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히 많은 방을 가진 호텔이 있다고 하자. 이 호텔의 방 번호는 자연수를 이용해서 1호실, 2호실, 3호실, … 로 나타낼 수 있다. 어느 날 밤 이 호텔에 무한히 많은 손님이 와서 호텔 방들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자정이 되어 한 사람의 손님이 더 왔다고 하면, 이 손님은 이 호텔에 묶을 수 있을까?
이 문제의 호텔을 힐베르트(Hilbert David, 1862 - 1943)의 호텔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무한히 많은 방을 가진 호텔은 실제로 존재할 수 없지만 논리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게 된다. 무한의 세계는 직관이나 유한의 세계와는 다른 것이 많다. 이 문제의 답을 생각해보면
「새 손님은 1번 방에, 1번 방의 손님은 2번 방에, 2번 방의 손님은 3번 방에, 3번 방의 손님은 4번 방에,… 」
즉, n번 방의 손님을(n+1)번 방에 묶게 하면, 한 사람도 내보내지 않고도 새로운 손님을 묶게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방법을 반복하면 1호실은 항상 빈 방이 되게 할 수 있으므로 무수히 많은 손님이 새롭게 나타나도 이 호텔에서는 항상 묶게 해 줄 수 있게 된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보티첼리의 " 비너스의 탄생 "
『계영희 교수의 명화와 함께 떠나는 수학사 여행』은 “수학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라는 질문을 역사적으로 설명해준다. ‘철학적 논제’들이 어떤 천재에 의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듯, ‘수학적 명제’도 수학자 개인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 본 것이다. 한국수학사학회 등에서 지속적으로 수학사 연구를 해온 계영희 교수는 “수학의 본질은 사고의 자유입니다. 생각만 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수학은 미술과 마찬가지로 시대정신의 반영입니다.”라고 말한다. 즉 수학을 이해하려면, 역사라고 하는 시대정신의 흐름을 알아야 하고, 그 시대정신의 흐름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 수학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매개해주는 것이 ‘역사’와 ‘예술’이라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시대정신 속에서 생긴 수학- 역사를 알아야 수학도 쉽게 보인다고 본 것이다.
1886, Art Institute of Chicago
필자는 미술의 통사적 진보는 학문으로서 수학의 진보와 한배라는 보았다. 계 교수는 그 예로 점묘파 화가 쇠라를 등장시킨다. 작은 점의 집합이 그림이 되는 것이다. 그가 처음 탄생시킨 기법이다. 흥미로운 것은 1883년에 첫 점묘파 그림과, 수학에서 칸토어의 집합론이 동시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수학에서 점들의 집합이 곡선과 곡면이 되듯, 회화에서 점집합이 사람과 나무로 표현됐다고 저자는 말한다.
세잔느, 사과와 오렌지 (1895~1900)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역사상 유명한 사과가 셋 있는데, 첫째가 에와의 사과이고,둘째가 뉴턴의 사과이며, 셋째가 세잔의 사과다.
칸토어의 집합론 발표 이후 수학의 추상화 작업이 시작됐다. '세잔느의 세계'를 영접하려는 듯이. 저자는 세잔느의 사과 그림에 대응하는 수학적 이론으로 토폴로지의 '위상수학을 내세운다. 연속함수에 의해 점이 점으로 옮겨가는 것만을 문제삼는 토폴로지의 세계에선 넓이, 크기, 길이와 관계없이 삼각형과 사각형 그리고 원이 합동이 될 수 있다. 여러 시점에서 바라본 모습을 하나의 공간에 퍼즐처럼 조합해 원근법을 파괴한 세잔의 사과 그림은 유클리드적 3차원의 공간을 파괴하고 있다. 마티스와 피카소의 그림에서도, 길이와 크기 면적은 의미없는 요소가 됐다. 위상변환이 미술에 일어난 것이다.
피카소 Guernica. 1937. Oil on canvas. Museo del Prado, Madrid, Spain
앙리 마티스의 The Goldfish.
1912, oil on canvas, Pushkin Museum of Art, Moscow.
“분수는 어떻게 생겼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이 책은 고대의 이집트 문명을 통해 설명을 한다. 보통 빵과 맥주를 식사의 기본으로 삼고 있던 이 지역에서 화폐 대신 중요한 분배 수단은 빵이었다. 여기서 이집트인의 독특한 분수 개념이 생겨난다고 본 것이다. 이집트에서는 2/3를 제외하고는 항상 분자가 1인 단위분수를 사용했다고 한다. 가령 빵 2개를 3명이 나눈다고 해보자. 우리는 당연히 2/3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집트인들은 1/2+1/6 이라고 했다. 2명은 한 개에서 2/3를 잘라서 갖고 나머지 한 사람은 1/3짜리 두 개를 가지게 되면 공평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그들의 사고방식이었다. 그래서 번거롭더라도 여러번 자르는 방법을 택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빵 2개를 모두 2등분 하여 3명이 한 개씩 먹고 나머지 한 개를 3등분하여 공평하게 나누어 먹었다. 이처럼 분수라고 하는 것은 당시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다른 한편 피보나치가 수학의 암흑기인 중세에 새로운 빛을 비추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상인의 아들로 상업도시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싹트고 있던 상업도시에서 아라비아 숫자를 보급하였고 『계산판의 책』이라는 당시의 베스트셀러를 내기도 하였다. 이 책은 아라비아 숫자를 읽고 쓰는 법, 4칙연산, 분수의 계산, 돈을 바꾸는 환전문제, 피보나치수열 등을 담고 있다. 동방과의 교역이 활발해지고 있으니까 돈을 바꾸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관심을 끈 것이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을 토대로 중세수학의 천재인 피보나치가 탄생한 것이다.
이렇게 이 책에는 수학의 명제가 어떠한 역사적 현실과 배경 속에서 생겼는가가 담겨 있다. 수학을 보다 친밀하게 느낄 수 있는 길이 담겨 있는 것이다.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원근법 때문에 유명하다?-명화를 보면 수학이 보인다.
이 책은 나아가 서양 예술 속에는 많은 수학적 진리들이 숨어 있다는 점을 밝힌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필자는 화가가 캔버스 위에다 수평선, 지평선을 그리고 소실점을 첨가하는 원근법과 수학자가 좌표평면 위에 그래프를 그리기 위하여 수평선의 가로축과 수직선의 세로축을 교차시키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은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종이 위에 그려지는 가로와 세로의 축 위에 운동, 시간, 공간의 개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사고방식이 과학의 발전을 촉진하는 촉매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술의 원근법은 수학과 지도제작 나아가 과학에까지 그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수학은 역사와 미술 속에서 교집합을 만들어내면서 나름의 역사를 구축해왔다. 예술가와 수학가, 전혀 다른 곳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던 것이다. 수학의 대중화를 꿈꾸는 계영희 교수는
“위기를 맞고 있는 수학을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가깝게 접할 수 있게 할까 고민하다 나온 게 기존에 수학을 가르치는 방법을 바꿔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계영희 교수는 학생들이 수학에 점점 관심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수학은 역사이자, 미술이자, 생활이라고 이야기한다. 역사책을 읽듯이 즐겁게 수학책을 읽는다면, 훌륭한 조각과 명화를 보듯이 수학을 감상한다면 그 얼마나 즐거운 일이겠는가.
이 책은 공부하는 수학책이 아닌 즐기는 수학책을 지향한 책이다. 또한 미술사학자 노성두가 제공한 풍부한 명화들은 이 책이 수학책이면서 동시에 예술책임을 느끼게 해준다. 수학사의 시작 고대 오리엔트, 비례와 균형을 중시한 그리스 , 수도원에 갇힌 중세 수학, 도시의 발달로 상업산술이 발달한 르네상스, 빛, 운동, 속도를 중시한 근대, 안과 밖, 곡선과 직선의 경계를 허무는 현대수학 등...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The Last Judgement
1541,Fresco,539.37 x 480.31 inches / 1370 x 1220 cm
Cappella Sistina, Vatican
'Nearer My God To Thee' - "Anne Mur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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