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율곡, 사람의 길을 말하다

나뭇잎숨결 2009. 1. 3. 05:14

 

                     

 

 2008년도 여행코스 중에 안동과 강릉을 다녀온 것은 단지 여행하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이황선생과 이이선생의 혼을 느끼며, 4단칠청론을 정리하기 위해서이다. 아직도 대학에서 한문학이나 한국사상의 영역에서 두 선생의 사상을 수호하는  제자군들이  창창히 학문의 맥을 잇고 있다. 학문의 유장함이 마치 쉬임없이 흐르는 강과 같다. 왜 그렇게 유장할까 생각해 보았다. 두 선생이 전하는 도가 진리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성리학에서는 인간의 마음이 구체적 감정으로 발현하기 이전의 순수무악한 상태를 性이라고 하며, 발현된 이후의 감정을 情이라 한다. 이때 性이 발현되는 과정에서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 모든 감정을 통칭하여 七情이라 하며, 칠정 중에서 순수무악한 감정만을 일컬어 四端이라고 한다. 사단은 측은지심(惻隱之心)·수오지심(羞惡之心)·사양지심(辭讓之心)·시비지심(是非之心)의 네 가지 마음(감정)으로서 각각 인(仁)·의(義)·예(禮)·지(智)의 착한 본성 德에서 나오는 것이며, 칠정은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이다. 칠정은 子思가 <중용>에서 제시한 개념이며, 사단은 맹자가가 제시한 개념이다. 맹자는 이 선한 감정이 본래의 순수무악한 性을 퇴찾는 단초가 되기 때문에 이를 '네 가지의 실마리', 즉 四端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성리학적 심성론을 따르다 보면 情은 性에서 발현된 것이므로 항상 선해야 하는데, 그럼에도 情 중에 악한 것은 어떻게 발현하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 되었고, 이것이 학파간의 사단칠정론의 논쟁을 촉발시켰다. 

 

   이황과 기대승의 논쟁, 이이와 이황의 논쟁, 그들의 논쟁은  끝났는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논쟁의 주제는 여전히 같은데 그 표현방식만 달리 했을 뿐,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하겠다. 불교가 옳으냐, 기독교가 옳으냐, 혹은 내가 바라본  도가 옳으냐, 네가 바라본  도가 옳으냐. 이것이야말로 네버엔딩 스토리가 아닐까 싶다. 이황 선생이 통찰한 대로 이(4단)가 기(칠정)을 끌어가야 한다고 주장한 이기이원론이나, 이이 선생이 통찰한대로 이(4단 )속에 이미 기(칠정)이 내재해 있으므로 수신제가치국평천화 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기일원론의 통찰은 다른 길이 결코 아니다. 같은 인간의 길일 뿐이다.  그러니 두 선생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부처의 자비와 예수의 사랑이 다른 말인가?  같은 말을 하면서도 그들 학파는 싸워야 했다. 그들 각자가 본 바의 길을 가면 되었을 것을, 그들은 자신들이 본 바가 지구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진리의 자기당위론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조선후기 임란과 병란을 초래하면서 4단칠정론을 벌인 그들의 현실인식이나,  이 시대에 우리가 디딘 이 땅의 문제는 같은 궤를 돌고 있다.  하늘을 이고 있는 인간의 길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땅의 문제만 달라졌다. 땅의 문제는 논란과 비판의 문제이므로 끊임없이 수정되어야 하는 문제이나 하늘의 도는 보편의 진리이기에 어느 시대에나 통용되는 만고불변의 길에 속한다. <성학집요>나 <성학집도>에서 같은 하늘의 도가 있다. 두 선생의 통찰에서 예수와 부처를 길을 만난다.  한 점 한 획도 그른 말이 없다...그러함에도 그들은 논쟁하고 또 논쟁했다. 왜? 하늘의 도를 그들 소유로 생각했기에 소모전을 벌려야 했다. 물질의 소유만 소유가 아니다. 진리의 소유도 소유다.  각자 바라 본 바의 길을 가는 것이 진리의 소유에서 자유로워지는 길이다. 지상에는 방 한 칸 만들기가 어려워도 하늘에는 머무를 방이 많다. 하늘이라는 진리는 같지만 그 진리를 전하는 방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부처를 숭배하지만 부처를 신앙하지 못하는 방에 들어 섰다. 내게 맞는 방이다. 내가 들어간 방에서 내가 본 바의 길을 닦으면 된다. 하늘의 도(진리자체)는 진위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삶 안에서 현실과 어떻게 통합해 내는가의 문제만이 문제일 따름이다. 예컨데, 실직한 가장의 남편이 있다고 치자, 열일 제쳐놓고 성당이나 법당에서 기도만 하고 있다고 치자, 그 길을 과연 부처나 예수를 옳다고 하겠는가?  예수나 부처는 추종세력을 원치 않는다. 나를 밟고 가, 식탁의 빵을 만들기 위해 땀흘려 일하라고 하지 않겠는가? 빵을 이미 준비한 사람은 빵이 없는 이의 식탁에 빵을 나누라고 하지 않겠는가? 하늘의 길은 간단하고, 쉽고, 자명하다.  이 땅은 아직 '타볼산'이 아니다. 내가 믿는 그분과 함께,  '타볼산'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산을 오르되 산 정상에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 산 아래에 있는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타볼산의 없는 문제를 만들지 않음이 내가 가야할 길이다. 이이는 가족의 빵을 만들기 위해 대장장이가 된 적도 있었고, 신분이 다른 서얼과도 늘 대화했다. 성리학이라는 카테고리에 안주하지 않았다. 강릉과 안동을 여행하면서 이황 선생의 <성학십도>와 이이 선생의 <성학집요>를 읽고, 배운 소회다.  

 

 

 

 

 

 성학집요(聖學輯要) 서(序) / 이이

 

 

신은 살피옵건대, 도(道)는 오묘해서 형상이 없기 때문에 글(文)로써 도를 표현한 것이옵니다.

사서(四書)와 육경(六經)1)에 이미 밝고 또 구비되었으니, 글로써 도를 구하면 이치가 다 나나탈

것이옵니다. 다만 전서(全書)가 호번(浩繁)하여서 요령을 얻기가 어려우니,

선현(先賢)이 「대학」을 표장(表章)하여 규모를 세웠사옵니다.

성현의 천만 가지 교훈이 모두 여기에 벗어나지 않사오니, 이것이 요령을 얻게 하는 방법이옵니다.

 

서산 진씨(西山眞氏)2)가 이 책을 미루어 넓혀서 연의(衍義)를 만들어,

널리 경전(經傳)을 인용하고 겸하여 사적(史籍)을 인용하여,

학문을 하는 근본과 다스리는 차례가 찬연(粲然)히 조리가 있아온데 임금의 몸에 중점을 두었으니,

참으로 제왕의 도에 들어가는 지침이옵니다. 다만 권수가 너무 많고 문장이 한만(汗漫)하여 일을

기록한 글 같고 실학(實學)3)의 체계가 아니니, 참으로 아름답기는 하나 다 착하지는 못하옵니다.

배움은 마땅히 넓게 하고 첩경으로 요약해서는 아니 되옵니다.

다만 배우는 이가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마음을 굳게 세우지 아니하고서,

먼저 넓히는데 일삼으면 심려(心慮)가 전일하지 못하고, 버리고 취하는 것이 정밀하지 못해서

혹시 지리(支離)하여 진실을 잃을 염려가 있으니, 반드시 먼저 요긴한 길을 찾고 확실하게

문정(門庭)을 열어 놓은 뒤에야 널리 배우기를 한이 없이 할 수 있고, 유(類)를 따라 향상될

것이옵니다.항차 임금의 한 몸은 만 가지 일이 모이기 때문에 일을 처리하실 때는 많고

글을 읽을 때는 적사오니, 만약에 그 강령을 들며 그 종지(宗旨)를 정하지 않고

오직 넓히는 데로만 힘을 쓰면, 혹 기억하고 외는 습관에 거리끼게 되고,

혹은 사장(詞章)의 화려한 것에 빠져서, 궁리(窮理)4) · 정심(正心) · 수기(修己) · 치인(治人)의

도에는 참으로 얻는 것이 없을 것이옵니다.

 

신은 못난 선비로서 좋은 때를 만나 전하를 뵈옵건대 총명하고 지혜로움이 뛰어났으니,

진실로 학문의 공으로써 함양성취(涵養成就)하여 그 기량(器量)을 채우신다면 동방에서

요(堯) · 순(舜)의 다스림을 볼 수 있을 것이오니,

천 년에 한 번밖에 없는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되옵니다.

돌아보건대, 신은 경솔하고 천박하여 재기(才器)가 이미 얕으며,

거칠고 잡되어 학술이 또 보잘 것 없기 때문에 규곽(葵藿)5)의 정성은 비록 간절하오나

충성을 다할 길이 없사옵니다.

가만히 생각하옵건대, 「대학」은 본래 덕에 들어가는 입문인데, 진씨(眞氏)의 연의(衍義)는

오히려 간결하지 못하니, 진실로 「대학」의 뜻을 모방하여 차례를 따라 나누어서,

성현(聖賢)의 말씀을 정선(精選)하여 거기를 메우고 절목(節目)을 자세하게 하여,

말은 간략하되 이치가 다하게 되면 곧 요령의 방도가 여기에 있사옵니다.

이것을 우리 임금에게 올리면 근폭(芹曝)6)의 드림이

비록 옆사람의 웃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나 형촉(螢燭)의 빛은 아마 임금을 밝히는데

도움이 있을 것이옵니다.이에 다른 일을 폐기하고 오로지 요령을 간추리는 것을 일삼아

사서(四書) · 육경(六經)과 선유(先儒)의 설과 역대의 역사에까지 깊이 탐색하고 널리 찾아서,

그 정수만을 채집하여 모으고, 차례를 나누어서 번거로운 것을 줄여 요약하며,

깊이 연구하고 거듭 바로잡아 두 해를 걸려 편성하였사온데 모두 다섯 편이옵니다.

 

1편의 통설은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을 합하여 말한 것으로서,

곧 「대학」의 이른바 덕을 밝히는 것과,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과, 지극히 착한 데 그치는[止於至善] 것이요,

 

2편의 수기(修己)는 곧 「대학」의 이른 바 명덕(明德)을 밝히는 것인데, 모두 열세 조목이옵니다.

1장은 총론(摠論)이요, 2장은 입지(立志)요, 3장은 수렴(收斂)이라 한 것은 방향을 정해서 흩어진

마음을 구하여 「대학」의 기본을 세운 것이오며, 4장의 궁리(窮理)는 곧

「대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7)이며, 5장은 성실(誠實)이요, 6장은 기질을 교정하는 것

[矯氣質]8)이요, 7장은 양기(養氣)9)요, 8장의 정심(正心)이라는 것은 「대학」의 성의

정심(誠意正心)이요. 9장의 검신(檢身)이라는 곳은 곧 「대학」의 수신(修身)이요,

10장은 덕량(德量)을 넓히는 것이요. 11장은 보덕(補德)이요, 12장의 돈독(敦篤)이라는 것은

거듭 성의(誠意) · 정심(正心) · 수신(修身)의 남은 뜻을 논한 것이요,

13장은 그 공효를 논한 것으로서 수기(修己)가 지선(至善)에 그친 것이옵니다.

 

3편은 정가(正家)요,

 

4편의 위정(爲政)이라는 것은 「대학」의 이른바 신민(新民)인데,

정가라는 것은 제가(齊家)를 말함이요,

위정이라는 것은 치국 평천하(治國平天下)를 이른 것이옵니다.

정가(正家)의 조목이 여덟이니, 1장은 총론이요, 2장은 효경(孝敬)이요,3장은 형내(刑內)요,

4장은 교자(敎子)요, 5장의 친친(親親)이라는 것은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처자(妻子)에게 모범이 되며,

형제 간에 우애하는 도리이오며, 6장은 근엄(謹嚴)이요,

7장의 절검(節儉)이라는 것은 미진(未盡)한 뜻을

미루어 연역(演繹)함이요, 8장은 공효(功效)를 말하였으니,

곧 제가(齊家)가 지선(至善)에 그친 것이옵니다.

위정(爲政)의 조목이 열[十]이니, 1장은 총론이요,

2장은 용현(用賢)이요, 3장의 취선(取善)이라는 것은 곧

「대학」의 이른바 어진 사람이라야 능히 사랑하고 미워한다는 뜻이요,

4장은 시무(時務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요, 5장은 선왕(先王)을 본받음이요,

6장의 천계(天戒)를 삼가라는 것은 곧 「대학」에서 인용한, “마땅히 은(殷)나라에 볼지어다.

준명(峻命:천명을 말함)이 쉽지 않다.”는 뜻이요, 7장의 기강(紀綱)을 세운다는 것은

곧 「대학」의 이른바, “나라를 가진 자는 삼가야 할 것이니 편벽하면 천하의 살육이 된다.”는

 뜻이요, 8장은 안민(安民)이요, 9장의 명교(明敎)라는 것은 곧 「대학」의 이른바,

“군자 혈구(矩)10)의 도가 있으니 백성이 효제(孝悌)에 흥기하며 배반하지 않는다.”는 뜻이요,

10장은 공효(功效)로써 매듭을 지어,

치국 평천하(治國平天下)가 지극히 착함[至善]에 그친 것이옵니다.

 

5편의 성현 도통(道統)이라는 것은 바로 「대학」의 실적(失跡)입니다.

모두 합하여 성학집요(聖學輯要)라 이름하니,

마지막으로 도를 전하는 책임을 성상에게 바른 것이라 해도

너무 지나친 말은 아니옵니다. 전하께서는 5백의 기(期)를 당하시고 군사(君師)의 지위에 거하시어,

착한 것을 좋아하는 지혜와 욕심이 적은 인(仁)과 일을 결단하는 용맹이 있으시니,

진실로 시종 학문을 힘쓰시어 끊이지 않고 계속한다면 무거운 책임을 감내하여 원대한 사업을

이루는 것을 어찌 못하겠사옵니까.다만 어리석은 신(臣)이 견문이 넓지 못하고, 지식과 생각하는

것이 투철하지 못하와, 차례를 갖추는 데 순서를 잃은 것이 많사오나, 인용한 성현의 말씀은 모두

천지에 세워도 어긋나지 않고, 귀신에게 질정하여도 의심되는 것이 없으며, 뒷성인이 보더라도

의혹할 것이 없는 것이오니, 어리석은 신이 조리(條理)를 잘못 구분하였다고 해서 성인의 교훈을

경솔히 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옵니다. 혹 어리석은 신이 한 가지 터득한 설(說)을 그 사이에 섞은

것이 있사오나, 모두 삼가 성현의 교훈을 상고하여 거기 의거해서 글을 이룬 것이오며,

감히 방자하게 맹목적인 말을 발하여 종지(宗旨)를 잃지 않았사옵니다.

신의 정력을 여기에 다하였사오니, 만일 열람하시고 항상 상 위[案]에 두신다면,

전하께서는 천덕(天德)과 왕도(王道)의 학문에 아마 다소 도움이 없지 아니 할 것이옵니다.

 

이 책은 비록 임금의 학문을 주로 하였사오나 실상은 상하에 통하오니,

배우는 이로서 널리 보고 범람하여

귀결(歸結)이 없는 자는 마땅히 여기에 공(功)을 거두어 반약(反約)의 방법을 얻고,

배우지 못하고 고루하고, 견문이 좁은 자는 마땅히 여기에 힘을 들이어 향학(向學)의 방향을

정하여야 할 것이오니, 배움에는 빠르고 늦음이 있으나 모두 유익할 것이옵니다.

 

이 책은 사서와 육경의 계단이며 사다리[階梯]이오니, 만약 부지런한 것을 싫어하고 간편한 것을

편안히 여겨서, 학문의 공(功)이 여기에서 그친다고 하면, 이것은 그 문정(門庭)만 구하고

그 당실(堂室)은 찾지 못한 것이오니, 신이 책을 엮은 본의가 아니옵니다.

만력(萬曆) 3년 을해(乙亥)11) 가을 7월 16일에 통정대부홍문관 부제학 지제교 겸 경연 참찬관

춘추관 수찬관(通政大夫弘文館副提學知製敎兼經筵參贊春秋館修撰官) 신(臣)

이이(李珥)는 엎드려 절하옵고 삼가 서(序)를 쓰옵니다.

 

 

 

 

 

 

 

《성학집요(聖學輯要)》는 율곡 선생이 40세 때 홍문관 부제학으로 있던 당시 완성하여, 선조 임금에게 올린 책이다.

그 내용은 유학의 기본 입문서인 대학(大學)의 가르침을 여러 성현의 말을 인용하여 고증하고, 성리학적 입장에서 해설한 것으로, 유학의 가르침을 통해 자기완성을 이루고 나아가 가정, 사회, 국가를 편안하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간결하게 엮었다.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사단칠정논쟁


  이 논쟁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성정과 그 감정이 겉으로 드러난 결과인 행동을 가치문제와 관련하여 각자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토론한 것이다. 4단은 맹자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맹자는 4단을 바탕으로 삼아 인간은 날 때부터 착한 본성을 지녔다고 주장하였다. 4단은 남의 어려움을 보았을 때 마음속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 측은지심,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악을 미워하는 수오지심, 남에게 양보하는 사야지심,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시비지심이다.

 

  7정은 4단과는 차원이 다른 감정입니다. 기뻐하거나 성내거나 슬퍼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욕심내는 일곱 가지 감정은 사람들이 배우지 않고서도 저절로 그렇게 할 줄 아는 것이라고 하였다. 사실 4단이나 7정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다만 4단이 마음속에 있는 순수한 도덕적 감정이라서 그것이 밖으로 드러날 때 지나치거나 모자라면 그 결과가 악이 될 수도 있는 일반적이 감정인 셈이다. 이황과 기대승의 논쟁은 바로 4단과 7정이 무엇을 근거로 나오며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따진 것이다.

 

  4단과 7정에 대한 이황과 기대승의 논쟁은 엉뚱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이황은 정지운이 가져온 「천명도설」을 보고는 4닥과 7정을 理와 氣로 연결지어 설명한 부분을 고쳐주었다. 본래 정지운의 도설에는 ‘4단은 理에서 생겨나고 7정은 氣에서 생겨난다’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황은 이렇게 표현하면 4단과 7정의 구분이나 理와 氣의 주체적 역할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보고, ‘4단은 理가 드러난 것이고 7정은 氣가 드러난 것’이라고 고쳐주었다. 하지만 이황이 고쳐 준 부분이 많은 학자들 사이에 논란을 일으켰고, 6년이 지난 뒤 기대승이 이황에게 먼저 문제제기를 하면서 논쟁은 시작되었다.

 

  기대승은 크게 세 가지 입장에서 이황의 견해에 반대의견을 펼쳤다.

 

  첫째는 세상 모든 것은 항상 理와 氣가 함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의 움직임인 4단과 7정도 하나는 理에서 나오고 하나는 氣에서 나온다는 식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황처럼 4단은 理가 드러난 것이고 7정은 氣가 드러난 것이라고 한다면 4단에는 氣가 없게 되고 7정에는 理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7정만이 아니라 4단도 감정이기 때문에 7정 가운데 선한 부분만을 뽑아내면 4단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4단과 7정의 관계는 4단이 7정 가운데 포함될 뿐이라는 것이다.

 

  셋째는 성리학의 理氣개념에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氣뿐이고 理는 불변의 원리이므로, 4단이든 7정이든 모든 검정의 움직임은 氣의 움직임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을 뿐 4단을 가리켜 움직일 수 없는 理가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황은 기대승의 반박을 상당부분 받아들였으면서도 理와 氣를 가지고 4단과 7정을 나누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황은 4단의 중심이 理에 있기 때문에 理가 먼저 움직이면 氣가 理의 움직임을 따라가게 되는 것이며, 7정의 중심은 氣에 있기 때문에 氣가 먼저 움직이면 理가 氣의 움직임 위에 실려 가게 된다는 깃이다.

 

  기대승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순수한 본성 즉, 성리학에서 ‘성즉리’, ‘본성이 곧 이치다’라고 할 때의 理에 해당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현실의 인간 본성은 氣라는 그릇에 담겨서 나타나며 이것을 순수한 본성과 구별하여 ‘기질지성’이라고 부른다. 물론 4단과 7정은 모두 기질지성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기대승의 생각은 같은 감정이기 때문에 4단을 7정 속에 포함시키려고 하였던 것처럼 타고난 순수한 본성도 현실적인 인간의 본성인 기질지성 속에 포함시켜 이해하려 한 것이다. 또, 4단과 7정 모두에 理와 氣가 함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4단은 理가 먼저 움직인 것이라 보는 이황의 견해에 대해 움직이는 것은 오직 氣뿐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논쟁을 통해 기대승과 이황은 4단과 7정이 모두 정이며 두 가지 모두 理와 氣를 함께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는 의견을 같이하였다. 하지만 끝내 기대승은 4단과 7정을 나누어 보지 말자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고, 이황도 나누어 보자는 의견을 버리지 않았다. 아울러 아황은 4단의 경우 理가 움직인 것이라는 생각을 놓지 않았고, 기대승 또한 理가 중심이 된다는 생각에 동의하면서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氣뿐이라는 생각을 견지하였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두 사람 모두 각자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가장 중요한 생각을 조금도 바꾸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8년동안 논쟁의 결과는 그들 각자가 지닌  생각을 더욱 공고히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