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처음처럼,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

나뭇잎숨결 2009. 2. 6. 10:08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 신영복

 


 

天下無人천하무인

세상에 남이란 없습니다天下無人.

네 이웃 보기를 내 몸같이 하라視人若其身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근대사는 타자화他者化의 역사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보지 못하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보지 못하고,

인간을 타자화하고 자연을 대상화對象化해온 역사였습니다.

 

- 신영복, <처음처럼> 중에서 


『처음처럼』은 '아름다운 나무',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의 글씨, 그림, 삶의 잠언을 한 권에 모은 베스트 에세이집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국민 저자' 신영복의 대표글(표제작- 처음처럼/석과불식/여럿이 함께 등 172편), 대표그림(152점), 대표글씨(36점)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그야말로 '신영복의 모든 것'을 담은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쇠귀' 신영복 교수는 모 소주의 이름으로 쓰인 '처음처럼'의 제호 글씨와 그림의 원작자로도 유명하며, 원작료 1억원은 현재 성공회대에서 전액 장학기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2006년 8월 정치/ 경제계/학계/ 언론계/ 문화예술계/ 연예계 등 각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정년 퇴임 콘서트'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흔히 '연대체'로 알려진 신영복 교수의 서예 작품은 서예전 출품작, 현판, 비문, 제호 등을 통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해 맨처음 옥중 서신의 어깨 너머 독자였던 어린 조카들을 위해 그려진 그림은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가 일간 신문에 연재되었던 기행문의 삽화를 통해서 외부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기행문의 삽화를 저자가 손수 그리게 된 이유는 어디까지나 비용 절감에 따른 일이었지만, 기행문에 미처 담지 못한 것들을 삽화로 보충하거나 언어의 경직된 논리를 부드럽게 해주거나 그림 자체가 여백이 되어 기행문의 또 다른 행간으로 작용했다.

 

 

나무야 나무야이 책 『신영복 서화 에세이-처음처럼』에는 기존의 작품 외에도 70여 점에 이르는 그림들이 새로 추가되었다. 신영복의 대표작들을 한 권에 모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무엇보다도 그 안에 담긴 글과 그림, 글씨 속에 배어 있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진심어린 성찰'이다. 얄팍한 지식이나 이론보다 삶에서,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한 마디가 얼마나 깊이있는 무게와 가치를 지니는지를 보여준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뒤돌아볼 줄 모르고 급하게만 살아가는 '소외된 현대인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책으로 자리할 것이다.

1부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은 '처음처럼'으로 시작해서 사랑과 그리움, 삶에 대한 사색, 생명 존중 등에 관한 글을 담았고, 2부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은 '교(巧)와 고(固)'로 시작해서 관계, 더불어 사는 삶, 우직한 삶의 자세 등에 대한 글을 모았고, 3부 '늘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은 '각성'으로 시작해서 성찰, 세계관, 그리고 희망에 대한 글을 엮었다.

 

 

 

 

 

책표지를 클릭하시면 창을 닫습니다."이 책은 '처음처럼'에서 시작하여 '석과불식(碩果不食)'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필자가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했던 일관된 주제가 있다면 아마 역경(逆境)을 견디는 자세에 관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경을 견디는 방법은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며,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수많은 처음'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길밖에 없다고 할 것입니다.


수많은 처음이란 결국 끊임없는 성찰(省察)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목이 잎사귀를 떨고 자신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성찰의 자세가 바로 석과불식의 진정한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석과불식의 의미는 씨 과실을 먹지 않고 땅에 묻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어려움이든 한 사회의 어려움이든 역경을 견디는 자세에 관한 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처음처럼'의 뜻과 '석과불식'의 의미가 다르지 않고 그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이 책의 모든 글들도 이러한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이야기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화 에세이 - 처음처럼』은 어쩌면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새삼스러운 이야기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서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함께 확인하고, 위로하고, 그리하여 작은 약속을 이끌어내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실린 이야기와 그림들은 사실 많은 사람들의 앨범에도 꽂혀 있는 그림들입니다. 독자들은 각자 자신의 앨범을 열고 자신의 그림들을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이 그러한 공감의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숲으로 가는 긴 여정의 짧은 길동무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 여는 글(저자 서문) / '수많은 처음'에서

또한 이 책은 저자로서는 '행간에 숨은 의미가 더 많았던 갇힌 글들'을 모은 '다시 쓰고 싶은 편지'의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하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실린 글들은 좁은 엽서에 갇혀 있는 글이었을 뿐 아니라 당국의 검열과 그 위에 자기검열이라는 이중의 제약으로 지나치게 절삭(切削)된 글이었기 때문입니다. 신문에 연재된 기행문 역시 갇힌 글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일간 신문의 지면이란 매우 한정되어 있는 공간이었을 뿐 아니라 그 자체가 공적 공간이었습니다. 이러한 글들이란 나로서는 '다시 쓰고 싶은 편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차마 쓰지 못하고 행간에 묻어둔 이야기가 더 많은 글이기 때문입니다. 글이란 아무리 부연하더라도 정의(情意)를 다 담을 수 없는 부족한 그릇이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막상 글보다 더 망설여졌던 부분은 그림이었습니다. 비록 자기 글의 삽화였다고 하지만 글이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그림의 비중이 더 커지면서 그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옥중 서신의 아래쪽에 조용히 앉아 있거나 기행문의 도우미 같은 위치에서 갑자기 격상된 자리에 올라앉아 그렇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분에 넘치는 자리에 앉아 흠결이 더욱 드러나는 경우와 다르지 않습니다."

 

 

지(知)와 애(愛)는 함께 이야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알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애정 없는 타자와 관계없는 대상에 대하여 알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진정한 의미의 지(知)라는 사실입니다. 엄청난 정보의 야적(野積)은 단지 인식의 혼란에 그치지 않고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폄하하게 합니다. 더구나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사람이 '팔기 위해서' 진력하고 있는 사회입니다. 모든 것을 파는 사회이며, 팔리지 않는 것은 가차없이 폐기되고 오로지 팔리는 것에만 몰두하는 사회입니다. 상품가치와 자본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이러한 체제에서 추구하는 지식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는 한 점의 인연도 없습니다. 지(知)는 지인(知人)이라는 의미를 칼같이 읽는다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회는 무지(無知)한 사회입니다. 무지막지(無知莫知)한 사회입니다.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감옥에서 시작된 동양고전과의 인연
 
내가 본격적으로 동양고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무래도 감옥에 들어간 이후입니다. 감옥에서는, 특히 독방에 앉아서는 모든 문제를 근본적인 지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우선 나 자신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유년 시절에서부터 내가 자라면서 받은 교육을 되돌아보게 되고 우리 사회가 지향했던 가치에 대해서 반성하게 됩니다.
일제 식민지 잔재에서부터 해방 후의 예속적 정치권력, 부정과 부패 그리고 한국전쟁의 처참한 파괴와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60년대의 환경에서 나는 대학 생활을 하였지요. 우리 것에 대한 최소한의 자부심마저 갖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른바 '근대 기획'이 우리 사회의 목표였으며, 미국 문화와 유럽 문화를 다투어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치장하려고 하였지요.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만 우리 것에 대한 최소한의 자부심마저 허락하지 않는 불행한 문화였습니다.
내가 동양고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러한 사회적 환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분단과 군사 독재에 저항하면서 열정을 쏟았던 학생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그것도 무기징역이라는 긴 세월을 앞에 놓고 앉아서 나 자신의 정신적 영역을 간추려보는 지점에 동양고전이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과 함께 공부하게 될 동양고전 강독은 사실 감옥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전공자를 위한 강의, 중요한 것은 성찰의 관점

책에서 함께 읽게 될 고전의 예시 문안들은 동양고전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매우 초보적인 것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동양고전을 섭렵한다는 것은 평생 걸려도 불가능한 일이지요. 고전을 읽겠다는 것은 태산준령 앞에 호미 한 자루로 마주 서는 격입니다.
이 고전 강의는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고전에서 문안을 선정했습니다. 책 속의 강의는 고전의 원문을 함께 읽고 해석하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러나 한자 때문에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고전 강독에서 중요한 것은 고전으로부터 당대 사회의 과제를 재조명하는 것입니다. 사회와 인간에 대한 성찰과 모색이 담론의 중심이 됩니다. 고전 원문은 그러한 논의를 이끌어내는 마중물의 의미를 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에는 아마 여러분의 마음에 드는 문장이 많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한자나 한문 때문에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에 담겨 있는 내용에 주목하면 충분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를 자주 바라보게 되듯이 좋은 문장을 발견하기만 하면 고전은 자연히 습득되리라고 봅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전에 대한 우리의 관점입니다.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고전 독법 역시 과거의 재조명이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당대 사회의 당면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전 독법의 전 과정에 관철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고전 강독에서는 과거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통하여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것을 기본 관점으로 삼고자 합니다.
 
◆고전 강독의 화두, 관계론

우리가 함께할 고전 강독의 전 과정은 화두를 걸어놓고 진행하게 됩니다. 이 화두는 물론 21세기의 새로운 문명과 사회 구성 원리에 관한 것이지만,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서보다는 오히려 현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두라고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걸어놓는 화두는 '관계론'입니다.
유럽 근대사의 구성 원리가 근본에 있어서 '존재론'임에 비하여 동양의 사회 구성 원리는 '관계론'입니다. 근대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고 자본의 운동 원리가 관철되는 체계입니다. 근대사회의 사회론이란 이러한 존재론적 세계 인식을 전제한 다음 개별 존재들 간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관계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는 세계관을 승인합니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배타적 독립성이나 개별적 정체성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관계성을 존재의 본질로 규정하는 것이 관계론적 구성 원리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강독하게 될 예시 문안은 대체로 이러한 관계론적 사고를 재조명할 수 있는 것들로 구성한 것입니다.
고전 강독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우리의 당면 과제를 재조명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래로 가는 길은 오히려 오래된 과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초국적 자본의 일방적 질주 시대, 새로운 문명론의 개화를 위해

현대 자본주의가 관철하고자 하는 세계 체제와 신자유주의적 질서는 부국강병이 최고의 목표가 되고 있는 무한 경쟁 체제라는 점에서 춘추전국시대 상황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현대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패권 국가의 일방주의적 세계 전략, 초국적 금융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전략은 대립면을 상실한 질주입니다. 자기 증식을 운동 원리로 하는 존재론의 필연적 귀결이자 자기의 목표를 부단히 허물어버리는 모순 운동 그 자체입니다.
오늘날의 주류 담론인 전 지구적 자본주의와 세계화 논리는 한마디로 거대 축적 자본의 사활적 공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전개 과정이 역사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자본 축적 과정의 전형적 형태입니다. 본질적으로는 대립면을 상실한 일방적 질주에 다름 아니지요.
21세기를 시작하면서 많은 미래 담론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래에 대한 객관적 전망이 아니라 자기의 입장에서 각자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한 소망이 전망의 형식을 띠고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래 담론은 대부분이 20세기의 지배 구조를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저의를 내면에 감추고 있습니다. 나는 21세기 담론이 진정한 새로운 담론이 되기 위해서는 근대사회의 기본적 구조를 새로운 구성 원리로 바꾸어내고자 하는 담론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은 한 그것이 아무리 새로운 가치를 천명하고 있다 하더라도 조금도 새로운 담론이 못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고전 강독에서는 지속적으로 화동 논의의 의미를 심화시켜갈 것입니다. 동은 지배와 억압의 논리이며 흡수와 합병의 논리입니다. 돌이켜보면 은 근대사회의 일관된 논리이며 존재론의 논리이자 강철의 논리입니다. 이러한 동은 논리를 화의 논리, 즉 공존과 평화의 논리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20세기를 성찰하고 21세기를 전망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민족 문제를 세계사적 과제와 연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동양고전의 재조명, 우리 현실에 대해 관심 갖는 계기 되기를

동양에서는 자연이 최고의 질서입니다. 자연이란 본디부터 있는 것이며 어떠한 지시나 구속을 받지 않는 스스로 그러한 것(self-so)입니다. 글자 그대로 자연이며 그런 점에서 최고의 질서입니다. 또한 동양 사상의 가장 큰 특징은, 인성의 고양을 궁극적 가치로 상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성이란 개별 인간의 내부에 쌓아가는 어떤 배타적인 가치가 아니라 개인이 맺고 있는 관계망의 의미입니다. 요컨대 동양적 인간주의는 철저하게 관계론적 개념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동양 사상은 과거의 사상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사상입니다.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뛰어난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동양의 역사에는 과학과 종교의 모순이 없으며, 동양 사회의 도덕적 구조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인간관계 등 지극히 현실적이고 인문주의적인 가치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동양학에 대한 서구의 관심은 이와 같은 성찰적 동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의 동양에 대한 관심은 기본적으로 신대륙에 대한 콜럼버스의 관심입니다. 과도하게 축적된 초국적 자본이 자본주의 시장권에서 분리되어 있던 동구권과 러시아 대륙에 이어서 다시 광범한 중국 시장에 쏟는 관심입니다.
변화와 개혁에 대한 열망과 이러한 열망을 사회화하기 위한 거대 담론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의 상황입니다. 우리는 고전 담론을 통하여 오늘날의 상황에 대한 비판적 전망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전 독법'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자 미래와의 대화를 선취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 책이 고전에 대한 관심보다는 우리 현실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러한 고전 독법이 진정한 의미에서 고전을 새롭게 재조명하는 것이 되리라고 여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