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원] 2008 가을 고전학교, 불교와 현대서양철학의 만남
어느덧 새 학기가 목전에 다가오면서, 가을 연구실 프로그램들을 준비하는 회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강학원과 가을강좌, 그리고 학술제까지 연구실의 굵직굵직한 일정들을 소화해야 하는 연구원들의 여름은 그리 길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올 가을 강학원은 오랜만에 세 학교가 모두 개강 준비를 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흥미로운 주제들로 학인들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고전학교가 내건 커리큘럼은 단연 눈에 띈다. 대승불교의 핵심적 이론서의 하나인 나가르주나(용수)의 『중론』과 프랑스 현대철학의 거목으로 불리는 질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가 이번 고전학교에서 선택한 텍스트들이다. 천 년이 넘는 세월의 간극을 가지고 있는 이 두 텍스트가 어떤 만남을 준비하고 있는지, 이번 학기 고전학교를 준비하고 있는 윤세진 선생님을 찾아가 직접 들어보았다.
Q. 지금까지의 고전학교 커리큘럼은 주로 사서(四書) 위주로 편성되어 왔었는데요. 이번엔 종전과는 다른 의도로 기획된 것 같습니다. 어떤 취지에서 준비하게 되셨는지요.
A. 강학원을 시작한지 3년 정도 된 것 같네요. 고전학교에서는 주로 동양 고전을, 그 중에서도 특히 유교 경전들을 중심으로 공부해 왔어요. 공부 방법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암송을 꼽을 수 있겠죠. 굉장히 재미있고, 도움도 많이 되는 시간들이었어요. 그런데 공부를 하면서 고전을 너무 ‘덕담집'처럼 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이 생기더라구요. 실제로 동양 고전은 개인들의 문집 위주로 이루어져 있어서, 서양 텍스트들과는 달리 체계적이지가 않아요. 그래서 대개 공부 범위가 좋은 책 읽고, 암송하고, 수신(修身)하는 방법을 찾는 데 한정되기가 쉬운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중요한 개념을 접근할 때도, 사유의 치밀함이랄까, 그런 게 좀 떨어진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물론 그런 것이 공부의 전부는 아니지만, 공부를 할 땐 치밀하게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훈련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주제학교나 이론학교에서는 주로 이 부분에 집중해서 공부를 많이 했지만, 고전학교에서는 확실히 그런 부분들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거죠. 그래서 이번에는 이런 부분들에 좀 더 집중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을 했습니다.
Q. 어떻게 『중론』과 『의미의 논리』가 선정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동양 고전을 공부한다고 하면, 불교라는 거대한 사상체계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지 않고 동양 고전을 공부한다는 것은 말이 좀 안 되죠.(^^) 불교의 무수히 많은 경전들 중에서도 『중론』은 특히 공(空)사상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이론서입니다. 불교를 사상적으로 이론화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던 텍스트죠. 저도 아직 공부를 깊게 하지는 못했지만, 『중론』을 처음 접했을 때 현대서양철학의 사건, 시간, 의미 등의 개념들과 연결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이러한 개념들을 주로 다루고 있는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를 함께 선정하게 되었죠. 처음의 문제의식은 불교의 공사상을 서양철학의 개념들과 연결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Q. 말씀을 들어보니 공부 내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공부하실 계획인가요.
A. 『중론』은 불교 전반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는 읽어내기가 쉽지 않아요. 게다가 텍스트 자체도 어렵구요. 어떻게 읽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불교학을 전공한 김영진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게 된 거죠. 제 문제의식과 기획을 얘기했더니, 재미있겠다며 관심을 보이시더군요. 그래서 불교 전문가를 모시고 같이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번에 같이 공부하시는 분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요. 그렇지만 두 텍스트를 놓고 이것도 읽어보고, 저것도 읽어보고 하는 식으로 공부해서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그 둘이 어떤 지점에서 만날 수 있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주요 텍스트는 『중론』이고, 공사상에 대한 공부가 가장 큰 주제죠. 그러니 신청하실 때 『의미의 논리』만 읽겠다는 생각으로 오시면 곤란해요.(^^)
대개 동양 고전의 개념들은 범박하게 이해해 버리고 넘어가기 쉬운 것 같아요. 개념을 뭉뚱그려서 이해한다고나 할까요. 도(道)나 덕(德) 같은 개념들이 대표적이죠. 이번에 공부하는 공사상도 이런 우려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공사상이라는 거대한 사유체계 안으로 진입할 때,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거예요. 『의미의 논리』는 막막하게 보이는 공사상에 접근하는 데 치밀함을 부여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인 거죠. 익숙한 서양철학의 개념들을 가지고 『중론』에 접근해 보자는 겁니다. 물론 두 텍스트의 개념들이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거나, 동형성을 띠지는 않을 거에요. 그렇지만 거칠게라도 『중론』과 가장 최근의 서양철학 개념들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보고 싶어요. 불교를 서양철학‘화'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서양철학의 개념들을 가지고 풀어내보자. 이것이 주된 공부 방법이 될 것입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A. 일단 『중론』과 불교에 관한 보조텍스트들을 중심으로 할 겁니다. 이번 학기 고전학교는 불교나 불교에서 말하는 것들에 대해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은, 조금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최소한의 배경지식을 위해 『불교와 인도사상』(예문)과 같은 입문서적들을 보조 텍스트로 넣어 두었습니다. 김영진 선생님과 함께 『중론』 강독을 할 거구요. 중간중간에 게송들을 암송하는 시간도 가질 겁니다. (암송하면 정말 좋아요^^) 『의미의 논리』는 다 읽지는 않아요. 사건이나 계열화, 주체 같은 개념들을 다루고 있는 부분들을 뽑아서 읽을 예정입니다. 들뢰즈는 모르고 오셔도 괜찮구요. 과정이 진행되면서 이 두 텍스트들을 연결해보는 에세이들을 써야 합니다.
Q. 끝으로 같이 공부하게 될 학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이번 고전학교는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들을 가지고 공사상을 풀어내보자는 데 그 취지가 있습니다. 처음 시도하는 것인 만큼 어느 정도 실험적인 측면도 있어요. 그래서 저도 아직 공부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 잘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능성들이 열려있고, 그래서 더 흥미롭게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불교 전문가를 모시고 불교 공부를 하게 된 것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공(空), 일체개고, 제행무상 같은 불교의 개념들을 들뢰즈의 개념들로 이해해보려는 시도들도 재미있을 것 같구요. 이번엔 공부를 좀 타이트하게 한다는 생각으로 가보고 싶습니다. 들뢰즈의 사유를 빌어 불교의 사유를 곱씹어 보는 과정을 통해 고전에 대한 치열함을 가질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 웹진 초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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