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을 씀으로써 존재했고 내가 존재한 것은 오직 글짓기를 위해서였다. ‘나’라는 말은 ‘글을 쓰는 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는 기쁨을 알았다. 작가로서의 나의 계율은 상처처럼 몸 속에 박혀있다. 하루라도 글을 안쓰면 그 상처가 근지럽다. 너무 쉽게 써도 역시 근지럽다. 오늘밤 이런 거칠은 욕구가 너무 융통성 없고 어색하다는 것을 나는 절실히 느낀다. 그것은 마치 바닷물에 쓰려 롱 아일랜드의 해변에 표착하는 선사시대의 점잖은 게와 같다... 다만 사실인즉 이렇다. 미사여구를 꾸며대는 노인이나 마구 갈겨 쓰는 문학 청년을 제외하면 글짓기 명수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말'의 본질로 보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입으로 이야기할 때 나오던 제 나라 말도 붓으로 글을 쓸 때는 외국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우리들은 모두가 같다고 나는 감히 말한다. 모두가 낙인 찍힌 도형수들이다."
- 장 폴 사르트르, 『말Les Mots』中에서
1968년
사르트르의 작품 속에 녹아 있는 자유정신과 진실 추구사상, 그리고 풍부한 지식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1964년 노벨 문학상 선정스웨덴 한림원․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 1964년 10월 22일, 사르트르의 회고록 『말』이 노벨 문학상에 선정되었으나 사르트르는 노벨상의 서양 편중과 작가의 독립성 침해, 문학의 제도권 편입 반대 등을 이유로 수상을 거부하였다. 이는 노벨상을 거부한 최초의 사건으로서 20세기 프랑스 최고의 지성, 사르트르의 명성을 한층 드높여 주었다. 현명하고 조숙했으며 누구보다도 자존감 강했으나 학교에서는 받아쓰기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 아이 사르트르. 그 열정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어린 시절 이야기는 ‘대문호’ 장폴 사르트르의 인간적 매력뿐만 아니라 그의 철학적 저서와 문학 작품의 씨앗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보고(寶庫)나 다름없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어떤 사람이 자서전을 쓰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읽는 행위는 소설을 쓰고 읽는 행위와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작가는 자기 자신을 소재로 전개한 이야기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발표하는 것이며, 독자는 그 이야기에서 인생과 사회에 관한 지식이나 교훈을 얻고 또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반성의 계기로 삼으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자서전의 작가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고백이나 경험담에는 소설 이상으로 참되고 중요한 내용이 담겼으리라고 상정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사르트르가 그의 자서전 『말』을 발표했을 때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계약 결혼, 실존주의, 참여문학, 공산당과의 숨바꼭질 등으로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부단히 화제를 뿌려 온 이 특별한 지성인의 본색이 그 책에 담겨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그가 감히 드러낸 내적 자아에서 그의 개인적 비밀뿐만 아니라, 시대와 인간의 진모를 발견하리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이 기대는 충족되고도 남았다. 『말』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자서전의 하나로 공인되었으며 그 후 부단한 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리고 시대가 완연히 달라진 오늘날에도 이 책은 세계문학의 한 걸작으로서 독자들에게 필독서로 자리 잡기에 부족함이 없다.
『말』은 한 살 때 아버지를 여읜 사르트르가 외조부의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보낸 유년 시절로부터 시작된다. 1부 ‘읽기’와 2부 ‘쓰기’로 나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사르트르의 어린 시절은 ‘책 읽기’와 ‘글쓰기’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키가 작고 몸이 약했으며, 가벼운 사시안(斜視眼) 증상을 보였던 사르트르는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그런 사르트르를 구원해 준 것은 바로 양서로 가득한 할아버지의 서재였다. 문학적 교양을 가장 높은 정신의 작업으로 알고 문학 교수가 되려고 했던 조부의 서재는, 어린 사르트르에게는 일종의 엄숙한 사원인 동시에 희한한 놀이터였다.
독학으로 글을 깨친 사르트르는 할아버지의 서재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순간 “세계”를 만났으며, 그 세계 속에서 “인류의 지혜와 씨름”하기 시작했다고 서술한다. 이 책의 세계가 그가 인식한 최초의 세계며 유일한 세계다. 또한 사르트르의 글쓰기는 일곱 살 때 할아버지와 운문의 편지를 주고받은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글쓰기는 곧 산문으로 기울었고, 그는 그 속에서 “행복에 젖었”다고 말한다. 처음에 ‘장난’이자 ‘놀이’로 시작된 글쓰기는 곧이어 문학 교수 겸 문사로서의 소양을 쌓아 가는 과정(이 소양은 한때 문학 교수를 꿈꾸었던 사르트르의 할아버지가 그에게 불어넣은 것이다.)에서 자신의 존재를 필연화하고 정당화하려는 “새로운 자기기만의 작업”으로 바뀌고, 곧이어 “문학을 통해 세상과 인류를 구원하고 그 결과로 자신을 구원하는” 사제(司祭)로서의 작업으로 변모한다. 번역가 정명환은 어린 사르트르가 ‘읽기’와 ‘쓰기’의 세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입증받으려는 일종의 ‘문학병’에 걸려 있었다고, 작품해설에서 서술하였다.
사르트르 자신은 『말』이 문학에 대한 고별이었다는 뜻의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그는 이미 1954년부터 쓰기 시작한 이 자서전에 거듭 수정을 가해서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더 문학적인 문체를 이루었다. 그 이유가 바로 “문학과 멋있게 결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번역가 정명환은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한다. 사르트르가 정치적 참여를 강조하기 위해 선언한 일종의 ‘과장된 행동’이라는 것이다. ‘문학에 대한 고별’이라는 말이 다만 소설이나 희곡을 쓰는 작품 활동의 중단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맞는 말이다. 실제로 사르트르는 이후, 『말』을 발표한 후 그런 작품 활동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여 사르트르가 문학 그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가 부정하는 것은, 한때 그를 사로잡았던 ‘문학병’이지 ‘문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문학과의 고별’로서 남게 된 그의 자서전 『말』은 그 존재적 가치를 한층 드높이게 되었던 것이다.
1964년 초에 『말』의 출간이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그해 가을에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된 사르트르가 그 상을 거절하여 더욱 큰 화제가 되자, 한 출판사가 고 김붕구 선생과 정명환 선생에게 이 작품의 번역을 부탁하였다. 두 분은 그 부탁을 받아들여 주야불식 작업을 이어 나갔고, 거의 한 달 만에 번역을 끝내야만 했다고 한다. 정명환 선생은 그래서 그 작업이 매우 불완전하였고, 누가 “들추어 볼까 겁이 날 정도로 잘못된 곳이 많았”다고 번역 후기를 통해 밝혔다.
40여 년 만에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 신판은 정명환 교수가 몇 년에 걸쳐 새로이 다듬고 손을 본 작품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반어, 은유, 해학, 상징, 모순어법, 문화적 코드 등이 사르트르 글의 묘미를 한층 더 생생하게 재탄생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고 말했다. 암으로 투병하는 중에도 교정 원고를 몇 번씩이나 꼼꼼히 확인하는 등, 정명환 선생은 『말』을 통해 사르트르와 함께 불문학에 대한 꿈과 열정을 다시 한 번 맛볼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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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민음사에서 발간된 <말>은 고 김붕구(1922~1991) 서울대 교수와 함께 1964년 이 책을 번역했던 정명환(79) 서울대 명예교수가 본문을 수정하고 새로 주석을 단 판본이다.
정 교수는 이 책의 해설에서 "1964년 <말>의 출간이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그 해 가을 사르트르가 노벨상 수상을 거절하자 한 출판사의 요청으로 김 교수와 함께 거의 한 달 만에 번역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내가 맡은 1부의 번역에는 지금 누가 들추어볼까 겁이 날 정도로 잘못된 곳이 많았다"며 박맹호 민음사 회장의 권유로 개역을 시작해 1년 반에 걸쳐 작업을 마쳤다고 밝혔다.자서전은 한살 때 아버지를 여읜 사르트르가 외조부의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보낸 유년시절로부터 시작된다. 그 시절은 사르트르의 정신적 토양이 됐다. 이 책의 1부와 2부인 '읽기'와 '쓰기'가 그 토양이다.
키 작고 병약했으며, 약한 사시(斜視) 증세를 보였던 소년 사르트르는 양서로 가득찬 외조부의 서재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스스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 일곱살 무렵부터 외조부와 운문으로 편지를 교환한 일화 등을 들려준다.
정 교수는 '읽기'와 '쓰기'를 통해 자존감을 획득했던 사르트르지만 그는 자서전에서 이를 일종의 '문학병'으로 규정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사르트르는 자서전에서 "할아버지가 나를 구해 주었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내 인생을 바꾸어 놓은 속임수로 나를 끌어넣었던 것이다"라고 적고 있는데, 이는 <말>을 쓸 무렵 '문학 결별' 선언을 하며 문학과 현실참여의 분기점에서 양자의 관계성에 대해 고민하던 사르트르의 심경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그러나 자서전 말미에서는 "오랫동안 나는 펜을 검으로 여겨 왔다. 그러나 지금 나는 우리들의 무력함을 알고있다. 그런들 어떠하랴, 나는 책을 쓰고 앞으로도 쓸 것이다"라도 적고 있다.
정 교수는 이는 단순히 정치적 참여를 촉구하기 위한 문학이 아니라, 정치는 정치대로 중시하되 기존질서를 비판하고 절대미의 경지를 추구하는, '정치적 참여를 넘어서는 문학'을 추구하겠다는 사르트르의 문학적 지향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말>을 어떤 각도에서 읽느냐의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여러 각도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 야릇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사르트르의 여러 철학적 저서와 문학작품의 씨앗을 어김없이 찾아볼 수 있고, 또 당시의 정치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귀중한 시사를 얻을 만하다"고 <말>이 가지는 의미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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