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산문(散文)으로 쓴 환상시(幻想詩) / 알퐁스 도데

나뭇잎숨결 2008. 12. 30. 03:50

 

산문(散文)으로 쓴 환상시(幻想詩) / 알퐁스 도데

 

 오늘은 아침 문을 열었을 때, 풍차간 주위는 온통 흰 서리로 덮여 있었습니다. 풀잎은 유리 조각처럼 반짝이고 바스락거렸으며 언덕 전체가 추위로 떨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동안에 사랑하는 프로방스가 한대 지방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서리가 하얗게 빛나고 있고, 저 맑게 갠 하늘 위엔 하인리히 하이네의 나라에서 온 황새들이 커다란 삼각형을 이루며 까마르그 쪽으로 '추워추워…' 외치며 날아가고 있었는데, 나는 흰 서리가 꽃술처럼 덮인 소나무들과 수정의 꽃이 핀 라벤더 숲 속에서 다소 독일풍인 두 편의 환상시를 썼습니다.

 

---------- 왕자의 죽음

 

 어린 왕자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왕국의 모든 교회에서는 왕자의 회복을 빌며 낮이나 밤이나 성체를 내어 놓고, 커다란 초에 불을 켜 놓았습니다. 고색 창연한 거리는 고요하고 쓸쓸했으며 교회의 종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마차들도 조용조용히 다녔습니다……. 궁궐 주위의 주민들은 궁금해서, 위엄 있는 태도로 궁정 안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금줄 단 뚱뚱보 위병들을 창살 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성 안이 온통 들끓고 있었습니다. 시종들과 청지기들이 종종걸음으로 대리석 층계를 오르내립니다. 현관에는 비단옷을 입은 신하들과 시동들로 가득 차 있으며 그들은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며 새로운 소식을 알아내려고 수군거립니다. 넓은 계단 위에서는 눈물에 젖은 시녀들이 수를 놓은 고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서로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오렌지 온실 안에서 가운을 입은 의사들의 회합이 거듭됩니다. 그들의 긴 검정 소매가 움직이고, 길게 늘인 가발이 점잖게 수그러지는 모습이 유리창 너머로 보입니다. 사부와 시종은 문 앞에서 서성대며 시의의 발표를 기다립니다. 요리사들이 그들 곁을 인사도 없이 지나갑니다. 시종은 이교도처럼 욕설을 퍼붓고, 사부는 호라스의 시를 읊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 편 마구간 쪽에서는 구슬픈 말 울음 소리가 길게 들려 옵니다. 그것은 마부들이 잊고 밥을 주지 않아 텅 빈 구유 앞에서 슬프게 울부짖고 있는 왕자의 밤색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임금님은 어디 계신가? 임금님은 성 끝에 있는 방 안에 홀로 들어앉아 계십니다. 임금님들이란 남에게 눈물을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여왕님은 다릅니다. 여왕님은 어린 왕자의 머리맡에 앉아 고운 얼굴이 눈물에 젖은 채 비단장수처럼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큰 소리로 흐느껴 울고 계십니다.

 레이스가 달린 침대에는 어린 왕자가, 깔고 누운 요보다도 더 흰 얼굴로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습니다. 잠들어 있는 듯 하였지만 자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를 향해 몸을 돌리더니, 그가 울고 있는 것을 보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마마마, 왜 울고 계셔요? 정말 제가 죽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여왕님은 대답을 하려고 하였지만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질 않습니다.

"어마마마, 제발 울지 마세요. 제가 왕자라는 것을 잊으셨군요. 왕자가 이렇게 죽을 수 있나요?"

여왕님은 더욱더 흐느껴 웁니다. 그래서 왕자도 무서워집니다.

"그만두세요! 전 죽고 싶지 않아요. 절대로 죽음이 여기까지 오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을 거예요 ……. 당장 사십 명의 아주 힘센 근위병을 오게 해서 침대 주위를 둘러싸게 해 주세요 ……. 대포 백 문을 창 밑에 배치하여 도화선에 불을 붙인 채, 밤이나 낮이나 지키게 해 주세요. 그래도 죽음이 접근해 올 때는 호통을 쳐 줄 거야!"

 왕자를 즐겁게 해 주려고 여왕님은 손짓을 합니다. 당장 궁정 안으로 커다란 대포가 굴러 오는 소리가 들리고 창을 든 장대한 사십 명의 근위병들이 몰려와 방 안에 둘러섭니다. 이들은 수염이 허옇게 된 노병들입니다. 왕자는 그들을 보자 손뼉을 칩니다. 왕자는 그들 중에서 자기가 알고 있는 한 사람을 불렀습니다.

"로뎅! 로뎅"

그가 침대 앞으로 한 걸음 나섭니다.

"로뎅, 난 당신이 참 좋아……. 당신의 장검을 좀 보여 줘. 죽음이 나를 잡으려고 하면 죽여 버려야 하겠지?"

로뎅이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전하!"

 노병의 거무죽죽한 뺨 위에는 굵은 눈물이 두 줄 흘러내립니다.

 이 때, 궁정 목사가 왕자 곁으로 가까이 오더니 십자가를 보이며 낮은 목소리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합니다. 어린 왕자는 아주 놀란 얼굴로 이야기를 듣고 있더니 갑자기 목사의 말을 가로막습니다.

"사제님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친구 베뽀 녀석에게 돈을 많이 주고 내 대신 죽게 할 수는 없을까요?"

 목사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어린 왕자는 더욱더 놀란 얼굴을 합니다.

 목사가 이야기를 다 끝내자, 어린 왕자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제님의 말씀은 한마디 한마디 나를 아주 슬프게 합니다. 하지만 저 하늘 위 별들의 낙원에 가도 나는 역시 왕자일 터이니까 안심이 되는군요……. 하느님은 나의 친척이니 나를 신분에 맞도록 대우할 것을 잊으시진 않겠죠."

 그리고는 어머니 쪽으로 몸을 돌리며 왕자는 이렇게 덧붙여 말합니다.

"제 가장 고운 옷들, 흰 담비가죽 저고리와 빌로오도 무도화를 가져오라고 하세요! 왕자의 옷을 입고 천국에 들어가서 천사들에게 뽐내고 싶어요."

목사는 세 번째 어린 왕자를 향해 몸을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합니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 왕자는 화를 내며 말을 가로막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왕자란 아무것도 아니군요!"

그리고는 더 이상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하지 않고, 벽을 향해 돌아눕더니, 왕자는 흐느껴 우는 것이었습니다. <풍차간의 편지>

 

----------- 들판의 군수님

 

나이팅게일의 말에 한시름 놓은 새들은 다시 노래를 계속하고, 샘물도 다시 흐르기 시작했으며, 오랑캐꽃은 다시 향기를 풍기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군수님이 그 곳에 있다는 사실엔 아랑곳하지 않는 듯이 ……, 군수님은 이러한 경쾌한 소란 속에서 태연하게 공진회 시신의 가호를 마음 속으로 기원하며 연필을 들더니 엄숙한 목소리로 연설문을 낭독하기 시작했습니다.

"내빈 및 친애하는 군민 여러분……"

"내빈 및 친애하는 군민 여러분……" 하고 군수님이 엄숙하게 서두를 꺼내자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는 말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았지만 보이는 거라곤 커다란 딱따구리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딱따구리는 그가 벗어 놓은 모자 위에 앉아서 그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습니다. 군수는 어깨를 으쓱 치켜 올리고 나서 연설을 계속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딱따구리가 잽싸게 말을 가로채며 멀리서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소용없어요!"

"뭐라고? 소용없다고?"

군수님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 팔을 휘둘러 저 방자한 새를 쫓아 버리고 나서 더욱 목소리를 가다듬어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내빈 및 친애하는 군민 여러분……"

"내빈 및 친애하는 군민 여러분……" 하고 똑같은 서두가 시작되자 귀여운 오랑캐꽃들이 줄기 끝에서 군수님에게 고개를 내밀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군수님, 우리들에게서 좋은 향기가 나죠?"

이어서 이끼 밑으로 샘물이 졸졸 맑은 소리로 흐르고, 머리 위 나뭇가지 위에서는 휘파람새들이 우르르 몰려와 명랑한 소리로 울어댑니다. 작은 숲 전체가 결탁을 한 듯이 군수님의 연설문 작성을 한사코 방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숲 전체의 결사적인 방해에 군수님은 오랑캐꽃 향기에 취하고, 노래 소리에 넋을 잃어 온몸을 파고드는 숲의 매력에 끌려들어 가지 않으려 저항했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는 팔꿈치를 괴고 풀 위에 누워 고운 옷의 단추를 풀며 두어 번 중얼거려 보았습니다.

"내빈 및 친애하는 군민 여러분……""내빈 및 친애하는 군민 여러분……""내빈 및 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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