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愛

추사관, 고독이 완성시킨 추사체의 경지

나뭇잎숨결 2022. 5. 1. 13:07

"유명 건축가가 웬 감자창고를 지었네" 사람들 말에 승효상이 보인 반응

홍지연 입력 2022. 05. 07. 07:27 댓글 45
 
 

“건축은 시대를 증언하고 장소를 증언한다. 그래서 건축화 작업이 중요하다. 땅이 갖고 있는 무늬, 그것을 터무니라고 하는데 우리 시대의 무늬를 붙여서 새로운 터무니를 만들어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터무니 있는 작업을 해야 한다. 터무니없는 이상한 건물을 지어 가지고 사람을 갖다가 환각 상태에 빠뜨리는 건 나쁜 건축이다.”

봄이 완연한 제주에서 건축 거장 승효상과 함께 건축 여행을 떠났다. 12년 전 승효상이 건축한 추사관에 들러 사유하는 시간을 갖고 성이시돌목장 근처에 새롭게 완공한 미스터밀크를 둘러봤다.

 

◆고독이 완성시킨 추사체의 경지

 

1년 만에 다시 찾았다는 추사관은 12년 전 승효상 작가가 직접 건축한 곳이다. 추사관은 제주에서 8년간 유배 생활을 했던 추사 김정희를 기리며 만든 미술관이다. 1984년 유물전시관으로 시작해 2007년 김정희 유배지가 사적으로 승격하면서 새로운 건물이 필요해졌고 승효상에게 건축 의뢰가 들어갔다.

 

추사관 앞에서

“추사관 건축 의뢰가 들어왔는데, 규모가 500평이 넘는 거예요. 원래 대정성 안 이 주변은 10평, 20평 집이 모여 있는 마을이었거든요. 우리나라 건축의 아름다움은 작은 것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여기다 500평 규모 건물을 지으라니 고민이 됐죠.”

고민 끝에 승효상은 모든 전시 시설을 지하로 집어넣고 땅 위에는 가장 단순한 집의 형태 하나만 남기기로 했다. 추사관은 건물이 짓기 전부터 소문이 났다. 유명 건축가가 건물을 짓는다고 기대가 많았는데, 막상 건물이 완성되자 주민들 사이에선 ‘웬 감자창고가 들어섰냐’는 소리가 돌았다. 승효상은 곧장 주민들 모았다.

 

추사관 외관

“추사관 건물이 감자창고라고 불리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를 설명했어요. 추사의 삶을 온전히 이해한다면 결단코 으리으리한 곳 살면서 추사체가 만들어진 것은 아닐 거거든요.”

승효상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 추사관에 관한 오해 한 가지를 먼저 풀었다. 승효상에 따르면 추사관은 세한도를 본떠 만든 것이 아니다. 승효상은 “혹시 사람들이 세한도를 본받았다고 하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창을 없애는 것까지 생각했다”며 “공사 도중 제주도청 공무원이 이 건물이 세한도를 본받았으리라 생각하고 그림처럼 소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나는 의도하지 않았다”고 재차 강조했다. 12년 전 유홍준 교수는 조선일보에 연재하던 ‘국보순례’ 칼럼에서 ‘‘세한도’에 나오는 집을 모티브로 한 소박하고 조용한 건물‘이라고 추사관을 설명했는데, 본인이 아니라고 했으니 진짜 아닌 거다.

 

“지하에서 추사의 인생과 세계를 다 읽고 나서 1층으로 올라와 우리가 그 공간의 주인이 되어 보는 거예요. 우리 스스로를 사유하고 성찰하고 나가면 얼마나 근사할까 생각했습니다.”

 

임옥상의 조각상 작품 앞에 서서 동그란 창문 아래 걸린 ’판전(板殿)‘ 액자를 바라봤다.

 

“추사는 어마어마하게 좋은 글씨를 쓴 이후에 자기가 처음 쓴 글씨체로 다시 돌아갔어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인생이라는 아름다운 여행을 끝내고 다시 소년으로 돌아간 거죠.”

 

추사관 1층

◆천주교 성지에 우유 공장을 지은 이유

승효상이 건축을 맡아 막 완공한 새로운 공간도 둘러봤다. 성이시돌목장에서 생산하는 우유를 받아 치즈 등 유제품을 만드는 공장이다. 이름은 미스터밀크 공장. 전체 건축 프로젝트 이름은 백파진이라고 붙였다. 백파, 하얀 언덕이라는 뜻으로 금오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완공 직후 처음 찾아간다는 승효상과 함께 들뜬 마음으로 다시 중산간으로 향했다.

미스터밀크 공장

성이시돌목장은 1954년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사였던 맥그린치(P.J. Mcglinchey) 신부가 황무지를 개간해 만든 목장이다. 아일랜드 출신 맥그린치 신부는 제주도민을 돕기 위해 목장을 짓고 우유와 육류를 생산했다. 성이시돌목장은 인증샷 명소로도 유명하다. 사람들은 목장 내 카페 우유부단에 들러 유기농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먹고 우유곽 모양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성이시돌목장에 남아있는 테쉬폰 [출처: 제주관광공사, visitjeju.net]

“목장 안에 테쉬폰(Cteshphon) 건축물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하고 있어요. 건축 책에도 소개할 정도입니다.”

군용 막사처럼 생긴 테쉬폰은 이란 바그다드 근처 지역에서 처음 시작한 건축 양식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성이시돌목장 안에만 있다. 성이시돌목장은 천주교 성지이기도 하다. 목장 안에 양로원, 피정센터, 금악성당 등이 모여 있다. 예로부터 선교사들이 이곳에서 종교 훈련을 한 곳이라 제주 카톨릭에서는 아주 중요하다.

미스터밀크 공장

승효상이 건축한 미스터밀크 공장은 목장 밖에 있다. 승효상은 “성이시돌목장 처음으로 외부 업체와 협업해 짓는 것이라 의미 있게 작업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6말이나 7초부터 공장을 운영할 계획인데 방문객들이 들어와 요거트, 아이스크림, 치즈 등을 제작하는 공정을 지켜볼 수 있다.

◆승효상이 기획하고 제자가 해설하고

 

건축가 승효상의 건축 여행이 궁금하다면 5월 1일부터 매주 일요일 진행하는 ‘승효상 건축투어’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하면 된다. 승효상 건축가가 장소를 고르는 등 여행을 기획하고 제자 양현준 건축가가 도슨트를 맡았다. 아트빌라스, 추사관, 알뜨르비행장, 백조일손지묘, 포도뮤지엄 등을 가고 5시간이 걸린다.

 

[홍지연 여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