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서(帛書)

오월은 성모 성월

나뭇잎숨결 2024. 4. 28. 16:34

 

 

성모성월의 유래: 어떻게 해서 교회가 5월을 성모성월로 지내게 됐을까요?

 

 

 

가톨릭교회는 해마다 5월을 정해 모든 신자들이 하느님의 어머니인 동정 마리아를 각별히 공경하면서 마리아의 도움을 청하며 아울러 마리아의 모범을 본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 본당에서는 성모성월 한 달 동안 공동 묵주기도를 바치고  특별히 하루를 정해 '성모의 밤' 행사를 갖기도 합니다. 성모성월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알아봅니다.

 

 

 

#1. 아기를 낳을 것이라는 천사의 말에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고 응답한 마리아는 얼마 후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엘리사벳에게서 인사를 받습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루카 1, 17-43)

 

 

 

#2.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그 곁에 서 있는 어머니와 제자 요한을 보시고 어머니에게는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하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제자에게는 "이분이 너의 어머니이시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사가 요한은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고 기록합니다(요한 19,26-27).

 

 

 

이 두 성경 말씀처럼 초기 교회 때부터 그리스도인들은 구세주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가장 복된 여인으로 공경하면서 아울러 교회의 어머니로 받들어 모셨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느님의 어머니' '평생 동정' '원죄 없이 잉태되심' '하늘에 오르심' 같은 마리아에 관한 주요 교리들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동방교회의 하나로 이집트의 옛 그리스도교인 콥트 교회에서는 11세기부터 이미 마리아 성월을 지냈다고 합니다. 12월부터 1월 사이에 지내는 마리아 성월은 예수님 탄생을 중심으로 하는데, 예수님의 탄생을 경축하면서 동시에 예수님을 낳으신 마리아를 기리는 달이었습니다.

 

 

 

역시 동방교회로서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하는 비잔틴 전례에서는 이미 13세기에 8월을 성모성월로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성모승천' 축일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마리아의 잠드심' 축일을 8월 15일에 지내면서 이 축일을 더욱 뜻깊게 경축하고자 축일 전 15일은 단식을 하면서 축일을 지내고 축일 후 15일을 축제일로 지낸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전통은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아랍제국인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함락되면서 더 꽃을 피우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비해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교회에서는 만물이 소생하고 꽃이 만발하는 계절의 여왕인 5월을 마리아의 달로 지내는 관습이 신자 대중들 사이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계절을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신 성모 마리아께 바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특히 스페인 카스티야 왕 알폰소 10세(1221~1284)는 5월의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과 성모 마리아를 통해 얻는 영적 풍요로움을 결부시켜서 5월을 성모 마리아께 기도하는 달로 지낼 것을 시사했다고 합니다.

 

 

 

이런 관습이 확산되면서 5월이 되면 성모 마리아께 꽃다발을 바치거나 찬가를 불렀으며, 성모성월을 뜻있게 지내도록 도와주는 신심서적들도 발간됐습니다. 17세기 말에는 이탈리아 피렌체 부근에서는 5월을 성모 마리아께 봉헌하는 성모 신심 단체가 생겼으며, 나폴리 지역에서는 5월 한 달 동안 매일 저녁 성모님께 찬미가를 바치고 성체강복을 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또 로마에서는 예수회원들을 중심이 돼 성모성월을 지내기 시작하면서 성모성월 신심의 확산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후 19세기에 들어와 온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에까지 확산된 성모성월 신심은 교황 비오 9세가 1858년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를 선포하면서 절정에 이릅니다. 그 이후에도 역대 교황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성모성월 신심을 권장했습니다. 비오 12세(1939~1958)는 성모성월 신심이 엄격한 의미의 전례는 아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전례적 예식으로 여길 수 있다며 이 신심 실천을 권장했습니다.

 

 

 

또 바오로 6세(1963~1978)는 1965년 성모성월에 관한 회칙 「5월」을 발표, 성모성월 신심을 평화를 위한 기도 수단으로 활용하고 이를 통해 마리아를 더욱 공경하며 이 영적 선물도 더욱 풍부히 받도록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한편 성모성월인 5월은 전례적으로 여느 달에 비해 성모 마리아 축일이 많은 달입니다. 13일은 파티마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이며, 24일은 옛부터 도움이신 마리아 축일로 지내 왔습니다. 또 31일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로 예전에는 모든 은총의 중재자이신 마리아 축일로도 지냈지요
 
 
 
 

 

 

 

 

 

 

 

성모 성심께 바치는 봉헌기도 

○어지신 어머니, 든든한 힘이신 동정녀,

하늘의 모후요 죄인의 피신처이신 성모님,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저희를 봉헌하나이다.

저희 자신과 가진 것을 모두 바치며 온전한 사랑으로

저희 가정과 조국을 성심께 봉헌하나이다.

● 저희 몸과 마음을 바치오니

저희 안에 있는 것, 저희 주위에 있는 것

모두 성모님의 것이 되게 하시고 저희에게는 오로지 성모님 사랑의 한몫을 나누어 주소서.

성모님 , 이 봉헌대로 살고자 저희는 세례 때와 첫영성체 때에 한 서약을 오늘 다시 새롭게 하나이다.

○ 저희는 신앙의 진리를 언제나 용감히 고백하며

교황과 그와 결합되어 있는 주교들에게 온전히 순종하며

하느님의 계명과 교회의 법규를 충실히 지키며

특별히 주일을 거룩히 지내고 자주 영성체할 것을 약속하나이다.

하느님의 영광 지극하신 어머니,

인류의 어지신 어머니,

온 마음을 바쳐 어머니를 공경하며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저희와모든사람의 마음과 저희 조국과 온 세계에 티없이 깨끗하신 성심의 나라를 하루바삐 세우도록 충실히 노력할 것을 약속하나이다.

● 아멘.

 

 

 

 

조규만바실리오주교의 마리아론(1)을 다시 읽어봅니다. 

 

 

 

마리아론(1)

 

 

- 조규만바실리오 주교

 


차 례
 
 
1. 성서 안에서의 마리아
 
1.1 구약성서 안에서의 구세주의 모친에 대한 예언과 예형
 
1.1.1 창세기 3,15 (원시복음)
1.1.2 엠마누엘의 모친 (이사야 7,14)
1.1.3 베틀레헴에서의 출산 (미가 5,1-2)
1.1.4 ‘시온의 딸’과 ‘새로운 백성’의 탄생
1.1.5 마리아의 예형들과 상징들
1.1.6 구약성서의 마리아에 대한 결론
 
1.2 신약성서 안에서의 마리아
 
1.2.1 바오로 서간에 나타나는 마리아
1.2.1.1 갈라디아 4,4
1.2.1.2 로마 1,3-4
1.2.1.3 필립비 2,6-11
1.2.1.4 갈라디아 1,19 와 4,28-29
 
1.2.2 마르코 복음
1.2.2.1 마르 3,31-35
1.2.2.2 마르 6,1-6
 
1.2.3 마태오 복음
1.2.3.1 예수의 족보 (마태 1,1,-17)
1.2.3.2 마리아의 예수 잉태 (마태 1,18-25)
1.2.3.3 동방박사의 방문 (마태 2,11)
1.2.3.4 예수의 공적 활동안에서의 마리아
(마태 12,46-50: 참조 마르 3,31-35)
 
1.2.4 루가 복음
 
1.2.4.1 예수의 유년기와 관련안에서의 마리아
1.2.4.1.1 예수의 탄생 예고 (루가 1,26-38)
1.2.4.1.2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루가 1,39-56)
1.2.4.1.3 마리아의 노래 (루가 1,46-56)
1.2.4.1.4 예수 탄생 (루가 2,1-20)
1.2.4.1.5 정결례, 할례와 아기 예수 봉헌 (루가 2,21-25)
1.2.4.1.6 시므온의 예언 (루가 2,34-35)
1.2.4.1.7 성전에서 다시 찾은 소년 예수 (루가 2,41)
 
1.2.4.2 예수의 공생활안에서의 마리아
1.2.4.2.1 요셉의 아들로 제시되고 있는 족보 (루가 4,23)
1.2.4.2.2 나자렛 사람들의 배척 (루가 4,16-30)
1.2.4.2.3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 (루가 8,19-21)
1.2.4.2.4 참 행복 (루가 11,27-28)
1.2.4.3 사도행전에 나타난 마리아 (사도 1,14)
 
1.2.5 요한 복음
1.2.5.1 요한 1,13
1.2.5.2 가나의 혼인잔치 (요한 2,1-12)
1.2.5.3 가파르나움에서 예수의 형제들과 함께 있는 마리아
(요한 2,12)
1.2.5.4 요셉의 아들 (요한 6,42)
1.2.5.5 믿지 못하는 예수의 형제들 (요한 7,1-10)
1.2.5.6 메시아는 베틀레헴으로부터 나오지 않느냐? (요한 7,41-43)
1.2.5.7 우리는 음행으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요한 8,41).
1.2.5.8 십자가 아래 서 계시는 마리아 (요한 19,25-27)
1.2.5.9 요한 묵시록 12장
 
1.2.6 신약성서의 마리아론의 결론


 
2. 교부들의 마리아론
 
2.1 초기 교부들
2.1.1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2.1.2 유스티노
2.1.3 리용의 이레네오
2.1.4 외경 야고버 복음
2.1.5 2세기경의 그 밖의 작가들
2.1.6 신앙 고백문의 형식
2.1.7 떼르뚤리아노
2.1.8 로마의 히뽈리또
2.1.9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2.1.10 오리게네스
2.1.11 3세기 교부들과 그리스도교 작가들
 
2.2 니체아 공의회에서 칼체돈 공의회까지의 교부들
 
2.2.1 동방교부들
2.2.1.1 체사레아의 에우세비오
2.2.1.2 예루살렘의 치릴로
2.2.1.3 아타나시오
2.2.1.4 에프렘
2.2.1.5 까빠도치아의 교부들
2.2.1.6 살라미나의 에피파니오
2.2.1.7 요한 금구
2.2.1.8 가발라의 세베리아노
2.2.1.9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2.2.1.10 5세기경의 동방작가들의 강론
 
2.2.2 서방교부들
2.2.2.1 마리오 비토리노와 힐라리오
2.2.2.2 밀라노의 암브로시오
2.2.2.3 예로니모
2.2.2.4 아우구스티누스
2.2.2.5 4-5세기의 서방 그리스도교 작가들
 
2.2.3 마지막 시기의 교부들
 
2.2.4 교부들의 마리아론 요약
 
 
3.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마리아론
 
3.1 마리아에 관한 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의 역사
3.2 교회헌장 제 8장의 구조
3.3 교회헌장 제 8장의 내용 요약
3.4 교회헌장 제 8장의 신학적 해석 기준과 신학적 전망
3.5 교리적 종합
3.6 결론



 

 

1. 성서 안에서의 마리아

 

 

1.1 구약성서 안에서의 구세주의 모친에 대한 예언과 예형

 

1.1.1 창세기 3,15 (원시복음)

 

“나는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네 후손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

(inimicitas ponam inter te et mulierem

et semen tuum et semen illius

ipsa conteret caput tuum

et tu insidiaberis calcaneo eius)

 

이 성서 구절을 두고 原福音, 또는 原始福音이라고 한다. 이유는 원조 아담과 에와의 범죄 이후 구원에 대한 최초의 기쁜 소식이기 때문이다. 교회 전승을 따르면, 이 구절이 성서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그의 모친에 대한, 여인과 그의 자식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라고 한다. Vulgata(불가따)번역본 성서가, 영어로 말하자면 “it”이라고 하는 비인칭 대명사를 “she”(ipsa)라고 하는 여성형 제 3인칭 단수 대명사로 대치한 오역부분이 마리아와 관련된 부분으로 해석 하는데 도움을 준다. 사실 에와는 자신을 유혹했던 뱀의 머리를 짓밟는 자와 거리가 멀고, 그 여인은 에와 보다는 다른 “어떤 여인”이어야만 한다. 여기에서 그 다른 여인, 다른 에와, 제 2의 에와가 바로 “마리아”이어야 한다는 것이 교회의 해석 입장이다. ‘제 2의 에와’라는 표현은 그가 자신의 선조로 첫번째 에와가 저질러 이루어 놓은 손상을 복구하였다는 의미에서 교부들이 마리아에게 즐겨 사용했던 표현이다. 오늘날 이 잘못된 번역에 대해서 그냥 방치해 두고 있다. 오늘날 어느 정도 이 구절이 그리스도의 모친에 관련된 것임이 분명한 까닭이다.

 

우리말 번역본에서 “여인의 후손”이라는 말에서 “여인”이라는 단어는 악마를 의미하는 뱀의 머리를 짓밟는 자의 모친으로서 여인이다. 악마의 머리를 짓밟는 자의 모친으로서 이 여인은 내용상으로 에와와 거리가 멀다. 악마를 쳐 이긴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한다면 그 여인은 예수의 모친 마리아가 되는 셈이다. 교회 전승은 이 여인을 마리아로 해석하고, 마리아를 일컬어 “제 2 에와”라고 일컫기도 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제 2 아담”이라고 부르는 데 기인한다. 예컨대, 로마서 5,12-21을 보면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담과 대조하면서 예수를 제 2 아담으로 부르고 있다. 이러한 바오로의 해석을 적용하여 에와가 아담으로 하여금 하느님께 불순종케하고 범죄케 했다면, 제 2에와인 마리아는 예수를 하느님께 순종케하고, 인류를 구원하는데 협력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원시복음(최초의 기쁜소식)은 성서의 첫 권에 언급되고 있는데, 성서의 마지막 권인 요한 묵시록에 훌륭하게 조화되어 나타난다. 요한 묵시록 12장에 창세기 3장 15절이 예고한 바를 실현하고 있는 장면이 묘사된다(여자와 용).

 

구약의 70인역도 “It shall crush thy head”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본문을 (αυτο) 희랍어 αυτοσ로 해석하고 있으며 이 남성형 대명사는 메시아적 인물로 제시되고 있다. 여기서 최후의 전투, 즉 종말론적 전투가 묘사되고있다. 뱀으로 상징되는 악마와 “여인의 후손”으로 상징되는 메시아적 인물과의 대결이다. 여기서 악마는 메시아적 인물에 의해서 정복된다. 가톨릭 신학자 대부분은 이 인물은 작가가 메시아, 즉 그리스도를 지시할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여인은 그리스도의 모친, 즉 마리아여야 한다는데 의견을 함께 하고 있다.

 

만일 텍스트의 문맥을 따라서, 문자적으로 그대로 이해하자면 그 여인은 에와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텍스트 안에서 에와 이외에 다른 여인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성서 구절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일종의 신탁(divine oracle)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특히 이 부분은 소위 야휘스트계에 속하는 문헌으로서 하느님 자신의 입으로 친히 말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여인”이라는 말은 단지 “에와‘만을 지시한다기 보다 그녀의 후손 모두를 포괄하고 있다고, 다시 말해 인류의 역사 전체를 의미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뱀은 악마요, 여인의 후손은 메시아를 지시한다. 뱀과 후손의 반목은 뱀을 짓밟음으로써 끝난다. 그리고 종말론적 미래에 있어서 하느님의 권리가 전적으로 다시 수립됨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해석을 받아들이면서 현대 신학자들이 부딪히는 것은 약속의 하나로서 이 “여인”은 에와와 마리아 양편 모두를 지시하는 것이라고 하는 의견과 문자적으로 에와만을 지시하는 것이라고 하는 의견이다.

 

J. Coppens라고 하는 신학자는 에와와 마리아 모두를 포함하는 의미로 받아들이면서 어떤 개별적 인간으로서의 여인, 즉 구세주의 모친은 규정적으로가 아니라 간접적으로 지시되고 있다고 해석한다.

 

어떻든 이 원시복음은 미래에 있을 어떤 사실을 예견하고 있다는데 모두 동의하고 있다. 그 미래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한다. 어떤 사람은 그 자체로 자명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또 어떤 사람은 환상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톨릭 신학자들은 이 텍스트는 예언적이며 메시아를 지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떻든 최종적 그리스도교적 계시의 빛은 구약성서안에서는 다소간 불투명한 베일을 통해서만 인식되고 있다. 그들은 이 구절을 메시아 자신의 모습에 적용함으로써, 비록 숨겨져 있지만 메시아의 모친의 모습이 남아 있어야 함을 기대하고 있다.

 

본래의 텍스트는 창세기 3,15이 집단적 인물의 의미보다 어떤 개별 인간을 지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이 텍스트가 악의 권력을 대표하는 어떤 적을 물리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 승리자는 그 사탄을 쳐 이길 수 있는 한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본 것처럼 70인역에서 중성형을 남성형 autos로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한 개별 인간을 지시하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그 후손은 여인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승리가 이룩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스 번역본은 마지막 문장을 남성형 대명사로 시작하면서 이 승리는 일반적으로 넓은 의미에서 여인의 후손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여인의 후손들 가운데 구체적인 한사람에게 의한 것임을 의도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교부들이 분명하게 메시아적 인물로 해석하고 있다. 이 메시아와 더불어 그의 모친은 암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유대 전승, 그리고 그리스도교 전승은 여기서 메시아를 예견하고 있다. 그 메시아는 악마를 거슬러서 완전한 승리를 쟁취할 역사에 있어서 유일한 인물이다. 이 점이 요한 복음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지금은 이 세상이 심판을 받을 때이다. 이제는 이 세상의 통치자가 쫓겨나게 되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 높이 들리게 될 때에는 모든 사람을 이끌어 나에게 오게 할 것이다”(요한 12,31-32).

 

요한 복음은 예수의 생애 전체를 이 세상의 통치자들을 거슬러 싸우는 투쟁으로 묘사한다. 이 투쟁은 예수에 의해서 갈바리아 산에서 승리를 거둔다. 신약성서 특히 요한계 문헌은 옛 뱀은 사탄으로 그리스도에 의해서 패배하였고 하느님의 뜻에 의해 그리스도는 그 모친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예컨대,

 

“그 큰 용은 악마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세계를 속여서 어지럽히던 늙은 뱀인데 이제 그 놈은 땅으로 떨어졌고, 그 부하들도 함께 떨어졌습니다”(묵시록 12,9)

 

“지금은 이 세상이 심판을 받을 때이다. 이제는 이 세상의 통치자가 쫓겨나게 되었다”(요한 12,31).

 

“예수의 십자가 밑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클레오파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서 있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먼저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하시고, 그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이시다’하고 말씀하셨다. 이 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25-27).

 

이 여인은 누구인가?

 

J. Galot : 문자적으로는 에와를 지시하고 있다. 그러나 내재적으로 마리아를 암시하고 있다. 이것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작가의 의도와 관심은 뱀에 대한 승리에 있기 때문이다.

 

A. Robert : 우리는 에와의 모습에서 마리아의 모상을 찾아 볼 수 있다. “죽음은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을 지배하였는데, 아담이 지은 것과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그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원형이었습니다”(로마 5,14).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 ‧‧‧ 첫사람 아담은 생명 있는 존재가 되었지만 나중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적 존재가 되셨습니다”(1 고린 15,22.45). 이처럼 에와가 자연적으로 모든 이들의 어머니가 되셨던 것처럼, 마리아는 은총으로 그분의 아드님으로 말미암아 치유된 자들의 어머니가 되신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이나 후에 모든 의인들은 그 여인, 마리아라고 하는 여인의 후손이 된다.

 

어떤 신학자는 이를 두고, “하느님의 계획을 따라, 나자렛의 소녀, 즉 새로운 에와는 새로운 아담이 뱀을 쳐부수고 승리한 것과 긴밀히 관련될 것이다. 처음부터 인간의 기대는 에와의 후손들 가운데 가장 축복 받은 자, 즉 구세주의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1.1.2 엠마누엘의 모친 (이사야 7,14)

 

두번째로 볼 수 있는 마리아와 관련된 구약의 텍스트는 이사야서 7, 14이다.

 

“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엠마누엘이라 하리라”.

 

시리아의 이스라엘 침공으로 다윗 왕조가 멸망할 위기에 놓인다. 하느님의 말씀이 유다의 왕 아하즈에게 전해진다. 아하즈 왕은 이 예언을 곧이 듣지 않는다. 그는 그의 정책 노선을 고집한다. 이사야가 아하즈에게 하느님의 징표를 구하라고 한다. 아하즈는 이를 거절한다. 이사야는 하느님께서 그 징표를 손수 주시리라고 예언하는 것이다.

 

이 구절을 놓고 많은 논쟁들이 일어났다. 그 논쟁의 중심은 첫째로 히브리어 단어 Almah다. 이 단어는 엄격하게 말해서 “처녀”를 일컫는 용어가 아니다. 오히려 “젊은 여인”으로 번역될 수 있다. 어떤 독일 신학자(A. Schulz)는 이 단어를 매번 “처녀”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히브리어와 상당히 유사한 셈족어로 쓰여진 기원전 14세기경의 명판 “Ras Shamra”에서 새로운 빛을 얻게 되었다. 이 명판의 내용은 Nikkal 이라는 여신에 대한 우가릿 詩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보라, 젊은 여인(galmatu)가 한 아들을 낳을 것이다”( galmatu는 히브리어 almah와 동의어이다).

이러한 사상은 단순히 가나안 지방 뿐만 아니라 에집트와 중동의 다른 나라에서도 널리 퍼져 있었다. 특이하게도 처녀 출산으로 태어난 아이가 행복한 시대를 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예언자 이사야가 이러한 당시의 사상에 친숙해 있었고, 이것을 그의 고유한 목적을 위하여 사용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은 R. Laurentin의 의견이고 Duncker는 이것을 반대하고, Coppens는 이것을 불확실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 예언 자체는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첫째로 다윗왕조의 지속성을 보여주는 히즈키아(아하즈의 아들)의 탄생을 지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예언자 자신의 아들의 탄생에 관한 것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떻든 이 예언은 결코 평범한 사건이 아닌 특별한 사건의 색조를 띠고 있다. 즉 일종의 기적적인 증표로 나타난다. 그래서 Coppens는 다른 가능성들을 분석한 다음에, 이 텍스트는 바로 메시아와 그의 모친에 관한 예언이라고 결론 짓는다. 한편 J. Steinmann은 문자적으로 이 구절은 메시아적 메시지가 아니고, 오히려 아하즈의 아들 히즈키야에 관한 메시지로 이해한다. 그러나 더 깊은 의미에서 메시아에 관한 메시지로 적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만일 문자적 의미에서 히즈키야에 관련된 것이라면, 또는 예언자 자신의 아들에 관한 것이라면 almah는 단순히 “결혼 적령기에 있는 소녀”(결혼을 했던 하지 않았던 상관없이)를 의미한다. Laurentin 역시 Steinmann과 유사한 의견을 보이고 있다. Laurentin은 그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이 예언이 직접적으로는 아하즈의 아들 히즈키야에 관련된 것이지만, 이것은 이차적으로, 종말적이고 메시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종말론적 - 메시아적 의미는 바빌론 귀향 이후 유다이즘에서 발견되고 있다.

 

70인역은 almah를 parthenos로 번역하고 있다. Lauretin은 공적으로 처녀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나 사실상 almah는 불확실한 용어다. 그러나 이 예언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으로 마태오 복음사가가 자신의 복음(1,23)에서 인용하고 있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보라, 처녀가 아이를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는 엠마누엘이라 일컬어 지리라”.

 

마태오는 1,22에서 이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졌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태오는 almah를 처녀로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 사가는 여기서 마리아의 예수 동정 잉태를 선언하고 있다. Laurentin은 마태오에게 영향을 준 이사야서 7,14이 동정 탄생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마태오가 예수의 가족으로부터 유래하는 전승을 따라서 이사야의 신탁을 유용하게 이용하면서 동정탄생의 의미를 발굴해 냈다고 주장한다.

 

어떻든 almah는 반드시 처녀를 의미하지 않는다. 처녀를 의미하는 단어로서 betulah라는 히브리어 명사가 있다. almah는 처녀일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 하지 않는 “젊은 여성”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텍스트 안에서 어떤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지 정확하지가 않다. 더욱이 almah를 사용하는 성서의 여러 곳에서 반드시 젊은 처녀를 의미하지 않았다.

 

“제가 지금 샘터에 서 있는데, 혼기가 찬 여자가 물을 길으러 나오면, 항아리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시게 해 달라고 말을 걸어 보겠습니다”(창세 24,43-44).

 

“그 때 아기의 누이가 나서서 파라오의 딸에게 말하였다. ‘아기에게 젖을 빨리게 히브리 여인 가운데서 유모를 하나 데려다 들릴까요.’ 파라오의 딸이 ‘그래, 어서 다녀 오너라’ 하고 대답하자 소녀는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 왔다”(출애 2,7-8).

 

“하느님, 당신의 거동하심이 보입니다. 내 임금, 내 하느님의 성소로 오르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합창대는 맨 앞에, 현악대는 맨 뒤에, 그 한가운데서 처녀들이 소구를 칩니다”(시편 68, 25).

 

어떻든 루가 복음 1,26-31과 이사야서 7,14을 비교 하면서 계시가 점차적으로 진전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더욱이 루가의 경우는 이사야의 예언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 천사는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 영원히 다스리는 왕이 되겠고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루가 1,26-31).

 

이러한 비교 속에서 이사야 예언의 almah는 반드시 ‘처녀’를 의미한다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그렇다고 ‘처녀’임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며, 루가에서처럼 이사야에게서도 동정 모성을 긍정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두번째 논쟁점은 signum (표징)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해석가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혹자는 직접적으로 메시아적 징표로 알아 듣는다. 다른 사람들은 간접적으로 메시아적 징표가 될 뿐이라고 한다. 예언은 직접적으로는 아하즈 왕의 아들 히즈키야의 탄생을 내다본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예언은 직접적인 현실성을 뛰어넘어, 미래를 향하고 있으며, 그 완전한 실현은 동정 마리아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앗시리아와 전쟁을 할 당시 다윗 왕조의 생존이 히즈키야의 탄생과 더불어 보장되었던 것처럼, 다윗의 후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다윗 후손의 영원한 통치가 하느님으로부터 보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사야에 있어서 히즈키야의 모습이 자주 예수 그리스도의 전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엠마누엘이라 하리라. 그 아기가 나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택할 줄 알게 될 때는 양젖과 꿀을 먹게 될 것이요. 그 아기가 나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택할 줄 알게 되기 전에 네가 원수로 여겨 두려워하는 저 두 왕의 땅은 황무지가 되리라”(이사 7,14-15).

 

“‧‧‧아 임마누엘아, 그가 날개를 펴서 네 땅을 온통 뒤 덮으리라. 민족들아, 너희는 결국 실패할 줄 알아라. ‧‧‧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이사 8,5-10).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나오고 야훼의 영이 그 위에 내린다. 지혜와 슬기를 주는 영, 경륜과 용기를 주는 영, 야훼를 알게 하고 그를 두려워하게 하는 영이 내린다. 그는 야훼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기쁨을 삼아 겉만 보고 재판하지 아니하고 말만 듣고 시비를 가리지 아니하리라. ‧‧‧”(이사 11,1-9).

 

루가복음은 예수를 엠마누엘,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느님게서 그에게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시어 야곱의 후손을 영원히 다스리는 왕이 되겠고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루가 1,32-33).

 

마태오는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28,20). 그러므로 적어도 간접적으로 이 텍스트 이사야 7,14은 메시아적 메시지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젊은 여인”은 엠마누엘의 모친으로서 구원의 중재자가 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히즈키아의 모친은 그 처녀의 예형이다. 아하즈 왕 때에 일어났던 것이 그리스도의 동정잉태의 신비 안에서 완전하게 그리고 결정적으로 성취됨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약은 구약의 성취라고 말할 수 있겠다.

 

1.1.3 베틀레헴에서의 출산 (미가 5,1-2)

 

“그러나 에브라다 지방 베틀레헴아

너는 비록 유다 부족들 가운데서 보잘 것 없으나

나 대신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너에게서 난다.

그의 핏줄을 더듬으면,

까마득한 옛날로 올라간다.

그 여인이 아이를 낳기까지

야훼게서는 이스라엘을 내버려 두시리라.

그런 다음 남은 겨레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면

그가 백성의 목자로 나서리라.”

 

이사야서 7,14이 기원전 736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미가서 5,1-2은 그보다 훨씬 뒤인 기원전 701년을 배경으로 한다. 미가서는 미래에 오실 메시아의 탄생이 다윗 가문으로부터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복음 사가들은 메시아의 탄생지를 바로 미가서에서 찾는다(마태 2,6; 루가 2,4이하). “그 여인이 아기를 낳기까지”라는 표현은 메시아의 모친의 동정성에 대해서 어떤 암시도 드러내지 않는다. 미가서의 이 구절은 유명한 30년 전의 이사야의 almah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미가서는 이사야서의 반향(eco)로 간주되고 있다.

 

1.1.4 ‘시온의 딸’과 ‘새로운 백성’의 탄생

 

미가서에서도 볼 수 있는 시온은 예루살렘 북부 지역을 의미하며, “남은 자”들이 모였던 곳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연결된 “시온의 딸”은 새로운 희망의 상징이었다.

 

“야훼의 성전이 서 있는 산 ‧‧‧ 야훼의 산 ‧‧‧ 야훼의 가르침은 시온에서 나온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이 야훼가 시온산에서 다스리리라.‧‧‧”(미가 4,1-14).

 

스바니야 3,14에서도 미가서와 마찬가지로 시온산을 예루살렘 북부지역을 지칭하였고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관련을 지니고 있다.

 

“수도 시온아, 환성을 올려라. 이스라엘아, 큰 소리로 외쳐라. 수도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며 축제를 베풀어라. 야훼께서 원수들을 쫓으셨다. ‧‧‧”(스바 3,14).

 

즈가리아 9,9 그리고 요엘 2,21-27에서도 같은 내용을 볼 수 있다. 이 문헌들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기쁨에로 초대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곧 승리와 구원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남은 자와 관련된 시온의 딸은 메시아의 도래를 실현하는데 하느님의 협력자로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이사야는 시온의 딸의 후세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49,18-20; 54,1-3; 66,7-8).

 

마리아에게서 이러한 예언들이 실현되고 있다. 베들레헴에서의 기쁨의 출산, 그리고 갈바리아 산상에서 메시아 백성의 고통스러운 출산이 이루어지고 있다(요한 16,21 : 여자가 해산 할 즈음에 걱정이 태산같다. 진통을 겪어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에 그 진통을 잊어 버리게 된다; 19,25-27 : 예수의 십자가 밑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클레오파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서 있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먼저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시고 그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이시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의미에서 Ortensio da Spinetoli는 “갈바리아에서 마리아는 메시아요, 구원자이신 분의 어머니로서 예언자들이 언급한 바 있는 ‘시온의 딸’의 모습을 실현하고 있다. 요한 복음 사가가 갈바리아 십자가상에서 예수가 어머니를 두고 ‘여인이여’라고 불렀을 때(19,26), 이 여인은 창세기 3,14의 여인 뿐만 아니라, 예언자들이 예언한 것 그 이상으로 시온, 또는 시온의 여인에 관한 바를 실현하고 있다. 기쁨의 메시아 탄생을 준비하는 출산의 고통이 바로 마리아의 가치이다. 인류의 공공안녕과 구원을 위해 아들의 뒤를 따르는 마리아의 가치다”라고 말한다.

 

H. Cazelles은 “성서 텍스트들은 시온의 딸의 신비로움과 시온 - 예루살렘의 고통의 신비를 일치시키고 있다. 이 모든 자료들은 하느님 백성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하느님의 풍요로운 신비를 드러내고 있다. 하느님은 시련을 거친 남은 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안에서 활동을 벌이신다. 마리아 안에서 이러한 은총이 완전한 상태를 이루고 있다. 마리아에게서 고통받은 메시아와 부활한 메시아를 통하여 마리아로부터 사도들의 새로운 백성이 탄생한다.”

 

마리아는 이처럼 구약의 시온과 연결된 성서적 이미지를 요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이스라엘로부터 교회에로 이르는 여정이다. 다시 말해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구약성서 안에서 시온의 딸로 묘사되고 있다. 그렇게 해서 교회의 신비를 실현하고 있다. 시온의 딸이라는 이미지는 마리아의 예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1.1.5 마리아의 예형들과 상징들

 

마리아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성서적 텍스트들이 상당히 적다고 할지라도, 마리아에게 적용할 수 있는 상징적, 예형적 칭호들에 관한 구절은 적지 않다는 것이다.

 

1) 특히 전례에서 풍부하게 적용하고 있는 상징들과 예형들을 보면,

 

① 불타는 가시덤불 (출애 3,2)

가시덤불은 불타고 있지만 소멸되어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두고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였지만 동정성이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② 기드온의 양털뭉치 (판관 6,37-38)

기드온의 양털뭉치가 기적적 표징으로 하늘로부터 이슬을 흠뻑 적시듯이 마리아 역시 하늘로부터 하느님의 아들을 얻게 됨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③ 결약의 궤 (출애 25,10-22)

결약의 궤는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였다. 마리아는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생활한 궁전으로 이해된다. 또 결약의 궤는 썩지 않는 나무로 만들어졌다. 마리아의 육체는 무덤의 부패로부터 보존되었음을 상징하는 좋은 예표로 간주된다.

 

④ 아가의 정배 (아가 2,2; 4,7)

무염시태 제 2저녁기도 첫 후렴으로 사용되고 있다. “마리아여, 당신은 온전히 아름다우시고 원죄에 물듦이 없나이다”; 아가 4,7 “나의 귀여운 짝이여 흠 잡을 데 하나 없이 아름답기만 하여라 나의 신부여 ‧‧‧”

 

⑤ 닫힌 정원, 샘솟는 샘터 (아가 4, 12)

마리아의 동정성, 하느님으로부터 점유된 존재.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울타리 두른 동산이요, 봉해 둔 샘이로다.”

 

⑥ 지혜서 8,22-36

이 지혜서는 인격화된 지혜를 소개하고 있다. 신약성서의 상당히 많은 구절들이 이 지혜서에서 육화하신 지혜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내다보고 있다. 교회의 전례 텍스트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육화하신 지혜와 일치되어 있음을 본다. 즉 어머니로서 영원으로부터 내정되어 있다고 보았다.

 

2) 마리아의 예형적 인물로서 구약의 인물들

 

① 에와

에와라는 이름은 “지아비에게서 나온”, 또는 “인류의 어머니”, “생명”이라는 의미와 관련되고 있다. 마리아를 새 에와로 부르게 되는 것은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도를 새 아담으로 부르는데서 연유한다. 특히 교부 이레네오는 “아담이 그리스도 안에서 소생되고 ‧‧‧ 에와가 마리아 안에서 소생되는 것은 옳고 또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복되신 동정녀는 동정녀의 변호자가 되시고 복되신 동정녀의 순종으로 동정녀의 불순종을 없애고 소멸시키셨다.” 교부 떼르뚤리아노는 “그리스도는 십자가상에서 잠에 떨어졌고 이 제 2의 아담이 잠자는 동안, 그의 옆구리에서 교회, 새 하와, 모든 생명의 어머니가 탄생하였다.” 교회에 사용되었던 “산 자의 어머니”라는 칭호가 중세시대에 와서 마리아에게도 적용되었다. 뉴먼 추기경은 “첫번째 에와는 사탄에 의해 스스로 노예로 전락했으나, 새 에와는 성령에 의하여 영혼의 자유를 경험하였다. 그리고 마리아는 세기의 사건에 대해 자유롭고도 능동적으로 동의하였고, 그로써 새 아담이신 천주 성자께서 오셔서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였다”고 말한다.

 

② 사라 : 이사악의 어머니

이사악의 잉태에 대하여 하느님은 사라에게 “이 야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느냐?” (창세 18,14).

천사의 예수의 잉태를 알리면서 마리아에게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되는 것이 없다”(루가 1,37).

 

③ 신앙의 아버지 아브라함 - 신앙의 어머니 마리아

마리아와 아브라함의 유사성은 더욱 많이 발견되고 있다.

약속된 대로 태어난 아들 이사악과 마리아의 아들 예수의 탄생, 구약의 신앙인 아브라함과 신약의 신앙인 마리아, 아브라함이 신앙의 아버지라면 마리아는 신앙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겠다.

- 하느님의 가까우심(창세 18,3과 루가 1,30)

- 축복의 원천(창세 12,3; 18,18; 22,18과 루가 1,42.48)

- 신앙을 통한 기적적인 아들 출생(창세 15,6과 루가 1,45)

- 아브라함의 이사악 봉헌과 마리아의 예수 성전 봉헌, 갈바리아 산에서의 봉헌(창세 22장과 루가 2,22; 요한 19,25-27) 등이 비교되고 있다.

 

④ 안나 : 사무엘의 어머니, 마니피깟

하느님이 허락하신 모성에 대한 감사의 노래 마니피깟(사무 상 2장)과 마리아의 노래(루가 1,46-55).

 

⑤ 유딧

적장 오를로페네의 목을 잘라 승리로 이끈 여장부로서 백성들의 찬양(유딧 13,18)은 엘리사벳에 의해 찬양되고 있는 마리아(루가 1,42)와 흡사하다.

“당신은 이 세상 어느 여자보다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앞에서 복 받은 여자 입니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

 

⑥ 에스델 왕후

자기 민족 유대인을 구원한 중재인으로서 에스델과 하느님의 백성의 중재인으로서의 마리아.

* 마리아 사전에 나타난 마리아의 예형론

- 노아의 방주, 에덴동산, 솔로몬의 궁전등 폭넓게 이해되고 있다.

 

1.1.6 구약성서의 마리아에 대한 결론

 

구약성서 안에서 마리아에 관련된 간접적 구절들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창세 3,15과 이사야 7,14, 미가 5,1-2, 그리고 시온의 딸, 또는 시온의 여인에 관련된 구절들이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교회헌장 55항은 구약에 예언된 마리아에 대한 가톨릭 측의 해석의 기본원칙을 다음과 같이 상기시키고 있다.

 

“신구약 성서와 존귀한 성전은 구원계획에 있어서 구세주의 모친이 맡으신 역할을 점차로 보다 명백히 드러내어 우리 눈앞에 제시해 주고 있다. 구약이 서술하는 구원의 역사속에서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의 내림이 천천히 준비되고 있다. 이 초기의 문서들은 교회 안에서 낭독되고 보다 상세하고 완전한 계시의 빛으로 이해되는 바와 같이 그 문서들은 구세주의 모친인 한 여인의 모습을 점차적으로 밝혀 주고 있다. 이 빛 속에서 본다면 죄에 떨어진 원조에게 약속된 뱀에 대한 승리속에 이미 예언적으로 그 여인의 모습이 암시되어 있다. 비슷한 예언으로서, 그 여인은 아들을 잉태하여 낳을 동정녀이며 그 아들의 이름은 엠마누엘이라 불릴 것이다. 그 여인은 신뢰로써 주님께로부터 구원을 기다리고 받는 주님의 겸손하고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 뛰어난 분이다. 시온의 훌륭한 딸인 이 여인이 나타날 때에 오래 기다리던 약속의 때가 차고 새로운 계획이 시작되었으며, 그 때에 천주 성자께서 이 여인에게서 혈육을 취하시고 당신 육신의 신비로써 사람을 죄에서 해방시키신 것이다.”

 

한편 계시헌장에서는 다만 성경만으로써는 교회가 모든 계시에 대한 확실성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성경과 성전을 똑같은 경외심으로 받아들이고 존경해야 함을 역설하면서, 성서와 성전과 교회의 교도권이 하느님의 지혜로운 안배에 따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9-10항).

 

구약성서는 그 자체로 마리아의 과제에 대한 소묘를 우리에게 전해준다고 결론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복음의 빛 아래서 구약성서는 메시아와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과 관련된 그녀의 모성에 대해 직관적으로 제시해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교회헌장 55항의 기본입장을 견지하면서 구약의 자료들이 한 걸음씩 구세주 모친에 대한 모습을 분명하게 조명해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바오로 6세 교황은 성서가 창세기부터 요한 묵시록에 이르기까지 구세주의 신비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인간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을 놀라운 방법으로 제시해주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세주의 모친이며 협력자인 마리아에 대해서도 역시 놀라운 방법으로 제시해주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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