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서(帛書)

[주님 승천 대축일]2022년 5월 29일

나뭇잎숨결 2022. 5. 28. 10:13

 

 

프란치스코 교황 강론

 

성 베드로 대성당 - Altar of the Cathedra

주님 승천 대축일 - 부활 제7주일, 2021년 5월 16일

 

그분의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십니다. 그 슬픈 순간에 그분께서 당신의 제자들과 이 세상을 떠나실 준비를 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마음 안에 당신의 몸 안에 세상의 모든 죄를 기억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계속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그분의 기도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에서 극적이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배웁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하시는 당신의 기도 안에서 쓰신 특정한 하나의 단어에 대해 생각합시다. 그것은 “지키시어”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사랑하는 나라 미얀마가 폭력과 갈등과 탄압을 경험하고 있는 이 즈음에 우리 자신에게 물어 봅시다. 우리가 무엇을 지키라고 부름 받고 있습니까?

 

첫 째,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슬픔에 굴복하거나 벗어날 길을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절망 속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는 지켜야 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요한 복음 17,1)라고 우리에게 요한은 이야기합니다. 이 말씀 안에서 그분 삶의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이제 막 견디실 어두운 밤을 아시고 배반당하고 버려짐을 느끼시고 당신 수난을 예측하시며 번민에 짓눌리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분께서는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드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하느님을 향하여 눈을 드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을 악에 넘기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을 슬픔에 압도되도록 놓아 두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패배하고 실망한 사람의 비통함 속으로 물러서지 않으십니다. 그러지 않으시고 그분께서는 하늘을 바라보십니다. 이것이 그분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주셨던 바로 그 충고였습니다. 예루살렘이 군인들에게 침범될 때 그리하여 사람들이 당황하여 혼돈과 공포와 황폐함 속에서 도망치고 있을 때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카 복음 21, 28)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눈을 하늘을 향해 계속 들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이 세상에서 싸움들이 일어나고 무고한 피가 흘려 지는 동안. 믿음을 지키는 것은 증오와 복수의 논리에 굴복하기를 거부하는 것이고 서로에게 형제 자매가 되라고 부르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향하여 계속 우리의 눈을 들어 바라보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를 어려운 때에 하느님을 신뢰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기도는 우리가 희망이 없는 때에 희망하도록 도와주고 그것은 우리들의 매일 매일의 싸움들 속에서 우리를 지탱해 줍니다. 문제에 직면할 때 기도는 물러섬이 아니고 회피가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기도는 죽음의 무기들 속에서 사랑과 희망이 계속 살아 있도록 우리가 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입니다. 우리가 상처 받고 있을 때 우리의 눈을 드는 것을 쉽지 않지만 믿음은 우리가 우리 안에만 파묻히는 유혹에 저항하도록 도와줍니다. 우리는 반항하고 싶어질 지도 모르고 우리의 고통 속에서 하느님께 울부짖고 싶어 질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이것도 또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한 나이든 여성이 한번은 그녀의 손자 손녀에게 말했습니다. “하느님께 화를 내는 것도 기도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단다” 의로운 이들과 소박한 이들의 지혜. 그들은 어려운 순간에 언제 그들의 눈을 들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하느님께서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들어 주시는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처 난 마음에서 비롯되고 주님께서는 언제나 당신 백성의 울부짖음을 들이시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계속해서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믿음을 지키십시오!

 

둘째 일치를 지키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느님 아버지께 당신 제자들의 일치를 지켜 주시기를 간청하십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요한 복음 17,21)가 되도록, 그 안에서 사랑과 형제애가 다스리는 한 가족이 되도록. 그분께서는 당신 제자들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때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누가 권한을 가져야 하느냐에 대해서 논쟁하는 것을 보아 오셨습니다. 이것은 치명적인 병입니다. 즉 분열의 병. 우리는 우리의 마음 안에서 그것을 경험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내면 안에서 분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정들과 공동체들 안에서, 국민들 사이에서, 심지어 교회 안에서 그것을 경험합니다. 일치에 역행하는 죄들은 아주 많습니다. 시기, 질투, 공동의 선 보다 개인의 이득을 추구하는 것, 다른 사람들을 심판하는 경향. 우리들의 그 작은 갈등들이 여러분의 나라가 요즈음에 겪고 있는 것과 같은 심각한 갈등들 안에서 묵상을 발견합니다. 편파적인 이득들과 이익과 권력에 대한 갈증이 일단 장악하면 갈등과 분열은 필연적으로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을 앞두고 하신 그 마지막 간청은 일치를 위한 간청입니다. 분열은 악마이고 지독한 분열자이고 그리고 언제나 분열을 만들어 내는 지독한 거짓말쟁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치를 이루도록 부름 받습니다. 성부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예수님의 이 진심 어린 탄원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라고 부름 받습니다. 모두 하나가 되라고, 한 가족이 되라고 우정과 사랑과 형제애 안에서 살아갈 용기를 찾으라고 부름 받습니다. 특히 오늘 날에 형제애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궁핍함을 갖고 있는지요! 나는 어떤 정치적 사회적 상황들이 우리 자신의 존재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와 형제애를 향한 헌신은 언제나 다음과 같은 것들에서 나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은 것들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은 일들 안에서 형제애를 구축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형제애를 씨 뿌리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폭력을 조장하기 보다 부서진 것을 재건하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우리가 언제나 하나의 교회로서 이렇게 하라고 부름 받습니다. 대화를 하도록 합시다, 다른 사람들을 존중합시다, 우리의 형제 자매들과 공동체를 돌보아 줍시다! 우리는 편파적인 사고 방식이 교회 안에 들어가게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버리고 각 개인을 첫째 자리에 놓아 두는 분열하는 사고 방식. 이것은 매우 파괴적입니다. 그것은 가족과 교회와 사회와 그리고 우리 모두를 파괴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셋째 우리는 진리를 지키라고 부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부 하느님께 제자들이 당신의 소명을 이루려 세상 곳곳으로 보내질 것이니 그들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진리를 지키는 것은 교리와 교조의 시스템의 수호자들이 되어서 교의나 사상을 옹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묶여 있는 채로 머무르는 것이고 그분의 복음에 헌신하는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에게 진리는 그리스도 그 자체이고 성부 하느님 아버지 사랑의 드러남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의 기준을 따르지 않기를 기도하십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우상들에게 유인되게 놓아 두지 않을 것이고 그러지 않고 그들 자신이 그분과의 우정을 지키도록 할 것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사고 방식으로 굽히지 않을 것이고 그분의 메시지를 흠 없는 완전한 상태 안에서 보존할 것입니다. 진리를 지키는 것은 삶의 모든 상황에서 예언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으로 거룩해 지고 추세에 역행할 때 조차도 복음을 증언하는 것, 그 증언이 추세에에 역행할 때조차도 복음을 증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때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타협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우리의 삶을 다른 이들을 위해서 주면서 진리 안에서 진리를 위해서 굳건하라고 요청합니다. 전쟁과 폭력과 증오 속에서 복음에 대한 충실함과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는 것은 사회적인 정치적인 선택들을 통해서도 우리 삶의 위험 속에서조차도 헌신을 요구합니다. 오로지 이 방법을 통해서만 상황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미지근한 이들이 필요치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슬픔의 어두운 밤에도 악이 우세한 것처럼 보일 때 조차도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증언할 수 있도록 우리가 진리와 복음의 아름다움으로 거룩해 지기를 바라십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나는 주님의 제대 위에 그분 백성의 고통을 바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모든 마음들을 평화로 바꾸어 주시도록 바치는 기도에 여러분을 합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가 믿음을 지키도록 도와주고 어려움의 때에도 일치를 이루는 이들이 되도록 도와주고 복음의 진리를 위해서 우리 삶의 위험을 무릅쓰도록 도와 줍니다. 부디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중재하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기도 안에서 성부 하느님 아버지 앞에 서계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기도 안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그분께서 대가로 치르신 상처들을 성부 하느님 아버지께 보여 드리십니다. 이 기도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악에서 구하시고 악의 권한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기를 기도하면서 우리 모두를 위하여 중재하고 계십니다.

 

(번역 2021. 5. 23. 주일 03:10 /최종수정일 2021. 5. 23. 주일 09:27)

 

 

강론영어원문 -> http://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1/documents/papa-francesco_20210516_omelia-fedeli-myanmar.html

강론 미사 사진 동영상 -> https://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events/event.dir.html/content/vaticanevents/en/2021/5/16/fedeli-myanmar.html

 

 

                                       안드레아 만테냐 〈예수의 승천(우피치 삼면화)〉

 

 

        


예수승천대축일: 가해: 천상에 대한 희망


-조욱현 토마스 신부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주님은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시리라. 알렐루야!” 오늘의 전례는 이 입당송으로 화려하게 시작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이 승천하셔서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으시는”(마르 16,19) 천상을 상기시키면서 동시에 매일의 삶과 역사를 외면할 수 없는 인간들의 상황을 측은히 여기는 것 같다. 즉 우리 모두가 ‘천상에 있는 것’에 마음을 두고 추구해야하지만, 그 때문에 ‘지상에 있는 것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골로 3,2).


그러나 오늘의 전례의 주제는 ‘천상’이다. 이 ‘천상’은 영광을 받으신 주님께서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사시리라고 생각되는 어떤 지정학적 공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시공의 제한을 벗어나 우리와 보다 친밀한 일치를 이루는 그분의 존재양식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그분은 우리와 더 친밀히 일치하시고, 그러기에 ‘그분이 가신 데로’ 우리도 따라갈 수 있기를 감사송에서 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상’에 대한 향수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순수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그리워하며 그분의 영광스러운 생명에 결합되고자 하는 여망이다.


예수승천축일은 우리로 하여금 이 지상을 저버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목적지가 다른 곳에 있음을 말해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실 것이다.


제1독서: 사도 1,1-11: 예수께서는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다
제1독서는 사도행전의 서문으로 계속적으로 부활에 대한 믿음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승천의 주제를 가지고 그 내용을 풍부히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연장(延長)인 성령의 오심과 연결시키고 있다. 이로써 ‘이스라엘 왕국’이 즉시 재건되는 것은 아니다(6절). 그 왕국은 예수승천으로부터 영광스러운 재림에 이르기까지 온 여정에 걸쳐 ‘다시 세워질 것이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또한 사도들의 증거를 통해 그 왕국의 씨앗을 꽃피워 번성케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승천은 이제 막 일어나려하는 보다 큰 사건의 출발점이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 앞에 ‘눈부신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난다. 이 천사들은 구원의 역사에 개입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표지역할을 한다. ‘구름’은 예수님을 못 보게 하는 것보다도 하느님의 특별한 구원적 계시의 상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사실 ‘구름’은 구약에서나(탈출 13,22) 신약에서나(루가 9,34-35) 일반적으로 신적인 현현의 장면을 묘사하는데 쓰일 뿐만 아니라, 다니엘서에서는(7,13) ‘종말론적 재림’의 상징과 예고로도 사용된다(마태 24,30; 1테살 4,17; 14,14-16 참조)


루가는 예수승천을 통해서 종말에 일어날 일에 대해 ‘예고’해주고 있다.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11절). ‘그 모양으로’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이 하늘에 올라가시는 것처럼 그렇게 오셔서 당신의 ‘지배권’을 확인시키고 온 인류의 역사를 당신 안에 모아들이실 것이다. 때문에 주님의 승천은 이별이 아니라 다시 오심에 대한 보증이다. 떠남이 아니라 성령의 활동으로 더욱 위로를 주는 당신의 현존에 대한 약속이다.


복음: 마태 28,16-20: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복음에서도 예수님과 사도들의 마지막 만남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 만남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복음 선포가 시작되었던(4,12-17) 갈릴래아의 산, 아마 ‘행복’에 관한 가르침(5-7장)을 선포했던 ‘산’일 것이다. 이것은 마치 지나간 과거를 모두에 대한 타당성을 재확인하고, 그 ‘산상설교’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어 주신다.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20절)는 말씀을 듣고 있다.


또한 우리의 관심이 되는 것은 마지막 말씀의 ‘전교사명’이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18절). 마태오는 복음 여러 곳에서 ‘권한’, 즉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권위’에 대해 말한다.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것이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가 있기 때문에”(7,29), 또는 중풍병자를 치유하시며 당신께 ‘죄를 사하는 권한’이 있다고 하시고(9,6-7),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내실 때 대사제들과 원로들은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21,23)라고 묻는다. 이 권한이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권한이 그분의 부활과 함께 그분에게서 충만히 드러난다. 즉 부활은 승천으로 완성되며, 예수님을 성부 ‘오른편에’ 영원히 자리하게 하시어 온 세상의 주님이 되게 하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게 하신다.


예수께서는 그 ‘권위’로 사도들을 파견하신다.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19절). 사도들을 온 인류를 향해 파견하시는 것이다. 주님의 제자가 되게 하는 것은 신앙 외에 세례와 그분이 ‘명하신’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사도들이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세례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신비에만이 아니라, 삼위일체의 그 신비 자체에 ‘잠기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부활과 승천으로써 인류가 하느님 아버지의 품안에 들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지키는 것’도 똑같은 목적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받은 세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순명하여 지상적 생활보다는 천상적 생활 형태로 삶을 바꾸어 나갈 때 진실한 것으로 입증된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끝 날까지 항상”(20절)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면서 하느님 나라를 향한 온 인류의 여정을 이끌어 주실 것이다. 교회는 이렇게 세상의 모든 것을 변화시킬 때까지 자랄 것이다. 이 교회는 지상의 순례를 마치면서 사랑을 통해 실현되는 율법의 의미가 드러나고 생명의 신비가 벗겨지게 되면 사명을 다하고 끝나게 되며,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축복 받은 이들만이 예수께서 당신 성령을 통해 미리 마련하신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