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문학과 과학의 경계넘기,《다윈의 플롯(Darwin's Plots )》

나뭇잎숨결 2009. 1. 18. 07:06

20년 전 《다윈의 플롯》을 쓰게 되었을 때 나는 먼저 빅토리아 시대의 환상을 머릿속에 그리며 찰스 다윈의 저작에 접근했다. 진화론은 왜 진실과 다르게 여러 가지 위장된 모습을 취했을까? 어떤 우려를 낳았을까? 어떤 만족을 약속했을까? 어떤 새로운 정신적 자유를 주겠다고 유혹했을까? 이런 의문들을 탐구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종의 기원》이 가져온 지적․정서적 흥분이 부분적으로는 다윈이 생각하는 데 필요한 언어를 찾느라 애쓴 소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자연신학이 자연사가들을 제약하고 있는 환경에서 활동했다. 자연신학자들은 신이 물질세계에 관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으므로 설계와 창조를 핵심 개념으로 삼았다. 다윈은 그 반대로 생산과 변이를 토대로 한 이론을 정립하고자 했다.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언어에 맞지 않는 관념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한 가지 수단은 은유의 가장자리에 위치하는 문구, 원래의 지칭 대상을 조금 훼손하더라도 그 의미를 암시할 수 있는 문구를 발명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은 '자연신학'에 대한 간결한 대응이다. 신격(神格)을 끌어들이는 대신 다윈은 분화와 선택이 현실세계의 역사를 낳는다고 본다. 그가 제안한 세계에는 신을 설명하는 중요한 기능이 없었고, 그의 논증에서는 인간에게 할당할 만한 특별한 공간도 없었다. 게다가 그 결핍은 결핍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자연세계는 언제나 꽉 차 있었던 것이다.

 

 

- 질리언 비어,《다윈의 플롯(Darwin's Plots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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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진화론과 19세기 문학의 관계를 다룬 책. 영문학자이자 과학사상가인 저자는 조지 엘리엇과 토머스 하디 등 19세기 영국 작가들이 진화론에 영향을 받고 그들의 작품 이야기를 구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진화론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었다는 주장을 한다. 엘리엇은 다윈의 진화론 용어 중'변이'나 '자연선택'단어를 작품 속에 가져다 썼으며, 진화론의 핵심인 친화성의 관념을 작중 인물들의 관계에 적용한다. 또한 목적론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기원'의 개념을 거부하는 진화론의 메시지를 각색하여 그물 방식의 플롯을 구성함으로써 20세기의 소설 양식을 예고한다.

하디의 소설에서는 자연을 배경으로 삼아 자연 속에 처한 인간의 삶을 말하기 위해 자연의 묘사에서 진화론의 외양을 차용해 플롯을 이끌어 나갈 때는 진화의 은유를 인물에 적용하는 방식을 구사한다. 그 결과 하디는 인간중심주의에 경사되지 않으면서도 독특한 휴머니즘을 작품에 불어넣을 수 있었다. 《다윈의 플롯》은 다윈이 이야기 구조와 관련하여 유럽의 사상을 어떻게 전복하고 현재를 떠받치고 있는지 흥미롭게 추적하고 다윈의 언어가 문학적 의미뿐만 아니라 어조와 구문, 어의적 본질이 서로 작용을 하고 생각을 형성하는 가능성을 열었다.

 

1. '이야기(narrative)'라는 창으로 응시한 다윈과 진화론 19~20세기 초 서구 지성사의 핵심적인 흐름은 다윈의 '진화론'이었다. 진화론을 빼놓고는 당시 지적 지형을 구성할 없는 시대! 다윈의 진화론과 19세기 문학의 관계를 다룬 흥미로운 작품이 《다윈의 플롯(Darwin's Plots )》이다. 세계적인 영문학자이자 과학사상가인 질리언 비어의 대표작 《다윈의 플롯》은 1983년에 초판이 발간되었고, 2000년에 2판이 발간되었다.


이 책의 메시지는 조지 엘리엇, 토머스 하디 등 19세기 영국 작가들이 진화론에 강하게 영향을 받았기 때 문에 자신들의 소설 작품의 이야기를 구성해나가는 과정에서 진화론과 직간접적으로, 찬성하든 반대하든 긴밀하게 관련을 맺었다는 것이다. 질리언 비어는 "빅토리아 시대의 대중 소설을 연구하다 다윈의 진화론이 어디에나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책을 통해 다윈이 사용한 언어들이 당시 사람들에게 사회의 조직과 운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음을 보여주고자 했으며, 진화론에 대한 생각이 조지 엘리엇이나 토마스 하디 같은 작가들에게 끼친 영향과 사회문화적으로 '성 차이'에 대한 이데올로기 형성 과정을 추적해보았다"고 밝혔다. 다윈이 이야기 구조와 관련하여 유럽의 사상을 어떻게 전복하였는지, 또한 다윈의 이야기 구조가 현재를 어떻게 떠받치고 있는지를 흥미롭게 추적하고 있는 《다윈의 플롯》은 생물학 분야에서 그리고 문학 분야에서 진화 사상이 어떻게 적용되고, 이용되고 있는지를 독창적이고도 심도 있는 통찰로 하나하나 밝혀내고
있다.

《다윈의 플롯》은 대니얼 데닛, 리처드 도킨스, 에드워드 윌슨, 스티븐 핑거 등 수많은 다윈의 변형들을 다루는 한편, 그것들을 서구 문화와 다른 문화의 신화 속에 배치하고,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 책은 다윈 사상의 내부에서, 또 반대하는 입장에서 팽팽한 긴장을 조성했으며, 우리의 '플롯', 의미, 질서, 미래, 발전, 죽음 등의 여러 가지 가능성을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질리언 비어는 다윈을 학자로서만이 아니라 현대 문학의 언어와 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서 연구한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그렇듯 엄밀한 방식과 풍부한 상상력을 토대로 다윈의 연구를 문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적은 없으며, 다윈을 찰스 디킨스, 토머스 하디, 조지 엘리엇, 버지니아 울프에 못지않은 창조성과 상상력이 가득한 작가로 독해한 적은 없었다.
이 책은 과학자로 알려진 다윈을 작가로 해석하는 '문학적' 접근을 의도적으로 취하고 있다. 질리언 비어는 언어에 대한 독특한 관심이 언어를 넘어 방대한 지성과 문화적 연관성으로까지 확장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다윈의 언어가 단지 문학적 의미에서만 중요할 뿐 아니라, 어조, 구문, 어의적 본질이 서로 작용을 가하고 생각을 형성하고 명시적으로 드러난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는 점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증명한다.

3. 진화론과 다윈의 언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엘리엇과 하디, 19세기는 '다윈의 세기'였다. 진화론은 계몽주의 시대 이후 인간 이성이 전일적으로 지배하던 지성계에 커다란 파문을 던졌다. 어떤 분야를 처음 개척하는 사람은 예외 없이 언어의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낡은 언어로 새 것을 서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윈이 진화론을 구성할 때도 역시 기존의 언어로 진화의 개념을 설명할 수 없다는 문제에 봉착했다. 그래서 그는 모호한 용어와 표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가 《종의 기원》에 자주 사용된 유비와 의인화다. 19세기에는 과학 언어도 요즘처럼 깔끔하고 건조한 수식이 주종을 이루지 않고 서술적 성격이 강했기에 그런 방식의 논증이 가능했지만, 당시의 지성계는 진화론의 파격적인 내용만큼이나 낯선 다윈의 언어를 쉽사리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진화론의 내용과 다윈의 언어를 둘 다 적극적으로 수용한 작가들이 바로 조지 엘리엇과 토머스 하디다. 엘리엇은 '변이'나 '자연선택' 같은 다윈의 용어들을 서슴없이 작품 속에 그대로 가져다 쓰며, 진화론의 핵심인 친화성의 관념을 작중 인물들의 관계에 폭넓게 적용한다. 또한 목적론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 기원'의 개념을 거부하는 진화론의 메시지를 각색하여 그물 방식의 플롯을 구성함으로써 20세기의 소설 양식을 예고한다. 하디는 엘리엇보다 더 '자연주의적으로' 진화론을 수용한다. 그의 소설에서 보는 자연의 묘사는 문학이라기보다 생태 보고서에 가까운 느낌이다. 하지만 그런 측면은 소설의 배경에 국한된다. 하디는 자연을 배경으로 삼아 자연 속에 처한 인간의 삶을 말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자연의 묘사에서 진화론의 외양을 차용했다면, 플롯을 이끌어 나갈 때는 진화의 은유를 인물에 적용하는 방식을 구사한다. 그 결과 하디는 인간중심주의에 경사되지 않으면서도 독특한 휴머니즘을 작품에 불어넣을 수 있었다. 

다윈의 작업과 생애는 논쟁과 토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회학자, 미생물학자, 언어학자, 사회생물학자, 철학자, 페미니스트, 심리학자, 유전학자, 소설가, 시인, 탈식민주의자 등이 모두 다윈에게 다시 말을 걸고 있다. 《다윈의 플롯》은 방대하고 다양한 지식 분야를 우아하게 가로지르는 명료한 비판의 목소리다. 그 힘은 지은이의 특이한 관점, 예기치 않은 의미와 연관을 끌어내고 다양성과 모순을 지향하는 역량에서 나온다.
질리언 비어의 문장은 유혹적이면서도 비평형적이다. 독자들에게 쉴 틈을 주지 않고, 다윈의 언어든 자신의 언어든 언어란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라고 다그친다. 지은이의 글을 보면, 풍부한 상상력으로 문맥에서 문맥으로 이동하는 말의 흐름을 지켜보는 데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나오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매혹적이고 열정적인 비어의 문장은 언어와 경험의 현란한 가변성에 대한 지은이의 감각, 생각, 사람, 문화, 학문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바로 이런 목소리 때문에 《다윈의 플롯》은 필수적인 중요 저작의 하나가 되었으며, 처음 출간된 이후 다윈, 다윈주의, 과학, 문화에 관한 지적 논쟁을 유발하는 탁월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질리언 비어는 1935년생. 세계적인 영문학자이자 영국을 대표하는 여성 지식인. 케임브리지 대학 클레어 홀(Clare Hall) 칼리지 학장을 지냈다. 13세기부터 시작된 케임브리지 대학 역사에서 여성이 남녀공학 칼리지의 학장으로 취임한 것은 비어 교수가 처음이었다. 영국의 문학 비평 학풍은, 텍스트 분석이 중심인 미국과는 달리, 과학사적 또는 사회학적인 접근을 병행한다. 즉 문학과 당시 사회와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것에서 문학 비평이 출발한다. 이 같은 문학 비평으로 버지니아 울프와 조지 엘리엇, 토마스 하디 등 빅토리아 시대의 문학에 관한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으며 독보적인 지위에 오른 비어 교수는 1998년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남성의 '경(Sir)'에 해당하는 '데임(Dame)' 작위를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Darwin's Plots(1983)이 있고,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비평을 다룬 The Common Ground (1996) 외 다수가 있다.


1장 다윈의 신화
01. 신화의 잔재
소설과 진화론|프로이트와 다윈|이야기로서 다윈

02. '두 번째 타격'
상상력의 혼란|용어로서의 진화|진화론-일상어 속의 침투

03. 지식의 문제
반인간 중심적 플롯|뒤엉킨 강둑-친화성의 그물|다윈과 라마르크

2장 다윈의 언어
04 '비극적인 즐거움'-상상과 현실세계
이야기 혹은 거짓말|셰익스피어와 밀턴|언어의 이동-상상력의 해방|다층적 풍요-뒤죽박죽의 법칙|문학의 변동

05 적응과 부적응-의인화와 자연 질서
초월된 허구-전도된 플라톤주의|은유의 한계 극복|경계를 넘어선 질문|언어적 의도의 확장|의식적 불일치-제거된 조화

3장 다윈의 플롯
06 유비, 은유, 이야기
예언적 은유|목적론적 질서의 증명-잠재적 유비|과학 이론 속 은유와 유비|수단으로서의 은유|텍스트의 생식력-은유, 유비 그리고 이야기

07 진화론의 신화
성장과 그 신화|성장과 변형|진화의 복수성|신화적 열망|언어와 신화

08 다윈식 낭만-변형 퇴보 소멸
초생산성|새로운 형태의 신화|《물의 아이들》, 진화론의 흡수|발달, 퇴보, 타락, 소멸

4장 문학과 진화 사상
09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
필수적인 영향|구조와 가설|친화성의 그물

10 조지 엘리엇의 《다니엘 데론다》와 미래 삶의 관념
종족의 전승과 발달|미래의 삶|전승의 문제-유형학의 문제|인종과 문화-동질성과 이질성|유전의 수수께끼

11 혈통과 성적 선택―이야기 속의 여성
여성의 혈통-계보학적 명령|불확정적 미래|여성-연속적 공간|공포-분열과 불완전성

12 인간을 위한 척도 찾기―하디의 소설에서 보는 플롯과 글쓰기
공포에 대한 공포|인간의 척도|행복의 감각|창조적 불안|회복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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