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흔적, 上弦 , 마른 물고기처럼

나뭇잎숨결 2008. 11. 15. 01:02

 

Springtime-(1873)
Pierre Auguste Cot , Oil on canvas, 80 x 50 inches

                                                            Metropolitan Museum of art, Manhattan, USA소장

 

 

 

 

 

Q! 나희덕의 시를 읽어본다.

 

 

 

흔적


나는 무엇으로부터 찢겨진 몸일까

유난히 엷고 어룽진 쪽을
여기에 대보고 저기에도 대본다

텃밭에 나가 귀퉁이가 찢겨진 열무잎에도 대보고
그 위에 앉은 흰누에나방의 날개에도 대보고
햇빛좋은 오후 걸레를 삶아 널면서
펄럭이며 말라가는 그 헝겊조각에도 대보고
마사목에 친친 감겨 신음하는 어린 나뭇가지에도 대보고
바닷물에 오래 절여진 검은 해초 뿌리에도 대보고
시장에서 사온 조개의 그 둥근 무늬에도 대보고
잠든 딸아이의 머리띠를 벗겨주다가 그 띠에도 슬몃 대보고
밤 늦게 돌아온 남편의 옷을 털면서 거기 묻어온
개미 한마리의 하염없는 기어감에 대보기도 하다가

나는 무엇으로부터 찢겨진 몸일까

물에 닿으면 제일 먼저 젖어드는 곳이 있어
여기에 대보고 저기에도 대보지만
참 알 수가 없다
종소리가 들리면 조금씩 아파오는 곳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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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弦 



차오르는 몸이 무거웠던지

새벽녘 능선 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


神도 이렇게 들키는 때가 있으니!


때로 그녀도 발에 흙을 묻힌다는 것을

외딴 산모퉁이를 돌며 나는 훔쳐보았던 것인데

어느새 눈치를 챘는지

조금 붉어진 얼굴로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저만치 가고 있다


그녀가 앉았던 궁둥이 흔적이

저 능선 위에는 아직 남아 있을 것이어서

능선 근처 나무들은 환한 상처를 지녔을 것이다

뜨거운 숯불에 입술을 씻었던 이사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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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른 물고기처럼






어둠 속에서 너는 잠시만 함께 있자 했다

사랑일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네 몸이 손에 닿는 순간


그것이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너는 다 마른 샘 바닥에 누운 물고기처럼*

힘겹게 파닥거리고 있었다, 나는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몸을 비벼야 하는 것처럼

너를 적시기 위해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비늘이 어둠 속에서 잠시 빛났다

그러나 내 두려움을 네가 알았을 리 없다

밖이 조금씩 밝아오는 것이, 빛이 물처럼

흘러들어 어둠을 적셔버리는 것이 두려웠던 나는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시든 비늘 위에.



아주 오랜 뒤에 나는 낡은 밥상 위에 놓여진 마른 황어들을 보았다.

황어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지만 나는 너늘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 황어는 겨울밤 남대천 상류의 얼음 위에 앉아 잡은 것이라 한다.

그러나 지느러미는 꺾이고 그 빛나던 눈도 비늘도 다 시들어버렸다.

낡은 밥상 위에서 겨울 햇살을 받고 있는 마른 황어들은 말이 없다.







註) : <莊子>의 <大宗師>에서 빌어옴. "샘의 물이 다 마르면 고기들은 땅 위에 함께 남게 된다.

그들은 서로 습기를 공급하기 위해 침을 뱉어주고 거품을 내어 서로를 적셔준다. 하지만 이것

은 강이나 호수에 있을 때 서로를 잊어버리는 것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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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은 이동활 음악정원에서 메일로 보내준 것, 혼자 보기 아까워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