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베버의 가치 철학에서 책임윤리와 합리성의 한계

나뭇잎숨결 2023. 12. 31. 08:44

베버의 가치 철학에서 책임윤리와 합리성의 한계

류 지 한(동의대)


[한글 요약]

베버의 가치 철학은 사실-가치 이원론에 근거한 가치 다원주의와 가치 결단주의이다. 가치는 사실에 의해 정당화될 수 없으며, 다원적인 가치 갈등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궁극적 가치의 정당화나 가치 갈등의 해결은 최종적으로 가치 결단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가치 결단은 일부 합리적 요소를 포함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몰합리적이다. 가치 문제에서 과학은 궁극적으로 무력하고, 합리성은 최종 심급에서 한계에 부딪힌다.

궁극적 가치 결단의 몰합리성은 도덕의 영역 내에서 심정윤리와 책임윤리 사이의 선택에서도 드러난다. 심정윤리와 책임윤리 두 관점은 완전히 반대되는 양극단을 이루고 있으며, 이 양자의 대립은 합리적 논증에 의해 화해 불가능하다. 심정윤리와 책임윤리 사이의 선택도 몰합리적인 궁극적 결단에 의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정윤리는 '가치 다원주의', '탈주술화', '합리화'라는 우리 시대의 운명과 타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세계의 윤리적 비합리성'이라는 우리의 경험과도 불일치한다. 이에 비해 책임윤리는 다원주의, 탈주술화, 합리화라는 시대적 조건과 선택적 친화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윤리적 비합리성을 신중하게 고려한다. 이점에서 책임윤리는 심정윤리에 비해 시대 적합성과 경험 적합성을 가진다. 특히 정치와 같은 공적 영역에 적용되는 윤리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심정윤리에 비해서 책임윤리를 따라야 할 '논리적 이유'는 없다. 다원주의, 탈주술화 및 세계의 윤리적 비합리성 등의 조건이 심정 윤리를 논리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책임윤리와 심정윤리 간의 선택은 궁극적 가치 결단에서와 마찬가지로 최종 심급에서 궁극적으로 몰합리적이다. 단지 시대 적합성과 경험 적합성이라는 '현실적 이유'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책임윤리적 가치 지향은 논리적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어도 시대 적합성과 경험 적합성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정당화될 수는 있다. 그러므로 책임윤리를 따르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몰합리적이지만 제한된 의미에서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주제분야 : 윤리학, 사회 철학, 가치론
주 제 어 : 사실-가치 이원론, 가치다원주의, 가치결단주의, 심정윤리, 책임윤리
1. 서론

베버는 자기 자신을 경험 과학자로서 자처하였지 도덕 철학자로 여기지는 않았으며, 체계적인 가치 철학을 연구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베버 자신의 '가치에 대한 견해'는 그의 사회 과학 방법론을 비롯해서 모든 사회학적 저서의 기저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윤리의 합리성에 관한 논의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실상, 베버의 사회 과학 방법론은 그의 가치 철학에 대한 이해 없이는 올바르게 이해될 수 없다. 베버는 사회 과학 연구에서 '가치 관련성' (Wertbezie- hung)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면서도 '가치 자유성(Wertfreiheit)'을 강조하고 있다. 일견하기에 모순되어 보이는 이 주장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베버의 가치 철학, 특히 사실-가치 이원론과 이에 근거한 과학과 가치의 관계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베버의 가치 철학에 대한 이해 없이 가치 관련성의 명제나 가치 자유성의 요청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경우, 어느 한 쪽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양자의 모순성만 부각시켜서 베버의 진의를 왜곡하게 된다. 흔히 오해되었던 것과는 달리 그는 사회 과학에서 가치 판단이 제거될 수도 있다고 믿지 않았으며, 또 가치가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믿지도 않았다. 베버는 다양한 가치가 충돌하고 있는 가치 다원주의 시대에서 개인적으로 신봉하는 가치의 표현과 지식의 객관성 추구가 상충하지 않고 병존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주려고 했던 것이다.

베버의 '심정윤리(Gesinnungsethik)' 와 '책임윤리(Verantwortungsethik)'에 대한 논의도 베버의 가치 철학에 대한 선이해 없이는 올바르게 이해될 수 없다. 왜냐하면 가치 문제에서 합리성의 범위와 한계에 대한 논의가 책임윤리와 심정윤리에 대한 논의의 배경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처럼 베버의 가치 철학은 베버 자신의 사회 과학 방법론과 도덕 사상 이해하는 초석이며, 가치 다원주의 시대에서 '학문하는 방법'과 '개인적 가치 추구'를 이해하는 길잡이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베버의 가치 철학을 가치 문제에서 합리성의 범위와 한계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사실-가치 이원론, 가치 결단주의, 가치 주관주의 및 가치 다원주의를 합리성의 한계라는 측면에서 고찰한 다음, 베버가 제시하고 있는 심정윤리와 책임윤리를 검토함으로써 윤리적 결단에서 합리성의 문제를 알아보고자 한다. 특히, 베버가 궁극적 가치 결단의 몰합리성(non-rationality)을 시종일관 주장하면서도 그 자신은 책임윤리적 가치 지향을 나타내고 있음을 감안할 때, 심정윤리에 비해서 책임윤리를 선택해야 할 합리적 이유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책임윤리와 심정윤리 사이의 선택도 아무런 합리적 근거 없이 이루어지는 자의적 선택의 문제인지 아니면 심정윤리와 책임윤리 사이의 결단을 지도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를 중점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2. 사실-가치 이원론과 합리성의 한계

1) 사실-가치 이원론과 가치 정당화의 한계

베버가 내린 사실(fact)과 가치(value)의 구분은 그의 가치 철학을 이해기 위한 핵심 전제이다. 존재(is)에 관한 진술에서 당위(ought)의 결론을 도출할 수 없다는 흄(D. Hume)의 생각(Hume's law)과 신칸트학파의 사실-가치 이원론에 동의하면서, 베버는 경험적 명제(empirical proposition)와 규범적 판단(normative judgments) 사이의 절대적인 논리상의 단절성을 주장한다.

베버의 사실-가치 이원론에 따르면, 사실적 전제에서 당위적 결론을 도출할 수 없다. 적어도 하나의 실질적인 가치 원리를 포함하지 않는 전제들로부터는 어떤 가치 판단도 타당하게 도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명제는 '전제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어떤 것도 결론 속에 끌어들일 수 없다'는 일반 논리학의 규칙에 의해 정당화된다. 즉, 결론으로서 가치 판단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전제들 가운데 적어도 하나의 가치 원리나 가치 이념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가치와 사실은 논리적으로 엄격하게 구분되며, 사실에서 가치를 추론하는 것이나 역으로 가치에서 사실을 추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베버에게 있어서 사실을 다루는 과학과 가치를 다루는 도덕은 절대적으로 분리된 상호 독립적인 영역이다.

베버에게 있어서 사실-가치 이원론은 과학적 탐구에서 가치의 역할과 한계를 정해주는 이론적 초석이자 또한 가치 문제에서 과학의 역할과 한계를 규명하는 이론적 토대이다. 베버의 사회 과학 방법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과학의 가치 자유성 논제 및 과학과 가치의 관계에 관한 논제는 모두 사실-가치 이원론에 그 이론적 근거를 두고 있다.

사실-가치 이원론에 따르면, 사실의 세계와 가치의 세계는 상호 독립적인 영역으로서 서로에게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다. 따라서 과학적 가설과 가치 판단은 상호 독립적으로 정당화되어야 한다. 즉, 과학은 그 정당화의 맥락이 가치에 의해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되며(가치 자유성 논제), 가치 영역 또한 가치 판단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학적 결론에 구속될 필요가 없다. 가치의 타당성은 사실에 의해 구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해야 한다(윤리학의 자율성 논제).

베버는 '가치 관련성'과 '가치 자유성'이라는 두 가지 개념을 가지고 과학적 탐구 과정에서 가치의 역할을 조명하고 있다. 베버는 문화 현상 자체를 가치 현상 또는 가치 담지적 현상으로 보며, 이 무한한 현상으로부터 연구 대상을 선정하는 문제에서 원인을 정하고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연구자의 가치 관련성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베버에 의하면 사회 과학이 불가피하게 가치 관련적이라는 사실이 사회 과학의 객관성을 무효화시키지 않는다. 베버는 과학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과학적 탐구 과정에서 가치 자유성을 요구한다. 베버에게 있어서 가치 자유성이 의미하는 바는 일단 사회 과학자가 그의 가치에 입각해서 특정 문제를 선택하고 나면, 과학자는 자기의 가치를 자료에 강요할 수 없으며, 그 결과가 그가 바라는 바와 일치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그 탐구의 과정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가치가 관련되고 또 관련되어야만 하는 영역은 문제를 제기하고 연구 대상을 정하고 가설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뿐이다. 일단 설정된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가치가 빠져야만 한다. 가설의 타당성 검증은 과학 자체의 절차와 규칙에 따라 이루어져야만 하지, 과학자가 추종하는 가치에 유리한 결론을 유도하기 위해 검증의 절차나 규칙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가치 자유성은 과학자의 주관적 가치에 의해 과학적 탐구 과정과 결론이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는 요청인 것이다. 베버의 견해는 현대 과학 철학의 용어를 빌어서 표현하면, 과학적 탐구는 '발견의 맥락(the context of discovery)'에서는 가치 관련적이지만, '타당화의 맥락(the context of validation)'에서는 가지 자유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가치 이원론은 과학적 탐구의 가치 자유성뿐만 아니라 가치 정당화에서 과학의 역할과 한계도 분명히 해준다. 사실-가치 이원론에 의해 과학과 도덕은 절대적으로 분리된다. 사실과 가치의 논리적 단절성 때문에 과학이 밝혀주는 어떤 사실적 진리도 가치 판단을 정당화해주는 근거로 사용될 수 없다. 과학은 가치 판단이나 궁극적 가치 원리를 정당화할 수 없다. 가치 판단은 과학과는 독립적으로 정당화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자는 과학적 탐구의 결과를 자신이 신봉하는 가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수 없다.

과학은 목적의 설정이나 가치의 선택,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가치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할 수 밖에 없고 침묵해야만 한다. 이런 물음은 과학의 관할 영역을 넘어서는 문제이다. 과학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실질적 지침도 제공할 수 없다. 전적으로 경험적인 분석은 오직 절대적으로 주어진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이 적절한가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을 따름이다. 달리 말해서 과학은 목적 달성을 위한 합리적인 수단을 밝혀주거나 결과에 대한 합리적 예측은 할 수 있어도 어떤 목적이 목적으로 타당한가는 결정하지 못한다. 베버는 과학을 지도에 비유한다. 과학은 특정한 목적지에 가기 위한 길을 가르쳐 주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베버는 과학적 탐구를 통해 도덕적 입장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당시의 과학주의(scientism)의 한계를 분명히 하고 있다. 과학적 합리성은 가치의 영역에 대해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과학적 논의의 권위를 빌어서 가치 문제를 정당화하고자 하는 시도는 흄의 법칙을 위반하는 논리적 오류이다. 이 점은 무어(G. E. Moore)가 말하는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의 베버적 표현이다.

그러면 사실과 가치의 논리적 단절성을 가정할 때, 가치 판단, 가치 원리, 또는 궁극적 가치 공리는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해서 베버는 합리성의 한계를 인정한다. 사실과 가치의 이원론을 전제할 때, 가치 판단은 경험 과학적 분석에 의해서 정당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봉쇄된다. 자연주의적 정당화의 가능성을 배제할 경우, 다음으로 가치 판단을 정당화하기 위해 호소할 수 있는 방법은 개별적인 가치 판단을 더 일반적이고 고차적인 메타 가치 원리에 호소함으로써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메타 가치 원리는 다시 더 고차적인 메타-메타 가치 원리에 호소해서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정당화 방법은 무한 소급(infinite regress)으로 이어져서 가치 판단의 최종적 정당화를 무한히 지연시키는 악무한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고차적 가치 원리에 호소해서 가치를 정당화하는 방법 역시 불합리한 것으로 거부된다.

고차적 가치 원리에 호소하는 방법을 배제할 경우, 이제 가치 판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 방법은 궁극적 가치 원리 또는 궁극적 가치 공리에 대한 선택적 결단을 하거나(결단주의), 아니면 직관에 의해 다양한 궁극적인 가치 원리들의 우선성을 명백히 밝혀 주는 하나의 포괄적 가치 체계를 구성하는 것이다(직관주의 intuitionism). 그런데 베버의 견해로는 직관에 의해 포괄적 가치 체계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직관 자체가 다양하기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직관들 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객관적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베버에 의하면 오히려 우리의 운명은 각기 내적 일관성을 지니면서 동시에 서로 배타적인 가치 체계들이 상충하는 가치 다원성에 직면해 있다. 이 가치의 다원성은 직관의 다원성과 비합리성의 반영에 다름 아니다. 직관주의에 의해 궁극적 가치 공리를 합리적으로 정당화하고자 하는 시도는 직관의 다양성과 가치의 다원성이라는 사실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베버는 가치 원리의 정당화 문제에 있어서 과학주의와 직관주의에 반대하고 결단주의로 나아간다. 궁극적 가치 공리는 과학적 탐구에 의해서도 정당화될 수 없고, 신비적 직관에 의해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과학적 탐구는 사실과 가치 사이의 논리적 간격을 넘지 못하고, 직관에는 공인된 객관적 인식의 통로가 존재하지 않는다. 베버에 따르면 궁극적 가치 공리나 가치 판단을 정당화하는 문제는 근본적으로 결단의 문제이다. 궁극적 가치 공리는 개인의 주체적 결단에 의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을 뿐이다.

2) 가치 결단주의와 합리성의 한계

베버는 사실과 가치의 논리적 단절성을 근거로 해서 가치 판단의 궁극적 정당화와 대립하는 가치들 간의 갈등은 최종적으로 결단에 의해서 해결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이러한 결단은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 달리 말해서 이러한 가치 결단을 규제하는 합리적 절차나 방법 또는 기준이 존재하는가? 베버는 궁극적 가치 공리의 정당화의 몰합리성(non-rationality)을 누누이 강조한다. 가치 판단이나 궁극적 가치 공리를 정당화할 수 있는 합리적 추론 절차나 방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궁극적 가치 공리나 가치 판단을 정당화하는 문제는 근본적으로 몰합리적인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베버에 의하면 가치 판단을 정당화하는 문제에서 '합리성'의 한계는 분명해진다. 합리성은 가치 자체에 대해서는 맹목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베버가 궁극적 결단의 몰합리성을 강조한다고 하여 이것이 곧 궁극적 결단은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 가치 결단에는 합리적 요소와 합리성이 적용될 수 없는 요소가 혼재해 있다. 이런 의미에서 궁극적 가치 결단은 몰합리적인 것이다. 베버의 결단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단의 합리적 측면과 결단의 몰합리적 측면을 좀더 명확하게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가치 결단의 합리적 요소

베버에 의하면 가치 결단이 전적으로 몰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결단에는 합리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다만 그 범위가 제한적일 뿐이다. 결단 자체는 근본적으로 합리적으로 지배될 수 없지만, 결단과 관계된 상황은 합리적으로 분석될 수 있다. 즉, 선택 상황은 합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으며, 여러 가지로 가능한 결단의 '경험적 결과'와 '논리적 연관성'도 분명히 할 수 있다. 선택 상황에 대한 이러한 합리적 분석을 통해서 결단에 대한 명료성을 갖게 되고, 그 결과로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의식하면서 선택하게 된다. 요컨대 베버는 가치에 대한 경험 과학적 분석과 철학적 분석을 통해 제한된 수준에서 가치에 대한 합리적 논의가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제한된 범위의 '가치의 과학'이 가능한 것이다.

한마디로 결단의 합리적 요소는 '경험적 분석'과 '철학적 분석'을 사용하여 결단에 관한 명료성을 획득하도록 하는 것이다. 먼저 경험적 분석은 첫째, 베버의 표현을 따르면 '불편한 사실(inconvenient facts)', 즉 개인의 편견이나 세계관에 맞지 않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다. 경험적 분석은 행위자에게 그가 선택한 가치와 조화될 수 없는 중요한 '불편한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킴으로써 자신의 가치 결단이 진정으로 그가 원하는 가치인지에 대한 명료한 의식을 획득하도록 한다. 둘째, 경험적 분석은 여러 대안적인 행동 경로의 결과 ― 의도한 결과, 의도하지 않았지만 과학적으로 예견할 수 있는 결과 ― 를 구체화함으로써 결단의 명료성을 갖게 해준다.

다음으로 철학적 분석은 가치 지향성에 관한 명료성을 갖게 해준다. 철학적 분석은 궁극적 결단을 '궁극적 세계관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궁극적 결단을 통해 선택한 가치가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궁극적 가치의 결단은 단순히 선호되는 하나의 가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궁극적 가치 공리와 이 가치 공리에 포섭되는 가치 체계 또는 세계관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점을 감안할 때, 행위자가 자신의 결단이 가지는 궁극적 세계관적 의미를 명료하게 이해하도록 하는 것은 논리적 연관성을 충분히 이해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책임있는 가치 결단에 필수적이다. 이것은 궁극적 가치 결단이 가치 합리성이라는 의미에서 행위자가 결단하는 가치들 간에 내적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이와 같은 경험적 분석과 철학적 분석의 도움을 받아 내려지는 궁극적 결단은 내적 일관성과 명료성, 그리고 자기의식 하에서 진행되는 결단이라는 점에서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 결단은 최종 심급에서(in the last instance) 적나라한 몰합리성을 드러낸다.

(2) 윤리적 결단의 궁극적 몰합리성

궁극적 가치 결단은 부분적으로 합리적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몰합리적인 선택이다. 첫째, 아무리 경험 과학적 분석을 통해 행위자가 선택하고자 하는 가치와 조화될 수 없는 '불편한 사실'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궁극적 가치 결단이 옳지 않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함축하지 않는다. '불편한 사실'은 궁극적 가치 결단을 논리적으로 제약하지 못한다. 베버는 시종일관 사실로부터 가치가 추론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불편한 사실'을 감수하고라도 자신이 선택하고자 하는 가치에 헌신하기로 결단한다면, 그것을 비합리적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경험 과학은 궁극적인 가치 결단에 대해서는 최종 심급에서는 아무런 권한도 가지지 않는다.

둘째, 경험적 분석이 여러 대안적 경로의 결과를 구체적으로 밝혀준다고 할지라도 이것 역시 궁극적 결단을 최종 심급에서 합리적으로 제약하지는 못한다. 경험 과학적인 결과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어떤 목적은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수단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거나, 또는 원하는 목적을 성취하는 데는 원하지 않는 부차적 결과가 수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럴 경우 목적과 불가피한 수단 간에 또는 목적과 원치 않는 부차적 결과 간에 또는 대안적인 목적 간에 선택하지 않으면 안될 필연성에 당면하게 된다. 그러나 대안적인 행동 경로의 결과에 대한 경험적 분석은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침도 제공할 수 없다. 행위자는 결과를 고려하여 가치 선택을 할 수도 있고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가치 선택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과를 고려하여 결단을 하는 것을 합리적이라고 하고, 결과에 무관하게 자신의 가치를 일관되게 추구하는 것을 비합리적이라고 할만한 근거가 베버의 가치 철학 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베버는 전자의 경우를 목적 합리성에 근거한 책임윤리라고 부르고, 후자의 경우를 가치 합리성에 근거한 심정윤리라고 부른다. 경험 과학적 분석이건 철학적 분석이건 간에 가치 합리성과 목적 합리성 사이의 선택 혹은 심정윤리와 책임윤리 사이의 선택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 두 가지 합리성 간의 선택은 전적으로 행위자 개인의 몰합리적 선택에 근거한다.

셋째, 자신이 선택하고자 하는 가치의 논리적 연관성 또는 궁극적인 세계관적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철학적 분석을 제공하는 것 또한 궁극적인 가치 결단을 합리적으로 제약할 수 없다. 행위자는 비논리적이고 즉흥적인 가치 선택을 자신의 궁극적 가치 공리로 선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험 과학적 분석과 철학적 분석은 이러한 가능성에 합리적인 규제를 가할 수 없다. 합리성 자체를 거부하는 결단은 합리성에 호소해서 규제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선택의 대상이 선택의 기준으로 활용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궁극적인 가치 결단은 비록 결단하는데 합리성의 요소가 부분적으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최종 심급에서는 언제나 몰합리적인 선택이다.

가치 판단을 과학적으로 다루게 되면 그 속에 깔려 있는 희구되는 목적이나 이상을 이해하고 적절히 분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비판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이러한 비판은…… 역사적으로 가치 판단이나 이상에 대한 형식이론적 판단, 또는 희구되는 목표의 내적 일관성이란 가정에 따른 사상의 검토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행동하는 개인이 확실히 의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또는 논리성을 위해 미리 상정하고 있던 궁극적 가치기준을 명확히 알도록 해 줄 수 있다. ……이러한 가치 판단을 표출하는 사람이 '꼭' 이러한 궁극적 기준을 '준수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그의 개인적인 문제이다. 그것은 의지나 양심의 문제이지 경험적 지식의 문제는 아니다.

베버에게 있어서 궁극적 결단은 어떤 객관적 기준에 의해서도 좌우될 수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몰합리적이다. 그 이유는 결단을 좌우하는 기준 자체도 선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사실-가치 이원론에 바탕을 둔 베버의 가치 결단주의는 가치에 대한 합리적인 궁극적 정당화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궁극적 가치 공리의 정당화가 불가능하다면, 갈등하는 다양한 가치들을 통약할 수 있는(commensurable) 보편적인 공통의 척도는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한다 하더라도 합리적으로 인식하거나 증명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보편 타당한 가치 원리나 가치 이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베버의 가치 철학은 가치 주관주의와 가치 다원주의로 나아간다.


3. 가치 주관주의 및 가치 다원주의와 합리성의 한계

베버는 가치 문제를 개인적 가치 지향성(value-orientation)과 사회적 가치 영역(value sphere)으로 나누어 고찰한다. 가치는 한편으로 각 개인이 창조한 가치 지향성에서 나타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각 개인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가치 영역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가치 갈등도 한편으로는 개인의 주관적인 가치 지향성 간의 갈등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객관적이고 초개인적인 가치 영역 간의 갈등으로도 나나날 수 있다.

베버에 의하면, 가치 지향성은 특수한 가치 판단이 아니라 세계관(Weltan- schauung)이다. 즉, '인생과 우주에 관한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 가치 지향성은 윤리적인 동시에 실제적이어서 이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행동 경로를 규정한다. 가치 지향성은 행위를 인도하고,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종의 종합적인 '가치에 대한 지향성'이다. 인간 행동은 이 가치 지향성에 의해서 형성되고 인도된다. 베버에 의하면 가치 지향성 없이는 진정한 인격을 가질 수 없다. '인격'의 존엄성은 생활을 조직하는 가치가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가치 지향성은 생활에 주요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행동을 형성하고, 인도하고, 따라서 인간 생활을 단순한 '자연의 사건'(event in nature)으로부터 구별시켜준다. 이것을 통해 가치 지향성은 인간 생활에 일관성과 존엄성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가치 지향성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이다. 가치 지향성은 두 가지 의미에서 주관적이다. 첫째, 가치 지향성은 존재론적으로 주관적이다. 가치 지향성은 개인의 내재적 특질이다. 즉 신념, 태도, 가치관과 의향의 복합체이다. 따라서 주체의 관여가 없다면 가치는 존재할 수 없다. 가치는 개인이 창출하고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베버는 개인의 주관 밖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가치의 존재를 부정한다. 가치는 주관의 산물일 뿐이다. 가치는 인간이 '자기의 활동과 존재에 관한 의미'를 만드는 과정의 산물인 것이다. 가치의 존재론적 주관성에 대한 베버의 견해는 그의 인간 개념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베버에 따르면 "인간은 세계에 대해서 결정적 태도를 취하고 세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부여받은 문화적 존재(cultural being)이다."

둘째, 가치 지향성은 오직 주관적 타당성만을 가진다. 세계관으로서의 가치 지향성은 지식에 관한 요구를 잘 나타낸다. 그러나 이 요구는 어떤 객관적인 타당성이 없다. 가치 지향성에서 구체화되는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타당한 것이 아니라 오직 각 개인에게만 타당하다. 사실-가치 이원론에 따르면 과학은 세계관을 산출하지 않는다. 따라서 가치 지향성은 과학으로부터 아무런 지지를 요구할 수 없다. '우리는 이 세상에 관한 그 분석이 아무리 완벽하다고 해도, 그 분석의 결과로부터 이 세상에 관한 의미를 배울 수 없다'라고 베버는 쓰고 있다. 과학은 객관적 타당성을 가지지만, 가치 지향성은 주관적 타당성만을 가진다.

베버의 가치의 주관성에 관한 논의는 자연히 가치 다원주의(value pluralism)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가치가 본질적으로 개인의 주관의 산물이라면, 가치는 당연히 개인마다 상이하고 그만큼 다양할 것이며, 개인의 가치 지향성을 형성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하는 문화 체계만큼 다양할 것이기 때문이다. 베버는 가치의 다양성을 '여러 질서와 가치의 신들이 종사하고 있는 투쟁', '가치 세계에 관한 단 한 가지의 적절한 형이상학으로서의 "절대적 다신론", '가치 간의 융화될 수 없는 사투', '평가 태도의 무한한 다양성', '궁극적인 세계관의 충돌'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가치 주관주의(value subjectivism)와 가치 다원주의가 사실-가치 이원론과 결합하게 되면, 가치 갈등의 합리적 해결 가능성은 사라지게 된다. 상호 양립 불가능한 도덕적 주장이 제기되어 갈등할 때, 이러한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갈등하는 가치 지향성을 비교 평가할 수 있는 공통의 척도나 보편적 가치 공리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가치 지향성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갈등하는 가치들을 측정할 수 있는 단일한 척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각자의 가치 지향성에 의미를 주는 궁극적 가치 공리를 정당화할 수 있는 합리적 방법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상충하는 가치 지향성을 비교 평가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 공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가치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베버에 따르면, 탈주술화된 각성된 세계에서는 더이상 기본적 가치들 간에 통약 가능성(commensurability)이 존재한다고 믿을 이유가 없다. 통약 불가능한 가치관들이 갈등하는 상태에서 어떤 것이 더 가치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단지 결단만이 있을 뿐이다. "삶에 대한 궁극적 태도들은 화해 불가능한 투쟁 상태에 있으며, 이러한 투쟁은 최종적 결론에 이를 수 없다. 단지 결단하는 선택이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단도 논쟁 중인 많은 관점들 가운데 한 관점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결단이다.

나아가 베버는 한 사회 체계 내에도 다양한 가치 영역이 존재하고, 이 영역들 간의 가치 갈등도 합리적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과학'에서 '이 세상의 가치 영역들은 상호간 융화될 수 없는 갈등에 빠져 있다'고 쓰고 있다. 이 주장은 가치 지향성의 충돌에 관한 그의 논의와는 매우 다르다. 베버에 의하면, 사회계(social world)는 몇 개의 뚜렷한 활동 분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분야는 그 자체 고유의 존엄성과 자체 내의 규범을 갖고 있다. 이 자율적 활동권을 베버는 가치 영역이라고 부르고 있다. 가치 영역에서의 가치 갈등은 개인의 주관적인 가치 지향성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상이한 형태의 사회 행동의 내부 구조에 있는 객관적인 차이에서 발생한다.
사회 체계 내에는 다양한 자율적인 가치 영역이 있으며, 이들 사이에는 가치 갈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상이한 가치 영역에 내재된 상반된 의무를 조정하는 '궁극적' 가치 영역이 없다. 예를 들면, 정치적 합리성과 형제애 간의 갈등은 융화될 수 없다, 즉 어떤 더 고차원의 가치 영역 내에서 해결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고차원의 가치 영역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각 가치 영역은 특수한 규범이 내재하는 특수한 활동 영역이다. 어떤 보편적인 가치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보편적인 가치 영역에서 도출되는 규범도 없다. 상이한 가치 영역에서 도출되는 상충되는 의무 사이에 끼여서 사람들은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우리들의 궁극적인 관점에 따라서, 하나는 악마이고, 다른 하나는 신인데, 각 개인은 어느 것이 자기에게 신이고, 어떤 것이 악마인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베버는 이 선택의 적나라한 몰합리성을 강조한다. 이 선택은 과학에 의해서 지도될 수 없으며, 더 고차원의 가치 영역의 규범에 의해서도 결정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선택은 삶 그 자체의 일이지 삶의 어느 특수 영역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베버는 그 가치 영역들이 상호간 융화될 수 없는 갈등 속에 감금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베버의 가치 철학은 한마디로 사실-가치 이원론에 근거한 가치 결단주의와 주관주의 및 가치 다원주의이다. 세계에는 다양한 가치 지향성과 가치 영역이 존재하고 이들간에는 상호 화해 불가능한 다원적 가치들의 끝없는 갈등이 존재하다. 이러한 가치 갈등은 결코 합리적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이점에서 과학은 무력하고 합리성은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사실과 가치는 논리적으로 단절 상태에 있고, 궁극적 가치를 정당화할 수 있는 합리적 방법과 절차는 없다. 따라서 통약 가능한 보편적 가치 공리나 가치 이념도 존재하지 않으며, 궁극적 가치의 영역도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가치 다원주의 하의 가치 갈등은 개인적인 궁극적인 가치 결단에 의해서 개인적인 해결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4. 두 가지 윤리 체계와 합리성의 한계

1) 심정윤리와 책임윤리

궁극적 가치 결단의 몰합리성은 도덕의 영역 내에서 심정윤리(의향윤리, Gesinnungsethik)와 책임윤리(Verantwortungsethik) 사이의 선택에서도 드러난다. 베버에 의하면, 우리들이 윤리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모든 행위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대립을 내포한 두 개의 다른 원칙 하에서 움직인다. 그것은 심정윤리와 책임윤리이다. 베버는 책임윤리와 심정윤리를 정반대로 정의한다.

심정윤리에 따르면 행위의 도덕적 가치는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행위자의 심정, 즉 의향에 있다. 심정윤리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행동의 결과는 윤리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심정윤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순수한 가치 합리적인 지향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윤리적, 심미적, 종교적 또는 다른 형태의 행위의 절대적 그리고 본질적 가치를 그 행위의 결과와 관계없이 그 행위 자체로서 의식적으로 믿는 것에 근거하여 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평화주의자가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 평화주의의 확산이 역으로 전쟁의 위험을 증대시킬 때조차도 살인을 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취하는 경우, 그는 심정윤리적으로 행위하는 것이다.

심정윤리를 따르는 사람은 순수한 심정의 행위에서 나오는 결과가 나쁠 경우, 그렇게 된 책임을 행위자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돌리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음 또는 그 사람들을 그렇게 창조한 신의 의지로 돌린다. 심정윤리는 논리상 도덕적으로 위험한 수단을 사용하는 일체의 행위를 거부한다. 심정의 순수성을 고집하는 한 다른 가능성은 없다. 최소한 논리적으로는 그렇다. 따라서 심정윤리에 따르면 목적은 수단을 신성화하지 않는다. 심정윤리의 이러한 태도는 그것이 선으로부터는 선만이 나올 수 있고 악으로부터는 악만이 나올 수 있다는 단순한 명제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책임윤리에 따르면 행동의 결과는 윤리적으로 최상의 관련성이 있으며, 그 결과에 대해서 개인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윤리에 따라서 행위한다는 것은 목적 합리성에 따라 행위하는 것이다. 그것은 행위의 실현 가능성을 수단과 목적의 관점에서 추론하고, 예측할 수 있는 자기 행동의 결과를 설명하고, 수단을 목적에 대해서 뿐 아니라 목적을 부차적 결과에 대비해서 그리고 모든 가능한 목적을 서로 비교하여 합리적으로 숙고하는 것이다. 요컨대 책임윤리는 예측할 수 있는 결과 전체를 고려해서 전체적으로 어떤 결과의 조합이 최상인가를 고려함으로써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사람의 태도를 의미한다.

심정윤리와 달리 책임윤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자기 행위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던 한에서 그 결과를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런 결과가 된 것은 자기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임윤리를 따르는 사람은 좋은 결과를 위해서라면 그 자체만을 떼어놓고 보면 나쁜 것인 행동도 기꺼이 행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책임윤리에 따라 행위하는 의사는 환자가 진실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염려하여 환자에게 그의 상태에 대해 기꺼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다. 또 책임윤리에 따라 행동하는 정치가는 전쟁 억지 효과를 높여서 전쟁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국가의 전쟁 수행 능력을 증대시키고, 불가피할 경우 실제로 전쟁을 하겠다는 태세를 강화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책임윤리는 목적이 수단을 신성화한다고 믿는다. 책임윤리에 따르면 좋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경우 윤리적으로 의심스럽거나 적어도 위험한 수단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며 또한 나쁜 부수적 결과가 일어날 가능성이나 개연성도 함께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책임윤리는 이 세계에는 때때로 선에서 악이 나오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가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책임윤리는 이러한 세계의 윤리적 비합리성(die ethische Irrationaliaet der Welt)을 고려한다.

베버는 이 두 관점은 완전히 반대되는 양극단을 이루고 있으며, 합리적 논증에 의해 화해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책임윤리는 정치가에게 적합하고 심정윤리는 성자에게 알맞다고 생각하였다. 책임윤리와 심정윤리 사이의 선택은 두 양식의 합리성, 즉 목적 합리성과 순수 가치 합리성 사이의 선택이다. 그리고 이 선택 자체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선택되어야 할 것이 바로 합리성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이 선택에 있어서 베버의 가치 철학은 다시 한번 몰합리성에 직면하게 된다. 즉, 합리적으로 생활하기 위해 각 개인은 융합할 수 없는 상반된 두 합리성 사이에서 기준 없는 선택, 이런 뜻에서 몰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베버는 그 누구에게도 반드시 심정윤리를 따라야 하느냐 아니면 책임윤리를 따라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베버가 이런 식으로 심정윤리와 책임윤리를 양자택일적으로 대립시켜서 논의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흐리게 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행동의 결과를 절대적으로 무시하는 윤리 체계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특정한 결과를 언급하지 않고 행동을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행동은 결과를 낳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소신(심정)을 가지지 않고 오직 결과만을 고려하는 윤리 체계도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수단-목적의 관점에서 결과를 고려하기 위해서는 먼저 목적이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헤겔의 말대로 결과를 무시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원리와 결과에 따라 행동을 판단하고 그 판단을 정의와 선의 척도로 삼아야 한다는 정반대의 원리, 이 둘은 모두 오성의 추상적 형식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문제 의식하에서 보면 책임윤리와 심정윤리를 타협 불가능한 대립물로 보는 견해는 문제의 본질을 모호하게 하는 듯하다.

이런 문제 의식은 베버 자신에 의해서도 인지되고 있다. 베버는 심정윤리는 무책임과 같지 않으며, 책임윤리도 무심정(무신념)과 같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베버에 의하면 아무런 심정(신념)도 같지 않은 사람은 정신적으로 사망한 사람과 같다. 가치 지향성이 인격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한다면, 아무런 가치 지향성도 가지지 않고 순수하게 책임윤리적으로 행위하는 것은 인격의 존엄성을 가질 수 없는 정신이 죽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심정윤리와 책임윤리는 상호 보완한다고 할 수 있다. 베버도 책임윤리와 신념윤리는 절대적 대립물이 아니라 오히려 그 둘이 합쳐질 때야 비로소 정치에의 소명을 지닐 수 있는 진정한 인간을 만들어내는 상호 보완물이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베버의 이같은 견해(심정윤리와 책임윤리의 상호 보완성 논제)는 앞서 주장한 책임윤리와 심정윤리의 화해 불가능성 논제와 모순되는 듯이 보인다. 베버는 심정윤리와 책임윤리를 타협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심정윤리와 책임윤리는 절대적 대립물이 아니라 상호 보완물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베버의 논의는 분명하지 않고 혼란스럽다.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혼란을 해소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심정윤리와 책임윤리의 관계를 행위를 위한 '목적(혹은 가치) 정립의 차원'과 그 목적 혹은 가치 입장을 실현하기 위한 '행위 수행(혹은 선택)의 차원'으로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다.

목적 정립 혹은 가치 정립의 차원에서 보면 심정윤리와 책임윤리는 상호 보완 관계에 놓일 수 있다. 왜냐하면 심정윤리의 관점을 따르더라도 추구되는 행동(목적)이 결과 ― 실제 결과가 아니라 의도하는 결과 ― 에 의해 정의되기 때문이며, 책임윤리를 따르더라도 목적 혹은 가치 지향성을 가질 때 비로소 목적-수단 관계에서 결과를 고려하는 것이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 차원에서 두 윤리는 대립되지 않는다.

반면에 행위 실행의 차원에서 보면 심정윤리와 책임윤리의 대립은 해소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구체적인 행위 수행에서는 심정윤리와 책임윤리는 대립적인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심정의 순수함을 위해 도덕적으로 의심스럽거나 위험한 수단의 사용을 일체 거부할 것인가 아니면 결과에 대해 책임지기 위해 목적은 수단을 신성화한다는 관점에 따라 도덕적으로 의심스럽거나 위험한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감수할 것인가라는 선택에 직면해 있다. 심정윤리는 올바르게 행위할 뿐 결과는 문제삼지 않는다는 식으로 행위할 것을 요구하고, 책임윤리는 자기 행위의 예측할 수 있는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행위할 것을 요구한다. 전자는 가치 합리성에 따라 행위하는 것이고, 후자는 목적 합리성에 따라 행위하는 것이다. 수단으로서 행위 선택에 있어서 심정윤리와 책임윤리는 서로 대립해 있고 이 둘 가운데 어느 것을 따라야 할지는 합리적으로 결정될 수 없다. 베버가 강조하는 두 윤리의 타협 불가능성은 바로 이 차원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확실히 현대 윤리학에서 목적론과 의무론의 대립을 보더라도 이 두 윤리 사이에는 깊은 대립이 있는 듯하다. 행위 수행의 차원 혹은 수단으로서 행위 선택의 차원에서 책임윤리와 심정윤리는 몰합리적인 궁극적 결단을 요구한다.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하나의 가치 입장을 실현해야 하는 심정윤리를 따라야 하느냐 아니면 결과에 대한 책임에 좌우되는 책임윤리를 따라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최소한 '윤리'의 영역 내에서는 합리적으로 결정될 수 없다.

2) 탈주술화된 시대에서 책임윤리의 합리성

베버는 심정윤리와 책임윤리 사이의 선택에는 합리적 기준이 있을 수 없음을 누누히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베버 자신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심정윤리를 평가절하하고 책임윤리적 지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책임윤리와 심정윤리 사이의 선택이 몰합리적 선택이라면, 심정윤리를 평가절하하고 책임윤리를 따라야 할 합리적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버가 심정윤리를 평가절하하고 책임윤리를 지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베버의 책임윤리적 지향은 아무런 객관적 근거도 없는 단순한 베버 자신의 주관적 가치 지향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가? 베버는 심정윤리보다 책임윤리를 지향해야 할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 심정윤리는 가치 다원주의라는 우리 시대의 운명과 타협하지 못한다. 심정윤리처럼 어떤 가치의 절대성을 표방하고 있는 윤리는 이러한 다원주의와 갈등할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결과에 대한 책임을 고려하여 목적(가치)을 조정하는 책임윤리는 가치 다원주의와 타협이 가능하다. 시대 적합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책임윤리는 심정윤리보다 가치 다원주의라는 현대적 조건과 융화하기가 쉽다.

둘째, 심정윤리는 '세계의 윤리적 비합리성'을 견뎌내지 못한다. 심정윤리는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도덕적으로 의심스럽거나 위험한 수단을 사용하는 행위를 거부한다. 이는 논리적으로 선한(또는 악한) 수단에는 오직 선한 (또는 악한) 결과만이 뒤따른다는 전제를 함의하고 있다. 그러나 베버에 따르면 세계사의 모든 진행뿐만 아니라 일상의 경험을 음미해 보더라도 사실은 그 반대이다. 이 세상에서는 '선한 것에서는 선한 것만이, 악한 것에서는 악한 것만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선한 동기가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나쁜 동기가 결과적으로 선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즉, 우리의 경험은 세계가 윤리적으로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불합리성이 존재한다고 할 때,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되는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그것을 거부하는 것보다 종종 더 나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베버에 의하면, 이 세상의 어떤 윤리도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도덕적으로 의심스럽거나 적어도 위험한 수단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피할 수 없다. '목적에 의한 수단의 신성화(Heiligung der Mittel durch den Zweck)'라는 문제에서 심정윤리는 좌절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심정윤리는 이 '세상의 윤리적 비합리성'을 감내하지 못한다. 세계의 윤리적 비합리성이라는 견지에서 볼 때, 심정윤리의 우리에게 '경험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반면에 책임윤리는 세계의 윤리적 비합리성을 철저히 자각하고 있다. 책임윤리는 선한 동기가 악한 결과를 산출할 수 있음을 자각하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고자 한다. 때문에 책임윤리는 목적과 수단, 목적과 부차적 결과, 목적과 목적을 예측 가능한 결과에 비추어 견주어보려고 한다. 그러므로 세계의 윤리적 비합리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책임윤리는 심정윤리에 비해 우리의 '경험'에 적합하다(경험 적합성).

셋째, 심정윤리는 '탈주술화(Entzauberung)된 시대', '지성화된 과학의 시대', '합리화의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 베버에 의하면 근대의 가장 중요한 정신적 사건은 세계의 탈주술화, 주지주의화 및 합리화이다. 이것은 과학적 인식이 모든 사물은 계산을 통해 지배할 수 있다는 믿음을 널리 퍼뜨린 결과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과학은 가치 결단을 위한 영역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가치 결단을 제약한다. 과학은 사실-가치 이원론에 기초한 가치 자유성에 의해 자유로운 가치 결단을 가능하게 한다. 동시에 과학은 목적-수단의 연쇄에 대한 경험적 분석을 통해서 또 행위의 준칙에 대한 논리적 분석 및 의미 분석을 통해서 가치 결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고려해야만 하는 합리적 제약 조건을 정식화한다. 책임윤리를 지닌 사람은 과학에 의해 정해진 제한 조건을 따르지만, 심정윤리를 지닌 사람은 따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책임윤리적으로 행위하기 위해서는 행위의 준칙을 수단-목적 합리성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결과를 예측하며, 목적을 다른 목적과 견주어 보는 등의 과학적 분석이 필수적 전제가 되지만, 심정윤리적으로 행위하기 위해서는 이런 것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심정윤리는 행위의 준칙이 결과와 무관하게 그리고 실행 가능성과 무관하게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점에서 심정윤리는 '지성의 희생'을 강요한다. 따라서 책임윤리는 탈주술화된 지성의 시대에 적합하지만, 심정윤리는 적합하지 않다.

베버는 이상의 세 가지를 이유로 심정윤리를 평가절하하고 책임윤리적 가치 지향을 분명히 한다. 그러면서도 베버는 자신의 책임윤리적 가치 지향에는 아무런 논리적 필연성도 없음을 분명히 한다. 가치 다원주의, 탈주술화, 세계의 윤리적 비합리성 등의 전제가 필연적으로 책임윤리를 논리적으로 함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책임윤리와 심정윤리 사이에서 책임윤리적 가치 지향을 따라야 할 '논리적 이유'는 없다. 다만 시대 적합성과 경험 적합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책임윤리는 심정윤리에 비해 우리 시대의 조건과 우리의 경험에 보다 적합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적합성이 곧 심정윤리에 대한 책임윤리의 합리성을 보증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각종 적합성은 우리의 결단을 논리적으로 제약할 수 없다. 우리는 시대 적합성과 과학 적합성 그리고 경험 적합성을 무시하고 여전히 심정윤리적 가치 지향을 아무 모순 없이 선택할 수 있다. 우리가 심정윤리를 선택한다고 해서 그와 같은 선택을 비합리적이라고 비난할 근거는 없다.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그렇다.

심정윤리에 비해서 책임윤리를 택해야 할 '논리적 이유'는 없다. 단지 시대 적합성과 경험 적합성이라는 '현실적 이유'가 있을 뿐이다. 베버는 자신의 책임윤리적 가치 지향을 통해 '가치 다원주의', '세계의 윤리적 비합리성,' '세계의 탈주술화'라는 객관적 사실과 책임윤리 사이에는 논리적 필연성이 아니라 '선택적 친화력(elected affinity)'이 있음을 강조하는 것 같다. 마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가 아무런 논리적 필연성을 가지지 않으면서도 선택적 친화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다원주의, 탈주술화 및 세계의 윤리적 비합리성이라는 조건과 책임윤리 사이에도 일종의 선택적 친화력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베버는 정치 영역 혹은 공적 영역에 적용되는 윤리와 책임윤리와의 선택적 친화력을 강조한다. 사적 영역, 즉 일차적으로 자기 관련적 영역에서는 결과와 무관하게 하나의 가치 입장을 실현하고자 하는 심정윤리를 따른다고 하더라도 큰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사적 영역에서 책임윤리적 방식으로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 심정윤리적 방식으로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개인의 결단에 달린 문제이다. 사적 영역에서는 책임윤리적으로 가치를 추구해야 할 특별한 유인이 없다. 그것은 개인의 윤리적 이상에 속하는 문제이다. 하지만 다양한 가치들이 갈등하는 다원적 상황에서 가치를 추구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합리화라는 시대의 운명 속에서 의사 결정을 해야하고, 정당화된 강제력을 사용함으로 해서 불가피하게 세계의 윤리적 비합리성에 직면하는 정치 영역 혹은 공적 영역에서는 책임윤리를 따라야 할 현실적 이유와 유인이 존재한다. 이런 영역에서 심정윤리는 지성의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으며 또한 시대와의 불화가 불가피하다. 정치와 같은 공적 영역에서는 책임윤리가 심정윤리보다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책임윤리를 따라야 할 논리적 이유는 없으나 현실적인 이유는 있다. 특히, 공적 영역, 정치의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의미에서 책임윤리적 가치 지향은 정치 영역 또는 공적 영역에서 모종의 합리성을 가진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공적 영역에서 책임윤리적 가치 지향을 논리적으로 정당화 할 수는 없어도 시대 적합성과 경험 적합성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정당화 할 수 있다. 이것은 책임윤리를 따르는 것이 엄밀한 의미에서는 몰합리적이지만 자의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 즉 제한된 의미에서는 합리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제한된 합리성은 가치 결단을 구성하는 합리적 요소(경험적 분석과 철학적 분석)를 책임윤리가 수용하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가치 결단이 제한적 수준에서 합리적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책임윤리적 가치 지향을 선택하는 것 역시 제한적 수준에서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윤리와 심정윤리 간의 선택은 사적 영역에서건 공적 영역에서건 궁극적 가치 결단에서와 마찬가지로 최종 심급에서 궁극적으로 몰합리적이다. 공적 영역에서도 다원주의, 탈주술화 및 세계의 윤리적 비합리성 등의 조건이 심정 윤리를 논리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베버는 '가치 다원주의'와 '세계의 윤리적 비합리성' 그리고 '세계의 탈주술화'를 감안할 때, 자율적이고 책임있는 도덕 생활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면 책임윤리적 가치지향을 해야 할 현실적 이유가 있다는 것을 명백히 할 뿐이다.


5. 결론

이상에서 알아본 베버의 가치 철학은 사실과 가치의 논리적 이질성을 강조하는 논리적 명제에 근거를 둔 '사실-가치 이원론'과 이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들이 화해 불가능한 갈등 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회학적 관찰'에 근거를 둔 '가치 다원주의'를 가장 기본적인 전제로 한다. 베버는 이 두 가지 기본적 전제로부터 가치 판단은 경험 과학에 의해서는 정당화가 불가능하며, 다원적인 가치들 간의 갈등도 합리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가치 이념이나 가치 원리의 궁극적 정당화나 가치 갈등의 해결은 개인의 주관적인 결단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가치 결단은 제한된 수준에서 일부 합리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몰합리적이다. 가치 문제에서 과학은 궁극적으로 무력하고, 합리성은 최종 심급에서 한계에 부딪힌다.

궁극적 가치 결단의 몰합리성은 도덕의 영역 내에서 심정윤리와 책임윤리 사이의 선택에서도 드러난다. 전자는 올바르게 행위할 뿐 결과는 문제삼지 않는다는 식으로 행위할 것을 요구하고, 후자는 행위의 예측 가능한 결과에 대하여 책임지는 방향으로 행위할 것을 요구한다. 전자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고 보고, 후자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본다. 심정윤리와 책임윤리 두 관점은 완전히 반대되는 양극단을 이루고 있으며, 이 양자의 대립은 합리적 논증에 의해 화해 불가능하다. 심정윤리와 책임윤리 사이의 선택은 몰합리적인 궁극적 결단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정윤리는 '가치 다원주의', '탈주술화', '합리화'라는 우리 시대의 운명과 타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세계의 윤리적 비합리성'이라는 우리의 경험과도 불일치한다. 이에 비해 책임윤리는 다원주의, 탈주술화, 합리화라는 시대적 조건과 선택적 친화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윤리적 비합리성을 신중하게 고려한다. 이점에서 책임윤리는 심정윤리에 비해 시대 적합성과 경험 적합성을 가진다. 우리 시대의 운명은 책임윤리와 선택적 친화력이 있다. 특히 정치와 같은 공적 영역에 적용되는 윤리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심정윤리에 비해서 책임윤리를 따라야 할 논리적 이유는 없다. 다원주의, 탈주술화 및 세계의 윤리적 비합리성 등의 조건이 심정 윤리를 논리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책임윤리와 심정윤리 간의 선택은 궁극적 가치 결단에서와 마찬가지로 최종 심급에서 궁극적으로 몰합리적이다. 단지 시대 적합성과 경험 적합성이라는 현실적 이유가 있을 뿐이다. 요컨대, 책임윤리를 따라야 할 논리적 이유는 없으나 현실적인 이유는 있다. 따라서 우리는 책임윤리적 가치 지향을 논리적으로 정당화 할 수는 없어도 시대 적합성과 경험 적합성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정당화 할 수 있다. 책임윤리를 따르는 것이 엄밀한 의미에서는 몰합리적이지만 제한된 수준에서는 합리적이다. 가치 결단이 제한적 수준에서 합리적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책임윤리를 선택하는 것 역시 제한적 수준에서 합리적이다<