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폴 오스터의 뉴욕 통신 혹은 굶기의 예술

나뭇잎숨결 2009. 1. 14. 19:44

 

 

 프랑스 곡예사 필립 푸티가 1974년 7월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서 줄 타기를 하고 있다.

 

 

왜냐하면 단식은 그 본질상 다른 사람들의 이해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불가능하고 또 확실히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단식은 점진적으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일 뿐 결실이나 파괴에는 도달할 수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그것이 예술이란 행위 속에 내재된 위험이다. 예술을 하고자 한다면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폴 오스터,『폴 오스터의 뉴욕 통신』 , 열린책들, 2007,  p. 21 〈굶주림의 예술〉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내버린다. 그들은 살 수 없을 때까지 살고 우리는 그것을 죽음이라 부른다. 그들에게 죽음은 최후의 벽이다. ……사람은 저마다 그 벽을 향해 나아간다. 어떤 사람은 등을 돌리다가 결국은 등 뒤의 칼을 맞는다. 어떤 사람은 그 생각만 해도 눈앞이 아찔해져서 공포 속에 주위를 더듬으며 평생을 보낸다. 또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그것을 바라보면서 비록 마음속에 공포는 있지만 그것을 대면해야 한다고 자신을 가르치면서 크게 눈을 뜬 채 인생을 살아 나간다. 모든 행동, 심지어 맨 마지막의 행동까지도 중요하다.

 

                                                                                                                        - pp. 87 ~88 〈월터 롤리 경의 죽음〉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땅에 묻지 않는다. 아들의 죽음은 부모에게 가장 궁극적인 고통이다. 비록 크게 기대하지 않지만 우리가 인생에 기대한 모든 것을 산산조각내 버리는 잔인한 공격이다. 아들을 잃는 것은 곧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라르메는 아무런 위로도 얻지 못하고 오로지 심연만 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아들에 대한 장시를 써보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그것을 실행하지 못했다. 그 작업은 아나톨과 함께 죽어 버리고 말았다. 비록 미완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기록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더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이다.

 

                                                                                                          - pp. 252 〈말라르메의 아들〉에서

 

나는 노트르담을 지나칠 때마다 신문에 났던 그 사진을 떠올렸다. 대성당의 엄청나게 큰 탑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밧줄이 걸쳐져 있는 것 같았고, 마치 공중에 마법처럼 매달린 존재, 저 자그마한 인간, 광대무변한 하늘의 좁쌀 하나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던 것이다. 대성당을 볼 때마다 그렇게 상상된 광경을 추가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래전 하느님의 영광을 증명하기 위해 지어진 이 유서 깊은 파리의 기념비가 뭔가 다른 존재로 둔갑해 버린 듯했다. …… 구체적 흔적이 남아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는 마음속에 그 흔적을 만들었고 그건 나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하지만 그 심리적 증거는 이제 지워 버릴 수 없는 것이 되었다. 파리에 대한 나의 인상이 바뀌었다.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방식으로 파리를 쳐다보지 않게 되었다.

 

                                                                                                                                                - p. 255 〈고공 줄타기〉에

 

줄타기의 매력은 그 철저한 무용성인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 어떤 예술도 줄타기처럼 강력하게 우리 내부의 미학적 충동을 불 지르지 못한다. 우리는 공중에 올라간 줄꾼을 쳐다볼 때마다, 우리 내부의 일부가 그와 함께 걸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다른 예술 분야의 연기와는 다르게, 고공 줄타기의 체험은 직접적이고, 매개를 필요로 하지 않고, 단순하므로 특별한 설명이 필요없다. 줄타기 자체가 곧 예술이고 가장 선명한 윤곽을 가진 생의 모습이다.

 

 

                                                                                                                                             - p. 257 〈고공 줄타기〉에서

 

나는 당시 아주 가난했고, 그냥 앉아서 막연히 기다릴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 돈이 있어야 먹을거리를 사오고 집세를 낼 수가 있었다. 나는 그 후 몇 주 동안 매일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번역료 지급을 요구했다. ……돌이켜 보면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바닥이었던 순간이었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우울한 시기였다. 나는 출판사에서 했던 나의 행동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빈털터리였고, 번역을 해다 주었으니 돈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그때 내가 얼마나 쪼들리고 있었는지 증명하기 위해 이런 얘기 하나만 해도 충분하리라.

 

                                                                                                                                - p. 268 〈과야키 인디언의 연대기〉에서

 

그렇게 별채의 계단에 서서 나는 정말 천재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문득 눈을 들어 보니 두 살배기 딸이 집 앞에 있는 게 보였습니다. 딸애는 발가벗고 있었는데(여름이라 늘 그런 식으로 지냈습니다) 그 순간 돌 더미 위에 쪼그려 앉더니 똥을 누기 시작했습니다. 딸애는 나를 보더니 아주 행복한 목소리로 외쳤어요. 〈아빠, 나 좀 봐! 내가 해놓은 걸 좀 봐!〉 그래서 나 자신의 천재성을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딸애의 똥을 치워야 했습니다. 그게 내가 책을 끝내고 한 첫 번째 일이었습니다[일동 웃음]. 30초간 영광을 누리다가 다시 지상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 p. 311 〈래리 매캐퍼리와 신다 그레고리와의 인터뷰〉에서

 

고독은 나에게 다소 복잡한 용어입니다. 그건 외로움 혹은 고립의 동의어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독을 다소 어두운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나는 이 말에 부정적 함의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이건 인간 생존의 한 조건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더라도 우리는 결국 혼자서 우리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진짜 생활은 우리 내면에서 벌어지는 겁니다. 우리는 동물이 아닙니다. 개처럼 본능이나 습관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늘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두 군데의 장소에서 존재합니다.

 

                                                                                                     - p. 318 〈래리 매캐퍼리와 신다 그레고리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야기가 영혼을 위한 기본 양식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이야기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내가 앞으로 소설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의 글쓰기가 전혀 쓸모없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작품은, 우리가 이 지상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알아내려는 노력의 일부분인 것입니다. 글을 쓰다 보면 황량함을 느끼는 순간이 많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쓰고 있는가, 그 목적은 무엇인가 하고 물어보는 순간이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것이 전혀 무의미한 일은 아니라고 기억하는 게 중요합니다.

 

                                                                                                                                  - p. 340 〈마크 어윈과의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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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문학 세계로 현대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폴 오스터의 에세이집 『폴 오스터의 뉴욕 통신』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곡예사같이 이 분야에서 저 분야로 훌쩍 뛰어넘는 재주를 보여 주는 이 에세이집에서, 폴 오스터는 문학과 예술의 원동력을 추적한다.

 

그가 쓴 다양한 장르의 글을 통해 우리는 소설가뿐 아니라 시인, 비평가, 번역가, 편집자 등 여러 모습을 지닌 오스터를 만나 볼 수 있다. 이 책은 『굶기의 예술』(문학동네)이란 제목으로 국내에 한 번 소개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책은 1997년 출간된 증보판을 번역한 것으로, 〈서문 모음〉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부가 하나 추가되었으며, 분량 또한 『굶기의 예술』의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 책은 총 3부로 나뉘어 있다. 1부에는 프란츠 카프카, 새뮤얼 베케트, 파울 첼란, 로라 라이딩, 크누트 함순, 존 애시버리 등의 작가들을 논한 에세이가, 2부에는 오스터가 번역하거나 편집한 책들에 쓴 서문이, 3부에는 오스터와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이 글들은 결국 모두 문학이란 어떤 것인가에 관한 질문으로 통하며, 우연과 고독의 미학이라는 폴 오스터의 문학 세계에 대한 해석의 빛을 던져 준다.

 

문학과 글쓰기, 그 치열한 생존의 현장, 이 책의 제1부 〈에세이〉는 주로 20세기 문학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 작가들에 대한 비평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다수가 시인들로, 오스터를 소설가로만 알고 있는 독자들은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 생활 초기, 오스터는 소설가보다 시인으로서 더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오스터에 따르면 〈시는 정물 사진을 찍는 것과, 산문은 무비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과 같다. 즉, 산문이 시보다 더 많은 반응을 포괄할 수 있기 때문에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짧고 팽팽한 서정시에서 자연스럽게 장편소설 쪽으로 옮겨 간 것이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은 그 작가들뿐 아니라 오스터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20세기 문학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 작가들에 대한 논평을 통해 오스터 자신의 문학관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찰스 레즈니코프, 파울 첼란, 에드몽 자베스, 조르주 페렉 등 그가 논하는 작가 중에는 유독 유대계 작가가 많다. 인터뷰 같은 곳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이렇게 유대인 작가를 많이 다루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오스터가 유대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마리나 츠베타예바는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대부분이 기독교 신자인 이 세상에서 모든 시인은 유대인이다.〉 바로 이런 정신이 자베스 작품의 정중앙에 놓여 있는 핵이고 그로부터 모든 것이 흘러나온다. 자베스가 볼 때, 먼저 글쓰기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서는 대학살에 관한 것은 아무것도 쓸 수가 없다. 언어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려면 작가는 자신을 의심의 유배지, 불확실성의 사막으로 추방시켜야 한다. - p.123〈죽은 자들을 위한 책〉에서

 

자베스의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논한 이 부분에서 〈유대인〉이란 말은 시인의 은유인 동시에 실제의 민족을 나타낸다. 곧 유대인이자 작가인 오스터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인 것이다. 제2부 〈서문 모음〉에서는 작가로서만이 아닌 번역가, 편집자로서 오스터가 관심을 갖는 것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다.

 

『20세기 프랑스 시』란 책을 편집한 오스터는 프랑스 시에 대한 깊은 조예와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넘쳐나는 작가들을 추려내어 한 권의 선집에 담아야 하는 문제, 좋은 번역을 소개하고 싶은 욕망 등 편자로서의 고민이 잘 나타난 부분이다. 뉴욕 쌍둥이 빌딩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서 유명해진 필리프 푸티의 『고공 줄타기』와 같은 책에 서문을 쓴 것은 다소 의외로 느껴진다. 한낱 〈서커스〉에 불과한 줄타기에 관한 책에 문명 높은 작가가 서문을 쓰다니? 그러나 줄타기를 〈자아의 가장 어둡고 은밀한 부분에서 자신의 삶과 마주치는〉 고독의 예술로 새롭게 정의한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예술과 인생에 대한 오스터의 깊이 있는 고찰에 감탄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제3부에서 오스터는 자신의 문학적 성장 과정과 작품 세계, 문학관에 대해 이야기한다. 〈번역〉 장은 오스터의 번역에 대한 인터뷰다. 그는 습작 시절 프랑스 시를 많이 번역했는데, 이것이 시작(詩作) 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시를 한번 번역해 보는 것이 그 시에 대한 평론을 읽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말에서 번역이 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가늠할 수 있다. 〈마크 어윈과의 인터뷰〉에서는 오스터 소설의 특징에 대해 논의한다. 오스터 소설에서 독특한 공간 설정, 기억과 우연이 갖는 의미, 글쓰기라는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는 오스터 작품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오스터는 자신을 노블리스트novelist보다 스토리텔러storyteller라고 생각한다고 고백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야기〉를 중시한다는 말이다. 또한 사실주의자로서 엄연히 현실의 한 부분인 우연을 소설에 넣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미지의 것이 매 순간 밀려들고 불가사의한 세계를 지켜보는 것, 여기에서 독자들을 여느 소설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굶기의 예술

 

제1부 에세이 Essays

굶주림의 예술 *여정 *카프카를 위한 만가 *뉴욕의 바벨탑 *결정적 순간 *다다의 유골 *진실, 아름다움, 침묵 *월터 롤리 경의 죽음 *과자, 샌드위치, 빵 껍질 그리고 돌 *추방의 시 *관념과 사물 *죽은 자들을 위한 책 *개인의 나, 공인의 눈 *순수와 기억 *부활 *카프카의 편지들 *미국의 아들 *섭리 *바틀부스의 어리석은 소행들

 

제2부 서문 모음 Prefaces

자크 뒤팽 *앙드레 뒤 부셰 *하얀 바탕 위의 검정 *북부의 빛 *20세기 프랑스 시 *말라르메의 아들 *고공 줄타기 *과야키 인디언의 연대기

 

제3부 인터뷰 Interviews

번역 *조지프 말리아와의 인터뷰 *래리 매캐퍼리와 신다 그레고리와의 인터뷰 *마크 어윈과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