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하이네의 <노래의 책>(김재혁옮김, 문학과 지성사) 고백 땅거미 앞세우고 저녁은 찾아오고, 물결은 더욱 거세게 날뛰었다, 바닷가에 앉아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춤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가슴은 바다처럼 부풀어올랐다. 그때 너를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너의 아름다운 모습, 그 모습 내 주위 곳곳에서 떠돌고 어디에서나 나를 부른다, 어디에서나, 어디에서나, 세찬 바람소리 속에서나, 거친 파도소리 속에서나, 내 가슴의 한숨 속에서도. 나는 가벼운 갈대를 꺾어 모래 위에 썼다: "아그네스, 나는 너를 사랑한다!" 하지만 심술궂은 파도가 그 달콤한 고백 위로 덮쳐와 그 말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나약한 갈대야, 먼지처럼 흩어지는 모래야, 사라지는 파도야, 난 이제 너희를 믿지 않겠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내 마음은 더욱 날뛴다, 나 이제 이 억센 손으로 노르웨이 숲에서 가장 커다란 전나무를 뽑아 에트나 화산의 불타는 분화구에 담갔다가, 불에 적신 그 거대한 펜으로 캄캄한 하늘에다 쓰리라: "아그네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러면 매일 밤 그 하늘 위에서 영원한 불의 글자가 활활 타올라, 후대의 자손들이 대대로 환성을 지르며 하늘에 쓰여진 그 말을 읽으리라: "아그네스, 나는 너를 사랑한다!" |
'시(詩)와 詩魂'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익필(宋翼弼)의 <足不足 족함과 부족함> (0) | 2008.12.15 |
---|---|
눈물은 왜 짠가?/함민복 (0) | 2008.12.10 |
흔적, 上弦 , 마른 물고기처럼 (0) | 2008.11.15 |
무관심한 사랑 혹은 소유하지 않는 사랑도 사랑인가? (0) | 2008.11.09 |
커피와 그림, 음악이 있는 시간... (0) | 2008.1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