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를 읽기 전에

나뭇잎숨결 2008. 10. 16. 13:59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을 먼저 읽어 봅니다.


이미지는 깊은 사실성의 반영이다.
이미지는 깊은 사실성을 감추고 변질시킨다.
이미지는 깊은 사실성의 부재를 감춘다.
이미지는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어떠한 사실성과도 무관하다
이것이 바로 지시 대상도 테두리도 없는 끝없는 시뮬라시옹의 순환 속 시뮬라크르이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 )는 마샬 맥루언(Herbert Marshall Mcluhan, 1911~1980)과 함께 미디어 연구의 쌍두마차로 평가받는 사회학자다. 각각 프랑스와 캐나다에서 태어난 두 사람은 동시대를 살았고 지리적으로도 가까이에 있었지만, 미디어를 바라보는 시각만큼은 극과 극을 이루었다. 맥루언의 시선이 낙관적이라면, 보드리야르는 비판적인 시선으로 미디어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현대 소비 사회는 상품이 아닌 광고를 소비한다고 말한다.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실제 사물보다 영화·드라마·뉴스 등 영상 매체가 전하는 이미지를 더 사실처럼 여긴다. 곧 사람들은 실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미디어가 만들어 낸 이미지를 먹고사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뮬라시옹』은 미디어의 발전이 가져온 어두운 면을 파악한 보드리야르의 독창적인 탐구가 잘 드러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인 ‘시뮬라시옹(Simulation)’은 프랑스 어 ‘시뮬라크르(simulacre)’의 동명사로 ‘시뮬라크르 하기’라는 뜻이다. 여기서 ‘시뮬라크르’란 우리말로 ‘가상(假像), 가장(假裝), 모방(模倣), 흉내’ 등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원래 저자가 의도했던 의미를 모두 전달하지는 못한다. 현대 프랑스 학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새로운 개념 만들기’의 특성상 우리말에 딱 들어맞는 용어를 찾기란 쉽지 않은 듯하다.


시뮬라시옹 현상은 네티즌들이 즐겨 쓰는 이모티콘(emoticon)과 여러모로 닮아 있다. 이모티콘이란,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의 감정이나 의사를 전달할 때 사용하는 특수한 언어로, 원래 있던 기호의 의미를 파괴하여 재구성한 뒤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실수나 난처한 상황을 표현한 땀 흘리는 아이콘(^^;;)이나 우는 표정(〉.〈) 등이 대표적인 예다. 마찬가지로 시뮬라시옹도 특정 대상을 가리키던 상징 체계가 그 의미를 잃어버리고, 복제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는 현상을 말한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미지는 현실을 모방하고 재현한다. 물론 작가의 주관적 관점과 의식에 따라 재구성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복사물이나 사진처럼 완벽하게 본뜨지는 못한다. 마치 추상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대상을 생략하고 변형해 인간의 욕망과 결합된 다양한 이미지를 표현한다. 예술뿐만 아니라 과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등장한 인간형 로봇 역시 사람과 많은 부분 닮아 있지만, 인간의 복잡한 메커니즘은 과감히 생략하고 단순하게 변형되어 탄생했다. 그러나 아무리 변형된 이미지라 하더라도 본바탕은 현실에서 찾을 수 있고, 사실과도 관련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 전통적 관점이었다.


그런데 보드리야르는 이미지야말로 사실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이미지는 오로지 사실성이 배제된 시뮬라크르로 존재할 뿐이고, 시뮬라크르가 자신을 끊임없이 복제하는 과정이 바로 ‘시뮬라시옹’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드리야르는 대표적인 시뮬라시옹의 모델을 ‘디즈니랜드’에서 찾았다. 디즈니랜드는 각종 놀이 기구와 환상적인 공간 연출을 이용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유희의 세계를 현실로 끌어냈다.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유원지인 디즈니랜드가 미국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자리 잡으면서 사람들은 ‘디즈니랜드’ 하면 ‘미국’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렇게 디즈니랜드가 미국의 이미지이자 상징으로 떠오르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실제 미국은 점차 사라져 가게 되었다.


이러한 예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인터넷상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얼짱 열풍’은 예뻐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과, 그것을 과시할 수 있는 매체 수단의 발달이 우연히 맞아떨어지면서 나타난 사회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뒷면을 들추어 보면 현대 소비 사회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광고 경쟁과, 연예 산업에서 요구하는 새로운 스타에 대한 욕구가 자리하고 있다.
한편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미지 복제의 영역도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영화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에서는 상상 속의 공간에서 허구의 인물들이 살아 움직인다. 또한 스포츠 중계방송은 현장에 있는 것보다 더 생생하게 순간을 반복적으로 확대해 준다. 현실에서 벗어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고, 진짜보다는 가짜가 ‘더 진짜 같은 진짜’가 된다. 보드리야르는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파생 실재(hyper-real)’라 부른다. 이제 세상에는 진짜는 사라지고, 파생 실재들만이 가득 차 있다. 반복적으로 조작된 가짜들이 마침내는 원본을 이긴 셈이다.


보드리야르는 각종 매체의 발달과 보급으로 세계는 하나가 되었다라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고, 사전보다는 인터넷 검색 창에서 정보를 수집한다. 사이버 카페에서 동호회 활동을 하고, 컴퓨터 게임과 개인 홈 페이지로 친구를 사귀며 여가 활동을 즐긴다. 인터넷과 텔레비전이 쏟아 내는 광고들은 끊임없이 구매 욕구를 충동질한다. 인기 영화배우가 한국을 대표하고, 연예인을 잘 따라 해야 매력적인 사람으로 간주된다. 소비와 여가의 중심에 미디어가 핵심 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세계 전체가 시뮬라시옹으로 변하고 있다. 대중 매체가 끊임없이 제시하는 이미지들이 현실 세계를 대체하면서 시뮬라시옹이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미디어의 발전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인터넷이 문화적 교양을 확대시키고, 의사 소통의 새로운 장을 열어 참여 민주주의를 활성화시켰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스팸 메일, 불건전한 정보의 확산, 인터넷 중독 등의 부정적 요소는 정부의 적절한 규제와 네티즌들의 올바른 윤리 의식이 강화될 때 비로소 해소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아무리 네티즌의 참여를 확대하고 매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정부의 규제를 강화한들 매체 그 자체의 성격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에 반대해 갖가지 노력을 기울여도 결국에는 시뮬라시옹의 일부로 포섭될 뿐이라고 선언했다. ‘저지 전략’이라 불리는 시뮬라시옹의 이러한 특성을 이야기하며, 그는 미디어로 구축된 가상 세계에 대한 암울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의 네오처럼 매트릭스의 바깥, 곧 현실 세계에서 가상 세계와 맞서 싸울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보드리야르는 대답한다. 시뮬라시옹 체계에서 바깥은 없다고. 이미 온 세상을 장악해 버린 매트릭스에 우리가 대항할 수 있는 출구는 단 하나다. 시뮬라시옹에 대해 거리를 두거나 침묵하는 것! 그런데 이것이 과연 우리의 삶에서 가능한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

 

“나는 소비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말로 그 본질을 규정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현대인에게 소비는 삶의 가장 커다란 목적이자 이유로서 자리잡고 있다. 오늘날 인간의 삶에서 ‘소비’는 더 이상 생존을 위한 필요의 범주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현대인들에게 행복과 사랑과 같은 매우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가치들의 내용까지 규정하고 있으며, 나아가 부모로서의, 연인으로서의, 친구로서의 역할과 행동 방식까지를 교육하고 지시하는 절대적 규범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계층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역할까지도 담당하고 있다.

 

  보르리야르는 <소비의 사회>에서 현대인을 지배하고 있는 소비주의 사회 체제와 가치 구조에 대해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1970년에 발표된 이 책에서 그는 마치 마르크스가 자본의 운동과 증식 과정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쳤듯이, 자본과 상품이 어떻게 현대인들의 의식과 가치 체계를 형성하고 지배하고 있는가를 ‘소비’를 매개로 해서 체계적으로 밝힌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현대 사회의 원리와 가치에 대한 훌륭한 통찰이자 비판으로서의 힘을 지닌다.

 

  현대인은 과거 그 어느 시대보다도 서비스 및 물적 재화의 증가에 따른 소비의 풍부함을 누리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인간들은 풍요롭게 될수록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니라, 사물들과의 관계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다. 새롭게 개발되고 생산되는 상품들의 리듬과 끊임없는 연속에 따라서 사람들의 삶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 인간들도 더욱더 사물 의존적이고 기능적인 존재로 전락해 가고 있다. 현대는 말 그대로 상품이 지배하는 시대, 곧 소비를 학습하고, 소비에 대한 사회적 훈련을 사회화의 주된 내용으로 하는 ‘소비사회’인 것이다.

 

  현대 사회 소비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소비자와 사물의 관계가 변화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사물들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유용성에서 상품들을 구매하지 않는다. 세탁기, 냉장고, 아파트 등의 상품들은 개별적인 사물들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제품을 생산한 기업의 이미지와 광고, 상표 등과 결합해서 그 도구적 유용성을 뛰어넘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으며, 소비자들을 보다 복잡한 소비의 동기로 유도하고 있다.

 

  결국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사물 자체를 소비하지 않는다. 자신과 타인을 구별짓는 기호로서 상품을 소비한다. 또한 그것은 사회적 의미를 지니는 것을 생산하고 조작하는 사회 구조적인 힘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지배받고 있다. 현대의 일상 생활에서 나타나는 소비는 대부분 유도된 소비 행태로서 존재하며, 궁극적으로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생산성’의 명령에 복종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품들은 그것이 얼마나 풍부하다고 해도 인간 활동의 산물이며, 또한 교환 가치의 법칙, 곧 이윤 증식의 목표와 원리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드리야르의 말마따나 “자본의 기호 하에서 생산성이 가속도로 상승하는 과정 전체 역사의 도달점이라고 할 만한 소비의 시대는 근원적인 소외의 시대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는 상품의 논리가 일반화되어, 노동과정이나 물질적 생산물뿐 아니라, 문화 전체, 성 행위, 인간 관계, 환각, 개인의 충동까지도 지배하고 있다. 모든 것이 이 논리에 종속되어 있는데, 그것은 단순히 모든 기능과 욕구가 객체화되고 이윤과의 관계에 있어서 조작된다는 의미뿐 아니라 모든 것이 구경거리가 되는, 즉 소비 가능한 이미지, 기호, 모델로서 환기, 유발, 편성된다고 하는 더 커다란 의미에서 그러하다.”

 

 

다니엘 부어스틴의 『이미지와 환상』을 더 읽어 보면 좋을 듯 합니다.


--------------------------------- 마샬 맥루언의 <미디어의 이해>에 부쳐 



저자 마셜 맥루한은 1960년대에 주목을 받기 시작한 캐나다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이다. 그 이론을 바탕으로 역사와 문명의 변화를 설명해 낸 중요한 현대 사상가이기도 하다. 고정관념을 뒤집는 새로운 발상법으로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역사의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설명하는 새로운 이론을 구축해 냈는데 ‘미디어의 이해’는 그 같은 미디어 결정론의 대표작이다.

1960년대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는 사람을 설득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당연히 메시지의 힘이라고 보았다. 미디어는 그저 메시지를 실어 나르는 용기(用器)일 뿐. 그런데 맥루한은 세상을 바꾸는 것은 메시지가 아닌 미디어의 힘이라고 ‘어이없는’ 주장을 한 것이다. 쇠붙이 같은 물질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미디어가 어떻게 그런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일까?

맥루한은 기술이 인간 몸의 다양한 기관과 기능의 연장(延長)이라는 지적에서 출발한다. 그 성능을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높여 주고 강화시켜 주는 것이 도구이며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술의 변화는 모든 사회적, 문화적 변동을 이끈다. 기술 중에서도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기술은 인류 사회 변화의 지배적 요인이다. 왜 그런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는 인간의 감각기관의 연장이어서 세상을 지각하고 인식하는 방법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책은 시각의 연장이요, 라디오는 청각의 연장, TV는 시각과 청각, 그리고 촉각을 동시에 연장시켜 주는 미디어이다. 우리의 감각기관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지각한다. 그러므로 한 사회 혹은 한 시대가 지배적 의사소통 수단으로 어떤 미디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대상에 대한 지각이나 인식은 달라질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생각하는 체계, 사회관계, 문화도 바뀌게 된다.

예컨대 TV라는 전자 매체는 거의 모든 감각기관의 연장이어서 시각 위주였던 문자시대의 과도한 분석적 사고, 개인주의, 합리주의의 병폐에서 벗어나 총체적인 사고능력을 가진 균형 잡힌 인간형으로 유도한다. 게다가 우리의 감각기관을 즉각적인 주변 환경만이 아니라 전 세계, 우주 공간의 구석구석까지 연장시켜 주어 지구 차원의 연대의식이 가능한 지구촌 사회를 형성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므로 미디어는 메시지이다.

TV 이후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 DVD, DMB, MP3 등 새로운 미디어는 과연 우리 자신과 역사와 문명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 것인가? ‘미디어의 이해’에 이어서 맥루한의 사후에 발표된 ‘미디어의 법칙’이라는 책을 읽으면 그 답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 책의 핵심은 다음의 4가지 문제 풀이이다. 새 미디어가 확장시켜 주는 것은 무엇인가?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회복시켜 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의 사용이 고도화되어 한계에 달할 때 어떤 반전의 잠재적 가능성을 가지게 될 것인가? 이 두 책의 도움으로 새로운 미디어를 대입시켜 문제 풀이를 해 본다면 아마도 21세기가 어떤 역사를 만들어 나갈 것인지 맥루한식으로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박명진 서울대 교수 언론정보학과

 

 

 

 

 

 

 

 

 

 

------------------------------- 마샬 맥루한은 누구인가?

 

 

 

허버트 마샬 맥루한(Hebert Marshall McLuan·1911∼1980)

마샬 맥루한만큼 평이 엇갈리는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금세기 최고의 미디어 이론가'라는 찬사에서부터 '바보상자(TV)의 도사'라는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비평가 톰 울프의 말처럼 "만약 에 그가 옳다면 어쩔 것인가?" 프로이트나 아인슈타인에 버금가는 우리 시대 최고의 사상가로 대접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란한 은유에도 불구하고 맥루한의 이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먼저, 그는 모든 매체가 인간 능력의 확장이라고 본다. 책은 눈의 확장이고, 바퀴는 다리의 확장이며, 옷은 피부의 확장이고, 전자회로는 중추신경 계통의 확장이다. 감각기관의 확장으로서 모든 매체는 그 메시지와 상관없이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말하자면 매체가 곧 메시지이다. 같은 메시지라고 하더라도 얼굴을 맞대고 직접 말하는 것과 신문에 나오는 것, 그리고 TV로 방송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결국 매체가 다르면 메시지도 달라지고 수용자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여기서 맥루한은 모든 매체를 그것이 전달하는 정보의 정세도와 수용자의 참여도에 따라 쿨(cool) 미디어와 핫(hot) 미디어로 구분한다. 맥루한에 의하면 신문과 영화, 라디오는 핫 미디어이지만 텔레비전, 전화, 만화등은 쿨 미디어이다. 쿨 미디어는 핫 미디어보다 정보의 정세도가 낮아서 수용자의 높은 참여, 즉 더 많은 상상력이 요구되는 매체이다. 맥루한은 그 시대의 지배적인 매체가 무엇이냐에 따라 문명의 성격도 달라진다고 보았다.

 

맥루한에 의하면 원시부족시대에 인간은 청각, 시각, 촉각 등 오감이 조화를 이뤄 감각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술혁신으로 감각이 확장되면서 감각의 균형은 무너지고, 그것은 다시 기술을 낳은 그 사회를 재구성하게 된다. 즉 알파벳처럼 시각적으로 고도로 추상화된 인쇄문자의 발명은 원시인들의 감각균형을 무너뜨려 시각중심형 인간을 만들기 시작했고, 16세기 인쇄술의 발명은 이런 시각중심현상을 가속화시켰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전신의 발명으로 전자매체시대가 열렸고, 특히 복수의 감각을 요구하는 텔레비전의 발명과 보급은 인간의 감각균형을 복구시켜 궁극적으로 인류를 다시 부족화시킬 것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말하자면 선형적 논리에 매몰되었던 인쇄시대의 시각 중심형 인간이 감각의 균형을 되찾는 것이며, 오래 전에 추방되었던 낙원으로 복귀함을 의미한다.

 

인류문명에 대한 맥루한의 이런 기술결정론적 관점은같은 캐나다 사람인 해롤드 이니스로부터 영향받은 것이다. 이니스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혁신이 사회변천의 원천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기술혁신에 대한 그의 입장은 대체로 비관적이었다. 왜냐하면 기술발전으로 인해 나타나게 될 커뮤니케이션의 독점이 궁극적으로는 문화적 유산을 파괴하는 억압적 권력으로 작용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맥루한의 생각은 달랐다. 초기에는 이니스의 영향이 컸지만 대표작인 '구텐베르그 은하'(1962)와 '미디어의 이해'(1964)에 이르러 그는 테크놀러지의 잠재력을 찬양하게 된다. 즉 현대의 전자과학기술 이 세계를 하나의 지구촌으로 만들고 인류를 인쇄시대의 선형적 세계에서 해방시킬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의 이런 낙관적 기술결정론에 대해선 논란이 많지만, 어쨌든 맥루한은 자신의 생각을 재치있는 문장이나 극적인 은유로 표현하는 데 능했다. '미디어는 마사지'라는 표현이나 쿨 미디어와 핫 미디어 같은 용어는 그의 독특한 언어감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이런 재치있 는 언어로 대중의 주목을 받는 대담한 가설을 제시함으로써 "그와 비교하면 슈펭글러는 오히려 신중하고, 토인비는 몹시 현학적"이라는 평까지 받았다.

그러나 폭넓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에 대한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논리적 설명이 부족하고 통찰력과 직관에 의존함으로써 비과학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맥루한 자신은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 탐구할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미디어에 대한 그의 진지한 탐구를 인쇄시대의 '선형적' 방식으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TV시대에 걸맞게 '온 몸으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그를 옹호하는 사람이건 반대하는 사람이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은 미디어에 대한 그의 견해가 대단히 독창적이라는 것이다. 역사학자 코스텔라네츠에 의하면 맥루한의 탁월함은 다른 사람들이 데이터만 보거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중요한 의미를 찾아내는 데 있다고 한다. 사이버 공간이 창출하는 가상현실의 세계가 급속히 확장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맥루한이 30년 전에 간파한것을 이제야 깨닫는 기분이다. 전자 네트워크의 신기술로 페르소나(가상인격)의 신세계가 창조되면서 우리의 삶이 근본부터 변하고 있지 않은가.

 

양승목(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 ) ▲1950년생 ▲서울대 신문학과, 동대학원 졸업. 미국 뉴욕주립대 언론학 석사, 스탠퍼드대 언론학 박사 ▲충남대 교수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현) ▲역서 '현대언론사상사', 논문 '한국의 민주화와 언론' '언론과 여론:구성주의적 접근'등.


[마셜 맥루한은…] 캐나다 출신 영문학박사

캐나다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미국 3대 네트워크 TV에 단골출연하고, 학자로선 드물게 시사전문지 '뉴스위크' 표지인물로까지 등장한 사람.

허버트 마샬 맥루한(Hebert Marshall McLuan·1911∼1980)은 캐나다인이면서 미국 미디어 팝 문화의 고승처럼 대우받는 인물이다.그는 사회과학자라기보다는 예언자로 평가받는다. 현대 매스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 사용하는 '미디어'란 단어와 가장 근접한 개념을 그는 35년전 이미 제시했다. '미디어의 이해'란 책에서다.

 

그는 1911년 7월 캐나다 서부 앨버타주 애드먼턴에서 스코티쉬,아 이리쉬계 양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1928년 캐나다 마니토바대학에 입학, 기계공학을 전공했으나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영국 엘리자베스1세 시대 시인 토마스 내시의 수사법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39년 미국 텍사스 출신 여배우 코린 루이스와 결혼한 그는 영화에도 애정이 깊어 나이 66세인 1977년 우디 앨런 감독의 '애니 홀'에 단역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엔지니어를 한때 지망했던 맥루한은 71년 그의 조카와 함께 속옷에서 오줌냄새를 제거하는 물질을 개발하여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발명가이기도 했다. 64년 '미디어의 이해' 출간이후 '텔레페서'(TV에 잘 출연하는 교수)가 됐고, 각종 강연, 인터뷰에 불려다닌 '스타 교수'였다.

 

1960년 인류학자 에드먼드 카펜터와 공저한 '커뮤니케이션의 탐구' 이후, '구텐베르크 은하'(1962년) '미디어의 이해'(1964년)로 '맥루한 시대'를 활짝 열었고, '맥루한적인' '맥루한주의'등의 단어가 국제 미디어학계에 전파돼 갔다. '지구촌의 전쟁과 평화'(1968년) '교실로서의 도시:언어와 미디어의 이해'(1977년)등을 계속해 펴냈다. 맥루한은 1980년 마지막 날 숨을 거두었지만, 그후에도 책 출간과 사상 소개는 이어졌다. '커뮤니케이션 저널' 1981년 여름호가 '맥루 한 특집'을 한데 이어, '맥루한 서신'(1987년) '미디어의 법칙:신과 학'(1988년) '지구촌'(1989년) '맥루한 요론'(1995년)등이 속속 나왔다. 이중 몇개 책은 그의 아들 에릭 맥루한에 의해 편집, 출간됐다. 1996년'와이어드' 1월호가 맥루한 특집을 했으며,한국에서도 민음사가 발행하는'현대사상'창간호(1997년 봄호)가 '맥루한 르네상스'를 특집으로 다루었다.

 

(진성호기자 : shjin@chosun.com)

 

[미디어 사상 변천사] 17세기 밀턴에서 발원…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의 미국 언론학자 허버트 알철은 저서 '밀턴에서 맥루한까지'(1990년)에서 현대 언론의 철학적 사상 뿌리를 17세기 영국의 존 밀턴에서 찾는다. '실락원'을 쓴 시인 밀턴(1608∼1674)은 '아레오파지티카'를 통해 "모든 주의와 주장이 이 땅위에서 자유로이 활동하게 하라"는 주장을 펴,최근 자유주의 언론의 창시자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밀턴의 사상은 18세기 프랑스에서 프랑수아-마리 아루에 볼테르 (1694∼1778)와 장-자크 루소(1712∼1778)에게 전승된다. 볼테르는 '의견의 자유'를 3가지 행복의 조건으로 주창했으며, 반면 루소는'언론의 사회적 책임론'을 폈다. 19세기, 존 스튜어트 밀(1806∼1873)과 칼 마르크스(1818∼1883)는 대립된 언론사상을 설파했다. 표현 권리를 찬미한 점에서 둘다 밀턴의 후예라 할수 있지만, 밀은 '개인'을, 마르크스는 '사회'를 중시하는 자세를 견지했다. 그리고 20세기. 맥루한은 선배들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테크놀로지 발달로 등장한 뉴 미디어 시대에 포착한 새로운 사상을 내놓았다. 그러나 맥루한은 특정 학파를 형성하지는 않았다. 그는 프리랜서의 역할에 머물렀고, 그의 생각들은 많은 미디어학자들에 의해 인용되고,때론 비판받기도 했다.

 

국내에는 그의 저서중 '미디어의 이해'(박영률출판사)와 '미디어는 마사지다'(열화당)가 번역, 소개됐다. '미디어의 이해'는 미국 MIT 출판부와 정식계약을 맺은 민음사에 의해 올 가을 새로 번역돼 출간 될 예정이다. 국내 미디어학자들은 현대 언론-미디어 사상사를 전공 하지 않더라도, 강의 시간에 맥루한을 단골로 등장시킨다.

 (진성호기자)

 

---------------------------맥루한 관련 국내 출판 저서들

 

인간의 확장:현대의 본질과 그 미래상
마샬 맥루한 / 집문당 / 1978년 11월

미디어는 맛사지다
마샬 맥루한 / 열화당 / 1988년 7월

 

 

 

 

* 미디어의 이해
마샬 맥루한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1997년 7월

 

 

 

 

미디어의 이해 : 인간의 확장
마샬 맥루한 지음, 박정규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1999년 12월

 

 

 

 

* 미디어는 맛사지다
마샬 맥루한. 꽹땡피오르 지음, 김진홍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1년 5월

 

 

 

 

* 구텐베르크 은하계
마샬 맥루한 지음, 임상원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1년 5월

 

 

 

 

맥루안
조너선 밀러 지음, 이종인 옮김 / 시공사 / 2001년 9월

 

 

 

 

* 미디어의 이해
마샬 맥루한 지음, 김성기 & 이한우 옮김 / 민음사 / 2002년 6월

 

 

 

 

노장, 공맹, 그리고 맥루한까지
김정탁 지음 / 월간넥스트 / 2004년 7월

 

 

 

 

지구촌
마샬 맥루한.브루스 R. 파워스 지음, 박기순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5년 5월



* 자료를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