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원] 2008 가을 이론학교 _ 스피노자 읽기
우리는 종종 외적인 이유들 때문에 나약하고 무능력해진다. 그리고 슬퍼진다. 인도에서 초 하나 켜기 겁나는 요즘, 특히 그렇다. 무언가에 붙들려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 맞닥뜨릴 때 우리는 자유에 대해 생각한다. 조금 더 자유로워지기를.
스피노자는 자유로운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선과 악을 규정하는 그 모든 기준을 뛰어넘어 다른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이라고.(에티카 4부 정리68) 선이 선이 아님을, 악이 악이 아님을 아는 사람. 선과 악을 뛰어넘어 사유하기란 인간을 뛰어넘는, 불가능한 미래의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한계를 돌파하는 일에 대하여, 어느 날 갑자기 외적 원인들이 삶을 꿰뚫고 들어올 때를 대비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이성에 따라 인도되는 인간은 오직 자기에게만 복종하는 고독 속에서보다는 공통된 결정에 따라 생활하는 국가에서 훨씬 더 자유롭다.”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할 때, 집단적인 신체를 만들 때 우리는 삶의 문제들을 뛰어넘을 수 있다.
9월에 열릴 이론학교에서는 스피노자의 『에티카』, 『신학정치론』, 『국가론』을 ‘함께' 읽고 토론한다. 삶을 견디는 것이 아닌, 그것을 뛰어넘어 “아무에게도 화내지 않으며 질투하지 않고 격분하지 않으며 아무도 경멸하지 않고 결코 오만하지 않는” 법에 대하여 말하는 스피노자.(에티카 4부 정리73 증명) 손기태 교장 선생님께 ‘지금 여기에서 함께' 스피노자를 읽는다는 것에 대해 들어보았다.
Q. 이론학교 처음 스피노자를 읽는 것 같은데요, 스피노자를 읽는다는 것에는 여러 의도와 의미들이 있겠지만 선생님께서는 어떤 것을 생각하고 계신가요?
A. 우선 지금 스피노자를 읽는다는 것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가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스피노자가 던져주는 새로운 시선입니다. 스피노자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자신과 사물, 세계, 나아가 우주를 바라봐요. 스피노자를 처음 읽었을 때 놀랍고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간의 시각에서 벗어나 사유한다는 것이었습니다.『에티카』1부 부록에 ‘인간 중심적인 시각'에 대해 지적하고 비판하는 글이 나오는데, 이를테면 비추기 위해 존재하는 태양, 물고기를 기르기 위한 바다, 먹기 위한 물고기와 같이 인간들은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본다는 것이죠. 스피노자는 그것을 아주 근본부터 뒤흔들어놓는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에게 유리하면 선, 불리하면 악이라는 시각에서 아예 떠나 생각하라고 말하지요. 부록의 아주 짧은 몇 페이지에 불과한 글이었는데 그것이 제가 준 인상은 꽤 깊었습니다. 이것은 서양 철학, 서양 사상사 전반에 대결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근대 철학 이후 ‘인간주의의 강화'라는 면에서 봤을 때 스피노자를 읽는다는 것은 그 전에 가지지 못했던,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만들어준다는 것, 다시 생각하게 한다는 것에서 저는 깊은 인상을 받았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새로운 감각을 갖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다른 존재,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죠. 스피노자는 왜 슬퍼하고, 분노하는지, 왜 기뻐하고 좋아하는지에 대해 묻습니다. 마치 이런저런 사물을 바라보듯이 인간의 감정을 관찰합니다.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하죠. ‘인간은 사실 정서, 감정의 노예가 되기 쉽다.' 그러한 정서에 따라 판단하고, 싸우고, 갈등하며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또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이야기해줍니다. 그게 이른바 스피노자가 말했던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능동적 정서, 즉 기쁨의 윤리학일테지요. 이 두 가지가 이번 학기 이론학교에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Q. 스피노자를 주제로 논문을 쓰신 걸로 알고 있는데, 스피노자는 그때부터 읽기 시작하셨나요? 스피노자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셨는지…….
A. 석사 논문을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신 개념에 대해서 썼었죠. 쓰면서 몇 달 동안 친구들과 스피노자만 읽었어요. 논문을 쓰려면 적어도 6개월 이상은 지겹고 힘든(^^) 공부를 해야 할텐데,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었죠. 그래서 그전부터 공부해보고 싶었던 스피노자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스피노자를 공부하고 싶었던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신'이라는 개념 때문이었어요. 특히 기독교에 대한 많은 비판들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일련의 현상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스피노자를 읽으면서 제가 갖고 있던 문제들을 많이 풀었던 것 같습니다. 스피노자의 책은 전통적인 서양 철학의 용어로 말하지만 도리어 그것을 통해 서양철학의 틀을 극복하고 있거든요. 스피노자는 ‘신'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걸 가만히 듣다보면 기존의 신 개념에서 완벽하게 벗어나게 됩니다. 어떻게 그런 마술같은 일이 가능했을까. 읽으면서 감탄했었죠.
Q. 교장 선생님에 따라(^^) 이론학교에도 수업 방식이 여러 가지잖아요. 이번 스피노자 이론학교는 어떻게 진행하실 예정인가요? 덧붙여서 수강생들이 이론학교를 통해 어떻게 달라질지,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지도 기대되는데요.
A. 이론학교의 수업 진행 방식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매주 글을 쓰는 야만적인 짓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읽을 분량도 페이지로 따지면 매우 적습니다. 『에티카』, 『신학 정치론』, 『국가론』을 다 읽기는 하지만, 넉 달 동안 읽을 것을 생각하면 부담이 적은 편이지요.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주 어떤 주제에 대해 발제를 해달라는 부탁을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참고서적을 함께 읽으면서, 토론하는 식의 수업이 될 겁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것으로 하고요.
사실 스피노자는 여러 철학자들에게 주목을 받았죠. 알튀세, 들뢰즈, 네그리……. 단지 철학자로서의 면모 뿐 아니라, 그의 정치학, 윤리학, 심지어 들뢰즈의 경우에는 동물학까지 다양하게 언급되고 있죠. 이렇게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되는 스피노자이기 때문에 수강생의 수준이 어떻든지 간에 얻어갈 만한 것들이 아주 많다고 생각합니다. 알튀세, 들뢰즈, 네그리 이전에 스피노자란 플라톤의 후예, 정통 철학자의 후예, 동일성의 철학자 등으로 알려져 있었죠. 헤겔 철학의 전단계 정도로만 인식되던 스피노자의 새로운 면모들이 재발견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게 된 것인데…… 실제로 첫 시간에 에티카를 읽게 되면 ‘뭐 이런 책이 다 있어!'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 처음의 몇 페이지를 읽었는데 그 중 한 단 문장도 이해가 안되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죠. 1부는 특히 악명이 높아서, 읽다가 관둔 사람도 많고……. 사실 저도 혼자 읽으라고 했으면 못 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론학교에서는 여럿이 함께 읽을 테니까, 그 부분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럿이 함께 읽는다는 것, 그러면서 서로의 생각도 나누고 오독한 부분들도 고쳐나가면서 읽는다는 것은 혼자 읽었을 때와 비교할 수 없는 효과가 있으니까요. 사전지식이 전혀 없더라도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Q. 이론학교를 통해 스피노자가 던지는 질문들이 여러 개 있을 텐데, 그 중 하나를 소개해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흔히 스피노자하면 에티카만을 떠올리는데, 신학정치론에서도 정말 놀랄만한 질문들이 던져집니다. “어째서 대중들은 자신의 예속을 욕망하는가?” 이런 질문은 라이히가 『파시즘의 대중심리』에서 던졌던 것과 같은 것이죠. 왜 독재자나 잘못된 종교지도자들을 추종하며 사는 것이 마치 자신의 행복인 양 사는가? 대중들은 어째서 자신의 예속을 욕망하는가? 이는 근대 정치체제에서 결코 해결하지 못했던 난제이기도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스피노자를 읽는다는 것에 대한 의미는 여러 가지겠지만, 이런 면에서도 중요할 것 같네요. 왜 착취와 억압이 심한 독재자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가? 이렇게 질문을 던질 수도 있겠죠. 어째서 서울 시민들은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공정택을 찍었을까? 왜 서민들이 많이 사는 노원구에서 노회찬이 아닌 홍정욱이 뽑혔을까? 신학정치론의 서문에서는 바로 이와 같은 문제점들이 제기됩니다. 함께 넉 달간 열심히 공부하다보면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과거에 스피노자와 함께 많은 문제들을 풀어갔었던 것처럼, 이론학교에서도 스피노자를 함께 읽으며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실체니 속성이니 양태니 원인이니 하는 서구 형이상학의 개념들이 계속 등장하니까, 생소하기도 할 거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할 겁니다. 그렇지만 스피노자를 읽으면서 그런 개념을 단순히 ‘공부'하기보다는, 직접적인 삶의 문제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개념만 알려고 하는 그런 자리로 생각한다면 따분하고 재미없는, 좀 아까운 시간이 될지도 모릅니다. (^^) 스피노자라는 이름으로 스피노자가 마련한 하나의 장 안에서 더불어 지낼 수 있고, 어울릴 수 있고, 생각도 나눌 수 있는 그런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면서 스피노자가 말한 이른바 ‘공통개념'이라는 것을 형성해가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론학교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거나 신청하고 싶으신 분들은 링크를 참고하세요.
연구공간 수유+너머 웹진기자 유 micronomic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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