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성의 정당화에 있어서 그 의미와 방향
노 영 란*서울대
우리가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와 같은 구체저인 도덕규범들에 의문을 가지면서 이러한 규범들로 구성된 가치체계 그 자체에 대해 스스로 반성해보거나 혹은 '나는 자발적으로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고 철학적으로 성찰해보는 것은 가치체계로 표현되는 도덕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이고 따라서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표현될 수 있다.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로 표현되는 이 의문에 대답하려는 노력은 도덕성의 정당화로 규정될 수 있다. 도덕성의 정당화를 통해 무엇이 밝혀져야 하는지를 좀더 분명하게 파악하는 것은 도덕성이 적절하게 정당화되는 구체적인 방안을 찾기 위한 중요한 기초작업이 될 것이다. 정당화를 도전에 반응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경우 도덕성의 정당화란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로 표현되는 도전에 적절히 반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도덕적 권위 그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므로 도덕성의 정당화를 구성하는 적절한 반응은 도덕적이어야 할 근본적인 이유를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물음은 우리에게 해야만 한다고 권고하는 것들이 도덕적 가치를 포함하여 다양한 가치들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할 비도덕적 이유가 있는가?"로 이해될 수 있고 따라서 의미있는 질문일 수 있다. 우리가 실제로 언제나 해야할 이유를 이해하고 도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도덕적 권위에 의문을 가지는 한 도덕적으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한다는 점에서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를 제시하는 것은 도덕철학의 중요한 임무에 속할 수 있다.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가 타당하고 설득력이 있기 위해서는 행위의 주체에게 해당되어야하며 따라서 '내가 도덕적이어야 하는 이유'이어야한다. 왜냐하면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이론적일 뿐만 아니라 실천적인 속성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요구이고 우리 모두가 도덕성의 정당화에 대한(명시적인 혹은 잠재적인) 도전자라고 할 수 있으므로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에서 요구하는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는 또한 우리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이유이어야 한다. 도덕성의 정당화가 가능한지 아닌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는 지금까지 살펴본 이러한 성격을 가진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를 발견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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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엄마에게 이를 닦았다고 속여도 되는가?" "폐수를 함부로 방류한 화학공장은 정말 잘못한 것인가?" "낙태는 살인인가?"등등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특정의 구체적인 신념이나 태도 행동 감정 등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라든가 '환경을 보존해야 한다',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등과 같은 도덕규범들에 비추어 이 의문들에 대한 답을 구한다. 이러한 규범들은 대체로 우리가 교육이나 사회화를 통해 이미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들이다. 즉 우리는 그러한 규범들로 구성된, 도덕이라 불리는 특정의 가치 체계안에서 우리의 구체적인 의문들을 그 가치 체계에 근거하여 정당화하면서 살아간다.
도덕규칙들은 사람들이 따라야 하는 가장 우선적인 규범으로 여겨질 것을 주장하고 내용에 있어서 개개인의 이익을 앞세우기보다는 때에 따라서 개개인이 자신의 이익이나 관심을 희생할 것을 요구한다고 흔히 생각된다. 도덕규칙의 바로 이런 속성은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왜 도덕적 요구에 의문을 던지고 나아가 불복종하는지에 대한 많은 부분을 설명해 준다. 사람들의 욕구나 관심 기호들이 잘 보여주는 것처럼 인간의 본성 중에 강력하고도 두드러진 면중의 하나는 바로 자기중심성이다. 따라서 도덕적인 요구가 자신의 이익과 배치된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왜 도덕적인 요구가 다른 어떤 판단보다 압도적이어야 하는지, 왜 우리가 우리의 이익을 희생하면서 도덕적이어야 하는지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프리챠드(H. A. Prichard)는 의무들의 실행이 우리의 이익에 반대되는 정도를 똑바로 인식하는 것은 불가피하게도 결국 이러한 의무들이 진정 의무적인지에 대한 의심을 제기한다고 말하면서 우리가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를 알고 싶어하고 찾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도덕적 요구와 각자의 이익간의 상충에서 기인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라든가 '환경을 보존해야 한다'와 같은 도덕규칙을 왜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가지거나 그런 도덕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의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도덕규칙이나 규범들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은 결국 이 의문을 정당화하는 근거인 그러한 규칙들로 구성된 가치 체계 그 자체에 대해 스스로 반성해 보도록 우리를 인도할 수 있다. 혹은 우리가 이미 주어진 것으로 당연시하던 그 가치 체계 전체에 대해 '과연 정당한가?' '나는 자발적으로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하고 철학적으로 성찰할 수 있다. 가치 체계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은 가치 체계로 표현되는 도덕에 대한 의문이다. 따라서 문제되는 의문은 "도덕으로 표현되어 우리에게 적용되는 요구들을 왜 따라야만 하는가?" 간략히 말해서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로 표현되는 의문에 대답하려는 노력을 도덕성의 정당화(Justification for morality)로 규정할 수 있다. 도덕적 정당화(Moral Justification)가 세 종류의 정당화로 구성된다는 설명에 비추어 보면, 도덕성의 정당화는 하나의 전체로서의 가치 체계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사실적 정당화(verification)나 논리적 정당화(validation)가 아닌 실제적 정당화(vindication)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실제적 정당화와 달리 도덕성의 정당화가 단지 실용적인 정당성의 문제로만 미리 제한될 근거는 없다. 그 외에도 도덕성의 정당화에 접근하는 다른 방식들이 가능할 수 있다. 예컨대 스터바(James P. Sterba)는 도덕성을 정당화하려는 동시대의 철학자들의 시도들을 세 가지 종류로 구분한다: 도덕성이 자기이익에 의해 정당화된다는 주장; 도덕성이 사람들이 뜻밖에도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을 고려하는 관심, 욕구, 혹은 의도 등에 의해 정당화된다는 주장; 그리고 도덕성이 실천이성의 요구들에 의해 정당화된다는 주장.
도덕성의 정당화와 관련한 철학적 논의들은 정당화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한 것과 정당화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도덕성의 정당화에 관심이 있는 철학자들은 각자 자신들이 도덕성의 정당화와 관련하여 가정하거나 정의한 것에 근거하여 도덕성의 정당화란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하다고, 또는 도덕성이 이렇게 혹은 저렇게 정당화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에 앞서 선결되어야 하는 것은 도대체 도덕성을 정당화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도덕성의 정당화문제와 관련하여 도덕성의 정당화가 의미하는 바를 분명히 규정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먼저 절실히 요구된다는 인식 하에 본고는 도덕성이 적절히 정당화되기 위해서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를 규명해 보고자 한다. 먼저, 윤리학에서 정당화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고 도덕성의 정당화에서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로 대표되는 의문을 통해 대답되기를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 보고자 한다. 이러한 고찰이 도덕성을 정당화할 가능성이나 그 방법에 대해 직접적으로 어떤 분명한 대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그러한 문제들의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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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만(Carl Wellman)은 정당화란 본질적으로 만들어진 도전들(challenges)에 반응(response)하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도전에 반응하는 과정이라는 웰만의 정의는, 그가 밝히는 대로, 매우 포괄적이어서 어떤 진술이 참이라는 증거를 제시하는 추론뿐만 아니라 그 진술을 다시 명확하게 표현하거나 도전에 대해 반문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것 역시 정당화하는 것에 속할 수 있다. 웰만에게 있어서 한 진술을 정당화하는 것이 그 진술을 위한 좋은 이유들을 제시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진실에 대한 도전이외에도 적절한 도전들이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이유들이 아닌 정당화하는 반응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를 닦으라고 종용하는 엄마와 닦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아이와의 씨름에서 엄마는 이를 잘 닦지 않으면 충치가 생긴다는 점과 건강한 치아를 갖는 것의 중요성을 들면서 이를 닦아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할 수 있다. 한편, 아이는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이를 닦으라고 하시는 엄마에 대한 불만으로 이를 닦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울 수 있다. 아이의 이런 마음을 감지한 엄마는 이를 잘 닦아야 치아가 건강해진다고 강조하기보다는, "나중에는 닦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라든가 "나중에는 더 닦기 싫어질텐데?" 또는 "지금 닦고 가벼운 마음으로 노는 것이 더 낫지 않겠니?"라고 물으면서 아이를 설득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엄마의 이러한 반문이나 의문 역시 이를 닦아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의 정당화일 수 있다.
앞에서 우리는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로 표현되는 의문에 대답하려는 노력을 도덕성의 정당화라고 하였다. 웰만의 정의대로 한다면 도덕성의 정당화란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로 표현되는 도전에 적절히 반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웰만의 정의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그가 정당화를 구성하는 도전과 반응의 상대성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웰만에 따르면, 어떤 상황에서 누군가를 위한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어떤 것의 도전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어떤 도전이든 상대적인 속성을 가지며, 도전과 마찬가지로 반응 역시 반응하고 있는 도전에, 반응하는 사람에, 그리고 그 반응이 향하고 있는 사람과 상황에 상대적이다. 그리하여 그는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정당화했다는 것이 적절하게 말해질 수 있는 경우마다 이 진술에는 그러한 정당화가 완성된 상황과 사람에 대한 언급이 은밀히 내재되어 있다"고 말한다. 도전의 성격과 그 상황에 따라서 적절한 반응의 내용도 결정될 것이다.
우리는 도덕성의 정당화를 야기하는 도전은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라고 말했다. 사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런 의문을 자주 갖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특정의 가치 체계안에서 살도록 양육되거나 사회화되었고 흔히 특정의 가치 체계는 우리의 의식적인 선택의 범위를 넘어선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적이고 자율적인 반성이나 철학적인 성찰을 통해 나온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로 표현되는 도전은 도덕적 권위(moral authority)에 대한 직접적인 의문이다.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를 찾는 것과 도덕적인 요구를 따르는 것, 즉 도덕적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햄톤(Jean Hampton)은 무지나, 정신적인 병으로부터 혹은 실수로 인해 잘못 행동하는 사람들은 도덕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으며 잘못 행동하도록 강요당해서 그렇게 하는 사람도 도덕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비도덕의 본질에 대한 햄톤의 분석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 어떠한지를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그 상황은 아마도 이렇게 묘사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지를 잘 알뿐만 아니라 그러한 도덕적 권고가 그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숙고할 때 그 도덕적 권고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 권고에 저항하여야 하는지의 선택에 직면하게 되고 그리하여 도덕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도덕적이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싶어한다.
이러한 상황을 살펴봄으로써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로 대표되는 도전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 어떤 구체적인 도덕적 행동이나 신념의 정당화는 정당화를 야기하는 상황과 도전에 따라 주장의 진실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기보다는 주장을 좀더 명확하게 재진술한다거나 주장이 부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보이거나 혹은 상대 입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질문을 함으로써 적절한 반응을 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구체적인 판단이나 신념 행위와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는, 도덕적이어야 하는 이유들을 알면서도 단순히 혹은 그저 하기 싫다고 고집을 피운다거나 특정한 상대방에 대한 권위에 도전해 본다던가, 상대편을 단순히 당황케 하려고 한다던가 하는 그런 종류의 도전이 아니라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요구, 즉 도덕적 권위 그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다. 그 도전은 도덕적인 요구를 따라야 할 이유가 있는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를 직접적으로 묻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의문에 직접적으로 반응할 때 그 반응은 적절한 정당화를 구성할 수 있다. 도덕적 정당화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반응이 정당화로서 가능할 수 있겠지만, 도덕성의 정당화는 다름 아닌 도덕적이어야 하는 근거를 제시하는 반응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 밖의 다른 어떤 종류의 반응도 도전의 성격상 적절한 정당화를 구성하기 어렵다. 요컨대 도덕성의 정당화를 구성하는 적절한 반응은 도덕적이어야 할 근본적인 이유를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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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의 정당화를 구성하는 적절한 반응은 도덕적이어야 할 근본적인 이유를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당화가 도덕적이어야 할 근본적인 이유를 찾는 것이라면 이런 종류의 정당화는 필요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컨대, 툴민(Stephen Toulmin)은 특정의 행위를 수락된 사회적 관례나 도덕규칙에 적용하여 정당화하거나 특정의 사회적 관례들을 그것이 존속할 때의 가능한 결과와 다른 대안을 채택했을 때의 가능한 결과를 비교함으로써 정당화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이상의 어떤 일반적인 기준을 찾는 추론은 더 이상 윤리적인 추론이 아니라고 본다. 그에 따르면 "'옳음'과 '의무'의 개념들은 똑같은 상황에서 생기고 유사한 목적에 기여하기 때문에 우리는 '옳은' 것을 결코 '해서는 안된다고' 제안하는 것은 ('옳음'과 '의무'를 그것들의 가장 단순한 의미에서 이해할 때) 자기모순"이며 따라서 윤리학 안에는 "왜 옳은 것을 해야만 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위한 여지가 없다.
툴민의 경우처럼, 도덕적이어야 할 근본적인 이유를 찾는 것으로서의 도덕성의 정당화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들이 지적하는 바는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왜 옳은 것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며 따라서 그것은 "왜 모든 주홍색 물건들이 붉은가?"라고 묻는 것처럼 난센스에 불과하다는 점과 그러한 물음에 답하려는 노력은 더 이상 윤리적인 논의가 아니라는 점이다. 먼저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과연 정당한지 아닌지의 문제부터 살펴보자.
우리는 앞에서 진행된 논의에서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고 묻는 것은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라고 묻는 것임을 알았다.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의 물음의 정당성에 대한 논의들 중에는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논의들의 한가운데에는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다음과 같은 두 종류의 해석이 존재한다: (ㄱ)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할, 다시 말해서 도덕적으로 해야만 하는 것을 해야 할, 도덕적인 관점에서의, 어떤 이유가 있는가?"와 (ㄴ) "도덕적으로 해야만 하는 것을 해야 할, 도덕이외의 다른 관점에서의, 어떤 이유가 있는가?" (ㄱ)과 같은 해석은 우리에게 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것들은 옳은 것이며 옳은 것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도덕이므로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는 도덕적이어야 할 도덕적인 이유를 묻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리하여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왜 모든 주홍색 물건은 붉은가?"라는 물음처럼 의미가 없는 것이 된다. 반면에 (ㄴ)은 우리에게 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것이 도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근거하며 이 해석에 따르면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의 질문은 도덕적이어야 할 비도덕적인 이유를 묻는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
(ㄱ)처럼 우리에게 해야만 한다고 권고하는 것은 그것이 옳기 때문이고 따라서 그러한 권고는 결국 도덕에 해당된다는 것은 도덕을 매우 포괄적으로 이해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특정한 영역들에서의 우리의 관심과 태도 등에 근거하여 미적 가치, 경제적 가치, 정치적 가치, 법률적 가치 등의 여러 종류의 가치들을 설정하고 그러한 가치에 근거하여 바람직한 것들을 해야만 하는 것으로서 규정한다. 만일 도덕을 넓은 의미로 이해하여 우리에게 인간으로서 올바르게 살아가야 하는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라고 했을 경우 특정한 관점들에 근거한 다양한 가치들은 우리의 전반적인 삶에 걸쳐 영향을 미치면서 우리에게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도덕적 가치로부터 본질적으로 분리되기란 어렵다. 그리하여 도덕적 가치는 가치의 전 영역에 관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것은 그 밖의 다른 가치들을 본질적으로 구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에게 해야만 한다고 권고하는 것은 결국은 모두 도덕에 해당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좀더 엄밀히 말하면 도덕적으로 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이 다른 종류의 가치들에 근거하여 해야만 한다고 권고하는 것들을 압도한다는 의미이지, 인간에게 해야만 한다고 권고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해야만 하는 것들뿐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인간에게 해야만 한다고 권고하는, 도덕적인 것을 포함하는, 의무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다양한 도덕적 가치가 그 밖의 다른 제 가치들을 구속하고 도덕적 요구가 그 밖의 요구들을 압도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도덕적으로 해야만 한다고 권고하는 것이 그 밖의 해야만 한다고 권고하는 것들을 압도한다는 것과 인간에게 해야만 한다고 권고하는 것은 모두 다 도덕적인 의무라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무의 비도덕적인 사용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이 두 종류의 문제를 동일시하는 잘못을 범하는 듯하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 보자. 나는 여름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여 등록금을 마련하기로 계획을 세웠고 마침 적당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열심히 일한 지 한 열흘쯤 되었을 때 나는 할머니께서 편찮으시니 고향에 내려와서 병시중을 해 달라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았다. 나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나머지 방학기간 동안에도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한다는 것을 잘 안다. 또한 가족으로서 병드신 할머니를 돌보아 드려야만 한다는 것도 안다. 결국 나는 아르바이트를 계속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고향에 내려가기로 결정한다.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것을 해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할머니를 돌보아 드리는 것이 더 중요한,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다양한 종류의 의무들이 존재하는, 그리고 도덕적인 의무가 다른 의무를 압도하는 경우를 예시한다. 결과적으로 도덕적인 의무가 압도적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판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도덕적인 의무 이외에도, 비록 덜 구속력이 있다고 여기기는 하지만, 해야만 한다고 우리가 인식하는 것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것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덜 구속력이 있고 그리하여 다른 것이 행위의 지침으로 선택된다 하더라도 이 사실 때문에 해야만 하는 어떤 일이 그 자체로 일종의 의무라는 점이 부인되지는 않는다. 이와 같이 구체적인 개별적 의무들을 살펴 볼 경우 우리는 우리에게 해야만 한다고 권고하는 것들이 도덕적 가치를 포함하여 다양한 가치들에 근거한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사실은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는 (ㄴ)처럼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할 비도덕적인 이유가 있는가?"로 이해될 수 있고 따라서 의미있는 질문일 수 있음을 뒷받침한다.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할 비도덕적인 이유가 있는가?"의 물음은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가 행위를 위한 그 밖의 다른 모든 이유들을 압도하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행위의 차원에서 갖고 있는 많은 행동을 위한 이유들 중에서 우리가 도덕적인 이유들을 채택해야 하는 이유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고자 하는 동시대의 도덕철학자들이 가장 많이 제시하는 근거는 도덕적인 것이 합리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은 본고의 목적을 넘어서지만, 그 물음에 대답하려는 시도가 가능한지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 잠시 합리성에 근거하여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를 찾고자 하는 전략에 대해 논의를 좀더 해보자.
네이글(Thomas Nagel)은 정당화의 시도가 기본적인 요구들, 즉 변명하여 거절함으로써 피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는 요구들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사실이 정당화 시도를 성공할 수 없게끔 만든다고 본다. 만일 우리가 어떤 요구를 그러한 요구가 뒤따르게 되는 어떤 원칙에 의해 정당화하면, 그 원칙은 그 자체로 어떤 또다시 정당화되어야 하는 요구를 제시해야만 하며, 결국 우리가 정당화하기 위해 착수하는 어떤 요구도 궁극적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네이글의 말을 염두에 둔다면, 도덕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라는 대답과 관련하여 우리가 다시 왜 이성을 따라야 하는지, 왜 합리적이어야 하는지를 묻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베이어(Kurt Baier)에 따르면 이론적인 관점에서 해석된 '왜 합리적이어야 하는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성이 수지가 맞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이성은 행위를 위한 최선의 이유(the best reason)를 지적해 주고 우리의 숙고는 우리가 그 최선의 이유에 의해 지지되는 것을 돌보도록 인도한다는 것이다. 혹은 이성은 가장 강력한 이유(the strongest reason)나 믿을 만한 이유(the reliable reason)를 제시해 주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사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잠재적이건, 현재적이건) 이성을 소유한다고 가정된다. 인간을 다른 존재와 구별시켜 주고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이성이다. 그러나 이성이 최선의 이유나 가장 강력한 이유, 혹은 믿을 만한 이유를 제공한다는 점이 우리 행동을 위한 궁극적인 정당화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행동을 위한 궁극적인 정당화가 되기 위해서는 이성이 자기 충족적인 특성을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자신이 제공하는 이유들을 결정적이고 최종적이게 만드는 특성을 이성이 가지고 있어서 더 이상의 어떤 정당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될 때 우리는 이성의 자기충족적 특성을 수락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도덕적인 것이 합리적이라는 점이 바로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라고 주장할 경우 그 주장은 우리가 왜 합리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한 설명을 덧붙여서 정당화가 무한히 되풀이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도덕성의 합리적 정당화는 적절한 정당화전략이기 어렵다.
도덕적이어야 할 근본적인 이유를 제시하는 것으로서의 도덕성의 정당화에 회의적인 사람들이 제기하는 또 하나의 주장은 그러한 논의는 윤리학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이 도덕철학의 과제인지 아닌지와 관련하여 최상의 도덕원칙을 명료하게 하고자 하는 실천철학이 실천적인 목적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하는 칸트를 눈여겨볼 수 있다. 칸트에 따르면 도덕 철학은, 최상의 도덕원칙의 근원과 기능에 대한 정확하고 올바른 이해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다른 주장들-예컨대 개개인의 필요나 기호 등에 의해 제시된 주장들-에 반하여 도덕원칙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준다. 칸트의 이 말은 우리가 도덕원칙들을 지속적으로 수락하여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도덕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도덕철학의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는 우리가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임을 추론할 수 있다. 사람들이 실제로 언제나 해야 할 이유를 이해하고 도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도덕적 권위에 의문을 가지는 한, 도덕적으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를 제시하는 것은 도덕철학의 중요한 임무에 속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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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의 질문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분명히 살펴보아야 할 점이 또 있다. 어떤 질문이 행위에 관련되거나,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숙고하는 행위자가 직면하고 있는 질문일 때 그것은 실천적이다. "왜 거짓 약속을 해서는 안되는가?"와 같은 질문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숙고할 때 제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즉 행위에 관련된다는 점에서 실천적인 반면에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의 질문은 도덕적이어야 할 일반적인 이유를 묻는다는 점에서 직접적으로 행위에 관련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후자가 이론적인 질문일 수만은 없다. 우리가 구체적인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숙고할 때 내리는 판단의 기준으로 작용하는 도덕 규범이나 규칙이 바로 도덕적이어야 할 일반적인 이유에 의해 정당화된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서 도덕적이어야 할 일반적인 이유가 특정 상황에서 특정 행위를 위한 숙고와 판단에 근본적인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그 질문은 결국 행위에 관련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이론적일 뿐만 아니라 실천적인 속성 역시 가진다면, 그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가 타당하고 설득력이 있기 위해서는 그 이유가 행위의 주체에게 해당되어야 할 것이다. 행위의 주체는 행위를 실행하는 각각의 사람이다. 그리하여 행위의 주체는 집단적으로 이해되는 우리라기보다는 개개인 각자를 의미하며 결국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는 행위자 개개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 즉 내가 도덕적이어야 하는 이유이다.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의 질문은 행위에 관련될 뿐만 아니라 행위자로서의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숙고할 때, 비록 직접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직면하게 되는 질문이다. "왜 내가 거짓 약속을 해서는 안되는가?"라는 질문은 "'거짓 약속을 해서는 안된다'는 도덕 규범을 왜 내가 지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나아가서 "왜 나는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행위자로서의 나는 이유를 가지고 행동하며 행동을 위한 이유를 찾으려고 숙고한다. 따라서 행동하도록 나의 마음이 움직여지는 것과 나의 숙고를 통한 판단간에는 어떤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거짓 약속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나는 행동을 위한 이유를 이유이게끔 하는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에 대해 숙고한다.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를 포함하는 나의 숙고를 통한 판단은 나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예컨대 거짓으로 약속하는 대신 솔직히 내 상황을 털어놓는 행동을 하도록 인도하는 데에 작용한다. 이것은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가 나로 하여금 도덕적으로 행동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데에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규범적인, 정당화하는 이유와 동기를 부여하는, 설명적인 이유간에 개념적인 구별이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의 질문이 실천적인 속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두 종류의 이유는 실질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가 행위자 개개인에게 해당되는, 그리하여 내가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이고 그 이유는 나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데에 작용한다는 입장은 행위를 위한 동기를 갖는 것이 도덕판단을 내리는 것의 영향을 받으며 도덕적인 고려들이 동기지우는 어느 정도의 힘을 갖는다고 보는, 내재주의(internalism)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에서 요구되는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는, 윌리엄스(Bernard Williams)의 용어를 빌려, 내재적 이유(internal reasons)라고도 부를 수 있다.
한편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의 속성을 밝히는 일이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또 다른 점은 이 질문이 도덕성의 정당화를 구성하는 도전이라는 점이다. 정당화가 도전에 대한 반응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도전에 적절히 반응하기 위해서는 반응하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도전을 하는 사람이 그 반응을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도전자와 반응자가 동일하여 자신에게 도덕적이어야 하는 이유를 자문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혹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고 의문을 던지는 경우들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엄마가 아들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할 경우, 아들은 왜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는지 물으면서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도덕규칙을 따라야 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할 수 있다. 아들이 엄마가 제시하는 이유를 수긍할 때, 즉 자신의 도전을 철회할 때, 엄마가 제시하는 이유는 아들의 도전에 대한 적절한 반응으로서 정당화를 구성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바로 엄마가 제시하는 이유는 엄마의 관점에서 정당한 이유일 뿐만 아니라 아들의 관점에서도 정당해야만 한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정당화한다는 것은 도전을 철회시키고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것이다. 만일 도전에 대한 반응으로 제시된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가 특정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유라면, 그것은 도전자에 의해 수용되기 어렵고 따라서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도전자를 설득할 수 있는 반응이려면 그 도전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이유이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도덕적인 요구는 그러한 요구가 적용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해당된다. 이런 의미에서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요구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도덕성의 정당화에 대한 (명시적인 혹은 잠재적인) 도전자라고 할 수 있으며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에서 요구하는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는 우리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이유이어야 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내재적 이유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이유를 요구한다. 그러나 도덕성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나로 하여금 동기를 유발하는 이유에 영향을 미치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이유이어야 한다는 점은 아마도 도덕성의 정당화를 가장 어렵게 만드는 요인에 속할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흔히 내가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와 우리가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 신념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같지 않고 모든 사람이 구체적인 나일 수는 없기 때문에 "왜 우리가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우리'가 배분적으로 취해져서 그 질문이 각 개인을 위해 "왜 나는 도덕적이어야만 하는가?"라고 묻는 간결한 방식이 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왜 우리가 도덕적이어야 하는가?"에서 우리를 구성하는 한 개인으로서의 나는 우리를 구성하는 그 밖의 다른 구성원과 동일하게 취급되는 반면 "왜 내가 도덕적이어야 하는가?"에서의 나는 다른 어떤 사람과도 구별되는 나름의 관심이나 목표 등을 가진 한 개체로서 간주되기 때문에 첫 번째 질문에서 우리를 구성하는 각 개인은 두 번째 질문에서의 나를 뜻하는 개인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행위자중립적인(agent-neutral) 관점에서의 개인과 행위자상대적인(agent-relative) 관점에서의 개인이라는 두 종류의 개인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가 집단적인 관점에서 도덕적일 때의 이익을 지적하면서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에 대답한다고 가정할 경우 그 대답이 왜 우리가 도덕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이 될 지언정 왜 내가 도덕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이 반드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은 매우 그럴듯한 결론이다.
여기에서 내가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와 우리가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 속에 다음과 같은 것들이 당연한 것으로 전제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a)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를 제공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데에 작용하는 것은 행위자 자신의 욕구나 기호 관심 등이다; (b) 행위자 개개인의 모든 욕구나 기호 관심 등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중심적이라고 할 수 있다; (c) 이성은 우리의 실천적인 추론에서 단지 도구적으로만 작용할 뿐, 동기를 부여하는 작용을 할 수는 없다. 사실 이 세 가지 점들은 당연한 것으로서 전제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논의의 대상이며 증명되어야 할 사항들이다. 도덕성의 정당화에 관심이 있는 동시대의 도덕철학자들은 이 세 가지 전제들을 둘러싸고 다양한 입장들을 택하고 있다.
먼저 이 세 가지 전제로 인해 내가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와 우리가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으며 우리는 우리가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를 가질 수는 있지만 내가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를 가질 수는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예컨대 닐슨(Kai Nielson)에 따르면 도덕적인 관점에서는 도덕적인 이유들이 타산적이거나 이기적인 혹은 그 밖의 다른 어떤 종류의 이유들을 압도하지만, 보통 배타적으로 이기적인 관점에서 혹은 순수하게 계급에 근거한 관점에서는 이기적인 혹은 계급에 토대를 둔 이유들이 도덕적인 이유들을 압도하기 때문에 개개인이 관련된 곳에서, 도덕이 늘 최선의 정책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성이 어떤 종류의 이유들이 최종적으로 압도적인지를 밝혀 주기를 기대하지만 인지와 이해력(human intelligence and understanding)으로서의 이성은 도덕적인 이유들이 압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우리에게 요구하지 못한다고 그는 믿는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가 도덕적이어야 하는 이유를 가질 수는 있을지언정 내가 도덕적이어야 하는 이유를 가질 수는 없다고 결론짓는다. 만일 닐슨과 같은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앞에서 우리가 규정한 정당화의 의미에 따라, 도덕성의 정당화는 가능하지 않다고 결론지어야 할 것이다.
둘째, 문제의 세 가지 점들을 인정하면서 내가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와 우리가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를 일치시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다. 예컨대 고티에(David Gauthier)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합리적인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할 때 그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제한으로 도덕을 인식할 때 그의 정당화는 기본적으로 위의 세 가지 점을 전제한다. 그러나 개개인들이 사용하는 도구적 합리성의 상호의존적 측면에의 적용이 -집단적 관점에서의 적용이- 보장되지 않는 한, 다시 말해서 도덕체계에 복종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거나 결국 이득이 되지 못하는 결과를 야기한다는 것이 보장되지 않는 한, 그들의 노력은 성공할 수 없다.
한편 (a), (b), (c)를 부인하고 내재적이면서 보편적인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를 이성에서부터 찾아보려는 사람들도 있다. 실천이성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은 윤리학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들에 속할 것이다. 문제의 세 가지 점들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a)와 (c)에 관해서는 어느 하나를 인정하는 것은 다른 하나를 인정하는 것을 수반한다고 흔히 여겨진다. 우리의 욕구나 기호가 우리를 행동에로 움직이게 한다는 것을 너무도 분명하게 경험할 수 있는 반면 이성이 그러한 힘을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많은 사람들은 느낀다. 동기와 관련한, 이러한 경험적인 특성이야말로 실천이성의 존재를 인정하기 어렵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 그러나 실천이성의 존재여부와 관련하여 이러한 믿음은 당연히 전제될 수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 자체로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다. 예컨대 코르스가아드(Christine M. Korsgaard)는 인간이 이성에 의해 동기지워질 수 있다는 것과 우리가 실제로 이성에 의해 반드시 동기지워진다는 것을 구별함으로써 실천이성에 대한 회의주의가 암암리에 당연시하고 있는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그녀에 따르면, "만일 어떤 사람이 행동에 관계가 있는 이유들인 것을 발견하고 그러한 이유들이 우리에게 동기를 유발하는데 실패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합리성의 한계를 보여줄 뿐이며" 그것이 실천이성에 대한 회의주의의 근거는 아니다. 요컨대 이러한 세 종류의 입장을 살펴 볼 때 내재적 이유이면서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a) (b) (c)가 과연 적절한 전제인지에 대한 논의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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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복잡하고 모든 것이 급속하게 변하는 상황속에서 오늘날의 인간은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많은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었다. 특히 과학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삶을 풍요하고 편리하게 한만큼 인간의 삶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인간에게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끊임없이 던져 주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속에서 도덕의 역할에 대한 요청과 기대는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예컨대 복제기술의 급속한 발달은 인간복제를 가능케 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과연 복제기술을 어떻게 다루는 것이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하고 존중하는 것인지를 묻게 되고 많은 사람들은 도덕이 이 물음에 길을 제시해 주길 기대한다. 도덕에 대한 이와 같은 시대적 요청과 기대에 부응하여 현재 윤리학분야에서는 응용윤리의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환경윤리, 의료윤리, 직업윤리, 컴퓨터윤리 등등으로 인간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윤리적인 답변을 제공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가 환경윤리나 의료윤리 등등에 대한 논의를 통해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방안을 구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왜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나의 대답이 되어야 하는지가 명백하지 않는 한 진정한 해결책으로 작용하기 어렵다. 바로 여기에서 도덕성 그 자체의 근본적인 토대 내지 기초가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하는 도덕성의 정당화시도가 가지는 시대적인, 실제적인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본고에서 도덕성이 적절하게 정당화되는 구체적인 방안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자 하지는 않았다. 다만 정당화를 '도전에 대한 반응'이라는 도식속에서 이해하고 도덕성의 정당화를 통해 무엇이 밝혀져야 하는지를 좀더 분명하게 파악해 보고자 하였다. 도덕성의 정당화를 구성하는 도전은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으로서 이 의문은 이론적인 속성뿐만 아니라 실천적인 속성을 갖는다. 이 의문의 성격을 규명해 볼 때 이 의문은 도덕적인 것이외에도 우리에게 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것들이 있다는 점에서 정당한 의문이며, 이에 대한 적절한 반응은 도덕적이어야 할 근본적인 이유를 직접적으로 제시해야 하며 이 이유는 내재적 이유이면서도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이유이어야 한다. 도덕성의 정당화가 가능한지 아닌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는 바로 이러한 성격을 가진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를 발견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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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cast a doubt on particular moral rules such as 'Don't lie' and then reflect upon our value system which is composed of those rules is to cast a doubt on morality itself expressed by the value system and ask a question of "Why be moral?" The effort to give an answer to this question "Why be moral?" can be defined as the justification for morality. It is a matter of primary importance in trying to find out the way how morality is appropriately justified to make clear what should be investigated by the justification for morality. If a justification is understood as 'a response to a challenge', to justify morality is to respond to the challenge expressed by the question "Why be moral?", which is a straight challenge to moral authority itself. Therefore a proper response in the justification for morality should present directly the fundamental reasons for being moral. To ask the reasons for being moral can be legitimate in that we are recommended to do actions by various kinds of value including the moral one and so the question "Why be moral?" can be interpreted as the question "Why is the reasons for being moral which are not moral?" It is not true that we act morally only when we understand the reasons for action. However it can be an important task of moral philosophy to show the reasons for being moral because we, insofar as we have some doubt about moral authority, cannot act morally until we have a clear understanding of the reasons for being moral. The reasons for being moral can be reasonable and convincing when they are so applicable to the subject of agency that they can be the reasons for which 'I' should be moral. For the question "Why be moral?" has practical features as well as theoretical ones. On the other hand they must be the reasons which can be generally applicable since moral rules are true of all of us and in this sense we are (manifest or potential) challengers in the justification for morality. It depends on whether we can find out the reasons for being moral which have the features mentioned above to know whether it is possible to justify morality or not and, if possible, how it should be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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