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유머 감각을 자랑하던 하디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만큼 사람의 애를 태우는 일이 또 어떤 게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평소 배 타는 것을 무서워하던 그는 결국 다음과 같은 가상의 상태를 만들어냈다. 내가 반드시 배를 타고 여행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맨 먼저 내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전보를 칠 것이다.
나는 방금 리만Riemann의 가설을 풀었다네. 여행에서 돌아오면 자세한 내용을 들려주지.
리만의 가설은 19세기 수학자들을 끔찍하게 괴롭혔던 수학 문제이다. 이렇게 전보를 친 하디는 이제 마음 놓고 항해를 할 수 있다. 왜 그럴까? 만일 하디가 물에 빠져 죽는다면 수학자들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이외에 또 하나의 괴물한테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순진한 수학자들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형벌이어서, 자비로운 신이 하디의 목숨을 지켜줄 거라는 이야기이다. (98쪽)
힐베르트는 무한대가 갖고 있는 기묘한 성질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제를 만들어냈다. ‘힐베르트의 호텔’이라고 불리는 이 유명한 예제는 힐베르트가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가상의 호텔에서 시작된다. 이 호텔에는 무한대의 객실이 있다. 어느 날 한 손님이 호텔로 찾아왔는데, 객실이 무한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마다 모두 투숙객들이 들어 있었으므로 빈 방을 내줄 수가 없었다. 그런데 호텔 종업원인 힐베르트는 잠시 생각하던 끝에 새로 온 손님에게 빈방을 마련할 수 있노라고 호언장담을 한다. 그는 객실로 올라가 모든 투숙객들에게 정중하게 부탁을 한다. “죄송하지만 손님들께서는 옆방으로 한 칸씩만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해심 많은 투숙객들은 힐베르트의 성가신 부탁을 잘 들어주었다. 잠시 뒤 이동은 끝났다. 그리고 새로 온 손님은 비어 있는 1호실로 여유 있게 들어갔다. (…) (129쪽)
(…) 그런데 다음날 밤, 호텔에는 더욱 곤란한 문제가 발생했다. 투숙객이 방을 모두 점거하고 있는 상태에서, 무한히 긴 기차를 타고 온 무한대의 손님들이 새로 도착한 것이다. 그런데 힐베르트의 당황하기는커녕, 무한대의 숙박료를 더 받을 수 있다며 혼자서 쾌재를 부른다. 그는 곧 객실에 안내 방송을 내보냈다. “손님 여러분, 죄송하지만 현재 묵고 계신 객실 번호에 2를 곱하셔서, 그 번호에 해당되는 객실로 모두 옮겨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리하여 1호실 손님은 2호실로, 2호실 손님은 4호실로… 모두 이동을 마쳤다. 자기 방을 빼앗긴 손님이 하나도 없는데도, 어느새 호텔에는 무한개의 빈 객실이 생긴 것이다. 힐베르트의 재치 덕분에 새로 도착한 무한대의 손님들은 홀수 번호가 붙어있는 무한개의 객실로 모두 배정되어 편히 쉴 수 있었다. 이것은 무한대에 2를 곱해도 여전히 무한대임을 말해 주고 있다. (130쪽)
1993년 뉴욕 타임스와 르 몽드, 가디언 등 세계 각국의 주요 일간지들은 1면 머릿기사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증명됐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를 본 이들은 당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대체 뭐길래” 하는 궁금증이 컸을 것이다. 기자는 외신들이 국내 신문들과 달리 이색적으로 과학기사를 1면 머리로 비중 있게 다룬 것을 생생히 기억한다.
몇 달 뒤 증명이 잘못됐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증명에 관한 극적인 요소도 덧붙여졌다. 과학저널리스트 사이먼 싱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박병철 옮김·영림카디널 발행)는 이 모든 궁금증을 풀어주고, 정리에 얽힌 수학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피에르 드 페르마(1601~1665)는 17세기 프랑스의 아마추어 수학자다. 공무원이었던 그에게 수학은 즐거운 취미였다. 하지만 말이 아마추어지 그의 수학적 통찰력은 천재적이었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디오판토스가 쓴 <아리스메티카>를 읽고 책의 여백에 자신의 풀이를 끄적이며 수학을 즐겼다. 이 여백에 쓴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마지막 정리다.
문제 자체는 초등학생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다. X의n제곱+Y의n제곱=Z의n제곱에 대해 n이 3 이상이면 정수 해는 없다는 것으로 피타고라스의 정리(n=2일 경우)를 변형한 것이다. 페르마는 이 문제를 만들어 <아리스메티카>의 여백에 적어넣고는 그 유명한 말을 덧붙였다. “나는 경이적인 방법으로 이 정리를 증명했다. 그러나 책의 여백이 너무 좁아 여기에 옮기지 않겠다.”
이 책의 주인공으로 94년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수학자 앤드루 와일즈는 정말 초등학생 때 이 문제를 보고 일생의 목표로 삼았다.
페르마는 생전 논문 발표는커녕 증명과정을 깨끗하게 정리조차 해두지 않았다. 그대로 묻힐 뻔한 그의 정리들은 그의 장남이 <페르마의 주석이 달린 디오판토스의 아리스메티카>를 펴냄으로써 후대에 전해졌다. 이는 후대의 수학자에겐 고통이기도 했다. 많은 정리들이 증명되고 확인됐지만 마지막 정리는 300년 넘게 난제로 남았다.
'페르마의 정리'... 페르마가 한게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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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사의 최대의 미스터리,'페르마의 정리'는 풀렸지만 그 주인공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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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난 수학자들이 증명의 일부만 해결한 뒤 손을 들거나, 문제를 정복했다고 착각했다가 꼬리를 내린 경우가 허다하다. 와일즈 역시 논문 심사 도중 발견된 오류가 1년 넘게 해결되지 않아 일생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뻔한 악몽을 겪었다.
와일즈의 증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수학 각 분야를 활용하고 통합시켰다. 증명의 핵심은 타원방정식과 모듈형태가 일대일로 대응한다는 ‘타니야마-시무라의 추론’을 증명한 것이다.
모듈형태란 ‘시계 대수학’으로도 불리는데 마치 시계를 볼 때 10시부터 4시간 뒤를 2시(14시가 아니라)라고 하는 것처럼 주기적인 성질을 가진 수학이다. 만약 모든 타원방정식을 시계 대수로 바꿀 수 있다면 해를 구하는 계산은 훨씬 쉬워진다.
이러한 방법은 오늘날 수학자들이 많이 쓰는 것으로, 즉 전혀 다른 영역으로 알려졌던 정수론과 기하학이 다른 형태의 같은 수학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보다 쉬운 방식으로 해를 찾는 것이 가능해졌다. 와일즈의 증명으로 수학은 함께 진보한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페르마가 어떤 경이로운 방법으로 이를 증명했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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