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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헤라클레이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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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평이 붙는 『백년 동안 의 고독』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모든 것이 결집되어 그 절정을 이룬 작품이다. 이 작품은 신화적 요소를 도입하여, 우르술란과 호세 아르까디오의 마꼰도라는 도시의 건설을 그리고 있다. 이 둘은 서로 사촌간으로 둘 사이의 근친 상간으로 인해 돼지꼬리가 달린 자식이 태어날 것 이라는 예언에 따라, 아무도 닿지 않는 곳에 새로운 도시를 세우기 위해 고향을 떠난다. 초기의 외부와의 접촉은, 멜키아데스를 중심으로 한 집시들의 방문이었고, 이들은 신기한 의부 문물을 마을 주민들에게 소개하게 된다. 이 신기한 의부 문물은 호세 아르까디오에게 외부 세계의 과학적인 지식을 받아들이도록 자극하는 기제가 된다.
마꼰도의 고립은 오래 지속되지 않고 시장의 등장, 내전, 철도의 건설, 외국인 바나나 공장의 건설 등의 사건을 통해 외부 세계와 접촉하게 된다. 그러나 파업에 참가한 공장 노동자들이 대량학살로 사망하고, 폭풍우와 가뭄이 농장을 파괴함에 따라 외국인 바나나 공장이 철수하고 다시 마꼰도는 고독에 휩싸이게 된다. 이것은 진보와 신식민지라는 중남미의 상황에 대한 반영으로 읽혀진다. 그러나 단순하게 마꼰도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에서보다 깊은 차원의 인간 비극을 나타낸다.
즉 이야기의 끝에서 부엔디아 가문의 마지막 자손이 멜키아데스가 남기고 간 원고를 해석하고, 이것이 자기 가족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과, 원고를 읽는 동안만 이 이야기가 지속되리라는 것을 발견하는 데, 이는 텍스트가 갖는 깊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읽는 행위는 그 자체로 반복할 수 없는 고독한 행위이며 죽음의 행위가 된다. 결말은 비극으로 끝나고 삶 자체는 반복될 수 없으며 한번 지나간 시간을 다시 시작할 수 없다는 것. 삶의 진정한 불안은 바로 반복할 수 없다는 그 사실에서 기인하고 이 공포를 견디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유머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작품에서 죽음은 항상 마술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 이해된다. 해학은 비극의 위무이자 은폐인 것이다. 또,『백년 동안의 고독』은 신화를 이야기 속에 도입하고 환상적인 전개를통해 사실주의의 지평을 넓혔다는 문학사적 의의와 콜롬비아 역사의 문학적 재현이라는 축면에서도 읽힐 수 있겠다.
『백년 동안 의 고독』(문학사상사, 1997) 1장과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20장을 읽어 본다.
몇 년이 지나 총살을 당하게 된 순간,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오래전 어느 오후에 아버지를 따라 얼음을 찾아 나섰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마콘도 마을에는, 유사 이전 공룡의 알처럼 거대하며 하얗고 매끈매끈한 돌이 깔린, 맑은 물이 흐르는 강가에 세운 스무 채 가량의 블록집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을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름을 붙이지 않은 곳이 많아서 어디를 알려주려면 손으로 일일이 가리켜야만 할 정도였다.
해마다 3월이면 집시들이 와서 마을 어귀에 천막을 세웠고, 피리를 불고 북을 치며 그들이 가져온 신기한 것들을 소란을 떨며 보여주었다. 처음에 그들은 자석을 가져왔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손이 야무진, 뚱뚱한 집시가 자기 이름을 멜키아데스라고 소개하고, 마케도니아의 연금술사들이 발명한 ‘세계의 여덟 번째 불가사의’를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었다. 그는 집집마자 찾아다니면서 자기가 가져온 쇳덩어리를 이리저리 내밀어서, 냄비와 튀김냄비와 부젓가락과 화로를 손도 대지 않고 잡아끌어 넘어뜨리고 못과 나사를 멋대로 굴리고, 벌써 오래 전에 잃어버려서 찾지 못하던 쇠붙이들도 그 신기한 쇳덩이로 찾아내어 모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모든 물건들에는 생명이 있답니다.” 그 집시는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생명의 영혼을 불러일으키면 되는 거죠.”
자연의 모든 섭리를 터득해서 그의 상상력이 기적과 마술까지 지배한다고 알려진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까지도 그 쇠붙이만 가지면 땅속에서 손쉽게 황금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정직한 사람으로 이름난 멜키아데스는 그에게 솔직히 말했다. “그 일만은 안 될 거야.” 그러나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그 집시의 말을 믿지 않았고, 당나귀 한 마리와 염소 한 쌍을 주고 그 쇠붙이 두 개와 바꾸었다. 그 가축에 의지해서 살림을 꾸려가던 그의 아내 우르슬라 이구아란조차 그를 말릴 도리가 없었다. “우린 곧 마루를 온통 덮고도 남을 만한 금 덩어리를 찾아낼 거야.” 남편이 말했다. 그는 몇 달 동안 자기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무척 애썼다. 그 쇠붙이로 마을을 샅샅이 뒤졌고, 심지어는 멜키아데스의 주문을 큰 소리로 읊으면서 그 쇠붙이로 강바닥까지 훑었다. 그러나 그가 마술 쇠붙이로 찾은 것이라곤 돌멩이로 가득 찬, 15세기에 쓰던 큰 투구뿐이었다. 녹이 잔뜩 슨 그 투구를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그의 조수 네 명이 뜯었더니, 그 속에서는 여자 머리카락이 든 구리 로켓(사진이나 머리카락 따위를 넣어 목걸이에 다는 여자 장신구)과 다 썩어 푸석푸석한 해골만 나왔다.
이 이후에도,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낙담하지 않고 자신의 재산과 집시들이 가져온 신기한 물건을 바꾸었고 그 물건들을 빌미로 신기원에 대한 연구들에 심취하곤 했다. 재산을 잃고 남편도 이상해져 간다고 생각하는 낙심한 우르슬라는 목 놓아 울곤 했다. 그래서, 집시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우르슬라는 온 동네 사람들에게 그들을 쫓아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집시들을 두려워하기는커녕, 그들이 가져온 온갖 신기한 물건들을 돈을 내고 구경하고는 했다. 얼마 전 괴혈병으로 문드러졌던 멜키아데스의 잇몸과 홀쭉한 뺨과 쪼글쪼글했던 입술을 기억하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이 집시가 보여주는 초인적인 마술의 증거에 겁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멜키아데스의 틀니가 어찌나 간단하고 신기하게 여겨졌던지 그는 그날 밤으로 얼마 전까지 심취했던 연금술 시험에 대한 흥미를 몽땅 잃고 말았다.
그는 또다시 방황했다. 그는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하루 종일 말없이 집 안을 거닐면서 시간을 보냈다. “참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는 많이 일어나고 있어.” 그는 우르슬라에게 말했다. “여기서 우리가 당나귀들처럼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바로 이 순간에, 강 건너편에는 온갖 신기한 물건들이 나돌고 있단 말이야.” 마콘도 마을이 처음 이곳에 설 때부터 그를 알고 지냈던 사람들은 멜키아데스가 그에게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주었는지 깨닫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농사일을 가르치고 아이 키우는 일이나 짐승 기르는 일에 도움이 될 만한 충고를 하고, 마을의 복지를 위해서 육체적인 노동도 가리지 않고, 누구의 일이나 잘 돕던 젊은 가장이었다. 처음 마을이 서던 때부터 그의 집이 가장 훌륭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그 집을 그대로 본떠서 집을 지었다. 그 집에는 조그맣고 밝은 거실과, 빛깔이 아름답고 밝은 꽃으로 가득 채워 테라스처럼 꾸민 식당과 침실 두 개와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밤나무가 서 있는 마당과 잘 가꾼 정원과 염소들과 돼지들과 닭들이 사이좋게 어울려 사는 우리가 있었다. 그 집에서뿐만 아니라 이 마을 어디에서도 기르는 것이 금지된 동물이라고는 싸움닭뿐이었다.
우르슬라가 하는 일도 남편의 일과 다를 바가 없었다. 몸집이 작고 무슨 일에도 눈 하나 깜짝 않는 적극적인 이 여자는 노래라고는 통 부르는 일이 없었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풀을 빳빳하게 먹인 속치마를 펄럭이며 집 안을 바삐 싸돌아다녔다. 그 덕분에 흙을 다져서 만든 마루와 진흙 담, 그들이 직접 만든 허술한 나무가구들은 항상 말끔했고, 옷을 간수하는 낡은 장롱은 은은한 박하 향을 풍겼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마을에서 가장 머리가 좋아서, 그의 계획에 따라 마을에 세워진 모든 집들은 별로 힘을 들이지 않고 집 옆의 강물에서 직접 물을 길어다 먹을 수 있었으며, 햇볕이 쨍쨍한 날이더라도 집집마다 그늘이 똑같이 들어서 서로 불평이 없었다. 그래서 3년 동안 마을 주민 300명이 알고 있는 모든 마을들 가운데 마콘도가 가장 질서 있고 열심히 일하는 곳이었다. 마을 사람들 중에는 서른을 넘은 사람이 없었고, 마을에서 죽은 사람도 아무도 없어서 모두 행복하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사회적인 지도력은 사라졌고, 자석에 대한 열병과 천문학적인 추리와 변이의 꿈과 새로운 세계의 신비를 찾으려는 욕망이 그를 사로잡았다. 깨끗하고 능동적인 사람이던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옷차림도 엉망이고 얼굴 손질도 안 하는 게으름뱅이가 되어서, 더부룩하게 자란 그의 수염을 다듬으려면 우르슬라가 부엌칼로 한참 씨름을 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가 무슨 요술에라도 걸려서 그 꼴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그 지역의 지리를 잘 몰랐다. 동쪽에는 넘어갈 수 없는 산맥이 있고, 산맥 저쪽에는 옛 도시가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에게 들은 것이었다. 젊었을 때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그의 친구들은, 아내와 아이들과 온갖 집안 물건들을 끌고 산맥을 넘어서 바다로 빠져나가는 길을 찾으려고 했지만, 2년 2개월 동안 헛고생만 한 데다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되어 그냥 이곳에 정착해서 마콘도 마을을 세운 것이다.
새로운 도시를 찾기 위한 몇 주간의 탐험이 부질없게 끝이 나서 귀향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가족들만 데리고서라도 다시 탐험을 떠나려 했고, “친구가 죽어서 땅에 묻힐 때까지는 그 어디도 고향이라고 할 수 없어.”라고 우르슬라를 설득하려고 했다. 하지만 우르슬라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서 죽은 사람이 없으니 이 곳을 떠난다면, 내가 당장 죽겠어요.” 그리고 덧붙였다: “미치광이처럼 발명입네 뭡네 하는 허송세월은 그만 하고 이젠 아이들 걱정이나 해요. 아이들 꼴을 좀 봐요. 꼭 당나귀 새끼들처럼 제멋대로예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아내의 말에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가 창밖을 보니 햇볕이 쨍쨍한 마당에서 맨발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그는 우르슬라의 마술에 홀린 듯, 처음으로 아이들의 존재를 인식한 듯 싶었다. 그러자 그의 마음 속에는 신비한 일이 일어났고, 그는 미개척지에 대한 망상과 방황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아이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호세 아르카디오는 열네 살이었다. 그는 얼굴이 넓적하고 머리숱이 많았으며, 성미는 꼭 아비를 닮았다. 그는 아버지처럼 힘도 세고 무럭무럭 잘 자랐지만 상상력은 부족했다. 마콘도에서 처음으로 탄생한 인간인 아우렐리아노는 3월에 여섯 살이 된다. 그 애는 말이 없고 수줍은 아이였다. 아우렐리아노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울고 있다가 눈을 뜬 채로 태어났다. 탯줄을 자르는 동안 그 애는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방 안에 있는 것들과 사람들을 신기한 듯 자세히 보았다. 그런 다음에 자기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는 흥미를 잃고, 억수같이 퍼붓는 비에 무너질 듯한 야자 잎으로 엮은 지붕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때의 눈길을 우르슬라가 다시 기억해 낸 것은 어느 날 스토브에서 끓는 수프를 식탁으로 옮기는 순간, 세 살 난 아우렐리아노가 부엌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아이는 문간에서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수프가 엎질러지겠어요.” 식탁 한가운데 꼼짝 않고 있던 냄비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살아 있기라도 한 듯, 식탁 가장자리로 미끄러져서 마룻바닥으로 떨어져 깨졌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라는 담배 농장 주인의 4대손인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아라공 상인의 4대손인 우르슬라가 결혼하기에 이르렀다. 우르슬라는 남편이 자꾸 미친 짓을 하는데 화가 나면, 300년이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우르슬라의 4대조 할머니로 인해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4대조가 있는 마을로 이사를 가게 된 시발점을 저주하곤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속이 풀리지 않을 노릇이, 그들은 사랑보다도 더 굳은, 공통된 양심의 가책으로 죽는 그날까지 맺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촌 간이었다.
그들이 결혼하겠다는 뜻을 밝혔을 때, 친척들은 발 벗고 나서서 말리려고 했다. 훌륭한 두 젊은이들이 결혼해서, 부끄럽게도 이구아나나 도마뱀이라도 낳을까봐 그들은 두려웠던 것이다. 그런 전례는 이미 있었다. 우르슬라의 숙모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삼촌이 결혼을 해서 낳은 아들은 평생 동안 헐겁고 통이 넓은 바지만 입은 채, 동정을 지키면서 22년을 살다가 아깝게도 출혈로 죽었는데, 그것은 용수철처럼 꼬여 있고 끝에는 털이 한 줌 난 물렁뼈로 된 꼬리가 그의 몸에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혼을 해서 여자에게 그 돼지꼬리를 보일 수 없었던 탓으로 푸줏간 주인더러 칼로 그 꼬리를 잘라 달라고 했다가, 그는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열아홉 살 청춘의 꿈으로 가득 찬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그런 얘기를 이렇게 일축했다. “말만 할 줄 알면, 돼지새끼로 태어난다 한들 무슨 상관이겠소?”
그래서 그들은 폭죽과 악대 소리로 사흘 동안 요란한 잔치를 벌이고 결혼을 했다. 하지만 우르슬라는 두려움 때문에 사랑의 행위를 완강히 거부하고 지냈고, 동네 사람들은 곧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채서, 남편이 불감증 환자인 탓으로 우르슬라는 결혼한 지 1년이 되었어도 아직 처녀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 소문을 가장 늦게 들어서 안 그래도 화가 나 있던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로 인해, 푸르덴치오 아귈라에게 닭싸움에서 이기고 난 다음에 비극적인 사태가 벌어졌다. 피를 흘리고 쓰러진 자기 닭을 보고 화가 치민 패배자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로부터 뒷걸음질 치며 물러서서 투계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다 들을 만큼 큰 소리로 외쳤다. “축하한다!” 그는 소리를 질렀다. “이제 네가 마누라한테 못 해준 구실을 네 닭이 해주겠구나.”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아무 말 없이 자기 닭을 집어 들었다. “내 곧 돌아오지.” 그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러고는 푸르덴치오 아귈라에게 말했다. “어서 집으로 가서 무기를 가지고 와. 널 죽여버리고 말겠어.”
10여 분 뒤 그는 할아버지가 쓰던 V자형 창을 가지고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의 절반이 모인 투계장 입구에서 푸르덴치오 아귈라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몸을 쓸 사이도 없었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1세가 표범을 잡을 때 보이던 뛰어난 솜씨를 이어받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황소 같은 힘으로 집어던진 창이 푸르덴치오 아귈라의 목을 꿰뚫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그의 아내에게 창을 겨누면서 밤을 보내기를 강요했고 우르슬라는 말을 안 들으면 남편이 자기를 정말로 죽일 것을 알았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말했다: “당신이 만일 이구아나를 낳으면 우린 그 이구아나를 기르면 돼.”
그날 있었던 일은 명예를 걸고 싸운 정당한 결투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두 사람은 양심에 꺼림칙한 뒷맛이 남았다. 그리고 그들은 슬픈 표정의 푸르덴치오 아귈라 귀신을 보게 되었고, 그는 그 죽은 사람의 표정에서 본, 헤아릴 수 없는 외로움과 살아 있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깊은 향수, 그리고 그 환영이 보여주는 초조감 때문에 고통을 느꼈다. “걱정말아, 푸르덴치오, 우린 곧 여기서 떠날 거야. 아주 먼 곳으로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어. 그러니까 이제는 평화롭게 잠들어도 좋아.” 그리하여 그들은 산맥을 넘게 되었던 것이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나이가 비슷한 몇몇 젊은 친구들은 모험심에 불타서 살던 집을 헐고 짐을 챙겨가지고 식구들을 데리고 아무도 기약하지 않은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났고,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떠나기에 앞서 창을 마당에 묻어 버리고, 푸르덴치오 아귈라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기가 아끼던 멋진 싸움닭들의 목을 하나씩 잘라버리고는 먼 길을 떠났던 것이다.
--------------------------------------5-26쪽
아우렐리아노는 바구니를 찾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얼핏 아기를 돌봐주려고 아마란타 우르슬라가 죽음에서 다시 깨어난 줄 알고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담요를 들춰보니 그녀의 시체는 돌무더기처럼 그대로 있었다. 자기가 돌아왔을 때 침실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본 기억이 난 아우렐리아노는 식당으로 갔는데, 그곳에는 아직도 해산을 할 때 썼던 커다란 솥과, 피투성이 시트와, 재를 담은 항아리와, 탁자 위의 가위와, 낚시와, 그 옆에 펴놓은 기저귀 옆에 돌돌 말아 던져둔 아기의 탯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밤중에 아기를 보아주려고 산파가 다시 한 번 들렀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오르자 그는 잠시 쉬면서 생각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이 집을 지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뜨개질을 가르치느라고 레베카가 자주 앉았고, 아마란타 우르슬라가 아기를 위해서 조그마한 옷을 뜨려고 앉았던 바로 그 흔들의자에 푹 들어앉아서, 순간적으로 자기의 영혼이 그토록 엄청나게 무서운 과거를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자기 자신의 향수와 남들의 향수가 찔러대는 창질에 깊은 상처를 입은 그는 장미 숲을 얽어놓은 거미줄의 끈질김과, 독보리풀의 참을성과, 찬란한 2월 새벽하늘의 인내심을 우러러보았다. 그리고 그는 갓난아기를 보았다. 온 세상에서 다 모여든 듯 바글바글한 개미 떼가 정원 돌길을 따라서, 바짝 물기가 빠지고 껍질만 자루처럼 봉긋하게 부푼 아기를 들고 그들의 굴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 기막힌 장면을 보는 순간, 그는 공포에 질려 몸이 굳어지는 대신, 멜키아데스의 마지막 비밀을 깨달아 그 양피지 원고에서 인간의 시간과 공간의 질서를 가리키는 글귀를 터득하게 되었다. “역사의 시초는 나무와 연결되어 있고, 종말을 개미들에게 먹힐지니라.”
자기의 운명이 멜키아데스의 원고 속에 씌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바깥 세계의 어떤 유혹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페르난다가 십자가처럼 널빤지로 막아버린 창문과 문에 다시 못질을 하고, 죽은 사람들이나 죽은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생각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난 아우렐리아노는 평생에 자기의 머리가 그토록 맑았던 때는 한번도 없었다고 느꼈다. 멜키아데스의 원고는 조금도 훼손되지 않은 채로 유사 이전의 식물과,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구렁텅이와 방에서부터 바깥으로 뻗어나간 인간의 흔적을 깡그리 없애버린 번적대는 곤충들 사이에 그대로 남아 있었으며, 빛이 환한 곳으로 그것을 들고 나와서 읽을 만큼 한가한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그 자리에 서서, 마치 그 원고가 스페인 말로 씌어 있고, 한낮의 찬란한 광채를 받으며 읽기라도 하는 듯 조금도 어려움을 느끼지 안고 큰 소리로 읽어 내려가면서 풀이했다.
그것은 멜키아데스가 직접 쓴 것으로, 100년을 미리 내다보고, 세밀한 부분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록한 집안의 역사였다. 멜키아데스는 그 원고를 모국어인 산스크리트 어로 적었으며, 짝수에 해당하는 줄은 모두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개인적인 암호로 적었고, 홀수에 해당하는 줄들은 라케다몬스(스파르타) 군대 암호로 적어놓았다. 그리고 남들이 쉽게 해독하지 못하게 하려는 생각에서 마지막으로 다시 손질을 해서, 모든 사건들을 인간이 이해하는 보편적인 시간의 개념에 따라서 나열한 것이 아니라, 100년 동안 날마다 일어날 사건들을 한순간에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처럼 적어놓았는데, 이러한 비밀의 실마리를 아우렐리아노가 풀어내게 된 것은 아마란타 우르슬라의 사랑에 얽힌 복합적인 상황이 빚어낸 혼돈에서였다.
이렇게 비결을 알아내서 황홀경에 도취한 아우렐리아노는 한 번도 막히지 않으면서 큰 소리로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아르카디오더러 들으라고 멜키아데스가 지어낸 칙령이면서도 사실은 아르카디오의 처형을 예언한 구절을 읊었고, 나중에 육체와 영혼이 한꺼번에 승천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태어나리라는 얘기를 찾아냈으며, 능력이 모자라고 그만한 끈기가 없었던 탓도 있지만, 그들의 시도가 아직은 너무 일러서 실패로 끝날 양피지 원고의 해독에 덤빈 쌍둥이 형제에 대한 부분도 발견했다. 여기까지 이르러서 그는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고 싶은 조바심에서 뒤로 껑충 뛰어 넘었다. 그러자 부드럽고, 과거의 목소리와 옛 제라늄의 속삭임과, 한숨이 섞인, 모질기만 했던 향수 끝에 자각의 한숨이 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아우렐리아노는 할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었으며, 그래서 그의 후손들에 대한 숨은 기록을 추적했고 드디어 어느 부분에 이르자, 전갈과 노랑나비들이 우글거리는 목욕탕에서 석양녘에 반항심으로 자기 몸을 함부로 내주던 여자에게서 욕망을 한껏 풀어내던 기계공에 의해 자기가 잉태되는 순간을 찾아내게 되었다. 그는 이 부분에 이르러서 양피지 원고에 어찌나 몰두해 있었던지, 두 번째로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 문짝과 창문들을 날려버리고 집의 왼쪽 지붕이 날아가고 집의 뿌리가 빠져 나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때야 비로소 그는 아마란타 우르슬라가 자신의 누나가 아니라 이모였다는 사실을 알았고,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이 리오하차를 습격한 것은 단지 이모와 자기가 가장 복잡다단하게 얽힌 미로 속에서 서로를 찾아내어, 마침내 가문에 종지부를 찍을 전설적인 동물을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아우렐리아노가 자기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들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열한 페이지를 건너뛰어서 자기가 살고 있는 순간에 대한 얘기를 해독하고, 해독하면서 바로 그 해독한 순간을 살아가는 얘기와, 마지막 페이지에서 자기가 그 양피지 원고를 해석하게 되리라는 예언을 읽으면서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기분을 느끼는 순간에 마콘도는 무서운 회오리 바람에 휩싸여서, 성경에서 얘기하는 태풍처럼 먼지와 돌 조각들을 하늘로 뿜어 올렸다.
그는 다시 건너뛰어서 자기가 언제 어떻게 죽으리라는 날짜와 상황을 예언하는 대목을 찾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미처 마지막 줄을 다 읽어내기도 전에, 그는 자기가 결코 이 방에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되었으니, 그것은 이 거울의 도시, 아니 신기루의 도시가, 바람에 날려 없어질 터이며,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가 이 원고를 해독하게 되는 순간부터 마콘도는 인간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며, 여기에 적힌 글들은 영원히 어느 때에도 다시 되풀이될 수 없을 것이니, 그것은 100년 동안의 고독에 시달린 종족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없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450-467쪽
김창민교수(서울대)와 김욱동교수(서강대)의 서평을 부기한다.
‘백년 동안의 고독’(1967)은 서구의 문학계가 지나친 실험정신으로 ‘소설의 죽음’을 맞이하고 있을 때 ‘소설의 소생’을 증명했다. 문단을 짓누르던 엄숙주의와 실험정신의 족쇄로부터 소설을 해방시켰던 것이다. 프랑수아 라블레식 유머문학으로 분류될 정도로 재미있으면서도 철학적 의미가 풍부하고 미학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마술적 사실주의’의 대표작으로 인정받는 이 소설은 1982년 작가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주었고 전 세계 대부분의 언어로 번역됐다.
소설은 ‘마꼰도’라는 가상 마을에 사는 부엔디아 집안의 7대에 걸친 가족사를 통해 서구의 식민지배와 왜곡된 근대화를 겪어온 콜롬비아의 역사를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역사적 사건들을 사랑과 미움, 만남과 이별, 환희와 고독, 탄생과 죽음 등 삶의 파노라마 속에 녹여 펼치면서 소재의 지역적·정치적 경계를 넘어 보편적 인간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동시에 인물들의 반복적 행태와 순환적 서사 구조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적 의미와 한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유도하기도 한다.
작가의 표현처럼 ‘돼지꼬리 달린 아이가 태어나기를 원치 않는 가족의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적인 갈등은 없지만, 대부분의 인물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관련지을 수 있는 욕망과 사회적 금기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철저하게 진지함이 결여된 이 작품에는 구약성서와 중세 서사시부터 라틴아메리카의 전설과 풍속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패러디와 아이러니, 유머와 함께 환상적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현실과 환상의 결합을 암시하는 ‘마술적 사실주의’는 라틴아메리카인의 존재론적 인식이 반영된 표현 기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자연환경과 역사, 존재양식과 사고방식에서 서구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으로 인식적, 미학적 종속관계를 단절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는 서구의 이성중심적, 리얼리즘적 전통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지어 언급되기도 한다. 중심부 담론에 의해 재단된 현실을 교정하는 대안적 세계를 창조하고, 중심부 담론의 오류를 바로잡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의 마술적 사실주의는 식민 지배를 받으며 왜곡된 자아에서 탈피하면서 진정한 주체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일종의 ‘탈식민주의 글쓰기’이다. 그래서 ‘모든 것의 해체’를 지향하는 제1세계의 포스트모더니즘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동일한 맥락에서 마술적 사실주의는 루이스 보르헤스 식의 환상문학과 구별된다. 마르케스의 마술성이 현실에 발을 굳건히 디딘 채 이야기의 현실 비판적 기능을 강화한다면, 보르헤스의 환상성은 구체적 현실과 유리된 관념의 세계를 형성할 뿐이다. 자연히 정치·사회적 기능면에서 엄연한 차이를 보인다.
우리 소설의 경우 황석영의 ‘손님’, 임철우의 ‘백년 여관’ 등의 작품에서 마술적 사실주의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환영과 혼령, 초자연적 현상 등 비현실적 요소가 현실세계의 일부를 구성하면서 우리 근대사의 비극적 경험과 민족 특유의 의식세계를 보다 심층적으로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 현실과 환상의 변증법(김욱동 서강대 교수)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대변인 마르케스
20세기 초엽까지만 하더라도 서양 문학은 서유럽과 미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경제 발전과 정치적 패권에 힘입어 제1세계 국가에 속한 작가들이 세계 문단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20세기 중엽에 들어오면서부터 사태는 전혀 달라졌다. 이때부터 서유럽이나 미국 작가들 대신에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이 세계 문단에서 주도권을 행사하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주변부에 머무른 채 기껏해야 ‘타자’의 위치밖에는 차지하지 못하던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이 서서히 세계 문학의 중심부로 이행하였다. 말하자면 세계 문학은 이제 라틴 아메리카에서 문자 그대로 ‘붐’을 맞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문학사가들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나타난 이러한 문예 부흥 현상을 ‘붐’ 문학 또는 ‘붐’ 소설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주로 활약한 ‘붐’ 소설가들로서는 콜롬비아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파라과이의 아우구스토로아 바스토스, 페루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쿠바의 기예르모 가브레라 인판테, 멕시코의 카를로스 후엔테스, 칠레의 호세 도노소 등이 유명하다. 다양한 국적, 다양한 문학관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한결같이 라틴 아메리카 문학을 세계 문학의 굳건한 반열에 올려놓은 데에 크게 이바지한 작가들이다.
이러한 ‘붐’ 소설가 가운데에서도 가장 주목받아온 작가가 바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다. 『백 년 동안의 고독』(1967)으로 1982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그 후 『족장의 가을』(1975)을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하게 굳혔다. 그리고 『예견된 죽음의 연대기』(1981)를 발표하여 작가로서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을 과시하고 있다. 이제 마르케스는 현대 라틴 아메리카 문학을 대변하는 가장 대표적인 작가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문학적 실험실로서의 『백 년 동안의 고독』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소설 전통에서 볼 때 한 가문의 영고성쇠(榮枯盛衰)를 다룬 일종의 계도 소설에 속한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5대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절망을 다룬다. 이 소설은 부엔디아 가문의 선조가 마콘도 마을을 건설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이 가문의 맨 마지막 후예가 그 마을의 멸망을 목도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가장 질서 있고 열심히 일하는 곳’인 마콘도는 여러 면에서 에덴 동산을 연상하기에 충분한 마을이다. 어느 누구도 사망한 적이 없는 영생의 낙원이다. 그러나 집시들이 얼음․자석․확대경․사진기와 같은 문명 세계의 발명품들을 마콘도에 가지고 오면서부터 이 마을은 점차 다른 모습으로 변해간다. 원시적인 마콘도 마을은 점차 현대 문명과 그 제도의 침투를 받으면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국가 정당이 도입되면서 내란이 일어나는가 하면, 정부에서 임명한 군수가 무장한 군인들을 데리고 이 마을을 통치하기 위하여 부임한다. 더욱이 미국인들이 이곳에 바나나 농장을 건설하여 노동자들을 혹독하게 착취하기도 한다. 외국인들과 현대 문명이 무려 4년 11개월에 걸친 대홍수에 모두 흔적도 없이 휩쓸려간 다음에서야 마콘도 마을은 비로소 어느 정도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그러나 이 소설의 맨 마지막 부분에서 마콘도는 지상 낙원이 아니라 한낱 허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된다. 왜냐하면 부엔디아 가문의 마지막 후예 한 사람이 산스크리트 어로 기록된 양피지 문서를 해독하는데, 이 문서에는 지금까지 독자들이 읽어온 부엔디아 가문과 마콘도 마을에 관한 이야기가 모두 그대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 년 동안의 고독』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가 이 작품에서 핵심적인 공간적 배경으로 사용하고 있는 마콘도 마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작품에서 마콘도는 마치 영국의 소설가 토머스 아디의 ‘웨섹스’, 미국의 소설가 셔웃 앤더슨의 ‘와인즈버그’, 또는 윌리엄 포크너의 ‘요크너퍼토퍼’처럼 일종의 소우주 같은 구실을 한다. 마르케스가 태어난 카리브 해안에 위치한 원시적인 시골 마을 아라카타카를 모델로 창조해 낸 신화적 왕국인 마콘도는 『백 년 동안의 고독』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지리적 배경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종의 신화적 왕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마을은 좁게는 콜롬비아, 넓게는 라틴 아메리카 대륙, 그리고 더 넓게는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층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여러 층위에서 읽을 수 있는 다소 복잡한 작품이다. 최근에 출간된 서구 작품 가운데에서도 사실 이 작품만큼 다의적인 소설은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이 처음 출간된 직후부터 많은 비평가들이 관심을 보여온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지금까지 적지 않은 비평가들과 문학 연구가들이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그리고 다양한 관점에서 이 소설을 분석하고 해석하려고 시도하여 왔다. 이 작품은 말하자면 문학 비평가들과 학자들이 문학 이론을 탐구하고 적용하여 온 일종의 문학적 실험실과도 같은 소설이다.
상징적으로 조명한 콜롬비아 역사
우선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역사적 의미가 아주 강하게 부각되어 있는 소설이다. 이 작품 속에서 가브리엘 G. 마르케스는 콜롬비아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콜롬비아의 역사는 곧 식민지 종주국들의 지배와 억압으로 점철된 비극적인 역사나 크게 다름없었다. 라틴 아메리카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러하였듯이 콜롬비아 또한 오랫동안 스페인의 지배와 통치 아래에서 패배와 좌절을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6세기 중엽부터 콜롬비아는 뉴그라나다라는 스페인 식민지 가운데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고, 19세기 초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스페인의 억압에서 해방되어 독립 국가로 발돋움하였다.
소설에서 마콘도를 처음 건설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본디 콜롬비아 내륙 지방에서 담배를 경작하던 부지런한 본토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스페인계 상인 가문의 우르슬라 이구아란을 만나 결혼함으로써 처음으로 외지인과 관계를 맺는다. 이 작품에는 우르슬라 말고도 ‘카날루냐의 현인’이라고 불리는 스페인 사람이 한 명 등장한다. 내란 중 마콘도에 들어온 그는 이 마을이 폐허가 되기 직전까지 서점을 경영하면서 이 마을에서 산다. 책 더미 속에 묻혀 세 상자에 달하는 많은 양의 원고를 집필하는 그는 콜롬비아에 대한 스페인의 정신적 지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비록 잠시이기는 하지만 콜롬비아는 스페인 말고도 영국의 지배를 받기도 한다. 영국의 지배는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을 통하여 나타난다. 우르슬라 가족이 리로아차로 피신하여 온 것도 바로 드레이크 경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인 차원에서도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콜롬비아가 직면하고 있는 구체적인 사회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콘도 마을은 목가적이고 평화스러운 마을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부터 평화스럽기 그지없던 이 마을은 점차 폭력과 타락에 시달린 채 멸망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 작품에서 서구 자본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시기에 시작하여 전쟁이 끝날 때까지 콜롬비아에 진출한 미국의 바나나 회사의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마콘도에 바나나 농장을 건설한 미국 회사들은 원주민 노동자를 고용하여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낮은 임금과 열악한 작업 환경 등으로 착취당하던 노동자들은 마침내 극한적인 파업을 단행하였고, 미국 회사 편을 드는 정부는 파업에 맞서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학살하기에 이르렀다. 적어도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 소설은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수탈 행위를 폭로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고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고 보면 부엔디아 가문의 몰락과 쇠퇴는 단순히 외부의 힘 탓만으로 돌릴 수 없다. 왜냐하면 부엔디아 가문의 내부 안에 이미 몰락과 쇠퇴의 씨앗이 뿌려져 있기 때문이다. 마콘도 마을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로 존경을 받으며 근면하게 일하던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집시가 전하여 준 문명의 도구에 크게 고무된 나머지 거의 미치광이에 가까운 사람이 된다. 그는 족장으로서의 모든 일상적 의무와 책임을 포기한 채 오직 무익한 연구에만 몰두한다. 심지어 그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하여 과학적 실험을 하기도 한다.
한편 서른두 차례나 반정부 봉기에 참여하여 그때마다 패배하는 그의 아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웅적 혁명가라기보다는 오히려 ‘어릿광대’나 ‘단순한 모험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추상적 이념을 위하여 많은 생명의 희생을 주저하지 않는, 그야말로 비인간적인 인물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이 소설의 저자는 ‘그는 손으로 만져볼 수도 없는 이념들을 가지고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 도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젊은이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폭력뿐’이라고 가르치면서 자유파의 승리를 위하여 정부군과 싸울 것을 독려한다. 20년에 걸친 내란이 끝난 다음 그는 사회와의 모든 소통을 차단한 채 골방에 들어앉아 황금물고기 장식을 만들며 이른바 ‘삶 속의 죽음’을 영위한다. 이러한 현상은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형인 호세 아르카디오를 비롯하여 부엔디아 가문의 다른 후손들에게서도 마찬가지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좋은 나날’ 또는 ‘좋은 시대’라는 뜻을 지니는 ‘부엔디아’라는 스페인 이름은 이 작품에서 반어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근친상간으로 상징되는 도덕적 타락은 부엔디아 가문의 몰락을 재촉하는 견인차 구실을 한다. 그들은 근친상간을 수없이 되풀이 한다. 유전학적 관점에서 볼 때에 동종 교배가 열등한 자손을 낳듯이 부엔디아 가문의 사람들 또한 근친상간이라는 동종 교배를 통하여 점점 우생학적으로 열등한 자손을 낳는다.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이모와 조카 사이인 아우렐리아노와 아마란타 우르슬라가 관계를 맺어 마침내 돼지꼬리가 달린 자손을 낳기에 이른다. 이렇게 기형아를 낳음으로써, 5대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은 선조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치욕적인 종말을 고하는 것이다.
그들이 자폐적인 순환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를 제외한 나머지 부엔디아 가문 사람들이 한결같이 자기 고유의 이름다운 이름 없이 오직 선조의 이름 가운데에서 일부만을 되풀이하여 물려받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뒷받침된다.
문학의 자의식 문제와 포스트모더니즘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역사적 층위에서도 아주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이 소설은 역사 기술과 관련된 문제점을 다룬다는 점에서 최근에 들어와 무쩍 논의되고 있는 포스트모던 역사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미국 바나나 회사에 맞서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무려 3,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을 정부군이 학살한다. 정부 관리들은 역 광장에서 기관총으로 무참하게 죽은 노동자들의 시체를 사람들이 볼 수 없는 한밤중에 화물차에 실어다가 멀리 바닷물 속에 수장하여 버린다. 그러나 정부와 다국적 기업의 계략으로 이 엄청난 사건은 그 진상이 은폐되고 호도된다.
파업을 직접 주도한 호세 아우렐리아노 세군도가 사건이 벌어진 지 얼마 후 마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자, 그는 오히려 미친 사람 대접을 받는다. 이 소설의 화자는 이와 관련하여 ‘그가 진실을 얘기하자, 사람들은 역사가들이 지어내는 교과서에 집어넣은 가짜 얘기와는 워낙 달랐던 그의 얘기를 미친 수작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다’고 적고 있다. 부엔디아 집안의 마지막 후예인 아우렐리아노가 다시 이 문제를 마을 사람들에게 꺼낼 때에도 ‘그들은 결국 법적인 증거들이나 기록들, 그리고 초등학교 교과서에 적혀 있는 글을 인용해서, 마콘도에는 바나나 회사가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역사는 진실과는 거리가 먼, 한낱 권력을 장악한 지배 계급이 조작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의 역사가 미셸 푸코를 비롯하여 미국의 두 역사가 헤이든 화이트와 도미닉 라카프라, 그리고 영국의 역사가 조너선 클락 등이 주장하는 포스트모던 역사 이론이다.
그런가 하면 문학의 자의식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도 『백 년 동안의 고독』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 소설은 대표적인 메타픽션에 해당된다. 메타픽션이란 텍스트 밖의 세계를 반영하거나 재현하는 대신 작품이 창작되는 과정을 주제로 삼는 실험 소설을 가리킨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우주나 자연에 거울을 비추는 전통적인 리얼리즘 소설과는 달리, 메타픽션은 텍스트 안을 향하여 거울을 비추고 있다. 한마디로 그것은 ‘소설의 소설’ 또는 ‘소설에 관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이미 지적하였듯이 이 작품의 결말은 다시 이 소설의 시작으로 되돌아간다. 마치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처럼 이 작품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순환 구조를 지니고 있다.
독자들은 맨 마지막 장면에서 지금 읽고 있는 소설은 바로 멜키아데스가 양피지에 기록하여 놓은 부엔디아 가문의 일대기를 마지막 후예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가 해독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이 양피지에는 100년을 미리 내다본 세밀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록하여 놓은 부엔디아 집안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소설의 부활을 보여주는 마술적 리얼리즘
『백 년 동안의 고독』을 논의할 때마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꼬리표가 마치 그림자처럼 늘 따라다닌다. 좁게는 리얼리즘의 한 유형, 넓게는 세계 인식의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마술적 리얼리즘은 문자 그대로 현실과 환상, 사실과 허구가 초현실주의적 수법으로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형태를 말한다. 집시들이 마콘도 마을에 가져온 ‘끓고 있는 얼음’처럼, 일종의 모순 어법에 해당하는 마술적 리얼리즘은 역사적․문학적으로 큰 혼란을 겪어온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이 창안해 낸 독특한 문화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이러한 장치나 세계 인식을 통하여 그들 특유의 경험을 마술적으로 형상화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이 작품에서 마술적 리얼리즘은 여러 형태를 통하여 나타난다. 예를 들어 작중 인물들 가운데에는 죽은 사람들이 다시 나타나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활약하는가 하면, 어떤 사내아이는 부모의 말을 듣지 않다가 뱀이 되어버린다. 부엔디아 집안의 한 선조는 돼지꼬리를 달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 레베카라는 인물은 흙과 벽에서 긁은 석회를 먹고 산다. 한 작품 인물이 항해 도중 바다에서 바다용을 잡았는데, 그 뱃속에는 십자군 병정의 투구와 허리띠 그리고 무기가 발견되기도 한다. 난로에 얹어둔 우유가 끓지 않아 주전자 뚜껑을 열어보았더니 그 안에는 구더기가 득실거린다. 그런가 하면 어떤 작중 인물들은 담요나 양탄자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가 이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린다.
한 비평가는 마르케스 문학의 특성을 ‘초월적 지방주의’라는 용어로 요약한 바 있다. 마르케스의 작품은 좁게는 콜롬비아, 넓게는 라틴 아메리카라는 특정한 지방에 뿌리를 박고 있으면서도 지방성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문학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마르케스는 그가 지대한 영향을 받은 윌리엄 포크너와 아주 비슷하다. 포크너의 작품 또한 미국 남부 지방이라는 구체적 공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포크너가 다루는 문제는 좀더 보편타당성 있는 삶의 문제, 그의 표현을 빌린다면 ‘서로 갈등하는 인간 마음의 여러 문제’를 설득력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설은 이제 죽음을 맞이하였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신의 죽음을 선포한 프리드리히 니체처럼 서유럽과 미국의 몇몇 작가들은 문학의 죽음을 선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마르케스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은 제1세계 작가들이 이미 죽었다고 선포한 소설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소설 장르는 죽음을 맞이하기는커녕 오히려 불사조처럼 잿더미를 헤치고 되살아났다는 사실을 그들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죽음과 관련하여 체코슬로바키아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소설의 종말을 말하는 것은 서구 작가들, 특히 프랑스인들의 기우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동유럽이나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에게 이러한 말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다. 책꽂이에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을 꽂아두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마르케스는 바로 그동안 사망 상태에 놓여 있던 소설을 다시 살려낸 언어의 마술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김욱동 - 문학평론가․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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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누구인가?
사실주의와 상상력을 결합한 ‘마술적 리얼리즘’ 기법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브리엘 G. 마르케스는, 1928년 콜롬비아의 아라까따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외조부 아래에서 성장했다. 외할머니는 귀신 이야기로 어린 그를 전율에 떨게 했으며, 외할아버지는 서커스에 데려가고 끊임없이 시민전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시절 겪고 들은 환상적인 이야기들은 고스란히 마르케스의 뇌세포에 새겨졌고, ‘개가 꼬리를 무는 듯한’ 치밀한 구조를 자랑하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은 그때 이미 연마됐다고 볼 수 있다.
콜롬비아 대학과 카르타헤나 대학에서 법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하다가 정치적인 혼란으로 대학을 중퇴한 마르케스는,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세 때부터 14년간 『콜롬비아 데일리』라는 지역 신문에서 발로 뛰는 기자로 활동했다. 동시에 어린 시절부터 가져온 문학에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소설 습작을 계속, 1955년 첫 소설집 『낙엽』을 펴낸 데 이어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불행한 시간』『암흑의 시대』 등을 출간했다.
1958년 쿠바 혁명이 터지자,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지식인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혁명을 지지했다. 혁명의 실상을 보도할 목적으로 ‘프렌사 라티나’ 중남미 통신 사무실을 열고, 뉴욕 특파원을 역임․활약하기도 했다. 쿠바 혁명 이후 카스트로를 일관되게 지지했으며, 중남미의 독재 정권 및 이를 지원하는 미국에 반대하는 글을 쓰거나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소설가로뿐만 아니라 저널리스트로서, 정치 행동주의자로 유명하다. 1961년 ‘프렌사 라티나’를 그만두고 멕시코로 이주한 그는 창작에 몰두, 장편 『불행한 시간』과 단편집 『마마 그란데의 장례식』을 출간했다. 이어 5년간의 침묵 끝에 『백 년 동안의 고독』을 탈고했을 때는, 아르헨티나의 출판사로 원고를 우송할 돈이 없어 일부만 먼저 부치고 나머지는 집기를 팔아서 부쳤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그의 대표작이기도 하며, 그를 ‘콜롬비아의 세르반테스’로 일컬어지게 한 『백 년 동안의 고독』은 마콘도라는 가공의 땅을 무대로 하여 부엔디아 일족의 역사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마르케스는 폭력으로 점철된 중남미의 정치․사회적 현실과 토착 신화의 상상력을 결합한 새로운 소설 미학을 선보이며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가로 알려졌으며,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외 작품으로 『콜레라 시대의 사랑』『예고된 죽음의 연대기』『사랑과 다른 악마들』 등이 있으며, 최근 77세의 나이로 발표한 신작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이 또다시 전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문학사상사,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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