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제러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를 읽기 전에

나뭇잎숨결 2008. 10. 25. 07:39

 

'우리가 몸담고 있는 우주는, 모든 유용한 에너지와 물질이 고갈된 무질서한 종말에 이르게 될 것인가, 아니면 일리야 프리고진 등의 주장처럼 혼돈으로부터 새로운 질서가 저절로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인가?' 제러미 리프킨의 <엔트로피>와 프리고진의 <혼돈으로부터의 질서>를 함께 읽으면 좋을 듯 합니다. 자료를 주신 nakedmind님께 감사드립니다.

 

 

엔트로피-제러미 리프킨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어수선해지며, 그 변화를 다시 되돌리기는 너무도 힘들게 느껴진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엔트로피 법칙’이 자주 인용된다. 엔트로피 법칙은 자연현상에는 일정한 방향성이 있다는 경험적 사실에서 출발하였으며, “우주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는 것이다.

 

흔히 ‘무질서(카오스)도’로 해석되는 엔트로피는 사람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클로드 섀넌은 ‘정보 엔트로피’의 개념을 만들어 냈으며, 그 외에도 생물학,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 그리고 예술에 이르기까지 엔트로피의 개념과 법칙이 다양한 모습으로 인용되고 있다. 하지만 엔트로피가 원래의 엄격한 과학적 정의에서 벗어나 좀 더 폭넓게 적용될 때,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유용함과 함께 부적절한 해석을 통한 개념의 혼란과 부작용의 위험도 커지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엔트로피’는 사회비평가인 제러미 리프킨이 엔트로피 법칙의 개념을 원용하여 현대 물질문명을 비판한 저서이다. 리프킨은 엔트로피 법칙을 유용한 에너지가 감소하고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가 증가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우리가 변화를 위하여 에너지와 물질을 계속 사용하게 되면, 궁극적으로는 에너지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열 종말’과 사용할 물질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물질 혼돈’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천명한다.

 

기계론적인 세계관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물질만능주의와 과학만능주의는 더 이상 설 땅이 없다고 역설한다. 현재 우리는 산업 시대를 통하여 고에너지 사회를 지속해 온 결과로 화석연료의 고갈과 환경오염으로 인한 고엔트로피의 거대한 분수령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이제 막다른 기로에 서서 인류의 생존을 위하여 엔트로피에 기초한 새로운 세계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리프킨은 다양한 분석과 논리전개의 근거로 엔트로피 법칙을 내세우고 있으나, 때로는 지나치게 자의적인 확대 해석으로 흐른 점이 아쉽다고 하겠다. 엔트로피 법칙이 제시하는 자연변화의 궁극적인 종착점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는 있다. '모든 유용한 에너지와 물질이 고갈된 무질서한 종말에 이르게 될 것인가, 아니면 일리야 프리고진 등의 주장처럼 혼돈으로부터 새로운 질서가 저절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다.

 

연일 급등하는 원유가를 걱정하며 급속한 자원의 고갈, 폭발적인 인구의 증가와 식량의 부족,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등 우리를 둘러싼 문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산업화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이행되는 변화의 시대에 무언가 혼란스럽고 방향을 잡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면, 리프킨의 경고와 그 의미를 나름대로 음미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엔트로피’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며 생각해보아야 할 여러 가지 화두를 제시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인류발전을 위한 세계관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인간성의 과학’, 그리고 ‘생태주의적’ 또는 ‘유기론적’ 패러다임을 강조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엔트로피 사회도 결국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신석민 서울대 교수·화학부

 

 

 

 

자료 1--------- 카오스 이론

 

 

카오스 chaos 이론은 초끈 이론과 함께 과학 이론들 중에서 최신의 이론이다. <카오스> 는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인데, 태초의 <혼돈상태>를 의미한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 으로 섞여서 전혀 질서가 없는 상태가 <카오스>인 것이다. 이 이론의 발단은 1960년대에 로렌스라는 기상학자가 기상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던 중, 어느 날 `귀찮아서' 변수(예를 들어서 바닷물 표면의 온도) 하나를 소수점 아래 다섯 자리에서 잘라버렸더니 그 결과가 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계산되어 나오는 것을 발견하면서 부터이다. 여러 가지 변수(현상)들이 유기적으로 상호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계(복잡계, 카오스 계)에서는 이처럼 초기조건의 극히 미소한 차이가 그 최종 결과에 가서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다.

 

 

물리학을 `가장 거만한 학문'이라는 농담이 있다. 물리학자들은 물리학이 `우주의 모든 것 '을 그 연구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우주의 모든 현상들은 궁극적으로는 물리학의 이론으로서 이해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심리학은 분자생물학으로, 분자생물학은 화학으로, 화학은 물리학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주의 모든 작용, 변화는 물리학의 네 개의 힘(중력, 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니 이 4 개의 힘만 적용하면 되는 것이다. 현재 물리학자들이 추구 중인 힘의 통일 이론의 이름을 `모든 것의 이론 theory of everything'이라 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사실 물리

학의 연구대상은 '우주의 모든 것`이다. <기>나 귀신 등의 초자연적 현상도 만약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확인될 수 있다면 물리학의 연구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동안 물리학에서 연구 대상으로부터 제외되어 왔던 분야가 많다. 난류(유체가 어지럽게 흐르는 것), 기상현상 등이 그것인데, 이러한 현상들은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에 기초적인 이론에 경험식이나 실험결과로 얻어진 계수를 사용하여 근사적으로 계산할 뿐이다. 만약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의 흐름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하려면 슈퍼 컴퓨터를 몇 시간 동안 가동시켜도 불과 수 초 동안의 흐름밖에 추적할 수 없다. 물의 흐름은 이론적으로는 압력과 중력, 유체 내부 및 관벽(管壁)과의 마찰만으로 결정되지만 그 실제의 현상은 이처럼 복잡한 것이다. 물론 그 입자들의 움직임에 대한 이론은 완전히 밝혀져 있다.

 

 

그래서 이런 분야는 새로 밝혀낼 수 있는 이론이 없으므로 물리학이 아니라 공학의 분야에 속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엔트로피와 정보, 그리고 식> 편에서 설명드릴 열역학 계도 카오스 계에 포함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접하는 현상들은 거의 모두가 카오스 현상이다. 시냇물의 흐름, 바람, 주전자에서 끓고 있는 물, 주가지수의 오르내림, 그리고 변덕스러운 연인의 마음...

 

 

이런 복잡한 계의 전체적인 현상들을 해석할 수 있는(현재로서는 해석하려는) 이론이 카오스 이론이다. "카오스chaos"와 "복잡 계complexity"는 같은 말이다. 더 `멋지다'는 이유로 카오스라는 단어가 더 널리 알려지고 사용되고 있지만, 요즘은 아예 두 단어의 합성어인 “카오플렉시티 chaoplexity”라는 말이 쓰이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카오스'라는 말이 인기를 얻어 대중화된 큰 동기가 New York Times 지의 기자 James Gleick가 1987년에 “Chaos; making a new science"라는 책을 써서 히트친 일이었다. 그런데 400 페이지(한글판)에 달하는 이 책을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도무지 카오스가 어떤 것인지 이해가 어렵다. `

기 과학' 류의 책들과 꼭 같다. 둘 다 그 원인에 대한 이론이 완전히 밝혀져 있지 아니한 현상에 대하여 책을 썼기 때문이다. 이처럼 카오스 이론을 연구하는 학자들 자신도 카오스 현상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초끈 이론처럼 현재 연구가 진행 중에 있는 이론이다.)

 

 

카오스 이론을 설명한 글에는 반드시 ‘선형(線形)’방정식, ‘비선형(非線形)방정식’이 란 말이 나온다. ‘선형’이란 기본적으로 원인과 결과가 비례하는 관계를 말한다.  예를 들면 y=ax 의 관계다.  좀 더 나아가서 y1=f(x1) 이고 y2=f(x2) 일 때, y1+y2=f(x1)+f(x2) 가 되는 관계, 즉 복합적인 결과(함수값)가 그 각각의 원인(변수)에 대한 결과의 합이 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복잡한 현상들을 원인에 따라 쉽게 나눌 수도 있고, 역으로 원인별로 그 결과를 계산해서 합하면 전체의 결과가 얻어지는 단순한 계를 말한다. 이에 비해서 비선형계는 좀더 복잡하다. 원인들끼리 서로 작용하여 결과를 복잡하게 만들기도 하고,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일정하게 비례하지 않고 이중(제곱) 삼중(세제곱)으로 복합적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관계이다. 비선형방정식은 일반적인 방정식의 풀이 방법으로 해(解)가 구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복잡계’인 것이다.

 

 

카오스이론의 출현이 늦었던 것은 컴퓨터의 발달과 관련이 있다. `복잡계'라는 말 그대로 카오스 계는 그 풀이가 쉽게 구해지지 않는 비선형방정식으로 표시되는 데, 컴퓨터의 성능이 좋아진 지금에는 컴퓨터를 사용한 축차계산법으로 풀이를 구하거나 그래픽 시뮬레이션으로 카오스 계의 연구가 가능해진 것이다. 카오스 계의 한 특징인 <주기성>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발견된 것이다. 이 <주기성>에 대하여 유명한 말이 있다. “영국 해안선의 총 길이는 얼마인가?”라는 질문이다. 관련 지리학 책에 나와 있는 해안선의 길이는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길이'일 뿐, 정확한 길이는 절대로 구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바닷물과 모래사장, 또는 해변의 바위가 닿는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한없이 꼬불꼬불하니까 그것을 어떻게 잴 것인가? 중요한 것은 그런 문제가 아니라, 해안선의 모양이다. 실제로 바닷가에서 눈으로 보는 해안선의 형태와, 지도(상세한)에 그려져 있는 형태, 그리고 공 중에서 항공 촬영한 형태가 서로 매우 닮았다는 점이다. 즉 미세한 부분에서의 형태가 거대 규모에서 주기적으로 재현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수치계산에 의한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만델브로트 집합을 그래픽으로 나타내면 대입하는 수치에 따라서 한없이 다양한 형태의 주기적인 모양들을 볼 수 있다. 한 부분을 확대하면 다시 원래 모양과 유사한 (self-similar) 형태가 거듭 나타난다. 이 주기성을 만델브로트는 “프랙탈 fractal"이라 이름 하였다. `조각, 부분'이라는 의미를 포함한 신조어(新造語)인데, 전체와 부분은 유사한 형태를 반복적으로 나타낸다는 뜻이다. 카오스 계는 그저 복잡하고 질서 없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처럼 그 속에 정연한 일종의 질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카오스 이론에서 나온 유명한 말 중에 “나비 효과 butterfly effect"라는 것이 있다. 카오스 계가 초기조건에 지극히 민감하다는 것을 강조한 말인데, "북경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나르면 그것이 며칠 뒤 워싱턴에 폭풍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의미다(‘북경의 나비’라는 말은 아마도 징기스칸의 유럽 침공 때 생긴 서구인들의 황인공포증을 나타낸 말일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북경' 대신 '아마존'의 나비라 한다). 비록 다소 과장되기는 했지만, 이 말이 틀린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지구상에는 수많은 나비가 날아다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지구가 '폭풍의 행성'은 아니다. 어떤 카오스 계는 일방적인 발산을 막고 어떤 특정한 점으로 수렴하려는 특성이 있다. 즉 스스로 안정되는 성질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의 기상이 지구 전체적인 규모와 장기간의 시일에 걸쳐서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그래서 이다. 이러한 내재적인 질서의 발현은 비평형 상태에 있는, 즉 내부의 움직임이 활발한 상태에 있는 복잡 계의 부분적 요동에 의해서 질서가 자기조직화 하여 나타난다는 프리고진의 연구 결과와 그 기본 원리를 같이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질서’만 있다면 그 이름이 혼돈을 의미하는 ‘카오스’일 수가 없다. 뭐라 해도 카오스 계의 본질은 <예측 불능성>에 있다. ‘북경의 나비 한 마리’가 불러 일으키는 워싱턴의 폭풍을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초기조건에 대한 민감성 때문에 원인이 극히 조금만 달라져도 그 결과에 가서는 엄청난 차이가 생겨나는 것이다.

 

 

 

자연계의 실제 현상은 거의 대부분이 카오스적이다. 많은 과학자와 철학자들은 카오스 이론의 초기 조건 민감성에 따른 예측 불능성을 기계론적 결정론의 돌파구로 삼고자 한다. 이러한 생각에는 상당한 타당성과 가능성이 있다. “예측 불능”은 분명히 “미결정”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 보자. “결정되어 있으나 우리가 그것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결정되어 있지 아니하며 또한 우리가 그것을 예측할 수도 없는 것”인가? 카오스 이론은 일단 초기조건이 주어지면(결정되면) 그 이후의 전개는 ‘기계적’이다. 따라서 '결정되어 있으나 우리가 예측할 수 없음’이다. 카오스 이론으로 기계적 결정론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초기조건을 양자역학적 효과가 나타나는 소립자에 까지 확장 적용한다면 ‘비결정적’이다. 그러나 그 ‘비결정’은 양자(量子) 그 자체의 확률적 양태 때문이지 카오스 이론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카오스 계의 다른 특성으로 <자기조직화> 현상이 있다.

 


고도로 조직적인 복잡성의 상태로 갑자기 도약하는 현상을 말한다. 카오스 계 내에서의 무작위적 행동(움직임)과 질서의 자발적 출현 사이에는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즉 `혼돈 속에 질서'가 내재되어 있다는 말이다. 혼돈의 가장자리(the edge of chaos), 즉 비평형 상태에 있는 계들은 완전히 불안정한 상태가 아니면서도 변화에 대단히 민감하다. 예측불가능성과, 창조적이고 일관된 조직화가 함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루어지는 자기조직화의 중요한 성질은 계들이 놀라운 효율성을 가진 조직화된 복잡성을 갑자기 그리고 자연발생적으로 창출(創出)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우리의 뇌는 수백 억 개의 수천 종류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50가지가 넘는 각종의 신경전달 물질들의 전기-화학적 작용에 의해서 가동되는 카오스 계의 좋은 예이다. 이처럼 복잡한 계에서 어떻게 <의식>이라는 `순수한 질서'가 나올 수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가능한 것이 바로 카오스 계의 본질적 특성이라는 것이다. 카오스 계 내에서부터 자기조직화에 의해서 저절로 질서가 발생한다는 현상을 <자기 조직화에 의한 창발>이라 한다. 이 <자기조직화>는 생명의 탄생과 진화, 그리고 의식의 형성(또는 기전)을 설명할 수 있는 현상으로서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창발 創發 emergent’이론은 1923 년 C. L. Morgan 이 “Emergent Evolution”이라는 책에서 제안한 개념이다. 이 개념은 그 후 벨기에 대학의 프리고진 연구팀의 비평형 열역학 계의 연구와 그리고 카오스 이론의 등장으로 많은 전체(통합)주의 과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인데,  그 요지는 기본 구성 요소들의 성질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어떤 특성이 ‘전체’에서 ‘새롭게, 저절로’ 생겨난다는 것이다. ‘전체는 부분의 합이 아니다”라는 명제가 여기서 생긴 것이다. ‘emergent’는 ‘창발’, ‘발현 發現’, ‘돌현 突現’ 등으로 번역된다).

 

 

일리야 프리고진은 그의 유명한 저서 “혼돈 속의 질서 Order Out of Chaos"에서 이러한 현상이 생명의 탄생과 진화뿐 아니라 정치 경제 등 사회적 현상까지 설명해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주장'이라 표현하기에는 좀 그렇다. 그는 이 이론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는 열역학 제 2 법칙, 즉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닫힌 계>의 질서를 흐트러지게 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지만, <열린 계>에 있어서는 질서의 창출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때 그 "계"는 외부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 즉 외부의 질서를 흐트러지게 함으로서 자신의 질서를 구축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계의 구조적 특성을 그는 <소산(또는 산일)구조 dissipative structure>라고 표현한다. 열역학 제2법칙은 "비가역성"이 그 근원이다. "비가역성"은 "무작위성"을 낳고, "무작위성"은 "불안정성"을 초래하며, 이 "불안정성"이 "자기조직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비가역성"은 (계의)단위입자들의 동역학적 고찰로서는 유도할 수 없다. 쉽게 말해서 "비가역성"은 물리학의 기본 단위인 소립자와 또한 물리학의 기본 법칙인 운동의 법칙의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성질인 것이다. 그래서 "비가역성"은 -- 그리고 열역학 제 2 법칙은 제 1 차적(기본적) 법칙이 아니라 제 2 차적 법칙이다. "비가역성"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시간 비대칭성"이다. 물리학의 모든 기초법칙들과 상호작용은 기본적으로 "시간 대칭적"이다. "시간"이란 것은 인간이 인과율에 의해서 인식할 수 있는 "개념" 또는 "현상"이지 소립자나 시공간의 기본적 성질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당구공을 친 다음 얼 마 후에 시간을 역전시키면 -- 공의 진행방향을 반대로 돌리면 처음 친 공은 원래 있던 자리에 돌아 올 것이다. "가역적"이다. 그러나 복잡 계에 있어서는 문제가 달라진 다. 깨어진 그릇은 다시 붙일 수 없으며 쏟아진 물은 다시 담을 수가 없다. 이것은 분명히 "비가역적"이다. 물체의 움직임을 다루는 동역학의 이론 어디에도 "비가역성"은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모든 현상들은 "비가역적"이다. 이러한 "비가역성"은 어디 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복잡 계> 그 자체의 성질이라고 프리고진은 주장한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엔트로피가 현격하게 증가하는 불안정한 동적 체계에서 나타나는 무작위성(randomness)이 비가역성을, 비가역성은 "소산구조 dissipative structures"를, "소산구조"는 고도화된 질서를 만들어 낸다는 생각이다.

 

 

 

“무작위성”이란 `아무 법칙도 내재되어 있지 않으며, 외부에서 적용할 수도 없다'는 의미다. 무작위성은 무작위수 random numbers를 통해서 그 `특성(아무런 특성이 없다는 특성)'을 잘 알아볼 수 있다. 요즘은 "무작위수(난수)" 발생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는 PC가 널리 보급됨으로 해서 없어졌지만, 전에는 통계학이나 품질관리 관련 서적의 부록으로 난수 표가 반드시 실려 있었다. 무작위수는 아무런 법칙이 없는 숫자의 나열에 지나지 아니하므로 어떤 수열이 무작위수임을 증명할 방법도 없다. 증명의 수단이 법칙인데 아무런 법칙이 없는 것을 `무슨' 법칙으로 다룰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무작위수의 실용적 정의는 “무작위수가 아님이 판명되지 아니한 수열”이다.(주;'모순', '우연', '무작위수' 이런 것들은 실제로는 논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러한 무작위성이 어떻게 비가역성을 만들어 낼수 있는가? 다시 말하지만 동력학(뉴턴의 운동법칙뿐 아니라 양자역학까지 포함한)의 이론 대로라면 불가능하다. 모든 물리(역학) 법칙들 뿐 아니라 무작위성도 그 본질상 분명히 시간 대칭적인데 어떻게 시간 비대칭(비가역)성을 만들어 내는 일이 가능한가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에서는 지극히 당연하게 관찰되는 현상이다.

 

 

 

우리는 그 이론적 가능성을 "엔트로피와 확률 사이의 연계성"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엔트로피도 확률도 모두 어떤 실재적인 물리량이 아닌 개념적인 성질이다. 그 본질적 바탕은 '개념`이라는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것이다. 마치 양자이론이 양자의 실체를 베일로 가려 놓고는 <접근 금지 ; 양자(quanta)의 영역임>이라 선포한 일과 같다. 나는 <소립자의 식과 기>를 도입하면 식과 기로부터 비가역성이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되며,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이 떨쳐버리지 못하는 <접근금지>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소립자의 '의지`가 비가역성의 모태인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열역학 제2

법칙> 편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겠다.

 

 

생물의 진화는 시간의 비대칭성을 보여주는 비가역적 현상이다. 그러므로 진화는 물질의 본질적 성질에 의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물리법칙으로 -- 환원주의적 방식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고, 비가역성을 다룰 수 있는 열역학 제2법칙으로서만 설명할 수 있다고 프리고진은 주장한다. 그는 물질의 기본적 성질과 물리법칙들을 "있음 being"으로, 물질`들'과 법칙`들' 이 복잡계에서 자기조직화하는 현상을 "됨 becoming"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됨 becoming"은 물질 그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2차적'인 법칙이며 그것이 바로 카오스 계의 자기조직화 현상이라는 것이다. 결국 자기조직화 현상은 소립자 또는 기본 단위체에서는 찾

아 볼 수 없는, 기존의 물리법칙이 아닌 `고차원적'이며 `현상적 법칙'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허구적' 법칙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생명의 탄생, 진화뿐 아니라 의식까지도 물리법칙으로 분석할 수 있고 파악, 설명이 가능

하다는 환원주의적 기계론은 프리고진의 이론에 의해서 부정된다. 그리고 <전체 계>를 `통 합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는 <전체주의> 또는 <통합주의>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신이 생물을 창조할 때에 카오스 이론을 사용하셨다”라는 말처럼, 생물의 구조는 카오스 이론이 적용되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혈관의 분포는 사람마다 다르다. 만약에 자신의 유전자를 사용하여 자신의 복제인간을 만들더라도 그 혈관의 배치상태는 서로 다를 것이다. 왜냐하면 혈관의 배치는 DNA에 의해서 그 위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DNA의 유전정보 가 실행에 옮겨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카오스적 특성'에 의해서 카오스적으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DNA에 불필요한 정보의 부담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것은 카오스적으로 배치 형성됨으로 인해서 혈관이 가장 효율적으로 배치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혈관 특히 모세혈관은 모든 세포와 접할 수 있도록 배치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서투른 배관공(DNA의 배관설계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이 설계 시공한다면 우리 몸은 혈관으로 가득 차게 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혈관은 우리 몸의 약 5% 정도일 뿐이다. `복잡성'은 이처럼 경우에 따라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카오스 계 - 자연의 모든 복잡한 현상 속에는 엄연한 질서와 효율성이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그 질서와 효율성은 생명이나 진화, 의식 등 고도로 복잡하고 정교한 수준의 작품을 `저절로' 만들어 내기까지 하는 것이다. 카오스 이론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이러한 `카오스 현상', 그리고 그 특성과 결과는 알지만, 그 원인은 알지 못한다. 왜, 어떻게 그런 결과가 가능한 것인지는 카오스 이론에 나오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되 먹임 작용 feedback>이다. 되 먹임은 결과가 원인에 영향을 미치는 process를 말한다. 계 내에 되 먹 임 작용을 가지고 있는 비교적 단순한 계를 - 화학반응, 효소의 촉매작용, 생물집단의 개체 번식 숫자 등 -- 대상으로 한 수치 시뮬레이션을 통하여 그러한 현상을 엿볼 수 있는 수준을 아직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카오스 이론이 `금주의 인기 가요' 톱 텐에 오르고, 수많은 과학자와 수학자들이 달려들었지만, 초기 이후 지금까지 별 다른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먹이 감은 없는데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들만 우글거리고 있다"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카오스 이론의 수학적 기틀을 세운 만델브로트도 그의 저서 <자연의 프랙탈 기하학 The Fractal Geometry of Nature"에서 ”자기유사성 self-similarity에 대한 연구가 자연의 얼개를 이해하는데 엄청난 도움을 주지만, 자기유사성의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은 거의 실패로 돌아갔다“고 인정한다. '자기유사성`은 만델브로트의 업적인 프랙탈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  그러나 카오스 이론이 환원주의의 한계성을 노출시켰으며, 우리에게 자연을 보는 새로운 안목을 틔워준 공로가 있음은 사실이다.

 

 

 

이 이론의 요지는 카오스 계에는 환원주의적 방법으로 다룰 수 없는, 보다 더 복잡하고 조직적인 `현상'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복잡한 혼돈상태에서(안정된 평형상태에서 는 이러한 성질,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높은 수준의 질서(정보)가 저절로 생겨날(창발될) 수가 있다는 발견은 매우 놀랍고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현상'은 구성단위의 성질이나 움직임의 분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전체적인 규모에서 거시적인 관점에서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것은 종전까지 전혀 있으리라 예상하지도 못하였던 것이다. 일리야 프리고진의 책 “혼돈 속의 질서”가 그처럼 유명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이 점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러한 `새로운' 현상을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관찰된 결과가 그러해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카오스 이론이 나오기 이전까지 모든 과학자들이 무심히 그렇게 생각했던 것처럼 <자기조직화>등의 “2차적 법칙”이 없다 하더라도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다. 오히려 없는 편이 훨씬 더 당연해 이는 것이다. 불과 수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조차 없던 일이었지 않은가? 이러한 점에서 <전체주의>는 <환원주의>의 기계론적 입장에서 볼 때에 아직은 일종의 <신비주의 >이다. 근래의 <신과학 운동>이 환원주의자들로부터 공격당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사(疑似)과학까지 "신과학"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더욱 그러하지만).

 

 

 

카오스 계의 이러한 현상은 왜 생기는 것일까? -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생명의 탄생과 기>에서 다시 말씀 드리겠지만 역시 <식과 기>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카오스 계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입자들의 <식>이 <기>로서 발휘되어 <자기조직화>라는 놀라운 결과를 이루어 내는 것이라 해석하는 것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다.

 

 

 

카오스 이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자기조직화 특성이 자연계의 근본적 물리법칙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점과, 보다 상위의 어떤 2차적 법칙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의견이 일치하지만, <생기론> 등의 신비주의적 색채를 지닌 `무엇'을 가정하려는 생각에는 일제히 반대한다. `신비적'이라는 단어는 과학계에서 가장 기피되고 멸시받는 말이다. 내가 앞에서 “과학의 역사는 신과의 투쟁 역사이다”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시라. 학자들은 카오스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법칙을 찾기 위해 필사적이다. `신비적 특성'이란 혐의를 벗어나기 위해서이 다. 그러한 탐구의 목표는 자연에서 <비가역성>을 찾아내는 일이다. <비가역성>은 물질의 근본적 성질인가 아니면 카오스 계의 통합(전체)적인 성질인가? 여기에 카오스 이론의 문제 가 집약되어 있다. 더 상세한 것은 다음 <엔트로피와 정보, 그리고 식> 편에서 말씀드리기 로 하고, 여기서는 물질 입자들이 모여서 생명과 의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이론적 근거로서 카오스 이론의 자기조직화 현상(효과)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과정은 단순하다.

 

 

 

[소립자의 식은 원자를 구성할 수 있을 정도의 미소한 식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92종의 원자는 92 가지의 다양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원자의 식은 소립자의 식에 비해서 이미 현저한 수준 차이를 인식할 수 있다. 원자가 구성하는 분자는 그 종류와 기능의 다양함에 있어서 글로서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인체를 구성하고 모든 생체작용을 수행하는 약 백만 종의 체내 단백질분자를 보라. 이처럼 작은 식이 모여서 상위의 식을 만들 때에, 카오 스 계의 자기조직화 효과에 의해서 그 식의 수준은 조직의 복잡도(複雜度)에 지수적으로 비례 상승할 것이다. 인체는 약 10의 24제곱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단백질 분자가 모여서 이룩한 것이다. 그 복잡도를, 그리고 그에 의한 자기조직화 효과를 상상해 보라. 그리하면 인간 의식의 수준이 어째서 소립자나 단백질 분자의 식보다 그처럼 더 높은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자기조직화와 의식의 창발|작성자 nakedmind

 

 

 

 

자료 2--------프리고진, ‘혼돈으로부터의 질서’



과연 자연은 정해진 법칙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자동기계 장치이고, 그런 자연법칙을 알아낸 인간은 초자연적 존재일까? 그리고 역사를 지배하는 ‘시간’이란 과연 무엇일까?


‘열역학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노벨 화학상 수상자이자 사상가이며 저술가인 일리야 프리고진이 ‘복잡계의 과학’으로 해결하려는 궁극적인 의문들이다.


프리고진은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던 1917년 모스크바의 유복한 화공기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혁명의 소용돌이를 피하여 베를린으로 갔던 그의 가족은 나치의 핍박 때문에 다시 브뤼셀로 이주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피아노 연주자를 꿈꾸던 그는 철학, 고고학, 문학에 깊이 심취했었다. 그러나 청소년기에 법률가가 될 생각으로 범죄심리학에 관한 책을 찾던 중에 우연히 읽게 된 뇌의 화학적 조성에 대한 글을 읽고 화학에 매력을 느껴 화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열역학을 전공하게 된 그는 ‘비평형 상태’와 ‘비가역 변화’에 관심을 가져 ‘비평형 열역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고, 그 공로로 1977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에너지 보존과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바탕으로 하는 열역학은 기본적으로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평형 상태’를 대상으로 한다. 예를 들어 그릇 속에서 일정한 온도로 유지되고 있는 물이 바로 그런 평형 상태에 해당한다. 주위의 온도가 낮아져서 얼음이 되면 또 다른 평형 상태에 이르게 된다. 평형에 있던 물이 얼어서 새로운 평형 상태의 얼음이 될 때의 에너지 변화를 분석하는 것이 바로 평형 열역학의 목적이다.


물을 얼렸다가 다시 가열해주면 처음과 똑같은 물이 된다. 그런 변화를 ‘가역 변화’라고 하는데,가역변화는 주위의 조건에 따라서 어느 방향으로나 일어날 수 있다. 물이 얼고,얼음이 녹는 것이 바로 그런 변화다.


그러나 물에 잉크를 떨어 뜨리면 잉크는 물 전체로 퍼져나가서 새로운 평형 상태에 이르게 된다.이 경우에는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잉크가 처음에 있던 곳으로 모여드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이처럼 한쪽으로만 일어나는 변화를 ‘비가역 변화’라고 하고,이런 변화의 방향을 예측하기 위해서 도입한 것이 바로 무질서도를 나타내는 ‘엔트로피’라는 개념이다.


평형 열역학에서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있음’에만 관심을 두고,잉크가 퍼져 나가고 있는 것과 같은 ‘됨’의 상태는 단순히 ‘일시적’인 것으로 여겨왔다. 있음의 상태는 안정성이 그 특징이고,그 변화의 방향과 결과는 뉴턴역학이나 양자론으로 확실하게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프리고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열역학적인 ‘있음’의 상태가 특별한 예외이고,오히려 비평형의 ‘됨’의 상태가 일반적임을 인식했다.그가 주창하는 ‘복잡계의 과학’은 바로 그런 비평형 상태에서 일어나는 ‘비가역적,비선형적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이다. 복잡계는 설명에 필요한 변수가 많아서 복잡하다는 뜻이 아니라 평형에서 멀리 떨어져서 복잡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그런 복잡계에서는 미시적인 요동(搖動)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평형에 가까운 경우와는 달리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요동이 증폭되기 때문에 불안정한 특성이 나타나게 된다.


프리고진은 물질과 에너지의 출입이 가능한 열린계가 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미시적 요동의 결과로 무질서하게 흐트러져 있는 주위에서 에너지를 흡수하여 엔트로피를 오히려 감소(무산,霧散)시키면서 거시적으로 안정한 새로운 구조가 출현할 수 있음을 밝혔다.그렇게 생성된 새로운 구조를 ‘무산구조’라고 하고,그런 구조가 자발적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뜻에서 ‘자생적 조직화’라고도 한다.평형 열역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생명 탄생의 가능성을 알려주는 실마리가 되는 개념이다.


복잡계에서 일어나는 변화에서는 ‘가지치기’와 같은 현상 때문에 비가역적인 것이 그 특징이다. 즉,복잡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어느 순간에 두 가지 이상의 경로를 따라 진행할 수 있으며,그런 변화가 거꾸로 진행되더라도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그리고 실제로 어떤 경로를 따라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는 ‘확률론적’으로만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복잡계의 변화는 생물계의 ‘진화론’과 닮은 점이 많다.복잡계에 해당하는 자연을 결정론적 자연법칙이 적용되는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 분석하더라도, 부분을 합한 전체에서는 확실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프리고진이 과학철학자 이사벨 스텐저스와 함께 저술한 ‘새로운 연합’은 지금까지 17개국어로 번역되어 생물학에서부터 문학비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논쟁을 일으켜왔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혼돈으로부터의 질서’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비가역 변화를 연구한 프리고진이 ‘시간’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는 1996년에 발간한 ‘확실성의 종말’에서 시간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고,‘대폭발’도 그런 시간의 흐름에서 일어났던 하나의 사건이었다고 한다. 다만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는 경우에 따라 모두 다르다. 그래서 지능이 발달한 동물도 나타나고,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하강할 수 있는 바다새도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프리고진의 사상은 인문학자들에게 극도의 거부감을 주던 데카르트적 세계관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극도의 비평형 상태에 있는 자연은 결정론적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장치가 아니라,인간의 행동과 마찬가지로 그 변화의 결과를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자연도 인간과 똑같은 존재라는 주장이고,자연을 ‘스스로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는 동양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렇다고 프리고진이 주장이 기존의 평형 열역학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양자론이 그랬던 것처럼 프리고진의 새로운 이론도 평형 열역학에서는 무시했던 비평형 상태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고,평형에 가까워지면 복잡계의 과학도 기존의 평형 열역학과 마찬가지로 안정성과 확실성을 되찾게 된다.


                                                                                                                                            /이덕환교수(서강대 화학과)



◆일리야 프리고진 연보


△1917년 모스크바(러시아) 출생


△1921년 리투아니아를 거쳐 베를린으로 이주


△1927년 나치박해를 피해 벨기에로 이주,정착


△1939년 브뤼셀자유대학교에서 화학 및 물리학 학사


△1941년 브뤼셀자유대학교에서 ‘비가역 현상에 관한 열역학적 구조’로 화학 박사


△1947∼87년 브뤼셀자유대학교 화학물리 교수


△1977년 노벨화학상 수상


△1987년∼현재 브뤼셀자유대학교 명예교수


△1959년∼현재 국제 물리 및 화학연구소 소장


△1967년∼현재 미국 텍사스대학교 물리 및 화학공학 교수,통계역학,열역학,복잡계 연구센터 소장


△1990년 일본 ‘떠오르는 태양’ 훈장



◆주요 저서


△1954년 ‘화학열역학’


△1954년 ‘비가역 과정의 열역학 입문’


△1962년 ‘비평형 통계역학’


△1971년 ‘구조,안정성,요동의 열역학 이론’


△1977년 ‘비평형계의 자기 조직화’


△1979년 ‘새로운 연합-과학의 변형’-한국어판 ‘혼돈으로부터의 질서’ 정음사(1988),고려원(1993))


△1980년 ‘있음에서 됨으로:자연과학에서의 시간과 복잡성’


△1988년 ‘시간의 탄생’


△1989년 ‘복잡성의 탐구’


△1992년 ‘시간과 영원 사이’


△1993년 ‘시간의 패러독스’ ‘카오스의 법칙’


△1996년 ‘확실성의 종말’

 

[출처] 프리고진, '혼돈으로부터의 질서'|작성자 nakedmind------------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