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루소는 왜 말년에 식물 사랑에 빠져들었을까?

나뭇잎숨결 2009. 1. 21. 16:54

 

 "내가 식물학에 애착을 느끼는 것은 일련의 부수적인 관념 때문이다. 식물학은 무엇보다도 즐겁게 생각되는 나의 모든 관념을 끌어 모아 상기시켜 준다. 목장, 냇물, 인적 없는 곳,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화로운 고요. 이런 것들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휴식, 이러한 모든 것이 식물학에 의해 줄곧 나의 기억에 되살아오는 것이다."

 

                                                                                                                     - 장 자크 루소, 『루소의 식물 사랑』, 살림, 2008


활달한 딸아이에게 무언가 흥밋거리를 주겠다는 당신의 생각,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식물과 같이 유익하면서도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고 싶다는 당신의 생각은 아주 훌륭해 보입니다 (....) 나이가 얼마든 간에 자연을 공부하게 되면 하찮은 흥밋거리들을 향한 호기심은 좀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감정의 기복도 좀 덜해지고요. 게다가 정신의 양식을 가져다 줄 수도 있어요. 자연에 대한 명상이란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 중의 하나인데 정신이 그것으로 채워질 수 있다면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pp.13~14

나는 누구나 식물의 이름을 모르고도 훌륭한 식물학자가 될 수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딸이 위대한 식물학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 아이에게 자신이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은 언제고 유익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무슨 거창한 계획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당황하지는 마십시오. 별 게 아니라는 것을 곧 아시게 될 것입니다. 제가 당신에게 제안하는 방법에는 뭔가 복잡하거나 따르기 어려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처음에 약간의 인내심을 갖고 시작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런 후에는 꼭 원하는 그만큼만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 pp.15~16

다시 말하지만 앵무새처럼 이름을 외우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습득해야 할 것은 진정한 과학, 우리가 함양할 수 있는 가장 사랑스러운 과학들 중의 하나이지요. ---p.67

정신이 맑아지고 스스로 깨달음을 얻으면 얻을수록 마음은 더 평화롭게 됩니다. 자연을 공부하게 되면 자기 자신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고 우리를 그 조물주에게까지 고양시킵니다. 한 인간이 진정으로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바로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박물학이나 식물학이 지혜나 미덕의 함양을 위해 유용한 것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입니다. 우리의 정념을 따돌리고 아름다운 지식을 향한 기호를 갖게 된다는 것은 꽃을 향한 사랑에 기꺼이 구속된다는 것과 같습니다. ---p.120

모양을 그토록 우아하게 가꾸고 그 분배에 있어 그토록 섬세한 선택을 행한 자연은 그 맨 땅을 그토록 풍요롭고 다양한 장식으로 덮기 위해 특별한 배려를 했기에 우리의 눈을 매혹시키고 우리의 상상력을 놀라게 한다. 이 빛나는 장식들을 조사하면서, 이 풍요롭기 그지없는 세상의 연구에서 식물학자들은 신의 예술, 우리의 공통되는 어머니에게 옷을 지어준 장인의 최고의 취향을 황홀경에 취해 찬미하게 된다.

        

                                                                                                                                                                   ---pp.265 ~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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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의 식물 사랑』에는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이자 소설가인 루소가 들려주는 식물 이야기가 담겨 있다. 루소는 여행 도중 만난 금융업으로 크게 이름을 떨친 부유한 귀족 집안인 들르세르 부인을 만난다. 부인은 자신의 딸을 위해 식물학에 대한 가르침을 루소에게 부탁한다. 이 책에는 그 기본을 소개한 편지글이 수록되어 있다. 들르세르 가문은 금융업으로 크게 이름을 떨친 부유한 귀족 집안이었다. 들르세르 부인은 여행 도중 루소와 만나 친분을 쌓게 되는데 이때부터 루소는 장문의 편지를 통해 들르세르 부인과 그 딸에게 식물학의 기본을 전달하게 되는데 이 편지들은 훗날 따로 편집되어 식물학 입문 교재로 널리 쓰이게 된다. 현학적인 박물학이나 속된 약초학의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고 식물에 대한 애정과 관찰을 통해 자연으로 이끄는 루소의 방법론은 당대의 많은 식물학자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실천한 것이다. 루소의 식물학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식물학이 아니라. 식물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을 주는 식물학이 아니다. 여기에는 식물과 친해지기 위한 식물학을 지향하고 식물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다. 루소의 식물학에 관한 편지들과 단상들은 우리들에게 진정으로 학문하는 태도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을 선사한다. 현학적인 박물학이나 속된 약초학의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고 식물에 대한 애정과 관찰을 통해 자연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낸다.

 

 

   루소의 편지와 글, 식물에 대한 성찰들, 구체적 실천과 함께 하는 성찰들은 학문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것이며 자신이 탐구하는 대상과 하나가 되는 것임을 가르쳐주고, 진정으로 자연(환경)과 화합하는 것의 의미를 전해준다. 루소가 말년에 식물학에 관해 나눈 편지의 기록인 이 글들은 식물과 자연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초대이자 헌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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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반 문명주의자 장-자크 루소는 이성의 진보와 문명의 발달을 신봉했던 계몽의 시대에 반 문명의 기치를 높이 든 선각자이자 이단아였다. 루소는 누구보다 더 예민하고 날카로운 직관력으로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역설하면서도 그 시대의 모순 또한 가장 먼저 지각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말은 단순한 문명의 거부가 아니라 자연을 때 묻지 않은 원초적인 아름다움과 감정의 원천으로 파악한 것을 의미한다. 루소의 인간은 감정을 따라가는 존재이며 이 감정의 가장 풍요로운 원천은 자연의 아름다움인 그 자체인 것이다.


  루소는 말년에 이르러 자신의 여력을 식물학에 쏟아 부었다. 위대한 식물학자 린네우스에 의해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히기 시작했지만 18세기는 아직 식물학이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당시 식물학은 분류학과 약초학이 중심이었으며 대학에서 의학부의 하위 분과였던 것이다. 루소는 자연에서 가장 풍요로운 식물의 왕국이 "그 자체로"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지 못하고 실용적인 목적에 의해서 연구되는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자연의 미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이야말로 자연에 대한 탐구가 가져 오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루소의 글들은 말년의 루소가 얼마나 헌신적으로 자연의 탐구에 매달렸는지,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에게 돌아가려는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자연주의자로서의 루소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이 글들은 그 자체로 프랑스 산문문학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식물을 좋아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바치는 헌사라고 할 수 있다.

 

 

 

 에밀(책세상문고고전의세계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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