영양 실태에 관한 광범위한 조사에 착수했는데, 그 결과에 따르면 15세 미만 아동의 37퍼센트가 심각한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수유모의 30퍼센트가 영양실조로 빈혈증세를 보여, 아이들에게 젖을 줄 수 없는 형편이다.

세계적인 식품회사인 스위스의 네슬레와 아옌데의 비극
1970년 칠레의 인민전선은 101가지 행동강령을 발표하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15세 이하의 모든 어린이에게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칠레가 처한 높은 유아사망률과 어린이 영양실조라는 문제를 놓고 본다면 절체절명의 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이 공약을 내건 아옌데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이 문제에 가장 곤란함을 느꼈던 것이 스위스의 다국적기업인 네슬레였다. 커피와 우유를 주품목으로 하는 네슬레에게 칠레 정부가 분유를 무상으로 공급한다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칠레에서의 성공사례가 다른 중남미 국가들로 번져갈 경우에는 더욱 큰 골칫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소아과 의사 출신인 아옌데가 내건 이 공약이 벽에 부딪힌 것은 칠레의 농장을 장악한 네슬레가 1971년 협력거부 방침을 결정하면서부터이다. 아옌데 정부는 네슬레에게 우유 구매를 요구하였으나, 이 요구는 거부당했다. 이때부터 아옌데는 키신저를 비롯한 미국 정부와 네슬레를 축으로 하는 다국적기업에 의해서 고립되고, 결국 CIA와 결탁한 군인들이 대통령궁을 습격하여 암살당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칠레의 어린이들은 다시 영양실조와 배고픔에 시달리게 되었다.

아마존의 파괴와 사막화로 인한 기아
1991년 통계에 따르면 36억 헥타르의 땅에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전체 육지의 4분의 1, 경작이 가능한 건조지대의 약 70퍼센트나 된다. 사막화는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서, 매년 약 600만 헥타르의 땅이 사막으로 변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3분의 2는 원래 사막을 포함한 건조지대라서, 경작이 가능한 건조지대의 73퍼센트 정도가 사막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럼 아시아는 어떨까? 역시 경작이 가능한 건조지역의 71퍼센트, 약 14억 헥타르에 걸쳐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지중해 남쪽의 건조지대는 이미 그 3분의 2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약 10억의 인구가 가까운 장래에 사막화의 위협에 직면할 거라고 예측된다.
사막화와 농지의 황폐화를 방지하기 위해 '사막화방지 협약'을 체결하였으며 이로 고통받고 있는 나라들은 사막화방지 협약에 따라 파견하는 농업, 수리, 식물, 기후 분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적절한 대책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의 사막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고, 사막화로 인해 수백만의 농민들이 목초지나 경작지를 잃고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그들을 도울 능력이 없음을 절감한 유엔은 그들을 '환경난민'이라 부르게 되었어. 그런데 문제는 정치난민과 달라서, 그들은 국제사회가 정한 '난민조약'(1951년)에 규정된 난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3)결론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먹는 것이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인간이든,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최우선 과제는 먹을 것을 섭취하는 일이다. 먹을 것이 없으면 피조물은 죽는다. 식물은 물이 없으면 시들고, 먹이가 없는 동물은 기진해서 쓰러진다. 식량을 구하지 못한 인간은 기력을 잃고 사경을 헤매게 된다.


모든 생명체의 두 번째 과제는 번식하는 일이다. 번식하기 위해 식물은 성숙 단계를 거쳐야 하고, 동물은 번식 가능한 나이에 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손을 남길 수 있다. 그리고 너무 빨리 병들거나 죽지 않고 번식 가능한 나이에 들기 위해서는 영양을 섭취해야 한다.
한쪽에는 특권으로 가득한 풍요로운 세계가, 다른 쪽에는 빈궁한 세계가 존재한다. 태곳적 식량 분배는 남자들의 힘에 좌우되었다. 임신한 여자와 아이는 절대적으로 남자에게 의존해 있었다. 그러나 역사가 흐르면서 영양 섭취는 점점 더 사회적, 정치적, 재정적 힘의 문제가 되었다.

세계를 지배하는 금융자본
자본은 단기간에 지구를 정복했다.
냉전체제의 몰락과 또 한 가지 패러다임 변화는 바로 글로벌화한 자본주의 내부에서 한 가지 자본, 즉 금융자본이 산업, 무역, 서비스 등의 자본들을 제치고 주된 자본으로 부상한 것이다. 금융자본의 이윤극대화 법칙은 오늘날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금융자본이 왜 이렇게 우세한 것일까? 거대하고 효율적인 컴퓨터 체계의 발명은 아주 복잡하고 세계적인 '경제제국'의 동시적 관리를 가능케 해주었다. 몇 조개의 정보를 빛의 속도(초속 30만 킬로미터)로 중단 없이 순환시키는 통일적인 사이버스페이스가 탄생한 것이다.
자본주의 생산과정에서 이런 패러다임 변화-사회적 양극구도의 몰락과 숨 막히는 기술혁신-는 금융자본의 거의 완전한 글로벌화로 이어졌다. 세계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1999년에 유통된 금융자본은 이 해에 전세계적으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보다 63배나 더 많았다는 것이다.
1919년에 막스 베버는 "부란 일하는 사람들이 산출한 가치가 이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오늘날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오늘날 부, 즉 경제력은 다혈질적인 투기꾼들이 벌이는 카지노 게임의 산물이다.

개인이 국가보다 부유한 시대
남반구와 북반구의 비참한 세계, 너무도 골이 깊은 불평등한 세계. 오늘날의 세계의 주된 갈등은 더 이상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사이의 갈등이 아니다. 만성적인 실업난(유럽연합의 실업률은 12.5퍼센트)과 빈곤, 사회의 계층화, 영양실조가 지금은 북반구도 위협하고 있다. 그 주범은 바로 민족을 초월하여 활동하는, 글로벌화한 금융자본의 과두지배가 바로 그것이다.
세계 225명의 대재산가의 총자산은 1조 달러가 넘는다. 이것은 전세계 가난한 자들의 47퍼센트(25억 명)의 연간수입과 맞먹는 수치이다. 빌 게이츠의 자산은 가난한 미국인 1억 600만 명의 총자산과 맞먹는다.
오늘날 개인들은 국가보다 더 부유하다. 세계 15대 부호들의 총자산은 남아프리카를 제외한 사하라 이남의 모든 아프리카 나라들의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선다.
이런 숫자의 배후에는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 찬 세계가 존재한다. 불평등이라는 부당한 역동성이 현재의 세계질서를 결정하고 있다.

글로벌화한 금융자본의 과두지배자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를 필요로 한다. 이 이데올로기가 바로 신자유주의(시장원리주의)라는 것이다. 이 이데올로기는 특히 위험하다. 중심에 자유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규범도 가라, 규제도 가라, 국민국가도 가라, 장애만 될 뿐이다. 선거도 가라, 일치도 가라, 정권교체도 가라, 민족주체성도 가라. 자유! 자본을 위한 자유, 서비스를 위한 자유, 특허를 위한 자유만 남아라. 그것은 관료제나 모든 종류의 제한에 반대하는 것이다. 오직 '완전하게 리버럴한 시장'을 추구하는 시장원리주의(신자유주의)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정의를 논할 것인가? 이제 아무도 그럴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손, 세계시장밖에는... 신자유주의 원리는 자본의 흐름이 완전히 자유로워지고 그 유동성이 완전하게 용인되면 이윤이 가장 많은 쪽으로 자본이 집중된다는 것, 즉 자유로운 세계시장에 맡기면 진정으로 공평한 사회가 실현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기아에 의한 생명파괴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① 인도적 지원의 효율화
우선적인 과제는 인도적인 구호조처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FAO는 당면한 긴급구호를 위해 비상식량을 비축하고 있다. 이 식량을 배급하고 관리하는 것은 WFP 담당이다. 그러나 담당자들은 도움을 줄 나라의 사회구조가 어떤지 거의 묻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런 도움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구조가 부실하고 부패한 나라로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방식으로 기득권 세력을 강화하고, 부당한 사회구조를 고착시키고, 가난한 사람들을 비참함과 수백 년간에 걸친 약탈에 방치해두게 되는 것이다. 원조식량뿐만 아니라 국제단체가 제공하는 대부분의 개발지원금도 마찬가지다.
② 원조보다는 개혁이 먼저
농민에게 토지를 분배하여 그들에게 농사 짓을 수 있도록 사회적인 구조개혁이 이루어져야한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식량수출국에 속한다. 그런데도 대도시와 시골에서 아이들이 매일같이 굶주리고 있다. 지주의 1퍼센트가 경작지의 43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다. 2000년의 경우, 1억 5,300만 헥타르의 땅이 경작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고, 500만의 농민들이 땅이 없이 가족과 함께 이 거대한 나라의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③ 인프라 정비
제3세계 나라들의 인프라를 정비하기 위해 시급한 지원이 필요하다. 그들에게는 자본, 도로, 적당한 종자, 비축식량, 농경 전문지식 등 모든 것이 부족하다. 아프리카 남쪽에는 엄청난 땅들이 놀고 있다. 그 땅들은 투자가 없이는 경작되지 못할 것이다. FAO의 통계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에서 정상적으로 경작되는 땅은 7억 헥타르 정도인데, 작은 투자로도 경작 면적을 두 배 이상으로 늘릴 수 있다고 한다.

돈이 있는 자는 먹을 것을 얻고 없는 자는 굶주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냥 방치되어서는 안 되는 정글 자본주의다. 세계 경제는 식량 생산, 판매, 무역, 식량 소비로 이루어진다. 기아에 관한한 시장의 자율성을 맹신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못해 죄악이다. 기아 문제를 시장의 자유로운 게임에만 방치할 수는 없다. 세계 경제의 모든 메커니즘은 한 가지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한 가지 대 전제는 바로 기아는 극복되어야 하며 지구상의 모든 거주민은 충분한 식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국제적 구조가 마련되어야 하고 규범과 협약이 마련되어야 한다.
시카고의 곡물거래소는 문을 닫아야 하며, 협의 등을 거쳐 제 3세계에 대한 식량 공급로가 확보되어야 하고, 서구 정치가들을 눈멀게 만드는 어리석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폐기되어야 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이 처한 고통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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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교수이자 실천적인 사회학자이며, 기아문제에 관한 저명한 연구자로서 오랜 기간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해온 열정적인 이력의 소유자 장 지글러. 그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 이어 한국에 두 번째 전언을 보내왔다. 『탐욕의 시대-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이하 '탐욕의 시대')』가 바로 그것이다. 전작인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가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형식을 빌려 기아에 관한 진실을 알기 쉽게 조목조목 풀어놓은 책이라면, 『탐욕의 시대』는 그로부터 한 발 더 나아가 누가 이 세계의 빈곤화를 주도하고 있는지, 부의 재편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기아와 부채가 가난한 자들의 발목을 어떻게 옭아매고 있는지 등의 내용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 책이다. 특히, 이른바 '신흥 봉건제후들'이라 불리는 거대 민간 다국적 기업들과, IMF, IBRD, WTO 등 시장원리주의와 세계화를 맹신하는 신자유주의적 국제기구들, 무기를 팔아 돈을 벌고 희귀재와 자원을 이용해 전쟁과 폭력의 조직을 일삼는 '제국'들, 사적 자본의 축적을 위해 국가의 미래는 나 몰라라 하는 일부 부패한 권력층의 실체를 고발하고, 그에 대항한 전 세계 시민들의 즉각적인 연대를 촉구하고 있다. 객관적인 통계자료, 냉철하고도 논리적인 분석, 지글러 특유의 거침없는 언변이 독자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책의 전반적인 이해를 돕는다.

1장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에서는 프랑스 혁명을 주도했던 일부 혁명가들의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을 살펴보고, '인간의 행복'을 열망한 그들 투쟁의 역사가 200년이 지난 현 시점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생각해본다. 더불어 거대 다국적 민간 기업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세계의 봉건화 추세와 이들에 의해 철저히 구조화되고 있는 전쟁과 폭력의 사례들을 들여다본다. 2장 「무엇이 가난한 자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에서는 가진 것 없는 약자들의 삶을 가공할 위력으로 파괴하고 있는 부채와 기아의 원인과 배경, 그 심각성을 살펴본다. 3장 「에티오피아,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와 4장 「브라질, 혁명은 계속된다」에 서는 다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커피 가격의 폭락 정책으로 나라의 온 경제가 파탄나버린 에티오피아의 상황과, 천문학적인 외채로 인해 국민의 대다수가 빈민으로 전락한 브라질의 현재를 돌아본다. 동시에 이들 나라에서 모색되고 있는 새로운 연대의 움직임을 알아본다. 끝으로 5장 「탐욕의 시대는 어떻게 봉건화되는가?」에서는 첨단기술과 막대한 자본, 강력한 연구소들로 무장한 민간 다국적 기업들이 약육강식의 세계질서를 어떻게 고착화하고 있는지 해당 기업의 실명과 실제사례를 통해, 자본에 눈 먼 자들의 이중성을 낱낱이 해부한다.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 말미의 「저자 후기」역시 빼놓을 수 없다.

다시 봉건화되는 세계
오늘날 인류가 처한 비참함의 정도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시대에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참담하다. 지글러에 의하면 "5세 미만의 어린아이들 중에서 1천만 명 이상이 해마다 영양 결핍이나 각종 전염병, 오염된 식수,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이 희생자들의 50퍼센트는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6개국에서 발생하며, 이 수치의 90퍼센트가 남반구 국가들 42퍼센트에 집중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희생이 "재화의 객관적인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재화의 공평하지 못한 분배, 다시 말해 인위적으로 조작되는 가난"에 의한 것이라는 데 있다. 이를 관장하는 자는 누구인가? 그들은 바로 "과거보다 훨씬 강력하고 냉소적이며, 예전에 비해 한결 야만적이고 교활한 새로운 봉건 지배 세력"인 "?조업, 은행업, 서비스업, 상거래에 종사하는 거대 다국적 민간 기업들"이다. '탐욕의 시대'를 지배하는 이들 봉건 군주들은 이익의 극대화라는 논리에만 복종함으로써, 의도적으로 희귀재를 조작해나간다. 이렇게 "조직화된 재화의 희귀성으로 말미암아 해마다 지구상에 사는 수많은 인간들의 삶"은 무참히 파괴되고 있다.

제국이 주도하는 전쟁과 폭력은 또 어떠한가? 지글러는 "재화의 희귀성이 지배하는 제국에서는 전쟁이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계속된다"고 말했다. "전쟁은 하나의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 정상적인 일상"이며, "일시적인 이성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제국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다. 이들 제국은 무기를 팔아 돈을 벌고, 자원과 공공재의 사유화를 통해 구조적인 폭력을 생산해낸다. 지글러는 '전 세계적인 테러와의 전쟁'에 들어가는 비용의 극히 일부만 투자하더라도 "버림받은 지구상의 주민들을 절망으로 몰아가는 ?해를 뿌리 뽑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2000년을 기준으로 1년 동안 전 세계가 군비로 지출하는 금액은 약 7,800억 달러에 이른다. 이 금액은 매해 증가일로에 있다. 하지만 "해마다 850억 달러씩 10년 동안 투자를 한다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기초적인 교육과 기초적인 의료, 적절한 영양, 식수, 기본적인 위생 시스템 등을 보장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성들은 적절한 산부인과 치료"도 받을 수 있다니. 참으로 씁쓸한 현실이다.

이렇듯 '탐욕의 시대'를 정의하는 일부의 통계들은 우리 사회의 빗나간 가치관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우리들 자신 스스로를 몹시 무력하게 만든다. 유엔은 백악관의 대변인으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제법은 유명무실해졌으며, 전쟁을 '예방'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전 세계의 테러와의 전쟁'은 끝없이 지속될 것처럼 보인다. 신흥 봉건제후들이 조직하는 구조적 빈곤의 희생양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으며, 한 줌의 희망마저 잿더미로 녹아버린 현실은 암담함 그 자체이다. 이쯤에서 묻고 싶어진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정녕 우리 곁에 존재하는가? 천문학적인 부채에 시달리고 있는 브라질의 상황을 잠시 살펴보자.

희망의 모색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은 부자 나라의 발전에 필요한 비용을 대기 위해서 죽도록 일을 해야 한다. 남반구가 북반구, 특히 북반구의 지배계층을 위해 돈을 댄다. 오늘날 북반구가 남반구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부채를 제공하고 그에 대해서 받는 대가"이다.

지글러는 위의 상황을 역설적인 한마디로 요약한다. "한 나라의 국민들을 노예 상태로 만들어 복종시키기 위해서는 기관총 네이팜탄, 탱크 따위는 필요 없다. 부채가 그 모든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기 때문이다. "부채에 따르는 원리금 지불 업무(이자와 일부 원금의 상환)는 채무국 국민총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때문에 공립학교나 공공병원, 사회보험 등의 사회투자에 소요되어야 할 예산은 거의 남아나지 않는다." 부채의 멍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어깨에 떨어지고, 오직 이들만이 그 멍에를 짊어"진다. 부채는 "마치 치료하지 않고 방치한 종양"과 같아서 끊임없이 자라나고 돌이킬 수 없이 불어난"다. 이 "악성 종양은 제3세계 국가의 주민들이 가난과 비참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방해한다. 아니, 오히려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따라서 상당수의 기아는 부채가 낳은 직접적 산물이다. 그리고 지글러의 말처럼 "영양 결핍과 기아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수백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은 21세기 최대의 비극"이다. 기아는 어떤 이유나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부조리와 파렴치의 극한 상태이며 나아가 "끝없이 되풀이되어온 반인류 범죄"이다. 현재 지구상에서는 5초마다 10세 미만의 어린이 한 명이 기아 또는 영양 결핍으로 인한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2007년 기아로 사망한 사람의 수가 같은 해 일어난 모든 전쟁의 사망자를 더한 수보다 많다는 것은 자못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러한 부채와 기아의 악순환에 멍들어가는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라틴아메리카에 위치한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브라질이다.

브라질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곡물 수출 국가이자 서류상으로만 보면 식량 면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나라로 분류된다. 그러나 실상은 이와 전연 다르다. 브라질 내부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수천만 명에 달하는 국민들이 심각한 만성 영양 결핍에 시달리고 있다. 브라질의 농산물 수출이 대부분 외국 기업들에 통제되고 좌지우지되고 있으며, "과거 군사 독재정권과 이와 결탁한 허수아비 대통령들이 수출입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 유럽이나 일본, 북미 지역 민간은행들로부터 돈을 마구 끌어다 쓴" 덕분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부채를 갚아야 하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빈민으로 전락한 까닭이다. "군사 독재정권 이후에 들어선 대통령들은 부패를 조장했으며, 수익성이 높은 공공기업을 외국 자본에게 유리하도록 민영화"해버렸다. 그 결과 도시엔 실업자들과 거지들이 득실거리고, 쓰레기 하치장은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아이들로 가득하다. 이것이 오늘 브라질이 처한 현실이다. 그러나 희망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은 듯 보인다. 이 절망의 땅 위 한편에선 노동자 출신의 대통령 룰라를 필두로, 민주주의적, 반자본주의적 평화 혁명이 멋지게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룰라는 "제3세계의 그 어느 국가도 부채를 온전히 상환할 능력이 없다"고 고백하며 "제3세계 국가들의 발전 전략과 부채 상환은 결코 양립할 수 없"으며, 따라서 "즉각적으로 부채 상환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채 상환을 거부"하고 "절약하게 되는 돈"을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발전 기금, 교육이나 공중보건, 농업개혁 등 요컨대 제3세계 국가들의 진보를 위해 필요한 발전 기금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움직임은 채권국 및 IMF 같은 국제기구의 격렬한 저항을 받고 있다. 하지만 룰라는 굴하지 않는다. 그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해냈다. 그것은 바로 "채무국끼리의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룰라는 "어떤 나라도 혼자만의 힘으로는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며, 외채 문제에 관한 토의는 은행과 정부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정부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장 지글러 역시 부채의 멍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3세계 국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전략적 수단으로 채무국끼리의 동맹체 구성을 제시하고 있다. 거기에 "노예화된 민중들이 중심이 되는 사회단체 지도자들" 이 "연대의식을 내세우는 북반구의 강력한 시민단체들과 연합"할 것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영국과 독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쥐빌레2000' 같은 단체가 IMF를 비롯한 채권 기관으로부터 부채 경감에 대한 최소한의 양보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은 연대의 힘이 지닌 놀라운 가능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현재 브라질 내부에서도 이러한 시민사회의 활발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거기에 채무내역에 대한 연합 감시체제 구축 역시 새로운 희망의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룰라는 "이 혁명이 어떻게 마무리되느냐에 따라 브라질 인구 1억 8천만 명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물론, 남미 대륙 전체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보다 광범위한 관점에서 본다면 민주주의적, 대중적, 반자본주의적 운동의 미래가 달려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결말은 "언제나 그렇듯, 불확실하다." 하지만 저들 연대의 힘이 '불확실한' 미래를 보다 선명한 희망의 전망으로 하나씩 바꿔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다함께 일어서기 위하여
브라질의 사례에서 보았듯, 우리는 결국 '연대'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함께 달려야 하고 함께 나눠야 하고 함께 행복해야 한다. 연대는 그 시작은 비록 누군가의 미미한 몸짓이었을지언정 끝내는 거대한 움직임으로 그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이것이 연대가 품은 희망과 믿음의 본질이자 우리가 지난 5월 거리에서 뜨거운 촛불을 함께 든 이유이다.

지글러는 이 책의 서두를 프랑스 혁명의 격변기를 온 몸으로 살아냈던 급진적 혁명가들의 외침에 아낌없이 내주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많은 혁명가들이 스스로의 영혼을 팔아서라도 그토록 손에 쥐고자 했던 이데아가 지글러 자신이 끊임없이 굶주림의 문제에 천착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생쥐스트가, 장 폴 마라가, 그리고 자크 루가, 단두대에 오르고, 암살을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단 한 순간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 그것은 바로 혁명의 영원한 화두이자 모든 꿈꾸는 자들의 열망인 '인간의 행복할 권리'였다. 그렇다면 이 행복할 권리를 기초하는 가장 주된 요소는 무엇인가? 그것은 먹고살기. 다름 아닌 '생존'이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도 누릴 수 없는 부조리의 극치인 기아와 절대적 빈곤은 결단코 인류의 고려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이 책 『탐욕의 시대』가 지향하는 바는 아주 뚜렷하다. 이 책은 결국 인간이 누구나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음을 천명하는 책이다. 이 책은 저 스스로의 분명한 목표와 소신을 지닌 오만한 책이다. 책상머리에서만 읽혀지고 금세 잊히기를 원치 않는 책이다.

지글러는 "투쟁은 아는 것에서 출발하며, 투쟁을 통해서만이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물질적인 조건을 획득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리고 프랑스의 철학자 레지 드브레는 "지식인의 의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증언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의무는 민중을 현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무장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책은 지글러 자신이 얘기한, 그리고 그가 인용한 레지 드브레의 명제를 그대로 실천하고자 한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결코 쉽지 않므 그 실천의 여정은 나눔과 연대라는 희망의 움직임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일굴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오늘 '탐욕의 시대'에 새로 쓰는 또 하나의 인권선언문이자,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변화를 향한 애절한 기도문이며, 다함께 행동할 것을 촉구하는 지성의 대자보이다. 그리고 이 모두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장 지글러의 힘임을 두말할 필요는 없으리라.

 

 

 

견디기 어려운 열등감과 무력감으로 똘똘 뭉쳐 수치심을 안고 살아가는 제3세계의 주민들은 그들이 끌어안고 있는 기아나 부채가 불가피한 것이 아님을 아는 순간 새로운 의식에 눈을 뜨게 될 것이며, 제 힘으로 일어설 수 있게 될 것이다. 불명예로 괴로워하던 굶주린 자, 실업자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한 수치심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희망이 조금이라도 보이고 벗어날 수 없는 운명으로 알았던 굴레가 벗겨질 수도 있음을 알게 되면 투쟁 의지를 불태우는 반항자, 봉기 세력으로 변신 가능해진다. 수동적인 희생자로 치부되었던 자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적극적인 행동가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변모를 실현시키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 pp.15-16

특정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다른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을 기아에 허덕이게 만들 때, 자유란 한낱 허울뿐인 유령에 불과하다. 부자가 독점을 통해서 동시대인들의 생사여탈권을 장악할 때, 평등이란 한낱 허울 좋은 유령에 불과하다. 혁명의 반동 세력이 나날이 곡식의 가격을 쥐고 흔들어 시민들의 4분의 3이 눈물 없이는 식량을 조달할 수 없을 때, 공화국은 한낱 유령에 불과하다.(- 자크 루) --- p.24

원칙적으로 외채를 요청한 나라는 외채를 얻어서 자국에 투자를 함으로써, 다시 말해서 자국 내 사회기반 시설을 확충하고 제반 생산력을 향상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차츰 빌려 쓴 돈을 갚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와 같은 논리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오늘날 제3세계 국가들은 점점 더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하고, 원금은 원금대로 갚아가느라 점점 더 가난해진다.
외채는 마치 치료하지 않고 방치한 종양과 같다. 끊임없이 자라나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이 불어난다. 이러한 악성 종양은 제3세계 국가의 주민들이 가난한 비참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방해한다. 아니, 오히려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 p.93

부채와 기아, 기아와 부채. 악순환을 거듭하는 이 두 가지의 조합에는 출구가 없어 보인다. 도대체 누가 이와 같은 살인적인 조합을 만들어냈는가? 누가 이와 같은 상황을 유지하려 하는가? 이와 같은 교착 상태를 이용해서 천문학적인 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망설일 것도 없이 자본주의가 낳은 봉건주의자들이다. 오늘날 자크 루와 마라, 생쥐스트가 목청껏 타도를 주장하던 투기꾼과 사기꾼, 국민을 굶주리게 하는 모리배들이 다시 돌아왔다. 그라쿠스 바뵈프가 뿌리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던 파렴치한 독점꾼들이 다시 활개를 치고 다닌다. 우리는 이 세계가 다시 봉건화되어가는 참상을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 p.247

우리는 현재 수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끔찍한 공격을 받고 있다. 그 어떤 나라도, 그 어떤 초국가적인 기구도, 그 어떤 민주주의로도 이 공격에 저항할 수 없다. 경제 전쟁을 벌이는 신흥 봉건제후들은 온 지구를 거덜내고 있다. 이들은 국가와 국가가 지닌 규범적인 권력을 공격하며, 주권재민 사상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전복시키며 자연을 망가뜨리고 인간과 인간의 자유를 말살시키고 있다. --- p.328

내가 이 책을 쓰고 있는 올해에만 해도 아직 연말이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기아나 기아와 직접적으로 상관관계를 지닌 질병 등으로 고통을 당하면서 죽어간 사람이 3,600명에 달한다. --- ....) 그들은 그렇게 사는데, 나는 왜 편안하게 살 수 있는가? 이들 우연의 희생자 한 명 한 명은 나의 아내,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 나의 친구 혹은 나의 삶을 구성하며 내가 사랑하는 그 누군가가 될 수도 있었을 사람들이다. --- ....) 출생의 우연이라는 요소를 제외한다면, 나와 이 고통받는 사람들을 갈라놓을 다른 요소들이란 전혀 없다. --- pp.330-331

나는 노동조합 지도자가 아니며, 인민해방전선을 이끄는 리더도 아니다. 그저 제한적인 영향력을 가진 한 명의 지식인일 뿐이다. 나의 책은 내가 돌아다니며 목격한 세계에 대한 나의 진단을 제시한다. 현재 이 세계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은 시민들의 몫이다. 전 지구적인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은 이제 시작될 것이다! --- ....) "그렇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모든 환부는 이제 곪을 대로 곪았으므로 더 이상 나빠지려고 해야 나빠질 것도 없다. 모든 것을 완전히 전복시키는 것만이 환부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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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