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에 대하여

 

침묵에 대하여

​

고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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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구산 아래 있는 나의 오래된 우거는

용과 거북이가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는 사방이

단단한 침묵으로 둘러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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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녹슨 함석대문에 붙어 있고

마당가에 비쭉비쭉 솟은 망촛대로 자라고

침묵은, 재선충병에 걸린 뜰의 반송으로 붉어지고

토방에 벗어 둔 검정고무신으로 암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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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내 몸조차 침묵으로 하나 됐다가

그중 몇 개쯤 파계하여 들고양이로 울다가

때론 용과 거북이가 재림하길 염불하게도 하는

무자비하고 포악한 침묵이란 짐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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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송 구멍이 뚫리는 외로움의 골다공증과

사괘가 마구 뒤틀리는 고독의 퇴행성관절염과

바람에 욱신거리는 그리움의 신경통을 앓는

앞집 폐가에 달라붙어 와지끈,

그 근골이 주저앉을 때까지

시간의 공적(空寂)에 대하여 더는 묻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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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폐허를 차마 감추지 못하는 달빛은

이것이 무장무장 은산철벽을 치는 것이어서

용과 거북이의 뿔 자라는 소리 듣다 보면

나는 나일 것도 없다고 할 때가 오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