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프란츠 카프카의 아포리즘

나뭇잎숨결 2008. 12. 28. 08:02

 

 

 

1. 진실된 길은 공중 높이 팽팽하게 당겨진 줄 위가 아니라, 땅바닥 바로 위에 낮게 쳐진 줄 위로 나 있다. 그것은 진정 딛고 가게 되어 있기보다는 오히려 걸려 넘어지게 되어 있는 듯하다.

 

2. 모든 인간적인 과오는 조급함, 방법론적인 것의 때 이른 중단, 가상적인 일에 가상적인 울타리를 치는 것이다.

 

3. 다른 모든 죄들이 파생되어 나오는, 두 가지 주된 인간적인 죄가 있다. 그것은 조급함과 태만함이다. 조급함 때문에 그들은 낙원에서 추방되었고, 태만함 때문에 돌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주된 죄가 단지 한 가지라 한다면, 그것은 아마 조급함일 것이다. 조급함 때문에 그들은 추방되었고, 조급함 때문에 돌아가지 못한다.

 

4. 망자(亡者)들의 많은 혼백은 오로지 죽음의 강의 물결을 핥는 데 여념이 없다. 왜냐하면 그 강은 우리로부터 나와서 아직도 우리 바다의 짠맛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강물은 역겨움으로 솟구쳐 올라, 거꾸로 흘러서 망자들을 삶으로 되돌려 보낸다. 그러나 그들은 행복해서,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몹시 노한 강물을 달랜다.

 

5. 어느 일정한 점(點)에서 볼 때 더 이상 되돌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 점은 다만 도달할 수 있을 뿐이다.

 

6. 인간의 발전에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은 지속적이다. 그래서 예전의 모든 것을 무가치한 것으로 표명하는 혁명적인 정신 운동들은 정당하다. 왜냐하면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7. 악(惡)의 가장 효과적인 유혹 수단의 하나는 투쟁에 대한 권유이다.

 

8. 그것은 침대에서 끝나는, 여자들과의 싸움과 같다.

 

9. A는 매우 교만하다. 그는 선(善)에 있어서 훨씬 앞장서 있다고 믿고 있는데, 왜냐하면 분명 늘 유혹적인 대상인 그가,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방향에서 오는, 점점 더 많아지는 유혹에 자신이 내맡겨져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10. 그러나 제대로 설명을 하자면, 굉장한 악마 하나가 그의 안에 자리잡고 있고, 그보다 작은 무수한 악마들이 그 굉장한 자를 섬기러 오고 있다는 것이다.

 

 11/12. 예컨대 사과 하나를 두고 가질 수 있는 견해들의 차이점을 들자면 이렇다. 식탁 위에 사과를 좀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몸을 쭉 빼야 하는 어린 소년의 견해와, 그 사과를 집어서 함께 식사하는 이들에게 기꺼이 건네주는 가장의 견해이다.

 

13. 인식이 시작되는 첫 표지는 죽고 싶다는 소망이다. 현세의 삶은 견딜 수 없게 보이고, 또 다른 삶은 도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죽고 싶다는 것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증오스러운 누추한 감방을 나와, 비로소 증오하기를 배우게 될, 또 하나의 새로운 감방으로 보내지기를 청한다. 거기엔 신께서 우연히 복도를 지나다 수인(囚人)이 옮겨지는 것을 보고는 "다시는 이 사람을 감금하지 말라. 그는 나에게로 오는 사람이다."라고 말할 거라는 믿음의 잔재가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14. 네가 평지 위를 걸어간다고 치고, 가고자 하는 훌륭한 의지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뒷걸음만 친다면, 그것은 절망적인 일일 것이다. 그러나 너는 가파른 비탈, 그러니까 네 자신의 발바닥부터 보일 만큼 그렇게 가파른 비탈을 기어 오르고 있으므로, 뒷걸음질은 오로지 지형 때문에 생겼을 수도 있으니 만큼 절망할 필요가 없다.

 


 

15. 깨끗이 쓸자마자, 다시 마른 잎으로 덮여버리는 가을날의 길처럼.

 

16. 새장 하나가 한 마리 새를 찾아 나선다.

17. 이러한 곳에 나는 아직 한번도 와본 적이 없다. 호흡이 달라지고, 태양 옆에는 별 하나가 태양보다 더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18. 만약 바벨탑을 오르지 않고도 건설할 수만 있었더라면, 그것은 허락되었을 것이다.

 

19. 네 자신으로 하여금 네가 악 앞에서 비밀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믿게 하지 말라.

 

20. 표범들이 사원 안으로 침범하여 항아리 속의 성수를 다 마셔버린다. 그것이 자꾸만 되풀이되자, 사람들은 마침내 그것을 미리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의식(儀式)의 일부가 되었다.

 

21. 손에 돌을 쥐듯이 꽉. 그러나 손에 돌을 꽉 쥐는 것은, 단지 돌을 더 멀리 던지기 위해서일 뿐이다. 그러나 그 멀리까지도 길은 나 있다.

 

22. 너는 숙제이다. 사방 어디에도 학생은 없고.

 

23. 진정한 적수에게서는 무한한 용기가 너에게로 흘러든다.

 

24. 네가 서 있는 땅은 두 발이 덮고 있는 것보다 더 클 수 없다는 행복을 이해하라.

 

25. 세상으로 도피하는 것 이외에, 어찌 세상에 대해 기뻐할 수 있겠는가?

 

26. 숨을 곳은 무수히 많고, 구원은 오직 하나뿐, 그러나 구원의 가능성 또한 숨을 곳만큼이나 많다.

 

27. 우리는 여전히 부정적인 것을 행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긍정적인 것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28. 악은 한번 받아들여지고 나면, 더 이상 자신을 믿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29. 네가 마음속에 악을 받아들일 때 품는 속셈은, 너의 것이 아니라 악의 것이다.

 

30. 선은 어떤 의미에서는 절망적이다.

 

 

악은 인간을 유혹 할 수는 있지만 인간이 될 수는 없다

 

<카프카 아포리즘,  악은 인간을 유혹할 수는 있지만 인간이 될 수는 없다>
- 죄, 고통, 희망 그리고 진실된 길에 관한 성찰
이주동 옮김. 솔출판사. 1998.

 

 

 

 

91. 말의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 : 활발하게 파괴되어야 하는 것은, 틀림없이 앞서 아주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스러지는 것은 단지 부스러질 뿐, 파괴될 수 없다.

 

92. 최초의 우상 숭배는 분명히 사물들에 대한 두려움이었겠으나, 그것과 연관지어 보면 사물들의 필연성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또 그것과 연관지어 보면 사물들에 대해 갖고 있는 책임감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이 책임감은 매우 엄청나보여서, 사람들은 그것을 감히 어떤 유일한 인간 외적 존재에게 부과시킬 생각은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한 존재의 중재를 통해서도 인간의 책임은 아직도 충분히 경감되지 못했으며, 오직 한 존재와의 교류는 책임감으로 너무나도 얼룩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개개의 사물에게 그 자체에 대한 책임을 부여했고,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사물들에게 인간에 대한 적절한 책임까지도 부여했던 것이다.

 

93. 마지막으로 심리학을!

 

94. 인생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두가지 과제 : 너의 범위를 점점 더 좁힐 것과 너의 영역 밖 어디엔가 네가 숨어 있지 않은지 계속해서 살펴볼 것.

 

95. 악은 때때로 연장과도 같이 손안에 들어 있어서, 그것을 알든 모르든 간에, 사람들이 그럴 의사만 있다면, 이의 없이 옆으로 내려놓을 수 있다.

 

96. 이 삶의 기쁨들은 삶의 것이 아니라, 보다 고귀한 삶으로서의 상승에 대한 우리들의 두려움이다. 또한 이 삶의 고통 역시 삶의 것이 아니라, 저 두려움 때문에 생기는 우리들의 자학이다.

 

97. 오로지 여기서만 괴로움이 괴로움이다. 여기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는 이 괴로움 때문에 마땅히 높여져야 한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괴로움이라고 불리는 것은 다른 세계에서도 변함없이 오로지 그 반대의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축복이라는 뜻이다.

 

98. 우주의 광대 무변한 넓이와 충만에 관한 표상은 고단히 창조와 자유로운 자성(自省)의 극단적인 혼합의 결과이다.

 

99. 우리가 현재 처해 있는 죄지은 상태에 대한 엄정한 확신보다 훨씬 더 많은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은, 그것이 비록 가장 허약한 확신이긴 하지만 우리의 현세가 지니고 있었던 예전의 영원한 정당성에 대한 확신이다. 자신의 순수성으로 전자의 확신을 완전히 포괄하고 있는 이 후자의 확신을 견디어내는 힘만이 신앙의 척도이다.

 

100. 악마적인 것에 대한 어떤 지식은 있을 수 있으나, 그것에 대한 믿음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현존하는 것 이상의 악마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101. 죄는 언제나 공공연하게 나타나며 곧바로 감각으로 파악될 수 있다. 그것은 그 뿌리에까지 이어져 있어서 잡아 뽑아서는 안된다.

 

102. 우리 주위의 모든 괴로움에 대해서 우리 역시 아파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 모두가 한 몸은 아니지만, 성장은 한가지여서,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런 형태건 저런 형태건 모든 고통을 거치게 한다. 어린아이가 모든 인생의 단계를 거쳐 노인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발전하듯이(그리고 어느 단계든 사실 앞단계에서 보면, 요구에서든 공포에서든 간에, 도달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도(우리 자신 못지않게 인류와도 깊이 결합되어) 이 세계의 모든 괴로움을 거치면서 발전한다. 이것과 관련해 볼 때 정의(正義)를 위한 자리도 없지만, 괴로움에 대한 공포나 마땅히 받아야 할 것으로서의 괴로움의 해석을 위한 자리 또한 없다.

 

103. 너는 세상의 고통을 보류할 수 있다. 그것은 너의 의사에 달려 있으며 너의 본성에 따른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보류가 어쩌면 네가 피할 수 있을 단 하나의 고통일 것이다.

 

 

105. 이 세계가 유혹하는 방법은 바로, 이 세계는 단지 하나의 변화 과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증한다는 표시이다. 과연 옳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만이 이 세상은 우리를 유혹할 수 있고 그것은 진실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고약한 것은, 우리가 유혹당하고 난 후에 우리는 그 보증을 잊어버렸고, 그래서 사실은 선이 우리를 악 속으로, 여인의 눈길이 우리를 그녀의 침대 속으로 유인했다는 점이다.

 

106. 겸손은 어느 누구에게나, 그가 외롭고 절망에 빠진 자라 할지라도, 동포와 가장 강한 관계를 갖게 한다. 그것도 즉시. 물론 그 겸손이 완전하고 지속적일 때뿐이지만, 겸손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진실한 기도의 말, 즉 경배이며 동시에 가장 굳건한 결속이기 때문이다. 동포와의 관계는 기도의 관계이며, 자신과의 관계는 노력의 관계이다. 또한 기도에서 노력을 위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107. 모두 A에게 매우 친절한데,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좋은 당구대를 훌륭한 선수들에게조차 내어주지 않고 조심스럽게 보관하고자 하는 것과 비슷하다. 마침내 위대한 선수가 나타나서 그 당구대를 자세히 살펴보고, 전에 난 흠집에 참지 못해하지만, 그 자신이 직접 치기 시작하면, 사정없이 치면서 분노를 삭인다.

 

108. "그런 후에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자기 일로 되돌아갔다." 이것은 불분명한 수많은 옛날이야기들 속에 나오는 말로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다. 비록 그 말이 어떠한 이야기에도 나오지 않는데도 말이다.

 

109. "우리에게 믿음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들이 살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믿음의 가치는 결코 고갈될 수 없다." "여기에 일말의 믿음의 가치가 존재하는 걸까? 사람들이 살지 않을 수야 없지 않은가." "바로 이 '할 수야 없지 않은가' 속에 믿음의 광적인 힘이 숨겨져 있다. 이러한 부인(否認)속에서 이 광적인 힘은 형태를 얻게 되는 것이다." 굳이 집 밖으로 나갈 필요는 없다. 네 책상에 머물러 귀를 기울여라. 귀기울일 것도 없이 그저 기다려다. 기다릴 것도 없이, 완전히 조용히 그리고 홀로 있으라. 세상이 자청해서 너에게 본색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세상은 달리 어쩔 수가 없다. 그것은 황홀함에 취해 네 앞에서 몸을 뒤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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