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일종의 대화로서 편안하고 고독하며 느릿한 감각적인 행위다."
"삶은 꼭 토요일 오후 세시와 닮아 자칫 혼곤하고 무기력할 수 있다"
- 알베르토 망구엘
슬픔이 가미된 아이러니, 진지함이 깃든 엉뚱함,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일상적인 선물에도 즐거워하고, 대단히 미묘한 비애의 순간도 감지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닌 것 같았다. 그들에겐 열정적인 호기심, 틀을 잡아가는 개념을 알아보는 눈, 지적인 정신과 너그러운 행동과 명민한 관찰력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다. 자신들이 세계 속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알았고, 그렇게 상상한 자의식에 긍지를 느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모든 것에 꽃이 만개하고 열매가 익어가는 번영의 가능성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위축된 경제와 그에 따른 정치 상황, 아직 다국적이지 않은 외국 기업들이 나라 밖에서 가한 현실은 수많은 사회규범을 좌우했지만,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호기심 많은 기질과 독특한 해학과 침울한 용기는 부패 정권이라는, 세월이 흐르면 사라져갈 주술 같은 그것을 넘어 그들의 사회를 더 위대하고 월등한 것으로 지켜왔다.
- 알베르토 망구엘, 강수정 옮김, <독서일기>, 생각의나무, 2006, p.25
『킴』에서는 모든 게 맨 처음부터 나온다. 캐묻기 좋아하는 킴의 성격, 베일에 싸인 그의 과거와 미래, 라마승의 수행, 하룬-알-라시드와 『천일야화』에 대한 얘기에서 풍기는 동화 같은 분위기. 독자 자신이 나름대로 장면이나 대화를 완성하게끔 의도적으로 주춤거릴 때를 제외하면, 모험을 풀어가는 데 어떤 혼선이나 머뭇거림도 찾아볼 수 없다. 키플링은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를 잘 알고, 심지어 그것의 명백함을 믿는다. 언젠가 키플링처럼 뭄바이에서 태어난 로힌턴 미스트리에게 『킴』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때까지 읽지 않았다는데 아주 좋아했다. 로힌턴도 키플링처럼 자신의 소설에 인도 현지어를 사용할 때 뜻을 따로 설명할 필요를 못 느낀다. 그 뜻은 문맥 속에서 빛을 발하고, 등장인물들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생기가 돈다. 나는 용어 해설 모음을 싫어한다.
- 위의 책, p.62
오래된 이치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는 것, 모든 권력은 악용된다는 것, 광신은 어떤 것이든 이성의 적이라는 것, 선동은 불의에 맞서는 힘을 규합할 목적이라도 여전히 선동이라는 것, 전쟁은 신이 더 막강한 군대의 편이라고 믿는 승자의 눈에만 영광으로 비친다는 것. 어쩌면 이게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 암흑의 순간에 책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인지 모른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글로 확인하기 위해서 [..] 비극적인 사건이 있고 며칠 후, 그날 아침 내내 세계무역센터 근처 책방에 갇혀 있었다는 사람의 얘기를 들었다. 먼지가 가라앉길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사이렌과 비명이 들려오는 와중에 계속 책을 뒤적였다. 사토브리앙은 프랑스혁명의 혼란기에 파리에 막 도착한 브르타뉴 시인 한 명이 베르사유궁전 관람을 부탁했던 일화를 들려준다. "세상엔 이런 사람들도 있다." 샤토브리앙은 말한다. " 제국이 무너지는데, 그 옆에서 분수와 정원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위의 책, pp.88~89
2002년
6월『모렐의 발명』-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7월『모로 박사의 섬』- H.G.웰스
8월『킴』- 러디어드 키플링
9월『무덤 저편의 회고록』프랑수아-르네 드 샤토브리앙
10월『네 사람의 서명』- 아서 코넌 도일
11월『친화력』-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2월『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케네스 그레이엄
2003년
1월『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2월『타르타르 스텝』- 디노 부차티
3월『필로우북』- 세이 쇼나곤
4월『떠오름』- 마거릿 애트우드
5월『브라스 쿠바스의 유고 회고록』- 호아킴 마리아 마차도 데 아시스
소통의 욕망이 없다면 세상의 책은 쓰여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소통의 욕망이 없다면 세상의 책은 읽혀지지 않을 것이다. 쓰기와 읽기는 모두 소통을 지향한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일기』 역시 소통의 욕망, 두겹의 대화를 시도한다. 둑자인 나, 지금 여기서, 작가인 그가 본 그때 그곳의 것들을 바라본다. 그것을 통해 다시 그는 그를 읽어내는 독자와의 소통의 통로를 만든다. 망구엘의『독서일기』는 2002년 6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꼬박 일년간의 기록물이다. 매달마다 한 권씩 총 열두 권의 책을 선택하여 일기 형식으로 책에 대한 사색과 삶의 성찰을 적었다.
망구엘의 책읽기는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소통을 통한 감각적인 책읽기다. "지면을 훑어 내려가듯 읽으며 책장을 넘기는 순간 앞의 내용을 잊어버린다 해도 상관없는 책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경건한 마음으로 읽으며 감히 동의하거나 반박할 엄두를 못 내는 책들도 있다. 순수한 정보만을 담고 있어서 가타부타 언급할 여지가 없는 책들이 있고, 오랜 세월을 두고 깊이 사랑하며 그야말로 가슴으로 읽은 까닭에 토씨까지 줄줄 외울 수 있는 책들도 있다. 독서는 일종의 대화다. 미친 사람들은 마음속 어딘가에서 들리는 가상의 대화에 열중한다. 독자도 책 속의 낱말들이 소리 없이 불러일으키는 비슷한 대화에 빠져든다. 대개 독자의 반응은 기록되지 않지만, 그래도 연필을 들고 한쪽 여백에 대꾸를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을 종종 받게 된다. (...) 과학자들은 빅뱅이 일어나기 전까지 우주가 시간과 공간이 정지한 잠재 상태―어느 과학평론가의 말을 밀리자면 "가능성의 운무"로 존재했을, 거라고 상상한다.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이런 잠재된 존재라는 개념은 생소하지 않을 텐데, 손으로 책을 펼쳐서 한 자 한 자 읽어나가는 눈이 그 글자들을 깨워 일으키기 전까지 모든 책은 바로 그런 꿈과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깨어남의 순간을 기록하고자 했던 나의 시도가 이제 여러분이 읽을 이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됐다."
그는 자신을 "편집자도, 번역가도, 작가도 아니다. 나의 직업은 독서가다. 차라리 남들보다 많이 열정적인 독자라고 해두자." 고 말한다. 망구엘은 1948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를 남미 출신으로 고정 짓기엔 부족하다. 유년 시절부터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아메리카와 유럽을 오갔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한 곳에 2년 이상 정착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영국, 타히티, 캐나다 등지를 옮겨 다니다가 지금은 파리에 살고 있는 현대판 도시 유목민이라고 할 수 있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자연스럽게 각국의 후미진 책방에서 나뒹구는 이름 모를 작가의 책부터 최고의 베스트셀러까지 빠르게 읽고, 흡수하는 책벌레가 된다. 그는 유년의 "긴긴 여름 예상치 못한 성적 예비 교육을 받게 해준 온갖 책들을 시원한 이불보 밑에서, 살갗을 뜨겁게 달구는 햇볕 아래서, 마침내는 손전을 책을 비추며 읽다가 나도 모르게 곯아떨어져 이야기가 뚝뚝 끊어지던" "돈키호테의 서재가 없어졌다는 대목에서 왈칵 눈물을 쏟았던" 일들을 추억한다.
망구엘이 치명적인 독서에의 탐닉을 일으킨 결정적 계기가 있다. 학창 시절 '피그말리온'이라는 서점에서 일하다가 우연히 세계적 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만나게 된 일이다.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보르헤스를 위해 책을 읽어주던 망구엘은 예리한 칼날 같은 그의 독특한 촌평에 문학적 영감을 받고, 유난히 책을 좋아했던 소년은 전보다 더욱 집착적으로 책에 탐닉하게 되고 늘 손끝에서 책을 놓지 않게 된다. 이제는 보르헤스와도 견주어 재치와 기개가 넘치는 필체로 찬탄 받는 독서가가 됐다.
. 망구엘은 오후 세시의 복판을 빼닮은 우리네 삶을 열망과 치열함으로 읽고 쓰기를 반복하며 성찰한다. 어느 날 그는 발견한다. 수천 개의 조각으로 나눠진 퍼즐이 서로의 귀퉁이에 기막히게 들어맞는 것처럼 무신경 속에 눈에 밟힌 책의 한 구절, 와글대는 신문의 낱글자 하나가 현재의 삶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는 순간들을 말이다. 이러한 지각과 함께 그는 부재와 무의미의 시간을 기록하기로 마음먹는다. 비로소 존재 너머에 침잠해 있던 시간들은 유의미한 것으로 재생된다.
망구엘의 책 선정의 기준은 특별하지 않다. 10세기 기록물에서 20세기 동화까지, 작가란 호칭이 무색한 일본 헤이안 시대 궁녀 세이 쇼나곤의 기록물에서 칭찬에 인색한 니체로부터 "하나의 문명"이란 찬탄을 받았던 괴테의 소설, 비애에 잠긴 국가와 운명을 같이 하는 아르헨티나의 비오이 카사레스의 작품까지 작가의 지명도와 작품의 장르 및 시기를 분별치 않고 다양하다. 기준이라면 열두 권의 책들이 맞춤한 듯 매 일상과 닮았다는 것. 까닭에 망구엘이 다시 읽기를 시도한 책들이다. 책을 손에 쥐고 일 년여 동안 그는 캘거리에서 뮌헨,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파리 그리고 런던까지 분주히 옮겨 다녔다. 누구보다 역동적인 일상 속에서 가족, 친구, 고향, 유년, 전쟁, 빈곤 등의 체험에 대해 그는 바지런히 사색한다. 『독서일기』는 열두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싹튼 생각과 성찰 외에도 여행에서 받은 인상들, 친구들 또는 공사를 망라한 여러 가지 일의 짧은 스케치를 담거나, 나름대로 선정한 '것'들의 목록을 담아 끊임없이 현장을 기록한다. 우리네 일상과 다를 바 없는 그의 일기는 복잡다단한 우리네 삶의 내밀한 엿보기가 될 수 있다.
망구엘의 독서일기는 줄거리 소개 및 단순한 인상 비평이 없다. 그는 다만, 책읽기에 몰입한 어느 독서가(알베르토 망구엘)의 내밀한 심상과 촘촘한 일상을 좇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일기란 장르를 통해 『독서일기』 외부의 독자들은 망구엘의 감각을 말 그대로 감각할 수 있다. 빈번한 행간 띄어쓰기는 망구엘의 성찰과 사고의 순간을 드러낸다. 책의 주인공을 말하고, 작가를 말하다가 문득 튀어 오른 일상의 닮은꼴을 발견했을 때 그는 행간에 멈춰 잠시 숨을 들이키며 단상과 판단을 유보한다. 책에서 건져 올린 삶의 지혜를 꿰뚫는 사려 깊은 철학가의 인상이 엿보인다.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을 소개하는 본문에서 그는 집의 의미를 되새기고, 수년 전 정착한 파리의 집이 책과 그가 묻힐 유일한 집임을 암시한다. 또한 망명자의 두고 온 집일 고국에 대해 사색한다. 그들에게 고국의 시간은 정지된 상태, 사람도 사물도 공기도 엷게라도 변하지 않은 진공 상태라고 말하며, 책에 대한 인상과 맞물려 집의 의미를 기록한다. 마침 미국의 9?11 테러로 인한 보복의 조짐이 확산될 무렵 그는 4세기 전 행동하는 정의(물론 늘 실수와 오해를 불러일으킨) 『돈키호테』를 다시 읽기 시작한다. 들뜬 광기와 마비된 이성으로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은 미국의 폭력을 경계하며, 엉거주춤 뒤로 물러선 간 곳 없는 정의와 이성을 불우한 필체로 신랄하게 비난하고 탄식한다. 덧붙여 지난 세기의 사상가과 작가 또 다른 작품들 속에서 현 시대를 관찰하고, 반성한다. 경제공황을 맞고, 정치혼란을 겪는 그의 태생지인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의 작가의 『모렐의 기억』에선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행복해야만 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의 '생'을 공감하고, 유년 시절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회귀해 추억한다. 동시대와 동시대인을 꿰뚫어보는 그의 일기는 현자의 단정한 사색이 담겨 있다.
이미 국내에는 『독서의 역사A History of reading』와 『나의 그림 읽기Reading Pictures』가 소개돼 있으며, 『독서의 역사』는 6,000년간의 방대한 세계 독서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재기 있는 미시사를 제시해서 탐독할 만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독서의 역사』와 더불어 『The Dictionary of imaginary places』로 유수한 문학상을 수상했고, 프랑스에서는 '예술과 문학 기사(技士)' 작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Black Water』『The Gates of Paradise』『In Another Part of the Forest』『With Borges』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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