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Transcritique>

나뭇잎숨결 2008. 12. 30. 03:56

 

 

"너의 인격과 모든 타자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결코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시에 항상 목적으로 대하라" - 칸트

 

"여기가 로도스 섬이다. 어디 뛰어보라!(hic Rodus, hic salte)" - 마르크스

 

 

 

 

 

 

트랜스크리틱(Transcritique)이란 무엇인가.

 

  칸트 철학은 초월론적- 초월적인 것과 구별되는- 이라고 불린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초월론적 태도란 우리가 의식하지 않는, 경험에 선행하는 형식을 밝은 곳으로 드러내는 일을 의미한다. 그러나 철학이 시작한 이래, 철학은 계속 그런 반성적 태도를 취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칸트는 어떤 점에서 다른 것일까. 칸트 특유의 '반성' 방법은 초기 저서 ,시령자의 꿈>에 잘 나타나 있다. "먼저 나는 일반적인 인간 오성을 단지 내 오성의 입장에서 고차했다. 지금 나는 나를 내가 아닌 외적 이성의 위치에서 고찰하고, 나의 판단을 가장 은밀한 동기와 함께 타인의 시점에서 고찰한다. 그 두 고찰에 대한 비교는 확실히 강한 시차를 낳기는 한다. 하지만 그 비교는 광학적 기만을 피하고 여러 개념들들, 그것들이 인간성의 인식 능력에 관하여 서 있는 진정한 위치에 두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다."

 

  여기서 칸트가 말하는 것은 자신의 시점뿐만 아니라 "타인의 시점"에서도 보라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뜻이라면 여기저기널려있다. 왜냐하면 '반성'이란 '타인의 시점'으로 자신을 보는 것이고, 철학의 역사는 그러한 반성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칸트가 말하는 '타인의 시점'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 '타인의 시점'은 '강한 시차'에서만 나타난다. 그것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칸트 시대에는 없었던 어떤 테크놀로지를 예로 들 필요가 있다.

 

  반성은 항상 거울에 자신을 비추는 것으로 비유된다. 거울은 '타인의 시점'으로 자신의 얼굴을 보는 일이다. 그러나 사진은 거울과 다르다. 사진이 발명된 당시에 사진으로 자신의 얼굴을 본 사람은 녹음기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불쾌감을 금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무리 '타인의 시점'에 서려고 해도 거울애 의한 반성에는 공범성이 존재한다. 우리는 자신의 어룰을 자기 졸을대로만 본다. 게다가 거울은 좌우가 반대이다. 한편 초상화는 분명히 타인이 그린 것이다. 그래서 만약 그것 때문에 불쾌감을 느꼈다면 이는 화가의 주관성에 따른 것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그러므로 타인이 어떻게 그리건 나한테는 영행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진에는 그것들과는 이질적인 '객관성'이 존재한다. 초상화화는 달리, 사진을 누가 찍었건 간에 그것의 주관성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묘하 일이지만 우리는 자신의 얼굴(물자체)을 볼 수 없다. 거울에 비친 상(형상)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자신의 얼글을 아는 것은 사진에 의해서이다. 물론 사진도 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은 곧 사진에 익숙해진다. 다시 말해 그 다음부터 사진에 찍힌 것을 자신의 얼굴이라고 간주하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사진을 보고 느낀 '강한 시차'이다.    

 

  철학은 내성(거울)에 의해 시작되고 거기서 그친다. 아무리 '타인의 시점'을 도입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철학은 소크라테스의 '대화'에서 시작했다. 대화 자체가 거울 속에 있다. 사람들은 칸트가 주관적인 자기음미에 머물렀던 것을 비판하고, 거기서 나오는 가능성을 다수 주관을 도입한 <판단력 비판>에서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철학사의 결정적인 사건은 내성에 머무르면서 동시에 내성이 갖는 공범성을 파괴하려고 한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에 있다. 우리는 <순수이성 비판>에서 종래의 내성(거울)과는 다른, 어떤 객관성(타자성)의 도입을 발견할 수 있다. 흔히 칸트의 방법은 주관적이며 독아론적이라고 비난받는다. 그러나 그러한 비난은 항상 '타인의 시점'에 따라다니는 것이다. <순수이성 비판>은 <시령자의 꿈>처럼 자기 비평적으로 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강한 시차'는 사라지지 았았다. '강한 시차'는 이율배반(안타노미)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것은 정명제와 반대명제 모두가 '고아학적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다.

 

  제1부에서 나는 이러한 관점으로 칸트를 다시 읽었다. 제2부의 마르크스론도 마찬가지다.  (...) 칸트나 마르크스는 끊임없이 '이동'을 반복한다. 그리고 다른 언어 체계로의 이동이야말로 '강한 시차'를 가져온다. 망명자 마르크스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사실 칸트에 대해서는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칸트는 공간적으로 전혀 이동하지 않았지만 이동의 유혹을 거부한 일에서 그리고 계속해서 코스모폴리탄이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망명자였다. 일반적으로 칸트는 함리론과 경험론 '사이'에 있었으며, 초월론적 비판을 했던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기묘하게 자학적인 비판을 했던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기묘하게 자학적인 <시령자의 꿈>과 같은 에세이를 보면, 칸트가 그의 저서 '사이'에서만 생각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칸트 역시 독단적인 합리론에 대해 경험론으로 맞서고, 독단적인 경험론에 대해 합리론으로 맞서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한 이동에 칸트의 '비판'이 존재한다. '초월론적 비판'은 뭔가 안정된 제3의 입장이 아니다. 초원론적 비판은 횡단적(transversal) 또는 전위적(transpositional)인 이동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칸트나 마르크스의 초월론적(transcendental) 또는 전위적 비판을 '트랜스크리틱(Transcritique)이라 부르기로 한 것이다.(...)....

 

  마르크스에 대해 놓쳐서는 안되는 커다란 전회(轉回)는, 중기의 작업인 <경제학지판>(1859)이나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1857~58)에서 후기 <자본론>으로 이행하는 데 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가치형태론'의 도입이다. 그 계기가 된 것은 ㅏ르크스가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을 쓴 후에 하나의 회의론에 직면한 일이다. 그 회의론은 데비드 리카도의 노동가치설에 대한 베일리의 비판이다. 리카도의 생각에 따르면 상품에는 교환가치가 내재해 있고, 화폐는 그것을 표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화폐는 가상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기초해 리카도 좌파나 프루동 등은 화폐를 폐기할 것과 노동 증표나 교환 은행을 구상했다. 마르크스는 그것을 비판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노동가치설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품에 내재하는 노동가치라는 것은 환상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베일리의 이러한 회의론은, 예컨데 데카르트가 말하는 자기(自己)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수의 자기가 존재할 뿐이라는 흄의 비판과 유사하다. 칸트는 그것에 대해 자기는 가상이지만 초월론적 통각X가 있다고 했다. 이 X를 뭔가의 실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형이상학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한 X를 경험적인 실체로 파악하려는 충동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따라서 자가란 단순한 가상이 아니라 초월론적 가상이다. 물론 칸트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나중의 일로, 처음에는 흄의 회의에 의해 '독단론의 꿈에서 깨어나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가 베일리의 회의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칸트처럼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때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고찰을 진행해 나갔다. 그것을 가치의 초월론적 고찰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고전경제학은 각 상품에 노동가치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상품들의 관계 체계가 화폐에 의해 통합되어 각각게 가격을 부여받은 다음이기 때문인데, 실제로는 상품 상호 간의 관계로서의 가격만이 존재한다는 것이 베일리의 주장이다. 그러나 배일리는 가격을 나타내는 화폐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베일리는 상품들이 하나의 관계체계를 이룰 때 그 체계의 쳬계성을 구상하는 것, 즉 일반적인 등가형태로서의 화폐를 보지 못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화폐는 금이나 은 등의 실체적인 화폐가 아니라, 이를테면 초월론적 통각 X이다. 화폐를 무언가의 물질에서 보아버리는 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말하는 페티시즘이다. 그러한 화폐는 가상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 가상을 쉼게 없앨 수 없다는 의미에서 화폐는 초월론적 가상이다. 

 

  고전파에 선행하는 중상주의가, 배금주의자에게 화폐는 특별한 것이었다. 그것이 화폐의 페티시즘이라는 것은 명료하다. 고전파는 그것을 비웃고, 가치를 형성하는 실체를 노동에서 찾았다. 그러나 그러한 노동가치설은 화폐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은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화폐의 페티시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 노동가치설을 취하는 리카도가 그것을 비판하는 베일리(신고전파의 알려지지 않은 시조이다)도 그저 표면상으로만 화폐를 소거했을 뿐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공황 때 사람들은 갑자기 화폐를 찾으며 중금주의로 되돌아온다. <자본론>의 마르크스는 리카도나 베일리보다 오히려 중상주의로 거슬러 올라가 생각했다. 물론 마르크스의 '비판'은 그 모두를 비판하는 것이고, 그 비판을 통해 그것들이 놓치고 있는 '형식'-상품경제를 성립시키는 초월론적 형식-을 표면에 드러내는 일이다. 다른 관점에서 말하자면 그것은 물건이 아니라 물건이 놓인 관계의 장(場) 을 우위에 두는 일이다. 

 

  마르크스의 생각에 금이 화폐가 되는 것은 그것이 금이어서가 아니다. 마르크스가 보려고 한 것은 그곳에 위치하는 생산물을 상품이게 하고, 화폐이게 하는 '가치형식'-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이다. 소재적으로 무엇이든 간에 배타적으로 일반 등가형태에 놓인 화펴이다. 일반적 등가형태에 놓인 물건(그리고 그 소유지)은 다른 무엇돠고 뎌환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사람들이 어떤 것, 예컨데 금을 숭고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금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일반적 등가형태에 놓인 것이기 때문이다. (...)...

 

   

 

                                                                                    - 가라타니 고진, 송태욱 옮김, <트랜스크리틱>, 한길사, 2005, pp. 27~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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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트와 마르크스 넘어서기’라는 부제가 보여 주듯 이 책은 칸트와 마르크스라는 대단히 이질적인 두 철학자를 소통시키려는 시도다. 칸트로부터 마르크스를 읽어내고 마르크스를 통해 칸트를 읽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가라타니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그가 마르크스에서 발견한 것은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투철한 통찰이고, 그 통찰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쉽게 극복될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에 대한 직면이다. 그는 경제학자들이 <자본론>을 단지 경제학 책으로만 본다는 사실에 불만을 제기한다. <자본론>에서의 '비판'이 자본주의 고전경제학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 자본의 욕동과 한계를 밝히는 것이고, 나아가 그 근저에서 교환 행위에 불가피하게 따라다니는 난점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론>은 자본주의로부터 손쉽게 벗어날 수 있는 출구를 제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렇게 손쉬운 출구가 있을 수 없는 이유를 밝힘으로써 오로지 자본주위에 대한 실천적 개입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을 뿐이라는게 그의 지적이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형이상학을 비판하기보다 인간 이성의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냄으로써 실천가능성을 시도하려고 한 것도 이러한 맥락인데, 이것이 바로 가라타니 고진이 마르크스와 칸트를 결부시킨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급격하게 부정하면 휠씬 지독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20세기에 공산주의가 초래한 비참한 귀결을 잊어서도 안되고, 또 그 오류를 우연적인 것으로 간주해서도 안된다고 보았다. 여기서 가라타니가 한 것은 마르크스를 칸트적 비판에서 다시 생각하는 일이었다.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공산주의란 우리가 성취해야할 어떤 상태가 아니며, 현실이 형성해야할 어떤 이상도 아니라고 본다. 현상태를 지양해나가는 현실의 운동을 우리는 공산주의라고 부른다. 이 운동의 제반 조건은 지금 실제로 존재하는 전제로부터 생겨난다고 했다. 여기서의 공산주의는 가라타니가 말하는 '어소이에셔니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특히 가라타니가 집중하는 것은 두 철학자의 ‘비판정신’이다.  가라타니 자신은  "물론 ‘비판’은 상대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음미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에서 자본의 한계를, 칸트의 형이상학 비판에서 인간 이성의 한계를 짚는다. 제1부는 칸트 다시 읽기, 제2부는 마르크스 다시 읽기다.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가라타니의 관심은 마르크스 쪽에 좀 더 기울어진다. 가라타니는 “마르크스주의적 정당과 국가가 붕괴한 1989년 이후 칸트에 대해 사고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철학의 한 정점에 선 이 철학자에 대해 10년에 걸쳐 ‘칸트론’을 쓸 만큼 가라타니는 집요하게 칸트를 연구한다.

  가라타니는 칸트가 ‘공공 개념의 전복’을 시도했다고 해석함으로써, 칸트에게서 사회주의적 요소를 발견한다. 칸트는 국가 입장에 선 것을 ‘사적()’인 것으로, 개인이 모든 국가 규제에서 벗어나서 생각하는 것을 ‘공적()’인 것으로 파악한다는 게 가라타니 칸트론의 핵심이다. 이것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경제와 국가에 대한 비판과 맞닿는다. 그럼에도 ‘자본론’이 자본주의에 대한 출구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가라타니는 분명히 밝힌다. 오히려 그 출구가 찾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저자는 시스템에 대한 반성을 끌어낸다. 가라타니가 제시한 것은 그의 말대로 이론적인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계기로 전지구적 경제위기에 직면한 현상황에서 새로운 구조의 모색이나 회귀가 아니라 실천적인 측면에서 '바닥으로부터의 논의- 자본주의가 은폐하고 있는 것들, 내성이 갖고 있는 공범성에 대한 '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지성의 한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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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필을 선언했던 미네르바가 떴다고 호들갑들이다. 진짜 미네르바냐, 가짜 미네르바냐...등등...

<매트릭스>를 만든 오우삼 감독이 새삼 존경스러울 뿐이다. 


<트랜스크리틱>에 대한 슬라보예 지젝의 비평이 올라와 있는 페이지를 링크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