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사유가 낳은 개념, 개념이 낳은 사유

나뭇잎숨결 2008. 10. 7. 16:13

 

[강좌인터뷰] 2008년 가을강좌 - 사유가 낳은 개념, 개념이 낳은 사유

 

자신이 어떤 것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뭘 알고 있다고 할 때, 사유한다고 할 때 그 분야의 핵심적인 개념, 즉 단어 몇 가지를 자신이 장악하고 있다면 그것을 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즉, 자신이 정치학을 한다고 할 때 정치학의 핵심 단어, 가령 권력, 지배, 국가, 사회, 정당성 등등.. 이러한 개념들에 대해 자신이 설명할 수 있다면 그 학(學)을 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러한 핵심개념들을 어떻게 사유하는지에 따라, 어떻게 질문하는지에 따라 사유는 그 사유가 갖고 있는 특이성들을 나타낼 것이다. 어려운 이야기 집어치우고, 만약 당신이 연애박사라고 자부한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연애에 대해서 핵심 개념을 들어 설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사랑, 매력, 에로스 등등의 개념을 들어 사유할테고, 어떤 이는 우정, 감응, 공통된 것등을 이야기 할테고, 나같은 사람은 권력, 지배, 환상 등의 개념을 들어 설명할 것이다. 여하튼, 그 핵심개념들을 뭘로 사유하건간에, 우리들은 이러한 핵심개념들을 통해 무언가를 사유할 수 밖에 없고, 어떠한 개념들로 사유할 것인지 그 자체가 사유의 양식을, 세계관을 드러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즉, 개념을 가지고 사유한다는 것, 사유로서 개념을 본다는 것은 무언가를 제대로 아는데 핵심일 뿐 아니라, 이러한 개념들을 기반으로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헤쳐나가는 작업이자, 세계를 해석하는 기초작업이기도 하다.

 

어원학적으로 살펴보자면, 개념이란 영어로 'concept'이라 하는데, 이때 'cept'라는 말에는 어원상 ‘잡다’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요컨대 개념이 없다면 우리의 경험은 흘러가는 물처럼 그냥 다 지나가 버리거나, 설사 기억한다 해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일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개념이란 경험을 포착해 주고 또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개념을 한자어로 살펴보아도, 개념(槪念)이란 념(念)을 개(槪)하는 것, 즉, 념(念)자에 마음 심(心)자가 포함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음에 포착되는 것을 개(槪)하는것, 즉 평평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어떤 대상에 대한, 어떤 사람의 념이 일반화, 추상화, 보편화되는 것을 개념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기가 무엇을 알려하건 간에 그 핵심 개념을 잡아서 그 연원을 탐구하고, 그것이 어떻게 그러한 내용을 담게 되었는지 계보를 탐색하는 작업은 무언가를 안다는 차원에서, 무언가를 사유한다는 차원에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일일 것이다. 이번 강좌는 개념이 낳은 사유, 사유가 낳은 개념이라는, ‘개념’과 ‘사유’를 통해 철학과 역사, 문학, 경제, 정치, 정신분석학, 예술 등 서로 전혀 다른 분야를 가로지르며 외부, 욕망, 주체, 타자, 감응, 권력이라는 여섯 가지 개념을 통해 그 개념의 기원과 발생의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는 계보학적 탐사라는 거창한 제목을 내건 웅대한 프로젝트이다.

 

그럼, 이번 강의를 기획하신 이진경 선생님으로부터 이번 강의에 대해서 들어보도록 하자.

 

"원래 기획의 시작은 그린비 출판사에서 현대철학의 중요한 개념들을 설명하는 책을 내보자는 제안으로 시작했다. 현대철학을 주제별로 정의하는 한편, 그 주제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어떤 고유한 개념이든, 고유한 테제든 이런 것들을 담아서 책으로 엮어내면 좋겠다라는 거였고, 가능하면 강의를 통해서 강의 원고를 바탕으로 해서, 강의 내용을 추가로 덧붙여서 출판을 하면 좋겠다는 제안에서 시작하게 된것이다. 원래 그린비쪽에서는 이 시리즈를 100권 정도 내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이번 강좌에서는 그 중에서 6개의 핵심개념들을 정해서 강의를 하고, 앞으로도 계속 다른 개념들을 가지고 이 <사유가 낳은 개념, 개념이 낳은 사유> 강의를 계속하게 될것이다.

 

개념을 간단히 설명하는건 어려운건 아닌데, 이번 강의는 그런 목적은 아니다. 개념을 축으로 해서 현대 철학적인,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나름대로 정리하면 좋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있었다. 단순 평면적 해설을 넘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이야기되듯이 개념이 어떤 방식으로 사유되었는가라는 소개적 차원의 ‘개념사’가 아니라, 개념을 통해서 개념이 갖고 있는 사유방식 자체를 드러내고 싶다. 각각의 개념들을 정의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가 있을텐데 이러한 정의들의 줄기를 꿰어나감으로서 테제화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즉, 그 개념이 문제가 되는 상황, 문제가 되는 이론적 조건이랄까 지반을 살펴봄으로서, 개념을 통해 사유를 해보자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해서 일단 개념 하나하나를 충분히 서술한다는 점에서 이 시리즈는 초보적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 개념들을 통해 현대 철학, 넓게는 역사, 문학, 경제, 정치, 정신분석학, 예술에 이르는 사다리를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냥 사전을 찢어 놓아서 단순히 쉽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다기 보다는 개념 안에서 관련 주제를 입체성있게 드러내주는게 필요할 듯 하다. 따라서, 이번 강의가 단순히 초보자들을 위한 것뿐만이 아니라, 그 주제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꾀는 독자적인 사유를 제공하는 기회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들뢰즈는 ‘철학이란 개념을 창안하는 작업이다’라는 식으로 철학을 정의한 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유한 개념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하나의 철학, 하나의 세계를 보는 방법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듯하다. 흔히 철학자들을 다룰 때 그 사람에 대한 개설적인 소개보다는 하나의 개념을 통해 정리하면서 문제의 역사로서 사유의 방법을 검토하는 방식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문제가 어떻게 제기되는가, 그것을 통해서 어떤 질문들이 던져져 왔는가. 그런 질문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보려했던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강좌도 한 사람의 사상을 소개하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개념들을 통해 질문하는 방식과 세상을 드러내는 방식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 점에서 개념을 통해서 살펴본다는건 그 주제에 대해 간결하고 좀 더 분명하게 해주기 위한 거지만, 개념들을 통해 다른 개념과의 연결성을 살펴보고, 그 개념을 중심으로 세워놓고 다른 개념들과의 관련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좀 더 체계적이고 입체적인 틀을 세울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다음 강좌 시즌에도 계속해서 이어질 <사유가 낳은 개념, 개념이 낳은 사유>의 첫 번째 기획강좌는 10월 16일 목요일 저녁을 시작으로 다음과 같이 진행됩니다.

 

 

1강. (10. 16) 외부: 외부를 사유하는 세 가지 방법 (이진경)
2강. (10. 23) 욕망: 욕망이라는 공장, 욕망이라는 극장 (박정수)
3강. (10. 30) 주체: 다질적 힘들의 아쌍블라쥬 (정정훈)
4강. (11. 6) 타자: 타자라는 질문 (고봉준)
5강. (11. 13) 감응: 다른 삶의 방식을 생산하는 방식 (권용선)
6강. (11. 20) 권력: 부정의 권력인가, 생산의 권력인가 (이수영)

 

 

 

연구공간 수유+너머 웹진 지나 teseus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