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편지들을 대할 때마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위작 문제는 어찌 보면 독자들이 신경 쓸 필요가 별로 없는 사안이다. 우리가 위에서 위작 문제를 다룬 것은 플라톤의 편지들 논의가 그 문제를 비켜 가기 어려울 정도로 전문 학자들 사이에 대두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지, 독자들도 이 문제에 함께 매달릴 것을 요청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이 문제 자체가 갖는 흥미나 중요성이 있으며, 따라서 거기에 관심을 갖게 되어 더 깊이 파고들게 되는 일은 자연스럽기도 하거니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런 관심을 갖게 된 이들은 각 편지의 해당 구절들을 신중하게 살펴보면서 마치 탐정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옮긴이들은 플라톤 해석의 방향, 번역의 태도와 방식 등에서 서로 미세한 차이를 갖고 있지만, 플라톤 《편지들》의 원전 번역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내놓는 일을 함께 진행하면서 서로의 힘을 북돋고 냉철한 비판 못지않게 합의의 정신을 발휘하는 데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고 자부한다 …… 힘든 작업을 마치고 나니, 좀 더 시간을 두고 음미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과 그래도 큰 고비를 하나 넘겼다는 안도감이 교차한다. 플라톤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번역해 나갈 때마다 플라톤에 대한 이해 못지않게 번역하는 사람 자신들도 부쩍 커가는 느낌이다. 플라톤이 《편지들》에서 지혜에 대한 사랑은 자신의 삶을 바쳐 문자와 씨름하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불현듯 빛을 발한다고 했듯이 우리 옮긴이들의 노력도 글자로만 남지 않고 우리의 영혼에 아로새겨지고 있는 중이라고 믿고 싶다.
플라톤 철학의 또 다른 모습, 《편지들》출간! , 대화로 대표되는 플라톤 철학이 이번에는 ‘편지’의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소개된다.
몇 편의 편지들에 대한 진위논쟁들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의 철학을 경험할 수 있는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이번에 국내에 완역으로 처음 소개되는 《편지들》이다. 플라톤의 ‘편지’는 어떤 철학 세계를 독자들에게 선사할 것인가? 플라톤의 《편지들》의 세계가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1.《편지들》의 의미와 가치
플라톤의 저작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대화편을 떠올린다. 법정 연설인 《소크라테스의 변명》에까지도 대화가 들어 있는 것을 보면 플라톤이 발표한 저작은 모두 대화로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플라톤이 보여 주는 대화들에는 정작 플라톤이 등장하지 않는다. 《변명》에서 두 번, 《파이돈》에서 한 번 플라톤 자신의 이름이 스치듯 거명될 뿐이다. 오히려 그 대화들에 가장 많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펼치는 사람은 스승 소크라테스이다. 소크라테스가 주된 화자로 나오지 않는 것은 ‘후기’ 작품들(《소피스트》, 《정치가》, 《티마이오스》, 《크리티아스》, 《법률》)에 한정되어 있다. 이렇게 저자가 주된 화자가 아니기 때문에 대화편을 읽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화자의 말을 통해 저자가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상당수 작품이 소크라테스를 주된 화자로 삼고 있기 때문에 대화편의 소크라테스와 역사적 소크라테스의 관계가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로 대두된다.
우리에게 아직 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플라톤의 저작 모음에는 열 세 개의 편지가 포함되어 있다. 대화편들과 달리 이 편지들에서는 플라톤 자신이 일인칭 화자로 직접 등장한다. 대화편들에 들어 있는 화자와의 ‘거리 두기’가 작동하지 않는 만큼, 진짜 플라톤의 것이라면, 역사적 플라톤의 면모가 좀 더 직접적으로 생생하게 드러날 개연성이 높다. 따라서 편지를 읽을 때는 대화편을 읽을 때보다 더 자주, 대화편의 플라톤과 역사적 플라톤의 관계 문제에 직접 대면하게 될 가능성이 많은 작품이 바로 《편지들》이다.
《첫째 편지》
수신인 디오뉘시오스 2세와의 결별이 시사되고 있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것이라면 셋째 시칠리아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인 360년경에 썼을 법한 편지이다. 위작 논쟁에서 위작으로 간주되는 작품이다. 이 편지에 대한 관심은 주로 에우리피데스의 제목 미상의 시 등 인용된 시들에 쏠려 있다.
《둘째 편지》
올림피아 제전(364년 혹은 360년)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플라톤의 작품이라면 363년이나 358년경 디오뉘시오스 2세와 서로 화해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교환한 편지 가운데 답신일 것이다. 위작 논쟁에 휘말렸지만, 이런 철학적인 저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플라톤 이외에 과연 있을 것이며,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단지 플라톤의 편지를 모방하는 수준의 저술만을 남겼겠는가라는 궁금증이 생길 정도로 빼어난 작품이다.
《셋째 편지》
플라톤의 작품이라면 시라쿠사를 탈환하려는 디온파의 군사 행동이 성공(357년)한 직후인 356년 전후에 썼을 법한 편지이다. 이 편지가 두드러지게 보여 주는 《변명》과의 유사성이 위작 시비의 한 빌미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편지 곳곳에 묻어 있는 분노와 결기가 처음 읽는 독자에게는 낯설게 받아들여지는 작품이다.
《넷째 편지》
플라톤의 작품이라면 시라쿠사 탈환 직후인 《셋째 편지》 집필 시기(356년)와 비슷하거나 약간 후에 썼을 법한 편지이다. 화합과 정의, 진실이 힘을 가진 공동체를 구현해 낼 수 있는 따뜻한 돌봄의 정신을 지녀야 함을 조심스럽게 권고하는 편지이다.
《다섯째 편지》
지중해의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마케도니아의 젊은 왕 페르디카스 3세에게 그가 요청한 대로 조언자를 보내면서 조언과 당부를 덧붙이는 편지이다. 플라톤의 것이라면 두 번째 시칠리아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에 쓴 《열셋째 편지》보다 뒤인 364년경에 썼을 것이다. 위작 논쟁의 대상이 된 작품 중 하나이지만 결정적으로 위작 주장이 입증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여섯째 편지》
플라톤의 것으로 전해지는 《편지들》 중에 가장 마지막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이며, 대다수 편지들과 달리 소아시아로 보내진 편지이다. 생애 말년(350년경)에 접어든 저자가 이전에 잠시 제자이기도 했던 아타르네우스의 참주 헤르메이아스와 그 이웃 마을 스켑시스에 사는 제자 에라스토스, 코리스코스 형제에게 상호 존중과 결속을 당부하는 편지이다.
《일곱째 편지》
이 편지는 플라톤이 디온이 살해된 직후인 353년경 디온의 추종자들에게 보내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플라톤은 이 편지에서 자신이 왜 정치에 대한 꿈을 접고 철학이 인류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자신의 젊은 시절 아테네의 정치적 변화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상세히 개진하고 있다. 이 편지를 진작으로 볼 경우 작성 시기는 대략 기원전 354년경으로 보인다. 일단 디온을 살해한 칼리포스가 실각한 해가 353년인데, 편지에는 이 이야기가 없으며 디온은 354년에 살해된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이다.
《여덟째 편지》
디온 사후 플라톤이 디온파에게 보낸 《일곱째 편지》 후 그리 멀지 않은 때인 352년경에 추가로 쓴 편지이다. 한때 위작 주장을 낳기도 했지만, 이제는 어엿한 플라톤의 작품으로 손색이 없음을 널리 인정받는 편지이다.
《아홉째 편지》
피타고라스학파의 일원인 아르퀴타스가 공적인 일 때문에 자기 정진을 위한 여가를 얻지 못해 괴로워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것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는 편지이다. 가능성은 낮지만 플라톤의 것이라고 할 때의 집필 추정 연대는 첫 번째 시칠리아 여행(387년)과 두 번째 시칠리아 여행(367년) 사이 어느 시점이다.
《열째 편지》
디온의 인기와 위세가 상당히 쇠락한 시점, 즉 디온의 죽음 전이나 직후인 356~354년경에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디온의 추종자 아리스토도로스에게 보낸 편지이다. 저자는 그가 꿋꿋하게 신의를 지키면서 건전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그게 진짜 ‘철학’(지혜 사랑)이라고 격려하고 있다. “철학은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니다. 진짜 철학은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
《열한째 편지》
노구를 이끌고 여행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고 뱃길 여행의 위험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플라톤의 것이라면 360년경에 썼을 법한 편지이다. 새로운 식민지를 위한 법률들을 기초하는 데 도움을 달라는 식민지 개척자 라오다마스(아마도 플라톤의 제자였던 타소스 출신의 수학자)의 요청에 답하는 편지이다.
《열두째 편지》
수신인인 아르퀴타스에게 그가 보낸 훌륭한 원고들을 잘 받았고, 이번에는 그가 관심을 표명한 자신의 미완성 원고들을 보낸다고 이야기하는 편지이다. 통상 《아홉째 편지》와 함께 위작으로 간주되고 있다. 가능성은 낮지만 플라톤의 것이라고 할 때의 집필 추정 연대는 《아홉째 편지》처럼 첫 번째 시칠리아 여행(기원전 387년)과 두 번째 시칠리아 여행(기원전 367년) 사이 어느 시점이다.
《열셋째 편지》
저자가 두 번째 시칠리아 여행을 통해 수신인인 젊은 디오뉘시오스 2세와 만나고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그러니까 아직은 서로를 탐색하며 우호적인 관계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던 시절(366년경)에 쓴 편지인 것으로 보인다. 위작이 분명해 보이는 것들을 제외하면 현존 플라톤의 《편지들》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인 셈이다.
3. 《일곱째 편지》에 관하여
《일곱째 편지》는 《편지들》에 담긴 열 세 개의 편지들 중에서 《여덟째 편지》와 더불어 진위시비에서 가장 멀리 벗어나 있는 편지이다. 그러면서도 그 내용에 대한 논란은 또 가장 치열해서 편지를 쓰게 된 이유와 구성에서부터 편지에 담긴 내용이 플라톤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당시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권의 사람들은 참주에 대한 플라톤의 정치적인 조언 때문에, 플라톤이 참주정을 지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품고 있었다. 이 점은 묘하게도 20세기에 들어 칼 포퍼(K. Popper)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플라톤을 전제정치를 옹호한 정치철학자로 보는 시각과 맞물린다. 플라톤의 ‘철학자 왕’이라는 주장이 태생적으로 전제정의 절대 군주로 오해될 수 있는 운명을 타고난 것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일곱째 편지》에 담긴 플라톤의 정치적 입장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플라톤 시대의 독자들과 아울러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플라톤의 정치철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전달하는 일과 통한다고 볼 수 있다. 플라톤이 정치적 개혁의 기본 원리와 원칙을 천명한 덕분에 독자들은 《일곱째 편지》에서 바람직한 정치와 개혁의 방식에 대한 플라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4. 플라톤 《편지들》의 역사적 배경: 시라쿠사 역사와 플라톤의 삶
편지들의 시공간적 배경이 되는 기원전 4세기 중엽의 그리스는 정치적, 사회적 격변의 시기였다. 5세기 초?중반의 그리스가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를 통해 확인된 그리스인들의 자긍심과 아테네나 스파르타 등으로 대표되는 폴리스(도시국가)들의 자신감을 기반으로 한 ‘고전기’ 그리스의 활력이 넘치는 시기였다면, 5세기 말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기점으로 두 폴리스 모두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으며, 신흥 강국인 테베 역시 이전의 활력을 회복시킬 만한 저력을 보여 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 사이 변경에 위치한 시칠리아와 마케도니아가 영웅적 지도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를 형성하면서 이제 그리스는 엷어진 폴리스 전통의 뒤를 이어 바야흐로 대제국 시대로 나아갈 조짐을 보이는 이행의 시대였다.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플라톤은 일찍부터 시라쿠사의 동향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5.《편지들》진위논쟁
플라톤의 《편지들》을 다루면서 어떤 식으로든 진위 문제를 피해 가기는 어렵다. 플라톤의 것으로 받아들이느냐 여부에 따라 그 함축과 파장이 아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위 문제에 지나치게 매달리다가 《편지들》이 담고 있는 여러 가치 있는 내용들이 제대로 음미될 기회가 줄어든다면 그것 역시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이 《편지들》의 원전 번역이 처음이고 우리 학계에서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못한 사정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문헌 비평의 빛과 그림자에 비추어 볼 때 텍스트에 대한 충분한 조명과 이해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위작으로 치부하는 일은 자칫 눈앞에 훌륭한 보석 감을 놓고도 충분히 걸러 내고 다듬는 노력 없이 한갓 흙덩어리로 취급하는 일과도 같다 할 것이다.
주요 편지(《여섯째 편지》, 《일곱째 편지》, 《여덟째 편지》)의 진작성을 인정한 한 학자가 인용한 구절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집 짓는 사람들이 내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시편 118:22, 마가복음 12:10)
진위 시비의 주요 대상 가운데 하나가 된 《둘째 편지》의 저자가 하는 말 역시 새겨들을 만하다. “30년 동안 내내 이런 논의를 들어온 사람들이 이제 노인이 되어서 비로소, 예전에 가장 의심스럽게 생각되던 것들이 지금에 와서는 가장 믿을 만하고 가장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있다.”
각 편지들의 진위 여부를 가늠해 보면, 《첫째 편지》, 《열두째 편지》, 《아홉째 편지》는 위작인 것이 비교적 분명해 보이고, 《다섯째 편지》와 《둘째 편지》는 위작 심증을 완전히 물리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정적으로 위작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나머지는 진작이라고 해도 크게 손색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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