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에서, 초가집 뜨락에 피어있던 맨드라미. 이보다 더 황홀할 수는 없다는 듯...
萬波息笛(만파식적)-남편에게/김승희
더불어 살면서도
아닌 것같이,
외따로 살면서도
더불음 같이,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
간격을 지키면서
외롭지 않게,
외롭지 않으면서
방해받지 않고,
그렇게 사는 것이 아름답지 않은가?....
두 개의 대나무가 묶이어 있다
서로간의 기댐이 없기에
이음과 이음 사이엔
투명한 빈자리가 생기지,
그 빈자리에서만
불멸의 금빛 음악이 태어난다
그 음악이 없다면
결혼이란 악천후,
영원한 원생동물들처럼
서로의 돌기를 뻗쳐
자기의 근심으로
서로의 목을 조르는 것
더불어 살면서도
아닌 것같이
우리 사이엔 투명한 빈자리가 놓이고
풍금의 내부처럼 그 사이로는
바람이 흐르고
별들이 나부껴,
그대여, 저 신비로운 대나무피리의
전설을 들은 적이 있는가?....
외따로 살면서도
더불음 같이
죽순처럼 광명한 아이는 자라고
악보를 모르는 오선지 위로는
자비처럼 서러운 음악이 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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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지키는 아름다운 간격 / 칼릴 지브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의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 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 쪽의 한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 쪽의 빵만을 먹지는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에 묶어두지는 말라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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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피리같은 만남 속에서만 죽순처럼 광명한 아이가 자란다니,
사원의 기둥들처럼, 참나무와 삼나무처럼
사랑하되,
소유하지 않는 만남.
사랑하되,
아름다운 간격을 지켜낼줄 아는 만남.
사랑하되,
각자의 고유한 본성을 지켜주는 만남.
사랑하되,
더 많이 존중해주는 만남.
9월 마지막주 아침,
두 편의 잠언같은 시를 읽으면서
저절로 눈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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