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개인은 자기 자신 속에서 살고 있으나 사회인은 언제나 자기 밖에 존재하며 타인의 의견 속에서만 살아간다. 말하자면 자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타인의 판단에 의해 느낀다는 것이다.”(21)
“우리에게는 미덕도 행복도 없고, 신은 인류의 타락에 대한 해결책도 없이 우리를 버렸다고 생각하지 말자. 악에서부터 그것을 치유할 치료법을 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자. 가능하다면 새로운 조직association으로 일반적 조직의 결함을 교정하자. [……] 초기 단계의 예술이 자연에 가한 잘못을 완성된 예술이 보상하는 것을 우리의 상대에게 보여주자.”(28~29)
“모든 사람들은 국가의 정체(政體)에 의해 평등하므로, 모두 함께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48)
“공공 제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 더 이상 조국이 없는 곳에는 시민 또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국과 시민이라는 그 두 단어는 현대에서 없어져야 한다.”(54)
“로마인의 인간미도 그들의 통치 범위를 넘어서까지 확대되지는 않았다.” “어떤 애국자든 외국인에게는 냉혹하다. 외국인은 그저 인간일 뿐, 애국자의 눈에는 가치 없는 존재이다. 그런 결점은 불가피하지만 대단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함께 사는 사람들을 선량하게 대하는 것이다.” “가장 행복한 국가란 다른 나라 없이도 수월하게 지낼 수 있는 나라이다.”(57)
“자칭 세계시민주의자들은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조국에 대한 사랑을 정당화하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고 자랑하면서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권리를 가지려 한다.” “자기 나라 안에서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책 속에서 먼 나라들의 의무에 대해 논하는 그런 세계 시민주의자들을 경계하라. 그런 철학자들은 타타르족을 좋아할 텐데,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의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일 것이다.”(59)
“나는 마음속에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공포를 품고서 세상이라는 이 광대한 사막에 들어왔다. 이러한 혼돈은 나에게 암울한 침묵이 지배하는 끔찍한 고독만을 선사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은 ‘혼자 있을 때만큼 고독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군중 속에 있을 때만 고독하다.”(67)
“사람이 내쉬는 숨은 다른 사람에게 치명적이다. 그것은 비유적인 의미와 본래의 의미 중 어느 모로 보나 사실이다. 도시는 인류 파멸의 구렁텅이다.”(69)
“고독한 사람들을 위해 쓴 글은 고독한 사람들의 언어로 말해져야 한다.”(86)
“절대적인 고독은 자연에 반(反)하는 슬픈 상태이다. 애정 어린 감정은 영혼의 양식이 되고, 사상의 교류는 정신에 활기를 불어넣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장 유쾌한 존재 방식은 상대적이고 집단적인 것이다. 우리의 참된 ‘자아’는 전적으로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결국 이 세상에서 그렇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타인의 협력 없이는 자아를 충분히 향유하는 데 결코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114)
“선한 사람은 전체를 위해 자신의 질서를 바로잡고, 악한 사람은 자신을 위해 전체의 질서를 바로잡는다. 후자는 자신을 모든 것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며, 전자는 자신의 반경을 가늠하여 원주 위에 매달려 있다.”(123)
과거의 위대한 작가들 가운데 루소가 가장 매력적이라거나 가장 현명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가장 ‘강력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우리는 루소가 특히 프랑스에서 근대성modernite을 발견하고 또 발명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발견했다고 한 이유는, 근대 사회는 루소 이전에 이미 존재했지만 그때까지 그것을 통찰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발명했다고 한 이유는 루소가 이백 년 전부터 끊임없이 탐색하고 있는 개념과 주제를 후세에 남겼기 때문이다. 오늘날 루소를 읽으면, 우리는 그의 예언적인 통찰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루소의 반대자들도 우리가 아직까지 루소가 만든 신화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할 것이다.
[……]
문제는 인간이 가야 할 길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문제라고 부르지 않으려고 피한다고 해도, 오늘날 우리에게 제기되는 문제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루소는 이에 대한 해답을 단순화해서 제시한다. 물론 대단히 복잡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나도 또한 루소를 대폭 단순화했다. 루소가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재구성했듯이, 나도 루소의 사상 체계를 해석하고 재구성했다. 그 가운데 많은 것을 버리고 일부만을 취했다. 이와 같이 가지치기를 한 후에도 여전히 사고할 수 있는 도구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또다시 루소의 역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츠베탕 토도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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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변화하고, 사랑은 소멸된다. 우리는 사랑이 시들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배우자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또한 아이들과 차츰 거리가 생기다가 종국에는 아이들 보살피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늙어가면서, 변해가면서, 이런저런 사람에게 사랑스러웠던 나는 더 이상 그런 존재가 아니게 될 것이다. 요컨대, 행복은 덧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삶을 포기해도 괜찮은가? 루소 사상의 탁월한 해석가인 츠베탕 토도로프의 『덧없는 행복―루소 사상의 현대성에 관한 시론』에는 이러한 ‘행복의 덧없음’에 대한 철학적 사색과 냉철한 분석, 그리고 치유책들이 알알이 엮여 있다. 그 루소 사상의 통찰이 빛나는 토도로프의 『덧없는 행복』이 고봉만 교수(충북대 불문과)의 번역과 해설로 문지 스펙트럼 중 ‘우리 시대의 지성’ 시리즈로 묶여 나왔다.
프랑스 국립고등연구원CNRS의 수석 연구원으로 있는 토도로프는 문명의 교류와 충돌, 인본주의의 역사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심도 있는 연구를 인정받고 있으며, 인류 평화에 대한 실천적인 관심으로 프랑스 언론으로부터 ‘휴머니즘의 사도’라는 평판을 받고 있다.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의 저작에 대한 ‘실용적’ 독해라 할 수 있는 『덧없는 행복』에서 그는 루소의 체계를 해석하고 재구축하여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루소가 어떤 해답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고찰하고 있다. 그는 루소가 근대를 발견함과 동시에 발명했다고 강조하면서, 루소 사상의 강력함은 서구 사상의 틀 속에서 루소가 차지하는 위치를 파악하면 더욱 명확해진다고 피력한다. 또한 루소 사상의 이론적 구조를 자연 상태와 사회 상태, 치료법, 인간과 시민, 개인적 이상의 두 가지 해석 등으로 구분해 설명한다. 이런 도식들에 근거해서 저자는 루소가 인간에게 주어진 세 가지 길, 즉 시민·고독한 개인·도덕적 개인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날카롭게 분석한다.
국가의 역할을 임의적으로 파악한 루소의 사상은 프랑스 혁명의 주요 인물들에게 즉각적인 영감을 주었으며, 소외된 개인이 끊임없이 불거져 나오는 자서전적 혹은 그 내면에 대한 탐구들은 프랑스 혁명에 적대적이었던 낭만주의자들에 의해 모방된 바 있다. 그리고 마침내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루소는 계몽주의의 위대한 철학자로서, 그리고 칸트의 방대한 철학적 사유의 물꼬를 튼 선구자로서의 평가를 받았다. 천재적인 사상가로서 탁월한 정치적 저작들을 남긴 루소와 한 사람의 고독한 개인으로서 ‘개인의 이야기’를 발견한 루소는 그러므로 ‘현대성에 눈뜬 최초의 철학자’라 할 만하다. 토도로프의 『덧없는 행복』은 이처럼 전혀 다른 두 명의 사상가가 쓴 것처럼 보이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 『신 엘로이즈』 『사회 계약론』 『에밀』 『고백록』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등 루소의 유명한 저작들을 한 권에 치밀하게 분석한 루소 사상의 안내서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루소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사상가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루소에 의하면,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타인의 존재를, 우리에게 머무는 타인의 시선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그것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뚜렷하게 드러난다.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하는 인간은 아직 완전하게 인간이 된 것이 아니다. 반대로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은 그와 동시에 ‘도덕morale’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타인에게 선 혹은 악을 행할 수 있는데, 이 두 개념은 개인간의 관계를 전제로 할 때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또한 ‘자유libert렊??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왜냐하면, 선 혹은 악의 실천은 내가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와 다를 바 없는 타인들과 공유하는 언어와 문화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루소에게 있어서,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의식이 없는 개인, 윤리도 자유도 없는, 언어도 문화도 없는 개인은, 간단히 말해서 사회적인 삶이 없는 개인은 진정한 의미로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이렇게 우리의 사회적 천성을 강조한 것, 이것이 휴머니즘 사상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이며, 바로 이 점에 있어서 휴머니즘과 개인주의는 구별된다. 우리가 위에서 언급한 보수주의적 비평가들은 둘의 차이점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런데, 휴머니스트에게 있어서, ‘타인les autres’은 산소와 같은 것으로, 타인 없는 실존은 상상할 수 없다. 개인은 타인 없이 살 수는 있지만, 각 개인이 내재화하는 타인의 시선 없이, 완전히 혼자서 존재할 수는 없다. 그것이 루소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__고봉만, 「장 자크 루소와 휴머니즘 전통」
이 책의 제목인 ‘덧없는 행복’에는 루소의 생각이 압축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우리의 행복은 타인에게 달려 있기에 우리는 결코 행복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충만한 행복이 자연의 질서에만 달려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자연의 질서는 늘 변함이 없으므로 그에 맞추기 위해서는 자연의 질서가 무엇인지를 알기만 하면 된다. 만약 신에게 달린 문제라면, 그 또한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은 무한한 관대함을 보이며, 그곳에 있을 테니까. 만약 그것이 자기 자신에게 달린 문제라면 그 또한 문제없을 것이다. ‘자기애,’ 즉 자기 존재 방어의 필연성이 틀림없이 개인을 자신에게 가장 이로운 쪽으로 이끌 테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타인을 필요로 하고, 이 타고난 불완전함이 우리의 정체성 자체를 규정한다. 루소는, 우리가 타인을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가 ‘나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만약 우리 각자가 타인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타인과 합일을 이루겠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을 것이다.” 타인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우리의 행복은 우연적일 수밖에 없거나, 혹은 루소가 결론짓듯이, “우리의 나약함으로부터 우리의 덧없는 행복은 생겨”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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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베탕 토도로프, Tzvetan Todorov
Tzvetan Todorov(1939~ )
츠베탕 토도로프는 불가리아의 소피아에서 출생했으며, 소피아 대학에서 슬라브 철학을 전공했다. 1963년 프랑스로 이주한 뒤 현재 프랑스 국립고등연구원CNRS 명예 연구원장으로 있다. 구조주의 문학이론가로서 문학·철학·역사·미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30여 권의 책을 썼으며, 최근에는 문명의 교류와 충돌, 휴머니즘 사상에 대한 방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인류 평화에 대한 실천적인 관심으로 유럽 언론으로부터 ‘휴머니즘의 사도’라는 평판을 받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문학의 이론: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글』(1966), 『환상문학 입문』(1970), 『산문의 시학』(1971), 『구조시학』(1973), 『미하일 바흐친: 대화의 원리』(1981), 『아메리카의 정복』(1982), 『우리와 그들』(1989), 『역사의 교훈』(1991), 『일상 예찬』(1993), 『미완의 정원』(1999), 『악의 기억과 선의 유혹』(2000), 『계몽주의 정신』(200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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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제1장 이론의 구조
1. 자연 상태와 사회 상태
2. 치료법
3. 인간과 시민
4. 개인적 이상에 대한 두 가지 해석
제2장 시민
1. 시민 교육
2. 애국심과 세계시민주의
제3장 고독한 개인
1. 고독
2. 제한된 의사소통
1) 문자언어
2) 상상의 세계
3) 자연
4) 탈인격화
3. 자아의 탐구
4. 하나의 불행한 결말
제4장 도덕적 개인
1. 제3의 길
2. 가정 교육
3. 지혜
부록
옮긴이 해설__장 자크 루소와 휴머니즘 전통·고봉만
장 자크 루소 연보
본문에 인용된 루소의 저서
참고 문헌
루소에 관한 한국어 출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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